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가을을 상징하는 ‘단풍(丹楓) ’은 단풍나무를 비롯해 당단풍나무·고로쇠나무·시닥나무(신나무)·청시닥나무·복자귀나무(나도박달나무)등과 같은 단풍나무과의 나무를 통틀어서 지칭한다. 다른 하나는 가을에 붉거나 노랗게 물든 나뭇잎 또는 그 현상을 말함이다. 단풍의 빛깔은 참으로 다양하다. 단풍나무·옻나무·벚나무·붉나무·화살나무·담쟁이덩굴·감나무 등의 단풍은 빨갛다. 은행나무·고로쇠나무·생강나무·시닥나무 등은 노랗다.우리나라 활엽수림의 주종을 이루는 신갈나무·갈참나무·굴참나무·상수리나무 등의 참나무류와 밤나무 등은 대부분 갈색으로 물든다. 이러한 현상은 나뭇잎에 함유된 색소의 종류와 양에 따라서 나타난다고 한다. ‘안토시안 ’이라는 색소는 붉은 단풍, ‘카로티노이드 ’는 노란 단풍을 만든다. 참나무류의 잎에는 안토시안이나 카로티노이드같은 색소가 없는데도 갈색 단풍이 든다. 엽록소가 파괴되어 녹색이 없어지고 잎이 마르기 때문이다. 단풍은 하루의 평균 기온이 15℃이하, 최저 기온이 5℃가 될 무렵부터 들기 시작한다. 단풍의 빛깔은 그늘보다 햇살이 잘 드는 양지, 평지보다는 산지, 비가 많은 곳보다는 적은 곳. 기온의 일교차가 큰 곳일수록 더 곱다. 대체로 단풍의 색깔과 선명도는 햇빛이 잘 드는 곳이 그렇지 않는 곳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뚜렷하다. 설악산 대청봉(1708m)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드는 곳이다. 대청봉에서 9월 하순경부터 시작된 단풍은 산 아래로는 하루에 50∼60m씩, 남쪽으로는 약25㎞씩 내려간다고 한다. 단풍이 들면 산비탈과 능선의 풀숲에는 독특한 빛깔과 모양을 갖춘 가을꽃이 서정시처럼 피어난다. 쑥부쟁이·구절초· 해국·개미취·울릉국화·산국·감국·참취·각시취 등의 국화과 식물이 주종을 이룬다. 그중에서 보통 ‘들국화’로 통칭되는 쑥부쟁이·구절초·개미취· 울릉국화·산국·감국 등은 유난히 꽃도 아름답고 향기도 짙다. 국화과의 꽃도 아름답지만 투구꽃·그늘돌쩌귀·이질풀·산부추·마타리·나도송이풀·꽃향유 등도 나날이 짧아지는 가을햇살 아래 수줍은 듯이 꽃부리를 펼치는 토종식물들이다. 이렇게 가을은 나무들이며 꽃들의 이름만 들어도 정겹고 풍요롭다. /淸河

민간교류의 북측 민간인

공산당 선언은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 강령을 요약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1당 독재를 제창했다. 계급이 없고 능력에 의해 기여하고 필요에 의해 수요되는 완전한 사회주의로 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세월이 흘렀다. 개혁 개방에 성공한 중국 공산당은 내년 가을 제16차 당 대회에서 사기업 자본가등도 당원으로 입당시키는 것을 당 헌장에 명시할 것이라고 한다.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3개 대표론이다. 당명도 전민당(全民黨)으로 바꿀 것을 검토하다가 과제로 남겼다. 다당제도 검토되고 있다. 놀라운 변화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변화를 모색하면서도 중국처럼 변화하기 어려운 것은 수령론의 김일성주의에 있다. 노동당 말고도 몇개의 당이 있긴 있으나 노동당의 들러리인 간판뿐으로 실제는 1당 체제다. 노동당 당원이 되어야 근로 인테리층에 든다. 남북간의 민간교류 협력을 말하지만 북측에 순수한 민간인은 없다. 비록 신분은 민간인 이어도 노동당 당원이다. 남쪽의 노총에 해당하는 직업동맹도 그렇고, 교수나 문인도 그렇고, 종교인이나 언론인도 당원이다. 기업체(국영) 기업인도 당원이다. 이산가족 상봉도 아마 당원이 많이 차지할 것이다. 이에비해 대북 민간교류 접촉을 갖는 대한민국 민간 인사들 가운데는 예컨대 집권당인 민주당이나 야당인 한나라당, 자민련 당원이 없을 것이다. 또 북측 노동당과 남측 정당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크다. 조선노동당 규약은 당원을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위하여 헌신하는 주체형의 공산주의 혁명투사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냉전적 보수론이라고 책잡힐지 모르겠으나 무서운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땅에서 전쟁만은 있어서는 안된다. 동족상잔의 참상을 되풀이 하는 것은 민족에 대해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 그래서 이념을 위한 이념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남북 교류가 있어야 하는 것은 지상명제다. 당국자는 당국자끼리 만나고 민간인은 민간인끼리 서로 자주 만나야 한다. 북측의 민간인은 남쪽 민간인과는 다른 노동당 당원이라해도 만날 수 있으면 만나야 하는 것이다. 다만 옳은 이해를 위해서는 만나도 북측을 제대로 알고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白山

