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인생, 길을 찾다] 입체조형 예술가 최정현

전시장에 들어서니 열받은 펭귄 가족이라는 작품이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펭귄이 열을 받았다? 재밌네 하며 들여다 보니 재료가 모두 소화기다. 눈을 살짝 돌려보니 이건 또 뭔가? 변기를 뚫는 도구, 일명 뻥뚫어를 지붕에 얹은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이게 다가 아니다. 숟가락과 포크를 구부려 합친 플라밍고, 팥알로 만든 개미떼, 키보드로 만든 체류탄 등 시선을 끄는 작품마다 재료란 것이 우리가 흔히 쓰다 버린 물건들이다. 일반 사람들에겐 하찮게만 보이는 고물로 이런 근사한 작품들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주인공은 바로 입체조형 예술가 최정현(52)이다. 지난 25년 동안 만화 반쪽이시리즈로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그가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재치, 풍자까지 곁들여 고물을 입체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작품 소재만큼이나 소탈한 첫인상을 가진 최정현을 지난달 18일 전시 뚝딱뚝딱 고물 자연사박물관이 열리고 있는 화성 동탄복합문화센터에서 만났다. ■ 고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다 무섭기도 하고 귀여워 보이기도 하는 열받은 펭귄 가족은 그가 내 집처럼 드나드는 고물상에서 소화기를 발견하는 순간 그래 이거다 라는 감탄사로부터 비롯됐다. 그 순간 지구 온난화로 이상 기후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세상에 뿔난 자연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한 것. 빨간 소화기는 화가 난 펭귄의 몸통으로, 뾰족한 쇳덩이로 이뤄진 입은 마치 자연을 할퀴는 사람들처럼 표현했다. 여기에 환경파괴를 멈추라는 의미를 전하기 위해 자동차 브레이크 패드로 만든 팔을 몸통에 붙여 완성했다. 반쪽이의 육아일기로 유명세 탄 만화가 펜 놓고 용접기 들자 25년 아이디어 봇물 생활속 고물에 사회적 메시지 담아 새생명 도로표지판 활용한 재활용전시관 여는 게 꿈 언뜻 보면 대충 만들었을 것 같은 그의 작품에는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전하는 외면적인 표현과 더불어 내면에는 철학적인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바로 최 작가의 3단계 법칙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그는 재료, 주인공, 제목으로 관람객을 이해시킨다. 야심작 로드킬을 보면 작가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다. 재료는 타이어, 주인공은 눌린 고양이로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로드킬이라는 제목을 통해 보는 이들의 상상과 작품의미가 오버랩 될 수 있도록 돕는다. 나무, 스테인리스스틸, 석고 등으로 만든 작품은 작가 의도를 알아차리기가 어렵죠.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마우스, 옷걸이로 만든 작품은 뭘 의미하는 지 금방 눈치를 챈답니다. 여기에 제목까지 붙여지면 관람객들은 제3단계 공격에 까르르하고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어요. 이런 그를 일각에서는 정크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즐거운 만화조각가(만조)라고 칭했다. 정크 아트는 여러 사물을 붙이고 붙여 덩치를 키우지만, 그가 만든 작품은 원초적인 재료와 철학이 연결된 입체식 만화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그는 단골 고물상 10여군데를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고물상이 많다는 화성 봉담에 작업실을 차린 것도 그 이유에서다. 