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自省

원로 신학자이자 목회자인 82세의 조찬선 목사가 ‘기독교의 죄악사’라는 책을 펴냈다. “교회는 이런 잘못을 했다”는 고백록이다. 조 목사는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성직자들의 장사하는 집이라고 진단했다. 시장바닥의 상도덕에도 미치지 못하는 신도 쟁탈전, 목회자의 치부의 수단으로 전락한 십일조의 강요, 그것도 모자라 헌금자의 명단까지 주보에 싣는 파렴치한 행위들이 공공연히 벌어진다고 통박했다. 또한 죄인을 양산하는 위선과 기만의 장소다. 목이 터져라 죄를 회개하고 통곡하는 통성기도는 위선과 기만의 연습시간이라며 교회가 기쁨의 장소가 아니라 신도들에게 죄의식만 심어준다고 주장했다. 원죄론이 결국은 교인의 돈을 뜯어내려는 목회자의 협박 무기로 전락한 것이 아니냐고 했다. 군사정권의 대통령을 억지로 조찬기도회에 불러 놓고 서로 경쟁적으로 아첨을 떠는 등 권력과의 결탁은 한국교회가 가롯 유다의 전통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18∼19세기 선교사들의 만행, 십자군의 잔인성, 면죄부의 타락상, 교황의 부패상, 두 얼굴의 청교도 등도 폭로하고 교리문제까지 지적했다. “기독교만이 사랑과 구원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종교인가”라고 질문을 던진 뒤 ‘종교적 배타성과 독단성’이 전쟁과 학살, 타문명 파괴 등 인류에 지대한 해악을 끼쳐왔고, 이대로 계속된다면 새로운 분쟁과 전쟁이 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찬선 목사는 “기독교의 죄를 폭로해 궁지에 몰아 넣으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혁명적인 개혁을 통해 진정한 예수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가게 하고자 책을 썼다”고 말했지만 용기있는 자성이 충격적이다.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의 성웅 마하트마 간디(1869∼1948)가 남긴 말이다. /淸河

직능의식

아인슈타인(1879∼1955)이 나치에 의해 추방되기전 1920년 독일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세계경제공황이 일어나 아인슈타인의 생활을 걱정한 몇몇 미국인들이 수표를 보냈다. 한달이 지나서 이를 비로소 알게된 부인이 남편의 연구실 책갈피를 뒤져봤더니 그 속에서 수표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연구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전에는 사랑하는 것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하는 것만 사랑한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노벨물리학상에 이어 노벨화학상을 받은 퀴리부인은 1906년 남편을 잃고 생활이 어려웠으나 라듐에 관련한 주변의 특허권유를 “학문을 돈으로 타락시킬 수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지금은 다르다. 어떤 분야든 대가나 거장이 되면 노력에 상응한 처우를 돈으로 따져 환산한다. 학문을 돈으로 타락시킨다기보다는 돈으로 평가한다고 할까, 학문의 가치관이 달라졌다. 학문뿐만이 아니다. 예컨대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 같으면 직능 자체의 평가보다는 국회의원은 차관급이냐 뭐냐, 지방의원은 부단체장급이냐 뭐냐하는등 관직과 비교하기를 즐긴다. 사회가 벼슬과 황금위주의 양대구조로 의식해온 탓이다. 비근한 예로 교장은 누구나 교육감이 될수 있고 교육감을 그만 두면 교장으로 되돌아갈수 있는데도 교육감을 큰 벼슬자리로 사회는 우월시한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돈많은 금만가나 재벌이 의사에게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인명을 맡긴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술이든 의술이든 의사가 사회의 존경을 받는 것은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라 인명을 다루기 때문이다. 의약분업에 당치않은 점이 있어 일부 의사들이 파업을 하고는 있으나 너무 오래 끌어 원성을 듣고 있다. 직능의식이 존경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白山

낙과 팔아주기

배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교목성 낙엽과수다. 봄에 피는 배나무밭의 배꽃은 순백인 것이 가히 장관을 이룬다. 근대 여성교육의 요람인 이화(梨花)학당 이름이 하얀 배꽃의 순결을 상징한 것으로 생각된다. 배는 맛도 있지만 해열에 좋고 이뇨에 도움이 되어 한약재로도 처방된다. ‘고려사’의 경제편이랄 수 있는 식화지(食貨志)에 배나무식재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전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당시의 배는 거의 야생의 돌배였고 1906년 뚝섬원예모범장이 설립된 뒤 개량품종 보급과 함께 1910년대엔 일본품종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배다. 태풍 프라피룬이 몰고온 비바람으로 배나무의 낙과가 절반 가까이나 되어 경작농가 피해가 막심하다. 당장 수출물량을 대지못할 형편이라니 여간한 낭패가 아니다. 수출선적도 큰 일이지만 쌓인 낙과처분이 어려운 형편이어서 낙과 팔아주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알고보면 잘 농익을수록이 역할을 다한 꼭지가 약해져 피해를 당한 것이 낙과다. 까치가 종이봉지에 쌓인 배를 어떻게 잘 알아보는지 종이를 찢고 쪼아먹다만 배일수록 맛이 꿀맛인 것과 같다. 배는 다른 과일과 달라서 심지어 썩어도 먹을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단맛이 더 있다. ‘배 썩은 것은 딸을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는 속담이 이래서 나왔다. 낙과는 겉모양의 상품성이 떨어져 비록 수출은 못해도 실수요의 내수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오히려 낙과가 실속은 더 있다 할수 있다. 낙과 팔아주기 운동에 많은 참여가 있으면 좋겠다. /白山

