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직무유기

오늘 한국의 국회는 의사당만 있고 국회의원은 실종됐다. 4·13총선 전에는 선거 때라 해서 ‘개점휴업’상태였고, 지금은 선거가 끝나니 낙선자들이 너무 많아 국회를 열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계속 놀고 있다. 제210회 국회가 지난 2월9일 종료된 후 벌써 석달 가까이 ‘놀고 먹는’ 것이다. 과외대책, 금융시장 안정대책, 남북 정상회담 지원책 등 시급한 국정이 막중한데 국회가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15대 국회의원중 절반에 가까운 낙선자들에게 임시국회 참여를 요구하는 것은 인정상으로나 정치현실적으로 무리라며 임시국회 소집에 난색을 보이는 여야 지도부의 입장표명도 한심스럽다. 어차피 6월에 소집될 16대 국회가 개원하면 곧 바로 임시국회가 소집될 예정이기 때문에 현안들은 그때 다루면 된다는 논리까지 펴고 있어 그동안의 행적이 더욱 의심스럽다. 15대 국회는 분명히 5월29일까지 일을 해야 한다. 그때까지는 제16대 선거의 당선자든 낙선자든 국민의 세금으로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선거 후 무려 한달 반 동안이나 놀게 된다면 ‘무노동 유임금’에 해당된다. 입법부의 직무유기인 것이다. 낙선자들이 안나오거나 참석시키기가 정 어렵다면 4·13총선에서 당선된 15대 의원들만으로 주요현안이 관련돼 있는 상임위를 재구성해 의사를 진행하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제15대 국회는 아직 3주일 정도의 임기가 남아 있다. 성의와 의지만 있다면 당장 임시국회를 열어 국정현안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를 벌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다. 하루 빨리 임시국회를 열어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 낙선한 국회의원들이 의연하게 등원하여 국정을 논한다면 유권자들이 두터운 신뢰를 보낼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임기끝까지 국정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淸河

매춘

쿠바의 유명관광지 바라데로 해변은 해외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매춘단지다. 달러박스인 것이다. 지난 1995년 처음 번창할 무렵 단속이냐 방관이냐를 놓고 고민한 쿠바정부는 유감스럽지만 달러 획득을위해 어쩔수 없는 관광산업의 부산물로 단정지었다. “쿠바엔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매춘여성들이 있어야 한다”고 카스트로는 말했다. 수년전, 정치인과 귀족 억만장자들을 상대로 해온 고급 매춘조직이 파리당국에 의해 적발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젊은 여성의 모델 가수 배우 등과 관계를 가진 남성은 거의가 저명인사들 이었다. 프랑스 국내는 말할것 없고 아랍왕자, 영국의 거물언론인, 스페인 멕시코의 실업인 등 외국인들도 많았다. 이들의 대가지불은 시간당 1만2천프랑(160만원), 하룻밤을 지내는데는 12만프랑(1천600만원), 주말을 같이 지내는데는 50만프랑(7천만원)이었다. 엄청난 화대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밀려 캐나다 스페인 스웨덴 이스라엘 러시아등지의 모델이며 연예인들을 고용할 정도였다. 고객 가운데는 18개월 동안에 무려 150만프랑(2억원)을 탕진한 인사가 있었다. ‘싱클레이 남작’ ‘마담질’로 통한 두 조직의 50대 포주들은 고객 관리에 철저한 신변 보호로 번창을 누렸으나 결국 철창을 면치 못했다. SBS-TV가 어젯밤 11시, ‘뉴스추적’ 프로를 통해 폭로한 일부 여성 연예인 매춘 실태는 충격이었다. 하룻밤 꽃값이 1천만원이고 백지수표까지 거래한다니 연기가 본업인지 매춘이 본업인지 구분이 안된다. 매춘은 구약성서에도 나온다. 쿠바같은 사회주의 국가조차 직업아닌 직업으로 인정할 만큼 오랜 직업이지만 오랜 지탄의 대상이 되어온 사회악 이다. 파리의 거액 매춘파동의 한국판이라 할 서울의 거액 매춘파동에 관련된 손 큰 위인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다. /白山

