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나무도 ‘木숨’ 있는 생명체

민물에도 섬이 있다. 여주 남한강 기슭에 위치한 강천섬이 그렇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 나오는 섬강이 지척이다. 몇 걸음 더 옮기면 단양쑥부쟁이 군락지도 만날 수 있다. 수도권 시민들이 자주 찾는다. 그런 곳에서 최근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여주시가 수천만원을 들여 강천섬 내 10~20년 된 느티나무와 아까시나무 수백 그루를 벌목(본보 17일자 10면)해서다. 나무 베어내기가 시작된 건 지난해 9월부터다. 이후 벌목된 나무들은 강 기슭에 버려진 채 방치되고 있다. 강천섬과 연결된 강천리와 굴암리 바위늪구비부터 굴암교까지 남한강변에는 직경 20㎝ 이상 되는 나무들이 밑동이 잘린 채 수십t 쌓여 있다. 강천섬은 57만1천㎡에 잔디광장 등이 조성돼 여주 주민은 물론 자전거 이용객들의 놀이터로 주목받는 관광명소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그 발단은 지난해 수해 때 굴암교 쪽과 남한강 본류의 많은 나무가 전도돼 비닐 등 각종 쓰레기가 걸리면서 흉물인 데다 강물 흐름을 막는다는 민원 때문이라고 한다. 여주시는 공개입찰로 4천554만5천원에 A업체를 선정해 벌목사업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시는 이 과정에서 벌목업체에 선별적으로 베어내도록 하는 지침을 알리지 않아 수십년 된 느티나무 등도 모두 베어 버렸다. A업체가 마치 군사작전을 벌이듯 강천섬 둘레의 고목들을 무분별하게 벌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민들은 보존해야 할 수형이 좋은 나무를 왜 한꺼번에 살처분하듯 모조리 잘라냈는지 모르겠다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벌목 전문가들도 “사회적 변화에 따라 최근에는 탄소흡수 기능유지 등 생태계 보호와 친환경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벌채구역의 10% 이상을 남겨둔다”고 지적했다. 무릇 나무도 ‘목숨’이 있는 생명체다. 뜬금없는 얘기겠지만 말이다. 도대체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나무들의 고귀한 생을 송두리째 빼앗는가.

[지지대] 공약 이행 실태 공개하라

오는 4월10일 치러지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가 8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 정당은 앞다퉈 인재를 영입해 발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고, 신당 창당과 관련된 움직임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모든 게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함이다. 특히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공약’이다. 국민의힘은 18일 1호 총선 공약으로 저출산 관련 패키지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패키지 공약에는 출산 지원뿐 아니라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대상 자녀 연령을 확대하는 방안 등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같은 날 총선 4호 공약으로 ‘저출생 지원 대책’을 꺼내 든다. 민생을 강조하고 있는 이재명호의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맞불을 놓는 것이다. 이처럼 각 정당이 경쟁적으로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공약은 발표하는 것보다 이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최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매니페스토 질의서 미공개 의원 명단’을 공개했다. 본부는 지난해 12월12일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공약 이행 및 의정활동 관련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받아 왔는데, 질의서를 받은 251명의 의원 중 30명이 회신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30명의 국회의원 중 경기·인천 지역구 의원은 12명이다. 이들은 질의서에 답변하지 않은 이유로 ‘불출마’ 또는 ‘보궐’로 국회에 입성해 활동 기간이 짧았음을 꼽았다. 황당하다.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면 국민에게 약속했던 것을 얼마나 이행했는지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어차피 보궐선거에 출마했다면 본인의 임기 내 할 수 있는 것들을 약속하고, 이에 대한 이행 실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정당들은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기 전에 이전에 약속했던 것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먼저 점검해 국민에게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지키지 않는 약속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지대] 떼까마귀의 습격

얼핏 보면 검은색이다. 하지만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보라색이 섞였다. 부리는 짧으면서도 강건하다. 높은 곳에 앉아 서너 번 연속으로 시끄럽고 빠르게 운다. 떼까마귀의 이력서다. 먹이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나무의 열매 등을 먹지만 벌레도 섭취한다. 대형 맹금류나 여우, 늑대 같은 포식자들도 공격해 먹이를 강탈한다. 둥지는 높은 나무나 절벽 끝자락, 송전탑이나 오래된 건물 등지에 만든다. 이 녀석들이 도심으로 몰리면서 평택지역 곳곳이 배설물로 몸살(경기일보 15일자 10면)을 앓고 있다. 평택시 통복동 주민들의 호소다. 주차된 차량들이 녀석들의 배설물로 뒤덮인다는 것이다. 인근 통복시장 상인들에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손님들이 점포 찾기를 꺼리고 있어서다. 한 상인은 “음식을 먹는 곳에 이렇게 떼까마귀 배설물이 쌓여 있으면 누가 오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같은 피해를 줄이려면 도심 외곽에 나무 등을 심어 떼까마귀들이 자연스레 도심에서 벗어나도록 서식처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낮에는 먹거리를 찾기 위해 인근 농경지로 옮겼다가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잠을 자기 위해 도심을 찾아서다. 김만제 평택자연연구소장은 “10여년 전만 해도 떼까마귀가 평택 서부지역 농경지 등 변두리에 머물렀지만 천적을 피할 수 있고 밤에도 따뜻해 도심으로 들어온다”며 “다시 외곽으로 유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권고했다. 떼까마귀는 인간에게 이로운 새인가, 아니면 해로운 조류인가. 결론은 이미 났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그렇다. 오죽하면 이 녀석들이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아라는 시조도 있었겠는가. 고려 말 충신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어머니 이씨 부인의 ‘백로가’다. 해롭든 해롭지 않든 어떡하겠는가. 녀석들과 공생해야 하는 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이치이기 때문이다.