대통령의 말

말이란 정말 무섭다. 말한마디 잘못하여 손해가 막심하거나 봉변을 당하고 반대로 말한마디 잘해서 이득을 보거나 인심을 얻는 예가 범사에 허다하다. 이때문인지 말을 두고 일깨움을 주는 경구 잠언이 유별나게 많다. 잘못한 말은 나중에 취소하거나 사과해도 안한것만은 못하다. 말은 범인의 범사에 이처럼 중요하지만 사회지도층엔 더욱 중요하다. 특히 대통령의 말은 더더욱 막중하다. 우리같은 정치후진국에서는 대통령의 말이 법률에 우선한 기속력을 갖는다. 예컨대 ‘골프대중화론’이후부터는 조심조심하던 공무원 골퍼들이 드러내놓고 즐기는 골프해방을 만끽하고 있다. 박봉에 무슨 돈으로 골프치고 골프가 과연 서민대중 스포츠인지는 잘 알수 없지만. 지난 4·13 총선때는 선거법 불복종선언이 나오기 바쁘게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 저촉되는 사례가 봇물을 이루어 검찰과 선관위 관계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지난 1일 민주당 최고위원초청 청와대 만찬에서는 지방의원 외유의 당위론이 나왔다. “지방의원들이 해외에 나가는 것을 언론이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있으나 배우는 것이 많은 만큼 오히려 장려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김대중대통령이 당최고위원들에게 한 말이다. 이바람에 한동안 자제하는 쪽으로 기울던 지방의원들 외유가 “장려해야 한다”는 대통령말에 기가 살아 더욱 극성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관광성일정 투성으로 짜여지곤 한 과거의 외유에 그래도 배울게 많다면 더 할말은 없다. 언론보도가 잘못된 것인지 지방의원 외유가 잘못된 것인지는 지역주민들이 더 잘 알아 판단할 것이다. /白山

제청(提請)

경제는 경국제민(經國濟民)의 준말로 본래는 정치적 용어였다. 문화 역시 문치교화(文治敎化·왕이 문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며 계도함)의 준말로 정치용어였다고 할수 있다. 요즘 단명 사고가 자주 생겨 인사권자인 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드는 ‘장관’이란 용어도 원래는 자신의 상관이나 기관의 장을 뜻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국무를 맡아보는 각 부(部)의 으뜸가는 벼슬로, 국무위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자문화권인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부장(部長), 상(相·대신)으로 칭하고 북한도 상으로 부른다. 우리나라는 신라시대에 령(令)이라 했고 백제는 좌평(佐平), 고려시대에는 상서(尙書)라고 불렀다가 몽골침략 후에는 판서(判書)로 고쳤다. 조선시대에도 판서라고 했다가 고종 때 대신으로 바꿨으며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에는 총장이라 했다. 장관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이다. 송자(宋梓) 교육부장관이 취임 23일만에 도덕성시비로 퇴진하고 새 장관이 임명됐다. 국민의 정부에서 임명된 지 두 달도 안돼 물러난 ‘단명장관’이 송 전 장관을 포함 4명으로 늘어났다. 주양자(朱良子) 전 복지부장관이 두달만에, 김태정(金泰政) 전 법무부장관이 보름만에, 연극배우 출신 손숙(孫淑) 전 환경부장관이 한달만에 낙마했다. 낙마원인은 4명이 모두 임명 직후 개인비리 의혹이나 신상문제가 불거지면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도중하차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장관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청(提請)은 ‘임명하도록 정식으로 추천’한다는 뜻이다. 입각대상자는 물론 대통령이 인선한다. 그렇다고 말썽이 생겨 낙마하는 장관을 제청한 국무총리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수 없다. 국무총리가 우선 철저히 검증한 후 제청해야 한다. 인사(人事)가 망사(亡事)라는 비난이 또 나와서는 안된다. /淸河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雨)를 소재로한 문학작품, 특히 운문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동양인, 그 중에서 우리 한국인은 비에 유난히 다정다감해서인지 자고로 비를 읊은 운문들이 많다. “한식 비온 밤에 봄빛이 다 퍼졌다/무정한 화류도 때를 알아 피었거든/어떻다 우리의 임은 가고 아니 오는고” - 신흠(1566∼1628)의 시조. “자당에 비 뿌리고 양류에 내 끼인제/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매였는고/석양에 짝 잃은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노매” - 조헌(1544∼1592)의 시조.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추풍 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 계랑(1513∼1550)의 시조. “비 내리는 봄밤에 낙숫물 소리/노자가 한 평생 사랑한 소리/베옷으로 몸 가리고 등불 돋우며/아내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네” - 권필(1569∼1612)의 한시(漢詩). “찬 비는 밤 새도록 대숲 울리고/가을이라 풀벌레는 침상곁에서 우네/흐르는 세월을 어찌 머물게 하랴/짙어 가는 백발을 막을 수 없구나” - 정철(1536∼1593)의 한시. “가만히 오는 비가/낙수져서 소리하니//오마지 않은 이가/일도 없이 기다려져//열린 듯 닫힌 문으로/눈이 자주 가더라” - 최남선(1890∼1957)의 시조 ‘혼자 앉아서’. 비를 소재로 한 시와 시조는 참으로 많은데 봄비를 노래한 작품은 ‘이별’이라고 하여도 유정하다. 그러나 가을에 듣는 빗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감에 젖게 한다. 요즘 경기북부지역이 경기남부지역에 이어 또 수해를 당해 심란스럽기 짝이 없는데 이제는 오지 않아도 될 비가 자꾸만 내린다. 수해지역에 내리는 비가 원망스럽고 빗소리가 두려운 이유는 아무리 예술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생존을 앞설 수 없기 때문인듯 싶다. /淸河

