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대통령 추석선물 거부

대통령은 명절 때마다 각계 인사들에게 선물을 한다. 국가와 사회발전에 헌신한 각계 원로, 제복 영웅 및 유가족, 사회적 배려계층 등에 보낸다고 한다. 당연히 국회의원들에게도 보낸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추석 선물로 전통주와 화장품 세트를 마련했다. 전통주 세트에는 도라지약주(경남 진주), 유자약주(경남 거제), 사과고추장(충북 보은), 배잼(울산 울주), 양파잼(전남 무안) 등이 포함됐다. 화장품 세트는 오얏 핸드워시, 매화 핸드크림(전남 담양), 청귤 핸드크림(제주 서귀포), 사과 립밤(경북 청송), 앵두 립밤(경기 가평), 손수건 등으로 구성됐다. 대통령실은 선물에 “넉넉한 추석 명절입니다. 밝은 보름달과 함께 행복한 명절 보내십시오”라는 인사말을 윤 대통령이 손글씨로 쓴 카드를 넣어 보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추석 선물에 야당 의원들의 ‘수령 거부’가 이어지고 있다. 이성윤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추석 선물 사진을 올리며 “용산 대통령실 윤석열, 김건희로부터 배달이 왔다”며 “받기 싫은데 왜 또다시 스토커처럼 일방적으로 보내시나요”라고 적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불통령의 선물이 보기 싫어 반송했다. 고생하시는 기사님께는 번거롭게 해드려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며 택배기사에게 선물을 되돌려주는 사진을 첨부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도 “국민을 거부하는 윤 대통령의 선물을 거부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명절 선물 수령 거부는 예전에도 있었다. 2017년 9월 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을 비롯한 일부 야당 의원들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가결에 항의의 뜻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선물을 반송했다. 2016년 9월에는 표창원 민주당 의원 등이 박근혜 대통령의 선물을 반송했다. 야당 의원들은 “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만큼 국회의원들이 모범을 보이는 차원”이라 했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선물 거부가 ‘박절하다’는 의견도 있고, ‘안 받을 자유가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답답하고 씁쓸한 풍경이다.

[지지대] 우수마발(牛溲馬勃)과 자원순환의 날

‘우수마발(牛溲馬勃)’. 국문학자인 무애(无涯) 양주동 박사의 어록 중 한 구절이다. ‘삼인칭야(三人稱也)’라는 어미가 붙었다. 고교시절 국어 현대문 교과서에도 나왔던 표현이다. 당시 대학 입시는 물론이고 대기업 입사시험에서도 자주 출제되던 문항이기도 했다. 필자의 기억이 맞는다면 말이다. 여기서 우수와 마발의 뜻을 헤아려 보자. 우수는 한자로 소의 오줌이다. 마발은 말의 똥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양주동 박사가 구태여 이런 어줍잖은 어휘를 사용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처럼 쓸모 없고 하찮은 것들도 다 소중하다는 의미가 담겼다. 명쾌한 반전이다. 당나라 문장가 한유도 그랬다. “우수마발을 모두 거둬 저축해 놓고 쓰일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이것들을 자양분으로 식물이 자라나 대지를 풍요롭게 만들어서다. 따지고 보면 소와 말의 분비물도 다 후손들로부터 빌린 일종의 채무다. 고스란히 보전된 자연은 결국 후손들에게 내야 하는 이자인 셈이다. 무릇 환경을 그렇게 온전하게 물려줘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선 순환이 최우선이다. 한정된 자원이나 제품 등도 그래서 되돌려 써야 한다. 상품을 만들기 위해선 에너지가 투입된다. 그 바람에 많은 이산화탄소가 분출돼 온난화도 가속화된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순환은 필수다. 플라스틱, 스티로폼, 비닐 등은 분해가 어려워 그대로 버려질 경우 토양이나 지하수 등을 오염시킨다. 지구촌에서 매년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5천200만t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순환이 최대의 덕목이어야 하는 대목이다. 매년 9월6일은 ‘자원순환의 날’이다. 정부가 지구온난화로부터 환경 보호의 필요성 및 자원 낭비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정했다. 지원순환의 날을 맞아 턱을 괴고 지고지순한 취지를 일깨워 보자. 그만큼 자연은 소중하니까 말이다.

