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

반가운 사이끼리 만나면 피부 접촉을 한다. 이마를 맞대고 목덜미를 비비기도 한다. 동물이 이러하다. 하물며 인간은 더 말할게 없다. 껴안거나 손을 맞잡는다. 대중 앞에서 사랑하는 남녀가 서슴없이 입맞춤 키스를 해도 허물이 되지 않는 것은 서구식 애정 표현이다. 만나서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이처럼 만남의 내용, 그리고 인종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아프리카 원주민 끼리의 인사법만도 30가지가 넘는다. 다만 조선시대의 선조들, 특히 양반들은 아무리 반가워도 피부접촉은 점잖게 여기지 않아 고작 말로 떼우는 게 예법이었다. 이 때문에 개화기에 서구식 악수가 들어온 처음엔 무척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악수는 앵글로 색슨족의 인사 문화다. 영국의 주요 구성민족이 되는 앵글로 색슨족의 인사법이 오늘날 지구촌의 인사법으로 보편화한 것은 영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 가령 코 맞대기 인사법을 가진 아프리카 어느 민족이 세계를 지배하게 됐다면 악수대신 코 맞대기가 보편화 했을지 모른다. 인류문화의 발달은 이처럼 문화의 지배력이 강한 쪽으로 흐른다. 악수에도 예절이 있다. 윗사람이 먼저 악수를 청할 때 아랫사람은 비로소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남녀사이엔 여성이 먼저 청할시에 남성이 응해야 하며, 여성은 장갑을 낀채 악수해도 되지만 남성은 장갑을 껴서는 안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결례를 저지르는 꼴불견을 가끔 본다. 그러나 윗사람 아랫사람이건, 남성이든 여성이든 기본적 예법이 있다. 악수를 나누는 상대의 얼굴을 마주봐야 하는 것이다. 눈을 마주보면 더욱 좋다. 악수를 하면서 얼굴을 돌려 다른 사람을 보거나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것은 악수하는 상대에게 이만저만한 실례가 아니다. 아무리 윗사람이 아랫사람과 악수를 한다해도 윗사람의 그같은 결례는 아예 악수를 안한 것만 못하다. 일상 생활화한 악수인데도 악수를 제대로 할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다. 특히 정치인들이 더하다. /白山

대통령 월급

‘임명은 정부가 하지만 생계는 본인이 알아서 하라’ 자유당 정권 시절에 공직사회에서 나돈 얘기다. 그만큼 박봉이었던 것이다. 지금이라고 공무원 봉급이 후한건 아니지만 그 무렵엔 월급이라야 쌀 한가마 값 정도였을까, 아무튼 월급 가지고 산다고는 누가봐도 믿기지 않았던 때였다. 이 때문에 뇌물거래가 공공연하여 많든 적든간에 뇌물이 없으면 뭣 하나 되는 일이 없었다. ‘사바사바’란 말의 뇌물 은어가 그래서 유행했다. 관청 일을 보면 ‘사바사바’할 돈부터 챙겨야 했다. 지금도 뇌물거래가 없다 할순 없지만 음성적인 지하부패인데 비해 당시엔 반양성적으로 준공식부패화 했던 것이다. 민초들이 더러 궁금하게 여기는 가운데 고위 공직자들은 과연 월급만으로 생활하느냐 하는 것이다. 궁금증의 대상이 대통령이나 장관쯤 되면 더 한다. 대통령의 연봉 기본급이 올해보다 11.1%, 그러니까 1천196만원이 올라 내년에는 1억2천7만9천원이 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무총리는 928만원이 오른 9천322만원, 장관은 653만원이 올라 6천558만원이 된다.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에 비해 일반 공무원의 봉급인상은 대통령이나 장관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6.7%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기획예산처의 이러한 내년도 공무원 봉급 인상 계획이 공무원의 사기앙양에 도움이 될 것인지는 능히 생각해볼만 하다. 민초들이 알기로는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쯤 되면 월급으로 생활하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 월급봉투가 절실한 것은 일반 공무원들이다. 고위직 공무원은 굳이 월급이 아니어도 판공비란 것이 또 있다. 판공비가 아무리 가계생활에 보태쓰는 것이 아니라 해도 역시 그러하다. 대부분의 일반직 공무원들은 월급 하나만 바라보고 열심히 봉직한다. 그러한 공무원들은 겨우 6.7%의 인상에 그쳤다. 그리고는 월급이 없어도 살 수 있다고 보는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급은 11.1%를 올렸다. 기획예산처의 봉급 인상계획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갖게한다. 적어도 대통령이나 일반직 공무원의 봉급 인상계획은 같아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는 부정부패 척결을 말하기가 어렵다. /白山

집안 싸움

진(秦)나라 효공 때의 재상 상앙은 부국강병책을 펴 뒷날 진나라의 천하통일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상앙이 조량(趙良)이란 사람과 자리를 함께 했을 때였다. 상앙이 “나의 통치와 백리해의 그것을 비교해 보시오. 누가 더 나은 것 같소?”하고 물었다, 백리해는 진나라 목공 때의 명재상이었다. 조량이 대답했다. “천마리 양가죽이 여우의 겨드랑이 가죽만 못하고, 천사람이 좋다고 아부하는 말은 한 선비의 올곧은 직언만 못합니다. 주(周)나라 무왕은 신하의 직간(直諫)으로 흥했고 은(殷)나라 주왕은 신하의 맹종으로 망했습니다. 지금 승상의 위태로움은 아침 이슬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수명을 더하려고 하시니 실로 안타깝습니다. 봉지(封地)로 받은 15고을을 반납하고 시골로 돌아가 농사나 지으십시오”그러나 상앙은 조량의 말을 듣지 않았다. ‘10·25 재·보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의 이른바 소장 개혁파들이 권노갑 전 최고위원과 박지원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의 정계은퇴와 한광옥 대표 등 당5역의 즉각사퇴를 요구했는가 하면, 동교동계가 ‘민주화 투쟁한 것이 잘못이냐’고 맞서는 등 집안싸움이 가히 점입가경이다. 권노갑·박지원씨가 상앙같은 사람도 아니겠고 소장 개혁파들이 조량같은 사람도 아니겠지만, 민주당 내홍 앞에서 상앙과 조량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민주당엔 같은 동교동계도 구파·신파가 있고, 소장 개혁파에도 ‘새벽 21’‘여의도정담’‘열린정치포럼’‘바른정치 모임’‘주민정치연구회’등 웬 모임·계파가 그리 많은가. 정계에서 은퇴하란다고 요구해서 은퇴할 사람들인가. 또 은퇴하라고 요구할 자격은 있는 사람들인가. 한마디로 헷갈리는 장면들이 꽤 많이 나온다. ‘봉지로 받은 15고을을 반납하고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으라’는 조량의 말을 듣지 않은 상앙은 후일 옳게 죽지 못했다.그로부터 다섯달 뒤 효공이 죽고 태자가 등극했는데 상앙은 앙앙불락하고 있던 정적들의 무고를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주재로 3일 청와대에서 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열린다. 누가 과연직간할 것인가. 부질없이 궁금해진다.