특히 작업실 주변 고물상에선 쌓여진 고물들 각각에 깃들여진 사연을 쉽게 들을 수 있는 것. 고물의 사연과 최 작가의 생각이 일치했을 때, 고물은 비로소 제2의 인생을 찾게 된다. 여기저기 상처 난 재료들을 보면 우울해요. 근데 작품으로 완성하면 방금 생산한 새 물건들보다 오히려 좋죠. 재료에 난 상처가 인간에 의해 생겨났다기보다 고생하며 살아온 삶으로 느껴지거든요. 난 그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 뿐이에요. ■ 25년간의 아이디어, 입체로 터지다 1990년대 반쪽이의 육아일기로 유명세를 탔던 만화가가 왜 고물상을 돌며 재료를 수집하고, 용접기를 들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부인 변재란씨와 딸 최하예린씨가 오랜 시간 이들의 사생활이 일기를 통해 노출되면서 아빠, 이제 그만!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반쪽이 시리즈의 마침표 시기를 놓고 고심하던 중 딸과 함께 떠난 런던 여행에서 그는 자신이 평생 걸어갈 새로운 길을 찾게 됐다. 런던자연사박물관에서 만난 작품들이 그의 가슴을 설레게 한 것. 박물관에 들어선 순간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들을 보면서 이 정도 양이면 평생 달라붙을 만 하다고 느꼈죠. 대신 나는 남들과 다르게 작품의 소재를 고물로 바꾸고, 거기에 인간들의 사연을 풍자적으로 넣겠다고 결정했어요. 펜촉을 내려놓고 용접기를 잡자 그가 25년간 만화를 그려오면서 스스로 터득한 아이디어 발상법이 온몸에 자리 잡고 있다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여기에 그의 손재주까지 더해지면서 한 달 만에 400점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최 작가는 국내 순회 전시 도중 후배 만화가들이 전시장을 방문하면 좋은 아이디어를 설계해놓고 왜 다 갖다버리느냐. 입체로 남기면 영원할 텐데라는 말을 자주 했다. 보는 이가 판단했을 때 평면작품인 만화보다 입체작품의 효과가 크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다. 최 작가는 그림은 아이디어 설계일 뿐입니다. 만화는 한 번 보고 나면 그만인 일회성 작품에 불과해요. 반쪽이를 그리던 1988년 처음으로 수류탄을 이용해 짭새를 완성했는데 작품이 내뿜는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 100% 재활용 전시관 꿈꾼다 전시장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음악이 나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세제통이 눈에 띈다. 깨끗히 씻어주는 일을 하고 버려진 세제통을 말끔하게 씻어, 세상의 밝은 소리를 전하도록 최정현이 라디오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세제통 라디오라고 무시하면 안된다. 주파수 조절은 물론 볼륨까지 줄였다 키웠다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쉽게 사용하고 버리죠. 하지만 고물로 만든 작품들을 자세히 보면 내가 만든 게 하나도 없어요. 연출만 했을 뿐이에요. 나를 위해 재료를 만드는 전세계인들로부터 에너지가 나오죠. 그는 최근들어 100% 재활용 전시관을 구상 중이다. 절에서 기왓장에 소원을 써 불사를 하듯, 생명을 다한 도로표지판에 방문객들이 글을 쓴 뒤 그것들을 모아 돔 형식의 건물을 세우려는 것. 또 도로표지판이 빛 반사가 뛰어나다는 특징을 살려 건물 주위에 주차장을 만들어 차량에서 나오는 불빛을 이용해 건물 외부를 밝히고, 주변엔 고물 작품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체험활동장까지 설치하는 구체적 방안까지 생각해놨다. 최 작가는 화성에 100% 재활용 전시관을 세우기 위해 국내를 돌며 전시를 열고 있다며 사람들이 내게 준 고물들로 작품을 만들고, 그들과 환경까지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장혜준기자 wshj222@kyeonggi.com

