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종주국

국산고추는 매운맛에 단맛이 있고 색소는 강렬하면서 비타민C가 풍부하다. 소금이나 젓갈과 잘 어울려 몸의 지방을 산화시키는 효소를 만들어낸다. 이는 토양과 기후의 탓이다. 원래의 고추맛은 이러지 않았다. 중미 멕시코가 원산지인 고추가 조선에 전래된 것은 16세기 말이다. 신대륙을 점령한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동아시아로 진출하면서 일본을 거쳐 전해졌다. 고추가 김치에 쓰이게 된 것은 17세기부터다. 그러나 이때의 김장재료는 무였으며, 그 이전에는 주로 소금이 사용됐다. 무에 소금기를 절인 짠지, 싱건지 등이 그러했다. 여기에 지금의 배추가 18세기말 중국으로부터 전래되면서 고춧가루에 젓갈을 들인 배추김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토종을 말하는 조선배추도 도입후 우리의 토양과 기후로 길들여진 품종인 것이다. 김치의 뜻은 넓은 의미로 절인채소를 말한다. 어원이 되는 ‘딤채’는 담근 채소라는 의미를 지녔다. 그러니까 지금과 같은 김치가 시작된 것은 약 200년 전이다.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으면서 민족음식의 상징으로 발달한 것은 바로 고춧가루와 젓갈류를 함께 쓸줄 알았기 때문이다. 10여년전부터 김치맛을 뒤늦게 안 일본사람들이 김치문화의 추월을 위해 안간힘을 다하더니 ‘김치 담그기’를 두 여고의 정식 교과로 채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오사카의 오키마치여고와 이즈미여고가 배추고르는 법에서 고춧가루 등 양념재료 쓰는 요령까지 실습위주의 정규수업을 한다는 것이다. 김치과목을 담당한 초빙교사는 재일교포로 알려졌다. 우리의 신세대 주부가운데는 김치 담그기를 싫어하거나 담글지 몰라 김장김치마저 주문하는 주부들이 적잖다. 여고에서 김치교과를 두었다는 말은 더욱 듣지 못했다. 김치종주국의 위치가 위협받는게 아닌지 걱정된다. /白山

팀플레이

단체경기는 팀플레이가 생명이다. 스타의 기여가 아무리 크다해도 스타플레이어 혼자 게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배구에 불멸의 기록이 있다. 1979년 울산서 열린 제2차 실업연맹전 여자배구경기였다. 현대와 한일합섬의 게임에서 세트스코어 2-0으로 마지막 3세트도 13-8로 현대가 앞서갔다. 누가 보아도 현대의 승리가 확실한 한일합섬의 절망적 순간, 팀플레이가 되살아나면서 3세트를 15-13으로 뒤집어 가까스로 게임종료를 모면했다. 이어 한일합섬은 기사회생한 여세로 계속 몰아치는 반면에 현대는 난조에 빠져 결국 세트스코어 3-2로 대역전극을 장식했다. 이 명승부는 신화적 기록으로 남아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축구도 공수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공격, 수비 모두가 신바람이 난다. 링크의 허리역도 마찬가지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크게 활약하는 박찬호가 아무리 마운드를 잘 지켜도 자기팀의 타선이 침묵을 지키면 투구가 무거워진다. 수비가 실책을 저지르면 더욱 맥빠진다. 반대로 자기팀의 타선이 폭발하고 수비들이 안타성타구도 잡아내는 맹활약을 보이면 더욱 신명나 투구가 경쾌해진다.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단체생활 역시 팀플레이와 같다. 혼자 아무리 잘 하려해도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저마다의 포지션에서 자기역할을 다하는 것이 조직의 활성화다. 조직이 살아 꿈틀거려야 생동감이 난다. 기업이나 공공단체나 일반단체나 모두가 같다. 정부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후속조치가 추진되고 있다. 각 부처가 유기적으로 움직여 정부 팀플레이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공연한 공명심에 들떠 팀플레이를 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정부의 팀플레이가 주목된다. /白山