안경

우리나라 사람 100명 중 30명은 안경을 쓴다고 한다. 병원이 늘어나듯 안경점도 많이 생긴다. 할머니의 돋보기 안경부터 멋쟁이들의 선글라스까지 안경의 종류는 다양하다. 안경은 이제 식탁의 수저처럼 또 여성들의 화장품처럼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다. 안경이 최초로 어디에서 발명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여러가지 자료들을 분석해보면 대략 1280년쯤 베니스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보면 “원나라의 늙은 신하들은 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볼록렌즈 안경을 끼고 있다”고 밝히고 있어 당시 안경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안경의 기원은 대략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하고 있다. 지봉(芝峰) 이수광(1563∼1628)이 지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도 “안경은 노인이 책을 볼 때 쓰는 것으로 작은 글자를 크게 보이게 한다. 근래 들은 소식에 의하면 명나라 장수 심유경과 왜의 승려 현소가 모두 노인용 안경을 쓰고 가늘고 작은 글씨를 읽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보지 못하던 것이다. 안경은 해방(조개의 이름) 껍질로 만든다고 한다. 또 판별하기 어려운 낡은 문서를 수정으로 햇빛에 비추어 보면 분별할 수가 있다고 한다”고 실려 있다. 이러한 기록은 16세기말쯤 외국인 또는 외국에 드나드는 사신이나 상인을 통해 안경이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는 설을 뒷받침해 준다. 조선시대 실학자 홍대용(烘大容·1731∼1783)은 3개월간 중국 북경에서 지낼 때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다. 그가 귀국할 때 안경을 쓰고 들어와 관복을 입고 등청할 때도 안경을 써서 대신들이 원숭이같다고 놀려댔다. 그러나 임금 영조는 홍대용이 바친 안경을 즐겨 썼다. 대신들이 이번에는 잘 어울린다고 추켜 세우고 자신들도 안경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 후 안경 쓰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고 사치품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요즘 신입사원 채용 면접시 특히 안경 쓴 여성은 합격에 불리하다고 한다. 눈을 보호하고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쓴 안경 쓴 모습을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의 시력은 보통 나쁜 게 아니다. 그런 사람들부터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안경을 써야 되겠다.

중벌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이달 1일부터 국립공원내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라이터 등 인화물질을 허가없이 반입할 경우 5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한다고 발표했었다. 이 조치의 실효성과 공정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예상되는데 이 소식을 들은 뒤 ‘군소’라는 동물이 생각났다.신경생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기르며 실험을 하는 ‘군소’는 일종의 바다달팽이인데 이 군소를 연구하여 콜롬비아 대학의 에릭 캔덜 교수는 신경계의 비밀을 캐내 2000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군소는 물 속에 살면서 산소를 얻으려면 몸 윗쪽에 있는 아가미를 열고 입수공으로 물을 빨아들여야 한다. 이때 누가 입수공을 건드리면 군소는 황급히 아가미를 닫는다. 위험을 감지하고 자기 방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험적으로 입수공을 자주 건드리면 어느 순간부터 아가미를 닫지 않는다. 더 이상 위협적인 자극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겁이 없어진 이 군소를 다시 겸손하게 만들려면 입수공을 건드릴 때 흠칫할 정도로 강한 전기자극을 주면 된다. 그렇게 따끔한 맛을 한번 보고 나면 다시 예전처럼 반응을 보인다. 미미하게라도 입수공을 건드리면 황급히 아가미를 닫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비리사건들도 군소의 습관같이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처음에 무슨 사건·사고가 터지면 당장 누구라도 절단이 날 것 처럼 야단법석을 떨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왠지 흐지부지 돼버리고 만다. 가령 선거법을 어긴 정치인을 30년 이상 모든 선거의 입후보 자격을 박탈해보라. 선거법 위반자는 아마 금방 없어질 것이다. 관심법을 썼다는 궁예가 법봉을 솜으로 만들어 휘둘렀다면 누가 그 앞에서 벌벌 떨었겠는가. 용서는 회개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너그러움이다.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는 부정부패자에게 베푸는 사면은 화합을 가장한 오만이다. ‘군소’는 입수공에 강력한 자극을 주면 본심으로 돌아간다. 사람도 일단 매를 들면 엄해야 한다. 엄포 삼아 회초리를 들어보라. 절대로 잘못을 자각하지 못한다. 비리도 타성이 붙으면 못 고친다. 국립공원에서 피우지말라는 담배를 안피우면 과태료가 50만원이 아니라 5천만원인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중벌이 약이될 때가 더 많다. /淸河

