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치솟는 물가•환율•나랏빚, 정치권 협치로 해결해야

정부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2023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의하면 나랏빚이 110조원을 넘어서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돌파했다. 또 나라 살림살이를 가늠할 수 있는 관리재정수지는 87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물론 적자 규모가 전년 대비 30조원이 감소하며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이 5.4%에서 3.9%로 내렸다고 하지만, 그러나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정부가 약속한 재정준칙 상한 3%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1월 2.8%를 기록했지만 이후 두 달 연속 3.1%를 나타냈다. 시중의 물가는 상승 곡선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유가까지 들먹이고 있다. 이스라엘 대 이란 간 전쟁 위기감 고조로 인해 국제유가는 배럴당 90달러 수준으로 치솟은 데 이어 100달러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따라서 단기간 물가가 낮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달러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은 1년5개월 만에 1천375원을 넘어섰다. 역외시장에서는 1천86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런 원화 가치의 하락은 러시아의 루블화, 브라질의 헤알화보다도 높다. 일부에서는 금주에 환율은 1천400원대를 돌파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7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였던 2008년,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되며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본격화에 된 2022년 이후 처음이다. 물가·환율·나랏빚만이 아니다. 모든 경제지표가 어둡다. 고용 부문에서도 지난달 취업자 수 증가폭이 3년 만에 최소를 기록했다. 증권시장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2일 증시도 환율이 치솟으면서 전 거래일 대비 0.93% 떨어졌다.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이탈이 눈에 띄었다. 기관은 12일에만 6천200억원이 넘는 주식을 순매도했다. 우선 정부는 총선 결과에 휘둘리지 말고 중심을 잡고 민생경제 살리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정치권이 총선을 의식해 수많은 선심성 공약을 쏟아낸 것에 대해 공약의 경제성과 실현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밝힌 정책도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 준비해야 한다. 대통령의 약속이라도 예외를 둬서는 안 된다. 4·10 총선 때 여야는 민생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총선 결과는 국민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정치권은 총선 때 약속한 민생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새롭게 구성되는 22대 국회는 여야가 합심해 우선 경제 살리기부터 해야 한다.

[사설] 초교 옆 성인페스티벌, 시장의 반대가 옳다

성인용품업체 체험부스를 운영한다. 일본 성인비디오(AV) 배우의 팬 사인회도 진행한다. 란제리 패션쇼도 예정돼 있다. 더 구체적인 행사 내용을 짐작할 수단도 많다. 1년 전 개최지에 문의하는 방법도 있다. 인터넷 등에 소개된 국내외 자료도 있다. 민망한 내용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당초 공연 허가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 행사를 수원시가 반대했고, 대관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파주로 옮겨 개최하려했다. 파주에서도 대관이 취소됐다. 주최 측이 수원시 등을 상대로 한 소송을 언론에 예고했다. 수원특례시와 시민단체에 소송을 걸겠다고 밝혔다. 직권 남용의 책임을 묻겠다고 설명했다. 문제 삼는 것은 수원시의 입장 변경이다. “문제가 없다고 하다가 갑자기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부당한 직권 남용”이라고 밝히고 있다. 취소된 행사를 20, 21일 강행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새로운 개최 장소를 12일 밝히겠다고 했다. 해당 지역에는 파장이 일고 있고, 그만큼 행사는 유명해졌다. 수원 행사에 가장 큰 문제는 행사장 위치였다. 인접한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학부모 단체와 여성단체가 반발했다. 수원교육지원청도 취소와 수사를 요구했다. 수원시가 이런 요구에 대책을 마련했다. 교육환경 보호구역에서의 금지행위로 해석했다. ‘은밀한 부분 노출 등 성적 행위가 이뤄지거나 유사한 행위가 이뤄질 우려가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에 이 행사가 해당한다고 봤다. 수원시의 이런 판단을 전시관 측이 수용한 것이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유사시 행정 대집행이라는 특단의 대책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은 시민의 정당한 요구에 응할 책임이 있다. 법과 정서 모든 면에서 그렇다. 학부모 단체와 여성 단체 등에서도 시 조치에 환영의 뜻을 표했다. 이 시장 판단을 지지했다. 그런데 실무 공무원들 판단은 다른 것 같다. 소송 위협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시장이) 너무 여론의 입장만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흘러 나오고 있다. 사실 이 문제의 핵심은 수원시의 입장 변경이다. 주최 측이 ‘처음에는 문제 없다고 했다’고 주장한다. 법조계에서도 이 점을 주목한다. 최초의 행사 신청 내용이 진실하고 구체적이었느냐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최초 검토 단계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행사 내용, 초등학교 위치, 학부모 정서 등이 충돌할 행사였다. 그런데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인가. 쟁송 여부가 문제가 아니다. 시 내부에서 다시 밝히고 갈 부분이다. 초등학교와 50m 떨어진 전시관이다. 낮 뜨거운 성인 페스티벌이 열린다. 천 명 넘는 성인들이 찾아들 행사다. 시민·교육청 반발이 잘못인가. 이를 반영한 시장 결단이 틀렸나.