이산가족 상봉

1964년 도쿄올림픽의 신금단 부녀상봉은 스포츠외적 감격드라마로 스포츠기자들의 열띤 취재전쟁을 낳았다. 가히 세계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북측 육상선수 신금단과 서울에 살고 있는 아버지의 부녀상봉은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단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보여 취재하던 기자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신금단 부녀상봉을 KBS-TV가 단막극으로 극화한 것은 그해 10월인가 싶다. 신금단 아버지역으로 고인이 된 김희갑씨가 출연했다. 그 역시 함경북도가 고향인 실향민 탓이었던지 원래 지닌 연기력에 알파를 더한 감정이 풍부하게 나타나 기막힌 연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막후 비화가 있었다. 대본에 없는 대사 한마디가 말썽이 됐다. 딸과 헤어지는 장면에서 감정이 격한 나머지 “공산주의도 싫고 민주주의도 다 싫다… 금단아!”하며 울부짖었던 것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영상과 음향을 저장할 수 있는 ENG카메라가 없었던 때여서 녹화가 불가능했다. 생방송으로 나가기 때문에 그대로 방송된 김희갑씨의 대본에 없는 대사는 나중에 당국에서 조사를 받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말인데도 남북대치가 그만큼 예민하던 때여서 좀 문제가 됐던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으로 당장 효과를 보아 가장 희망에 부풀어 있는 사람들이 이산가족들이다. 생사확인, 서신교환만 해도 가슴 설레일텐데 하물며 만난다는 것은 벌써부터 밤마다 꿈에 보일만 하다. 정부는 폭주가 예상되는 이산가족들 만남의 신청을 고령자순으로 처리할 것이라고 한다. 되도록이면 많은 만남이 가능한 북한당국의 인도주의 정신의 발현이 있으면 좋겠다. /白山

노벨평화상

노벨평화상은 매년 2월 1일까지 각국으로부터 후보추천을 받아 10월 중순쯤 수상자를 선정한다. 노벨평화상은 지난해 ‘국경없는 의사회’가 수상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분쟁지역에서 평화나 인권활동을 촉진한 사람들에게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다. 또 지난 1973년 베트남전 종전에 기여한 공로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 월맹측 평화협상 대표 레둑토가 공동수상한 것을 비롯, 1970년 이후 역대 노벨상 수상 중 공동수상이 11번이나 된다. 이번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남북정상회담 성사로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성급한 말들이 들려온다. 남북정상회담은 양쪽 정상의 통일에 대한 의지 뿐 아니라 분단 55년이 초래한 남과 북의 시대적 요청과 주변국들의 상황변수 등이 복잡하게 얽혀서 나온 7천만 국민의 고난과 고통의 산물이기 때문이겠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관계자도 “노벨위원회로서는 오는 10월 수상발표가 있기 전 까지 아무 확인도 해줄 수 없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수상 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난 13일 0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이 카운트되던 순간에 문화일보 김선미 기자가 주한 노르웨이 대사관을 거치지 않고 노벨평화상을 선정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직접 국제전화를 걸어 “김대통령이 지금까지 수차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돼왔고,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세계평화에 미치는 영향으로 미뤄볼 때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도 점쳐볼 수 있느냐”고 물은 결과 그렇게 (수상 가능) 공식입장을 확인해줬다는 것이다. 수상자 발표 직전까지 수상자는 물론 후보와 관련해서 어떤 확인도 해주지 않는 노벨위원회 관계자의 이같은 발언은 아주 이례적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 한다면 한민족의 핏값이며 눈물값이다. 한국인이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가상만으로도 매우 기쁘다. /淸河

남북 정식國號

지난 반세기 동안 남한과 북한은 서로 간에 마땅한 호칭을 쓰지 못했다. 한때는 서로를 ‘괴뢰(傀儡)’라고 칭했다. 남한측은, 한국 이북지방에 ‘북한괴뢰’가 있다고 했고, 북한측은 남한을 ‘남조선 괴뢰’라 칭했다. ‘괴뢰’는 ‘꼭두각시’이다. 남한과 북한이 어디의, 누구의 꼭두각시인가. 1991년 9월 남한과 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할 때는 엄연히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정식 국호(國號)를 썼다. 그런데 북측은 한때 한국을 소위 ‘공화국 남반부’라고 했다. 한국은 북한을 ‘한국의 미수복지역’이라고 했다. 이러한 국호를 사용했던 것이 긴장완화와 평화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과연 잘 성사될까’하고 가슴 졸인 남북정상회담이 6월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잘 끝났다. 2000년 6월15일자로 공포된 남북공동선언문 맨 마지막에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이라고 적고 서명했다. 1992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와 지난 5월18일 발표된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실무절차 합의서에 이어 세번째로 남북합의서에 국호가 명시된 것이다.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은 세계100여개 국가와 국교를 맺고 있으며 이미 일본과 미국도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또는 DPRK라고 부르고 있다. 이렇게 전 세계와의 외교관계에서는 한반도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다는 존재시인이 되고 있으나 오직 우리 민족 남북사이에만 서로 상대방의 공식 국호를 기피하고 있다. 동포로는 생각하여도 국가로 인정하기는 어려운 것인가. 언제까지 남쪽, 북쪽이라고 호칭할 것인가. / 淸河