이혼

1957년에서 63년까지 영국 총리를 지낸 맥밀란은 아내 도로시의 간통을 30년동안 감쌌다. 도로시가 정부 부스비와 놀아나 낳은 딸아이를 자신의 딸로 호적에 입적시켰다. 맥밀란은 도로시의 이혼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 먼훗날 이렇게 말했다. “아내의 이혼요구를 거부한 것은 정치생명에 가해질 치명적 타격도 타격이지만 무엇보다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라고. 미국사회에서도 대통령후보의 이혼경력은 치명적이다. 다만 레이건은 이를 극복하고 재선에까지 성공한 유일한 케이스다. 건국한지 일천했던 1950년대에 군·관계에서 벼락출세한 이들이 미모의 지식층 여성들과 재혼하기 위해 조강지처와 이혼하는게 유행이 되다시피 한 적이 있다. “이상이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선 지도층의 이혼경력이 별 흠으로 여기지 않는 그릇된 풍조가 아마 이에 연유하지 않았는가 싶다. 이혼은 무명의 서민층에서도 점점 더 심화하는 것 같다. ‘경기도 2000년 도정 주요통계’에 의하면 95년 한해동안 1만2천66쌍에서 97년 1만6천658쌍, 99년 2만1천938쌍으로 해마다 2천2백여쌍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혼을 대수롭지 않게 아는 잘못된 생각은 가정의 불행일 뿐 아니라 사회를 병들게 한다. 요즘 부부들은 중매도 아니고 연애 끝에 결혼한다. 부부로 만난데 대한 서로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결혼하기 전에 아무리 상대를 잘 알았다해도 결혼하고 나서는 미쳐 몰랐던 단점을 서로가 알게 되는 것이 부부다. 그렇긴 하나, 선택한 책임감속에 세파에 시달리며 미운정 고운정 들면서 살게 마련인 것이 또한 부부이기도 하다. 이혼의 유혹은 악마의 속삭임이다. 이혼은 지도층뿐만이 아니고 민초들에게도 품성의 도덕적 가치기준이 된다. 서로가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상의 마음가짐이 부부의 참 사랑이다. /白山

청와대 비서

각 부처 장관들 이름을 아는게 상식으로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장관이름은 고사하고 부처 명칭마저 정확하게 아는 이들이 드물 것이다. 아마 전 부처의 명칭과 장관들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는 국민이 백명이면 한명이나 있을지. 오히려 장관 이름보다 청와대 비서들 이름이 더 귀에 익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청와대 비서실을 줄이고 직급도 낮추었다. 국정의 중심을 내각에 둔다고도 했다. 비서실운영의 폐단을 막는 것으로 환영받았던 군살빼기가 2년여가 지나면서 다시 군살이 배겨 비대해졌다. 국정의 중심 또한 내각보다는 비서실에 있는 인상이 다분하다. 대통령 비서실은 정책결정기관이 아니다. 대외적으로 공표능력이 있는 기관장도 아니다. 그저 대통령을 음지에서 묵묵히 보필해야 하는 보조기관이다. 음지에서 말없이 일해야 할 비서들이 양지로 뛰쳐나와 설치는 것은 대통령을 지근에 둔 위세로 보이기 십상이다. 관련부처에 앞에 무슨 시책을 청와대 비서가 먼저 밝히는 것은 국정의 난맥이다. 말도 많다. 말이 많다보니 엉뚱한 소리가 나오곤 한다. ‘소수의 단결은 정의이나 다수의 단결은 불의’라는 말을 한 김성재 정책기획수석이 구설수에 올라있다. 민주당의 호남 싹쓸이는 정의이고 한나라당의 영남 싹쓸이는 불의라는 뜻의 ‘정의·불의론’은 소피스트적 궤변이라는 지탄이 높다. 대통령 비서실은 옛날 왕명의 출납을 맡고 있었던 승정원과 같다. 승정원의 승지들이 설쳐대서 잘된 때가 없었다. 비서실의 비서들은 직급이 고하간에 어디까지는 비서다. 자유당 시절에는 경무대(당시 청와대 명칭) ‘비서정치’란 말이 있었다. 자고로 승지나 비서는 모름지기 몸을 낮추어 말을 조심해야 한다. 자중해야 하는 것이다. /白山

위홍과 진성여왕

요즘 방영되고 있는 KBS-TV의 주말사극 ‘태조 왕건’을 보면 신라 제51대 임금 진성여왕(재위 887∼897년)과 진성여왕의 삼촌이며 각간(角干·진성여왕 당시 가장 높은 벼슬)인 김위홍(金魏弘)의 통정(通情)이야기가 나온다. 진성여왕이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사극 ‘태조 왕건’은 위홍과 진성여왕의 관계를 다루면서 이들이 삼촌과 조카 사이라 해서 이를 불륜으로 몰아갔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삼촌과 조카가 몸을 섞었다면 불륜을 넘어 패륜이지만 역사를 1천년 이상 거슬러 신라사회로 들어가보면 이들 사이는 불륜이 아니라 로맨스다. 왕을 중심으로 한 신라 지배층 사이는 근친혼이 대단히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들, 같은 어머니 밑에서 난 형제자매가 아니면 친인척 누구와도 혼인이 가능했고 그래야만 했던 사회가 바로 신라였다. 예컨대 제23대 법흥왕(재위 514∼540년)의 동생 입종갈문왕은 법흥왕의 딸, 즉 조카인 지소부인과 결혼을 해서 제24대 진흥왕을 낳았다. 또 김유신은 여동생인 문희와 김춘추 사이에서 난 딸과 혼인을 했다. 그러니까 김춘추는 김유신의 처남이면서 장인이고 문희는 김유신의 여동생이면서 장모인 것이다. 신라는 이처럼 근친혼이 성했다. 오히려 지배층에서는 근친혼을 해야만 했다. 이런 전통은 고려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극 ‘태조 왕건’에서 위홍과 진성여왕의 관계를 불륜이라고 한 것은 현대 유교적 도덕기준에 따른 것이지 신라인의 눈으로 본다면 귀족사회의 로맨스다. 위홍은 서기888년 대구화상이라는 스님과 함께 신라 향가를 모은 ‘三代目’이라는 시가집을 편찬한 인물이다. 그 ‘삼대목’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면 이런 시가집 편찬을 명령한 진성여왕이나 그것을 직접 만든 위홍이 색욕으로 가득한 인물들로만 혹독한 평가를 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 /淸河