D·E급

나무기둥에 벽은 수수깡을 엮어 짚을 작두로 쓴 지푸라기를 함께 버무른 황토흙을 발라 집을 지었다. 구식 한옥이 이런 집이다. 그래도 수백년 갔다. 수십년 가기는 예사였다. 요즘 집은 어떻게 된판인지 20년만 가면 헐어내야 한다고 야단들이다. 노후 건물이라는 것이다. 단독주택도 대개는 그렇고 아파트나 다세대주택도 대부분 이모양이다. 도내에 안전이 우려되는 노후건물이 275곳에 이른다고 한다. 서울은 2천500곳으로 전한다. 주민들은 벽체가 갈라지고 뒤틀려 불안하지만 갈곳이 없어 ‘설마’하나만 믿고 살고 있는 실정이다. 재건축을 할려 해도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은행융자도 어렵지만 갚을 대책이 없어 무작정 끌어 쓸 수도 없는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주택뿐만이 아니다. 교육부자료에 의하면 전국의 초·중고교 가운데 개축이 시급한 D급, 철거대상인 E급 판정의 교실이 84개교에 110개 건물이다. 이 역시 지은지 아마 20여년밖에 안됐을 것이다. 또 있다. 각종 공공시설물도 역시 이모양이다. 예컨대 1994년 붕괴사고로 참사를 낸 성수대교가 새로 가설된지 얼마 안됐는데도 벌써 위험요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철제 구조물이 곳곳에서 뜨고 콘크리트도 얇아 보수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제1한강철교는 1900년7월5일 준공된지 100년이 지났어도 아직껏 어디가 잘못됐다는 소릴 듣지 못했다. 이에 비해 성수대교가 아니라도 다른 한강다리는 걸핏하면 수중에선 다 썩어가고 있는 것처럼 들리곤 한다. 한강철교는 수작업형태로 한 공사였다. 이에비해 지금은 각종 장비를 동원한다. 장비를 동원한 기계작업의 다리가 수작업형태의 다리보다 못하고, 나무기둥에 흙벽을 바른 집보다 못한 것이 지금의 철근 콘크리트 주택이다. 외국의 같은 공공시설이나 주택은 100년이 지나도 끄떡 없다는데 우리는 20년만 지나도 D급이다 E급이다 해서 걱정이다. 건축법 등 관련 법규가 잘못돼서가 아니다. 기술이나 재능이 없어서도 아니다. 법규나 기술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도 이 모양이다. 이것도 고쳐야 할 ‘한국병’이다. 고치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白山

부천시의 오픈세트 유치

실물을 방불케하는 고려 황궁, 화살이 비오듯이 교차되는 성벽 전쟁터, 전함이 전열한 해상의 장관 등, 이런 텔레비젼 드라마 촬영은 오픈세트에 의존한다. 촬영현장은 당연히 흥미를 끌기 마련이다. 텔레비젼 사극의 오픈세트 유치로 재미를 본 곳이 충북 제천시다. 지난 3월 ‘태조왕건’(KBS)의 해상세트가 충주호에 들어선 이후 평일 1천여명, 주말 3천여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고 한다. ‘태조왕건’의 메인세트가 세워진 경북 문경군 조령도립공원도 지난 6개월 동안에 연 2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그러나 다 재미를 보는 것은 아니다. ‘홍국영’(MBC)을 촬영하는 충북 충주시 살미면 재오개리 세트장엔 예상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평일 300명, 주말 1천500명선에 머문다고 한다. 해당 자치단체가 오픈세트 건립에 소요되는 경비의 상당액을 부담하기 때문에 관광수입이 그에 못미치면 되레 큰 손해를 본다. 사극의 오픈세트 유치를 덮어놓고 좋아할 것은 못된다. 충북 진천·옥천군은 최근 ‘상도’(MBC)의 오픈세트 건립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보도됐다. 자치단체에 지원을 요구한 금액이 세트 조성비 20억원의 절반인 10억원에 이르러 관광수입 타산에 재정부담이 너무 많아 없었던 일로 했다는 것이다. 부천시가 상동 택지개발지구에 시대극 ‘야인시대’(SBS) 오픈세트 건립을 방송사측과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193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의 서울 종로, 광화문, 명동, 청계천, 을지로 일원의 거리를 재현한다는 것이다. 연간 20억원의 입장객수입과 부대수입을 기대하는 모양이다. 물론 잘 되기를 바라지만 의문도 있다. 충북 제천, 경북 김천시와 치열한 경쟁끝에 유치했다고 한다. 얼마나 유치경쟁이 치열했는지 궁금하다. 이 과정에서 오픈세트 건립비 30억원 가운데 가당치 않게 많은 지원비를 떠맡지나 않았는지 확실한 내용을 알고싶다. 사극이 아닌 시대극의 오픈세트는 현대생활과 비슷한 점이 많아 호기심이 사극보다 덜하다. 이에 연간 입장객 수를 얼마나 예상하고 있는지도 밝힐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드라마의 인기도가 오픈세트 관광을 좌우한다. 부천시는 ‘야인시대’의 흥행성을 검토해 봤는지 묻는다. /白山

한글날은 국경일

1991년 경제적인 논리로 10월 9일 한글날을 국경일에서 기념일로 격하한 것은 당시 노태우 정부의 과오 중 과오다. 10월에 공휴일이 너무 많아 ‘ 국군의 날 ’과 ‘ 한글날 ’을 공휴일에서 빼버리자고 각의가 의결했으니 돌이켜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민속명절 설날을 연휴로 실시하고 있으면 소위 신정연휴를 없애야 한다. 새해 첫날부터 일을 열심히 해도 시원찮은 판국에 왜 새해 첫날부터 놀고 먹는가. 식목일도 그렇다.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나무를 심어야지, 왜 나무 몇 그루 심어 놓고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는가. 식목일을 나무 심는 날로 여기는 국민보다는 봄철에‘ 하루 노는 날 ’로 즐기는 사람이 더 많을 게 분명하다. 내년 6월엔 지방선거가 실시될 것이다. 투표일도 임시 공휴일로 하지 말아야 한다. 중앙이건 지방이건 정치판도가 도무지 맘에 안드는 이유도 있지만 선거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했기 때문에 투표보다 놀러갈 생각이 더 많아 투표율이 저조한 것이다.직장인들이 출근하고나서 잠시 틈을 내 투표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10월1일 ‘ 국군의 날 ’을 국경일에서 제외한 것도 마땅치 않다. 대한민국 국군 창건일을 대수롭지 않게 보다니, 6·25전쟁을 겪은,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돼 있는 나라가 과거를 잊다니 기가 막힌다. 무엇보다도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그것도 국경일에서 제외한 것은 우리 민족을 스스로 비하시킨 부끄러운 처사다. 한글은 단순히 우리나라의 문자라는 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독창성이나 과학성으로 보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탁월한 문자이다. 혹자들은 걸핏하면 ‘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니‘ 삼천리 금수강산 ’을 자랑하지만 우리보다 역사가 오랜 민족은 이 지구상에 얼마든지 있다. 경관 빼어난 곳이 한반도 삼천리 강산뿐만은 아니다. 한국만의 자랑이 있다면 바로 ‘ 한글 ’이다. 만일 한글이 없었다면 아마 중국이나 일본 어느 한 나라에 예속돼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의 역사가 그렇지 아니한가. 한글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은 한글을 사용할 자격도 없다. 한글 안 쓰고, 읽지 않고 하루인들 살수 있겠는가. 주 5일 근무제를 밀어붙이고 있는 김대중 정부가 한글날을 국경일로 다시 제정하는지 그대로 놔둘 것인지 눈여겨 보는 국민이 많다. / 淸河

