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기는 쉬워도 구조조정을 당할 입장을 생각하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구조조정과 관련이 없는 사람, 구조조정을 해도 자신은 당하지 않을 사람들은 구조조정을 목소리 높여 외친다. 남의 일이므로. 하지만 구조조정을 당할 입장에 있는 근로자들은 마냥 초조하다. 그렇다고 거부할수도 없으므로. 대우자동차만 해도 자진 퇴직신청이 구조조정 규모의 26%에 머물고 있다. 나머지 74%는 강제로 쫓겨날 판이다. 2차 금융계 구조조정으로 또 5만명여명이 직장을 잃게 된다. 이래저래 실업자 수가 재차 100만명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직자 1명의 부양가족을 4명으로 잡아도 400만명이 생계의 터전을 잃는다. 구조조정 바람에 노사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 서로 도청을 경계하는 불신사태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한다. 가장 절실한 공기업의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것은 아이로니컬한 현상이다. 방만한 예산운용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공기업이야말로 시급히 군살을 도려내야 한다. 누구보다 정권쟁취의 전리품삼아 낙하산 인사로 임원진에 앉혀놓은 비전문가들부터 쫓아내고 수도 줄여야 한다. 어느 공기업엔 사장을 포함한 임원진 8명 가운데 전문가는 겨우 1명이다. 특히 기술분야의 비전문가는 자리만 높을수록이 잔소리가 더욱 심해 전문가의 의욕을 꺾기가 일쑤다. 앞으로 있을 공기업의 구조조정은 비전문가의 추방으로 상층구조의 능률화를 기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리를 잃어도 다 먹고 살만한 처지다. 구조조정으로 막상 불쌍한 사람들은 일반 근로자들이다. 자본주의의 경제구조에 따라 발생하는 구조적 실업은 장기적 실업인 것이 특징이다. 구조조정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무턱댄 인원감축보단 기업수익성 개선에 중점을 두어야 하고 특히 공적자금을 손실낸 경제사범은 일벌백계로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난 집에서 도둑질 하는 것처럼 공적자금 투입의 와중을 틈타 못된 짓을 했거나 방관한 책임자는 본보기로 중형에 처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구조조정을 당한 사람만이 너무 억울해서는 사회정의가 살아있다 할수 없다.

누님같이 생긴 꽃

유부녀의 夫자는 지아비부자인 반면에 유부남의 婦자는 며느리부자인 점이 특이하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 그대로 하면 ‘부인부’라든지 ‘지어미부’라야 하는데도 ‘며느리부’라고 한다. 여자가 시집을 가면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이지만 그보단 한 집안의 며느리로 보는 것이 시댁과 더 일체감을 갖는 것으로 해석된 연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유교사상의 여필종부 관념은 많은 여권을 제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레짐작하는 것처럼 말살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출가한 딸의 상속권이 있었으며 집안의 어른이 된 노마님은 대소사에 막강한 재량권을 행사했다. 무엇보다 타고난 성씨를 바꾸는 일이 없다. 세계에서 여성이 남편의 성씨를 따르지 않는 나라는 우리와 중국밖에 없다. 서구는 물론이고 일본도 결혼하면 남편의 성씨로 따라 바꾼다. 서구사회 여성이라고 하여 예전부터 우리 사회보다 별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모파상의 소설 ‘여자의 일생’,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이 나온 것은 다 19세기후반의 사회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또 여성의 문밖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시대에도 자유분방한 여인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성종조에 천민과도 교접을 가리지 않을만큼 수많은 분방자재의 훼절로 조정을 발칵 뒤집은 어우동은 대감반열의 딸이며 종실의 부인네였다. 전래 설화에 나오는 옹녀는 색녀로 유명하지만 그만의 책임이랄수는 없을 것이다. 변강쇠같은 남자가 있었기 때문에 옹녀같은 여자가 등장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근래 아내의 부정에 의한 이혼률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남편의 부정에 의한 이혼률도 마찬가지다. 여기엔 양쪽 모두 이유가 있겠지만 어떻든 남편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보는 것이 상궤다. 이혼률이 높아지는 사회가 결코 건강한 사회랄수 없다. 요즘 여성의 자유분방함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긴하나 우리 고유의 정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묵묵히 가정을 지켜가고 있다. 이는 전통적 부덕이다. 얼마전 타계한 미당 서정주시인의 ‘국화 옆에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白山

