우리가 4·13총선을 보수양당체제로 가기를 바라는 것은 국민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정치발전을 위해서다. 이번 총선은 국민회의(신당), 한나라, 자민련등 3당이 총선구도의 주축을 이루긴 하나 국민회의, 자민련등 두 공동여당은 연합공천을 할 것으로 보아 두 여당과 한나라당으로 압축되는 보수양대세력 다툼의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보수양당체제는 아니더라도 양대세력대결로는 볼 수 있다. 우리는 이같은 양대정당세력에 대한 국민의 완전심판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 정치진로가 모호한 무소속출마의 자제를 권고하고 싶다. 막상 당선되고 나면 민의를 왜곡하는 또 어떤 변신을 보일지 모르는 것이 그들이다. 군소정당 출마자들도 사정은 거의 비슷하다. 총선에 나서봐야 원내교섭단체 구성조차 못할 것이 이미 객관화된 군소정당의 태동은 심히 우려되는 점이 많다. 영남권의 제3당, 개혁신당, 노동조직을 발판으로 하는 진보정당 등이 추진되고 있지만 이밖에 또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 건국이래 반세기가 넘도록 책임있는 양당체제가 확립되지 못한 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군소정당의 난립 또한 부정될 수 없다. 광복이래 무려 420여개의 군소정당이 명멸했다. 야당 대통합을 못이루어 집권당에 반사이익을 주는 다당체제는 쇠꼬리가 되기보단 닭대가리가 되겠다는 소영웅주의의 산물이다. 그러면서도 선거, 특히 총선은 지역적으로 더러 영향을 미쳐 양대정당제 발전에 부정적 작용을 한 것도 사실이다. 외국의 예에 비추어 통상 보수양당 보다는 보수대 진보정당의 양당체제가 관행이었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특성이 세계적으로 희석된 마당에 국내에서 진보정당이 보수정당에 대응할 만큼 자생할 수 있을지는 심히 의문이다. 영국 블레어정권, 프랑스 조핑정권, 독일 슈뢰더정권 등 이른바 유럽 좌파지도가 결국은 미국의 공화, 민주 양당의 보수대 진보 수준 차이를 넘지 못하고 있다. 양당체제 확립은 정치안정의 첩경이며 다당체제는 정정불안의 요인이다. 군소정당의 난립은 바람직스럽지 않으나 막을순 없는 일이어서 국민이 알아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하긴 보수정당마저 전통있는 당은 있다할 수 없다. 국민회의나 신당이나 자민련도 그렇고 한나라당도 뿌리깊은 정당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을 떠난 정치는 있을 수 없으므로 좋든 궂든 양대세력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보수양당체제를 이제부터라도 싹틔울 수 있는 4·13총선이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4·13총선이 벌써부터 과열 혼탁조짐을 보이고 있어 걱정스럽다. 각 정당별로 16대 국회의원 후보공천작업이 본격화한 가운데 이와 관련된 갖가지 음해성 악성루머가 출마희망자들 사이에서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당 모두 각 계파끼리 대결지역은 물론 현역의원과 전국구 의원간의 각축지역, 그리고 고위공무원 및 지자체장출신 입후보 예상지역 등 거의 모든 지역구에서 공통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공천경쟁자들은 하나같이 서로 상대방의 탈락설을 유포, 상대방의 기존조직을 와해시키거나 흡수를 유도하고 각종 유언비어를 퍼뜨려 공천에 영향을 주려는 비열한 흑색선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폭 물갈이설이 나돌고 있는 경기 인천 각 지역구에서는 이같은 행태가 더욱 두드러져 모함과 비방이 난무하는 타락선거를 부채질하고 있다. 연초부터 공명선거를 위해 시민사회단체와 선관위 등이 펴고 있는 캠페인이 무색할 지경이다. 여야가 이미 총선에 돌입했다고는 하나 아직 선거일도 공고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같은 구태적 악폐가 벌어지고 있으니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가면 어떤 상황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 뻔한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우리가 공천경쟁에서부터 자행되는 흑색선전 등 사전불법운동을 막지 못한다면 선거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정치적 장래는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일 것은 뻔한 일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선거풍토가 쇄신되지 않으면 우리의 경제 사회도 위기의 벼랑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함과 비방 술수로 당선되어 국정을 논하는 의정에 나선들 이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국회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을 도태시키기 위해서 선거법 위반행위를 철저히 감시하고 고발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려는 사람들 또한 어떻게 해서라도 당선만 되고보자는식의 사고나 논리는 이제 청산해야만 한다. 