경기민요

경기민요는 서울과 경기도지방을 중심으로 불려지던 민요다. 충청도 북부의 일부와 강원도지방의 일부 민요들도 포함하고 있어, 중부지방 민요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여진다. 전문적인 소리꾼들에 의해 불려진 통속민요와 그렇지 않은 토속민요가 있는데 ‘노랫가락 ’‘창부타령 ’‘방아타령 ’‘양산도 ’‘오봉산타령 ’‘사발가 ’‘군밤타령 ’‘흥타령 -천안삼거리 ’‘강원도아리랑 ’등의 통속민요가 잘 알려져 있다. 연주형태에 따라서 앉아서 부르는 소리 좌창(坐唱)과, 서서 부르는 소리 입창(立唱)으로 나누어진다. ‘노랫가락 ’‘오봉산타령 ’‘양유가 ’등이 좌창, ‘양산도 ’‘ 방아타령 ’‘경복궁타령 ’등이 입창에 속한다. 남도민요에 비해 한 글자에 여러 개의 음이 붙는 일자다음식의 선율이 많아, 가락의 굴곡이 유연하면서도 다채롭고 명쾌하다. 경기도지방의 토속민요는 오래 전 서울의 영향을 받아서 이미 많이 없어졌다. 1960년대 이후 녹음에 의해 채집된 민요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음악적 특징을 찾아내기 힘들다. 그러나 ‘ 양산도 ’‘ 방아타령 ’과 같은 통속화된 민요를 통해서 옛날 경기지방의 토속적인 민요도 얼마만큼 명쾌하고 흥취있는 가락과 장단으로 짜여져 있었는가를 유추할 수 있다. 경기민요 가운데 “아니,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창문을 닫아도 스며드는 달빛, 마음을 달래도 파고드는 사랑 ”이라는 ‘창부타령 ’이 있다. 이 ‘창부타령 ’을 감칠 맛 나게 불렀던 명창 지화자(池花子)씨가 지난 1일 59세로 타계했다. 명창 묵계월(81·인간문화재 57호)씨의 제자인 고인은 시흥시 군자면 출신으로 청아하면서도 뼛속 깊이 파고드는 음색으로 노래 듣는 이들을 사로 잡았다. 묵계월·이은주씨와 타계한 안비취·김옥신씨 등을 잇는 경기민요 2세대로 주목받았던 고인은 전주대사습 민요부문 심사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특히 국악의 대중화에 힘썼다. 3일 오전 10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범국악인장으로 영결식이 있었는데 애제자 10여명이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민요인 ‘ 한오백년’을 불렀다. 경기명창 지화자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淸河

메밀꽃 피는 계절

메밀은 모밀·메물이라고도 부르며 한자어로는 교맥(蕎麥)이라고 한다. 꽃은 7 ∼10월에 피며 보통 흰빛깔인데 때로는 담홍색을 띠기도 한다. 메밀은 한발이나 추위에 잘 견디면서 생육기간이 짧아서 흉년 때의 대작(代作)이나 기후·토양이 나쁜 산간 흉작지대의 응급작으로의 적응성이 크다. 영양가가 높으면서도 저장력이 강한 특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는 메밀은 주로 여름에 심어 초가을에 수확하기 알맞은 가을메밀이다. 여름메밀은 7월 하순에서 8월 상순, 가을메밀은 10월에 수확한다.메밀은 단백질이 많아 영양가가 높고 독특한 맛이 있어 막국수·냉면·묵· 만두 등의 음식으로 널리 쓰인다. 특히 제주도에는 메밀가루로 만든 수제비 ‘ 메밀저베기 ’가 유명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메밀이 강원도 평창군에서만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원도 평창군 출신 소설가 가산 이효석( 可山 李孝石·1907 ∼1942)선생이 1936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모밀(메밀)꽃 필 무렵 ’이 하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밤중을 지날 무렵인지 죽은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의 걸음도 시원하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의 한 대목이다. 이효석의 소설로 더욱 유명해진 메밀꽃은 여주를 비롯 전국 각처에 단지를 이룬 곳이 많지만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일대 메밀꽃밭은 특히 더 아름답다. 소설 속의 허생원·조선달· 동이가 등장하는 봉평장터와 아닌 게 아니라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꽃밭,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단 한번의 정사를 나눈 물레방앗간도 그대로 남아 있다. 평창군에서는 지난 8월31일부터 9월3일까지 제3회 효석문화제를 열어 이효석문학과 메밀꽃 향기를 기렸다. 경기도에서도 자연과 어우러진 문화제가 열린다면 오죽 좋으랴.아무튼 요즘 봉평에 가면 4만여평에 그윽히 핀 메밀꽃 꽃길 사이를 걸을 수 있다. 봉평장터나 이효석 생가에서 메밀전을 안주 삼아 메밀주도 마실 수 있다. 지금은 바야흐로 메밀꽃 피는 가을이다. /淸河