강감찬장군 동상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낙성대(落星垈)’는 고려의 명장 강감찬(姜邯贊) 장군의 출생지로 전해져 왔다.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진 날 강감찬(948∼1031년) 장군이 태어났다 하여 낙성대라고 이름 지었는데 사리탑식(舍利塔式) 석탑이 남아 있다. 강감찬 장군은 고려 현종(顯宗) 9년(1018년)에 거란의 장수 소배압이 고려를 침공하였을 때 서북면행영도통사(西北面行營都統使)로 상원수(上元帥)가 되어 거란군을 격파하였다. 특히 구주에서의 대첩은 대외항전사상 중요한 전투의 하나로 기록돼 있다. 구주대첩에서 거란군은 전멸에 가까운 손실을 입어 고려 침입군 10여만명 중 생존자는 수천명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이 강감찬 장군의 동상이 낙성대에 있지 않고 왜 수원 팔달산에 건립됐느냐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였다. 강감찬 장군의 기마동상은 1971년 6월29일 애국조상건립위원회(위원장: 신범식 문화공보부 장관)와 서울신문사가 공동주관하여 기공했는데 1971년 10월 준공됐다. 제막식은 1972년 5월4일 김종필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요인과 많은 수원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남창동 산 1번지 대지 500여평에 조각가 김영준씨의 조각으로 세워진 이 동상은 원상(原像) 높이 4.5m, 좌대높이 5.7m, 전체높이 10.2m, 청동주물상 5t, 마상의 길이 5m의 거대한 기마동상으로 건립기금은 삼양식품공업주식회사 전중윤 사장의 헌납금 1천600만원으로 건립됐다. 그런데 30년동안 팔달산을 지켜왔던 강감찬 장군 동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20여억원을 들여 정조대왕 동상을 세운다고 한다. 강감찬 장군 동상은 수원시 화서동 숙지산 공원과 군사훈련 장소였던 동장대 (연무대), 장안공원, 만석공원으로의 이전이 검토되고 있다는데 지금 팔달산에 가면 호국의 용장 강감찬 장군이 적진을 질타하는 듯한 호령소리가 들려온다. /淸河

가을

조상들은 계절에 대한 감각이 풍부했던 것 같다. 사계절에 쓰이는 계절 이름이 설흔여섯 가지나 된다. 봄으로는 이른봄 조춘(早春) 초춘(初春) 천춘(淺瑃) 헌춘(獻春), 한봄으로 중양(仲陽), 늦봄으로는 만춘(晩春) 잔춘(殘春) 춘말(春末) 모춘(暮春) 등이 있다. 여름은 초여름으로 초하(初夏), 한여름은 성하(盛夏) 성염(盛炎), 늦여름은 잔하(殘夏) 만하(晩夏) 등으로 불린다. 가을은 초가을을 초추(初秋), 한가을은 계추(桂秋), 늦가을로는 잔추(殘秋) 만추(晩秋) 등이 있다. 겨울은 초겨울을 초동(初冬), 한겨울을 증동(蒸冬), 늦겨울은 만동(晩冬) 잔동(殘冬) 등으로 부른다. 그러나 이는 개념적 철 이름으로 달마다 달에따라 부르는 계절 이름이 따로 있다. 음력으로 정월 상춘(上春) 맹춘(孟春) 2월 중춘(仲春) 3월 계춘(季春) 4월 맹하(孟夏) 5월은 계하(季夏) 라고 한다. 7월은 상추(上秋) 맹추(孟秋) 8월 중추(仲秋) 9월 계추(季秋) 10월 상동(上冬) 맹동(孟冬) 동짓달 중동(仲冬) 섣달은 계동(季冬) 이다. 흥미있는 것은 예컨대 상춘이 있었다 해서 하춘이 있는것이 아니고 철과 달마다 의미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사계절중에도 봄과 가을 이름이 비교적 많은것은 봄 가을에 더욱 생활의 정취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오는 9월27일 백로를 앞둔 탓인지 초가을이 완연한 가운데 추석(9월12일)이 든 중추가절이 짙어가고 있다. 얼마전 까지만도 밤낮으로 쪄대든 한증막 더위가 사라지고 하늘이 높아 가면서 오히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기까지 하다. 건강에 유의해야 할 때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여 풍성한 가을을 보람있게 맞이 해야겠다. 바삐 살다보니니 어느새 중추로 접어든 한가을속에 묻혔다. /白山