[‘추억의장흥’ 길을찾다] 장흥 오라이 프로젝트

기차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계곡으로 산으로 향하는 청춘들을 실어 날랐다. 주말 저녁이면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나이트클럽을 방불케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기차가 끊기면서 오는 이도, 가는 이도 없는 폐허로 변했다. 잡초가 가득한 철길, 텅 빈채 녹슬어가는 역사, 양주의 장흥(長興)역이 그랬다. 1년이 걸렸다. 장흥역이 변하기 시작했다. 쓰레기로 가득찼던 폐가는 100여장의 LP판을 갖춘 카페와 부서진 가구를 리폼 받을 수 있는 공방,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으로 탈바꿈했다. 마을 주민들에게조차 버려졌던 장흥역이 예술의 옷을 입고, 그때 그 시절 추억과 낭만을 나눌 수 있는 사랑방이 됐다. 예술과 삶이 함께 만나는 곳, 그곳에 장흥역이 있다. ■ 삶 안으로 걸어 들어간 예술 지난달 20일 장흥역 앞 역전 다방에서 만난 오명은 일영 1리 이장은 이런 게 예술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렇게까지도 다가올 수 있는 거구나했죠. 예술이라는 게. 내 일상으로 예술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게 전혀 뜻밖이었습니다라는 말로 속마음을 나타냈다. 70~80년대 MT문화를 꽃 피웠던 장흥역 일대는 2004년 교외선 철도가 폐쇄되면서 8년 사이 슬럼가처럼 방치됐다. 특히 그 곳에 조각공원이나 아트밸리, 장흥아틀리에 등 문화예술특구를 구축해온 양주시의 입장에서 장흥역 주변은 눈엣가시였다. 지난해 10월 폐허가 된 장흥역 일대를 재생시키고자 예술가들이 들어오기 전까지의 상황이다. 이 때부터 예술가들이 주민들과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적 가치를 찾아내고 일구는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사업비는 경기문화재단이 댔고, 예술가 그룹은 수원미술전시관 수석큐레이터이자 커뮤니티 아트 기획자인 조두호씨가 이끄는 오래된 미래팀이 결합했다. 프로젝트 명은 장흥 오라이. 장흥이 모두 잘 될 것이라는 의미의 Alright와 장흥으로 오세요(오라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조두호 장흥오라이 기획팀장은 장흥오라이 프로젝트의 관건은 주민들의 기대와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읽어내고, 그 가치를 재생시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장흥역 살리자 예술가주민 의기투합 폐가에 쌓인 쓰레기 치우기부터 시작 역앞 매점은 공방다방은 찻집으로 단장 그때 그 시절 추억과 낭만 새록새록 ■ 추억은 예술을 타고 거창한 사업을, 대단한 예술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지난날 장흥역을 거점으로 삼고 살아갔던 장흥면 주민들에게 더 이상 과거가 아닌 오늘의 장흥역을 만들겠다는 게 목표였다. 시작은 8년간 시간이 멈춰 있던 역 앞 매점, 찻집, 전파상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는 일부터였다. 트럭 세대 분량의 어마어마한 쓰레기가 쏟아졌다. 이후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가들과 일영리 마을 주민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렇게 한 장면씩 되살린 기억은 종이에 재현되고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면서 전체적인 프로젝트의 윤곽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매점은 DIY(Do It Yourself) 수업과 목공 가구의 수리 및 리폼이 이루어질 두꺼비꽁(짜)방이 됐고 전파상은 장흥면 유일의 사진관인 장수사진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역전 다방은 옛 이름 그대로 다운휴게소라는 명패를 걸고 찻집이 됐다. 온전히 새것은 아니었다. 지난 40년의 흔적을 자연스럽게 남겼다. 이 모든 일의 주연은 주민들이었다. 목수 출신인 오명은 이장은 오랜만에 연장을 들었고, 공방 인테리어와 지붕공사를 도맡았다. 동네 어르신들은 카메라 앞에서 어린아이 같은 미소로 사진을 찍었다. ■ 이제부터가 시작 깨끗하게 정리된 것은 모두들 좋아하지만, 아직까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마을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잘 모른다는 생각에 지난 6월 프로젝트의 제막식과 결과보고전시회를 열었다. 장흥 오라이 프로젝트가 일단락 된 것이다. 예술가는 떠났고 주민들과 3개의 커뮤니티 공간만 남겨졌다. 그렇다고 주민들의 마음도 떠난 건 아니었다. 곧바로 오명은 이장을 중심으로 장흥 오라이 추진단이 구성됐고, 3개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운영 계획도 세워졌다. 마을 축제도 고민중이다. 장흥 오라이 팀도 다시 거들겠다고 나섰다. 올 하반기에는 마을 주민들 스스로 공간을 운영해 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조두호 기획팀장은 취지 자체가 소통의 예술에 있는 만큼 앞으로 이 공간을 통해 이곳 주민들이 스스로 가치를 만들고 소통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설마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나. 다 쓰러져가는 역이 이렇게 변할지 누가 알았겠어. 마을 제일의 보금자리가 생겼다고 흐뭇하게 미소 짓는 백발 노인의 눈동자에 옛 장흥역의 영광이 스쳐지났다. 장흥(長興)이라는 지명처럼 이곳이 길게 흥할 곳일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전방하의 냠냠독서] 작가의 뜨거운 열정이 담긴 책 두권