[지지대] 버스 파업과 의료개혁

경기도 버스 노사 협상이 4일 새벽 극적으로 타결됐다. 버스는 서민의 발이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버스를 이용하는 서민이 많다. 그래서 파업을 예고하고 벌이는 버스 노사 협상은 버스를 매일 이용하는 서민들의 마음을 졸이게 한다. 이번에도 협상 결렬 시 9천대가 넘는 경기도 버스가 멈춰 서 이용객들이 큰 불편을 겪을 뻔했다. 경기도 버스기사들은 서울 버스기사들에 비해 처우가 낮다. 서울 기사와 처우를 맞춰 달라는 것이 경기도 버스기사들의 요구다. 반면 버스사 측은 경영 여건상 노조의 요구 수용에 난색을 보이면서 갈등을 빚는다. 버스 노사 간 매년 벌어지는 줄다리기다. 거기서 애꿎은 서민들을 담보로 협상을 벌인다는 점이 씁쓸하긴 하지만 그래도 경기도 버스 노사는 이견을 좁히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절충점을 찾았다. 경기도 버스 이용객의 불편이 해소됐다. 정부가 의료개혁을 발표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정부와 의사의 갈등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대 정원을 증원해 의사를 늘리겠다는 것이 정부 의료개혁의 핵심 내용이다. 의사들이 즉각 반발했다. 전공의들이 대학병원을 떠났다. 정부는 이미 발표한 의사 증원 계획을 변경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의사들은 개혁안을 백지 상태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러는 사이 아픈 시민들만 서럽다. 환자들이 볼모가 됐다. 응급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다수의 병원에 전화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다. 급기야 24시간 365일 운영하던 아주대병원 등 대학병원들이 응급실을 축소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국민들의 불편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한 위험한 갈등이다. 진정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면 정부와 의사집단이 하루빨리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지 않을까.

[지지대] “청년이 지갑 열게 만드는 세상 만들어야”

내수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 가운데 하나가 신용카드 결제 금액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경기가 활성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최근 신용카드 결제 금액이 지난해에 비해 눈에 띄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기관 부설 연구소의 분석 결과다. 특히 청년층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불경기에 지갑을 닫고 있는 셈이다. 사회 초년생으로 물가 흐름에 민감한 만큼 이들의 신용카드 이용 금액 증감의 의미는 그래서 각별하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통계청 ‘빅데이터 활용’ 자료를 분석해 내놓은 지난달 3~9일 국내 신용카드 이용 금액은 1년 전보다 0.8%(12주 이동 평균) 증가하는 데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주간 단위 신용카드 이용 금액의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증가율은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21년 1월 첫째 주 이후 최근까지 계속 떨어졌다. 2021년 4~5월 10%를 웃돌았던 증가율은 높은 변동성 속에서도 지난해 연중 플러스를 유지했다. 올해 1~2월에도 5% 안팎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갈수록 하락해 올해 4월 들어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이후로도 반등하지 못하고 0~1%대로 바닥을 기는 흐름이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대 이하의 증가율 하락이 눈에 띌 정도로 심화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3~9일 20대 신용카드 결제 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0%(12주 이동 평균) 감소했다. 같은 시기 30대(-0.3%)와 40대(-1.4%) 등도 마이너스를 기록했지만 감소 폭은 크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고령인 50대(2.0%), 60대(7.1%), 70대 이상(15.3%)은 되레 이용 금액이 1년 전보다 증가해 대조를 보였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청년들에게 “힘을 기르자”고 읍소했다. 이들이 강해져야 한다. 청년이 나라의 기둥이어서다. 이들이 지갑을 활짝 열어야 우리 경제도 살아난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지지대] ‘긱 이코노미’ 시대

요즘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는 용어가 많이 쓰인다. 산업 현장에서 필요에 따라 관련 있는 사람과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경제 형태다. 긱 경제에 종사하는 사람은 ‘긱 워커(gig worker)’라 한다. ‘긱’은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에서 연주자를 그때그때 섭외해 단기공연 계약을 맺어 공연했던 것에서 유래됐다. 이런 ‘긱’ 개념은 미국 경제계에서 널리 사용된다. 주로 디지털 플랫폼 등을 통해 단기계약을 맺고 일회성 일을 맡는 등 초단기 노동을 제공한다. 정규직을 쓰는 대신 필요에 따라 단기 임시·계약직을 주로 고용하는 긱 이코노미는 우리나라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주 5일 40시간씩 회사에 있는 정규 근로자보다 일주일에 36시간 미만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주당 36시간보다 적게 일한 단시간 근로자는 680만8천명으로 1년 전보다 35만7천명 늘었다. 전체 근로자 가운데 단시간 근로자 비율은 23.6%까지 뛰었다. 주 36시간 미만 일하는 ‘긱 워커’ 증가세는 30대 이하 청년층과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두드러졌다. 청년층 긱 워커의 증가는 취업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신입사원 공개 채용을 줄이고 경력직 수시 채용을 늘리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취업할 때까지 생활비나 용돈을 벌기 위해 단시간 근로라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5월 기준 청년들이 직장을 잡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1.5개월이었다. 고령층의 근로 여건도 답답하다. 7월 기준 70세 이상 가운데 주 36시간 미만 근로자는 135만6천명인 반면, 36시간 이상은 71만8천명이었다. 정부가 확대한 노인 일자리 대부분이 하루 3~4시간 일하는 데 그친다. 긱 경제가 실업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일자리의 질이 나빠져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논란이 있다. 긱 이코노미는 투잡, 쓰리잡 등 N잡러를 양산하기도 한다. 산업구조는 변하고 먹고살기는 여전히 힘들다.