문단 선거

문인들만의 사회에서 치러지는 ‘문단 선거’는 정치판처럼 혼탁하지는 않다. 후보로 나선 문인들이야 속이 타겠지만 한 표를 행사하는 쪽은 느긋하다. 오는 14일 치러지는 한국문인협회 제22대 이사장 선거의 경우 현 이사장과 부이사장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데 선거운동은 후보자 본인과 후보자를 지지하는 문인들이 주로 전화통화로 한다. 이번 문인협회 임원 선거에 참가할 수 있는 문인은 5천103명인데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은 서울 종로구 동숭동 소재 예총회관에서 직접 투표를 하고, 전국 각 지역에 거주하는 문인들은 투표용지를 선거 하루 전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우송한다. 문인협회 회원은 5천103명을 훨씬 넘지만 연회비를 납부하지 않은 사람은 투표에 참가할 수 없는 게 특징이다. 이사장 1명, 부이사장 5명, 시, 시조, 소설, 평론, 수필, 아동문학, 희곡, 번역 등 각 분과회장을 1명씩 선출하는 문협선거는 투표할 때 두 가지로 생각한다. 문명(文名)이 높은 사람 아니면 인화력이 있는 사람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이사장이나 부이사장, 분과회장이 된다고 해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군수처럼 특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당선되면 오히려 사비를 더 써야 하는 자리인데도 입후보한다. 1961년 12월30일 창립한 한국문인협회는 제1대 전영택, 제2대 소설가 박종화, 소설가 김동리, 문학평론가 조연현, 시인 서정주, 시인 조병화, 시인 황명 선생이 이사장을 역임했는다. 같은 장르의 문학단체, 한국현대시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등은 거의가 회장은 추대하는데 문인협회 경우 2명이 경합을 벌여 서로 서로 잘 알고 지내는 문인들은 실상은 곤혹스럽다. 문인협회는 본부 이사장, 시·도지회장, 시·군 지부장들이 모두 동격이다. 선거는 거의 추대형식이고 경합을 할 경우 1∼2표차로 낙선돼도 정치판처럼 재검표를 하는 등의 사례는 한번도 없었다. 만일 문단선거에서 조차 정치판처럼 공약(空約)이 남발되고 인신공격이 난무한다면 문인 전체의 망신이다. 또 선거가 화기애애하게 치러지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淸河

농업자격증

자격증은 농업분야에도 있다. 농업자격시험은 과수재배기능사, 농화학기술사, 산림경영기술사, 시설원예기술사, 식물보호기능사, 원예종묘기사, 종자산업기사, 축산기능사, 버섯종묘기능사, 임산가공기능사, 채소재배기능사 등 각 분야마다 기능사·산업기사·기사·기술사 등 단계별 등급시험이 응시제한 없이 해마다 치러지고 있다. 이와 같은 자격증 시험은 관련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재배기술 등을 습득할 수 있어 우수한 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는 좋은 기회로 활용이 훌륭하다. 그러나 농업자격증 시험에는 극소수의 농민들만 응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격증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농민이 많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분야와 달리 자격증 취득 농민에 대한 혜택이 전무하다시피하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응시생이 적다 보니 교재가 충분치 못해 시험을 준비하는 농민들의 고충이 크고 한해에 고작 한 두번 시행되고 있다. 원인은 또 있다. 농업계 고교나 대학생들이 농업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한다 해도 영농정착에 아무런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박사학위 소지자들도 실업자가 수두룩한 세상이니 유독 농업자격증만 갖고 따질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농업기술의 선진화와 신지식 전문농업인 육성이 화급하고도 절실한 과제이다. 선진 기술농업의 육성은 구호만으로 그치고 계획만으로는 안된다. 농산물 생산은 물론 농산물유통 개선과 가공부문의 활성화를 위한 법제의 개혁도 중요하다. 지난 수천년을 고난과 역경을 숙명처럼 알고 끈질기고 슬기롭게 이 땅을 지켜온 이들이 바로 농민들이다. 이제 농민들에게 인내만을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 농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 농민들은 그동안 정부와 국회의 경시속에서 살아왔다. 농민을, 그리고 농촌을 사랑한다는 달콤한 말에 속아 왔다. 농정당국과 지자체, 학계, 연구지도기관 단체들은 ‘내가 농사를 짓는다’는 심정으로 일해야 한다. 인건비도 건지지 못하는 가격폭락에 농작물을 그대로 놔둔채 밭을 갈아 엎는 농민들이, 그리고 영농부채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농민들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점점 사라져가는 농토를 가슴에 품고 사는 농민들의 아픔을 국가가 외면하면 민심과 천심이 좌시하지 않는다. 농업자격증을 적어도 사법고시 합격증처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우대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淸河