40대를 위하여

세계적으로 40대에 꿈을 이룬 사람은 매우 많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때 41세였다. 퀴리부인은 43세에 라듐을 발견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쓰기 시작한 때 45세였다. 간디가 비폭력 투쟁을 전개할 때 45세였다. 워싱턴이 미국독립을 이룩했을 때 49세였다. 히틀러는 44세에 독일 총통이 되었다. 존 F 케네디는 42세에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41세에 집권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1993년 집권당시 46세였다. 제3의 길을 제시하며 세계의 이목을 한 몸에 받은 토니 블레어(46) 영국 총리, 공수부대 중령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45), ‘대만독립’을 기치로 내걸며 총통선거에 당선된 천수이볜, KBG 첩보원 출신으로 대권을 거머쥔 블라디미르 푸틴(47) 러시아 대통령 등이 모두 40대들이다. 권력과 금력 쟁취자가 성공한 사람은 반드시 아니지만 이제는 한국의 40대가 일어서야 한다. 지금 한국의 40대는 721만3000명 정도로 전체인구 중 16%를 차지한다. 이들은 6·25 전쟁의 폐허에서 그들 부모세대가 희망의 씨앗처럼 잉태해 출산한 자녀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콩나물 시루같은 교실에서 3부제 수업을 받고 자랐다. 가장 혹독한 입시경쟁과 취업경쟁을 치렀다. IMF 체제를 가장 참담하게 경험했고 아직도 IMF체제 후유증에 허덕이는 세대다. 자신이 살기 위해 동료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애써 외면할 수 밖에 없었던 세대다. 한국의 40대는 그 숱한 생존경쟁의 정글을 헤치며 살아와 건강을 유지할 틈이 없었다. 이제는 40대를 위하여 50, 60대는 조금씩 양보하고, 20, 30대는 협력해 주어야 한다. 누구나 40대를 맞이한다. 40대가 좌절하면 이사회의 중추가 마비된다. 40대가 능동적이어야 가정도 국가도 건강해진다. /淸河

촌지와 교사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에는 먹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가난 때문에 아이들을 남의 집으로 보내면서 ‘입 하나 던다’고 하였다. 한 집안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을 ‘식구’라고 한다. 이 말은 가족과는 좀 다르지만 식구라면 대개 가족이었다. ‘식구(食口)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밥 먹는 입’이다. ‘식구가 여섯이다’라고 하면 집안에 밥 먹는 입이 여섯이라는 것이다. 어려웠던 시절이긴 하였지만 예전에는 모처럼 집에 온 사람을 그냥 보내기가 섭섭해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서 무엇이라도 손에 쥐어 보냈다. 정 줄 것이 없으면 보리 한 됫박이라도 싸서 보냈다. 이 보리 한 됫박이 바로 ‘촌지(寸志)’다. 촌지란 주어서 즐겁고 받아서 고마운 그런 것이다. 서로 부담없이 나누는 인정이 촌지다. 학부모가 자녀의 선생님을 찾아갈 때 양말 두어 켤레, 고기 한 두근 사가지고 가는 것이 촌지다. 미처 그런 것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봉투에 소주 한병 값이나 넣어서 놓고 나오는 것이 촌지다. 교사는 사양해도 좋겠지만 성의로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두어도 잘못된 일은 아니다. 이러한 전통사회의 촌지가 요즘은 ‘선물’도 아니고 ‘뇌물’로 인식이 변했다. 촌지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보리 한 됫박이 값비싼 고급물건으로, 소주 한병 값이 심상치 않은 액수로 바뀐 것이다. ‘촌지를 주고 받았다는 오해를 살까 봐 학부모님이 학교에 오시면 겁이 난다’는 교사들이 뜻밖에도 많이 있다. 지난 해 ‘스승의 날’, 교실에 놔두고 간 상품권 1장을 학부모가 누군지 몰라 돌려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교사를 본 일도 있다. 담임 선생님이 사양할 것 같아 몰래 이름도 밝히지 않고 놓고간 상품권이 바로 촌지의 미덕이다. /淸河