루비콘 江

BC 49년의 일이다. 로마의 케사르는 크랏수스의 사망으로 삼두정치가 무너져 폼페이우스와의 결전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같은 사정은 폼페이우스 역시 같았다. 폼페이우스는 원로원과 결탁, 케사르를 실각시키기 위해 갈리아 지방에 나가있는 케사르의 군 지휘권을 박탈, 단신으로 귀환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케사르는 이에 응하지 않고 폼페이우스 제압을 위해 대군을 이끌고 이탈리아와 갈리아의 국경지대인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했다. 이때 케사르가 한 말이 지금도 유명한 ‘루비콘강을 건너다’‘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는 말이다. 어떤 중대한 결단을 내릴때의 ‘루비콘강을 건너다’, 예측 불허의 모험을 감행할때 쓰는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는 서양속담은 그때 케사르가 한 말에서 유래했다.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안 국회 가결사태가 가져온 DJP공조 균열은 마침내 결별을 가져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넜다. 민주당과 자민련은 루비콘강을 건너므로써 이미 주사위를 던진 가운데 공조파기의 책임을 서로가 전가하고 있다. “공조와 표결은 별개인데도 이를 구실로 민주당은 공조를 부순다”는 자민련의 주장에 “표결공조의 거부 자체가 배신”이라는 것이 민주당측 주장인 것이다. 공조란 원래가 그런 것인지, 숙적이 되고만 케사르와 폼페이우스도 한동안은 공조관계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DJ가 곧 단행할 대대적인 당정개편의 결과가 주목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정쇄신이다. 당정개편을 하면 그와함께 국정쇄신 방안 또한 아울러 밝혀야 한다. 나무를 파먹는 좀벌레 처럼 나라를 좀먹는 오두(五두)란 게 있다. 한비자(韓非子) 오두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라 안의 백성 모두가 정치를 말하고, 상앙과 관중의 법을 적은 책을 집집마다 갖고 있지만 나라는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밭갈이를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쟁기를 잡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또 나라 안 모든 사람들이 다 병법을 말하고 손자와 오자의 병법을 적은 병서를 집집마다 갖고 있지만 군대는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입으로 말을 앞세우는 사람만 많을뿐 실제로 갑옷을 입는 사람은 적기 때문이다’라고. /白山

성범죄자 공개

소도시 한적한 오솔길에서 식료품을 사들고 가던 소녀가 두 건달들에게 무참히 윤간당한다. 작업중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버지는 만신창이가 된 딸이 “식료품을 망가 뜨려서 죄송해요…”하는 말에 오열을 터뜨린다. 마침내 범인들이 보석신청을 내어 석방이 거의 확실해진 분위기속에 보석신청 심리를 받으러가는 두 범인을 향해 아버지는 기관총을 난사해 죽이고 만다. 통분을 참지못한 부정으로 살인죄를 진 아버지는 ‘무엇이 정의냐’며 고독한 법정투쟁을 벌인다. 미국 영화 ‘타임 투 킬’이다. 조엘 슈마허 감독에 사무엘 젝슨이 아버지역을 맡았다. 성범죄자 명단이 공개되자 찬반 양론속에 부작용이 여간 심각하지 않다고 한다. 아버지가 성범죄자인 것을 알게된 딸이 가출을 하는가 하면 아내마저 역시 행방을 감춘 사례가 적잖다는 것이다. 본인도 이미 죄의 대가를 치룬데다가 명단까지 공개되는 것은 이중 고통일 것이다. 아무 죄없는 가족이 누구의 아버지, 아무게의 남편이 이런저런 성범죄자로 알만한 사람에게 공개되는 역시 견디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그래서 반대하는 말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의 불행을 싹틔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형사정책 역시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문제의 해답은 어느쪽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사회 공익에 우선하느냐에 있다. 만약에 반대론자가 피해자의 부모라면 그래도 반대할 수 있을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영화 ‘타임 투 킬’의 소녀 아버지는 영화속에서만 있는게 아니다. 미국에만 있는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 주변에도 그런 위험요소는 다분하다. 성범죄자는 신상공개로 본인뿐만이 아니고 가족들에게까지 누를 끼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움으로서 여성을 보호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공개가 부득이 하다. 인권보호가 우리보다 잘된 미국에서는 ‘여기엔 성범죄자가 삽니다’라는 팻말가지 붙인다고 한다. 우린 그같은 팻말은 안붙인다. 아버지나 남편이 일시적 과오로 공개된 가족들은 어려운 고통을 슬기롭게 극복해 주기를 소망한다. /白山

ARS

복권 3웍원짜리가 당첨됐다. 시흥에 사는 어느 40대 당첨자는 꿈만같아 당첨을 안내하는 ARS(자동응답전화시스템)를 통해 네번이나 거듭 확인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막상 당첨금을 타려고 가니까 ARS가 고장나 잘못 안내됐다는 것이다. 며칠전 신문에 난 얘기다. 그 사람은 소송제기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런 일이 아니어도 ARS를 이용하다 보면 분통 터지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란 게 중론이다. 어떤곳은 안내에 앞서 자체 선전부터 시작하는게 있다. 어떻든 ○○은 ○번, XX은 X번 등 이런식으로 해서 또 △△은 △번을 해가며 여러차례 이어 나가기가 일쑤다. 대부분의 ARS가 안내번호를 지나치게 많이 녹음해놔 연결하는데 시간이 지루하도록 오래 걸린다. 이용자로써는 불필요한 번호 설명을 듣다보니 짜증이 난다. 거기다가 발음이 잘 안들려 다시 듣자면 처음부터 또 들어야 한다. 핸드폰으로 이용하면 통화료 또한 만만치가 않다. ARS는 수년전 시작하여 이제는 거의 보편화되긴 됐다. 말인즉슨 서비스 개선이라지만 인건비 절감이 목적이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것을 나쁘다 할 수 없겠지만 글쎄, ARS가 꼭 좋은 것인지는 판단하기가 간단치 않다. 녹음도 사람의 목소리다. 전화통화도 역시 사람의 목소리다. 다같이 사람의 목소리지만 녹음은 마치 기계소리를 듣는 것 같다. 대화가 아닌 일종의 로봇이기 때문이다. “벽을 마주보고 듣는것 같은 삭막한 기분이 든다”는 것은 ARS를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의 얘기다. ARS는 고독감을 준다. 인간미를 빼앗는다. 인간사를 너무 기계화 한다. 이러다 보니 어쩌다가 녹음이 아니고 사람이 직접 안내하는 육성을 듣게 되면 무척이나 반갑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인정을 느낀다. 육성안내를 해주는 기관이나 업체에 호감이 가기도 한다. ARS 대체로 경비가 얼마나 절감되는진 모르겠다. 그렇지만 육성안내는 ARS가 갖지 못하는 큰 강점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 자산의 잇점이 많다. 굳이 복권소동 처럼 시스템 고장이 아니어도 ARS는 썩 좋은건 못된다. ARS보다 육성안내가 훨씬 더 많아지면 좋겠다. /白山