성과급제 是非

성과급제 是非 행정의 기업 경영기법 도입이란 말이 있다. 좋은 말이다. 기업인이 본 행정관리면엔 낭비요소가 지극히 많다고 보는 것이 공통적 관점이다. 그러나 기업 경영기법을 행정에 그대로 적용하는덴 많은 문제가 따른 것이 또한 현실이다. 행정은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업공무원은 승진이 보수못지 않는 명예충족 요건이다. 이에 장애를 주는 전문직 공무원 계약제가 적잖은 부작용을 가져오고 있다. 외부채용으로 승진의 폭이 그만큼 좁아지는 것은 계약제가 성공만하면 이론이 있을 수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또한 현실이다. 아무리 전문가라 하여도 행정의 문외한은 행정을 제대로 할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공무원의 성과급제 확대가 실효성에 의문이 있어 적잖은 논란이 있는 것 같다. 말인즉슨, 일한만큼 성과급을 준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성과급의 근무성적평정에 있다. 평정의 방법으로 도표식, 강제배분식, 산출기록법, 대인비교법, 순위법, 체크리스트법, 업무보고법 등이 있다. 여기에 운영상의 유의점이 또 있다. 우선 작성상의 주의점으로 평정요소의 선택, 평정요소의 수, 평정요소의 비중이 있으며 이용상의 주의점으로는 평정계열, 평정자의 수, 평정결과의 공개, 소청 등이 있다. 이러고도 현직이 아닌 다른 직책의 잠재능력을 파악하는데는 역시 어려움이 따르는 맹점이 없지 않다. 성과급제의 성패는 근무성적 평정이 얼마나 체계적 정기적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느냐에 달려 있다. 객관화되지 못하고 공개화되지 못하면 아예 안하는 것보다 못하단 말이 나온다. 올해부터 전 지방공무원에 실시하기로 한 성과급제에 아직 평가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지극히 우려되는 점이 많다. 근무성적 성과급제가 단체장에 대한 충성도 성과급제로 변질될 요소가 다분하다. 행정의 기업경영 기법도입, 전문가의 계약공무원제, 근무성적의 성과급제가 다 좋은 말인데도 이처럼 역기능이 있는 것은 우리의 행정토양과 분위기가 그같은 제도가 뿌리내린 나라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나름대로 건국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지녀온 행정문화가 있다. 좋든 궂든 이 행정문화속에서 행정가치의 창출 및 배분이 이루어온 사실을 일시에 부인하려 해서는 엄청난 무리가 따른다. 행정개혁은 행정문화의 변화를 유도해야지 기존의 행정문화를 송두리채 부인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제주 감귤을 서울에 옮겨심는 것처럼 섯부른 제도이식만이 능사가 아니다. /白山

걱정없는 세상을

“한국인들은 대부분이 정치·경제·북한문제 전문가들이다.” 어느 미국인의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80년대 일본 신문의 서울특파원 가운데 “한국인들의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은 놀랍다”고 말한 기자가 있었다. 우리가 생각해도 정치얘기를 꽤나 많이 한다. 해방직후의 좌·우익 충돌, 자유당 독재, 유신정권, 신군부정권, 3김정치등이 그렇게 만들었다. 태평성대가 없었으므로. 경제문제 역시 이 몇년 사이에 국민의 적극적 관심사가 됐다. 민초들은 평소 별로 듣지 못했던 IMF(국제통화기금)란 말이 초등학생의 귀에까지 못이 박히도록 널리 쓰이기 시작하더니 근래엔 ‘감자’란 말이 대중화됐다. 웬만한 지식인들조차 용어공부를 안하면 신문기사를 제대로 읽지 못할만큼 경제전문 용어가 생활화 되다시피 한다. 국민들 저마다가 떼밀려 전문가가 돼가고 있다. 경제불안의 심화가 여전하므로. 남북관계 관심은 6·15 이후 갑자기 더 심해졌다. 북한이 어떠니, 통일이 어떠니하는 자신의 생각을 나름대로 갖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가 돼간다. 대북관계에 국민의 출혈이 지나치므로. 이는 국민들이 그만큼 더 많은 걱정을 한다는 얘기가 된다. 정치걱정을 하고, 경제걱정을 하고, 대북관계걱정을 하다보니 전문가 아닌 전문가 소릴 외국인들에게까지 듣고 있다. 긍정적 측면보단 부정적 측면이 더 많은 사회위기 현상이다. 국민들은 저마다 본업이 있고 전문분야가 따로 있다. 정치걱정, 경제걱정, 대북걱정 같은 것은 안해도 되는 세상이 돼야 한다. 올해는 제발 민초들이 자기일만 걱정하며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국가사회가 돼야 할텐데, 그렇게 되기가 어려울 것 같아 또한 걱정이다. /白山

새해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새해가 되면 더욱 생각나는 고(故)혜산(兮山) 박두진(朴斗鎭)선생의 시(詩), ‘해’의 한 부분이다. 새천년이다 뉴밀레니엄이다 해서 소란스러웠던 2000년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2001년의 아침이 밝아왔다. 지난 2000년은 국민이 고통속에서 신음한 1년이었다. 어설프기짝이 없는 의약분업은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은행과 금고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금융비리사건들은 애꿎은 서민들의 생명같은 목돈을 날렸다. 그동안 구조조정을 위해 쏟아부은 공적자금은 밑빠진 독에 부은 물이 되었고, 당리당략에 매일 싸움질만 한 정치판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분단사상 처음으로 성사된 남북정상회담,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빼면 2000년은 정말 참담한 한해였다. 조물주가 부여한 인간의 감정 중에 희로애락이 있고 여기에 애오욕(愛惡欲)을 덧붙여 ‘칠정(七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조물주가 부여한 성정(性情)때문인지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늘 좋은일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는 눈의 초점을 지나간 역사에만 맞추어둘 수 없는 것이다. 역사는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자세가 필요하다. 슬픈 과거는 되도록 빨리 잊자. 낡은 것은 보내자. 새것은 가슴을 열고 맞이하자.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라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혜산 선생의 ‘해’, 그 햇살이 삼라만상을 고루 비추어 2001년 새해에는 이땅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줄어 들었으면 좋겠다. /淸河