벤처기업

금세기의 국가경쟁력은 첨단기술이다. 예컨대 의사나 회계사가 많다고 해서 잘사는 나라가 될수 없다. 사회기여도가 대체적으로 국내에 한하기 때문이다. 이에비해 첨단과학기술의 발달은 제반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국력을 좌우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제구조가 이젠 첨단 과학기술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저비용 경쟁의 경제구조로는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중국같은 후발국들이 값싼 노동력을 무기삼아 무섭게 추월해오고 있다. 중국인의 생산성은 우리에 비해 50%밖에 안되지만 임금이 10∼20%로 워낙싸 저비용 경쟁에선 게임이 안된다. 이의 돌파구가 과학기술의 개발이다. IMF경제위기도 근원적으로 보면 기술경쟁의 빈곤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이 있다. 상당수의 첨단기술중심 벤처기업이 성공하면서 몇년만에 수십억, 수백억원을 번 부자 엔지니어들이 생겼다. 이바람에 월급쟁이 기술자들이 벤처기업 창업을 위해 사표를 내던지자 이직을 못하게 하는 어느 재벌기업의 소송제기가 있었다. 재벌 및 대기업에서는 핵심 엔지니어들에게 스톡옵션 등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부여, 이들을 붙잡아두기에 안간힘을 쓰는 실정이다. 벤처기업은 코스닥시장이 활성화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아 벤처스타들이 뜨고 있다. 지난해말 현재 4천934개 벤처기업가운데 미국기준의 자격이 있는 곳은 17%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가 나왔다. 이에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따지고 보면 외환위기 탈출을 비롯 긍정적 측면이 더 많다. 다만 정부의 벤처산업 시책에 재점검이 불가피한 것만은 사실인것 같다. 아직 본궤도에 오르진 못했어도 싹이 있는 벤처는 키우되 거품은 걷어내야 할때가 됐다. /白山

移木之信

정부의 ‘범국민준법운동’과 관련하여 이목지신(移木之信)의 고사가 생각난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효공(孝公)이 부국강병책의 법을 제정하였으나 백성들이 조정을 믿지 않으므로 공포(公布)를 미루고 한가지 시험을 해봤다. 높이가 30자나 되는 거목을 남문에 세워놓고 이를 북문에 옮기는자에겐 상금 10금을 주겠다고 방을 붙여놨다. 아무도 옮기는 사람이 없어 상금을 50금으로 높였다. 그래도 옮기는 사람이 없었다. 백성들이 조정의 말을 그토록 믿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 지나 어느 한사람이 속는 셈치고 나무를 옮겨놓자 효공은 약속한 50금을 선뜻 내주었다. 백성들 모두가 진즉 자신이 옮기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을 즈음에 새로운 법을 공포하여 백성들이 따르도록 했다는 이 얘기는 사기(史記) 상군전(商君傳)에 나온다. 사회기강확립을 위해 범국민적 준법의식이 있어야 하는것은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왜 준법의식이 해이해졌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법은 지킬수록 손해’라는 관념이 팽대해진 불행한 현상이 생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총칼로 합헌정부를 뒤엎은 군부세력이 있었다. 그들이 집권하고 나서는 준법을 외쳐댔지만 헌법을 파괴한 원죄를 모면할수 없어 국민들 귀엔 공허한 소리로만 들렸다. 사회의 준법의식이 해이해진데는 이런 원인(遠因)의 배경이 있다. ‘국민의 정부’들어서도 국회는 국회법위반을 밥먹듯이 해대고 대통령은 선거법 불복종 선언을 했다. 법의 권위를 실추시킨것은 국민들이기 보단 언제나 집권층인 것이다. 범국민적 준법정신은 당연히 존중돼야 하지만 집권층부터 먼저 법을 무섭게 알고 지키는 참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급하다./ 白山

386세대

60년대에 출생한 80학번의 30대들, 통칭 386세대들이다. 패기만만한 좋은 시절의 인생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촉망받는 젊은 이들이다. 지난 4·13 총선에서도 386세대 바람이 일었고 상당한 수가 국회의원이 됐다. 사람도 사람 나름이고 거명되는 386세대도 많아서인지 몰라도 그중엔 젊은이답지 않은 젊은이가 간혹 발견된다. 나이가 젊다해서 젊은이라기 보단 생각이 젊어야 한다. 여당영입 케이스였던 젊은세대 가운데 더러는 모임때마다 실세들과 눈도장 찍기에 바쁜 모습을 보인다더니, 며칠전 중앙일간지에 실린 한장의 사진이 아직도 심심찮은 술자리 안주감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청와대에 초청받은 당선자중 386세대의 H씨가 난데없이 대통령앞에 넙쭉 업드려 큰절을 하고 악수하려던 대통령은 멋쩍게 내려다 보는 모습이었다. ‘과공은 비례’란 말이 있다 사석 같으면 큰절하는게 오히려 당연하겠지만 공식행사 자리에서 남다른 과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예의일수가 없다. 어느 술자리 손님은 “구시대 사람 빰치는 돌출행동”이라면서 “그래가지고 무슨 새 정치바람을 일으키겠느냐”며 혀를 찼다. “패기와 예의도 구별 못하는 ○○”라고 혹평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386세대가 다 그렇거나 젊은 당선자들이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실망시키는 것은 유감이다. 공자는 말하기를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고 했다. 젊은이가 젊은이다운 생각을 갖지 못하면 되레 백발청춘보다 못한 애늙은이일 수 밖에 없다. 젊은이다운 생각은 왕성한 실험정신과 도전의식, 지칠줄 모르는 부단한 의욕을 말한다. /白山