[지지대] 주 4.5일 근무제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민선 8기 후반기 중점 과제는 ‘사람중심 경제’, 이른바 휴머노믹스다. 그 중 직장인들의 눈에 확 들어오는 건 ‘주 4.5일 근무제’다. 김 지사는 내년부터 일부 산하 공공기관과 도내 50개 민간기업에 시범 도입할 것이라고 했다. 임금 삭감은 없다. 주 4.5일제는 격주로 주 4일 근무, 주 35시간제, 매주 금요일 반일 근무 등 방식이 다양하다. 경기도는 10월부터 이를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할 예정이다. 근로시간 단축분에 대해선 경기도에서 임금을 보전해 주기로 했다. 소요 사업비는 100억원 정도 예상하고 있다. 도는 주 4.5일제가 일과 가정의 양립은 물론이고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도 긍정적 성과를 가져오길 기대하고 있다. 주 4.5일 근무제는 제주특별자치도가 7월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국가·공공기관 최초로 이른바 ‘13시의 금요일’을 도입한 것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8시간 근무 외 4시간 이상을 추가로 근무하고 금요일 오후 1시에 퇴근하는 방식이다. 유연근무제를 활용해 주 40시간 근무를 유지하면서 금요일 오후 휴식을 보장하는 4.5일제다. 경기도와 제주도 모두 주 4.5일제를 시행하지만 차이가 있다. 경기도는 주 40시간이 아닌 ‘주 35시간 근무’라는 게 파격적이다. 그것도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다. 주 4.5일제가 낯선 것은 아니다. 2~3년 전부터 몇몇 기업에서 주 4일제 또는 4.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정치권과 노동계도 거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주 4일(4.5일) 근무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주 4일제를 22대 국회 우선 입법과제로 두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 여러 나라들도 주 4일제를 위해 다양한 형태로 시범 적용·도입을 실행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이 4일 또는 4.5일 근무제로 바뀔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의 주 4.5일제 시범사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지지대] 벌 쏘임 주의보

해마다 이맘때면 이행해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벌초가 그렇다. 불청객이 있다. 벌 쏘임이다. 최근 관련 사고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는 유례없는 폭염으로 벌들의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심화하고 있다. 벌에 쏘이면 심할 경우 1시간 이내에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신속한 처치와 치료가 필요하다. 소방청에 따르면 올해 발생한 벌 쏘임 관련 사고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2천815건으로 집계됐다. 최근 3년 같은 기간 평균(804건)보다 40% 늘었다. 월별 증가율은 6월 48.2%, 7월 47.3% 등으로 말벌의 왕성한 활동 시기인 여름철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특히 늦더위가 이어지고 등산이나 벌초 등 야외 활동이 증가하는 8~9월(57.8%) 빈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벌 쏘임으로 인한 심정지 환자도 2020년 7명, 2021년 11명, 2022년 11명, 지난해 11명, 올해는 최근까지 8명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소방청은 벌 쏘임이 늘고 가을까지 늦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자 주의보를 발령했다. 벌 쏘임을 예방하려면 향수나 화장품, 헤어스프레이 등 벌의 공격성을 자극하는 강한 향이 나는 제품 사용을 피해야 한다. 검정 등 어두운 색보다는 흰색 계열 옷을 입고 챙이 넓은 모자와 긴 소매 옷을 착용해야 한다. 벌이 주위에 있으면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이동해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한다. 벌에 쏘였다면 신용카드 등으로 살살 밀어내듯 벌침을 신속하게 제거하고 쏘인 부위를 소독하거나 깨끗한 물로 씻은 후 냉찜질로 통증을 완화해야 한다. 호흡 곤란, 입술이나 목의 부기, 심한 두드러기나 발진, 구역질, 구토 등의 증상을 보이면 즉시 119에 신고해 치료받아야 한다. 추석을 2주일 앞두고 있다. 조상 묘에 무성한 잡초들을 솎아 내야 하는 시기다. 벌에 쏘이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면서 말이다.

[지지대] 퍼레니얼 세대의 고민

퍼레니얼(Perennial)은 ‘오래 성장하는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퍼레니얼 세대는 모바일 뱅킹과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문물을 익히고 육체·지적활동이 활발한 어르신을 가리킨다. 50~60대가 딱 그렇다. 베이비붐 세대로도 불리는 이 연령층은 노인과 장년 사이에 끼었다. 그래서 젊은 어르신이라고도 불린다. 해당 연령층이 노후 대비와 관련해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금융권의 분석 결과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베이비부머와 386세대 등 은퇴를 앞둔 ‘프리시니어’(예비 시니어)는 퍼레니얼 세대 명칭에서 보듯 노년층이란 고정관념을 탈피해 새 세대 역사를 쓰고 있지만 노후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며 이처럼 진단했다. 이 세대는 10명 중 8명이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저축하고 있고 보유한 자산은 국내 총 순자산의 절반에 육박해 국부(國富)의 중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가 유연해 부동산 자산 비중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려는 성향도 강하다. 여러 금융사에 흩어진 자산 데이터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분석하면 새 재테크 도구에 대한 관심도 높다. 물론 고충도 크다. 이들은 많이 저축했지만 이 돈으로 구체적으로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 세부 목표가 불분명해 불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여러 지출 항목에 따라 돈을 준비하지 않고 무작정 저축하다 보니 쉽게 지치고 ‘목표치보다 저축량이 부족하다’는 생각까지 겹쳐 걱정을 키운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후에 나올 고정 소득이 얼마인지 시뮬레이션을 해볼 기회가 적고, 이 세대는 부동산 자산 비중이 아직 통상 70%가 넘어 앞으로의 현금 흐름을 예측하기가 까다롭다. 어느 세대나 노후는 불안하기 마련이다. 본격적으로 황혼기를 맞은 퍼레니얼 세대에게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복지당국이 헤아려야 할 숙제다.