秋想

니가 잘났어? 잘 났으면 얼마나 잘났나! 위선, 독선, 아집, 교만, 가식, 어슬픈 지식, 이런 것들이 빠지고 나면 뭐가 남는가. 아첨과 비굴, 허욕, 그리고 종족적 본능만이 가득찬 썩은 영혼의 육신뿐인 것을. 가을이 짙은 하늘과 산하를 보며 이를 생각하는 것은 대자연 속의 자아가 너무 크기도 하고 너무 작게도 보이는 혼란 때문이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조용히 떨어뜨리는 노랑 단풍잎 하나보다 못한 것 같기도 하고, 감히 높푸른 창공을 두손 들어 거머쥐고 싶을 만큼 커보이는 실존의 착각에 잠기곤 하는 것이다. 어차피 나는 나인 것을. 이름없는 가을 들꽃보다 못한 심성을 국화처럼 아름답게 꾸며 보이길 좋아하고, 한낱 아카시아 바늘에 찔려도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볼품 없는 살을 대단하게 여기며 살 수 밖에 없는 군상에 불과하다. 제비가 간다고 너무 섭섭해 할게 없는 것은 봄에 또 오기 때문이며, 기러기가 온다고 너무 반길게 아닌 것은 봄에 또 가기 때문이다. 오고 가고 나타나고 사라지는 이치는 곧 영겁의 생명인 것이다. 무한 영겁, 무한 광대한 우주의 시공 가운데서 티끌같은 자아가 있는건 그래도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면 그게 뭣인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온실의 화초가 갖는 구실과 서릿발에 퇴색하면서도 생명력을 잃지않는 잡초의 구실이 다르긴 하다. 인간의 삶 역시 비록 서로 구실이 달라도 어떤 구실이든 서로 필요치 않는게 없다. 상대를 부정하는 것은 결국 나를 부정하는 것으로, 상대를 인정하는 가운데서 내가 인정되는데도 어리석게 상대를 부정하려 든다. 가을의 결실은 조화다. 봄 여름의 햇살과 비바람으로 배태한 생명력을 열매맺는 것은 계절의 조화인 것이다. 오는 겨울 또한 다음 가을을 위한 준비다. 조화는 또 용서와 이해다. 설령 나를 섭섭하게 만들고 나에게 잘못했다 하여도 그를 용서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좋은 것은 나 역시 남을 섭섭하게 만들고 남에게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농익었다. 인간은 다툼을 초탈할 수 없을지라도, 되도록 용서와 이해의 폭이 넓은 가을같은 마음을 갖게되면 더 낫겠다고 생각해본다. /白山

백색

흰색은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다. ‘백의민족’이라고 하였다. 흰옷을 숭상하여 즐겨 입은데서 비롯됐다. 순백의 흰색은 모든 색깔의 근원이기도 하다. 삼백(三白)이란 말이 있다. 음력 정월에 사흘동안 내리는 눈을 일컫는다. 사흘이나 눈이 내리면 세상이 얼마나 온통 순백이겠는가 상상해볼만 하다. 삼백은 또 다른 말로도 쓰인다. 쌀, 누에고치, 목화를 삼백이라고도 한다.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농산물인 것이다. 산업사회에서의 삼백은 비료, 시멘트, 설탕을 꼽는다. 또는 쌀, 백설탕, 화학조미료의 세가지 흰 빛의 식품을 삼백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농경사회 개념의 삼백이 원초적 친근감을 갖는다. 그리하여 쌀, 누에고치, 목화의 명산지를 ‘삼백의 고장’이라고 하였다. 무명베를 만드는 목화, 명주 비단의 원료가 되는 누에고치 생산은 벌써 사양산업이 된지 오래다. 이젠 쌀마저 증산이 억제되어 농업인들이 가격보장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서는 단계가 됐다. 이처럼 민족의 정서가 담긴 흰색이 부정적인 색깔로 둔갑된 것은 필로폰이 나오면서 였다. 결정성 백색 무취의 이 가공품 분말은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마약류로 개인 및 가정과 사회를 망치는 인류의 공적인 것이다. 공포의 흰색가루가 필로폰인줄만 알았던 것이 미국의 대 테러보복전 이후 탄저균 소동을 빚어 또 다른 백색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탄저병 균이 섞인 흰색가루가 미국의 백악관까지 침투해 미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 뿐만이 아니고 서방진영도 백색공포로 전전긍긍 하는 실정이다. 백색공포는 국내에까지 번져 오인신고로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곤 한다. 물론 생화학 무기의 백색공격은 경계해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과잉반응은 되레 공연한 사회혼란의 요인이 되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어쩌다가 티없이 맑고 깨끗한 백색이 저주의 대상이 됐는지 실로 안타깝다. 삼백을 숭상하던 때가 못살았긴 해도 세상 사는 마음은 차라리 더 편했던 게 아닌지 모르겠다. /白山

사랑의 실체?

‘사랑’, 입에 담기 어렵지 않으나 제대로 실천하긴 이처럼 어려운게 없다. 대저 사랑의 정의는 무엇인가. ‘①애틋이 여기어 아끼고 위하는 일. 또 그러한 마음. ②남녀가 서로 정을 들이어 애틋하게 그리는 일. 또 그애인. ③동정하여 친절히 대하고 너그럽게 베푸는 마음’국어대사전의 사랑에 대한 낱말 풀이다. 그러나 이같은 해석이 사랑의 정의로 다 보기에는 부족하다. 영국의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의 이혼녀와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헌신짝처럼 버릴 당시, ‘세기의 사랑’이라고들 말했다. 신의를 목숨만큼 중히 여긴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의 관포지교는 우정의 사표로 꼽힌다. 크림전쟁의 백의천사 나이팅게일은 박애정신의 화신이었다. 이러한 사랑치고 그 어느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랑이 없다. 인간만이 지니는 영감이기 때문이다. 성선설(性善說)이나 성악설(性惡說)의 본질은 인간의 사랑과 관련된다. 사랑은 곧 인간다움을 받쳐주는 심신의 지주다. 결코 쉽지 않은 게 사랑이면서, 그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남녀의 사랑이다. 우정 또는 박애의 사랑보다 어려운 것은 주관적으로는 무조건적 이어야 하고 객관적으로는 조건적이기 때문이다. 남녀의 사랑은 전적으로 주관적 개념이면서 객관적 규제를 요구받는 특성이 있다. 당사자들 만이 갖는 정서에 그치지 않고 법률, 도덕적 요인이 허용돼야 인정을 받는다. 즉, 본인들끼리는 아무리 진실한 사랑이라 하여도 남들이 보아서 아니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객관적으로 남들에 의해서 칼로 물베듯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 또한 남녀의 사랑이다. 남보기엔 그렇지 않은 사랑도 겉보기와는 다른 사랑이 있다. 이 때문에 이를 주제로 한 많은 문학작품이 있어 논란이 됐다. 로렌스의 ‘채털리부인의 사랑’ 나보코프의 ‘로리타’ 플로베르의 ‘보바리부인’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도덕주의 문화의 희생물이 됐다가 고전으로 재 평가된 작품들이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한 미해결의 문제작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국내 형법이 온당치 못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간통죄는 객관적 요소의 법률 규범이다. 아직은 ‘가족생활에 불가피한 합헌’으로 보면서도 ‘폐지 여부에 진지한 접근이 요구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새찬 찬·반론 속에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白山