몰래 뽕

마약사범들은 노출을 피하기 위해 은어를 사용한다. 대마초는 ‘떨’, 필로폰은 ‘술’로 통하며, 마약 공급자는 ‘상선(上線)’, 소비자는 ‘하선(下線)’이라고 한다. 상선은 다시 수십㎏대 생산·밀수업자인 ‘공장’부터 아랫급 도매상인 ‘공장선’, 수백g대 중간선인 ‘공장아랫선’으로 나뉜다. 그런데 하선은 대개 상선을 모를 뿐더러, 한번 상선을 놓치면 다시는 마약을 공급받지 못하므로 자신이 검거돼도 철저히 입을 다문다. 이들의 최하위선에 투약자에게 직접 마약을 대주는 ‘고사바리’가 있는데 중독자인 이들은 대개 처음엔 자신의 마약 구입 비용을 마련하려고 거래에 나선다. 고사바리는 최대 수백명의 소비자에게 ‘물건’을 공급하고 나중에 돈을 챙긴다. 처음엔 ‘살 빼는 약’ ‘정신집중에 특효’ ‘최고의 정력제’ 등 온갖 감언이설을 곁들여 공짜로 사용하게 한 뒤, 일단 ‘맛을 본’ 사람들이 “약 좀 달라”고 매달리는 순간부터 냉정하게 돈을 요구한다. 주로 여성, 특히 가정주부들을 상대로 술이나 음료수에 몰래 타 빠져들게 하는데, 이것이 ‘몰래 뽕’이다. 원만치 못한 부부생활을 하거나 자녀들이 이 일 저 일로 속을 썩히는 주부들, 다이어트에 신경쓰는 여성들에게 ‘살 빼는 데 좋다’거나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말에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고사바리들은 아내, 남편, 애인, 친구 등을 가리지 않고 주변인물들을 계속 유인하여 중독자 한명이 수십명의 추가 투약자를 만들고, 이들이 또 수십명씩 끌어 들이는 ‘피라미드식’경로를 거치면서, 한번 발을 들여 놓은 사람은 헤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단 1초의 호기심이 일생을 망치는게 마약이다. 특히 여성들은 ‘몰래 뽕’의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 /淸河

어느 聖者

"기독교가 아니라고 해서 멸시하거나 충돌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19일 오후 1시15분 서울 저동 영락교회 사택에서 98세를 일기로 별세한 한경직 목사가 1984년 10월 한국 개신교 100주년사업협의회 총재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1902년 평남 평원군 공덕면에서 출생한 한경직 목사는 평양숭실전문과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한 이후 1945년 서울 영락교회를 창립, 1973년까지 담임하면서 한국의 대표적 교회로 성장시켰다. 한 목사는 일생동안 ‘교회사랑, 민족사랑, 하나님사랑’을 내세우며 한국 교회와 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 기독교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의 큰 존경을 받았다. 특히 한 목사는 소천하는 날까지 통장·집·재산이 없는 ‘삼무(三無)의 삶’을 살면서 온 몸으로 하나님 사랑을 실천, 살아 있는 성자로 추앙받았다. 한국전쟁 당시 ‘선명회’를 조직해 전쟁고아·장애자들을 보살폈으며 교육에 정성을 쏟아 대광중·고, 서울여대 등 여러 기독교학교를 세웠다. 1973년 이후 남한산성의 6평 남짓한 방에 머물며 사랑, 진실의 실체를 보여준 한 목사는 1992년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린턴 상을 수상한 후 상금 1백만달러를 통일과 북한 선교 헌금으로 쾌척했다. “인간의 삶에는 믿음·소망·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세계평화는 원수를 용서하시는 종교적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독일처럼 남북한도 멀지 않아 통일될 것입니다.” ‘일부 대도시 교회 목사의 호화스러운 생활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 한 목사는 “백두산의 튼튼한 소나무로 북녘 고향 땅에 교회지어 예배드리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었다. 24일 남양주 진건면 사능리 영락동산에 안장되는 성자의 생애가 실로 성스럽다. /淸河