어느날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잘 풀리지는 않지만 계속 풀고 싶었고, 풀릴 것 같은 생각에 골몰하며 문제풀이에 집중했다. 그 때 문제를 다 풀고 일어나니 서너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려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무언가 열중하다가 시간이 지나간 기억이 있다면, 그 일은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일 것이다. 아니라면 꼭 해결하고 싶은, 마치고 싶은 강한 열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가렛 미첼(1900~1949)여사와 최명희(1947~1998)작가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이 두 분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혼불이라는 장편을 한 편씩 남기고, 짧고 굵은 생을 살다 가셨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북전쟁과 전쟁 후의 재건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그녀는 1925년 결혼 후부터 1936년까지 10년이 넘도록 이 작품에 전념했다. 과연 그녀가 이 원고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끝내 완성시킨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최명희의 혼불도 1980년 등단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혼불(제1부)이 당선돼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5부를 연재했으며, 1996년 12월 제15부를 전10권으로 묶어 완간하였다. 이 또한 역사소설로 1930~40년대 전라북도를 배경으로 당시의 양반사회와 평민과 천민의 삶이 관혼상제를 비롯, 풍속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녀들은 왜 이 한편을 완성하기까지 펜을 놓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 한편에 얼마나 많은 혼신의 힘을 실었기에 죽음에 이르렀을까. 팔십까지 보장된 삶과 마흔의 명예로운 죽음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잠 못 드는 이 여름, 마가렛 미첼여사와 최명희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대화해 보자. 그리고 올 여름만큼이나 뜨거운 열정을 닮아보자. 문의(031)257-5067 전방하 동화작가독서특훈하나로 저자

[비상하는 에듀 클래스]6.예술문화단 놀패 ‘몸 열고 마음 열고’

