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고드름 유감

눈이 녹아 아래로 떨어지려다 얼어 버린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만들어진다. 겨울의 대표적인 풍광인 고드름은 그렇게 생긴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개구쟁이들의 반가운 군것질거리였다. 아이스크림처럼 먹기도 했다. 옛말은 ‘곳어름’이었다. ‘어름’은 얼음의 또 다른 표현이고 ‘곳’은 곧다(直)의 ‘곧이라는 설과 꼬챙이를 뜻하는 곶(串)이라는 설도 있었다. 거꾸로 자라는 역고드름도 있다. 물이 얼면 부피가 늘어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표면의 물이 얼어 부피가 커지면 압력이 높아진 얼음 아래의 물이 얼지 않은 틈으로 새어 나와 생긴다. 생각보다 그렇게 튼튼하지 않다. 잘 자란 고드름을 따다 칼싸움하려고 휘두르면 고드름끼리 닿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부러지기도 한다.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뾰족하지 않아도 높은 곳에 있으면 떨어지면서 운동에너지로 바뀌어 피해를 입히기도 해서다. 단단한 얼음덩이여서 밀도가 높아 심하게 얼어 붙은 처마가 고드름 자체의 무게로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혹한 속에서 경기지역 곳곳에서 고드름 등 피해(경기일보 19일자 6면)가 잇따르고 있다. 경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최근 한파 관련 피해 신고는 안전조치 259건, 구급 50건 등 총 309건이었다. 이 중 고드름 제거 신고가 117건이었다. 지난 18일 낮 12시56분께 안성시 공도읍 용두리에서는 요양원 건물 외벽에 고드름이 생겼다는 신고가 접수돼 소방당국이 제거에 나섰다. 앞서 오전 9시45분께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서도 다세대주택 외벽에 생긴 고드름을 제거해 달라는 신고가 들어와 안전조치가 이뤄졌다. 터널이나 지하차도 등지에 생긴 고드름을 제거해 달라는 신고도 잇따랐다. 처마에서 줄줄이 따다가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던 그 고드름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지 오래다. 고드름이 추억의 풍광에서 흉기로 변하고 있어서다. 각박해지는 세태가 못마땅하다.

[지지대]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란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교육청이 처음 만들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때 전국 최초로 제정, 17개 시·도 중 7개 교육청이 시행해 왔다. 소위 진보 교육감들이 주도했다. 학생인권조례는 성별·종교·가족 형태·성별 정체성·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폭력과 위험에서 벗어날 권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체벌 금지, 강제 야간 자율학습 및 보충수업 금지, 두발 규제 금지 등 관행을 깨는 정책들이 시행돼 교육계의 파장을 일으켰다. 최근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서이초 교사의 죽음으로 교권보호 여론이 거세지면서 학생인권조례가 타깃이 됐다. 조례가 학생의 권리만 강조해 교권 침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학생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교권이 보호되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학생인권조례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로 읽혔다. 충남도의회가 먼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다. 지난 15일 본회의서 ‘충남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재석 인원 44명에 찬성 31명, 반대 13명으로 가결했다. 충남교육청이 재의 요청 방침을 밝혀 폐지까지는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학생인권조례는 서울·경기·인천·광주·전북·제주 등에서 시행 중이다. 조례 존폐를 둘러싼 갈등은 다른 곳에서도 격화되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이번 주 중 조례 폐지를 위한 절차에 들어간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조례 폐지를 반대하며 1인 시위에 나섰다. 경기도의회도 여당 의원들 주도로 폐지안이 발의됐지만, 야당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의 주요 원인은 아니다.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 주장은 법률적, 교육적,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국가인권위도 “학생인권조례가 추구하는 학생인권 보호와 학교 현장이 요구하는 교권 보장은 대립 관계에 있지 않다”고 했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함께 발전해야 할 상생의 관계다. 학생·교사 모두의 인권을 존중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조례에 문제가 있으면 개정, 보완하면 된다.