단속 희망

어떤 업종이든 기관에서 단속나오는 것을 좋아할 업소는 없다. 그러나 엊그제 지지대자는 자신을 노래방 경영자라고 소개한 시민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제발 좀 노래방을 단속토록 해달라는 호소였다.불법·변태영업을 일삼는 탈선 노래방들을 도대체 언제까지 방치할 것이냐는 항의도 곁들였다. 그 시민은 자신을 포함한 정상적인 노래방 업주들의 피해도 문제려니와 노래방 문화가 당초처럼 건전하게 정착되기 위해서는 경험으로 비춰 강력한 단속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소신도 함께 밝혔다. 도하 각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 이미 오래 전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일부 노래방 변태영업은 이미 그 도를 지나쳤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근절불능의 사회악이 될 게 분명하다. 요즘의 일부 노래방은 마치 유흥주점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흥청거린다. 절대금물인 술을 비롯 과일 안주 등을 나르는 종업원들과 짙은 화장에 화사한 의상의 여성들이 복도를 오가는 광경은 누가 봐도 절대로 노래방이 아니다. 게다가 시간당의 봉사료를 받고 노래방 손님들과 어울리는 ‘ 도우미 ’들의 언행은 손님들을 오히려 당황케 한다. 현재 전국에는 노래연습장업연합회에 공식 가입한 3만여 업소를 포함, 약4만∼5만여개 노래방이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 주변에서는 이 가운데 수도권 대도시의 경우 지역별로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60%의 업소가 각종 변태영업을 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같은 노래방의 불법·변태영업이 종종 매매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대부분이 주부들인 도우미들이 노래방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매춘을 뜻하는 소위 ‘2차’를 서슴지 않는 것이다. 불법·변태영업 노래방이 자리를 제공해주는 부적절한 행위는 가정파괴는 물론 폭력, 절도 등으로 이어져 혼탁한 사회악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단속이 참으로 시급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같은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단속을 희망하겠는가. 지지대자에게 전화한 시민의 주장대로 건전한 노래방 문화가 정착되려면 무엇보다 강력한 단속이 우선이다. 강권을 써서라도 선의의 피해자를 보호하고 윤리를 지키게 하는 일이 법치국가의 사회질서 유지방법이기 때문이다. /淸河

총 없는 경찰

얼마 전 경북 경주에서 강도 피의자가 경찰의 권총을 빼앗아 경찰을 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경찰이 처음부터 총을 꺼내 피의자를 제압했으면 이같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지만 숨진 경찰은 인명사고를 우려해 그저 몸으로 막으려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적절한 총기사용문제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경찰청 홈페이지에 개설된 토론방과 각 경찰서 홈페이지에 강력사건 발생시 총을 사용하지 않은 경찰을 비난하는 시민의 글이 빗발치고 있는 것이다. ‘위험할 때 안 쓰는 총을 왜 무겁게 갖고 다닙니까’ ‘경찰총은 비비탄?’등 비난성 글만 수백건이다. 현재 경찰의 총기사용 수칙은 1998년 7월 탈옥수 신창원 검거실패 후 대폭 완화됐다. 정당방위, 긴급피난에 해당하거나 장기 3년 이상의 범인이 항거·도주할 때에는 범인에게 총을 쏠 수 있게 했다. 또 간첩이나 살인·강도범, 무기·흉기사용범 검거시에도 실탄을 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일선 경찰들은 거의가 총 쏘기를 꺼린다. 실수로 피해자나 제3자가 총에 맞거나 범인을 맞추더라도 사용요건에 맞지 않을 경우 국가가 보상해야 하고 국가는 다시 경찰에게 구상권을 청구, 책임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총기를 한번 쓰면 진상보고서만 수십장 써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도 총기 사용을 꺼리게 한다. 경찰청 홈페이지에 뜬 ‘위험할 때 안 쓰고 언제 쓰나’라는 비난에 ‘경찰은 가족 없나, 총 쏴서 범인 죽으면 경찰 생명도 끝’‘경찰이 슈퍼맨인가, 사용규제 완화 없이는 몽둥이 들고 나가야 할 판’이라는 반응은 그래서 나온다. “총 안 쏴서 범인 놓쳐도 징계, 총 쏴서 범인을 맞춰도 징계라서 요즘 총은 거의 사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폼으로 차고 다니는 꼴”이라고 경찰들은 탄식한다. 그러나 경찰의 총기남용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순찰차에 태워달라는 취객에게 경찰이 실탄을 쏴 상처를 입힌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의 총기 휴대는 자신 보호용이 아니라 공무집행용이다. 범법자 검거용인 것이다. 문제는 범법자들이 경찰의 총기 사용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무법자들을 뒤쫓는 서부의 보안관이 맨손인 격이니 이래 저래 경찰은 고생이 많다. / 淸河