[지지대] 초등 입학생 급감

친구는 서울 영등포초등학교에 다녔다. 1970년대니까, 오래전 일이다. 가끔 초등학교 얘기를 하면 놀랍다. 입학 당시 18반이었고, 한 반에 90명 정도였다고 한다. 어림잡아 한 학년이 1천600여명이다. 교실이 모자라 2부제 수업을 했다. 이후 신설 학교가 생겨 학생들이 분산됐다. 주변 환경도 바뀌어 학생 수가 크게 줄었다. 지금 이 학교의 학생 수는 275명이다. 출산율 저하로인한 입학생 급감이 가장 큰 이유다.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생 여파로 올해 초등학교 입학생이 사상 처음 30만명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초등학교 입학 대상 아동은 41만3천56명(지난해 12월20일 기준)이다. 하지만 실제 입학하는 학생은 취학 대상의 9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30만명대 중후반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2017년 출생아(35만7천771명)가 1년 전에 비해 4만8천명 이상 급감한 것이 입학생 감소의 주된 이유다. 출산율 하락으로 인한 학생 감소가 어쩔 수 없다지만 감소 폭이 너무 크다. 연도별 출생아 수로 미뤄볼 때 2026년 초등학교 입학생은 20만명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학령인구와 학생 수 감소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후폭풍이 교육계 전반에 미쳐 교사가 줄고 학교는 계속 통폐합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지난해 공립 초등학교 신규 임용시험에서 전년 대비 11.3% 감소한 3천157명을 선발했다. 학교 통폐합은 경기도도 예외가 아니다. 농어촌 지역과 공동화가 심각한 원도심 지역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곳도 있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의 ‘경기도 소규모학교 실태분석’ 보고서를 보면, 경기도에서 초·중학교 입학생이 10명 이하인 학교가 136곳이다. 인구감소 지역인 포천과 연천 등은 물론 100만 대도시에 진입한 화성시에서도 농어촌 지역 초·중학교 16곳이 포함됐다. 학생 감소와 학교 소멸은 교육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 초등생 급감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지지대] CES 주인공 ‘인공지능’

CES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다. 시대를 선도하는 첨단기술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9일부터 나흘간 열린 ‘CES 2024’에는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인 150여개국 3천500여곳이 참여했다. 한국은 700여 기업이 참여, 미국·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대기업을 필두로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까지 가세해 혁신기술을 뽐냈다. CES 2024의 화두는 인공지능(AI)이었다. 그동안 가전, TV, 휴대폰 기술의 각축장이었는데 올해는 AI 열풍이 거셌다. 오픈AI의 챗GPT 등장을 계기로 일상을 파고든 AI 혁명이 기업의 미래 성장과 생존을 가를 핵심 관건이 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CES 주관사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는 “AI가 모든 산업을 이끌어가는 트렌드”라고 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AI가 각 산업과 기술에 어떻게 융합하며 새로운 미래상을 선보이느냐에 관심이 모아졌다. 빅테크와 스타트업 가릴 것 없이 사활적 경쟁에 돌입한 기업들은 스마트홈과 모빌리티, 건설기계, 에너지 등 전 산업 분야에 걸쳐 AI와 접목된 최첨단 신기술과 제품을 쏟아냈다. 인터넷 없이도 생성형 AI를 구동할 수 있는 ‘온디바이스 칩’ 장착 스마트폰을 비롯해 차량용 AI 비서, AI 냉장고, 스마트홈 AI 에이전트, 분리수거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올 투게더, 올 온(All Together, All On)’이라는 올해 슬로건처럼 모든 곳에 AI가 스며드는 흐름을 보여줬다. 실제 AI는 전기와 수도처럼 거의 모든 분야에 활용되는 범용 기술로 자리잡고 있다. 좋든 싫든 AI 시대에 살기 시작했다. AI와 같은 첨단 분야는 한번 뒤처지면 따라잡기 어렵다. 초격차 기술 개발에 전력해야 한다. CES에서 국내 기업들이 내놓은 ‘K인공지능’은 호응도가 높았다. AI를 활용한 경쟁력 극대화에 국가 차원의 총력 대응이 절실하다.