[지지대] 늘어나는 딩크족

친구 딸이 얼마 전 결혼했다. 친구는 딸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주변에 결혼을 꼭 해야 하느냐며 부정적인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양가에서 신혼부부의 전셋집 마련을 위해 1억원씩 보태줬다. 자신들의 노후자금 일부를 떼어준 것이다. 서울 가까운 경기도에 신혼집을 얻으려 해도 몇 억원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혼부부는 그들이 조금 모은 돈에 부모 도움을 받고 은행 대출도 받아 24평짜리 집을 구했다. 맞벌이를 하는 이 신혼부부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단다. 아이를 딱히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양육의 어려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출산휴가, 육아휴직도 여의치 않고 유치원 등록, 소아과 다니기 등 주변의 경험담을 들으면 아이 낳는 걸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부부는 아이보다는 자신들에게 투자하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친구는 그런 딸에게 무조건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떠밀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맞벌이 무자녀 부부인 ‘딩크족’이 상당히 많다. 신혼부부가 매년 줄어드는데, 결혼했어도 자녀를 낳지 않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신혼부부는 103만2천쌍으로 1년 전보다 6만9천쌍(6.3%) 감소했다. 신혼부부는 혼인신고한 지 5년 이내이며 국내에 거주하면서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부부를 가리킨다. 2015년 147만2천쌍이던 신혼부부는 매년 줄어 지난해 100만쌍 언저리까지 쪼그라들었고, 이런 추세면 올해는 100만쌍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혼부부 중 초혼은 81만5천쌍(79.0%), 재혼은 21만4천쌍(20.7%)이었다. 초혼 신혼부부 중 자녀 없는 부부는 46.4%로 전년(45.8%)보다 0.6%포인트 증가하며 최고치를 경신했다. 결혼하려면 맞벌이가 필수고, 집을 마련하려면 많은 빚을 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아이를 갖는 꿈은 부담이다. 경제적 이유 외에, 아이를 안 낳는 게 맞벌이부부의 트렌드가 돼가는 것 같다. 청년들의 비혼, 딩크족 증가는 가족의 효용 상실 등 사회 분위기 영향도 크다. 가족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시민사회의 인구담론도 필요하다.

[지지대] 클레어 패터슨의 용기

청백색의 광택을 내지만 잘 늘어나고 펴진다. 불량한 전기도체다. 납이라는 광물의 스펙이다. 구약성서에도 나온다. 기원전 1천500년부터 사용해 왔다. 연금술 학자들은 토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이를 금으로 바꾸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뭔 뚱딴지같은 납 타령일까. 이 광물로 인해 20세기 초반 인류의 두뇌에 악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꺼내 보는 화두다. 당시 자동차가 급속도로 보급됐다. 하지만 엔진에서 산소 결핍으로 노킹현상이 빈발했다. 누군가 휘발유에 납을 섞으니 이런 현상이 사라졌다. 이때부터 연료에 납을 첨가한 유연 휘발유 생산이 본격화된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됐다.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기가스에 섞여 있던 납 성분으로 대기권에 함유량이 많아졌다. 이로 인해 납이 인체, 특히 인체의 뇌로 흡수되면서 지능지수 저하로 이어졌다. 실제로 당시 유연 휘발유 제조공장이 즐비했던 미국 동부 델라웨어나 뉴저지 등지에선 근로자들의 치매와 극단선택 등이 잇따라 보고됐다. 학계는 그 이유가 납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쓴소리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과학자가 용감하게 이를 제지하고 나섰다. 클레어 패터슨이었다. 그는 1965년 학술잡지에 인체의 납 함량 관련 논문을 실었다. 1천600년 된 사람 뼈와 20세기 인체 뼈를 비교해 신체에 100배 이상 납 함량이 늘었고 대기에 1천배 이상 납 농도가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정유사들이 회유에 나섰지만 거절당했다. 반전이 일어났다. 1970년 GM이 촉매장치를 부착해 청정대기법 요구에 맞는 차량을 1974년부터 생산하겠다고 발표해서다. 촉매장치에 들어간 백금은 산화돼 활성을 잃어 납이 함유된 휘발유는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지구촌은 지금 제2, 제3의 클레어 패터슨이 필요하다. 온난화 등으로 갈수록 심화하는 환경 파괴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지대] 예산 전쟁