소설의 힘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김진명(金辰明)의 장편소설 ‘황태자비 납치사건’에 나오는 명성황후 시해 대목은 읽기에도 끔찍하다. 일본인의 만행이 독자들을 분노케 한다. 민망스럽지만 인용하면 이렇다. “스에마쓰 장관님, 정말로 이것을 쓰기는 괴로우나 건청궁 옥호루에서 민비를 시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보고를 드리고자 합니다. 민비는 강제로 저고리가 벗겨져 가슴이 훤히 드러난 상태로 머리채를 잡혀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낭인 하나가 거센 발길로 민비의 가슴을 밟고 짓이기자 또 하나의 낭인이 민비의 가슴을 칼로 베었습니다. 일은 그 후에 시작되었습니다. 왕세자를 불러 죽은 여인이 민비임을 확인한 낭인들은 모두 민비의 주위에 모여 들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의 가장 고귀한 여인을 앞에 두자 갑자기 숙연해졌습니다. 왕비를 시해했다는 기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조선 제일의 미녀를 앞에 두어서였는지…낭인들은 민비의 하의를 벗겼습니다. 한 낭인이 발가벗겨진 왕비의 음부를…숫자를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몇몇 낭인이 결국은 바지를 벗고 성기를 꺼내 왕비의 희고 깨끗한 몸에…정액으로 얼룩진 조선 왕비의 시체를 앞에 놓고 낭인들은 대일본 만세를 불렀습니다. ”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에서 일본의 낭인들이 조선의 명성왕후를 시해할 때,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전직 법제국 참사관이자 당시 조선 정부의 내부고문관이었던 이스즈카 에조가 한성공사관에서 법제국 장관이었던 스에마쓰 가네즈미에게 보낸 전문이라고 작가는 쓰고 있다. 한성공사관이 명성황후 시해사건 전말을 본국에 보고한 5장의 전문 중 일본이 극비문서로 보관했다는 ‘한성공사관 제435호 전문’내용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과정을 고발한 이 소설은 일본의 비윤리성과 잔학성을 한국인들의 비겁함과 함께 질타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우리의 황후를 모욕하고 시해할 때 조선 최고의 정예병들은 모두 어디에 있었느냐고 꾸짖고 있다.그러니까 오늘날도 일본이 우리를 이토록 혐오하고 멸시한다고 개탄한다. “우리는(일본만행을)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잊어 버렸다”고 스스로 조소하면서도‘황태자비 납치사건’은 항일과 극일의 길을 동시에 일러준다.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주는 힘이다. / 淸河

호랑이

고양이과에 속하는 호랑이 중에도 한국호랑이는 색채가 영롱하고 자태가 특히 당당하다. 몸체가 약 180cm로 민첩하기가 짝이 없다. 먹이사냥을 위해 하루에 80㎞, 100㎞의 산야를 누비는가 하면 배가 부를땐 온종일 자며 푹 쉬기도 한다. 호환을 두려워 했을만큼 무서워 하면서도 풍수설이나 민화, 고담등에 많이 등장할 정도로 인간과 가까운 존재였다. 남한에서는 1922년 경북 경산군 대덕산에서, 북한에서는 1946년 평북 초산군에서 포획한 것을 마지막으로 한반도에서 사라졌다. 오래전의 일이다. 광주(光州) 사직공원 동물원에서 호랑이가 새끼를 낳았다. 어느 중앙지는 사회면에 사진과 함께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왔는데 경쟁지는 완전히 낙종했다. 낙종한 신문사 현지 기자는 보도가 하루 늦는 열차송고를 한 반면에 특종한 현지 기자는 당일 보도되는 전송을 했던 것이다. ‘호랑이 새끼가 그토록 소중한 것을 미처 모른 무지의 소치로…’라는 낙종기자의 시말서 서두는 한동안 두고두고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최근엔 대구 MBC가 경북 청송에서 자동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근거로 호랑이 보도를 했다. 대구 MBC는 지난 2일 뉴스데스크 시간대에 본사 뉴스방영을 잘라내고 자체 제작한 ‘한국호랑이 살아있다’를 20분간 내보냈다. 이번 역시 종종 살쾡이를 호랑이로 착각했던 것처럼, 그런게 아니냐는 진위논란 끝에 환경부는 ‘사진이 불분명해 정확히 판단하는데 한계가 있긴하나 호랑이로 보기는 어렵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만약에 남한지역 산야 어디서든 진짜로 야생호랑이가 나왔다면 국내는 물론이고 온 세계 동물학계가 발칵 뒤집힐 만큼 빅뉴스가 된다. 야생호랑이가 이처럼 소중한 존재가 된 가운데 알마전에 묘향산서 호랑이가 발견됐다는 북측 소식이 있었으나 역시 확실치 않다. 만약에 있다면 한국호랑이의 본산이라 할 장백산맥에 있을 것이나 그곳에서도 이미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호랑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곰이라 할 반달곰도 멸종돼 가고 있다. 야생동물을 보호할줄 모르는 몹쓸 인간들의 남획 탓이다. 지리산국립공원은 사육곰에게 야생능력을 키워 산에 풀어주었다. 한반도 산야에서 한국호랑이는 이제 영영 볼 수 없는 것인지 심히 안타깝다. 이러다간 언젠가는 동물원 호랑이를 풀어주자는 말이 안나올지 모르겠다. /白山

구스마오

통티모르의 독립영웅 사나나 구스마오가 건국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전한다. 당선이 가장 유력시 되는 대통령 후보인데도 나서지 않고 사진작가로 제2의 인생을 걷겠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정치집회 때면 군중앞에 나서기보단 인파를 헤집으며 사진기자와 나란히 카메라 앵글을 잡기에 바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정치불참 선언이 사실이 될지 어떨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새겨 들을만한 말 한마디는 있다. 대통령 불출마 천명을 통해 “과거 신생국가의 자유투사들이 독립 후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혼란에 빠진 사례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만 해도 그러하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한 많은 분들 가운데 광복 후 정치에 참여한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로는 혁혁한 공적을 남겼으면서도 정치가로서는 실패를 거듭했다. 집권의 말로를 독재로 장식한 이승만이나 재야의 김구가 당시의 현실과 동떨어진 남북합작을 주장하며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것이 그같은 사례다. 북측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이미 수립돼 불행히도 남북합작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화투쟁의 정치가와 집권의 정치가가 또한 다른 듯싶다. 김영삼(YS), 김대중(DJ)은 온갖 핍박을 무릅쓰가며 민주화 장정을 이끈 민주투사의 거목이다. 민주화운동으로는 청사에 남을만 하다. 그러나 두 분이 다 대통령으로는 성공한 대통령의 평가를 받기에는 무리일 것 같다. 독립운동가가 유능한 정치가가 못되고 민주화운동가가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지못하는 것은 학문적 연구과제가 될만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과는 다른게 분명하다. 더욱 경계되는 것은 권력 중독증이다. 거머쥔 권력에 스스로 삼가지 못하고 심취하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동티모르의 구스마오가 경고한 자유투사의 권력 경계는 진리다. 白山

마이동풍?