[지지대] 우울증 환자 100만명 시대

아무리 따져 봐도 이건 아니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단순한 통계 숫자이지만 그 참혹함과 비통함은 역대급이다. 우울증 환자가 100만명을 넘었다. 환자 수도 32.8% 늘었다.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어 봤는데 엄연한 현실이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이 질환에 대해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라고 경고했다. 1849년이었다. 그로부터 무려 175년이 흘렀다. 이 병은 우울감과 무기력 또는 짜증과 분노의 느낌을 지속해 유발한다. 이 때문에 다양한 정서·신체적 고통도 동반한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거나 그 시도로 이어지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발간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가 100만32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5년간 추이를 보면 2018년 75만3천11명에서 매년 늘어 2021년 91만명대로 올라섰다가 이듬해 100만명 문턱을 넘었다. 이어 2022년에는 2018년에 비해 32.8% 급증했다. 진료비도 늘었다. 2022년 5천378억원이었다. 2018년 3천358억원이었으나 2020년 4천107억원으로 4천억원을 넘었다. 그리고 2년 만에 다시 1천억원 넘게 불었다. 2018년 이후 4년 만에 2천억원가량 급증한 셈이다. 성별로 보면 남성보다 여성이 심하다. 여성 우울증 환자는 67만4천50명으로 남성(32만5천982명)의 2배가 넘는다. 2018년에 비해 증가율도 여성이 34.7%에 달해 남성(29.1%)보다 높았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차원의 정신건강 예방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한다. 규칙적인 운동 등 개인 차원의 노력을 기울일 것도 조언한다. 무슨 운동을 할지 고민이라면 생활 속에서 평소 관심을 가져온 종목을 정해 오랫동안 지속하는 게 좋다. 국민이 건강해야 진정한 선진국이다.

[지지대] 김동연 지사의 열정

“경기도는 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해 뚜벅뚜벅 가겠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 3일 기자회견을 통해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추진 의지를 재차, 강력히 밝혔다. 경기도가 지난해 9월 정부에 주민투표를 요청했지만 100여일이 지나도록 정부는 묵묵부답. 사실상 4·10 총선 전 주민투표는 물 건너간 상황이다. 김 지사가 “행정안전부의 시간 끌기, 책임 방기, 직무유기”라며 목소리를 높일 만하다. 김 지사 말대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며 정치적 구호에 그쳤던 지난 30여년을 생각해 볼 때 기적에 가까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무관심만 탓할수 있을까? 지난 2022년 12월 북부특별자치도 설치 추진단이 출범했다. 도의 행정조직 구성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추진단은 시·군공청회 및 토론회, 숙의토론회, 직능단체·공직자 설명회 등을 100여차례 진행하며 도민 여론 형성에 나섰다. 나름대로의 성과다. 그러나 도민들은 그 필요성에 얼마나 공감했을지 의문이다. 토론회 참석 구성원은 한정적이었고 참여율도 저조했다. 여론 확산과 외연 확장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난해 12월8일 오후 경기북부청사 평화누리홀에서 열린 경기도의회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비전 선포식’은 어떤가. 의장이 불참하고 해당 지역 단체장은 2명, 도의원 20명 남짓, 시의원도 5명을 넘기지 못했다. 홀 내 좌석도 텅텅 비었다. 불참 이유가 있겠지만 선포식은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더욱이 김포, 하남, 구리 등 북부 일부 지자체의 서울 편입 문제가 정치적 이슈가 됐다. 북부특별자치도 설치는 수면 아래 가라앉아 동력을 잃었다. 그럼에도 김 지사는 힘든 길을 가려 한다. 올해 총선 결과로 민의가 확인된 이후 반드시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을 관철시키겠다, 대의와 국민적 지지를 굳게 믿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김 지사의 열정을 응원한다.