애완동물

요즘 도시에는 애완동물 미장원과 카페, 호텔 등 이른바 ‘펫(pet)산업’이 성업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의사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으로 불려졌는데 지금은 ‘애견센터’‘애견호텔’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애완견’의 경우 집을 지키는 게 임무가 아니라 사람들과 같이 놀고 함께 자는 게 주생활이 되었다. 그래서 개를 비롯한 애완동물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훨씬 좋은 경우가 많다. 애완동물은 사람들의 고독감과 스트레스, 우울증 해소 등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심장병·치매·암발병률을 낮춘다는 보고도 있다.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인수(人獸)동거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애완동물에게서 얻는 ‘효과’가 간접적이고 장기적이라면 ‘위험’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과 동물은 어디까지나 이종(異種)간이다. 한 집에서, 그것도 실내에서 공존하는 데는 몇 가지 위험이 따른다. 각종 알레르기 질환과 피부질환, 드물지만 감염질환도 생길 수 있다. ‘20세기의 천형(天刑)’이라는 에이즈가 원숭이에게서 왔듯, 애완동물이 어느 순간엔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가장 많은 문제가 되는 것은 동물의 털 등으로 인한 각종 알레르기 질환이다. 전문의사들은 알레르기성 천식과 비염, 알레르기성 결막염, 아토피성 피부염 등이 특히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경고한다. 애완동물로 인해 피부병이 생기고, 식중독을 일으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개나 고양이, 토끼의 털에 기생하는 곰팡이가 사람, 특히 어린이에게 옮아 염증과 함께 머리가 빠지거나 얼굴에 동그란 모양의 버짐이 생기는 피부사상균증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의들이 완곡히 말해도 듣지 않는 동물애호가들이 많다. 사람의 생명이나 동물의 생명이나 마찬가지라는 동물애호가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쥐, 도마뱀, 심지어 길이가 수미터씩 되는 구렁이까지 사랑하여 한 지붕 밑에서 식구처럼 먹고 자고 한다면, 좀 뭣하다. 애완동물이 건강하고 무병(無病)해야 사람이 탈 없다고 하니 애완동물이 마치 사람보다 귀한 것 같다. 이러다간 사람이 동물의 ‘ 애완인’이 될 것 같은 공연한 기우가 생긴다. /淸河

아름다운 유산

서울의 유명 병원에서 3일장을 치르려면 3천만원이 넘게 든다고 한다. 여기에 호화 분묘까지 만들려면 전체 장례식 비용은 1억원이 넘는다. 최고급 장의시설을 선전, 자랑하는 유명 병원들의 평균 공식가격표는 수의가 370만원, 관은 175만원이지만 비공식 최고급 수의는 1천만원 이상, 국산 향나무관 역시 1천만원 이상이다. 묘지 비용은 장례식 비용의 두 세배가 넘는다. 유명 공원묘지의 경우 5평형(단일용)은 670만원, 8평형(부부 합장용)은 1천200만원선이다. 선산을 이용해 호화분묘를 조성할 경우, 수십평의 묘지에 12지신상과 거북이 등 석제 조각에 화강암 비석까지 세우면 묘지 단장에만 수천만원에서 억대까지 든다.최근에는 사찰을 전부 빌려 3∼5일장을 치르는 일본풍(風)도 유행이다. 그러나 서민들은 부유층의 수의값도 안되는 돈으로 장례를 치른다. 80만원선에서 모든 절차를 해결해 주는 병원도 있다. 평균 장례비는 매장 200만원, 화장 100만원이다. 행려병자나 노숙자, 극빈층은 도립·시립병원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른다. 국가가 부담하는 비용은 50만원선이다. 이렇게 사람은 죽어서도 빈부의 차이가 극심하다. 장로교의 창시자인 장 칼뱅은 세상을 떠날 때 큰 영적 교훈을 남기고 갔다. 장 칼뱅은 죽을 때 “내 무덤에 묘비를 세우지 말고 내 무덤의 흔적이 없도록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지를 따라 지금도 스위스 제네바에 가면 장 칼뱅의 무덤에는 이름이 없다고 한다. 다만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 아쉬운 나머지 무덤 위에 ‘J·C’라고 이름 약자만 새겨 놓아 장 칼뱅의 무덤임을 알 수 있게 하였다. 다비로 몸을 사르고 떠나는 스님의 생애 또한 영적 유산을 사람들 가슴 속에 남겨준다. 죽어서 영혼이 하늘로 가는지 땅속에 묻히는지 바람속에 묻히는지 알 수 없지만 호화분묘 속에 잠시 누우면 무얼 하는가. 저승 길 가는 길에 많은 돈을 뿌린 사람이나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이나 육신은 결국 한줌의 흙이나 재로 사라진다. 그러나 세상을 이롭게 한 정신적 유산을 남긴 사람은 죽어서도 후세의 가슴속에서 부활, 영생한다. /淸河