시장·군수들에게 쓴 소리를 더 해야 되겠다. 내년 6월 실시예정인 지방선거에 출마할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선심성 행정과 선거법 위반 행위가 도를 지나쳐도 너무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선거관리위원회 등 단속기관의 사전 경고조차 무시하고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믿고 부리는 배짱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니 심히 걱정된다. 경인지역 외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례는 들지 않겠다. 안양시의 경우 지난 5월초 시장 이름이 새겨진 효도사진(영정) 1천300여개를 시민들에게 배포하다가 선관위에 적발됐고 하남시에서는 지난 3월 이후 4차례에 걸쳐 지역 헬스클럽 등 건강관련 단체들의 협의체인 ‘잉카홍보팀장’회원 7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일 집체교육을 실시해 교육배경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성남시는 지난 4월 노인회가 청와대 관광을 가자 시청과 구청버스 3대를 지원해 선관위로부터 선거법 위반으로 경고조치를 받은 사실이 있다. 국가경제나 지역사정에는 아랑곳 없이 그럴듯한 명분을 붙여 해외시찰, 축제, 간담회 등 선심행정을 펼치고 있는가하면 시·군정 설명회 및 반상회 등을 활용해 현직 지자체장인 자신의 치적을 알리고 있는 것도 시비거리다. 마을 단위 무료관광을 알선하고 체육대회와 경로잔치 현장을 방문하는 등 현직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내 일선 시군이 올들어 수천명의 주민을 동원하는 선심성 축제와 행사를 대규모로 개최한 것도 선거를 앞둔 얼굴 알리기 전략이라는 의혹을 살 수 있다. 경기도내에서 올들어 홍보물에 의한 선거법위반으로 선관위에 단속된 지자체장은 8명이며 축의금, 격려금, 반상회 지원 보조금을 통한 사전선거운동도 7건에 달했다. 인천지역의 일부 전·현직 구청장들이 선거에 앞서 선점을 하기 위해 ‘선거법은 나몰라라 ’하기는 마찬가지다. 선거에서는 물론 이기는 것이 제일 목표다. 그렇다고 관계 기관의 규제를 위반해서야 되겠는가. 이런 사실은 당사자들이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지대자가 고언을 거듭하는 이유는 불행한 승리, 실패한 당선자가 되지 말기는 바라는 마음에서다. 참다운 인물은 자기 선전을 하지 않아도 유권자들이 먼저 잘 알고 있다. 이 쓴 소리가 부디 마이동풍이나 우이독경이 아니되길 바란다. / 청 하

금가루술

금가루를 넣은 국내산 술이 애주가들을 한때 유혹했었다. 북한에서 수입된 술 가운데도 금가루가 첨가된 게 있다. 우황청심환 한 알에는 4mg의 금이 들어있는데 국내 생산 술의 금 함유량은 7mg정도라고 한다. 금은 천연감미료, 천연 색소 등 식품 첨가물로 허가된 177개의 물질중 유일한 금속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구체적인 사용량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고 ‘최소한 양을 적절하게 사용하라 ’고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리 시제품에 대한 순도 검사와 확인시험을 거치기 때문에 시판중인 제품의 금이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다고 한다. 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귀와 영화의 상징으로 통한다. 인류역사상 지구에서 생산된 금의 양은 대략 12만5천t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외환위기 직후 김밥속에 금가루를 넣거나 금가루를 뿌린 ‘금밥 ’이 서울 신촌에 출현,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금이 몸에 좋다는 풍문을 타고 화장품에 금가루를 섞어 미용효과가 뛰어나다고 선전하는 업체가 나왔고 비누와 속옷에 금가루를 뿌린 제품도 등장했다. 일식집에서도 참치 등 횟감에 금가루를 얹어 특별서비스로 제공하면서 생색을 크게 냈다. 국내 주류업체는 지난해 말부터 매실주에 금가루를 넣어 제품을 출시했는데 음식과 주류에 금가루를 첨가한 업체들은 금이 혈액순환을 촉진, 신경안정과 해독, 피부정화에 효능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 5월14일 금가루 효능에 관해 ‘금박섭취는 건강상의 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 ’는 공식의견을 냈다. 건강상 실익은 기대할 수 없고 외관을 좋게 하는 착색제 용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떨떠름해진 금가루 제품 출시 업체들이 반대의견은 내지 못하고 “고급 이미지로 상품을 활용했을 뿐 ”이라고 우물쭈물 넘어갔다. 금이 류머티즘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보건당국은 금을 섭취해도 90%이상 자연 배출되며 금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임상실험결과는 아직 없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금에 대한 소비자들의 ‘좋은 이미지’때문에 극소량이 식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임상실험 결과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효과가 명쾌하지 않은 금가루술보다는 순 소주를 마시는 편이 훨씬 속도 편하고 기분도 좋을 것 같다. /淸河