[지지대] ‘협궤열차’

“한번 간 사랑은 그것으로 완성된 것이다. 애틋함이나 그리움은 저세상에 가는 날까지 가슴에 묻어 둬야 한다.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거들랑 자기 혼자만의 풍경 속으로 가라. 진실로 그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선 그 풍경 속의 가장 쓸쓸한 곳에 가 있을 필요가 있다.” 윤후명 작가의 장편소설 ‘협궤열차’ 도입부다. 제목이 특이해 펼쳤다가 단숨에 읽었다. 그 조그만 열차를 타고 둘러 봤던 서해안 풍광도 잊을 수 없다. 열차와 함께 달리던 맨드라미 행렬과 남미에서 시집 온 칸나 꽃이 처연하게 핀 모습 등이 그랬다. 흔치 않은 선경(仙境)이어서다. 얼개는 열차가 정차하는 곳에 거주하는 ‘나’를 주인공으로 이뤄진다. 군자역과 달월역 등 옛 수인선 역들을 비롯해 소래철교 부근 바닷가 풍경, 협궤열차를 타는 어민들의 모습, 시흥 군자봉 성황제 등을 배경으로 삶과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여덟 가지 사랑 이야기도 담았다. 오랜 세월을 협궤열차에 실려 보낸 역장의 죽음을 뼈대로 여인 ‘류’에 대한 열정과 상실의 기억들, 그리고 사라진 아내를 찾아 나선 어느 사내의 이야기 등이 협궤열차처럼 이어졌다. 수원과 인천을 잇던 수인선 얘기다. 지금은 아파트단지 등에 가려진 철로로 열차가 운행됐다. 국제규격으로는 철로 폭이 1천435㎜이나 수인선은 762㎜여서 협궤선으로 불렸다. 1937년 8월 개통됐다. 총길이는 52㎞였다. 소래, 남동, 군자 등지의 소금과 경기도 내륙에서 생산되는 쌀을 수탈할 목적으로 건설됐다. 1946년 5월 국유화됐고 이후 쌀 수송이 사라지고 1970년대 이후 염전지대 물량도 줄었다. 1995년 12월 영업이 종료됐다가 2020년 9월 수인분당선으로 부활했다. 꺾일 줄 모르는 폭염에 갈수록 척박해지지만 마음 한 편에 좁은 철로 하나는 품고 살아가는 건 어떨까. 좁다고 마음까지 좁은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지지대] ‘동두천 성병관리소’ 철거 논란

동두천 하면 미군 부대와 클럽, 기지촌 여성을 떠올린다. 양공주로 불린 기지촌 여성은 6•25전쟁 이후 주로 주한미군을 상대로 매춘을 한 주한미군 위안부다. 동두천은 면적의 40% 넘는 땅을 미군이 점유했다. 보산동과 광암동 일대엔 4천여명에 달하는 기지촌 여성이 있었다. 끌려오거나 팔려온 이들도 많았다. 정부는 매춘을 장려했다. 달러벌이 수단이었고, 미군과의 정치사회적·군사적 문제가 얽혀 있었다. 대법원은 2022년 “국가가 성매매를 중간 매개하거나 방조한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정부는 성병관리소인 ‘낙검자(검사 탈락자) 수용시설’을 운영했다. 1970~80년대 미군 클럽에 등록된 여성들은 주2회 의무적으로 성병 검진을 받았고, 이를 증명하는 검진증을 소유해야 했다. 불시 검문 때 검진증이 없으면 성병관리소에 수용됐다. 많은 기지촌 여성들이 성병에 걸렸다. 병 걸린 이들은 성병관리소에 구금됐다. 관리소는 수용자들이 철창에 갇힌 원숭이 같다해서 ‘몽키하우스’라고도 불렸다. 성병관리소는 경기도에 동두천과 양주, 의정부, 파주(두 곳), 평택 등 여섯 곳에 설치됐고, 1993년 대부분 운영을 중단했다. 남은 건물은 동두천 성병관리소가 유일하다. 소요산 자락 6천766㎡에 2층으로 지어진 시설에는 방 7개에 140명까지 수용이 가능했다. 관리소는 1973년부터 운영해 1996년 보건소 내 성병관리팀이 없어지면서 폐쇄 됐다. 28년간 방치됐던 동두천 성병관리소의 철거 여부를 놓고 논란이 거세다. 동두천시가 이 시설을 철거하고 호텔과 테마형 상가 등을 짓는 소요산 일대 개발 관광사업을 추진 중이다. 참여연대와 정의기억연대 등 전국 59개 시민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 철거 저지에 나섰다. 성병관리소가 한국 근현대의 아픈 과거를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외화벌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인신매매, 성폭력, 임신, 유산, 약물중독, 자살 등 국가에 의한 여성인권 침해가 있던 곳이다. 부끄럽고 슬픈 역사지만 지워버리기보다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현장이다.