유비무환

미국의 ‘9·11 항공기 테러’가 발생한 직후 우리 정부는 국무조정실 산하에 정부종합상황지원반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對)테러 정보수집은 국가정보원, 화학전은 행정자치부, 생물학전은 보건복지부, 방사능은 과학기술부, 테러진압은 경찰청 등으로 분산돼 있다. 작금 테러의 방법이 날로 지능화돼 가고 있어 이에 대응하기 위한 각종 첨단장비 확보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탄저균과 같은 생물을 이용한 테러에 필요한 생물무기통합탐지장치(BIBS)가 한 대도 없다. 방독면 보급률은 9%에 불과하고 군경에 지급된 방독면도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테러에 이용될 수 있는 각종 세균검사, 채취장비가 너무 부족한 상태다. 대테러 전문가도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특수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대학, 국방대학, 육군대학 등에서도 한 과목의 일부분으로 테러문제를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테러문제를 강의하는 교수진도 대부분 전쟁사, 국제법, 국제정치학 등을 전공한 이들이어서 테러리즘을 학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은 상당히 열악하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직속 ‘대테러리즘국’이 상설기구화돼 있고 테러사건 직후 CIA, FBI, 국방부 등 관계자들로 구성된 국가보안국이 창설돼 테러가 발생하면 종합적으로 상황을 판단, 부처별로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미국도 비행기 폭파테러에 이어 우편물을 통한 탄저균 테러가 계속 확산돼 그야말로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 있는 판국이다. 우리나라도 테러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우선 주한 미군이 있다. 2002년에는 월드컵축구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가 열린다. 테러위험에서 잠시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테러위협 방지에서 ‘3無’다. 첫째, 대응기구가 없다. 둘째, 전문가가 없다. 셋째, 장비가 없다. 지금 테러응징이라는 명분으로 아프간에서 분풀이를 하고 있지만 세계최강이라는 미국도 동시다발로 당했다. 자고로 ‘유비무환’이 최상책이다. 故 박정희 대통령의 ‘유비무환’이라는 친필 휘호가 생각난다. /淸河

계용묵의 단편소설 ‘아다다’에서 아다다는 돈으로 인해 서방의 마음이 변할 게 두려운 나머지 아궁이에 대고 돈을 불태운다. 인간사에서 돈이 많아 사람이 버려지는 일이 적지 않긴하다. 그렇지만 돈에 침뱉을 사람은 또한 없다. 돈은 많고 볼 일이다. 좋은 일을 하려해도 돈이 없으면 제아무리 잘나도 아무것도 못한다. 중국 연나라의 어느왕은 ‘돈 없는 사람을 가장 큰 불구’로 꼽으면서 그 이유를 아내에게는 남편노릇, 부모에게는 자식노릇, 자녀에게는 애비노릇, 친구에게는 친구노릇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텔레비젼에서 무슨 때가 돼 자금 방출뉴스를 내보내면서 자료 화면으로 산적한 돈다발 더미를 보이곤 하는게 있다. 가히 돈더미에 치어도 아프지 않겠다는 생각을 시청자들이 갖게한다. 실제로 일상에서 ‘돈벼락’이라는 말을 흔히 써긴 쓴다. 그 귀한 돈을 길거리에 뿌리는 일도 있다. 일제시대 평양에서 어떤 큰 도둑이 경찰에 붙잡힐 지경이 되자 택시를 대절해 길거리를 누비며 훔친 돈을 다 뿌린적이 있다. 근래에는 서울에서 돈에 포원진 어느 실업자가 역설적인 앙갚음으로 그나마 지닌 돈을 고층에서 뿌린 예가 있다. 또 얼마전에는 역시 서울의 어떤 상가가 기발한 선전광고 수단으로 천원짜리로 1천만원을 사흘에 나눠 날마다 시간 맞추어 고층에서 뿌린 바람에 길거리가 돈을 줍는 인파로 큰 소동을 빚은적이 있다. 지난 22일엔 경기도교육청 정문앞 길에 무려 29억2천170만원의 돈더미가 쌓여 있었다. 전교조교원 7천200여명이 객관적 기준없이 차등지급된 교원성과금을 반납, 도교육청더러 가져가라고 내놓은 돈이다. ‘가져가라!’ ‘못가져간다’하는 와중에서 일부의 돈은 교육청 마당에 내던저져 홑날리며 뿌려지기도 했다. 전교조 교원이라고 하여 돈이 많은 것은 아닐 것이다. 역시 박봉이긴 마찬가지다. 그 좋은 돈을 거부하여 왜 길거리에 내동댕이 처지고 뿌려졌는지를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교원성과금이라는 것이 어쩌다가 ‘ 전시행정’ ‘교단분열’의 지탄대상이 됐는지 실로 안타깝다. 서방의 변심을 걱정하여 돈 뭉치를 휴지처럼 불태운 소설의 주인공 아다다가 다시 생각난다. /白山

어른들 책임

중국의 ‘열녀전’이 전하는 맹자 어머니의 맹모삼천지교는 유명한 고사다. 공동묘지 부근에서 살다보니 어린 아들이 곡성 흉내만 내어 저잣거리로 집을 옮겼더니 이번에는 물건 흥정하는 흉내만 내어, 다시 서당부근으로 이사한 뒤로는 비로소 글읽는 흉내를 내어 마음을 놓았다는 이야기다. 맹모단기(孟母斷機)의 고사가 또 있다. 맹자가 유학을 떠나 공부하다가 공부가 힘드는데다가 고생하는 홀어머니가 보고 싶어 어머니의 생계를 도울 생각으로 집에 돌아갔다. 마침 베틀에서 무명베를 짜던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듣곤 아무말 없이 가위로 베틀의 날을 다 베어버렸다. 깜짝 놀라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네가 공부를 폐하는 것은 어미가 베 날을 끊는 것과 같다”고 꾸짖어 다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일깨운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조선시대의 명필 한석봉의 고사가 있다. 그가 어린 시절에 학업도중에 집에 돌아가자 떡장수인 어머니가 밤에 호롱불을 끈채 아들은 붓글씨를 쓰고 어머니는 떡을 썰었다. 이윽고 불을 켜고 보니 어머니가 썬 떡은 반듯반듯 하여 한결같이 똑같은데 아들이 쓴 붓글씨는 이리저리 비틀거린게 영 엉망이었다. 역시 아들의 부족함을 일깨워 다시 학업에 분발케 함으로써 대명필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동양뿐만이 아니고 서구사회에서도 어머니의 힘은 역시 위대했다. 링컨이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다녔으면서 27세에 변호사가 돼 나중에 대통령까지 할 수 있도록 어린 그를 이끌어 준 것은 가난한 목수아버지의 아내인 계모였다. ‘자녀는 어머니의 거울’이란 서양속담도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다 하여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성세대를 불신하는 것이다. 매우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른들 잘못이다. 기성사회와 가정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이나 청소년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는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존경하지 않는 것을 탓하기 전에 과연 존경받을 일을 했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성장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만약 양친 가정에서 어머니의 노력에도 보람이 적거나 없었다면 이는 또 아버지의 잘못이다. 누구에게나 인간은 흠이 없을 수 없고 다 위인의 어머니같을 수는 없다. 그렇긴 하나 가정과 사회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나름대로 꿈을 심어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본다. /白山