문학과 언론

세미나의 기조강연 ‘문학과 언론의 역할 ’, 제1주제 ‘문학과 언론의 개연성’, 제2주제 ‘신문과 문학, 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및 토론이 벌어졌다. “어려운 시대에 문인들은 진실을 표현하여 민족과 국가를 대변하여 왔듯이, 언론도 국가나 민족이나 시대를 대변하는 그릇이 되어왔다 ”는 말로 시작돼 “ 언론은 사주(社主)나 기자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이 사회의 목소리인 동시에 국민들의 소리가 되어야 한다. 문학도 어디까지나 문학이어야 하는 동시에 어떤 정책이나 정치적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시대에 문학이 탄압을 받을 때, 혹은 언론이 탄압을 받을 때 분연히 일어서 대항하는 것은 이 때문 ”이라는 사실이 재강조됐다. “문인들이 언론을 상업적으로 내몬다 ” “문인과 언론인은 몇 사람의 위인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다수의 사람을 창조해야 한다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언론의 자유 ’이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를 남용하는 짓은 가장 추악한 것이다 ”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언론 문화면에서 특정 작가와 특정 단체, 특정 출판사를 의도적으로 띄워주는 경향이 짙다. 한국의 문인들과 단체, 출판사가 과연 언론에 자주, 집중적으로 언급되는 몇 소수뿐인가 ”“정치인을 선거할 때 시 몇편쯤은 암송할 줄 아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사법·행정은 물론 모든 국가고시에 문학 관련 문제가 반드시 출제돼야 한다 ”고도 했다.“일부 문인들의 언론을 통한 야합 ”“좋은 작품을 위한 고민이 아니라 잘 팔릴 작품을 위해 고심하는 ‘베스트셀러 만들기 ’에 급급 ” “ 언론에 등장하는 소위 베스트셀러는 정말 문학적인가 ”등 수많은 지적과 자탄들이 쏟아져 나왔다. 장시간의 토의끝에 ‘ 문학과 언론 ’은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건강하고 예리한 비판정신으로 오늘의 비정상적인 흐름을 경계하고 감시해야 할 일부 언론이 도리어 분위기를 조성하고 부추기는 현실에는 반드시 자성과 자책이 주어져야 한다 ”는 방향으로 귀결돼 갔다. 한국현대시인협회가 지난 18, 19 이틀간 충북 보은 속리산 유스호스텔에서 개최한 ‘2001 여름 세미나 ’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이다. /淸河

去勢

바티칸교황청의 시스티나 성당은 1473년부터 1481년까지 8년에 걸쳐 세워졌다. 교황 식스투스 4세 때다. 르네상스 시절의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벽화, 천장화가 많다. 교황청이 잠비아 루사카 대교구 엠마뉴엘 밀링고 대주교(71)가 한국출신 여성 성마리아씨(43)와 가진 결혼 및 이혼파문으로 곤혹을 치른데 이어 이번엔 시스티나 성당의 거세한 남성 성가대 카스트라토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다. 중세기엔 전통적으로 여성을 배제한 남자들만의 성가대에서 고음을 내는 거세한 남성 소프라노, 즉 카스트라토를 두었던 것이다. 시스티나 성당의 카스트라토는1599년에 시작해 1902년 금지교령 발표에도 불구하고 1913년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이탈리아의 유력 일간지, 인권단체 등에서 역사적 과오에 반성을 구하는 교황의 공개사과 요구의 목소리가 높다고 보도됐다. 또 옥스퍼드대학의 어느 역사학 교수는 “가톨릭 당국이 부적절한 방법으로 카스트라토를 용인해왔다면 역사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에 변성되지 않음으로써 계속 여성음역을 가진 고음을 내는 방법으로 거세했기 때문에 소년시절에 거세해야 했던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역시 거세했던 왕조시절의 궁중 내시가 생각난다. 내시 또한 소년시절에 거세를 했다. 대개는 내시가 양아들로 들인 소년을 거세해 성장한 뒤 양아버지를 이어 내시가 되곤하면서 같은 방법으로 대를 이었다. 비록 거세한 몸이지만 품계는 상당하여 재물은 요족했으므로 가난한 집 아이들이 내시의 양아들로 많이 들어갔다. 지금은 사람을 거세하는 일은 어디에도 없는 대신에 가축에 대한 거세가 성행한다. 특히 영농의 기계화로 사역우의 개념이 비육우로 바뀐 가운데 숫소는 씨내리 숫소만 놔두고 거의가 거세한다. 거세하면 빨리 크기 때문이다. 만일 고려나 조선왕조가 아직까지 있다고 가정하면 이 역시 거세 내시에 대한 역사적 과오의 사과요구가 나왔을지 모른다. 거세 소프라노에 공개사과를 요구받고 있는 바티칸 교황청의 대응이 주목된다. 거세는 지금처럼 대상이 짐승이라 해도 역시 잔혹하다. /白山

지구

중국 원난(雲南)성에 있는 푸셴(撫仙)호수는 면적 212㎢에 수심이 157m에 이르는 거대한 호수다. 이 호수에 수중도시가 발견된 것은 1992년 이다. 도자기 등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은 지난 6월 1차 탐험에 의해 오는 가을쯤에 2차 탐험을 시도할 예정이다. 중국인들은 이곳에 있던 전설속의 덴 왕국이 실재했던 것으로 지진에 의해 갑자기 지반이 침하되면서 수중도시화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암염이 나온다. 지하에서 산출되는 천연의 이 소금덩어리는 바닷물에서 채취하는 소금보다 순도가 더 높다. 내륙에서 암염이 생산되는 것은 태고적엔 바닷물 속이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또 소돔과 고모라는 사해(死海)근처에 실재했던 고대 도시라는 주장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질학상으로 지진 취약지구인 이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두 도시는 지진에 의해 가스층이 불붙은 대화염속에 멸망했다는 것이다. 국내에도 제주도 근해에 있는 전설의 수중섬 ‘이어도’역시 예전에는 수상 섬이었을 것으로 보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최근에는 백두산이 점점 높아간다는 연구발표가 외신으로 보도돼 눈길을 끈다. 중국 지린(吉林)성 지진국 연구조사 결과 백두산의 높이가 해마다 4mm씩 높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백두산 지하 암장의 움직임이 활발해져 산 전체가 융기되고 있는 것으로 화산 폭발을 예고하는 징후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지구는 이처럼 바닷물이 대륙이 되고 육지가 바닷물속이 되는 표피의 부침속에 지진과 화산폭발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도 지구의 온난화로 남·북극의 빙벽이 급속히 녹아내려 남태평양의 몇몇 섬이 점점 바닷물에 잠기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가하면 언젠가는 우주의 무법자인 소행성과의 충돌로 지구가 치명상을 입을지 모른다는 관측이 우주과학자들 사이에 나오고 있다. 순탄치 않는 지구의 장래를 보면서 인간의 오만을 경계한다. /白山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