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예능보유자 이애주씨 한맥의 춤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이며 서울대 교수인 이애주씨의 ‘99 한맥의 춤’ 공연이 오는 17일부터 23일까지 충남 홍성과 경기 부천, 서울 등에서 연이어 열린다. 지난 87년 고 이한열 추도식장에서의 한풀이춤으로 일반인들에게 더 유명하지만, 그는 사실 우리 춤의 원형에 집착하는 춤꾼으로 한영숙씨(1920-1989)로부터 사사받았고, 그 과정에서 승무를 전수받았다. ‘99 한맥의 춤’은 스승의 춤맥을 이어가는 무대로 이씨는 “우리춤의 바른 몸짓과 정신을 올바르게 보여주고 각인시키고 싶다. 새 천년을 앞두고 지난 수천년의 춤사위를 정리하는 마음가짐으로 무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 공연에서 전통 칼춤의 재현에 가장 공을 들였다. 일반적으로 공연되는 검무는 목이 잘린 짧은 칼을 돌리면서 추는 춤이다. 그러나 고구려의 벽화, 신윤복의 풍속화, 다산 정약용의 한시 ‘무검편증미인(舞劍篇贈美人)’속의 검무는 마치 무사들이 쓰는 것 같은 장검이 등장한다. “칼춤은 마음과 기를 다스리는 수단으로 신라 화랑들도 췄다는 기록이 있지만 원형이 전해지지 않았지요. 조선시대 말, 암살위험 등을 이유로 칼의 목이 잘리면서 귀여운 느낌의 춤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번에 재현하는 칼춤은 시와 그림에 묘사된 동작과 제 스승의 춤사위를 기본으로 재창조한 것인데, 장엄하면서도 격렬한 느낌을 줍니다.” 전통칼춤은 10여년간 구상만 해오다가 지난 10월 경기문화재단의 주도하에 남양주 다산문화제에서 시연한 것을 계기로 무대에 올리게 됐다. 또 하나 내세울만한 것은 ‘상징화된’ 학춤. 궁중정재나 중부지방 학춤은 실제로 학모양을 뒤집어 쓰는데, 이번에는 두루마기의 펄럭이는 자락으로 학의 날개를 상징하고 머리에는 학을 표현한 관을 쓰고 추게된다. 이밖에 승무, 살풀이춤의 원형인 본살풀이, 태평무 등도 보여준다. 공연은 17일 오후 7시 한성준 선생의 고향인 충남 홍성의 홍주문화회관을 시작으로 20일 오후 7시 부천 복사골문화센터, 22-23일 오후 7시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차례로 펼쳐진다. /이연섭기자 yslee@kgib.co.kr

새천년맞이 행사 참여 역사인물 선정

새천년준비위원회(위원장 이어령)는 새천년맞이 자정행사에 등장할 한국의 역사인물 100명을 발표했다. 국사편찬위원회에 의뢰해 뽑은 역사인물 100명에는 단군을 시작으로 87년 사망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에 이르기까지 고대와 중세, 근세, 현대의 인물이 골고루 망라돼 있다. 고조선과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 시대(남북국시대)의 인물에는 단군, 고주몽, 박혁거세, 온조, 김수로, 을파소, 근초고왕, 광개토왕, 진흥왕, 선덕여왕, 을지문덕, 계백, 김유신, 무열왕, 문무왕, 원효, 의상, 설총, 김대성, 최치원, 대조영, 장보고 등 22명이 명단에 올랐다. 고려시대의 인물로는 왕건, 서희, 윤관, 강감찬, 최충, 의천, 김부식, 지눌, 일연, 안향, 최영, 문익점, 공민왕, 정몽주 등 14명이 뽑혔다. 조선시대에서는 정도전, 이성계, 태종, 박연, 김종서, 장영실, 세종, 조광조, 서경덕, 황진이, 이황, 신사임당, 서산대사, 사명대사, 정철, 이이, 이순신, 허준, 곽재우, 송시열, 허균, 윤휴, 정선, 정조, 김홍도, 정약용, 김정희, 김정호 등 28명이 선정됐다. 개화기 및 항일기와 대한민국에서는 이하응, 김대건, 최제우, 이제마, 유인석, 이상재, 김옥균, 명성황후, 전봉준, 지석영, 박은식, 손병희, 나철, 서재필, 홍범도, 이승만, 김구, 주시경, 안창호, 안중근, 한용운, 신채호, 김병로, 김좌진, 최남선, 김성수, 이광수, 유일한, 우장춘, 김정식, 나운규, 안익태, 이중섭, 박정희, 이병철 등 36명이 포함됐다. /연합