판단의 오류

1997년 8월30일 자정이 넘어서다. 미국의 3대 공중파 방송중 하나인 CBS에 지방가맹사들의 비난 전화가 빗발쳤다. CNN, NBC등은 정규프로그램을 중단, 영국의 다이애나비가 파리에서 교통사고 당한 참혹한 장면과 함께 현장뉴스가 중계되고 있는 시간에 CBS는 한가롭게 프로레슬링 중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CBS가 다이애나비의 사망 소식을 뒤늦게 다루기 시작한 것은 한시간이 지난 뒤였다. 헤이워드 CBS 사장은 멍청했던 한시간을 ‘악몽의 시간’으로 규정, 베나르도스 뉴스담당 부사장을 특집담당으로 좌천시키고 맥기니스 런던 지국장을 승진 발령했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때의 일이다.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진격해 오고 있는 시간에 신모국방부장관은 이승만대통령에게 ‘각하, 용맹무쌍한 국군이 일제히 반격을 가해 격퇴시키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육군수뇌부는 전날(토요일) 밤 육군회관 준공파티에서 만취한 술이 덜깬 작취미성의 상태였다.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참사로 국민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는 것은 늑장 대처한 탓이다. 조난 보고를 받고도 흑해 별장에서 계속 휴가를 즐기다가 사태가 심각해진 이틀날 마지못해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서구에 구조지원 요청을 한 것은 또 이틀이 지나서 였다. 푸틴은 118명의 목숨을 앗아간 쿠르스크호 참사와 관련, 지난 23일을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유족들에게는 10년분 봉급, 아파트 제공등을 약속하는 등 뒤늦게나마 수습에 나섰으나 이반된 민심은 좀처럼 돌아서지 않고 있다. “러시아에 태어난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는 불만이 나올 정도다. 모든일은 이처럼 대처하는데 시기가 있다. 시기를 놓치는 것은 판단의 오류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다. 우리 주변에 판단의 오류로 시기를 놓치는 일이 없는지 정부는 다각적인 성찰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白山

작물수해

‘농사는 곡식을 가마니에 담아 곳간에 재워야 안다’는 옛말이 있다. 씨앗을 싹틔워 이앙하고 김을 매어 수확하기까지 여간한 공력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마치 아기 키우듯이 온갖 정성을 다 들여야 한다. 자연의 변덕은 예측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다. 아무리 과학영농을 말해도 대자연의 심술은 인간이 당할 재간이 없다. 날벼락같은 한여름 우박은 순식간에 모든 작물을 망친다. 철이른 무서리 또한 생떼같은 농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비가 많이 와도 걱정, 비가 안와도 걱정인 것이 농사일이다. 보통 너댓번씩 위협받는 태풍 역시 무서운 복병이다. 농사를 짓는데는 이처럼 일일이 말 못할 걱정거리가 많다. 올 농사가 근래 보기드문 대풍이라더니 지난 며칠동안 내린 아무 쓸모 없는 비로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닌것 같다. 산사태가 나 인명이 다치고 철도 도로 등이 끊긴 전국적인 피해속에 누런 들판을 휩쓴 흙탕물 홍수를 보노라면 정말 마음 아프다. 늦더위 햇볕속에 하루가 다르게 여물어야 할 벼가 일조량이 모자라 지장을 받는 것도 뭐한데 홍수에 할퀴어 무더기 무더기로 쓰러졌으니 한시바삐 일으켜 세워야 할 일이 큰 걱정이다. 벼와 함께 논이 유실돼버린 것은 또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풍년을 눈앞에 두고 삽시간에 폐농을 당하다시피한 농가가 있을 것이니…. 가을 과일 농사도 치명적일테고. 수해가 남부지방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도내에도 적잖은 피해가 났다. 쓰러진 벼 일으켜 세우는데 대한 당국의 인력지원대책이 시급하다. 가을비는 반갑지 않다는데 이달말쯤 또 한차례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한다. 올 추석엔 햅쌀밥을 먹을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白山