[지지대] 대설주의보

해마다 이맘때면 눈도 참 많이 내렸다. 그럴 때마다 굴뚝새들이 소스라치며 창공으로 날아오르곤 했다. 강원도 두메산골이 고향인 필자의 기억을 소환하면 그랬다. 동구 밖에선 개구쟁이들이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곤 했다. 그래도 마냥 즐거웠다. 소년들의 웃음이 포말처럼 하얗게 눈길에 쏟아지곤 했다. 어른들에게는 눈이 달갑지 않았다. 곳간에서 싸리비를 들고 골목길로 나와 허리를 숙인 채 연신 쓸었다. 그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계절이 야속했을까. 그렇게 계절은 깊어갔다. 정부가 많은 눈이 내릴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설주의보도 예고됐다. 대설주의보는 24시간 동안의 신적설(新積雪)이 5㎝ 이상 예상될 때 발령된다. 대설주의보 외에도 더 많은 강설량이 예상되면 대설경보가 발효된다. 대설경보는 24시간 동안의 신적설이 20㎝ 이상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 발효된다. 신적설은 특정 기간에 새롭게 내려 쌓인 눈의 깊이를 뜻한다. 적설은 기간에 상관없이 관측 시 실제 땅에 쌓여 있는 눈의 깊이다. 10일까지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양의 눈이 내릴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도로 살얼음 및 빙판길로 인해 교통사고와 보행자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결빙 취약구간 등에 제설제를 미리 살포하라고 당부하고 나섰다. 이와 함께 조립식 주택, 비닐하우스, 축사 등 적설 취약시설과 다중이용 공연장, 체육시설 등의 안전을 점검하고 지붕 제설 홍보를 강화하라고 강조했다. 불현듯 최승호 시인이 지난 1983년 발표한 같은 제목의 작품이 생각난다.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 있을 듯/논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듯/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떼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많이 내리는 눈을 계엄령에 빗댄 은유가 새삼스럽다.

[지지대] 딥페이크와 선거

딥페이크(Deepfake)는 인공지능 기술인 ‘딥러닝’과 가짜를 의미하는 ‘페이크’의 합성어다. 인공지능(AI)을 포함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일반적으로 악의적이거나 허위정보를 퍼뜨리는 데 사용되는, 다른 사람처럼 보이도록 얼굴이나 신체를 디지털 방식으로 변조한 인물의 영상’이라고 정의했다. 딥페이크는 특수효과가 필요한 영화나, 방송처럼 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에서 활용도가 높다.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 과거 인물을 딥페이크를 이용해 영화 속에 실존인물처럼 구현하거나 출연배우의 과거 모습을 구현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고(故) 김광석·김현식의 콘서트를 다시 볼 수 있었던 것도 딥페이크 덕분이다. 긍정적 활용이 많지만, 사람의 영상을 변조할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가짜뉴스를 제작하거나 범죄에 오남용되기도 한다. 실제 트럼프가 체포되거나 펜타곤이 공격받았다고 믿게 만든 딥페이크 이미지가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바 있다. 딥페이크는 선거에도 많이 활용된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AI 윤석열’, ‘AI 이재명’ 등 딥페이크 영상이 등장해 관심을 끌었다. 올해는 전 세계 76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이 중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미국 대선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딥페이크가 본격 동원되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딥페이크를 활용하면 유권자의 관심을 높이고 홍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가짜뉴스, 허위정보가 양산돼 선거 조작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딥페이크는 진짜 같은 가짜뉴스를 만드는 데 효과적이다. 딥페이크로 만든 가짜뉴스는 선거에서 큰 혼란을 야기해 유권자를 의도하지 않은 선택으로 유도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나쁜 기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4·10 총선에선 선거일 90일 전부터 딥페이크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전면 금지했다. 새로운 기술이 범죄에 활용되거나 선거에 치명적 영향을 주게 되면 규제 할 수밖에 없다.

[지지대] ‘배드파더스’ 유죄 판결

‘배드파더스(Bad Fathers)’는 자녀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압박하기 위해 개인 신상을 공개한 사이트다. 장기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나쁜 부모들’의 얼굴과 이름, 나이, 주소, 직업, 미지급 양육비 정보를 공개했다. 현재 국내에서 양육비를 받지 못한 아동이 100만명쯤 된다고 한다. 남편이 아이까지 때릴까 봐 갓난아기를 업고 나온 후 양육비가 없어 고통받은 사례, 아빠가 유명 로펌 변호사인데도 양육비를 안 줘 엄마가 식당 알바를 나가 아이가 방치된 사례도 있다. 남성이 위자료와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며 찾아온 전처를 폭행해 입건된 사건도 있다. 실제 한국의 양육비 이행률은 매우 낮다. 여성가족부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양육비를 받지 못한 한부모 가정은 80.7%에 달했다. 부모가 헤어졌다고 양육비를 안 주는 것은 파렴치를 넘어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다. 생존권을 위협하는 만큼 아동학대나 다름없다. 구본창씨가 ‘배드파더스’를 운영하며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정보를 공개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런데 구씨는 2018년 신상이 공개된 부모 5명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신상공개가 공익에 부합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2심은 구씨 행위가 ‘사적 제재’로 현행법에 어긋난다며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대법원이 지난 4일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여성가족부는 2021년부터 양육비이행법 시행령 개정안을 근거로 이름, 직업, 주소, 미지급액 등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정부가 제도를 도입하자 구씨는 배드파더스의 역할을 다했다고 판단, 같은 해 사이트를 폐쇄했다. 그러나 여가부의 신상공개가 사진을 공개하지 않고, 직업·직장명 등이 구체적이지 않는 등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위협을 주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구씨는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이란 사이트를 부활시켰다. 사적 제재 논란에도 배드파더스가 양육비 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평가할만하다. 양육비는 부모의 책임이며 아이들의 생존권이다. 양육비 선지급제, 감치명령 도입 등 보다 강력한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