마지막날의 아버지 이효석 발간

‘메밀꽃 필 무렵’ ‘낙엽을 태우면서’의 작가 이효석의 장녀 이나미씨가 지난 60여년간의 인생역경을 잔잔한 필체로 그려낸 자전에세이 ‘마지막날의 아버지 이효석’을 펴냈다.(창미사 刊) 1930년대 부모와 함께했던 행복했던 나날들, 그리고 가슴 아픈 숨은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논 진솔한 고백서로 3부로 구성됐다. 제1부 ‘작가의 딸로 태어나서’에서는 부모와 행복했던 어린시절과 부모에 대한 회상 등으로 엮었는데 이를 통해 저자의 아버지인 가산 이효석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커피와 낙엽을 좋아했던 작가 이효석의 사랑과 결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인생역경을 비교적 잔잔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제2부 ‘가슴 아픈 사연들’에서는 부모를 일찍 여윈 저자가 어린 나이에 겪어야했던 슬픔과 갈등을 주고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맏이로서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혼자 월남했던 일들과 이런 자기희생에도 불구하고 동생들의 냉담한 태도로 상처를 받아야만했던 지난 60여년간의 세월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제3부 ‘내가 걸어온 길’에서는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저자가 집안의 맏이로서 아버지 이효석의 유지를 받들기위해 노력한 일들과 문단 원로들과의 일화로 꾸며져있다. 아버지의 뜻을 받들겠다는 결심을 하기부터 그에 따른 기쁨과 좌절, 아픔 등을 비교적 자세히 회상하고 있다. 또 이 부분에서는 우리의 부족한 문화의식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연섭기자 yslee@kgib.co.kr

도내 장터모습담은 장터사진전 개최

장(場)에 갔다오면서 선물을 사다주겠다던 말에 간밤 가슴설레며 겨우 잠든 자식들을 뒤로 한채 아버지는 이른 새벽 한 보따리 짐을 메고 장터로 나선다. 새벽부터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상인들이 각자 준비해 온 물건을 이곳저곳에 늘어놓으면 한바탕 장이 벌어진다. ‘그러고 보니 이니는 지난번 오산장에서 본 사람이고, 저니는 장호원장에서 본 사람이고…’ 장터에 모인 상인들은 대부분 전국을 떠돌며 자신들의 삶의 터를 일궈온 사람들이다. 토종닭 오리 거위 고양이 흑염소 등 동물농장을 연상케 하는 가축시장, 잉어 가물치 메기 뱀장어 등 살아 뛰노는 민물고기, 고추 깻잎 파 호박 무우 등 신선한 야채, 쌀 보리 수수 밀 등 잡곡과 어디어디 산속에서 채취했다는 듣도보도 못한 약초와 산나물, 흙위에서 굴러도 구멍이 안난다는 스타킹과 때밀이수건, 몽빼 바지. 이뿐만 아니다. 현란한 의상과 음악, 원숭이 재주까지 동원해가며 손님을 끌어 모으는 약장수에서부터 신나는 뽕짝 메들리를 엿가위 박자로 맞춰가며 흥겹게 춤을 추는 품바 엿장수, ‘뻥이요’를 외쳐대며 연신 기계를 돌려대는 뻥튀기 아저씨까지…. 장터엔 없는게 없고,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질긴 생명력으로 들썩인다. 흥겨움과 정겨움 속에 때로는 밀고 당기는 실랑이도 벌어지지만 시원스럽게 얹어주는 아낙네의 투박한 손은 후한 인심을 느끼게 한다. ‘오늘은 벌이가 꽤 괜찮은데…’ 걸죽한 막걸리로 노곤함을 달랜 아버지는 아내에게 줄 향내나는 하얀 분가루와 딸아이에게 줄 예쁜 꽃신, 귀여운 아들에게 줄 맛나는 사탕을 한아름 안고 해질녘 어슴푸레한 그 길을 콧노래 흥얼대며 집으로 향한다. 장(場). 현대 산업화와 도시화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질긴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는 곳. 백화점 슈퍼마켓 등이 도심 곳곳에 자리해 예전보다 장보기가 편리해졌지만 그곳엔 장터에서만 느끼고 맛볼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없어 허전하다. 이제는 서서히 사라져가는 재래장터를 이번 주말엔 사진속에서 만나보면 어떨까. 3일부터 오는 8일까지 경기도문화예술회관 소전시장에서는 경기도에 있는 50여곳의 재래 장터 모습을 사진에 담아 ‘장터사진전’을 열고있다. 모란장, 마석장, 장호원장, 여주장, 안성장, 오산장…. 서민들의 삶의 애환과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장터사진들은 중장년층에겐 그 옛날 향수를 달래주고 젊은 세대들에겐 또 다른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있다. 전시에는 사진작가협회 경기도지회(지회장 김백길)가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으로 공모한 사진과 기성작가들이 함께 담아낸 장터 사진 100여점이 선보여지고 있는데 이는 곧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0331)222-6255 /박인숙기자 ispark@kgib.co.kr