북한 가족법

북한의 결혼은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룬다는 점에서 우리와 같다. 그러나 ‘혁명적 이념에 기초한 동지적’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남자 만 18세, 여자 만 17세면 결혼을 할 수 있으나 ‘국가는 청년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사회와 집단을 위해 보람있게 일한 다음 결혼하는 사회적 기풍을 장려한다’고 규정, 중국처럼 만혼만육(晩婚晩育)을 장려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혼인은 국가의 ‘심사’후 ‘등록’되며 약혼의 법적 효력은 없다. 8촌까지의 혈족, 4촌이내의 인척은 ‘근친혼’에 해당돼 결혼을 할 수 없지만 우리처럼 동성동본금혼제도는 없다. 북한의 이혼제도도 우리와는 좀 다르다. 초기에는 남녀평등사상에 입각해 자유 이혼을 강조했으나 1956년부터 ‘협의이혼’제도를 폐지해 이혼하려면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한다. 잦은 이혼을 방지하기 위해 두번 이상 이혼하려면 수수료 외에 ‘벌금’ 성격의 돈을 내야 하고 재판에서 부도덕한 행위가 발견되면 거주지에서 추방되거나 형사재판을 받는다. 그런데 1958년의 ‘조선가족법’ 141쪽에는 ‘임신중에 있거나 산후 1년 미만의 자녀를 보육하는 여성, 인민군대의 전사나 하사관, 또는 전투상태에 있는 군관을 피고로 하여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초기 북한정부의 여성과 아동보호주의, 군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우리의 민법 ‘가족편’에 해당하는 북한의 가족법은 1946년 제정된 ‘남녀 평등권에 대한 법령’으로 시작해 1990년 10월 제정된 ‘조선민주주의공화국 가족법’으로 완성됐다고 한다. 호적제와 호주제가 폐지되고 자녀에 대한 부모의 친권은 ‘권리’의 개념이 아니라 ‘의무’의 개념이라는 북한 가족법이 우리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淸河

남한신문이 북쪽에 가면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남한신문 10여종이 이르면 이달중으로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전달되고 북한도 ‘로동신문’, ‘민주조선’ 등 3∼4종의 중앙지를 보내올 전망이라고 한다. 지난 12일 평양을 방문한 남한 언론사 사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남한 신문을 보고 싶다’고 말한 후속조치인 셈이다. 남한신문을 판문점 자유의 집(남측)으로 보내면 판문점 남측 연락관이 외교행낭(파우치)에 준하는 절차로 밀봉, 북측 연락관에게 보내는 형태로 할 예정이라고 한다. 북한도 조간인 로동신문 등을 아침 일찍 판문점으로 보내 맞바꾸는 형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전달된 남한신문은 차량편이나 헬기를 이용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무실에 들어가겠지만 서울에 온 북한신문은 통일부 자료센터에 비치해 북한연구자나 학생 등이 신속하게 북한자료를 접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그동안 로동신문 구독은 홍콩·일본의 중개상을 통해 7일에서 15일 정도 걸렸는데 판문점에서의 직접 교환은 서로 구독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남북교류협력법상 ‘반입과 반출’ 승인절차를 밟는다. “달러가 없어서 돈 내고는 못 본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한 마디에 남한신문이 북한에 즉시 전달될 것 같은 사실 앞에서 마치 남한은 짝사랑하는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에 오금을 못펴는 것 같아 좀 뭣하기는 하다. 북한 주민사회는 지금 어떠한지 모르지만 남한신문의 기사 중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치판은 그렇다치고 친딸 성폭행과 원조교제, 존속살인 등 부도덕스럽고 사악한 사건들은 참으로 큰 걱정거리이다. /淸河

매미소리

매미는 현재 18여종으로 보고돼 있는데 이들 중 참깽깽매미·말매미·봄매미·소요산매매·두눈박이좀매미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알려져 있다. 수컷의 복부에는 훌륭한 발음기관이 있어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 다른 곤충과 비교할 수 없는 특징이다. 매미는 생태적으로 매우 특이한 점을 지니고 있다. 유충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땅 속에서 보통 2∼5년을 살며, 성충이 되기 위해 지상에 나와서는 나무에 올라 마지막 탈피를 한 뒤 약 한달정도 살다 알을 낳고 죽는다. 유충은 나무의 뿌리에서 수액을 빨아먹고, 성충은 햇가지 속에 알을 낳아 나무를 말라 죽게 하므로 식물에 피해를 많이 주는 곤충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도 매미의 울음소리는 가곡이나 동요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매미의 울음소리를 여름날에 들으면 마치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 처럼 시원한 청량감을 준다. 그러나 요즘의 매미소리는 아마 소음이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매미는 원래 낮에만 우는 곤충인데 요즘 매미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기 때문이다. 주서식지도 야산이나 숲속으로 알려져 왔지만 지금은 아파트단지나 빌딩 숲 한가운데 까지 점령해 버렸다. 더욱이 수컷이 암컷을 유인할 때 내는 울음소리는 건설현장을 능가한다. 이처럼 도심에 매미가 부쩍 늘어난 현상에 대한 정확한 원인이 규명된 것은 없다. 다만 천적인 말벌과 조류 등이 공해로 감소함에 따른 것이고 매미가 밤에 우는 것은 도심의 불빛을 보고 낮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라는 추정은 한다. 수년간을 땅 속에서 지내고 겨우 지상에 나와 한달 정도 살다가 숨지는 매미의 생애를 생각하면 매미의 울음소리를 소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매정하지 않나 싶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이다. /淸河