[사설] 총선 선심성 공약에 수백조, 옥석 엄격히 가려내야

4·10 총선에서 각 정당이 쏟아낸 공약 중 상당수가 퍼주기식이다. 누가 더 많이 퍼주는가 경쟁이라도 하듯 쏟아냈다. 전 국민에게 돈을 뿌리고, 세금을 깎아주고, 여기저기 개발하겠다는 공약이 수천 건이다. 나라 곳간은 비어 가는데 선심성 공약에 수백조원이 들어갈 판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선거 과정에서 일부 생활필수품 부가가치세 인하(10%→5%)를 제안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전 국민 대상 1인당 25만원, 가구당 평균 100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제안했다. 지난해 87조원의 재정 적자가 발생했는데도 여야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마구 질러댔다. 올해도 세수 펑크가 예상돼 국가 살림살이에 허리띠를 조여야 할 판인데 무책임하다. 개발 공약이 엄청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철도와 도로 지하화 공약을 내걸었다. 국민의힘은 한강 남북의 자동차전용도로 모두 지하화를 약속했고, 민주당은 서울 올림픽대로 지하화를 공약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6개 정당의 개발공약은 모두 2천239건이다. 소요 예산은 최소 554조원에 이른다. 이것도 재원을 밝힌 357건(16%)에 한해서다. 나머지 1천882건을 포함하면 액수를 가늠하기 어렵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24차례 민생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내세운 정책은 후속 과제만 250여개에 달한다. 야당은 그 재원이 1천조원 수준이라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재원 마련 등 과연 실현 가능한 것들인지 의구심이 든다. 건전 재정을 지향해야 할 대통령실과 정부마저 퍼주기 경쟁에 뛰어든 게 황당하다. 총선이 끝났다. 나라 살림이 거덜나지 않도록 공약의 옥석을 엄격히 가릴 필요가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확대간부회의에서 “기재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총선 공약을 한정된 재원에서 소화하기 위해선 기재부가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의미다. 선거가 끝난 만큼 재원과 실현가능성을 냉철히 점검해 공약을 걸려내야 한다. 기재부는 정치권에 휘둘리면 안된다. 무분별한 감세·개발 정책부터 걸러낼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에 닥친 숙제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려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중동 불안으로 유가가 치솟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선거 이후 전기료 등 공공요금 인상도 예상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도 심상치 않다. 각종 경제 현안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여야가 쏟아낸 공약 중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취해야 한다. 재정건전성을 고려한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