[지지대] ‘우울한 귀향’

“암담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문학이 도움을 주지 못함에 허무감을 느낀다.” 작가 이동하의 장편소설 ‘우울한 귀향’의 첫 구절이다. 주인공은 시골 출신의 나약한 대학생이다. 졸업을 앞두고 서울에서의 외롭고 황량한 삶을 청산하고 떠난다. 그리고 학업으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향촌을 찾는다. 그 고향이 어느 곳인지는 명확하진 않다. 때마침 수은주가 영하를 향해 곤두박질치던 겨울 한복판이었다. 작품은 그렇게 시작됐다. 얼개는 이어진다. “허무하고 우울한 상황의 원인을 찾기 위해 내 발걸음이 닿은 곳은 내가 자란 곳이다. 그곳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된 친구는 명랑하게 나를 맞이해줬다. 그러나 고향은 여전히 피로해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키워준 고장에 대한 씁쓸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작가는 당시 젊은이들의 자기 정체성 확인을 위한 방황과 성장 등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썼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온 건 1967년이었다. 산업화가 막 시작되던 제3공화국 초반이었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던 시점이기도 했다. 작품은 자연스럽게 이런 서사를 담는다. “마을 구장은 왕이나 마찬가지였다. 동네에서의 지도적 위치와 부유한 재산의 힘을 믿고 온갖 횡포와 폭력을 휘둘렀다.” 이런 사실들을 옆에서 겪고 바라보는 주인공은 삶에 대해 절망을 느낀다. 소설은 어떻게 끝이 맺을지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작가적 정체성을 오롯이 담고 있는 문학적 초상화이지만 당시의 사회상을 투명하게 담았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런 이유로 보수적인 문학계로부터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젊은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악평도 받았다. 6·25전쟁과 4·19혁명 등 당시의 기억을 중심축으로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갈등에 대한 체험도 담았다. 새해가 시작되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 등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때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까.

[지지대] 모두를 바꿀 121번의 ‘작심삼일’

연초가 되면 누구나 자신과의 약속 하나 정도는 정하기 마련이다. 금연, 금주, 운동, 독서 등등. 그 약속이 ‘작심삼일’(作心三日·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에 그치더라도 말이다. ‘청룡의 해, 갑진년(甲辰年)’을 맞아 필자도 약속 아닌 약속들을 정하게 됐는데, 놀라운 사실은 ‘건강과 가족을 위해서’라는 단서 조항이 생기니 군말 없이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의사로부터 “혈압이 높아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는 충격 선언을 들었고 곧바로 실천에 들어 갔다. 가족 앞에서 금연을 선언했고 새벽 운동을 시작했다. 그 무섭다는 작심삼일은 일단 넘겼는데, 가족애(愛)로 버텨 보려 한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이 ‘가족’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2024년. 참 많은 것들이 ‘약속’이라는 단어로 포장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가장 큰 무대는 목전으로 다가온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저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나온 후보자들은 국민과의 약속을 운운하며 달콤한 메시지를 남발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약속의 주체는 누구일까. 주체에 따라 약속의 이행 강도는 달라지기 마련인데, 허공에 날린 약속(국민 없는 약속)은 결국 지켜질 수 없는 허상이 되고 말 것이다. 동력이 사라진 열차처럼 말이다. 대통령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각자가 정하는 약속은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떠나 이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약속의 100% 이행’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약속을 실행해 보겠다는 다짐과 선언, 실천 의지가 쌓일 때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회는 흘러갈 테니 말이다. 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대한민국을 바꿀 약속이라면 121번의 ‘작심삼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약속을 지키는 신(信)나는 사회를 만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지지대] 車 수출단가 역대 최고치

새해 벽두부터 반갑다. 국산차 수출단가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해서다. 고금리에 고환율 등 우울한 통계 속에서 더욱 빛난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내 완성차 수출대수와 수출액은 각각 252만대와 64조5천억원으로 집계됐다. 대당 수출단가는 평균 2천559만원으로 분석됐다. 완성차 수출단가 2천500만원대 돌파는 이번이 처음이다. 수출단가는 5년 새 53%(889만원)가량 올라 역대 최고 기록도 바꿀 전망이다. 국내에서 생산한 차 1대를 해외에서 팔아 받는 돈이 5년 만에 900만원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완성차 수출단가는 2018년 1천670만원, 2019년 1천792만원, 2020년 1천983만원, 2021년 2천277만원, 2022년 2천350만원 등 상승세다. 수출단가 상승으로 완성차 수출액도 사상 처음으로 7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1월까지 누적 수출액은 64조5천억원으로 이미 2022년 연간 수출액인 54조원을 넘었다. 전기차 등이 해외시장에서 인기를 끈 점이 수출단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2018년 평균 1천100.30원에 불과했던 원-달러 환율은 2022년 1천292.16원까지 치솟더니 2022년 1천303.0원에 거래됐다. 5년간 환율 상승률이 18%인 점을 감안하면 가격이 높은 전기차 수출 비중 확대가 수출단가 상승에 이바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기차도 2022년 같은 기간에 비해 65.7% 증가한 31만6천654대가 팔리며 하이브리드차(28만3천685대)와 함께 수출을 견인했다. 올해 친환경차 수출도 처음으로 70만대를 넘을 전망이다. 중요한 건 ‘한국차=싼 차’라는 인식이 불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반도체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 전망도 나오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져 보자.