[지지대] 아슬아슬 ‘스몸비족’

스마트폰이 옆에 없으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해 잠들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보고, 화장실에서도 본다. 심지어 운전을 할 때도 본다. 길을 걷거나,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본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길거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을 넋 빠진 시체 걸음걸이에 빗대 ‘스몸비(smombie)’라고 한다.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다.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매인 세태를 풍자한 것으로 2015년 독일에서 처음 사용됐다. 현대인의 스마트폰 사용은 지나치다. 상당수가 중독자다. 걸을 때나 운전할 때도 시선이 스마트폰을 향해 있어 각종 안전사고가 늘고 있다. 눈은 스마트폰에 고정돼 있고, 귀는 이어폰을 끼고 있어 눈과 귀를 닫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다.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다. TAAS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경기도내 횡단보도 보행 중 발생한 교통사고는 연 평균 1천389건으로 집계됐다. 이중 상당수가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것이다. 운전자가 스마트폰을 보다가 사고를 내는 경우도 있다. 운전 중 스마트폰 사용은 음주운전만큼 위험하다. AXA손해보험이 운전면허 소지자 1천400명을 대상으로 한 ‘2023 운전자 교통안전 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8.1%가 ‘운전 중 스마트기기를 이용하며 횡단보도를 걷는 보행자를 경험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42.4%는 주행 중 스몸비족으로 인한 교통사고 위험 상황을 겪었다고 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걷게 되면 거리 감각은 40~50% 떨어지고 시야 폭은 56%로 좁아진다. 이어폰까지 끼면 자동차 경적 등 소리가 안 들려 사고 위험이 더 크다. 지자체와 경찰서 등에서 스몸비족의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보행 중 스마트폰 주의’ 교통안전표시를 하고 바닥 LED 보행 신호등, 음성 안내 보조장치 설치를 확대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낮다. 해외 사례처럼 스몸비 사고 방지를 위한 법적·행정적 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지대] 다섯 쌍둥이의 희생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폭격에 열 살배기 다섯 쌍둥이가 희생됐다는 외신을 읽고서다. 포성이 멈추지 않는 중동 가자지구에서다. 헤드라인도 끔찍했다. ‘가정집 폭격에 엄마·동생까지 일가족 참변’, ‘휴전협상 와중에도 가자 전역 포성으로 얼룩’.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가해자 측은 이스라엘이다.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이 진행 중인 가운데, 가자지구 데이르 알발라에서 집에 머물던 10세 다섯 쌍둥이와 엄마, 동생 등 일가족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휴전 협상 와중이었다. 가자지구 알아크사 순교자 병원 측에 따르면 가정집에서 폭격으로 성인 여성 한 명과 함께 있던 자녀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한 아이들의 할아버지를 비롯해 교사인 딸도 숨졌다. 사망한 손주들 중 가장 어린 아이의 나이는 불과 18개월이었다. 나머지 희생자들은 열 살 된 다섯 쌍둥이였다고 병원 측은 전했다. 현장에 있는 기자가 직접 시신을 확인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사체포 한 개에 담았다. 이 아이들이 뭔 잘못을 했느냐. 이들이 유대인들을 죽였느냐. 이것이 이스라엘에 안보를 가져다 주는 일이냐”라며 절규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 도시에선 또 다른 공습으로 적어도 4명이 더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가자 북부 자발리야의 한 마을에서 공동주택 두 채가 공격받아 성인 남성 두 명과 모녀가 숨졌다. 가자 중부에서도 두 건의 공습으로 9명이 사망했고 난민촌이 있는 누세이라트에서도 공습으로 한 명이 숨진 것으로 보도됐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집트, 카타르 등은 15~16일 카타르 도하에서 만나 휴전협상을 진행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에 다음 주 이집트 카이로에서 협상을 재개할 예정이다. 무릇 참화는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하지만 전쟁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구차한 변명은 하지 말자. 어떠한 논리로도 민간인 학살을 합리화할 순 없다.

[지지대] 불안한 세상, 희망은 어디에

세상이 불안하다. 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난 전기자동차 화재 사건.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전기차 화재로 자칫 많은 인명 피해가 날 뻔했고 불이 빨리 꺼지지 않으면서 많은 재산 피해도 냈다. 이후 전국으로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하고 있다. 포비아(Phobia)는 ‘대수롭지 않은 일을 늘 크게 생각해 두려워하고 고민하며 불안을 느끼고 자기 통제를 하지 못하는 병적 증상’으로 소위 공포증을 뜻한다. 지난달 초에는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역주행 자동차 때문에 무려 9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치는 참사도 많은 시민을 공포에 떨게 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차가 덮칠지 모르기에 맘 놓고 길도 걸을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코로나19도 다시 시민들의 삶을 불안하게 한다. 과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지만 고작 엔데믹 공식 선언 1년여 만에 입원 환자가 급증하면서 재유행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헛기침만 해도 코로나19를 의심하는 눈총을 받는다. 여기에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 공백 우려는 시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요소다. 이 밖에 폭염은 물론이고 장마 같은 기후까지 매일매일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모든 시민은 안전하게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한다. 이는 정부가 짊어진 의무다. 정부는 각종 대책을 내놔 시민들이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는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정부는 물론이고 정치권에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 물론 정부가 작은 안전사고를 침소봉대해 되레 불안과 혼란을 부채질해서는 안 된다. 이젠 희망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희망을 희극에서 찾을 수 없다. 이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정치권에서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때다. 불안을 해소하면 곧바로 희망이 있다. 희망은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에.