차제에 여야에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각 당이 공천하게될 인사는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체질을 개선하는데 앞장설 수 있는 개혁의지가 투철하고 높은 경륜과 분명한 철학을 가진 인물을 내세워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당국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데도 정부당국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지난 4일 비록 10여시간만에 30대의 이 여성관광객은 풀려나긴 했으나 체제비판의 시인서 작성을 끈질기게 강요받는 고통을 당했다. 충격인 것은 통일부가 이를 은폐했다는 사실이다. 무고한 국민이 북한당국에 붙잡혀가 조사를 받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어서 굳이 발표를 안했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뭣이 대수로운 것인지 묻는다. 관광객이 북한환경감시원에게 대놓고 “김일성, 김정일…”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북한측 입장에서는 적절치 않은 점은 인정한다. 또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민영미씨 사건이후 새로 맺은 합의각서는 관광중단, 추방조치이지 붙잡아가 조사한다는 대목은 없다.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관광객의 신변이상을 두고도 공개를 미룬 것은 심히 적절치 못하다. 우리가 이를 우려하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밝힌 ‘남북평화정착 원년의 해’선언에 행여 흠이 갈까봐 그런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신년들어 김대통령이 밝힌 일련의 대북제의의 상당내용은 남북 기본합의서 등에 들어있는 현안으로 환영한다. 그러나 2000년이 됐다 해서 북한이 달라질 징후는 없다. 그들이 신년사에서 말한 강성대국건설은 헌법이 정한 ‘인민정권강화’, ‘인민민주주의 독재강화’로 조선노동당규약에 설정된 ‘남조선해방의 혁명과업완수’를 뜻한다. 북한은 주창준 주중대사를 통해 대통령이 재임중 희망한 남북정상회담 관련의 CNN방송 회견 내용을 거부했다. 주목되는 것은 북한이 신년사에서 언급치 않았던 국가보안법철폐, 국정원해산, 주한미군철수주장 등을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들고 나섰다는 점이다. 북한은 우리측 일각에서 북한 신년사가 종전주장을 되풀이 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 조짐으로 평가하기가 바쁘게 그같은 일관된 종전주장을 발표했다. 섣부른 판단은 얼마나 큰 착각인가를 말해준다. 며칠전에 발생한 여성관광객의 억류엔 마땅히 엄중항의가 있어야 한다. 대북관계는 원칙에 입각해 진행돼야 한다. 정부당국의 각성을 크게 촉구해 마지 않는다.
수도권내 기업들의 역외(域外)이탈 러시로 경기 인천지역이 산업공동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정부가 수도권 인구집중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7월부터 지방이전 기업에 재산세와 종합토지세를 감면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을 시행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수도권에서 공장을 신증설할 경우 취득세와 등록세를 다른 지역보다 3배나 중과, 수도권 유입을 억제해오던 것을 지난해 부터는 한술 더 떠 조세감면 특혜를 미끼로 지방이전을 유도하고 있다. 수도권 기업을 타지역으로 이전시키기 위한 ‘규제’와 ‘특혜’의 양면작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로인해 작년엔 대한펄프(의정부)와 두산기계(화성) 등 4개업체가 충북등 타도로 이전했고, 수원의 삼성코닝 평택의 경동보일러 인천의 동양화학 화성의 동양매직 등 기업들이 이전채비를 하고 있다. 수원지역 제조업체가 97년 615개 업체에서 98년엔 541개 업체로 감소한 것을 보더라도 기업의 이탈현상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물론 정부로서는 세금의 중과 및 감면조치가 수도권 인구집중억제와 산업의 지방분산을 위한 방편이라고 하겠으나 이는 조세의 일반원칙인 공정성과 공평성을 해침은 물론 지방자치시대에도 걸맞지 않는 것이다. 