[지지대] 갑진년, 값진년

새해를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 2024년 첫 번째 아기가 힘찬 첫울음을 터뜨렸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1일 0시0분에 임아연씨가 제왕절개로 3.15㎏의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임씨 부부는 결혼 12년 만에 난임을 극복하고 첫 아이 아홍이(태명)를 품에 안았다. 가족은 물론 나라의 기쁨이고, 값진 선물이다. 푸른 용의 해, 갑진년(甲辰年)이 밝았다. 용은 12가지 띠 중 유일하게 상상의 동물이다. 동아시아권에서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 상서롭고 신령한 동물로 여겨왔다. 생명의 근원인 물을 관장하며 하늘로 승천해 비를 내리게 한다고 믿어 왔다. 오늘날에도 용은 일상에서 자주 언급된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에게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하고, 용꿈은 최고의 태몽이나 길몽으로 여긴다. 지명으로도 많이 쓰여 전국에 1천261개나 된다. 새해가 되면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덕담을 나눈다. 정치인이나 경제단체, 기업에선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상을 반영해 새해 희망과 각오 등을 담아내는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신년사에서 ‘교룡득수(蛟龍得水)’를 언급했다. 용이 물을 만나 힘차게 날아오르듯,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고 여러 난관을 딛고 날아오르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운외창천(雲外蒼天)’을 선정했다. 어두운 구름 밖으로 나오면 맑고 푸르른 하늘이 나타난다는 뜻으로 희망을 잃지 않고 난관을 극복하면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신년사를 발표했는데 ‘민생’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글로벌 복합위기 여파에 따른 고물가·고금리로 체감경기가 얼어붙은 가운데 올해는 경제 성과와 경기회복을 실감하는 “민생 회복의 한 해”로 만들겠다고 했다. 신년사에서 민생은 아홉 차례 등장했다. 국민은 28회, 경제는 19회다. 민생과 국민을 외치지만, 체감할 수 있는 성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새해 사자성어와 신년사가 ‘말의 성찬’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갑진년이 값진 한해가 되게 하려면 말보다 실천, 행동이 우선돼야 한다.

[지지대] 붕어빵의 진화

19세기 말 일본의 풀빵인 타이야키(鯛焼)에서 유래됐다. 1930년대 한국에 들어와 197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도미빵’이라는 뜻으로 도미를 흉내 내 빵으로 먹기 시작했다. 붕어빵의 스펙이다. 그런 붕어빵이 의미 있는 변신(경기일보 26일자 7면)을 하고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서민들의 겨울철 군것질거리에서 어엿한 상품으로 거듭나고 있어서다. 20~30대 사장들은 이색적인 붕어빵으로 손님들을 사로잡고 있다. 10~20대 손님들은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쉽고 편하게 만나고 있다. 붕어빵 점포 위치가 명시된 ‘붕세권’이 온라인을 통해 공유된지는 오래됐다. MZ세대의 먹거리 문화가 구축되고 있다. 길거리에서 손을 호호 불면서 사 먹을 필요도 없어지고 있다. 점포 속으로 들어가고 있어서다. 일부 점포는 이미 페이스트리(페스츄리)같이 바삭하고, 피자맛, 초코맛 등 이색 앙금 등이 들어간 붕어빵을 선보이고 있다. 노점에서 팔던 기존 붕어빵과 달리 매장에는 키오스크와 따뜻한 천막도 설치돼 있다. 화성 동탄의 한 붕어빵 점포는 팥맛은 물론 갈비김밥맛, 불닭만두맛 등 이색 붕어빵으로 입소문이 났다. 대기 손님을 위한 번호표도 마련해뒀다. 일부 손님은 벌써부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이끌고 있다. 붕어빵 점포가 언제 문을 여는지 정보도 나누고, 서비스나 맛 후기도 남기고 있다. 붕어빵이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트렌드의 핵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꼽았다. SNS를 통한 공유문화에 익숙한 세대를 중심으로 특이하고 이색적인 길거리 간식의 욕구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길거리에서 팔던 붕어빵이 젊은 세대 취향으로 깔끔하면서도 감성 있게 바뀌고 있다. 하지만 종전 노점에서 붕어빵을 팔던 이들의 형편은 좀 나아졌을까. 그게 궁금하다.