중국산 공세

어렸을적 가을논에 새를 보면서 메뚜기를 잡았다. 논엔 (지금은 농약과 비료바람에 다 없어진 메뚜기뿐 아니라) 미꾸라지도 있고 우렁도 있었다. 며칠전 어느 자리의 뷔페음식 가운데 메뚜기볶음이 있어 반가워했더니 누군가가 “아마 냉동된 중국산일 것”이라고 말해 듣고보니 아직은 메뚜기 철이 좀 이른 것으로 미루어 그럴것 같았다. 메뚜기를 잡아 강아지풀 줄기를 빼 꿰어 매거나 사이다병에 담았다가 참기름과 소금에 볶은 맛이란 일품이다. (지금의 어린이들에겐 이런 자연친화적 놀이와 맛을 안겨주지 못하는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그러고 보니 저임금을 무기삼아 밀물처럼 쳐 들어오는 중국산 공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농산물로는 참깨 땅콩을 비롯해 수산물엔 꽃게 조기등 민물의 미꾸라지까지 중국산 투성이다. 심지어는 뱀(보신용)까지 별의 별것이 밀수입되기도 한다. 우리 농촌에서는 고사리나 도라지를 캐어 팔아봐야 품삯도 나오지 않는 틈새를 타 산채도 중국산이 판친다. 이런 중국산이 신토불이어서 아무래도 토종과는 달라 우리의 입맛에 맞지 않기도 하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공해오염이다. 우리가 6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고도성장을 지향하고 있는 중국은 환경보다는 경제가 우선이어서 수질오염 대기오염이 심각하다. 또 우리의 공산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농수산물 수입이 불가피한 입장이다. 이바람에 지난 봄엔 마늘수입으로 국산 마늘값이 떨어져 농민들을 울상짓게 하더니 이젠 가을 고추값의 폭락조짐이 벌써부터 나타나 농가들을 애태우게 하고 있다. 농업인들에 대한 이같은 피해는 정부의 적정가격 수매가 요구되지만 참 걱정이 많다. 올 추석 차례상에 자칫 잘못하면 조상이 잡수어보시지 않은 중국산 제수가 오를 판이니. /白山

평양가기

세상 많이 달라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하고 찍은 사진을 집 거실에 걸어두는게 자랑이 된 세상이 됐으니. 불과 몇달 전만 같아도 혼쭐 날 일이었던 것이. 북측에선 “누구든 와서 보고싶은 사람은 와서 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아무나 갈수 없지만) “뿔달린 사람 없으니 와서 보라”는 것이다. (남측도 뿔달린 사람 없기는 마찬가지인 동족 …) 초청이란 것이 참 묘하다. 방북초청을 받으면 굳이 안간다고 우기는 것도 그렇고 오라 한다고 냉큼 달려가는 것도 그렇다. 두가지 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모양새가 좀 그렇다. (남북간에 왕래는 많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평양에가면 대접 잘받고 구경 잘하고 사진찍고 통큰말 들으면서 ‘아 그게 아니었구나?!’하고 종전의 인식이 흐물흐물해진 가운데 돌아 오는것이 아닌지? 새로운 인식이 꼭 나쁜건 아니지만.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평양 가기를 미룬것은 잘한 일이다. 야당총재로서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싶으나 지금은 적절한 시점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다. 집권자인 여당총재의 방북이 있었으면 야당총재의 방북이 있어야 하는것이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야당과는 사전 양해 한마디 없이 이총재 방북요청을 발표(북측의 응낙 및 초청여부는 알수 없으나)한것은 경솔한 처사임이 맞다. 입장을 바꾸어 서울을 다녀간 북한 민간인이 청와대에서 김대중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 놓을수 있을 것이라는 가상은 성립하기 어렵다. 그럴만하게 다녀간 북측 민간인도 아직은 없지만, 세상 달라진것은 이쪽만 달라졌을뿐 저쪽은 달라진것이 없지 않겠는가 싶다. /白山