동네를 아무리 둘러봐도 그 흔한 학원 하나 없다. 게임을 할 수 있는 PC방은 물론 친구들과 함께 주전부리 할 수 있는 분식점도 없다. 연천군 청산면 풍경이다. 그럼 아이들은 뭘하며 놀까. 학교가 끝난 뒤, 딱히 할 것이 없는 이 곳 학생들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있거나, 간혹 말썽을 피워 문제아로 낙인이 찍히곤 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즐거운 일이 생겼다. 예술문화단 놀패가 전통유희를 이용해 연극을 가르치는 몸 열고 마음 열고 프로그램을 갖고 청산면을 찾아온 것. 남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조차 하기 힘들어했던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게 된 기적, 어떻게 일어났을까? ■전래놀이로 하나되기 교회 예배당이 아이들의 놀이터다. 마을 주민들이 아이들을 위해 예배당을 강당으로 쓰도록 했던 것.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수업시작 시간인 오후 4시30분, 오지나 강사(여36)가 우렁찬 목소리로 얘들아!를 외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강사 주위로 아이들이 몰려든다. 남자팀 대 여자팀으로 나눠 단체 사방치기로 수업이 시작됐다. 아이들은 늘 그랬던것처럼 줄을 서고 순서를 정한다. 놀이가 시작되자 한 발로 7칸을 뛰고 마지막에 두발로 멋지게 착지한다. 특히 처음에 뛴 사람은 뒤를 이을 친구들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선에 가까운 곳에 착지해야 해서 부담감이 백배다. 게임 시작 전 금을 밟지 않기 위한 나름의 전략을 세운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선두로 나서 유독 사방치기를 잘했던 나지은양(13)은 왼쪽 발가락 뼈가 휘어서 걱정했는데 한발 뛰기는 오른쪽으로 해서 다행이라며 여자팀 인원이 적어도 우리가 더 유리하다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점잖은 여자팀과 달리 남자팀은 상대방을 방해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주위를 맴돈다. 여자팀에서는 이런 행동에 화를 내다가도 그만 하고 똑바로 하자라며 의젓한 모습을 보인다. 선생님도 한 수 거든다. 올림픽 기간인데 페어플레이 하자라고 말하자 남자팀은 멋쩍어 하면서도 정돈된 모습으로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격렬한 남자팀과 여자팀의 대결은 결국 무승부라는 아쉬운 결과로 끝이 났지만 두 팀 모두 시종일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16명의 초등학생들은 푸른꿈 지역아동센터 소속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 곳에서 몸 열고 마음 열고 수업을 받는다. 오 강사는 초등학생이라 산만하지만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을 많이 배려한다며 수업의 시작을 사방치기 등 협동심이 필요한 전래놀이로 시작해 함께 땀을 흘릴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혼자가 아닌 함께 학생들은 모여라! 오 강사의 한 마디에 쉬고 있던 아이들은 둥그렇게 앉아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색연필과 종이 한 장씩이 앞에 놓이고 여러명이 단어로 시 짓기가 이어졌다. 한 단어를 놓고 각각 한 줄의 문장을 만든 뒤 3~4명의 발표한 문장을 이어 한 편의 시를 짓는 놀이다. 첫번째 주제는 피자다. 맛있다, 먹고 싶다 등의 평범한 대답이 이어지던 중 김민혁군(13)이 피자 8조각, 먹기엔 너무 부족하다라는 인상깊은 한 마디로 피자라는 시 마지막 구절을 완성시켰다. 이어 콜라, 신발이라는 시와 함께 오지나 선생님이라는 재미있는 주제가 결정됐다. 짖궂은 남자아이들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흰머리, 결혼 등 금지어를 거침없이 이야기하며 멋진 시를 만들어 냈고, 아직 한글에 서툰 한지삼군(8)과 나도현군(8)은 형, 누나들의 도움을 받아 종이에 자신의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권근영(여23) 보조강사는 가장 어린 지삼이와 도현이는 아직 한글 쓰는 것이 서투르다며 글을 쓰는 시간이 되면 항상 주위에서 지삼이와 도현이가 한글을 쓸 수 있게 가르쳐준다고 전했다. 오늘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그림으로 만드는 우리이야기다. 그림카드 5개를 놓고 남자팀 대 여자팀으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꽃도 있고, 오로라도 있고, 여자도 있고 아이들은 어떤 상상의 세계를 보여줄까? 남자 아이들은 바닥에 누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여자 아이들은 토론을 여러 번 한 뒤 전지 위에 그림카드를 붙이고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나도현군과 나지은양이 각각 팀의 발표자로 나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말에 있을 연극 공연을 위해 이야기를 만드는 법을 연습하는 것은 이들에게 필수사항이다. 막장 드라마다~, 무슨 공주가 저래? 등의 반응도 잠깐, 오 강사가 그림카드를 들고 목련의 사연이라는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자 금세 눈이 똘망똘망해진다. 문미정 대표(여40)는 요즘 집단놀이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아이들이 평소 노는 걸 보니 서로 봐주는 게 없다며 함께 하는 놀이, 돕는 놀이를 통해 때론 즐기고, 때론 실패를 인정할 줄 아는 사회성을 심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화가 시작됐다 2년 전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 아이들은 발표는 물론 눈도 잘 마추지지 않는 소심함을 보였었다. 연천이 군 부대 지역인데다 농업이 주가 되는 지역적 특색 때문에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등 소외계층의 아이들이 많아 자존감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예술문화단 놀패는 이런 아이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져 주기 위해 경기문화재단에서 공모한 2012 지역 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를 통해 예산을 받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몸 열고 마음 열고를 통해 개개인의 마음 치유는 물론 같은 마을, 같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왕따 문제까지 해결했다. 처음엔 같이 놀아주지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던 아이들이 지금은 서로 도와주고, 화가 나도 금방 화해하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아이들이 직접 각색한 연극 연천골 백설공주를 공연한 뒤 사이가 더욱 돈독해졌다. 조무선 푸른꿈 지역아동센터장은 군인 자녀들은 하교를 하면 시내 학원으로 향하지만 이 곳 아이들은 대부분 그럴만한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연극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의 성품, 인성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문 대표는 예전엔 자존감이 부족해 어떤 반응도 기대할 수 없었는데 1년이 지나니 아이들이 애정표현 등 모든 것을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다며 연극 공연이 목적이 아닌 아이들의 긍정적인 변화와 자아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혜준기자 wshj222@kyeonggi.com

[그림 읽어주는 남자]정정엽의 ‘팥’