[지지대] 콤팩트시티

고양창릉, 김포한강, 남양주왕숙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콤팩트시티’ 대상지라는 것. 정부는 지난해 고양창릉과 남양주왕숙에 콤팩트시티를 시범 적용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김포한강지구에도 콤팩트시티를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안양 인덕원을 비롯해 경기도내 곳곳에서 유행처럼 콤팩트시티 추진이 이뤄지고 있다. 콤팩트시티는 도시를 팽창시키지 않고 공간적으로 압축(Compact)한 형태로 개발하는 방식이다. 1973년 미국의 조지 댄치그와 토머스 사티라는 두 학자가 저서 ‘콤팩트시티’에서 처음 제시했다. 주거, 상업, 서비스 등의 기능을 도심 내에서 집약적으로 개발해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으로 인한 환경 파괴를 막고 경제·사회·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도시 형태를 구현한다는 개념이다. 50년 전에 나온 개발 방식이다. 콤팩트시티의 특성은 △고밀도 개발 △대중교통 중심 △토지 이용의 혼합화 △기개발지 우선 활용을 통한 도시 주변부의 자연 보전 등이다. 콤팩트시티는 도시 공간을 고밀·복합적으로 이용함으로써 통행 거리를 줄여 자원 절약과 환경오염을 감소시키고 난개발로 인한 토지 자원을 보존하는 것이 핵심이다. 고양창릉, 김포한강, 남양주왕숙은 엄밀히 따지면 콤팩트시티가 아니다. 신도시 개발이다. 이름만 콤팩트시티인 것이다. 기개발지 우선 활용방식이 아니고 도시 주변부의 자연 보전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50년 전 미국 학자들이 얘기한 콤팩트시티는 도시 확장을 억제하기 위한 방안이다. 기존의 도시 규모를 더욱 고밀도로 압축하는 개발인데 현재 정부나 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콤팩트시티는 대중교통을 연계한 도시 확장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세밀하게 계획된 콤팩트한 도시 개발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지대] 40대 인구 감소... 왜?

공자는 40대를 가리켜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不惑)’의 연령대라고 규정했다. 평균수명이 40세 중반이었던 기원전 5세기 기준이지만 말이다. 이 나이가 되면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자녀들이 있기 마련이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40대는 그 사회의 기둥이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서 주춧돌이다. 특히 경제 분야에선 더욱 그렇다. 그래서 ‘경제의 허리’라고도 부른다. 이런 가운데 40대가 올해 들어 청년층 다음으로 가장 크게 인구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40대 인구는 790만9천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만9천명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감소 폭은 지난 2019년 8월(-14만1천명) 이후 4년3개월 만에 가장 컸다. 올해 1~11월 40대 인구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만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연령대에서 15~29세(-17만8천명) 다음으로 가장 많이 줄었다. 30대는 7만6천명 감소했고 50대는 9천명 늘었으며 60세 이상은 50만9천명 증가했다. 취업자 수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40대 취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만2천명 감소한 625만4천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달 기준으로 지난 2003년 617만2천명 이후 20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다. 40대 취업자 수는 지난 2014년 694만7천명, 지난 2015년 693만5천명 등으로 690만명대를 기록하다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올해 620만명대까지 쪼그라들었다. 올해 1~11월 40대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만7천명 감소해 인구와 마찬가지로 감소 폭이 청년층(-10만명) 다음으로 컸다. 통계는 과학이다. 그 사회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단순한 숫자놀음일뿐이라고 간과해선 안 될 일이다. 원인을 분석해야 하겠지만 당국의 혜안이 절실하다.

[지지대] 살인 부르는 ‘간병 지옥’

지난 7월 서울에서 60대 남성이 3년 넘게 간병해온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희귀병을 앓는 아내를 돌보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둔 상태였다. 범행 직후 경찰에 자수한 그는 “불치병에 걸린 집사람에게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자괴감이 들었고, 오랜 간병으로 경제적으로 힘들고 막막했다”고 토로했다. 지난 4월에도 폐암과 파킨슨병 등을 앓던 아내를 5년간 돌보던 60대 남성이 아내를 숨지게 하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2021년에는 대구에서 22세 아들이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돌보다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오랜 간병은 가족 누군가에겐 지옥이나 다름없다. ‘간병 지옥’은 때로는 살인을 부르고, 가족을 파산에 이르게 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살인까지 부르는 이런 참극은 특정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 10명 중 3명이 노인인 일본에선 해마다 40~50건씩의 간병 살인이 발생하고 있다. 요즘엔 특별한 뉴스 취급도 못 받는 흔한 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2024년 노인 인구가 1천만명을 넘어선다. 2025년에는 노인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노인 돌봄과 간병은 심각한 사회 문제다. 집안에 간병이 필요한 노인이 생기면 ‘비극’이 시작된다. 누가 간병을 할지, 간병비 부담은 어떻게 해결할지 가족 간 갈등이 생기게 된다. 간병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간병비가 하루 12만~15만원 수준이다. 월 400만~500만원은 한 가족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정부가 간병비에 칼을 빼들었다. 보호자 없는 병동으로 불리는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를 대폭 늘리고, 요양병원 간병비를 급여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간병 지옥, 간병 살인, 간병 퇴직, 간병 파산 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건보재정 걱정이 있긴 하지만 실행 전략을 잘 짜서 ‘간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지지대] “벌써 제비가 기다려진다”