짝사랑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했을 때 정부는 일본과 외교 관계를 단절할 듯 몰아세웠다. 김대중 대통령조차 역사 왜곡을 시정하지 않는다면 일본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끝까지 시정을 요구하겠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도 “일본이 앞으로 두고 두고 후회하고 뉘우치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7월12일에는 대일 문화개방을 중단했다. 그런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잠시 한국을 다녀간 뒤 대일 문화개방 중단, 군사협력 중단 등 대일 보복조치를 단계적으로 철회키로 했다고 한다. 10월16일 있은 한일정상회담이 양국관계 정상화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거듭 하는 이야기지만 고이즈미의 한국방문이 경색된 양국 관계를 복원하는데는 실패했다. 짧은 일정도 문제였거니와 양국간에 존재하는 역사인식의 차이가 너무 현저하기 때문이다. 합의문은 커녕 공동언론 발표문 하나 마련하지 못한채 각자의 기자회견으로 그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과거사에 대한 레토릭부터가 맘에 안든다. 고이즈미는 서대문 독립공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과거 일본이 한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데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런 정도의 사과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든지 형식적으로 할 수 있는 표현이다. 그는 “외국으로부터의 침략”, “서로 반성”운운하면서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교묘하게 희석시켰다. 역사교과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양국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공동연구기구’의 설치를 제의했다지만 이것 역시 그냥 인사 겸 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 나들이’에 지나지 않은 고이즈미가 다녀가자 마자 대일 보복조치의 하나로 연기한 제9차 한일 문화교류 국장급 회의를 조만간 개최하고 11월중에는 한일 영사국장 회의도 열 계획이라고 한다. 내년에 있을 월드컵 공동개최 등 아무튼 일본과는 만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성급한 한·일 문화교류 재개는 좀 체신머리가 없는 것 같아 개운치 못하다. 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일본, 미국을 짝사랑만 하고 있는지 답답하다. /淸河

짝사랑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했을 때 정부는 일본과 외교 관계를 단절할 듯 몰아세웠다. 김대중 대통령조차 역사 왜곡을 시정하지 않는다면 일본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끝까지 시정을 요구하겠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도 “일본이 앞으로 두고 두고 후회하고 뉘우치게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7월12일에는 대일 문화개방을 중단했다. 그런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잠시 한국을 다녀간 뒤 대일 문화개방 중단, 군사협력 중단 등 대일 보복조치를 단계적으로 철회키로 했다고 한다. 10월16일 있은 한일정상회담이 양국관계 정상화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거듭 하는 이야기지만 고이즈미의 한국방문이 경색된 양국 관계를 복원하는데는 실패했다. 짧은 일정도 문제였거니와 양국간에 존재하는 역사인식의 차이가 너무 현저하기 때문이다. 합의문은 커녕 공동언론 발표문 하나 마련하지 못한채 각자의 기자회견으로 그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과거사에 대한 레토릭부터가 맘에 안든다. 고이즈미는 서대문 독립공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과거 일본이 한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 데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런 정도의 사과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든지 형식적으로 할 수 있는 표현이다. 그는 “외국으로부터의 침략”, “서로 반성”운운하면서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교묘하게 희석시켰다. 역사교과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양국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공동연구기구’의 설치를 제의했다지만 이것 역시 그냥 인사 겸 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 나들이’에 지나지 않은 고이즈미가 다녀가자 마자 대일 보복조치의 하나로 연기한 제9차 한일 문화교류 국장급 회의를 조만간 개최하고 11월중에는 한일 영사국장 회의도 열 계획이라고 한다. 내년에 있을 월드컵 공동개최 등 아무튼 일본과는 만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성급한 한·일 문화교류 재개는 좀 체신머리가 없는 것 같아 개운치 못하다. 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일본, 미국을 짝사랑만 하고 있는지 답답하다. /淸河