개구리가 부럽다

내년초로 예상되는 제2의 실업대란은 IMF때 보다 더 추울 것이다. IMF 실업자의 경우는 그래도 명예퇴직금과 위로금 등 목돈을 챙길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부실기업의 퇴출과 구조 조정 과정에서 밀려 나왔기 때문에 퇴직금조차 제대로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IMF 당시에는 연 30%에 육박하는 고금리덕에 혜택을 누릴 수 있었지만 현재는 금리가 7∼8%에 불과하다. 정부지원도 형편없이 빈약하다. 공공근로사업의 경우 1999년 2조5천900억여원에서 6천억여원으로 깎였다. 고용보험기금 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실업대책 예산도 작년 5조2천947억원에서 내년에는 3조1천678억원 가량으로 줄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번 실직자들의 경우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장기 실업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IMF 실업은 경기적 요인이 강했던 탓에 경기가 호전되면서 실직자들도 빠르게 고용시장에 흡수됐지만 이번은 성격이 다르다. 경기가 다소 좋아지더라도 40대 이상의 실직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40대의 경우 새로운 직업환경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번 실업은 장기 실업가능성이 큰 구조적 실업이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왜? 무엇 때문에 또 누구 때문에 이렇게 참담해지는가. 그런데도 위정자들은 내탓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남의 탓이라고만 한다. 3천154명을 감축한다는 사형선고와 같은 통보를 받은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7천여명의 생산직 근로자들을 비롯한 전국의 수많은 직장인들의 서러움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실업자가 될 가장의 식구들은 지금 또 얼마나 가슴을 졸이고 있을 것인가. 아무 걱정없이 동면하여 겨울을 날 수 있는 개구리나 뱀이 부럽다는 어느 가난한 월급쟁이의 탄식이 이 연말을 더욱 춥게 만든다. /淸河

詩仙

28일 오늘 이 땅의 시인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시인의 육신이 전북 고창군 선운리에 묻힌다. 지난 24일 밤 11시7분 삼성 서울병원에서 이승을 떠나기 1시간 전 미당은 ‘눈발이 날리는 날’이라는 자신의 시 한 구절인 ‘괜찮다 괜찮다’를 외었다고 한다. 영면직후에는 시 ‘눈발이 날리는 날’처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85년 생애를 마감하는 운명과 함께 눈이 내리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며 시처럼 떠난 것이다. 1915년 전북 고창군에서 태어난 미당은 첫시집 ‘화사집’을 비롯해 ‘귀촉도’‘신라초’‘동천’‘질마재 신화’ 등 15권의 시집을 냈다. 8·15 광복이후 언론사 문화부장 등을 지낸 미당은 모교인 동국대 교단에 선 이래 종신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써왔는데 타계할 때까지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일제말기의 친일시 발표, 전두환 정권 수립 와중에서 TV방송에 출연하여 군부를 지지한 상처를 남겼지만 그러나 죄 한번 안짓고 지탄받을 일 한번도 안한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정부가 26일 미당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한 것도 ‘감나무는 거기에 매달린 열매를 보고 평가하라’라는 격언을 입증했다고 하겠다. 미당의 장례는 문인장 등이 논의됐으나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조촐히 치렀다. ‘국화옆에서’‘귀촉도’‘동천’‘자화상’ 등 10여편이 교과서에 수록된 미당의 시세계는 자신의 말처럼 생명파, 또 인생파이다. 미당의 고향에 있는 선운사(禪雲寺) 입구에는 “선운사 고랑으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작년것만 오히려 남았읍디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읍디다’라고 노래한 ‘선운사 동구(洞口)’ 시비가 있다. 저승에서도 시인으로 환생할 미당 선생의 영생을 삼가 빈다. /淸河

공작원

일본 경찰이 한국인 지도층을 포섭하려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소속 공작원을 수사하고 있다는 현지 보도가 10여일 전에 있었다. 조총련 전간부인 공작원 집에서 노동당 지시각서, 공작상대의 인적사항, 공작활동보고서 등을 압수했으며 지시각서에는 정계, 종교계, 군의상층부등 영향력있는 인물을 포섭하도록 쓰여 있었다는 것이다. 또 (지금은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석방에 일본단체들은 움직인 사실도 확인됐다는 것이다. 북측 공작원이 이처럼 일본에서 적발되는 상황에서 국내에는 공작활동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잡지 않은 것인지, 그도 아니면 잡고도 발표를 안하는 것인지 도시 알수 없어 궁금하다. 김영삼정권때 한동안 북한 공작원이 2만명에 이른다는 말이 있었다. 6·15 공동선언이 남한사회를 공작원 천국으로 만들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으나 우연인지 어쩐지 몰라도 그후 단 1건도 간첩을 잡았다는 얘기가 없어 세간의 궁금증을 더해준다. 지난 4차 평양장관회담때 국방부의 주적개념을 트집잡은 북측이 계속 대남 비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저들의 트집에는 꼭 이면이 있다. 이번의 경우, 당장 50만㎾의 전기공급요구를 관철키 위한 전략이다. 정부는 내년 봄쯤 예상하는 김정일위원장의 서울답방시 협의키로 한발 뺐지만 큰 일이다. 전기공급으로 김위원장의 서울답방을 유도한다면 막상 서울 (또는 제주) 정상회담 이후의 부담을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지 잘 알수 없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워 내 코가 석자인 마당에 6천억원이나 소요되는 전력(50만㎾) 공급을 지원한다는 것은 국민감정이 거부감을 갖는다. 그것도 일본에서 저들의 공작원 활동이 적발된 실정에선 더 더욱이 그러하다. 보수논리라고 매도할 것이 뻔하지만 무턱대고 갖다 퍼주는 것만이 남북관계 개선은 아니다. 진보논리에도 여러가지가 있음을 유의한다. /白山