지역자치가 진전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돼야 진정한 지방자치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진대 수도권지역에 대한 일방적 차별정책으로는 참된 ‘자치’를 구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도권지역 기업들의 공장신증축에 대해서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등에 의해 2·3중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거기다 지방세 중과로 부담을 가중시킨 상황에서 세제혜택을 미끼로 기업을 타지역으로 이전시키려는 것은 시장원리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수도권내 기업들이 이같은 정부의 ‘규제’와 ‘당근’정책으로 이 지역을 떠나게 되면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제기반은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IMF쇼크로 지방기업들이 집중적으로 몰락해 지역경제의 신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수도권의 산업공동화는 역내(域內)지자체의 재정악화를 초래하고 결국 국가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당국은 기업배치를 시장원리에 맡겨야 할 것이며, 경기도와 인천시 역시 기업의 이탈을 막는 특단의 방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은 과연 필요한가. 미군은 무엇 때문에 한국에 주둔하는가. 인근 미군부대에 강력한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첩보에 따라 5일 새벽 1시30분부터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 주민 1천89가구 3천여명이 공포와 추위에 떨며 긴급대피한 소동은 주한미군 불신을 증폭시킨 사건이다. 수색결과 거짓 첩보로 밝혀져 5일 오전 9시13분 주민대피령이 해제됐지만, 해프닝이라고 넘기기에는 주한미군의 처사가 너무나 비인도적이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주한 미군기지 ‘캠프 에드워드’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첩보가 입수된 것은 지난 4일 오전 10시였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주한미군에 근무했던 마약사범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파주의 캠프 에드워드에 폭발물을 설치했고 5일 폭발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는 즉각 주한미군사령부에 통보됐다. 이 부대에는 유류 60만ℓ와 폭약, 탄약 등 각종 위험물이 많아 폭발할 경우 반경 1㎞지역 내에 심각한 피해가 예상됐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4일 낮 12시쯤 미 2사단에 관련내용을 통보했고, 미 2사단은 이 때부터 밤 10시쯤까지 캠프 에드워드에 상주하는 주한 미군 및 군속 2백여명을 각종 물자와 함께 다른 미군기지로 대피시켰다. 미 2사단은 그러나 이 사실을 지난 4일 오후 5시10분쯤에야 인근 한국군 부대에 알렸고 주한미군사령부는 오후 5시30분쯤 합참 지휘통제실에 공식 통보했다. 파주시는 이보다 늦은 오후 7시10분쯤 미군 관계자와 경찰정보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했으나 5일 0시를 훨씬 넘긴 뒤인 새벽 1시10분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주민대피령과 함께 통일로와 경의선 일부를 통제하고 차량통행을 금지시킨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주한미군의 파렴치한 조치에 심각한 우려와 함께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미군들이 먼저 떠난 후 7시간이나 지난 뒤 대피하라고 통보했다니 가슴이 뛴다. 테러가 예고된 5일 0시에 실제로 폭발물이 터졌다면 수천여명의 한국인이 살상됐을 것이 아닌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참상이다. 주민대피령 발동권한이 있는 파주시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몰라 우왕좌왕한 것도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나 이번 폭발물 대피소동은 한국에 정확한 첩보상황을 즉시 전해주지 않은채 ‘우리만 살면 된다’고 사지에서 벗어난 주한미군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당국은 이번 파주 미군부대 폭발물 첩보에 따른 주민들의 정신적 피해와 도의적 책임을 엄중히 항의함은 물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긴급상황 돌발시의 체계를 굳건히 해야 한다.