금지곡

가수 이미자의 히트송 ‘동백아가씨’가 한때 금지곡이 된 까닭은 왜색이란 이유때문이었다. 음계와 리듬으로 치자면 모든 트롯 곡들이 왜색임에도 유독 ‘동백아가씨’만 금지곡이 된 이유는 당시 정부가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로 폭발한 반일감정을 다스리는데 ‘왜색가요 금지’라는 카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연관된 금지곡 중 비슷한 사례는 ‘독도는 우리 땅’이다.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 땅’이 한창 인기를 모았던 1983년 느닷없이 방송금지가 됐다. 이 곡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일본을 방문하게 되자 반일감정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방송금지 당했던 것이다. 1970, 1980년대의 상징적인 금지곡이 ‘아침이슬’이었다면 1990년대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이다.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라는 가사가 문제됐었다. 이 곡의 방송금지는 ‘사전심의 철폐운동’의 상징적인 기폭제가 되었다. 최근에는 단정한 이미지의 가수 이현우의 신곡 ‘정육점’이 청량리 사창가의 모습을 묘사했다는 이유로 방송금지곡으로 묶였고, 직설화법으로 언론과 경찰을 비판한 그룹 DJ DOC의 ‘라이(LIE)’와 ‘포졸이’가 문제곡으로 떠올랐다. 지난 2년반동안 음주, 폭행사건 등으로 경찰서를 들락거리며 공백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DJ DOC의 ‘자전적인 노래’라고 하는 ‘라이’는 언론비판을 담았고, ‘포졸이’는 경찰을 포졸이, 씨방새, 짭새로 비유하며 경찰에 대한 억하심정을 표현했다. 그런데 요즘은 북한가요 ‘반갑습니다’가 인기를 끌고 있다.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라고 시작되는 이 노래는 1년전부터 금강산 관광객을 중심으로 일반인에게 알려졌다. 금강산 유람선이 정박하는 북한 고성항에서 북한 땅을 처음 밟은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것이 이 노래다. 북한가요가 금지되지 않고 남한에서 애창되는 현실이 반갑다. /淸河

임진강

임진강은 함경남도 덕원군 마식령에서 발원, 서남쪽으로 강원도 북부 황해도를 거쳐 경기도로 흐른다. 강줄기가 칠백리에 이른다. 북한땅인 고미탄천과 평안천을 합류한데 이어 도내 연천에서 철원 평강 등을 거쳐온 한탄강과 또 합류한뒤 고랑포를 지나 문산천을 합치면서 한강을 만나 함께 서해로 흘러든다. 유역이 비옥하여 예로부터 오곡백과가 풍성했다. 전곡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대량 발굴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살기가 좋았던 임진강유역은 수상교통의 요충지로 국토가 분단되기 전까지는 장단의 고랑포까지 큰 배가 들어왔으며 소규모 주운(舟運)이 발달하였다. 삼국시대에는 신라 백제 고구려가 임진강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빼앗기고 뺏는 많은 싸움을 벌였다. 당시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고 하여 연천에는 칠중성(城)이 있었다. 임진강이라고 부른 것은 조선 선조 27년(1593년)이다. 광주산맥의 지맥이 뻗어 산수 또한 수려하다. 임진강변의 장단석벽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이름나 시인묵객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하류쪽으로는 동파적벽이 있으며 화장사, 심복사, 경순왕릉 등 대찰과 유적지가 있다. 보개산, 문인폭, 연취암, 용추, 문인석 등 명승고적이 또한 도처에 있다. 그러나 지척인 북한땅은 고사하고 남쪽땅인 장단마저 비무장지대에 들어 명승고적이 잡초에 묻힌채 인적이 끊긴지 오래다. 어제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임진강의 한 어부가 “물고기처럼 남북을 오가며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도 물고기도 마음대로 왕래하는터에 유독 사람만이 가로막고 있는 임진강은 오늘도 무심히 흐른다. 남북을 흐르는 임진강에 평화가 올 날은 언제쯤일까. 통일의 그날이 오면 축복이 예약된 강이 임진강이다. /白山

통일견

전남 남해안 진도군의 명산, 진돗개는 천연기념물 53호다. 몸집이 중형종으로 총명하기가 이를데 없어 ‘신견’(神犬)이라고도 한다. 주인에 대한 충직심이 강하다. 후각과 청각이 예민한데다가 싸움에 임해 불퇴진의 용맹이 있어 사냥을 아주 잘한다. 풍산개는 함남 개마고원 해발 1천m의 산악지대에 있는 풍산군의 명산으로 북한 천연기념물 35호다. 몸집은 중대형으로 흰 털이 빽빽하며 눈코와 발톱이 검은 것이 특징이다. 영하 30℃의 추위도 거뜬히 견딘다. 성품이 용맹하고 인내력이 강해 사냥에 알맞다. 호랑이하고도 싸운다는 말이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진돗개와 풍산개가 화제에 오를것 같다. 평양을 방문하는 김대중 대통령이 진돗개 한쌍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위원장은 이에대한 답례로 풍산개 한쌍을 김대통령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한의 천연기념물은 결국 우리 모두의 자연자원이다. 풍산개나 진돗개나 다같이 자랑스럽다. 역사적인 회담을 계기로 남북 고유의 우리들 천연기념물을 교환하는 것은 매우 뜻 깊다. 두 명품의 순수한 혈통은 물론 보존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만약에 두 혈통을 교배하면 또 어떤 품종이 나올는지 궁금하다. 청와대측은 두 품종의 교배로 새로운 품종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진돗개와 풍산개, 풍산개와 진돗개 사이에 태어날 강아지를 ‘통일견’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통일견이 새롭게 태어나 자라듯 남북관계도 새로운 전기를 맞아 무럭무럭 성숙되면 좋겠다. /白山