달걀

40대 이상 사람들이 간직한 추억거리 가운데 달걀이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달걀로 만든 반찬이 밥상에 오르는 날은 한달에 몇날 정도였다. 그날은 무슨 좋은 날이거나 귀한 손님이 오신 날이었다. 예전에는 소풍가는 날 아니면 운동회날에야 삶은 달걀 몇 개를 먹을 수 있었다. 어쩌다가 도시락 밥을 달걀프라이가 덮은 날은 점심시간이 더욱 기다려졌다. 달걀을 낳아주는 씨암탉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고 사위가 와야 씨암탉을 잡아 대접했다. 아버지의 따뜻한 밥 속에 어머니가 넣어둔 날달걀은 그날 먹어보지 않아도 맛을 알 수 있었다. 밥의 온기에 흰자는 슬쩍 데워지고 간장만으로 즐길 수 있는 비릿하면서도 풍부한 맛은 아이들의 밥맛을 더욱 돋워줬다. 깨어질세라 하나 둘 모아 둔 달걀은 시장에 내다 팔아 살림살이에 보탰고, 달걀꾸러미는 학교 선생님에게 드리는 최대의 선물이었다. 그렇게 소중한 달걀이 지금은 너무 많이 생산돼 값이 폭락했는데도 사가는 사람들이 적어 거리에서 판촉활동을 벌이는 세상이 되었다. 양계농가의 안정적인 소득보장을 위해서 돈도 안받고 달걀을 나눠주는 진풍경도 가끔 눈에 띄는데 현재 우리나라엔 5천2백여만 마리의 산란계가 있다고 한다. 시장개방에 따라 들여오는 수입달걀 숫자까지 합치면 달걀 생산량이 짐작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양계를 하는 농민들은 생산비도 못건진다. 국방부와 각 공공단체에서 달걀소비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농약걱정없고 영양이 풍부한 달걀을 하루에 1개씩만 먹으면 달걀값은 금세 회복된다고 한다. 각 가정마다 추억을 이야기하며 밥상에 달걀로 만든 반찬을 올려 놓았으면 좋겠다. /淸河

三災이변

태백산맥을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지형적으로 한반도의 등뼈라 할수있다. 평균고도 1000m에 길이는 600㎞ 가량된다. 소백산맥 차령산맥 광주(廣洲)산맥이 여기서 뻗어져 나갔다. 가평군 북면에 있는 해발 1천267m의 명지산은 광주산맥의 최고봉이며 북악산 관악산등은 광주산맥의 명산이다. 얼마전 백두대간이 불타 민둥산이 돼버린 항공촬영 사진을 보면 볼수록 속이 상한다. 삼척, 강릉, 고성등지서 5만여㏊가 불탔다. 생태계 복원에 30∼40년이 걸린다고 한다. 비라도 흠뻑 내렸으면 좋으련만 봄비마저 인색하다. 봄가뭄이 벌써 두어달째 든다. 서울· 경기· 강원지역에 지난 2월19일 내린 건조주의보가 60일째 계속돼 최장기 주의보로 기록되고 있다. 국내 주요댐 저수량도 50%를 밑돈다는 소식이다. 모내기철을 약 한달 앞두어 물걱정이 되지만 당장 밭작물이 가뭄을 타고있다. 난데없는 구제역까지 퍼져 시름을 더해준다. 파주서 시작돼 충남·북까지 퍼지다가 주춤한것은 불행중 다행이나 아직 마음 놓기는 이르다. 축산농가의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곡우(穀雨)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고 했는데 내일(20일)이 바로 곡우다. 곡우는 봄비가 내려 오곡백과를 기름지게 한다는 날인데도 좀처럼 비다운 비는 내릴 것 같지않다. 이 좋은 새봄에 걸맞지 않게 산불, 가뭄, 구제역등 삼재(수재·화재·풍재)아닌 삼재 이변에 시달리고 있다. 날이 가물면 사람들의 마음도 가물어져 삭막해지기가 쉽다. 우리모두 심신을 가다듬어 마음 속으로나마 비를 염원하는 기우제를 지내자. /白山