[사설] 총선전쟁 끝내고, 민생•경제 살피는 데 총력 기울여야

제22대 의회 권력의 향배를 가르는 4·10 총선거가 끝났다. 경기도 3천263개소를 비롯해 전국 1만4천259곳 투표소에서 일제히 투표가 실시됐다. 정책·공약 경쟁은 안 보이고 막말·선동·헐뜯기 등이 난무해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선거였지만, 유권자들은 주권을 포기하지 않고 투표에 참여했다. 경기도 66.7%, 인천 65.3% 등 전국의 투표율은 67.0%를 기록했다. 유권자의 투표 참여가 정치 변화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모두 신성한 한 표였다. 4·10 총선은 좋은 선거는 아니었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국민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줬다. 역대급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막말 대잔치의 혐오 선거였다. 많은 국민의 생각이 그랬다. 이번 총선은 정책도, 감동도, 인물도 없었다. 서로 상대를 심판한다는 프레임 공방만 오갔다. 국민의힘은 ‘거대 야당 심판’을 강조하며 개헌과 탄핵 단독 추진이 가능한 “범야권 200석을 막아달라”고 읍소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권 심판’을 강조하며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와 여당에 경종을 울려달라”고 목청을 높였다. 결과는 야당이 압승했다. 안타깝게도 선거 이후 국가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비전과 방향성을 읽을 수 없었다. 국민들이 원하는 건, 양극화 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하는 것인데 쉽지 않아 보인다. 21대 국회는 거대 양당의 진영논리와 팬덤 정치에 대립과 반목으로 치달으며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줬다. 지금 분위기로는 22대 국회에서 양당 정치가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양당제 극복을 명분으로 내걸고 등장한 제3지대 신당은 존재 의미가 별로 없다. 그래서 선거 이후가 더 걱정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 정치의 근본적 변화와 쇄신이 절실하다. 4년간 나라와 지역을 위해 뛰어줄 일꾼들이 양극화 정치에 매몰돼선 안 된다. 그들이 바라보고 가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이다. 지금처럼 헐뜯고 증오하는 행태로는 정치도, 대한민국도 바꾸지 못한다. 정치가 삼류로 전락하면 더 깊은 정치 혐오를 조장하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의 선택은 끝났고, 이제 여야 모두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국민들의 바람은 여야가 분열·갈등·반목을 접고 통합해 민생을 살피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대내외적으로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나라 발전과 성장을 위한 각종 개혁을 이뤄내야 하고, 고금리·고물가 속에 심각한 경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인구 문제, 청년 실업, 기후위기 대응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젠 국민만 바라보고 민생, 경제에 올인하길 바란다.

[사설] ‘F1 그랑프리’ 유치 시동... 인천 잠재력 꽃피울 기회다

인천시가 ‘F1 그랑프리’ 대회 유치에 나섰다.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꼽힌다. 경기장마다 수십만명이 운집, 한 해 관중수가 380만여명에 이른다. 전 세계 150개국에 걸친 TV 중계 시청자도 연간 23억명 수준이다. 가장 광고 효과가 큰 상업적 스포츠 이벤트이기도 하다. 개최 도시의 경제적·일자리 창출 효과도 엄청나다. 스폰서들로부터 막대한 투자를 유치, 개최 도시엔 수억달러의 경기장 건설비가 할당된다. 지난해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F1 그랑프리에는 32만여명이 몰렸다. 경제적 효과도 최소 1조7천505억원에 이르렀다. 엄격한 대회 규정도 흥미롭다. 4개 바퀴로만 달릴 것, 배기량은 1천600㏄ 이하, 운전자와 차량 무게 합은 640㎏ 이하 등이다. 4개 바퀴가 일직선이어서는 안 되고 휘발유만 써야 한다 등도 있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지난 주말 일본의 F1 그랑프리 경기장을 전격 방문했다. 미에현의 ‘2024 F1 일본 그랑프리 스즈카 서킷’ 경기장이다. 여기서 F1 최고 책임자를 만나 F1 그랑프리 인천 개최 의향서를 전달했다. 이날 유 시장이 만난 인사는 포뮬러 원 그룹의 스테파노 도미니칼리 최고경영자다. 유 시장은 이 자리에서 인천이 F1 그랑프리가 열릴 만한 도시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 세계로 통하는 공항과 항만에다 복합카지노리조트들까지 갖춰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 개최에 적합하다고 했다. 12개 특급호텔과 재외동포청, 15개에 이르는 국제기구 등의 인프라도 설명했다. 그러면서 F1 그랑프리의 인천 개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도미니칼리 최고경영자의 반응도 좋았다고 한다. 일본 F1 그랑프리를 직접 찾아 대회 유치 의향을 표명해준 데 대해 감사를 표했다. 이어 이른 시일 안에 인천을 방문해 후속 협의를 진행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유 시장은 이날 스즈카 경기장의 서킷과 부대시설, 주변 환경 등도 세심하게 둘러봤다. 인천시는 오는 2026년이나 2027년께 인천 F1 그랑프리 첫 대회를 열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버금가는 F1 그랑프리다. 인천시의 도전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해 보인다. 지금 전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시하며 관심의 열기를 높여가고 있다. 케이팝 등 문화 한류에만 그치지 않는다. 첨단산업이나 라이프스타일까지도 그들 관심의 대상이다. F1 개최 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간 쌓아온 인천의 도시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는 인천 F1 그랑프리다.