용인 원삼면에 둥지미술관 개관

용인시 원삼면에 새로운 미술관이 문을 연다. 산등성이와 계곡을 두르고 그 가운데 아담하게 자리잡은 둥지미술관(관장 마순관)이 바로 그 곳이다. 용인시 남쪽 구봉산 기슭에 자리잡은 둥지미술관은 대지 360평에 1층 65평, 2층 10평의 전시장과 60평의 도예공방, 40여평의 휴게실 등을 갖추고 있다. 건물은 모두 통나무를 사용, 주변의 자연경관과도 잘 어우러지도록 해 콘크리트로 지어진 도심속의 미술관과는 또다른 색다른 느낌을 전해 주고 있다. 둥지미술관은 둥지고을 황호석 이사장의 숙원인 용인 예술인 마을을 형성하면서 미술인들에게 제공한 첫번째 문화공간. 그동안 숨은 곳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힘써온 황이사장은 계속해서 공연 예술인을 위한 야외 상설공연장, 예술인을 위한 개인 작업실 및 전시실, 야외조각 공원 등 900여평의 문화복합공간을 조성할 계획으로 현재 공사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설은 내년 상반기쯤엔 완성될 계획이다. 둥지미술관은 매년 3∼4회의 기획전시를 열어 용인 시민들에게 좋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한편 작가들에게 창작의지를 북돋워 줄 수 있도록 용인미술인들의 상설 전시를 꾸준히 열 계획이며 이 미술관이 단순 전시기능을 벗어나 관람객과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만나 좋은 작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판로를 여는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더구나 미술관 옆 도예공방에서는 ‘흙과 불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매일 도예실습이 이루어지는데 이 도예실습장은 누구나 손쉽게 참여해 직접 창작의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는 곳으로 주말이면 도자기를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둥지미술관의 관장직을 맡은 용인예총의 마순관회장은 “깨끗한 계곡과 산이 있는 자연속에 자리잡고 있는데다 직접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공간, 그리고 차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을 갖추고 있어 누구나가 쉽게 찾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손색없는 훌륭한 시설”이라고 말했다. 한편 둥지미술관은 오는 10일 개관하고, 의석 김영복 선생의 한국화전을 개관기념전을 내년 1월30일까지 계속할 예정이다. /박인숙기자 ispark@kgib.co.kr

사도세자 위한 묘지문 250년만에 공개

조선 영조가 뒤주 속에 갇혀있다 비운의 생을 마감한 아들 사도세자를 위해 쓴 묘지문이 250년만에 공개됐다. 지금까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쓴 글로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 작품이 조선왕조실록과 정조 개인문집인 ‘홍재전서’에 전문이 실려 전해오고 있으나 영조가 쓴 사도세자 묘지명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박광용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2월 이달의 문화재 전시품목 중 하나로 지난 68년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거주 이종만씨가 기증해 보관해오고 있던 영조의 ‘어제 사도세자묘지문’(御製 思悼世子墓誌文)을 공개했다. 어제란 임금, 즉 영조가 썼다는 뜻이며 묘지문이란 죽은 이의 행적을 기록한 글로 보통 무덤에 함께 매장됐다. 이 묘지문은 가로 16.7㎝, 세로 21.8㎝, 두께 2.0㎝ 사각형 청화백자 5장에 쓰여있는 것으로 작성일자는 영조 38년(1762) 7월로 기록돼 있다. 임금이 쓴 묘지문은 통상 실제로는 문장이 뛰어난 학자가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묘지문은 “이것은 신하가 대신 쓰는 것은 아니며 내가 누워서 받아적게 하여 짐의 30년 의를 밝힌 것이니...”라며 영조가 직접 작성한 것임을 밝히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대단히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묘지문에서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가 성군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난잡하고 방종한 짓”을 배워 타일렀으나 “제멋대로 언교를 지어내고 군소배들과 어울리니 장차는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노라”면서 왜 아들을 뒤주에 가두게 되었는지를 토로하고 있다. 미치광이로 변한 아들을 탓하면서도 영조는 아들을 죽게 한 비통한 마음을 곳곳에서 토로하고 있다. “너는 무슨 마음으로 칠십의 아비로 하여금 이런 경우를 당하게 하는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구술하노라. 때는 임오년 여름 윤5월하고도 21일이라” 이 묘지문에서 충격적인 내용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었던 것이 정말 아들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훈육하기 위해서였다는 고백. 즉 영조는 이 묘지문에서 “강서원에 여러날 (뒤주를) 지키게 한 것은 어찌 종묘와 사직을 위함이었겠는가...진실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랐으나 9일째에 이르러 네가 죽었다는 망극한 비보를 들었노라”며 원통해 하고 있다. 이런 언급은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진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영조의 역할과 관련,매우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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