서울 지하철노조가 만성적인 노사분규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로서 무쟁의(無爭議)를 선언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10월 온건노선을 표방하여 제9대 서울지하철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된 배일도(裵一道) 위원장은 파업을 위한 파업을 지양하고 성실교섭의 원칙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 말하고, 이는 사실상 무쟁의 선언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고 했다. 서울지하철 노조는 민주노총의 전위대로 인식될 정도로 그동안 있었던 많은 노사분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87년 노조 결성 이후 서울지하철 노조는 7차례의 파업 선언이 있었으며, 실제로 5차례에 걸쳐 파업을 단행함으로써 파업을 일삼는 강성노조의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파업시마다 수백만명의 지하철 승객에게 불편을 주어 시민들로부터 비난도 많이 받았다. 이번 무쟁의 선언은 오는 11일에 있을 협약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효력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그동안 집행부의 협약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대립적 노사관계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노사분규가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되어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높여야 됨에도 불구하고 극단의 방법으로 인하여 갈등만 양산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노사정위원회라는 사회적 합의제도를 만들어 IMF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사관계 정립을 시도하였으나, 현재 많은 난관에 봉착하여 선진화된 노사관계 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사관계 역시 21세기에 걸맞는 방식으로 변해야 된다. 갈등과 강경일변도의 투쟁 방식은 20세기적 사고이다. 희망의 새천년을 맞이하여 선진화된 노사관계를 정립함으로써 국가발전의 동력을 찾아야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지하철노조의 무쟁의 선언은 앞으로의 노사관계 설정에 있어 많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소모적인 투쟁이 아니라 타협과 협상을 통한 노사관계를 정립함으로써 사회발전에 기틀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오는 7월 의약분업 시행을 앞두고 정부와 의료기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크게 우려할 일이다. 의약분업 시행방안에 이의를 제기하고 집단행동을 선언한 의사회가 이를 실행에 옮길 태세여서 진료체계에 엄청난 문제가 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말 왜곡된 의약분업 분쇄를 위한 전의료인 규탄대회를 갖고 하룻동안 휴진파업을 한 바 있는 의사회는 보험수가 현실화와 약사들의 임의조제 근절책 마련 등 7개항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오는 16일부터 진료거부 등 집단행동에 돌입한다는 입장이다. 대정부 투쟁을 위해 수원 등 지역별로 젊은 의사를 주축으로 비상대책위도 결성해놓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는 환자를 볼모로 한 진료거부행위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으로 관련법에 따라 강력히 제재할 방침이어서 정부와 의료기관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의사들이 의약분업의 한 주체로서 그 방안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진료거부라는 집단행동은 그 행동방식에 있어 적지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사실상 ‘휴진파업’이라는 수단을 택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게는 당치도 않은 일이다. 국민건강을 강조하면서 환자들의 건강권을 일시적 또는 상당기간 봉쇄한다는 것은 스스로 ‘의사’이기를 포기하는 행위라는 비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의약분업 결정과정을 보더라도 의사들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오는 7월 시행이 확정된 의약분업안은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의·약단체의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단체 통일안이 골격이 됐고, 심의과정엔 의사와 약사들도 참여해 마련된 것이므로 또 발목을 잡으면 직역(職域)이기주의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37년만에 시행되는 의약분업은 의료서비스 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인 만큼 첫술에 배부를 리 없고, 시행과정에서 예상못한 착오가 빚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문제는 그때 보완하면 될 것이다. 이제 의약분업은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명제다. 의약분업이 성공적으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약업계가 집단이기주의를 버리는 일이 시급하다.
장애인 의무고용비율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은 올해부터 고용부담금을 상향조정키로 했다는 정부의 방침은 진일보한 장애인 복지정책이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상시근로자의 2% 이상을 장애인으로 의무 고용토록 돼있으나 현재 사업장 평균 장애인 고용비율은 0.54%로 너무 낮은 수준이다. 정부가 장애인 고용촉진을 위해 고용비율이 1% 미만인 업체에 고용부담금을 1인당 최저임금의 60%(21만6천원)에서 70%(25만3천원)로 인상한 것이 그래서 이해가 간다. 그러나 사업장이 장애인 의무고용비율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 고용부담금 상향 조정으로만 장애인 고용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기업체들이 상시근로자의 2%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하는 의무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노동할 자격과 의사가 있는 모든 국민에게 고용기회를 창출해주어야 하는 것은 혼합경제체제 국가가 이행해야 하는 가장 큰 책무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90년 법제정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고용을 위한 정책기반을 마련하였고 법추진을 위한 기구로서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설립됐다. 법제정의 기본취지에 따라 91년에는 300인 이상 고용사업장에 대하여 1%의 장애인고용을 의무화했고, 92년에는 1.6%, 93년에는 2%의 고용률을 규정하여 장애인 고용의무 비중을 점차 확대했다. 그러나 추진실적은 고용의무제도 실시 첫해인 91년의 경우 고용의무인원의 43%인 9천1백명 수준에 머물렀다. 추진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문제는 장애인 고용에 대한 기업체와 사회전반의 인식이 크게 부족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질병,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 장애인 문제는 언제 내 문제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 장애인 고용문제를 생각할 때 장애인 일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울러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올 7월부터 시행되는 공무원 신규채용시 장애인 의무채용비율 5%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동안의 의무채용비율 2%는 너무 형식적이었다. 만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는다면 기업체에 고용부담금을 물리게 할 권한이 없다.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착실히 시행될 때 진정한 복지사회는 이룩되는 것이다.