관객의 이중성

영상등급위원회가 전국의 1천500명을 표본 전화조사한 설문결과 가운데 흥미있는 대목이 있다. (월보 ‘영상등급’ 12월호) ‘등급보류·수입불가 판정시,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공감도’ 문항에서 공감 53.9%, 비공감 43.6%로 표현의 자유 침해쪽으로 기울었다. 그리고는 다음 문항인 ‘영상물 등급분류시 가장 신경써야 할 점’에 대해서는 청소년등 보호 43.5%, 미풍양속 및 사회질서유지에 21.5%가 응답, 65%가 공공의 질서 및 풍속사범 우려를 지적했다. 다시말해 표현의 자유를 말하면서 공공의 질서와 풍속사범을 걱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심의평가에서 문제가 돼온 것이 바로 이 대목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음란성을 창작활동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일부 관객들은 풍속사범을 걱정하면서도 음란성을 즐기는 속성이 있다. 표현의 자유와 분류의 유의점이 상반되는 경향은 바로 이같은 관객성향이 지닌 모순으로 볼수가 있다. 사실 음란성도 농도가 점점 짙어져 기준의 잣대가 달라져 가는 추세에 있다. 컴퓨터의 발달은 정보의 홍수와 함께 성 정보의 홍수를 가져왔다. 이에 거의 무방비상태인 실정에서 영화 비디오 PC게임물 등만 규제한다고 하여 청소년이 보호되고 풍속사범이 줄어든다고 보기엔 지극히 어렵다. 그렇지만 또 무관심할 수는 더욱 없는 일이다. 개방된 정보산업 사회에서 음란성규제는 어려움이 많지만 최선을 다하긴 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음란성문화 공급은 이를 탐닉하는 시장, 즉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외설문화의 자유와 흥행을 즐기면서 청소년보호를 위해 규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중성이 항상 문제인 것이다. /白山

전파사 캐럴

전파사란게 있었다. 길거리음악을 들려주던 이 옛 명물이 없어진 것이 언제부터였던가. 아마 1970년대 중반무렵이 아닌가 싶다. 텔레비전 수상기 보급이 대중화되면서 사양화했던 것 같다. 전파사란 그무렵 최고의 오디오라 할 전축과 전축판을 파는 점포를 말한다. 아침에 개점하면 저녁에 폐점할때까지 확성기를 길에 대고 전축을 계속 틀어댔다. 물론 상점선전을 하기 위한 것이지만 길거리음악의 통념으로 별 거부감없이 사회에 인식됐었다. 음악이라야 유행가(가요) 일색이었으나 신곡을 뜨게 하는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바람에 음반회사마다 섭외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이런 가운데 때가 되면 으레 비상업적으로 봉사하던 노래가 있었다. 해마다 12월 초순이면 벌써 크리스마스 캐럴을 울려 크리스마스를 전파사 음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징글벨 징글벨 방울 울리며…’하는 징글벨송 등을 듣는 행인들은 저마다 성탄절과 세모의 각별한 정서에 젖곤하였다. 기독교 교인은 더 말할것 없겠지만 교인이 아니더라도 캐럴송은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곤 한다. 올핸 크리스마스 캐럴을 별로 듣지 못한 가운데 넘어가는 것 같아 어쩐지 좀 허전하다. 경제(살기)가 그만큼 어려운 탓이라고는 하지만 사회가 점점 척박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문명의 발달은 인성을 기계화하는 것인지, 전파사는 지금처럼 문명이 발달되지 못했던 흘러간 시절의 구닥다리 얘기인데도 그때 그 시절의 길거리 캐럴송이 새삼 생각나는 것은 웬 일일까. /白山