감질나는 비

‘칠년대한에 비 안오는 날 없다’는 속담이 있다. 7년이나 계속되는 가뭄속에서도 감질나게 뿌리는 비는 있다는 뜻이다. 요즘의 비가 이런 속담을 생각나게 한다. 감질나게 뿌리다보니 오나마나다. 저수량이 50%를 밑돈다니 당장 모내기가 큰 걱정이다. 수리시설도 비가 내려야 물이 고이지 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예전엔 이럴때 기우제를 지냈다. 기우제가 꼭 비과학적인 것만은 아니다. 산상분화란 기우제가 있었다. 제관들이나 마을사람들이 산봉우리에 장작 솔가지 등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밤에 불을 지르는 행사다. 규모가 가히 장관이었다. 비를 바라는 기원을 천신께 알리면서 양기인 불로 음기인 비를 부르는 것이었다. 여기엔 기압의 변화가 적은 밤중 고기압에 덥혀진 저기압의 충격이 비구름을 형성시킬 수 있는 과학적 이론의 근거가 있다. 조상들은 비록 과학으로 설명은 못했어도 경험상 과학적 주술을 올리는 지혜는 있었던 것이다. 조선조 실록에는 기우제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나온다. 태종은 재위 18년동안 태종3년(1403년) 한해만 기우제를 지내지 않았을뿐 해마다 올렸다. 한해에 두세번은 보통이고 아홉번까지 올린적이 있다. 기우제와 반대인 기청제가 또 있었다. 여름철 장마가 심하면 제발 비를 그치게 해달라며 천신께 제를 올리곤 했다. 지금도 한해 끝에 수해가 닥쳐 ‘한해대책본부’를 ‘수해대책본부’로 간판을 바꿔 달때가 있다. 50㎜ 100㎜의 비가 내려도 시원치 않은 판에 5㎜ 10㎜씩 감질나게 뿌려 심히 안타깝다. 요즘같으면 예년보다 빨리 온다는 장마가 닥쳐 좀 시원하게 비를 뿌렸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白山

일기 훔쳐보기

“우리 엄마는 시험 못봤다고 옷 사러 보내주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해 정말 아니꼽고 더럽고 싸가지 없다. 아무리 날 낳은 부모라지만 시험을 못보면 격려는 못해줄망정 뒤집어 놓고 패기나 하고…. 빨리 커서 독립하고 싶다. 그리고 엄마랑 아빠랑 연락끊고 살거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끼리 쓰고 돌려 읽는 ‘모둠일기’에서 뽑은 내용중 일부분이다. 부모를 대놓고 욕하지 않은 게 그야말로 천만다행이다. “PC방 갔다 집에 왔는데 엄마가 막 뭐라고 해서 기분이 다 잡쳤다. 준석이(가명)가 자기 엄마를 욕하던 기분을 알것 같다”거나 “어른들은 우리를 눈곱만큼도 이해못하면서 항상 우리 위에 군림하려고만 한다 역겹다”는 내용도 있다. “엄마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기가 막힌 얘기도 나온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이 최근 전국의 중고교생 1천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열명 가운데 한명 꼴이 ‘부모와 갈등이 많다’고 대답했다. ‘부모님은 예전에 잘못한 것 까지 다시 얘기한다’가 38.2%이고 ‘부모가 서로 상대에게 잘못이 있다고 다툰다’가 26.5%이다. 청소년들의 절반 이상이 부모와의 대화에 심각한 장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초등학생 때도 그렇지만 자녀들은 중학생만 되면 또래들과 함께 부모를 평가한다는데 불만족스러운 점이 많을 경우 ‘부적격 판정’을 내린다. 부모가 엄격한 권위주의적,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지녔을 때 더욱 그러하다고 한다. 자식에게 살해돼 시신까지 토막나는 참극도 일어나는 요즘이다. 그래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부쩍 늘어났다.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고 하니 자녀들의 일기장이라도 몰래 읽어두어 자녀들의 심경을 미리 헤아리고 대처해야할 판국이다.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고 학대하는 부모들이 많은 탓이기도 하다. 지금은 수난시대이다. /淸河