[지지대] 일본에 울려 퍼진 한국어 교가

“동해 바다 건너 일본 땅은/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일본의 한 중소 도시 야구장에 울려 퍼진 한국어로 된 교가다. 재일 한국계 학교가 일본 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해 승리해서다. 이 대회에선 관례적으로 경기가 끝나면 승리한 학교의 교가를 방송해준다. 이 교가의 주인공은 어느 학교일까. 교토에 위치한 재일 한국계 고교인 교토국제고교다. 외신에 따르면 이 학교 야구부가 일본 전국고교 야구선수권대회에서 3년 만에 8강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대회를 일본인들은 보통 ‘여름 고시엔(甲子園)’으로 부른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교가가 방송된 날은 광복절 이틀 뒤인 8월17일이었다.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소재 한신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여름 고시엔’ 본선 3차전에서 후쿠오카현 대표인 니시닛폰단기대학부속고교를 4-0으로 꺾었다. 2회 초 먼저 2점을 뽑았고 5회 초와 9회 초 각각 1점을 내면서 승리를 확정 지었다. 앞서 1차전에서도 7-3, 2차전에서도 4-0 등으로 이겼다. 선발 투수는 이날 경기에서 위력적인 투구로 9회까지 삼진을 14개나 뽑아 내면서 완봉승을 거뒀다. 선수들도 승리한 후 교가를 힘껏 불렀다. 이 모습은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교토국제고교는 1999년 일본고교야구연맹에 가입했다. 2021년 처음 여름 고시엔 본선에 진출해 4강까지 올랐다. 2022년 여름 고시엔 본선에선 1차전에서 석패했다. 지난해는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교토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에 위치한 이 학교는 재일 한국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1947년 설립됐다. 일본 교육당국의 차별로 2004년 비로소 정규 학교가 됐다. 갖은 수난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대한의 젊은이들이 늠름하고 자랑스럽다.

[지지대] ‘나홀로 사장님’의 눈물

문 닫힌 상가들이 눈에 많이 띈다. ‘임대 문의’라는 종이가 붙은 지 오래됐는데 여전히 비어있다. 빈 상가는 여기저기 자꾸 더 늘어간다. ‘나홀로 사장님’이 크게 줄고 있다. 최근 1년 새 하루 평균 300여 명이 문을 닫고 있다. 종업원을 내보내고 코로나19 때도 꾸역꾸역 버텼는데,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가게를 접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자영업자는 총 572만1천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나홀로 사장님)는 427천3천명(64.3%)으로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 144만8천명(21.8%)의 3배였다. 나홀로 사장님은 지난해 7월보다 11만 명 줄었다. 11개월 연속 감소세다. 올해 들어서만 월평균 7만8천500명이 사라졌다. 새 일자리를 찾거나 업종 전환을 위한 선택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망해서 영업을 종료한 것으로 분석된다. 팬데믹이 본격화한 2020년 당시에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6만 5천 명 급감했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9만명 늘었다. 종업원을 내보내고 버텼던 나홀로 사장님들이 최근 한계에 다다랐다. 고물가로 실소득이 줄어 소비 심리가 위축된데다 코로나 때 2~3% 저금리로 받았던 대출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면서다. 지난 6월 말 예금은행의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454조 1천억 원에 이른다. 2019년 6월(325조 2천억 원)에 비해 39.6% 늘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때는 정부가 대출 지원을 해줘 버텼는데 임대료와 관리비, 대출 부담에 구조조정할 직원도 더 이상 없어 자영업자 폐업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자영업자 중에 상당수는 투잡을 뛴다. 치킨집에선 주문 없는 낮에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 자신의 가게에 나간다. 낮에 장사하는 가게는 저녁에 대리 운전을 한다. 투잡을 뛰며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나홀로 사장님들의 분투가 눈물겹다.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한 이들의 폐업은 이어질 것이다. 정부가 대출 지원 등으로 좀 더 버틸 수 있게 붙들어 두는 게 능사는 아니기에 답답하고 안타깝다.