자유왕래

지난주는 온통 이산가족 교환방문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마치 이밖의 일은 일도 아닌 것처럼. 텔레비전은 종일 상봉장면으로 장식했고 신문도 거의 전지면을 상봉기사로 메웠다. 남쪽아내 북쪽아내 상면등 정말 기막힌 사연이 많았다. 지난 50년의 단절은 기구한 인생유전의 세월이었다. 텔레비전 시청자나 신문독자나 보는이들조차 가슴 뭉클한 사연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언론이 매달리다시피 할만한 세기적 이벤트였다. 외국의 주요언론들도 연일 대서특필했으니. 서울도 울고 평양도 울린 교환방문이 끝난 지금 가슴찡한 여운속에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듯한 허탈감이 감돈다. 이런 가운데 이산가족상봉이 이대로는 안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더 많이 더 자주 더 간단한 절차로 만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방문으로 든 비용이 30억원이라고 한다. 이 돈이 아까운 것은 아니지만 방문비 부담이 무한정일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상시면회소 설치가 시급하다는 얘기가 이래서 설득력을 갖는다. 교환방문의 정례화, 상시면회소 설치도 좋으나 더 좋은 것은 자유방문이다. 남북을 왕래하고 싶은 이산가족은 어느때든 마음대로 집까지 찾아갈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내년 가을쯤 개통될 경의선은 이산가족 왕래에 아주 좋은 교통편이 될수 있다. 집까지 찾아가는 자유왕래의 길이 트이면 이산가족 교환방문도 차츰 보편화돼 언론의 관심 또한 점차 지금같진 않게 될 것이다. 자유왕래가 일상화되어 웬만한 사연은 보도가치가 없는 개방된 이산가족방문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다만 대남요원화는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다. /白山

사형제도

총 3만647명이 혜택을 받은 올해 8·15 특별사면 중 이례적인 것은 사형수 2명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점이다. 사형수 감형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사형제 폐지를 위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때여서 감형배경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현재 세계 180여개 국가 중에 사형을 폐지한 나라가 40여개국이고 사형제를 두고서도 10년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나라가 60여개국이다. 우리나라는 헌법재판소가 7대2로 사형제도의 합헌론을 유지하고 있는데 사형제도 폐지 쪽으로 여론이 확산돼 가는 추세다. 특히 종교계에서 더욱 그러하다. 불교에서는 ‘죽어 마땅한’ 극악죄인이라 하더라도 살려두고 업을 녹이게 한다. 중죄인에 대해서 불교는 법적윤리적 무원칙주의라고 의심받을 정도로 관대하다. 죄를 짓기 전에는 엄하게 경계하지만 일단 일을 저지른 후에는 참회시키고 용서한다. 모든 성명은 죄에 관계없이 똑같이 귀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사형은 죄를 다스리는 벌이 아닌 관제살인행위’라고 말한다. 보복이나 응징이 아닌 범죄인의 교화라는 형벌의 목적에 비춰볼 때도 사형은 더 이상 범죄 억지책이 될수 없다고 강조한다. 만일 잘못 집행될 경우 비인도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형벌인 사형제도를 폐지할 시점에 와 있다. 미국도 사형수의 3분의1이 정말 억울하게 죽었다는 통계가 나와 있을 정도라니 사형제도의 그 피해가 짐작이 간다. 김대중 대통령은 1980년 사형판결을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었다. 김대통령 취임 이후 2년여동안 단 한명도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사형제도의 존폐여부가 윤곽이 잡히는 것 같다. 사형은 관제살인이라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이 커진다. /淸河

가을 수원팔경

삼한시대의 수원(水原)이름은 모수국(牟水國)이었다. 삼국시대에는 매홀(買忽), 통일신라시대에는 수성(水城), 고려시대 초기에는 수주(水州)였고 고려시대인 1217년부터 수원이라는 지명이 등장했다. 모두 물과 관련있는 이름이었다. 옛날의 수원은 지금의 수원 중심가에서 훨씬 서쪽지역에 있었다. 원래 수원이 자리잡고 있던 현재의 화성군 서쪽은 대부분이 바다였으며 지형이 야트막한 야산으로 이루어져 그 사이로 호수나 저수지 같은 물이 많기로 유명했다. 조선조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화성을 축성(1794∼1796년)하면서 새로운 도시를 팔달산 아래에 건설했는데 바로 오늘의 수원이다. 수원은 예로부터 산자수명하여 아름다운 경치가 많아 광교적설(光敎積雪), 북지상연(北池賞蓮), 화홍관창(華虹觀漲), 용지대월(龍池待月), 남제장류(南堤長柳), 팔달청람(八達晴嵐), 서호낙조(西湖落照), 화산두견(花山杜鵑) 등 아름다운 수원팔경과 수원춘(春)팔경, 수원추(秋)팔경을 자랑했다. 그런데 가을의 수원팔경은 홍저소련(弘渚素練:흰 비단을 펼친 듯, 물살이 장쾌하게 쏟아지는 화홍문의 경관), 석거황운(石渠黃雲:만석거 주변에 누렇게 익은 벼들의 황금물결같은 풍경), 용연제월(龍淵霽月:맑은 하늘 달 밝은 가을밤의 용연 풍경), 구암반조(龜巖返照:저녁볕이 찬란하게 비치는 구암의 경치), 그리고 서성우렵(西城羽獵:가을사냥이 한창인 화서문 밖의 풍경), 동대화곡(東臺畵鵠:활쏘기가 벌어진 동장대 정경), 한정품국(閒亭品菊:미로한정에서 국화꽃을 앞에 놓고 감상하는 정경), 양루상설(陽樓賞雪:화양루에서 늦게 내리는 눈을 감상하는 정경)이다. 요즘 낮에는 더위가 한창이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 가을 팔경의 옛 수원산천을 상상해 보면 운치가 넘친다. /淸河