[사설] 의료계 단일화, 합리적 증원안 마련 정부와 대화해야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 재조정 가능성을 밝혔다. 2천명 증원 축소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며 의료계를 향해 유화 제스처를 보였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대 증원 규모 재조정 가능성과 관련해 “(의료계가) 의견을 모아서 (안을) 가져온다면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논의가 가능하다”는 유연한 입장을 밝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갈등 해소를 위해 진정성을 가지고 의료계와 대화하고 설득하겠다”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대안을 제시한다면 정부는 열린 자세로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숫자에 매몰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어떤 식으로든 대안이 제시되면 그것을 갖고 대화하고, 그 안에서 정부가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니 다행이다. 극한 대치 국면에 변화의 기류가 감도는 분위기다. 정부와 의사들 사이의 대화 가능성은 커지고 있는데, 대한의사협회 내부에서는 대화론과 강경책을 두고 갈등이 여전하다. 의료계가 내분 조짐 속에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의료 파행이 길어지면서 환자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현재 의협을 이끌고 있는 비상대책위원회와 다음달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차기 회장 사이의 갈등이 크다. 여러 목소리를 내던 의료계가 대화 창구를 단일화해야 정부와 협상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 의협 비대위는 총선 이후 의협과 의대 교수, 전공의, 학생들과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예고했다. 의료계 단체들이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한목소리를 모아간다면 의정 대화가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의료계는 내부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대표성 있는 목소리로 대화의 장에 나와야 한다. 더 이상의 의료 파행은 안 된다. 어렵게 의정 간 대화의 불씨가 지펴졌다. 의료계 내부의 갈등으로 불씨를 꺼뜨려선 안 된다. 의대 증원 필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가 크다. 의료계는 더 이상 증원을 반대할 게 아니라 내부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증원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도 ‘과학적 근거’ 운운하며 팔장만 끼고 기다릴 게 아니라 의료계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의대 교육 인프라가 부족하다’, ‘의료 공공성 강화 방안이 부족하다’는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지적을 간과해선 안 된다. 왜곡된 의료수가, 열악한 전공의 처우, 붕괴 직전인 필수·지역 의료 등의 과제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국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의료계가 정부안보다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는 것이다. 이제 의료계가 성의를 보여야 한다. 강경론과 대화론이 맞서는 내분으로 단일안을 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사설] 파주 고엽제 보상, 경기일보 보도 결실 맺었다

60, 70년대 뿌려졌던 고엽제다. 그 피해가 파주 일부 지역으로 특정된다. 주민 다수가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국가가, 파주지역에, 질병으로 피해를 안긴 사건이다. 고엽제 군인 피해자 등에 대한 국가 배상은 이뤄졌다. 그런데 파주 민간인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반백년이 지나 뒤늦은 보상이 이뤄진다. 지급 주체는 국가가 아닌 지자체다. 내용도 보상이 아니라 피해 위로 수당이다. 부족하고 만시지탄인 점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의미는 충분하다. 위로 수당 지급은 이달부터 파주시에서 시작됐다. 피해 주민 1인당 10만원에서 30만원 상당이다. 수당 수급을 위한 몇 가지 조건이 있다. 고엽제 후유증 질환이 있어야 한다. 의료 기관의 진단서 등 질병 기록이 필요하다. 1967년 10월9일부터 1972년 1월31일 사이에 남방한계선 인근에서 거주한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지급의 근거는 ‘고엽제 후유의증 등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지원 조례’다. 지난 2023년 9월 파주시가 전국 최초로 제정 공포했다. 김경일 파주시장이 의미를 설명했다. “남방한계선 인근에서의 고엽제 살포는 이미 인정된 사실이나 정부의 피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주민들의 오랜 아픔을 위로하고자 전국 최초로 위로 수당 지급을 추진했다. 국가안보를 위해 희생한 지역주민에게 실질적인 지원시책을 마련해 주민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게 됐다.” 앞서 김 시장은 대성동 마을 주민에 대한 고엽제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고엽제 피해 실태 조사에 나서는 등의 역할을 해왔다. 이번 결정에는 경기일보의 작지만 지속적인 관심이 있었다. 피해 주민의 목소리를 처음 세상에 전했다. 국가 배상에서 제외된 민간 피해자들의 억울함이었다. 당시 증언을 토대로 민간지역에 고엽제 살포 실상도 고증했다. 주민들의 피해가 계측됐고 보상 목소리가 커졌다. 주민 단체와 고엽제 피해 전우회의 목소리도 전했다. 조례 제정 과정에서는 시의회와 함께 힘을 보탰다. 우리의 작은 시도에 힘을 보태준 시, 시의회, 주민의 역할이 있어 지금에 왔다. 과제는 남아 있다. 차제에 국가의 책임이 결론지어져야 할 것이다. 고엽제 살포는 국가안보를 위한 행위다. 국가안보의 주체는 국가다. 그 피해를 주민이 입었다. 피해자가 군인이냐 민간인이냐는 정당한 구분이 될 수 없다. 다시 한 번 정부 차원의 보상을 촉구한다.