금연운동

“8초마다 1명씩, 1년 동안 400만명이 죽는다” “2030년 매년 1천만명이 사망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 금연의 날’인 5월 31일 밝힌 섬뜩한 내용들이다. 금연의 필요성은 주로 건강측면에서 강조된다. 폐암과 흡연과의 관련성 여부가 국내 법원에서도 심리중이라지만, 흡연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담배에 20여종의 발암물질과 4천여종의 독성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실험결과도 있지만 담배가 호흡기 질환과 심근경색, 뇌졸중 등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특히 중년층의 경우 만성피로에다 정력감퇴를 불러일으키며 여성에게는 피부미용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의 보고서도 계속 발표되고 있다. 그런데도 흡연인구는 줄어 들지 않는다. “내가 겪은 일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이 금연이었다. 나는 담배를 천 번도 넘게 끊었다”거나 “담배를 끊은 지독한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익살스러운 애연가도 있다. 금연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금연운동을 위해 미국은 TV와 라디오에서 담배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은 2006년까지 역내 모든 국가에서 담배광고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최근 통과시켰다. 태국 정부는 올해 흡연장면이 나오는 영화나 TV프로그램 방영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상정했다. 우리나라도 청소년 TV 프로그램에서 흡연 장면을 방영하지 못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식당·유흥업소와 PC방, 만화방, 당구장, 오락실 등 청소년 이용시설에 흡연구역 설치 등을 골자로 한 건강증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중에 있다. 우리나라 남자의 흡연율은 66.3%로 세계 최고 수준이고 여자는 30%라고 한다. 고교 연령층인 16∼18세가 24.1%, 중학교 연령층인 15세 이하도 8.3%나 된다. 담배맛도 모르고 피워대는 미성년자는 그렇다 치고 진짜 애연가들은 개정중인 건강증진법을 어떻게 생각할는지 궁금하다. /청하

참게가 불쌍하다

한 15년전에 모습을 감췄던 한탄강 민물참게가 얼마 전 다시 돌아왔다. 참게는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임진강과 한탄강 일대에서 연간 수백만 마리가 잡혔으나 수질오염이 심각해지면서 한탄강에서는 찾아 보기 어렵고 임진강 중·하류에서만 수만마리 정도가 잡혀 왔었다. 어자원보호를 위해 파주시가 지난 3월 참게치어 20여만 마리를 방류한 일도 있었지만 최근 민물참게가 나타난 것이다. 철거된 연천댐 주변에 깨끗한 한탄강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자 민물참게가 되살아난 모양이다. 참게는 강물이 바다와 합류하는 강화군 주변 바다에서 산란한 뒤 임진강과 한탄강으로 올라와 서식한다. 참게는 끓는 간장에 부어 게장을 담그면 ‘밥도둑놈’이라고 불릴 정도로 맛이 좋아 옛날에는 임금에게 진상됐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민물참게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이 나돌자 한탄강에는 매일 밤 손전등을 이용해 민물참게를 잡는 사람들이 모여 들어 불야성을 이루는 것이다. 자갈 사이에 몸을 숨긴 5∼6㎝ 크기의 참게를 하룻밤에 400여 마리나 잡는다는데 대다수의 주민들은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민물참게를 보호하기 위해 어린 참게는 놓아 주고 있다. 그러나 외지인들은 몸통 3㎝가 채 안된 어린 참게들을 마구 잡아 참게가 되돌아 오기 무섭게 씨가 마를 지경에 처했다. 인근 식당가에서 파는 것 조차 어린 게들이 대다수이고 크기에 따라 마리당 5천∼8천원씩 비싸게 팔리고 있어 남획행위를 부채질하고 있다. 민물참게가 다시 모습을 나타내자 함께 사라졌던 황쏘가리, 누치, 어름치, 참마자 등도 조만간 다시 오겠지, 하며 기대하고 있었는데, 참게 잡는 사람들을 보고 어류들이 놀라서 도로 사라질는지 모른다. ‘강물이 맑아져 좋아했는데 사람들 등쌀에 참 살기 힘들다’고 탄식하는 참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淸河