솔(松) 크리스마스 트리

솔(松) 크리스마스 트리 우리나라 전체 산림 면적의 30%를 차지하는 소나무는 6천년 전부터 한반도에 뿌리를 내렸고, 3천년 전부터 한국인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고 전해진다. 그러니까 역사가 기록될 즈음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 자라온 셈이다. 우리 조상과 소나무와의 관계는 공기와 물과 같이 서로 자연스러운 존재였다. 일제시대 때 부터 간혹 ‘소나무 망국론’이 튀어 나왔었다. 휘어지고 비틀려서 아무 쓸모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서양 나무처럼 쭉쭉 뻗은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소나무는 심지어 잘려 죽은 다음에도 귀한 한약재인 복령(솔뿌리 혹)을 키워 낸다. 굽은 소나무도 처마를 살짝 들어올리는 전통의 멋을 살리는 귀중한 목재로 사용됐다. 소나무로 지은 집에 태어나 푸른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안에서 보호받았고, 마른 솔잎을 태워 끓인 국밥을 먹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랐다. 그 아이가 자라면 소나무 우거진 솔숲은 놀이터가 됐다. 소나무는 절개를 상징한다. 추사는 ‘세한도’를 그렸고, 이인상은 ‘설송도’를 그렸다. 사육신 성삼문은 ‘봉래산 제일봉의 낙랑장송이 되겠다’고 하였고 윤선도는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다”고 찬탄했다. 애국가에서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고 한민족의 불굴의 정신으로 칭송했다. 소나무 송(松) 자가 들어가는 지명도 전국에 600여곳에 이른다. 큰솔의 대송리, 향기나는 방송리, 솔 세 그루가 있다하여 삼송리가 있다. 경기일보사 본사 사옥이 있는 수원시 송죽동을 옛날에는 솔대골이라고 불렀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았었다. 이렇게 귀하고 귀한 소나무를 흔하다하여 돌아보지 않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솔숲과 대숲에 피어난 설화(雪花)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번 크리스마스 때는 눈이 함박으로 내려 천연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수 있도록 소나무에 눈꽃이 아름답게 피었으면 좋겠다. /淸河

불쌍한 휴학생들

불법 피라미드 다단계 조직들이 대학 휴학생들을 유혹하고 있어 정말 큰일이 났다. 불법 다단계 사업자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막막한 현실을 교묘히 이용, 휴학중인 대학생들에게 접근, 대대적인 사업(?)확충에 나서고 있어 피해가 점점 크게 늘어날 게 분명하다. 휴학생들은 ‘월수입 1천만원’이란 허황된 꿈에 사로 잡혀 전세금, 등록금 등을 탕진하는 것은 물론, 다단계사업에서 빠져나온 이후에도 가족·친구로부터 외면당한다. 휴학생들은 초기단계 회원으로 가입하기 위한 청약금을 내기 위해 자취방 전세자금, 하숙비 등을 빼내서 사용하고, 이를 다 쓰고 나면 컴퓨터 등 값나가는 물건들을 팔면서까지 판매확장에 매달리는 것이다. 가입초기에 한꺼번에 물품을 구매하고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 생활하다 보면 500만원 이상의 목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은 뻔하다. 여자 휴학생들의 경우에는 친구들에게 갑자기 임신을 하게 됐다며 동정심을 불러 일으켜 돈을 빌리기도 한다니 딱한 일이다. 다단계 회원들은 초·중·고 졸업앨범에 수록된 전화번호를 통해서 친구들을 끌어 들이기 때문에 1명이 다단계에 빠져들면 다른 동창생들도 덩달아 가입해 도미노 현상처럼 급속하게 퍼져 나간다. 문제점은 이곳을 빠져나온다고 하여도 경제적인 손실과는 별도로 정신적인 공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다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후유증에 시달린다는 사실이다. 휴학생들이 거짓말로 수천만원을 끌어다 쓰고 겪는 심적인 고통을 생각하면 불쌍하기 짝이 없다. 방학에 돌입하는 이맘때쯤 불법 다단계 회사들이 더욱 활개를 치고 있으니 저소득층 대학생과 휴학생들은 부디 정신을 똑바로 차려주기 바란다. 한달에 백만원 벌기도 힘든 세상에 천만원이라니 당찮은 소리다. /淸河

빚진 죄인

‘빚준 상전이요 빚 쓴 종이라’고 했다. 빚 진 사람은 빚준 사람에게 굽죄여 지내게 된다는 말이다. ‘빚진 죄인’은 빚을 진 사람이 빚장이 앞에서 심기가 죽어 마치 죄를 지은 사람과 같이 됨을 일컫는 말이다. 돈 없는 사람들이 꾸어 쓰는 빚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빚을 갚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다. 요즘 경기 악화로 빚을 못 갚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신용정보회사의 지나친 빚 독촉으로 서민사회가 그야말로 불안에 떨고 있다. 법원에서 발행한 것처럼 붉은 줄이 인쇄된 ‘재산압류 강제신청예고장’을 보내는가 하면 늦은 밤과 새벽에 수시로 전화를 걸어 형사고발을 거론한다. 채무자의 상황을 고의로 주변에 알리고 채무자 가족에게도 협박성 빚독촉을 한다. 집을 비우면 대문에 ‘경고장’을 붙여놓기도 한다. 빚을 대신받아 주는 일, 추심(推尋)을 하는 신용정보업체가 증가하면서 생긴 업체간의 과당경쟁이 무리한 빚독촉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전국에 대리점을 두고 영업이익을 본사와 대리점이 절반씩 나누는데다 직원의 64%가 계약직으로 실적에 따라 봉급이 결정되기 때문에 인정 사정이 없다. 그러나 ‘폭행 또는 협박, 위계나 위력을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된 현행 법규를 감안하면 지나친 빚독촉 행위는 온당치 못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의 신용불량자는 250만명 정도라고 한다. 급속한 경기침체로 내년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어디 250만명뿐이겠는가. 아마 2천500만명은 될 것이다. 많거나 적거나 빚은 서민들의 가슴을 짓누른다. 남의 돈 꾸어 쓰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淸河