[지지대] ‘초등 의대반’ 열풍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교육시민단체다. 입시 경쟁과 사교육 고통 문제를 해결하는 대중 운동을 펼친다. ‘입시 경쟁으로 단 한 명의 아이도 잃지 않는 세상, 불필요한 사교육비를 단 1만원도 쓸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게 목표다. 사교육과 입시 고통에서의 해방. 이는 학생과 학부모 모두의 바람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경쟁과 고통이 극심하다. 학생들은 골병이 들고, 학부모는 등골이 휜다. 요즘 사교육 시장의 최대 관심은 ‘초등 의대반’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를 목표로 ‘초고속 선행 교육’을 받는 것이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정책이 사교육 폭발로 이어지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최근 전국 유명 학원가의 홍보물을 분석한 결과, 제주를 제외한 16개 시·도에서 초등 의대반을 운영했다. 전국 89개 학원에서 136개의 초등의대반을 개설했다. 서울이 28곳으로 가장 많고 경기 20곳, 대구 10곳 순이다. 초등 의대반의 수학 선행학습 프로그램은 학원마다 다르다. 가장 보편적인 커리큘럼은 초등 5~6학년생에게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수학 선행학습을 하는 방식이다. 선행 정도는 약 4.6년이다. 서울 대치동의 한 의대프라임반은 초등 5학년을 상대로 6개월 동안 중1~고2 과정의 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정상적인 교육과정보다 14배속 빠른 선행 교육이다. 가우스 기호나 대학 과정의 행렬식 개념 등이 실린 교재로 수업하는 학원도 있다. 초등 의대반에서 중·고등학교를 넘어 대학 과정에서 다루는 수학 개념까지 배운다니 놀랍다. 이런 선행학습이 효과가 있을지, 학생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걱세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1천명을 조사한 결과 ‘초등 의대반이 교육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63.3%가 ‘부적절하고 효과가 없다’고 답했다. 초등 의대 선행학습은 경제적 부담, 교육 불평등에다 공교육에 해를 끼친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병들게 한다. 오죽하면 강경숙 의원(조국혁신당)이 ‘초등 의대반 방지법’까지 발의했겠나.

[지지대] 중국의 네 번째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 쿠츠네초프, 랴오닝, 퀸엘리자베스, 비크라마디트야, 상파울루, 샤를드골, 차크리.... 세계 각국 항공모함의 함명(艦名)이다. 항공모함은 바다에서 전투기를 이착륙시키는, 움직이는 해상 항공기지다. 육상기지를 확보하지 못한 곳에서도 전투기를 배치할 수 있어 제공권을 장악할 수 있다. 최초로 건조한 국가는 일본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인도, 중국, 브라질, 태국 등 10개국이 운용 중이다. 현대 해군 전략·전술의 핵심이다. 이 함정은 부피가 적에게 큰 위협이다. 그래서 적들의 주요 공격 목표다. 분쟁 지역으로 신속히 이동해야 하는 만큼 공격을 위해서나 방어를 위해 중요한 게 속도다. 전투기 이륙을 위해서도 그렇다. 갑판은 지상의 활주로보다 짧다. 전투기가 뜨기 위해 속도를 충분하게 낼 수 없는 까닭이다. 전투기가 100의 속도로 이륙하는 경우 항공모함이 30의 속도로 전진하고 있다면 전투기는 130의 속도로 전진한다. 이륙할 수 있는 정도의 양력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전투기는 출력을 아낀 만큼 더 많이 무장할 수 있고, 연료도 아낄 수 있다. 중국이 네 번째 항공모함을 건조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랴오닝성 다롄 조선소에서 선체 너비가 40m인 항공모함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등을 재급유하지 않고 항해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진수까지 6년이 걸릴 것으로 보이며 2028년까지는 시험 항해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랴오닝함과 산둥함 두 척의 항모를 운영 중이고 세 번째 항모 푸젠함은 지난 5월부터 시험 운항 중이다. 우리는 독도함과 마라도함 등 헬기 이착륙 상륙함 2척이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 항공모함을 갖춰야 한다. 해양 국가를 지향하는 이순신 장군의 후예가 아닌가.

[지지대] 오늘은 택배사 쉬는 날

몸에 무리가 많이 간다. 화물 무게에 눌려서다. 승강기가 없는 연립주택은 일일이 들고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택배사들의 일이 그렇다. 속칭 진상 고객 때문에 마음을 다치기도 한다. 상당수 택배사들은 이럴 때 더 아프다고 호소한다. 원했던 물건이 왔는데도 오지 않았다고 우기고 금품을 뜯으려는 경우도 있다. 조금만 늦어도 닦달하기 일쑤다. 주차 문제도 장난이 아니다. 예전에 지은 아파트들은 지상에 차량을 세울 수 있지만 요즘 건립한 아파트들은 어렵다. 쟁점은 지하주차장 출입이다. 대다수 택배차량은 높이가 2.5~2.6m인데 지하주차장 높이 제한은 2.1~2.3m다. 어쩔 수 없이 지상으로 출입해야 한다. 이중 주차는 불가피하다. 민원이 수시로 접수된다. 승강기 사용을 놓고도 옥신각신한다. 화물 이용이 금지돼서다. 무거운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선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모든 물건을 카트에 싣고 옥상층부터 차례차례 배송할 수밖에 없다. 택배산업은 허브·서브터미널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2일 이내 배송체계를 갖추면서 속도경쟁을 벌이고 있다. 연평균 8.7%씩 성장하고 있지만 택배단가는 2000년대 이후 현재까지 하락세다. 택배물량 증가와 택배사 업무가 가중되고 있으나 전담 법안 제정과 실효성 있는 대책 추진은 더디다. 오늘부터 내일까지는 택배사들이 쉬는 날이다. 택배사가 아닌 자체 배송망을 활용하는 배송은 평소대로 이뤄진다. 앞서 택배업계와 고용노동부는 2020년 택배사 휴식 보장을 위해 오늘을 쉬는 날로 정례화하는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주요 택배회사들은 매년 약속을 지켜 왔다. 택배사들은 근로자로서 법적 보호를 받기 어렵다. 근로조건이나 환경도 열악하다. 하지만 우리의 이웃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이들의 고충을 헤아려 보자.