과다노출

1896년에 설립된 이화학당이 1910년 대학과가 설치되고 나서 교복이던 통치마자락이 올라갔다. 발목까지이던 것을 무릎아래로 짧게 했다. 사대부들이 들고 일어났다. “다 큰 계집애에게 종아리를 드러내게 하다니! 말세!”라며 딸의 등교를 거부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화학당은 이화여자대학교의 전신이다. 1918년 숙명여고에 처음으로 여자배구단이 창단됐다. 복장이 문제가 됐다. 무릎을 드러내는 단복차림이 고약하다며 역시 학부형들이 항의소동을 벌였다. 신교육, 특히 여성의 신교육 도입과정에서 이런 신·구 생활문화의 갈등이 있었다. 이에 비하면 현대여성들은 옷차림에 해방을 만끽하고 있다. 여름철에 남자가 멋을 내려면 정장차림을 해야 한다. 더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와이셔츠는 소매가 긴것을 입어야 하고 반드시 넥타이를 매야 신사축에 든다. 여자는 반대다. 멋을 부릴수록이 옷감의 천도 투명하고 맨살을 드러낸다. 여름날씨가 완연하면서 여성의 노출이 점점 대담해지고 있다. 1910년대에 지금같은 ‘핫팬츠 배꼽티’ 차림의 여성이 거리를 활보했으면 정신이상자로 보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같은 모습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되레 치한으로 몰린다. 시대에 따라 도덕관이 달라지긴 하나 과다노출은 자신을 위해 삼가는 것이 좋지 않겠나 생각된다. 젊은 여성의 밤길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자신을 보호하는 1차적 방어는 자신의 책임이다. ※어제 본란 ‘댐’ 제하의 본문 말미에서 ‘동강댐에 이어 영월댐…’은 잘못된 것이므로 ‘영월 동강댐…’으로 바로잡습니다. /白山

간척사업이나 댐건설을 자랑스럽게 여겼었다. 간척사업을 가리켜 국토의 지도를 바꾸는 대역사라고 극찬했고, 댐건설을 일컬어 자연의 재해를 극복한다고 했다. 허망한 인간의 오만이다. 간척사업은 갯벌을 죽여 더 큰 재앙을 가져온다. 댐건설은 홍수 및 물공급의 조절기능이 생각처럼 큰 것이 아니다. 이 모두가 환경파괴다. 댐은 인간의 기본생존권마저 위협한다. 낙동강의 안동댐은 기후변화를 가져와 농작물피해 등 부작용이 끊이지 않는다. 충북 보은군은 청평댐 건설 이후 여름철마다 전례없는 큰 비에 시달린다. 댐이 안겨주는 재앙은 외국에서도 허다하다. 중국의 삼협댐은 1000여종의 고고학적 유물이 수장되면서 물흐름이 막혀 말라리아 등 각종 질병의 매개체가 됐다. 인도의 사로마크댐은 1억2천만평 규모의 숲과 농경지가 매몰돼 이상한발을 가져왔다. 일본은 ‘공공공사 통제법’을 제정, 댐건설을 제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산림자원개발에 치중하고 도시계획을 친환경적으로 세우는 것이 홍수예방에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물 절약과 재활용 등을 통해 물의 수요를 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국제댐위원회(ICOLD)자료에 따르면 세계담수어종의 20%가 댐건설로 멸종됐거나 멸종위기에 처했다. ICOLD는 언젠가는 인류가 멸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댐건설을 두려워하라’고 경고했다. 국내 환경단체들도 댐건설을 반대하였다. 정부가 동강댐에 이어 영월댐 건설을 백지화한 것은 잘한 일이다. / 白山

매향리

매향리일은 주민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50년을 그렇게 살았으면서 새삼 왜 항의냐 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누구도 그들에게 인내를 더 강요할 권리는 없다. ‘폭탄투하로 인한 직접적피해는 없다’는 한미합동조사단발표에 이어 폭격훈련이 재개된 2일 매향리주민들은 항의시위를 벌였다. 그렇찮아도 조사단발표가 미덥지 못한 터에 19일만에 다시 시작된 폭격기 10여대의 농섬사격훈련 굉음은 주민들을 자극했다. 주민대책위원장 전만규씨(44)는 사격장 철조망을 뜯어내고 들어가 주황색 사격예고깃발을 끌어내린 뒤 찢어버렸다. 경찰은 전씨를 군사비밀보호법 등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전씨의 행위는 흥분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나온 행동이지 군사기밀을 탐지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 그를 구속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제2 전만규’ ‘제3 전만규’가 나올수록이 사태는 더 악화된다. 내일은 사격장 주변의 인간띠 잇기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매향리사태는 언젠가는 결국 수습된다. 주민들을 자극시켜 사태를 점점 악화시킨뒤에 수습하는 것은 현명치 않다. 훈련하는 상대가 미군이어서 미국을 말할뿐 주민들이 미군에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공군의 훈련장 같았으면 정부를 상대로 성토했을 것이다. 순수한 주민의 생활욕구, 기본적 인권주장이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되지 않기 위해서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처럼 시누이꼴이 되어서는 안된다. /白山