18년만의 불볕더위란다. 1994년의 더위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하루하루가 푹푹찌는 것은 알겠다. 더위에 맞서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한낮 더위는 피하되 그늘이나 물을 즐겨서 여름을 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더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이 벌써 입추이지 않은가! 더위를 상상하면 항상 불이 떠오른다. 그 불은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불이다. 조용히 자근자근 타는 불도 있고 숯불처럼 열기만을 내뿜는 불도 있다. 그러나 여름 더위는 그런 불이 아니다. 초불과 막불 사이의 중불처럼 하늘로 치솟는 불이다. 그래서 불볕더위라는 말은 여름 더위를 가장 뜨겁게 표현할 때 자주 언급된다. 어린 아이들은 태양을 붉고 둥글게 표현한다. 아이들의 태양도 이글거리는 불이다. 그 불은 행동하는 불이요 살아있는 불이며, 우주만물의 생명을 키우는 살림의 불이다. 불이 없이는 집도 사람도 산도 나무도 성립되지 않는다. 정정엽의 붉은 팥을 상상할 때 나는 그런 불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정정엽은 오랫동안 팥을 그려왔다. 초기에는 아궁이가 있는 부엌이나 어딘지 모른 벽, 골목 등 어떤 상황을 암시하는 곳에 붉은 팥을 그려 넣다가 점점 팥 그 자체를 그리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화면이 하나의 모판이라면 팥은 그 판에서 펼쳐지는 카오스모스(혼돈질서)의 불이었다. 셀 수 없을 만큼의 무한의 중심이 뜨겁게 확장되는 팥이었다가 고요히 침잠에 든 팥으로 돌변하고, 뚝뚝 떨어지는 피방울 같은 혈류였다가 한 떨기 불꽃처럼 육화를 이룬 신의 말씀 같기도 했다. 여름의 불볕더위 없이 숲의 생장이 있을 수 없고 불의 태양 없이 아이들의 그림이 완성될 수 없듯이 정정엽의 팥은 육화된 말씀 없이 이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팥은 어머니이기도 하고 그 자신이기도 하고 그 어머니와 자신의 수다이기도 하고 그 수다의 오래된 서사, 즉 나로부터의 여성사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토록 붉은 팥의 무한(無限)을 한 겨울에 그린다. 긴 겨울밤을 나기 위해 선택한 가장 적절한 창작방법론은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화면을 장악해 나가는 집중력이었다. 입추가 시작되는 오늘, 이 팥 그림에서 삶의 실천을 고민해 볼 일이다.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휴가로 지친 내 피부, 과일팩으로 관리하자

피부에 적신호가 켜지는 여름이다. 바다로, 계곡으로 즐거운 휴가를 보냈지만 따가운 태양에 기미는 늘어나고 피부 탄력은 떨어져 속상하다. 수분과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은 강렬한 태양에 손상된 피부에 제격이다. 새콤달콤 맛으로 입을 즐겁게 해주는 과일, 이번엔 먹지 말고 천연팩으로 만들어 피부에 생기를 불어넣어 보자. ■거칠고 건조할 땐 키위팩 자외선이 노출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기미, 주근깨 등 잡티는 색깔이 짙해지면서 피할 수 없는 피부의 적이 된다. 피부 미백 관리에 제격인 키위는 비타민C, E가 풍부해 피부를 뽀얗게 만들어 줄뿐만 아니라 당분과 미네랄 성분이 함유돼있어 탄력이 증진된다. 또 피부 속 수분까지 높여줘 거칠고 건조한 피부에 좋다. 다만 키위 씨가 피부에 자극적일 수 있으므로 해초가루나 밀가루를 섞어줘야 한다. ■새까매진 피부에는 수박팩 달콤한 빨간 부위는 맛있게 먹은 뒤 하얀 껍질 부분으로 피부관리를 하면 된다. 수분을 94% 함유한 수박은 자외선에 노출돼 화끈거리는 피부를 진정시켜준다. 비타민C 함유량도 높아 미백효과는 물론 모공 수축 효과까지 볼 수 있다. 껍질을 갈아 꿀, 밀가루와 섞어 바르거나 하얀 껍질을 얇게 잘라 얼굴에 바로 붙여도 된다. ■기미, 주근깨 퇴치 포도팩 포도는 이름만큼이나 포도당이 풍부해 피부를 촉촉하게 해준다. 비타민도 풍부해 기미와 주근깨 발생을 막아주며, 폴리페놀 성분은 피부의 노화작용과 주름을 방지해준다. 특히 포도는 피로회복과 원활한 신진대사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에 얼굴에 바르는 만큼 먹는 것도 중요하다. ■여드름, 블랙헤드엔 토마토팩 빨간 토마토는 라이콘펜으로 이뤄져 자외선과 스트레스로부터 지친 피부의 저항력을 높여준다. 피부의 신진대사 촉진 역할과 항암 효과까지 갖고 있다. 토마토는 채소지만 과일 못지 않게 많은 양의 비타민을 함유해 피지를 조절하는 효과가 크다. 피지가 많은 지성 피부나 여드름이 자주 생기는 피부, 블랙 헤드 피부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토마토가 일등공신이다. 토마토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뒤 갈아서 밀가루, 요구루트를 혼합해 피지 분비가 심한 T존을 중심으로 골고루 발라주면 된다. 장혜준기자 wshj222@kyeonggi.com