家臣정치

권노갑씨를 가리켜 전직 대통령들 가신, 즉 전두환씨의 장세동, 김영삼씨의 김동영 최형우씨 등과 흔히 비유하지만 다르다. 주군에 대해 충성을 다하는 가신인 점에선 같지만 장세동, 김동영, 최형우씨 등의 주변엔 이렇다할 별 말썽이 있지 않았다. 장씨는 주군의 하사금을 그때 그때 모았던 것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 어르신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김·최씨는 평생 김영삼씨를 위해 몸바치다가 김씨는 주군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못본 채 암으로 타계하고 최씨는 주군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긴 보았으나 얼마 안가 중풍으로 몸졌다. 이들과 권씨의 차이엔 또다른 점이 있긴 있다. 장씨는 청와대 경호실장과 안기부장, 김씨는 정무장관, 최씨는 내무장관을 거치는등 관직을 지낸 것에 비해 권씨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벼슬을 지낸 다른 주군의 가신들보다 벼슬을 안지낸 백면의 권씨 실세가 더 막강했던 사실은 요지경이다. 국가 공권력은 공적 조직에 의해서, 여당의 당권력은 공식 기구에 의해 소통돼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도 당·정이 비선의 이면에 의해 좌우된 것이 곧 대통령의 측근정치다. 대형 의혹사건때마다 여권실세의 K가 들먹거려진 것은 우연인지 아닌지 궁금하다. 권씨가 민주당 최고위원직을 사퇴, 2선에 물러갔다지만 김대중 대통령과의 비선이 청산되지 않으면 가신정치 폐해 추방에 아무 의미가 없다. 어찌 권씨만의 책임이겠는가를 생각해 본다. 권씨가 무소불위의 힘을 얻은 것은 그를 그렇게 할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대통령의 책임이 더 크다. /白山

남북간 電力

평북 삭주군 수풍면 수풍리에 압록강을 가로질러 만든 길이 900.7m의 거대한 댐이 있다. 수풍댐이다. 106.4m의 댐 낙차를 이용한 수풍수력발전소가 같이 있다. 1937년 10월 착공, 1943년 11월에 각 10만㎾의 발전기 1∼6호가 가동하게 됐다. 1945년 8월 15일 해방되고 나서 소련이 4·5호 발전기를 철거해 갔으나 1958년 9월 소련의 원조로 6·25때 약 70%가 파괴된 시설과 함께 4·5호도 완전 복구됐다. 수풍수력발전소는 댐을 만들 때 당시 만주국과 합작으로 건설, 전력을 나눠 쓴 전례에 따라 지금도 70만㎾ 가량의 발전량 가운데 약 40만㎾는 중국에 송전하고 있다. 수풍댐은 만든지 이미 60년이 지났으나 앞으로도 150년의 수명을 지녔을 만큼 견고하다. 8·15 광복과 함께 3·8선이 생겼지만 처음엔 인적·물적 교류가 자유로웠다. 아울러 수풍수력발전소의 전력도 남쪽에 계속 송전됐었다. 북쪽이 송전을 갑자기 중단한 것은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회의로 신탁통치문제가 제기돼 찬탁, 반탁의 좌우익 갈등이 폭력화 하면서였다. 북측의 송전중단으로 남측은 가정에 제한배전조차 어려운 이루 말할 수 없는 전력난 고초를 겪었다. 지금의 남북한 발전설비 용량은 4천705만㎾대 739만㎾로 북측은 남측의 약 5.6분의 1에 머문다. 평양서 열린 지난 4차 장관급회담에서 당장 50만㎾(건설비 6천억원), 장차는 200만㎾(KEDO건설의 경수로 100만㎾급 2기규모)의 전력지원을 남북협력사업 지속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전력지원 약속이 없으면 더이상의 다른 협의도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단 우회적으로 논의를 모면했지만 경제가 어려운 실정에서 내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주목된다. 북측 전력사정이 가정마다 백열등 한두개 켤 정도인 것을 보면서 수풍댐 송전중단으로 겪던 55년전의 우리측 전력난이 새삼 생각난다. ※고침:어제 본란 본문 입력에 착오가 생겨 죄송합니다. 어제의 ‘남북간 電力’ 제목을 ‘관제 동원’으로 바로잡습니다.