접대

한국 기업들은 96년∼98년 3년동안 기밀비, 교제비, 사례금 등을 포함 총 9조9천898억원을 접대비로 썼다고 한다. 국세청이 지난 해 10월 국회에 제출한 국감자료에서 밝혀진 금액이다. 연도별로 보면 96년 2조9천656억원, 97년 3조4천988억원, 98년 3조5천254억원이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접대비 지출이 줄기는 커녕 오히려 증가했다. 관공서도 마찬가지다. 지방도청에 근무하는 모국장은 1년에 20∼30차례 서울에 올라와 예산지원이나 숙원사업 진척을 위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 접대를 벌인다. 실정이 이러하니 각 지방자치단체는 막대한 접대비 지출을 위해 각 예산 항목에 은닉예산을 만든다. 접대에는 우리 경제 구조를 왜곡시킬 만큼 막대한 부담이 뒤따른다. 그래서 공무원 사회나 일반회사의 봉급체계에는 ‘업무추진비’ ‘기밀비’ ‘정보비’등 불투명한 비용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 사회는 접대를 ‘업무의 연장’이자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다. 세칭 ‘술상무’는 접대를 주업무로 하는 직장인이다. 특히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매일 밤 질펀하게 벌어지는 접대는 아직도 일과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필요악’으로 인식돼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우리 같은 접대문화는 상상할 수 없다고 한다. 미국의 정치인이나 관리들은 20달러 이상의 선물을 받거나 식사를 접대받을 수 없도록 한 공직자윤리법을 철저히 지킨다는 것이다. 정·관·재계의 유착을 비유해 ‘철의 삼각구조’라는 비난까지 샀던 일본은 요즘 ‘접대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4월부터 시행된 이 법은 중앙부처 과장보 이상이 업자로부터 5천엔 이상의 선물이나 접대를 받았을 경우에는 상사에게 보고해야 한다. 최근 ‘광주술판사건’이나 잇따라 터져나온 공인들의 성추문 등은 접대자리에서 일어난 아노미 현상이다. 공익적 요소가 사적 이익으로 전환되고 이를 공동으로 묵계하는 현장이 바로 술자리 접대문화다. 박주산채(薄酒山菜)로도 정겨운 접대문화가 새삼 그리워진다. /淸河

한나라당의 공격

오늘날의 국무총리에 비견되는 영의정(領議政)은 조선시대 최고의 중앙관직으로 법제적·실권적 기능을 수행했다. 흔히 영상(領相)으로 불렸으며, 상상(上相), 수규(首揆)라고도 하였다. 법제적으로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 규정되었지만, 실제의 기능은 왕권이 강하고 약함에 따라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세조(世祖)가 즉위 하여서는 영의정이 실권없는 무력한 지위로 전락하였는데 이는 단종 때 영의정 황보인(皇甫仁)과 김종서(金宗瑞)등의 정적이 세조의 행동을 크게 제약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왕권의 강약, 의정부와 6조의 역학관계, 비변사의 설치, 규장각의 운영, 당쟁과 세도정치, 각종 변란으로 인한 정치분위기 등과 연관되면서 영의정은 권한의 번복을 계속했다. 영의정은 전조선 시대를 통하여 존속돼 오다가 1894년 갑오경장 때 의정부의 총리대신으로 바뀌고, 이후 내각총리대신·의정(議政)으로 개칭 되었다. 현재의 국무총리 제도는 1948년 정부수립 이래 설치돼 제2공화국을 제외하고는 행정부의 제2인자로서 대통령을 보좌하며 그의 명을 받아 행정 각 부를 통할하는 일을 해 왔다. 그러나 실제 권한은 왕권시대처럼 대통령의 의중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국무총리로 지명된 이한동(李漢東)총리서리는 무슨 역할을 어떻게 할는지 미지수이지만 국회임명 동의안 처리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한나라당이 단단히 벼르고 있는 모양이다. 특별팀까지 구성, 이 총리서리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이 특별팀은 최근 수년간 이 총리서리의 각종 인터뷰와 연설, 강연 발언 등을 수집해 내용을 분석하는 방대한 작업을 진행중이라고 한다. 왕명을 받은 영의정이었으면 인사청문회는 없을텐데 그러나 이 총리서리는 야당의 공격준비에 대범한 자세다. 그동안 작전상(?) 식언 몇 마디 한 일 외에는 꺼릴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淸河