[사설] 윤석열•이재명은 오로지 분노 대상일 뿐인가

과거에 익숙하던 선거 사진이 있다. 집권당의 경우 대통령과의 사진을 자랑한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이 특히 그랬다. 각 선거 캠프 외벽까지 대통령 사진으로 덮었다. 야당의 경우도 당 대표와의 사진은 주요 소재였다. 집권당의 대통령보다는 덜했지만 공보물 곳곳에 야당 대표를 등장시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을 사용한 여당 후보가 많지 않다. 이재명 대표 사진도 야당 후보 공보물에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경기일보가 도내 60명 후보의 공보물을 살펴봤다. 국민의힘 후보 가운데 42명이 윤 대통령 사진을 사용하지 않았다. 주로 본인의 사진과 공약 관련 자료 등을 게재했다. 김동연 도지사,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의 사진이 등장하지만 윤 대통령 모습은 없다. 민주당도 이 대표 사진을 사용하지 않은 후보가 30명이다. 대표적인 친이계로 분류되는 후보들도 공보물에 이 대표 사진을 쓰지 않았다. 역시 자신의 공약과 관련된 사진, 그래픽 등으로 채웠다. 그렇다고 중앙 정치권 인사를 모두 배척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국민의힘 후보 공보물에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많이 등장한다. 민주당 후보 중에는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사진을 게재한 후보가 꽤 된다. 친노 또는 친문 성향의 의원들이 만든 추억 살리기다. 민주당 후보 가운데는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 사진을 사용한 경우도 있다. 김 여사에 대한 거부감으로 표심을 자극하겠다는 의도다. 그 공보물에서도 이 대표 사진은 안 보인다. 대통령 사진의 호불호는 선거에 따라 갈린다. 대체로 정권 초기에는 환영을 받는다. 정권 중·후반부터는 그 선호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그와는 반대로 야당 대표는 정권 중·후반부터 인기를 끈다. 여당 대통령 사진과 야당 대표 사진의 엇갈린 운명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이하다. 대통령 사진이 여당 후보에게 홀대받고, 야당 대표 사진이 야당 후보에게 외면받는다. 전문가는 ‘당 인기보다는 본인의 인물론으로 승부하려는 자구책’이라고 해석했다. 총선 공보물에 공약 비중이 높은 것은 바람직하다. 지역구 현안을 알리고 약속하기에도 부족한 지면이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백 번 권장할 일이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으니 씁쓸하다. 지금도 총선판은 ‘윤석열 심판’, ‘이재명·조국 심판’ 물결이다. 양쪽 모두 극도의 거부감을 키우고 있다. 이러다 보니 중도층에 호소할 공보물에 어느 한쪽도 자신을 못하는 것이다. 윤석열 감표, 이재명 감표만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혐오 선거의 단면이다.