국회의원

부산출신 민권변호사 노무현의원(민주당)은 지역감정의 벽에 도전하는 고독한 정치인이다. 1988년 초선시절 5공청문회에서 예리하고 조리있는 신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90년 3당합당땐 통합여당행을 거부, 당시 야당인 민주당에 들어갔다. 이번 16대 총선에서는 재작년 보궐선거로 당선한 서울 종로선거구를 버리고 굳이 15대 총선의 낙선고배를 안겨준 부산지역을 선택했다. 결과는 또 낙선, 지역감정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 PC통신에 “우짜면 존노!사람이 아깝다!”는 글이 쏟아졌다고 한다. 패배직후 ‘노무현은 부산을 사랑합니다’라는 대형 간판을 용달차에 싣고 선거구를 누볐다. 좌절을 거부하는 그는 부산의 미래의 희망일 것이다. 국회의원은 정치적으로는 국민의 대표성을 갖지만 선거구로는 시민의 대표성을 갖는다. 4·13총선 결과를 보고 더러 ‘아까운 사람이 떨어졌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중앙 정치무대의 인재를 키울줄 모른다’는 말도있다. 새 사람도 좋지만 지역사회가 기왕 키운 사람을 좀더 키워 크게 부릴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아까운데 정당 때문에 떨어진 이가 있으면 반대로 사람은 검증되지 않았으나 정당 때문에 된 이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4년은 길고도 짧다. 정치신인들에게 4년은 유권자들에 대한 실험기간이다. 정당의 단순한 정치적 거수기가 아닌지, 지역사회를 위한 시민의 대표성 이행을 잘하는지, 장래성이 있는지를 지켜볼 것이다. 아깝게 탈락한 이들 또한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역경속을 오뚝이처럼 일어서 헤쳐가는 노무현의원 같은 이도 있다. /白山

6·25전쟁

‘훈장을 찾아드립니다.’ 6·25전쟁 50주년기념 YTN 연중 특별기획 프로그램이다. 벌써 100회쯤 방영됐다. 그 당시 계급인 하사(상병) 이등중사(병장)등으로 보도되는 고인들은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 출생들이다. 살아있으면 지금쯤 70, 80대가 됐겠지만 30, 20대, 더러는 10대의 나이에 전사한 것이다. 입대 당시의 주소지도 전국 각지여서 지금처럼 지역차별같은 것도 볼수가 없다. ‘훈장을 찾아드립니다’는 전사한 고인에게 훈장이 추서됐으나 연고자를 찾지못해 그대로 보존된 훈장을 전수할 유족을 찾는 뜻깊은 프로그램이다. 전쟁의 상흔은 반세기가 지나도 이처럼 깊다. 같은 분단국으로 흔히 독일을 예로 들지만 우리는 독일과 다르다. 동서독간에는 전쟁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무려 3년여에 걸친 동존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렀다. 언제 또 저들이 전쟁을 도발할지 모를 우려를 떨칠수 없는 것이다. 남북문제는 이처럼 동서독과는 다른 불신의 골이 깊이 깔려있다. 남북관계개선은 불신제거가 요체이지만 말로만은 역시 믿을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은 이같은 근원적 시각속에서 접근해야 한다. 과거보다는 현재가 중요하고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하지만 과거없는 미래 또한 있을수 없다. 정상회담추진은 더 두고 보아야 한다. 정상회담 말이 나오기가 바쁘게 한반도에 벌써 평화가 정착된 것처럼 오도해보이는 정부발표나 언론보도는 재고돼야 한다. 회담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가 있다. 안보의식이 해이해지지 않을까 심히 두렵다. /白山

성범죄자 공개

원조교제 등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1996년 미국의 ‘메건법’에 의해 시작됐다. 1994년 미국의 뉴저지주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이웃에 살고 있는 성범죄 전과자의 집에 모르고 놀러갔다가 무참히 성폭행당하고 살해된 당시 7세의 소녀 메건 캥커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 메건법이다. 메건의 부모는 만일 이웃사람이 성범죄 전과자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그러한 비극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성범죄 전과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입법운동을 한 것이다.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는 그들을 미리 알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과 신상이 공개될 수 있다는 두려움때문에 성범죄를 감소시킬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그래서 성범죄자의 신상공개는 바람직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7월 1일부터 원조교제 등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자의 신상이 공개된다. ‘청소년성보호법’이 발효되면 청소년 성범죄자의 구체적인 직장명과 생년월일, 주소 등 신상이 관보와 시·도 및 시·군·구 게시판, 청소년보호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개된다. ‘청소년에 대한 성범죄자의 신상공개 방법’ 시안을 보면 신상공개는 기본적으로 이름, 나이, 직업과 함께 범죄사실이 포함되고, 동명이인을 구별하기 위해 직장명도 공개된다고 한다. 아무리 범죄자라고 할지라도 부당한 인권 침해를 당해서는 안되며 범죄자의 인권도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신상공개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상적인 활동을 위축시킴으로써 더 잔인한 제2의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도 죄질 나름이다. 미성년자 성폭행과 원조교제를 누가 용서할 수 있는가. /淸河