북한신문

북한에는 남한과 같이 사기업 형태의 신문사는 없고 노동당, 내각, 사회단체들이 발행하는 기관지만 있다고 한다. 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 내각기관지인 ‘민주조선’, 김일성 사회주의청년동맹 기관지인 ‘청년전위’ 등 3개의 중앙지와 각 도당위원회가 발행하는 황남일보, 황북일보, 함북일보, 함남일보, 평북일보, 강원일보, 자강일보, 평남일보, 개성신문, 량강일보, 평양신문 등 11개 지방지가 있다. 이 14개 일간지 외에 해외홍보용 주간지인 ‘The Pyong Yang Times’와 내각의 각 성에서 발간하는 ‘교통신문’‘건설신문’, 각 대학이 발행하는 ‘대학신문’ 등이 있다. 1946년 창간된 ‘로동신문’은 연중무휴 발간되는 조간지로 간지(間紙) 2면을 포함해 하루 6면으로 150만부 정도 발행된다. ‘민주조선’도 1946년 창간됐는데 4면으로 제작되지만 매주 화·금요일과 특별한 날에는 6면으로 증면된다고 한다. ‘청년전위’는 1946년 ‘민주청년’으로 창간돼 1996년 현재의 제호로 바꿨으며 45만부쯤 발행된다. 신문구독료는 6개월치를 한꺼번에 내는데 3∼9원(남한돈 1천500∼4천600원)이다. 한국언론재단이 최근 발간한 ‘북한언론’에 따르면 평양 가판대에서 파는 신문 1부 가격은 30전이다. 북한의 이러한 신문현황에 비하면 남한은 가히 신문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수 많은 중앙지와 스포츠, 경제 등 특수일간지를 비롯 각 시·도에서 발행되고 있는 지방지와 주간지는 얼마나 많은가. 문제는 중앙지는 면수가 너무 많고 지방지는 지면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난 12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 목란관에서 남한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자리에서 “판문점 연락사무소로 매일 (남한의)신문을 넣어 주십시오. 우리가 신문을 일본을 통해서 돌아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까. 신문도 연락사무소를 통해서 다 읽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 말은 남한신문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어서 의미심장하다. 북한신문과 남한신문을 서로 자유롭게 읽고 비교해 볼 수 있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淸河

이산가족방문

미국의 닉슨행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중공)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국제정치사에서 유명한 핑퐁외교가 계기였다. 1971년 일본의 나고야서 열린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미국 선수단과 기자들이 중공을 방문해 가진 친선경기를 출발점으로 접촉이 시작돼 결국 국교수립까지 발전하였다. 이때까지 두 나라는 1949년에 수립된 중공을 미국은 승인도 안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에 참가한 중국의용군(중공군) 등에 의해 미군 3만여명이 전사(물론 중공군 등의 희생도 컸다)하는 등 묵은 원한이 있어 매우 껄끄로운 사이였다. 그같은 20여년의 구원을 넘어선 것이 핑퐁외교가 계기였던 것이다. 인간사회나 국제사회나 따질 것은 따져야 하는 것이 사리지만 지난 일을 따지다가 앞일을 그르칠 수 있는 것이 또한 국제사회며 인간사회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제때 중국대륙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도움을 받고 지금은 대만에 가 있는 중화민국(대만정부)과 단교까지 해가며, 6·25때 총부리를 겨눈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맺은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보단 장래를 위해 무시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 때문인 것이다. 베트남인민공화국과의 관계개선에서도 우리의 월남전 참전을 거론하는 것은 서로 무익한 것으로 돼 있다. 북측과의 관계개선에서 따져야 할 과거사를 묻어두는 것은 참다운 관계개선이 될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따지기로 말하자면 정말 따질 것이 많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지면 서로 얼굴만 붉힐뿐 민족화해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져도 화해와 협력이 성숙된 다음에 따지는 것이 순리다. 남북이산가족의 교환방문으로 반세기만에 체제를 초월한 꿈같은 재회의 감격이 남북에서 넘치고 있다. 세계의 이목이 쏠린 이산가족의 교환방문은 남북관계 개선의 상징적이면서 실제적 창구인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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