관제 동원

일부 중앙지에 보도된 지난 일이지만 짚고 넘어가야겠다. 대통령 귀국길에 공무원 수천명을 환영군중으로 동원했다는 기사는 마치 타임머신으로 근대사회에 희귀한 느낌을 준다. 1970년대 유신정권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에 가면 수령방백들은 군중동원에 혈안이 됐다. 길가에 나무를 급히 가식(나중엔 뽑게 된다)해 놓거나 속은 생짚단에 겉뿐인 가짜 두엄더미를 눈에 띄는 곳곳에 만들어 식수와 퇴비증산을 강조한 대통령의 비위맞추기에 열올리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에서는 역시 군중의 관제동원에 당시 시골선 차가 귀하던 때라 사람을 말이나 소달구지로 태워나르기가 일쑤여서 ‘민의’란 말 말고 ‘마의’, ‘우의’란 웃지못할 조어가 생겼다. 그후, 80년대 들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정권에서는 그같은 동원을 볼수 없어 이젠 사라졌는가 싶더니 김대중정권에서 갑자기 관제동원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은 유감이다. 벌써 보도된대로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고 귀국하는 14일 정부는 중앙부처, 서울시별로 담당구역을 정해 공무원들로 하여금 연도 인파를 만들도록 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아서 어쩐지 똑같은 태극기를 든 환영군중이 많다 싶더니만 역시나 관제동원의 꿍꿍이속이 있었던 것이다. 관제동원된 위장시민인줄 알길없는 대통령은 내심 흡족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크게 욕보인 셈이 됐다. 도대체 그같은 전근대적 발상을 한 장본인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대통령주변에 이런 위인이 있으면 있을수록이 나쁜 부담이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그냥 넘어갈 일이 못된다. 관제동원한 장본인을 색출,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엄중조치해 하는 것이다. /白山

비밀은 없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뜻으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다.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이 말이 더욱 실감이 난다. 비밀을 영원히 지키기 위해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사서(史書)나 무협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멸구(滅口)’다. 당사자를 죽여 비밀이 새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어떤 경우는 당사자 스스로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결하는 소위 충성심을 보이기도 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과 똑 같은 ‘사지(四知)’라는 말이 있다. 중국 동한(東漢) 안제(安帝)때의 양진(楊震)은 박학다식하고 인격도 출중하여 많은 사람의 찬사와 공경을 받았는데 동래구 태수(太守)로 제수됐을 때다. 부임 도중 창읍(昌邑)에서 날이 저물어 객사에 머물게 되었다. 그때 창읍현 현령인 왕밀(王密)이 찾아와 슬그머니 황금 열냥을 내놓았다. 예전에 형주 자사(刺史)로 있을 때 자신을 천거, 출세길을 열어준 은혜에 보답하려는 것이었다. 양진이 말했다. “나는 자네를 잘 알고 있네만 자네는 나를 아직 잘 모르고 있구만” “저는 단지 보은의 뜻으로 조그만 정성을 표시할 뿐 입니다” 그래도 양진이 황금을 계속 거절하자 왕밀이 말했다. “이 한 밤중에 저와 태수님만 아는 일입니다. 부디 제 정성을 받아주십시오” 양진이 다시 말했다. “이 사람아, 자네와 나 둘뿐이라니? 하늘이 알고(天知) 땅이 알며(地知) 자네가 알고(子知) 또 내가 알고 있네(我知). 그 무슨 소린가?” 왕밀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돌아갔다. 양진의 청렴결백한 언행을 두고 두고 인구에 회자됐다. 아닌가 아니라 이 세상에 비밀이 어디에 있는가. 양진같은 사람이 우리 한국에 과연 몇명이나 있겠는가. 양진 앞에서 얼굴을 붉히고 물러간 왕밀같은 사람이라도 많다면 다행이다. /淸河

수능 0점

2001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 성적 발표 결과 지난해 1명이던 만점자가 66명이나 나왔다. 수험생 전체 평균도 지난 해보다 27.6점이 뛰어오르는 등 극심한 성적 인플레를 보였다. 360점 (100점 만점 환산시 90점)이상 고득점자도 12만514명으로 지난해 4만6천506명보다 7만4천8명이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까지 서울대와 명문 사립대 상위권 지원가능 점수였던 380점 이상 고득점자가 지난해의 5배를 웃도는 3만5천141명에 달해 올 대학입시에는 중상위권 수험생들의 입시경쟁이 눈물겹도록 치열하다. 대학입시생들의 성적이 이렇게 향상되었는데도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난이도 조절실패는 물론 지나치게 쉬웠던 ‘수능’탓이다. 물론 ‘수능’에 대한 교육당국의 기본방향이 문제를 쉽게 출제함으로써 학생들의 입시부담을 낮추고 과외 등의 사교육비를 줄여 학교교육을 정상화하자는 데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입시정책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괴외가 없어지기는 커녕 새로운 입시제도에 부응한 새로운 과외가 다시 등장하는 악순환을 거듭했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지금의 ‘수능’사태는 교육당국의 비현실적인 상황파악, 제도변화가 있음에도 이를 따르지 못하는 점수만능주의의 진학지도, 그에 맹종하는 학생·학부모 그리고 학생선발에서의 자율권만을 주장할뿐 자체적인 학생선발 노력은 기울이지 못하는 대학당국 등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모두의 책임이다. 그런데 고득점자가 그렇게 증가했는데 0점자가 25명이 나왔다는 사실에는 참담해진다. 이름과 수험번호를 적고 백지답안을 내 0점을 받은 수험생이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전과목의 전영역을 표기하고도 0점을 받은 경우도 있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고등학교 3년을 아니 중학교까지 합쳐 6년간 학교를 헛다닌 셈이다. 아무리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세상이지만 400점 만점에 0점이라니 절망스럽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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