12월은 지자체별 내년도 예산을 확정하는 시기다. 집행부가 내년도 세입, 세출을 감안해 편성한 예산안을 시의회 등 기초의회에 제출하면 시민 대표로 선출된 기초의원들이 심의해 증감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집행부와 갈등이 표출되고 심하면 예산 심의가 해를 넘기기도 한다. 예산안 심의를 놓고 집행부와 시의회가 합리적이고 발전적인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런 줄다리기가 엉뚱한 이유에서 이뤄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주요 현안을 놓고 사사건건 으르렁거리던 고양특례시와 시의회가 이번엔 업무추진비 예산을 놓고 격돌했다. 시가 시의회 의장단 업무추진비를 올해 대비 90% 가까이 삭감 편성해 시의회에 제출했다. 올해 시의회 의장단 업무추진비는 1억7천여만원. 시는 내년 예산으로 1천900여만원을 책정했다. 앞서 시의회는 시장, 부시장 등의 업무추진비를 90% 삭감한 바 있어 이에 대한 보복 편성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고양특례시는 지난해 시와 시의회 갈등으로 2023년도 예산 처리에 실패하면서 올해 준예산으로 시작했다. 준예산 체제는 고양시 역사상 처음이다. 준예산은 예산을 법정 기간 내에 확정하지 못해 전 회계연도 예산에 준해 최소한의 운영비만 집행하는 예산으로 신규 사업 추진 등을 할 수 없다. 당시 갈등 이유는 비서실장 막말 등 감정싸움이 원인이 됐다. ▶오산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지난주 예산 심의를 중단했다. 지역에서 열린 주요 행사를 사전에 시의회와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다. 시의회는 시가 시의회를 경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의원들 입장에선 기분 나쁠 수 있지만 지극히 감정 섞인 파행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국가 예산을 다루는 국회에서도 올해 예산안 처리는 가시밭길이다. 여야가 20일 처리에 합의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회나 기초의회의 건전한 예산 전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엉뚱한 이유로 민생을 볼모로 삼은 예산 전쟁은 중단해야 한다.

[지지대] 친강 사망설

친강(秦剛)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측근이었다. 올해 57세로 중국 공산당에선 촉망받던 엘리트였다. 적어도 올해초까지는 그랬다. 외교부장에 오른 뒤 3개월 만에 국무위원으로 선출됐다. 전임인 왕이 외교부장이 5년 만에 진입한 것과 비교하면 초고속 승진이었다. 그랬는데, 사망설이 나돈다. 군 병원에서 숨졌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앞서 그는 돌연 경질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었다. 지난 7월 초순이었다. 그 시점에 중국 고위층 인사들을 치료하는 군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게 골자다. 자살이나 고문으로 인한 죽음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서방 정보기관과 손을 잡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점이 그의 잠적과 경질 등의 진짜 배경이 아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상황을 좀 더 복기해보자. 그의 잠적 직전인 올해 6월25일 의미심장한 보도가 나왔다. 주어는 베이징을 찾은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차관이었다. 시진핑 주석에게 친강 및 군 주요 인사 다수가 서방 정보기관과 결탁해 핵개발 관련 기밀 유출에 도움을 줬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외신은 당시 친강이 종적을 감춘 시점에 군부 핵심인 로켓군 지도부 장성 다수가 일제히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이들에 대한 숙청이 공식적으로 확인될 즈음인 8월 말 리상푸 당시 국방부장도 공개 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고도 짚었다. 친강은 7월, 리상푸는 10월 면직됐지만 중국 당국은 구체적인 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공식석상에서 한 달간 자취를 감춘 끝에 7월25일 면직됐다. 중국 공산당 집권 이후 최단명 외교부장으로 기록됐다. 중국의 권력구조는 복잡하다. 하지만 명쾌한 건 최고 권력자의 의지가 작용한다는 점이다. 시진핑 주석의 속내를 읽어 내지 않고선 향방을 가늠할 수 없다. 중국공산당 74년의 권력 다툼은 그래서 늘 현재진행형이다.

[지지대] 견리망의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라는 의미다. 교수신문은 매년 12월 전국 대학교수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다. 올해도 1천315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30.1%(395명)가 ‘견리망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 ‘견리망의’는 논어에서 비롯된 사자성어다. 논어 헌문 편에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한다’는 ‘견리사의(見利思義)’가 등장하는데, 견리망의는 의미를 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는 견리망의 현상이 난무해 나라 전체가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된 것 같다”며 “정치란 본래 국민을 ‘바르게 다스려 이끈다’는 뜻인데 오늘 우리나라의 정치인은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고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출세와 권력이라는 이익을 얻기 위해 자기 편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 경우로 의심되는 사례가 적잖이 거론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분양사기,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교권침해 등을 언급하며 견리망의 현상은 개인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견리망의’를 선정한 다른 교수는 “대통령의 친인척과 정치인들이 이익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고, 고위 공직자의 개인 투자와 자녀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 개인의 이익을 핑계로 가족과 친구도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꼬집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견리망의’ 선정과 관련, 자신의 SNS에 “참 부끄럽고 부끄럽다”고 밝혔다. 홍 시장은 “좌파는 뻔뻔하고 우파는 비겁하다고 제가 질타한 일도 있었지만 요즘은 좌우 모두 뻔뻔함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견리망의나 후안무치나 같은 말이다. 최소한의 부끄러움은 갖고 살아야 하는데”라고 했다. 국민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정치인들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챙기고, 국가 백년지대계를 생각하는 의로움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한다. 견리망의 하면 당장은 풍요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은 공멸하게 됨을 명심하면 좋겠다.