학교사랑

모든 초·중·고등학교가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는 학부모, 교사, 지역인사 등이 학교 운영 전반에 관한 사항을 자문·심의하는 기구이다. ‘심의’와 ‘자문’을 통해 학교 운영에 직·간접으로 참여하는 학운위가 최근 포천 등 도내 여러 곳에서 학교와 교직자, 학생사랑을 실천하고 있는데 수원의 M초등학교 경우도 그 한 예이다. 지난 달 12일자 ‘지지대’란에 실린 ‘설마’라는 제목의 글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사실 확인을 제기한 것이다. ‘설마’는 지난 달 초순 어느 학부모가 한 전화내용 일부를 인용하면서 ‘이 학부모의 호소가 오해이거나 인신공격이라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쓴 졸고였다. ‘교직원이 복도에서 마주칠 때 목례를 하면 반드시 교장선생님, 이라고 호칭하고 얼굴을 확인한 뒤 인사’하라고한 것은 교직원이 아니라 평소 학생들에게 친절인사의 생활화를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물 절약을 위해 ‘화장실의 물 소리에 신경’을 쓴 것이며, 복사기 등을 구입하면 교장실에 설치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교실의 이중 유리창문틀을 교체한 것은 너무 낡은 시설환경 일신을 위해 교육청의 예산을 받아 시공한 것이지 학교재정을 낭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영양사가 밥그릇을 가져다 바쳐야만 식사’를 했다는 것은 손님들이 방문했을 때 좁은 식당을 피해 다른 사무실에서 식사한 경우 자리 옮기는 과정을 오해했을 것이라고 했다. 젊은 교장이 부임하여 학교발전을 위해 소신껏 의욕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권위적으로 보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무릇 어떤 상황과 사물은 보는 이에 따라서 인식과 시각의 차이가 있다. 소수보다 다수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긴다. 며칠간 전부는 아니지만 교직자들과 학부모들을 면담한 결과 M학교 학운위의 이러한 주장이 적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사랑 정신을 구현하는 모든 학운위의 활동에 거는 기대가 크다. /淸河

성도착증 환자들

미인 콘테스트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있었다. 주로 레스보스등지의 섬에서 치렀다. 알몸으로 출연했다. ‘건전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 깃든다’고 여긴 그리스인들은 여성은 아름다움, 남성은 단련된 체격을 건강한 육체로 평가했다. 이무렵에 여성의 미인콘테스트와 함께 있었던 남성미콘테스트도 역시 알몸으로 겨루었다. BC 4세기중엽 신을 모독한 죄로 기소된 창녀 프류네의 알몸이 법정에서 공개되자 판관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육체의 소유자에겐 죄가 있을수 없다’며 방면했다. 미인을 신의 창조물로 본 고대 그리스인들은 미인콘테스트를 이처럼 경외로운 종교적 행사로 여겼던 것이다. 지금은 미인대회를 수영복 차림으로 하지만 상업성 탓인지 논란이 없지않다. 성(性)적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여성의 미를 가슴 허리 엉덩이 크기로 보는것 부터가 그러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지만 외형의 조건이 미의 기준이 됐던것은 동서양이나 고금이나 마찬가지다. 당시선(唐詩選)가운데도 ‘세요’(細腰 버들가지처럼 가는 미인의 허리)란 말이 나온다. 실생활에서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미를 더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다. ‘여성이 아름답게 보이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란 말이 있다. 아름다움이 인생의 행복과 반드시 비례 하는것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아름다워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요즘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삼는 일부 지도층 인사들의 탈선이 드러나 말이 많다. 이들의 행태는 거의가 변태심리자들이라 할수 있다. 여성미 추구와는 어디까지나 별개인 성도착증 환자들인 것이다. /白山

JP와 청와대

청와대주인이 아니면서 청와대를 많이 드나든 사람으로 아마 김종필씨만한 이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으로는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씨 등 4대를 거쳤다. 박대통령 시절에는 초대중앙정보부장에 이어 국무총리 8년, 노태우, 김영삼대통령때는 민자당 최고위원 등, 김대중대통령 당대엔 국무총리를 지내면서 수시로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언젠가 대통령후보로 텔레비전중계를 통한 대화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패널이 “청와대가 그렇게 좋습니까?”하고 묻자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물론 좋지요… 청와대 주인이 되면 밥을 안먹어도 배가 부를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김종필씨를 가리켜 ‘영원한 2인자’라고 말한다. 어느 누구보다 최고권력자 주변에 많이 있었던 그는 권력의 맛을 아는 이다. 권력의 맛을 알기 때문에 항상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김종필씨의 정치곡예는 언제나 권력지향형이었다. 지금은 청와대 경비가 많이 완화됐지만 예전에는 무척 삼엄했다. 경무대시절에는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해 효자동 주민들의 불편이 막심했다. 경비가 비록 완화됐지만 청와대는 역시 민초들에게는 꿈의 궁전이다. 생전에 한번 가볼 기회가 없는 것이다. 이런 청와대를 자기집 드나들듯이 한 김종필씨가 DJP공조 부활설속에 곧 청와대를 방문하는 것으로 들린다. ‘정치환경은 변하고 정치는 현실이다’란 것이 정치인들의 편의적 논리다. DJP의 재회도 그같은 논리를 내세우는 것으로 안다. 김종필씨의 새로운 청와대행보에서 그는 또 무엇을 꿈꿀 것인지.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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