험난한 길

동독과 서독이 통일을 위해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가진 날은 1970년 3월 19일 이었다. 1차 회담 준비를 위해 가진 4차례의 실무회담에서 쟁점이 된 것은 ‘의제’보다 회담장소였다. 동독측은 브란트 총리가 서베를린을 거쳐 동베를린을 방문할 것을 요청했으나 서독측은 회담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의식, 거부했다. 결국 동독측이 제3의 장소로 제안한 동독 접경지역 에어푸르트로 결정됐다. 1차 회담에서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는 국제법상 동등한 동서독 관계수립, 유엔 동시가입 등 7개항의 기본입장을 제시했고, 서독측은 양국간 선린관계 제도화 등 6개항을 제시했다. 1차 회담은 서로의 입장을 듣는 선에서 끝났다. 2차 회담은 두달 후 서독지역 카셀에서 개최됐다. 1차처럼 하루 일정으로 양국 입장을 주고 받았으나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을뿐 아니라 회담계속을 약속하는 공동성명도 발표하지 못했다. 정상회담 자체가 가시적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정상의 만남을 계기로 양측은 데탕트와 공존의 필요성을 공감했고 실무자급 대화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다. 1970년 8월 3차회담에서 상호 불가침과 현상 인정에 대한 조약을, 1971년 4차 회담에서는 서독·서베를린간 통행협정을 체결했다. 1972년 11월 마침내 양측이 상호 협박과 무력 사용을 포기하고 양측간 국경을 준수하며 서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기본조약’에 서명했다. 그런데 한국은 오는 6월 평양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한 정상회담을 앞두고 너무 장밋빛 환상에 젖어 있는 것 같다. 동독과 서독은 1990년 10월 통일까지 20년동안 9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한국은 험난한 길인줄도 모르고 1차 회담으로 통일을 이룰 것 같이 흥분해 있다. 제발 침착했으면 좋겠다. /淸河

투표는 합시다

제16대 총선이 치러지는 13일, 오늘은 전국이 흐린 가운데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18도까지 올라가는 포근한 날씨라고 기상청이 밝혔다. 바람이 불고 쌀쌀했던 날씨가 20도 안팎으로 따뜻하게 풀렸다. 때마침 진달래 개나리 철쭉 목련 등 봄꽃이 한창 피어나서 그야말로 호시절인데 걱정거리가 있다. 상당수 유권자들이 참정권 행사를 포기하고 봄나들이를 즐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양평, 가평, 대성리 등지의 민박시설의 경우 대부분 예약률이 50%를 넘었고 골프장은 2,3주 전에 이미 100%예약 됐다고 한다. 항공권과 열차표 예약률도 웬만한 연휴의 상황을 방불케해 전좌석이 매진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16대 총선 투표율은 ‘사상 최악’이 될 것이라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 12대 총선 투표율은 84.6%였고 13대 75.8%, 14대 71.9%, 15대 63.9%로 줄곧 내리막을 기록했는데 16대는 60%선 이하로 떨어질 것 같다는 것이다. 찍을 사람도 없고 믿을 만한 정당도 없어서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가 당선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과 후보자의 납세·병역·전과 공개 등으로 어느 선거보다 투표율이 높을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이 빗나가고 있는 이유는 4·13 총선이 선거 사상 최악의 저질이며 특별한 쟁점이 없고 후보들 대부분의 과열·혼탁 열기로 염증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기권을 하면 나중에 정치를 잘못해도 질책할 자격이 없어진다. 내가 찍은 한표의 위력과 그 힘이 주는 쾌감을 왜 포기하려는가. 산으로 들로 강으로 봄을 만나러 가더라도 아침 일찍이 투표는 하고 가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며 도리이다. /淸河

신북풍

1987년 12월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둔 그해 11월29일 KAL858기 폭파 사건이 일어났다. 1992년 12월17일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두어달 남짓 앞둔 그해 10월6일 총리급간첩 이선실을 중심으로 하는 남조선 노동당사건이 있었다. 1996년 4월11일 제15대 총선을 불과 일주일 남긴 4일 북한군이 돌연 비무장지대 규정 준수를 거부하며 수차에 걸쳐 비무장 지대에 무장병력을 투입했다. 현직 대통령이 선출된 97년 12월18일의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약 4개월 앞둔 그해 8월15일에는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의 월북사건이 있었다. 이에 당시 야당총재였던 김대중씨는 ‘어떻게 선거때마다 이상하게 북풍이 분다’며 북풍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오익제씨는 측근으로 알려졌던 터라 그의 월북은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밖의 북풍사건은 선거를 앞둔 유권자들에게 시국 불안을 조성 안정선호를 유도케 하므로인해 여당엔 유리한 반면 야당은 불리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세풍(稅風) 병풍(兵風)등은 다 북풍에서 비롯된 조어가 됐을만큼 북풍이란 말은 유명해졌다. 세월이 바뀌어 여당총재가 된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합의서 발표로 신북풍을 일으켰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신북풍을 ‘총선용’이라며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총선용이 아닌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결실이 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결과는 더 두고 지켜볼 일이다. 그나저나 정부의 회담관련 홍수발표를 저들이 보면서 행여 ‘남조선 선거는 우리손에 달렸다’식의 잘못된 오만을 갖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白山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