“휴가로 방전된 생체리듬 충전하세요”

일주일 가량 되는 휴가 기간 밤새워 놀거나 해외여행 등으로 시차적응이 되지 않아 생체리듬이 깨지기 쉽다. 직장들이 흔히 겪는 무기력증, 수면장애, 장염 증상 등의 증상을 이겨내고 일상 생활로 복귀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무기력해지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책 한 권의 여유를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직설적인 충고가 담긴 책들보다는 읽을수록 마음이 따뜻하고 편해지는 책들이 적절하다. 휴가를 다녀온 이후 잠자리에서 뒤척거린다면 생체리듬이 깨졌기 때문이다. 휴가 후유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잠들기 전 따뜻한 우유를 마셔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면 된다. 또 주먹으로 발바닥 뒤꿈치 한가운데 있는 경혈인 실면혈을 두드리는 방법도 있다. 가볍게 10회 이상씩 양발을 두드려주면 된다. 설사나 구토 증상이 나타나는 급성장염에 걸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급성장염은 물이 바뀌면서 바이러스성 장염, 세균성 등 여러 가지 증상으로 나타난다. 휴가 동안에는 세균에 감염된 음식물을 섭취해 발생하는 세균성 장염에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땐 설사가 멎을 때까지 우유 등 유제품을 피하고 이온음료로 수분을 공급해야 한다. 증상이 계속 이어질 경우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두자. 자외선에 푸석푸석해진 머릿결도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관리를 하지 않으면 두피 노화를 촉진해 탈모로 이어질 위험까지 있다. 샴푸와 트리트먼트를 먼저 한 뒤 수건을 물에 적셔 전자레인지에 돌려 만든 스팀타월을 머리에 감싸주면 좋다. 장혜준기자 wshj222@kyeonggi.com

[법률플러스]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

가끔 상담을 하다보면, 제3자의 인격가치, 도덕적사회적 행위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 수 있는 사실을 타인에게 말할 경우에는 사실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우리 형법 제307조는 명예훼손죄에 대해 정하면서 ①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에는 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을, ② 공연히 허위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이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적시한 사실이 허위사실일 경우 사실을 적시한 경우보다 가중해 처벌할 뿐이다. 즉 사실일 경우라도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제3자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할 경우에는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적시의 경우에는 허위사실적시와 달리, 그러한 사실을 적시할 경우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국가, 사회 또는 다수인의 일반이익)을 위한 것일 경우에는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형법 제310조). 예를 들어, 노동조합 조합장이 전임 조합장의 업무처리 내용 중 근거자료가 불명확한 부분에 대해 대자보를 작성하여 부착한 행위(대법원 88도899)의 경우, 그 행위자의 주된 목적이 전임 조합장을 비방할 목적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이익(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 전임 조합장이 하지도 않은 허위사실을 대자보에 써서 다수가 볼 수 있게 한 경우에는,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였는지 여부를 물을 필요도 없이,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명예훼손죄에 있어서 사실적시는 특정한 1인에게 하였더라도,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그 말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도 성립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 1인에게 말하였더라도, 이를 들은 사람이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없다면,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피해자와 친한 친척 1인에게 피해자의 불륜사실을 말한 경우에는 피해자 친척이 타인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대법원 81도1023). 이러한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로 고소 후 고소인인 피해자가 피고소인(명예훼손을 한 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수사기관에 표시한 경우에는 피고소인을 처벌할 수 없다(형법 제312조 제2항). 송윤정 법무법인 마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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