대통령과 집권당 총재의 차이를 한마디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렇다해서 같은 것은 아니다. 분명히 다르다. 대통령은 집권당을 위한 대통령이 아니다. 국민의 대통령이다. 이를 혼동할 경우 정치가 혼탁하고 나라가 시끄럽다. 신년사는 대통령으로서 그 해의 시정방침을 국민에게 밝히는 국정백서다. 연두기자회견 같은데서 집권당 총재로서 질문받은 내용에 답변하는 것과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년사는 오직 대통령의 입장에서만 국정지표를 피력해야 하는 것이 상궤다. 김대중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신당을 언급한 것은 그같은 상궤를 일탈했다. ‘국정이념을 실현하고자 신당을 창당한다’고 말한 것은 국정지표와 정권목표를 혼동했다. 대통령의 위치에서 집권당 총재의 모습을 보인 것은 불가하다. 신당창당은 정권차원의 작업이지 국정일 수가 없다. 정권목표의 신당을 대통령의 위치에서 운운하는 것은 대통령의 직무를 무기삼아 엄호하는 것으로 보여져 심히 부당하다.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위해 신당 의석안정의 정치수단으로 언급할 수 있다는 강변은 어디까지나 강변이다. 그같은 얘기는 총재로서 당의 행사에서나 가능하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정당기능과 국가기능을 능히 식별할 줄 아는데 있다. 이를 혼동하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 대통령과 집권당 총재의 혼선은 전에도 있었다. 역대 정권의 집권자들이 대개는 그랬다. 재야의 김대중씨가 민주화운동을 벌인 것도 그같은 정권의 부도덕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만은 전철을 답습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 그 역시 구태를 못벗은 것은 유감이다. 중임제도 아닌 단임제에서 대통령과 총재 구분의 도덕성이 축적되지 못하는 것은 정치발전의 정체로 불행한 현상이다. 진정, 다가오는 4·13총선이 걱정되면 새로운 면모를 국민에게 보여주는 성찰이 필요하다. 총재가 대통령의 입장에서 신당을 자꾸 들먹이는 것은 공정치 못한 게임으로 국민들이 보기에 썩 보기 좋은 것은 못된다. 신당은 분명히 국민회의 총재가 만드는 정권목표의 작업이다. 국가기관으로써의 대통령과는 어디까지 별개다. 본란이 이를 굳이 언급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수준이 그만큼 낙후돼 있음을 말한다.
공공기관은 국가질서와 구성원에 대한 봉사를 상징하는 장소이다. 때문에 공공기관이 사회구성원으로부터 동의를 얻어 권위를 가지고 국가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에 대한 봉사를 하고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은 여하한 경우에도 권위를 가지고 힘을 발휘하여야 하며 또한 주민과 더욱 친근하게 대면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또한 공공기관은 공권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는 공공기관에 대한 권위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권위를 잃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권력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까지 야기되고 있어 이에 대한 조속한 대책이 요망되고 있다. 공공기관이 무시의 대상이 되는 차원을 넘어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면 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구랍 12월 30일 인천과 성남에서 공공기관의 업무 처리에 불만을 가진 민원인에 의해 시청과 구청 청사 유리창과 컴퓨터 등 기물이 파손되고 공무원을 폭행하는 사태가 발생하였으니, 이는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불만의 표출이 아닌 것이다. 물론 공공기관의 권위가 무시되는 것은 공공기관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과거 공공기관은 강력한 집행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권력을 자의적으로 불편부당하게 사용하여 공공기관 자체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를 하였다. 즉 공공기관이 정당하지 못하게 힘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때로는 공공기관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대명사로 국민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접근하기 조차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 때문에 공공기관 스스로 정당한 힘을 정당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사회에서는 여하한 경우에도 폭력을 통한 갈등해결은 안된다. 더구나 국가질서와 구성원 봉사에 바탕을 이루고 있는 공공기관이 폭력의 대상이 된다면 사회 질서는 유지될 수 없다. 더 이상 공공기관의 권위가 무시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자성하여야 될 것이다. 폭력은 폭력의 악순환만을 유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의 권위가 사회구성원의 합의에 의하여 조속히 회복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