[사설] ‘복지 공약’ 투표일, 치매 간병 자매 세상 등지다

경쟁하듯 복지를 약속하는 정치권이다. 그 한복판에 노인 복지도 있음은 물론이다. 바로 그 선거 사전 투표 날에 참변이 발생했다. 치매 노모를 모시던 두 딸이 극단 선택을 했다. 6일 서울 한 아파트 화단에서 떨어져 숨진 채 발견됐다.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60대 자매다. 90대 어머니는 집에서 역시 숨진 채 발견됐다. 자매의 유서로 추정되는 메모가 발견됐다. “돌아가셨으니 잘 부탁드린다”. 또 보게 된 치매 간병 가족의 극단 선택이다. 관할 구청이 대략의 내용을 전했다. 복지 대상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생계에 특별한 어려움이 있었다는 증언도 없다고 했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된 환자도 아니라고 했다. 평범한 가정으로 보인다. 1월17일에는 치매 아버지와 아들이 극단 선택을 했다. 숨진 아들이 15년간이나 치매 아버지를 간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역시 지극히 평범한 이웃이었다. 치매 간병의 고통이 그만큼 크다. 경제력과 아무 상관없다. 정상 가정의 치매에도 복지는 있다. 그중 치매가족휴무제를 본보가 살폈다. 말 그대로 간병 가족을 쉬게 해주는 제도다. 2014년 시행됐으니 벌써 10년이나 됐다. 1년 동안 단기 보호는 10일, 종일 방문 요양(12시간 이상 24시간 미만)은 20회 이용이 가능하다. 치매 간병은 쉼이 없다. 한시도 곁을 떠날 수 없다. 간병하는 가족의 생활도 감옥과 같다. 여기에 치매 특성상 대개 수년씩의 간병을 요한다. 이들에게 휴가를 주자는 좋은 제도다. 그런데 그림의 떡이다. 경기일보가 소개한 실망스러운 사례를 보자. 치매 남편을 돌보는 62세 부인이 있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붙들려 있다. 2019년부터 이런 삶을 살고 있다. 치매가족휴무제를 활용해 보려고 알아봤다. 안 됐다. 24시간 간병할 요양보호사가 없었다.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55세 여성의 사정도 비슷했다. 10년째 병수발을 들지만 하루도 쉬지 못하고 있다. 역시 24시간 요양보호사는 없었다. ‘몇 시간 휴가’로 끝났다. 이러니 누가 이용하겠나. 경기도내 치매가족휴가제 이용률을 봤다. 낮아도 너무 낮다. 2018년 0.13%, 2019년 0.18%, 2020년 0.18%, 2021년 0.15%, 2022년 0.18%다. 시늉만 내는 복지제도의 허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요양보호사를 늘리고, 24시간 근무 여건을 맞춰주는 등 조치가 계속 보완됐어야 했다. 이런 조치들이 10년째 따라주지 않았다. 0.1%대 낮은 이용률을 당국이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정치권은 이 순간에도 ‘복지 천국’을 떠들고 있다. 양심이 있다면 ‘사전 투표일 치매 참변’ 앞에 회개하라.

[사설] 유권자의 엄정한 선택이 국가운명 결정한다

22대 총선거 사전투표가 지난 금요일부터 이틀간 실시됐다. 2020년 사전투표 26.69%보다 높은 31.28%를 기록했다. 역대 총선 중 최고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이는 주요 정당들이 유권자의 사전투표 참여를 열심히 독려했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유권자들의 선거 열기가 대단함을 나타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10일 투표일에는 더욱 높은 투표율이 예상된다.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당이 국회에서 과반수 또는 제1당이 되느냐에 따라 한국 정치는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중대한 선거다. 국내 정치는 고물가·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서민들은 핍박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남북관계는 어느 때보다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이 날로 격화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은 2년 이상 지속되고 있으며, 중동 지역도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어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등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이 같은 국내외 정세하에서 실시되는 22대 총선이므로 이에 임하는 각 정당과 후보자들은 위기의식하에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에 대한 미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민 편가르기를 유도하는가 하면, 불법 또는 편법을 저지른 후보들을 공천하고 증오와 막말로 가득찬 선거운동을 행하고 있다. 희망의 미래가 아닌 과거만 가지고 싸우고 있다. 더구나 이들 정당과 후보들이 내놓은 선거공약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무책임한 세금 퍼붓기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 4일 경실련이 발표한 후보들의 공약을 유형별로 분류해 ‘개발 공약’만 세어 보니 무려 2천2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이들 선거 공약의 상당수는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나 재원 조달에 관한 검증도 없이 인기영합식으로 급조된 공약이 많다. 더구나 최근 심각한 국가과제로 등장하고 있는 기후변화·인구문제·지방소멸 등 미래 한국이 당면한 문제들은 거시적 접근 못지않게 지역 단위에서 실행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이번 총선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의 운명은 유권자에 의해 결정된다. 신성한 참정권 행사는 유권자의 권리이며 동시에 책무다. 유권자는 각 정당이나 후보자들의 감언이설에 현혹되지 말고 정책과 인물 됨됨이를 꼼꼼히 살펴보고 정당과 후보자를 엄정하게 선택해야 한다. 혼탁한 선거라고 외면하지 말고 최선이 아니면 차선의 정당과 후보라도 가려 투표해야 한다. 기권은 유권자의 권리 포기이므로 반드시 투표장에 가서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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