겨울 초입인데 벌써 제비 얘기를 꺼내본다. 그만큼 날씨가 매섭다. 귓불을 스치는 바람이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그래서일까. 봄이 그립다. 제비는 귀소성이 강하다. 주로 날벌레를 먹는다는 점에서 환경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이런 이유로 기후변화 생물지표종으로도 지정됐다. 국내에선 전통적으로 따뜻하고 포근한 이미지로 각인된 조류다. 1980년까지는 참새만큼이나 흔했다. 하지만 지금은 개체수가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국립생물자원관 조사 결과도 개체수가 1년에 6.4%씩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봄철 평균 기온이 1도 올라가면 제비가 닷새 빨리 온다는 연구 결과가 학계에 보고됐다. 21일 국립공원연구원 조류연구센터에 따르면 2007~2021년 흑산도에서 실시한 정기모니터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제비가 한반도로 오는 날짜(도래일)와 봄철 평균기온 사이에 음(-)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제비 첫 도래일은 3월17일(±6.7일), 평균 도래일은 4월25일(±4.8일) 등이었다. 2007~2021년 흑산도 3월 평균기온과 4월 평균기온은 각각 5.3~9.0도, 8.9~12.8도를 기록했다. 첫 도래일은 3월 평균기온이 1도 높아지면 1.6일 빨라지고 평균 도래일은 4월 평균기온이 1도 오르면 0.5일 빨라졌다. 제비와 친척인 귀제비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기간 귀제비 첫 도래일과 평균 도래일은 각각 4월6일(±9.0일)과 5월13일(±9.0일)이었는데 첫 도래일은 4월 평균기온이 1도 오르면 2.1일 빨라지고 평균 도래일은 5월 평균기온이 1도 높아지면 4.8일 빨라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연구진은 제비 도래일과 봄철 평균기온 간 정확한 상관관계를 파악하려면 보다 장기적인 관찰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올해 봄은 예년보다 얼마나 따뜻했을까. 엄동설한을 이겨낼 결심은 하지 않고 봄만 기다리는 심성이 머쓱하기만 하다.

[지지대] 민선 4년, 지방체육회 변화가 필요하다

정치로부터 체육을 분리해 독립적이고 전문성을 살린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민선 지방체육회장 제도가 시행 4년이 흘렀다. 민선 1기 3년에 이어 2기 출범 후 1년이 경과했다. 이 시점에서 체육인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지방체육회가 정치로부터 독립하고 자주적인 체육 발전을 이뤘는지. 상당수 체육인들은 민선 체육회장 제도가 전문체육 발전의 후퇴와 생활체육의 정치화, 민선 체육회장의 권력 독점에 따른 편 가르기와 줄서기 등 폐해가 더 많다고 지적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체육회장 겸직 때보다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 물리적인 독립은 이뤘지만 여전히 예산 지원이라는 칼자루를 쥔 쪽은 지방정부다. 지자체장과 민선 체육회장 간 갈등이 야기되면 언제든 예산을 가지고 컨트롤할 수 있는 구조다. 또 민선 회장이 예산 집행과 인사 권한 등 전권을 쥐었지만 여전히 예산 집행과 직원 채용 등에서 지자체의 눈치를 보고 간섭을 받는 게 현실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체육회 구성원과 체육인들의 몫이다. 민선 체육회장 일부가 체육회를 사유화하거나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문제다. 상당수 지방체육회가 시행하고 있는 각종 공모사업이 선거 때 자신을 도와준 단체에 대한 보은 성격의 사업 선정이 많다는 소식이다. 전문체육은 생활체육에 비해 홀대를 받는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표밭이 생활체육 중심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관선 때보다도 의전이 과도하고 인사에도 공평성이 결여된 사례도 많다. 자연스레 줄서기와 편 가르기가 이뤄진다. 민선제도 도입 취지인 전문성을 살리고, 정치적 독립을 통한 지방체육 발전의 취지가 퇴색하며 폐해가 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많은 체육인들은 ‘관선 시절이 훨씬 좋았다’고도 한다. 가보지 않았기에 시행착오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진정으로 체육인을 위하고, 지방체육 발전을 위해 봉사한다면 민선 체육회장 스스로 변해야 한다. 민선 지방체육회의 연착륙을 위한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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