소 인 배

최근 군대의 사병 내무반에는 과거와 같은 물리적 폭력이 거의 없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통념이다. 그러나 ‘얼차려(군기잡기)’라는 신세대형 기합이 생겨 군대에 자식을 보낸 부모의 가슴을 졸이게 하고 군 당국에는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TV시청 시간에 혼자만 벽 보고 앉아 있게 만들고, 말을 안거는 등 중·고교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왕따행위가 그 신종 기합이라고 한다. 잠자는 하급자를 깨운 뒤 고참병의 근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게 만들거나 체육 또는 작업시간에 열외 시키기 등으로 물리적 접촉은 하지 않는 대신 인간적 모멸감이나 소외감을 느끼도록 해 하급병들의 군기를 잡는다는 것이다. 한달동안 밥에 물을 말아먹게 하고 먹기 싫은 반찬을 계속 먹게 하거나, 고참들이 밥을 덜어주며 다 먹게 하는 기합도 있다. 50대 이상들의 춥고 배고팠던 군대시절을 생각하면 기막히는 격세지감이다. 이같은 군기잡기는 이른바 ‘고문관’으로 불리는 전통적인 군대 미적응형이 주 대상이지만 지금은 학벌이나 집안 환경이 좋을수록 대상이 되기 쉬워 신병들이 학력이나 부모의 직업을 속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국군 수도병원 정신과에 입원하는 환자들 가운데는 ‘얼차려’에 시달리던 사병들이 많다고 한다.외상보다는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후송되는 사병이 훨씬 많고 이들중 일부는 평생 스트레스에 시달릴 가능성이 보인다고 한다. 일부 신세대 병사들의 나약함이나 인내력 부족으로 인해 내무반에서의 갈등과 충돌소지가 과거보다 많아져 신종 가혹행위 발발 가능성이 상존하지만, 이를 단속하면 장교 등 간부들이 상상도 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변형된다니 아닌게 아니라 비상사태가 아닐 수 없다. 더 큰 고질적인 문제는 ‘쫄병’시절 기합 많이 받은 병사가 고참이 되면 더욱 악랄해지는 경우다. 물론 모든 고참들이 올챙이 적 모르는 개구리라는 것은 아니다. 신병 시절을 생각하지 못하는 고참은 제대 후에도 이 사회에서 퇴출당할 게 뻔한 소인배들이다. 올해 전반기에 일어난 군내 사망사고가 75명이다. 이 가운데 자살 등 군기사고가 32명이라는 것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軍은 내무반에 있는 소인배들부터 소탕해야 한다. /淸河

한국의 對테러전쟁

대마도를 근거지로 하여 고려말부터 본격화된 왜구의 약탈은 조선초 한반도의 해안지역 전역으로 확산됐다. 조선 세종 원년인 1419년 5월5일과 13일에는 50척 규모의 왜구 선단이 충청도 비인현과 황해도 해주 연평곶을 침략, 약탈하는등 극에 달했다. 세종의 아버지(상왕)로 병권을 쥐고 있던 태종의 주재하에 왜구토벌에 관한 조정차원의 대책논의가 열렸다. 이틀에 걸친 강·온파의 격론 끝에 이종무(李從茂·1360 ∼1425)장군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대마도 정벌군’을 편성했다. 정벌군은 한달여 동안의 준비가 끝난 1419년6월19일 병선 227척과 병력 1만7천285명, 군량미 65일분을 싣고 대마도로 출병했다. 조정은 출병에 앞서 대마도에 사자를 보내 약탈자를 체포해 조선으로 송환할 것을 요구하고 출병 10일전 선전포고에 준하는 대마도 정벌의지를 천명했다. 정벌군은 출동기지 주변 왜인들을 체포해 멀리 보내고 반란 가능성이 있는 왜인 21명은 처형했다. 이와 함께 정벌시 본토방어를 위해 장정들을 예비군으로 차출, 4교대로 경비근무를 시켰다. 이종무장군이 이끄는 토벌군은 별다른 저항없이 6월20일 오전 11시쯤 대마도에 상륙한 후 데려간 왜인을 통해 대마도주 도도웅와(都都熊瓦)의 귀순을 종용했으나 거부당했다. 이에 토벌군은 공격을 개시, 순식간에 129척의 적선을 소각 및 포획하고 가옥 1천939호 소각, 왜구 104명을 죽이고 21명을 포로로 잡는등 전과를 올렸다. 토벌군은 보름동안 대마도에 주둔하는 동안 왜인들의 기습으로 장수 3명이 전사당하는 등 피해를 보기도 했지만 대마도주의 항복과 함께 ‘앞으로 군신의 예로서 섬기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7월3일 거제도로 귀환했다. 작금 미국이 아프간을 상대로 대(對)테러보복전쟁을 벌이고 있는 양상은 마치 한국이 600년 전 조선 세종 때 있었던 ‘대마도 정벌’과 매우 비슷하다.출병동기와 무력 상황, 테러자 송환 요구 등이 모두 그러하다. 미국이 ‘9·11 동시다발 테러’의 주범이라고 지목하는 빈 라덴은 항복할 징후는 전혀 없고 전쟁은 장기전이 될 것 같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부시대통령에게 이종무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淸河

아프간전 과잉방송

1997년 8월30일 새벽 0시35분이었다. 다이애나빈의 파리 교통사고 사망 보도가 미국의 CNN, ABC, NBC 등에서 숨가쁜 현장 중계로 이어졌다. 유독 CBS만이 한가하게 프로레슬링 경기를 중계했다. CBS는 다른 방송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뉴스특보를 내보낸지 한시간이 지나서야 사고중계에 가담했다. 보도의 판단착오였던 것이다. CBS 내부적으로는 제때 뉴스를 공급받지 못한 지방 가맹사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외부적으로는 위신이 크게 실추됐다. 헤이워드 CBS 사장은 ‘악몽의 한시간’이라고 탄식했다. 그는 문책인사를 단행, 뉴스담당 베나르도스 부사장을 특집담당으로 좌천시키고 여성인 맥기니스 런던 지국장을 후임으로 승진발령 했다. 방송편성에서 중요한 것은 CBS 같은 낙종도 문제지만 역으로 과잉보도 역시 편성의 결함으로 지적된다. 미국의 아프간 보복전쟁을 두고 국내 방송의 과잉보도가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불만이 있었던 가운데 기자협회보 10월13일자에 주목되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의 주요 방송사들이 뉴스 속보를 중단한 이후에도 우리 방송에서 철야로 5∼8시간이상 보도를 내보낸 건 지나친 흥분’이라는 요지의 기사다. 공습 장면등에 자료화면과 그래픽을 남용한 것은 선정적인 편집이었다는 것도 아울러 지적했다. 아프간 전쟁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물론 크지만 전쟁 자체는 미국의 전쟁이지 우리의 전쟁은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우리의 전쟁인 것처럼 방송이 과잉보도한건 국내사회를 지나치게 과민케 만들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것이다. 외신 인용도 그렇다. 외국의 각 외신은 그들 국익의 입장에서 기사가치를 배분한다. 그같은 외신을 마구잡이로 인용 보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국익의 실종을 가져온다. 미군 폭격으로 죽어가는 아프간 민간인은 “우리는 빈 라덴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왜 이 참상을 당해야 하느냐”고 절규한다. 그렇지만 그같은 절규보다는 미국의 작전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는 것이 미국의 외신이다. 보도는 진실추구가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적있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미국 국익에 치우친 국내방송의 아프간전 과잉보도를 보노라면 차라리 CBS의 다이애나빈 낙종처럼 낙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白山