[지지대] ‘1호선 전철’ 개통 50년

1974년 8월15일은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한 날이다. 서울역~청량리역에서 시작한 1호선은 오는 15일이면 50년이 된다. 광복절인 이날은 만원버스에 시달리던 시민들을 해방시킨 ‘역사적인’ 날이다. 지하철은 1960년대 이후 급속히 증가한 인구와 한계에 다다른 지상 교통을 극복하기 위해 추진됐다. 1974년 개통 당시 이름은 ‘종로선’. 서울역부터 청량리역까지 9개 역을 잇는 9.54㎞ 길이의 국내 첫 지하철이다. 우리 기술과 인력으로 결실을 맺어 열차가 첫 운행되던 날, 그러나 개통식은 침통한 분위기에서 조용히 치러졌다. 개통식 직전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은 것이다. 지하철 개통 당시 재밌는 일화가 많다. 신발을 벗고 역사에 들어왔다는 어르신,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약속 장소가 엇갈린 시민의 민원으로 환승역에 통합 출구 번호를 만들었다는 얘기 등이 있다. 지하철은 신문물의 상징이었다. 대중교통 체계가 지하철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새롭게 형성됐다. 역을 중심으로 땅값이 크게 올랐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생활문화도 바뀌었다. 지하철역은 만남의 장소가 됐고, 전동차에서 이동 시간에 신문과 책을 읽는 등 독서문화가 발달해 출판산업에 영향을 미쳤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1호선 전철은 남쪽으로 점점 확장됐고, 구로에서 인천과 수원으로 갈렸다. 이후 남쪽으로 충남 아산 신창까지, 북으로는 경기도 연천까지 연결됐다. 현재 1호선은 38선 넘어 최북단 연천역에서 최남단 신창역까지 203.6㎞ 구간을 달린다. 1호선 전철의 하루 운행 거리는 12만8천520㎞로 매일 지구 3.2바퀴를 도는 것과 같다. 이용자도 크게 늘었다. 첫해 2천900만명이던 수송 인원은 올해 상반기 2억7천303만2천810명에 달했다. 하루 수송인원으로 환산하면 약 8만명에서 150만명으로 증가했다. 50년간 승객 800억명을 싣고 지구 5만바퀴의 거리를 달린 1호선은 오늘도 시민들을 곳곳에 실어 나른다. 언젠가는 북한 땅까지 내달리길 기대해본다.

[지지대] ‘철밥통’ 깨는 청년 공무원들

한 번 취업하면 정년까지 해고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철밥통’이라 한다. 일반 기업은 실적이나 성과가 미흡하면 일찍 잘릴 수도 있는데 철밥통을 가진 직업은 큰 잘못이 없는 한 누구도 함부로 자르지 못한다. 대표적인 직종이 공무원이다. 철밥통을 가진 공무원은 오랫동안 인기가 높았다. 월급은 기업에 비해 많지 않아도 정년까지 안정적이고, 공무원연금이 노후를 보장해준다고 생각했다. 각종 수당과 해외연수, 공로연수 등 다양한 인센티브도 나쁘지 않았다. 공직의 역할과 사명감도 만족도를 높였다. 하지만 요즘 공무원의 인기는 예전같지 않다. 소위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공무원들의 이탈현상이 심각하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이 조기 퇴직의 이유다. 실제 재직 기간 5년 미만 공무원 퇴사자가 2019년 6천663명에서 지난해 1만3천500명으로 늘어났다. MZ공무원들은 “공무원도 노동자다”라며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선 ‘청년 공무원 100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년 공무원들은 철밥통을 상징하는 노란 냄비를 들고 나왔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밥값을 올려달라’는 등의 글이 새겨진 노란 냄비를 숟가락으로 두드리며 대통령실 인근까지 행진했다. 행진을 마친 공무원들은 냄비를 바닥에 내려놓고 발로 밟아 찌그러뜨렸다. 자신의 ‘철밥통’을 부수는 퍼포먼스였다. 이들은 “청년 공무원들은 악성 민원인에게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고, 주말에 행사가 있으면 동원까지 된다”며 “그럼에도 실질임금은 매년 마이너스다. 철밥통에 밥이 없다”고 호소했다. 국가에 봉사한다는 공무원의 소명의식과 열정, 자부심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철밥통으로 여겨졌던 공직이 젊은이들에겐 더 이상 매력적인 직장이 아니다. 다른 직업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과 업무의 과부하, 위계구도에 따른 경직성 등은 MZ 공무원들 스스로 철밥통을 깨뜨리게 만든다. 적정 수준의 임금 상승, 계급구조 개선, 조직 유연성 등 구조와 시스템 변화를 동반한 혁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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