화생방

제2훈련소 신병훈련장에 ‘눈물고지’란게 있었다. 화생방 교육장이다. 교육을 마치고 나면 얼굴이 온통 눈물에 콧물이 뒤범벅 되곤 했다. 눈은 매워 제대로 뜰 수 없고 가슴은 답답하며 목이 잠겨 헛기침만 해대기 마련이다. 훈련이니까 이정도지, 실전에서는 이렇게 죽어가는 것이 화학전이다. 화생방은 독가스등 화학무기, 세균등 생물학무기, 방사능등 핵무기를 일컫는다. 영어로는 각 머리글자를 따서 CBR 이라고 한다. 화학 및 생물학 무기는 운반 및 살포가 비교적 쉬우면서 핵무기처럼 대량 무차별 살상이 가능한 가공할 특성을 지녔다. 지극히 비인도적 무기인 것이다. 특히 화학무기는 제조가 핵무기보다 훨씬 간단하고 생산비도 핵탄두의 1%밖에 안되면서 살상력이 높아 ‘제2의 핵무기’로 불린다. 제1차대전 때 연합군에게 치명타를 입혔던 독일의 유명한 독가스전이 곧 화학무기인 것이다. 화학무기의 생산 보유를 금하는 ‘화학무기 금지조약’(CWC)이 있으나 미가입국이 있고 가입국에서도 실제로 전량 폐기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생물학무기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국제사회가 이의 금지를 협약한 지는 오래됐지만 제대로 지켜진다고 보기에는 역시 의문이다. 북측의 핵무기 제조여부가 한동안 큰 관심사였으나 실은 그들이 갖고 있는 상당량의 화학무기, 생물학 무기가 더 두렵다. 또 화학무기는 전쟁상황에서만 사용되지만 생물학 무기는 치명적인 각종 전염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게릴라전이나 후방 테러 등 소리없는 전쟁에 사용돼 더욱 무섭다. 테러로 추정돼 미국을 공포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탄저병 소동이 만약 테러에 기인한게 사실이라면 생물학전인 것이다. 사람과 동물, 식물에까지 발생하는 탄저병은 감염 경로에 따라 병형이 다르긴 하나 사람과 짐승은 치사율이 아주 높은 패혈증을 일으킨다. 1850년에 양의 혈액에서 발견된 탄저균은 10년이상의 건조상태에서도 생존하고 가열, 일광 소독등에 저항이 강해 오염된 것은 불태워 없애는게 상책이다. 세균, 바이러스 등으로 제조하는 생물학 무기는 탄저병외에 천연두, 페스트, 뇌염, 이블라 출혈열, 식중독 등 30여종이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등에 새로운 생물학무기 탐사장비를 배치했으며, 일본은 생물학무기 공격대처 사업비를 편성해 놓고 있다. 우리나라는 생물학 무기의 완전 사각지대다. 무대책이 대책인 것이다. 겨우 반입루트 차단에 주력하고 있을 뿐이다. /白山

‘미친 전쟁’

영국작가 조나단 스위프트가 1726년에 쓴 풍자소설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과 거인국의 얘기다. 인도로 항해하던중 난파하여 소인국 릴리펏 해안에 표류된 걸리버의 머리카락을 그들 말뚝에 붙들어 매지만 어렵지 않게 털고 일어선다. 소인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가히 초인적이어서 그들 국왕에게 중용된다. 그러나 거인국 브로브딩낙에서는 작아도 아주 작은 난장이 취급을 당해 구경거리가 된다. 마침내 왕비의 애완용 동물신세로 전락한다. 기상천외의 픽션으로 당시의 세태를 예리하게 풍자한 소설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왕은 고향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다. 목동이었던 소년시절에 거인 골리앗을 죽여 사울의 신임을 얻어 왕이 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아들 솔로몬 같은 메시아 자손을 두게됐다.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죽인 것은 양을 해치는 승냥이를 퇴치하기 위해 익힌 돌팔매질로 이마를 정통으로 맞혔기 때문이다. 마호메트는 AD 570년경 아라비아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여섯살땐 어머니마저 잃었다. 조부, 숙부에게 의지하여 자랐다. 그가 아라비아의 옛수도 메카 근교 히라산 동굴에서 명상중 알라신의 계시로 예언자가 된 것은 마흔살이 갓 넘어서였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 하는 보복전쟁은 이를테면 걸리버가 소인국에서 행세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아프간이 아무리 결사항전 한다 해도 정규전에서는 첨단무기를 실험하는 미국의 전쟁상대가 될 수 없다. 부시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며 힘없는 약소국, 아프간에 정예군 수천명을 투입하고 미사일에 전폭기 공격을 가하는 것은 소인국에서 활개친 걸리버의 오만과 다름이 없다. 애시당초 상대가 안되는 약소국을 얕잡아 보고 하는 그의 승리 다짐은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다. 약육강식의 국제사회는 비단 19세기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뉴욕타임즈는 미군이 아프간의 한 마을을 오폭, 초토화 하면서 53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냈다고 보도했다. 부시의 오만을 응징할 거인국이 지구상에 없다 하여도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돌팔매질은 있을 수 있다. 테러 보복구실의 무모한 부시의 확전이 또 다른 테러를 불러들이지 않을까 하여 걱정된다. 테러는 마땅히 추방돼야 하지만 알아두어야 할게 있다. ‘테러추방은 테러의 요인 추방부터 있어야 한다’는 미국 어느 석학의 말이 생각난다. 부시의 전쟁은 ‘미친 전쟁’(crazy war)이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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