[지지대] 대기업 총수들 정치 동원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이 다소 하락했다.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역 지지율도 하락했다. 직전 여론조사였던 11월 4주차 조사에서 긍정 평가가 39%였는데, 지난 4~6일 조사에선 4%p 하락한 35%로 집계됐다. 부산지역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 엑스포 실패 여파로 인해 위기감이 감돈다, 부산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윤 대통령이 부산으로 달려갔다. 윤 대통령은 6일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간담회를 갖고 대선 공약인 가덕도 신공항 건설,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등을 거듭 약속했다.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한 간담회에는 경제부총리와 장관들, 여당 대표 및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대기업 총수들도 다수 참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한국경제인협회장인 류진 풍산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은 대통령의 재래시장 방문에도 동행해 나란히 서서 떡볶이를 먹었다. 총수들을 병풍처럼 세워놓고 ‘떡볶이 먹방’을 한 윤 대통령에 대해 부산시민을 비롯한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하는 위기 상황에서, 대기업 총수들을 민심 달래기에 이용하는 것은 도가 지나쳤다는 것이다. 이날 참석한 기업인 8명이 이끄는 그룹의 총매출액은 1천조원에 달한다. 올해 정부 예산의 1.5배가 넘는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들이 대통령이 부르면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하는 게 한국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겠는가. 지난 17개월간 세계엑스포 유치전에 대기업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동원됐다. ‘1개월 1일정’이라고 할 만큼 잦은 대통령 해외순방 때마다 불려다녔다. 대기업 총수들은 11일 대통령의 네덜란드 순방에도 대부분 동행한다. 자유 시장경제를 얘기하면서 기업 총수들을 자주 동원하는 건 모순이고 구태다.

[지지대] 이종훈 선생의 호를 딴 ‘정암로’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다. 한평생을 일본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는 데 매진했다. 독립운동가 정암(正菴) 이종훈 선생의 일생이 그랬다. 선생의 생애로 좀 더 들어가 보자. 1858년 2월9일 경기 광주에서 출생했다. 고난의 청년시절을 거쳐 25세 때 동학에 입교했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선두에서 깃발을 높이 들었다. 1898년 순교한 최시형 선생의 장례를 치르고 일본으로 망명했다. 1902년 귀국해 부국강병의 필요성을 제창했다. 1919년 2월25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3·1운동 때 체포돼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22년 7월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고려혁명위원회 고문에 추대돼 항일운동을 펼쳤다. 이런 가운데 선생의 호를 딴 명예도로가 그의 고향에 생겼다. 광주시가 곤지암읍 만삼로 모든 구간 도로명을 ‘정암로’로 지정(경기일보 5일자 11면)했다. 명예도로는 지역사회 헌신도와 공익성 등을 감안해 법정도로명과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전국에는 지자체 89곳에 217곳의 명예도로가 있다.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서울 용산구의 ‘유관순길’과 정지용 시인의 문학정신을 잇는 은평구의 ‘정지용길’ 등이 대표적이다. 정암로 명예도로명 부여는 광복회 청원으로 비롯됐다. 광복회는 앞서 지난 2월부터 추진에 나섰다. 타 기관이 명예도로명 부여를 요청하면 해당 기초지자체는 공익성을 검토한 뒤 주소정보위원회 심의를 거쳐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시는 내년 3·1절 기념 행사도 정암로 일원에서 3·1 만세운동 재현을 위한 거리 행진 및 퍼포먼스를 펼칠 계획이다. 이 대목에서 뭔가 허전하고 씁쓸하다. 명예도로인 ‘정암로’에 대해 주민들은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고장 출신 독립운동가의 호를 땄다는 사실도 말이다. 명예도로 지정만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는 까닭이다.

[지지대] 서해5도 등 주민들 안심할 수 있도록

지난 2010년 11월23일 오후 2시34분. 서해 5도인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 난데없이 포탄이 굉음을 내며 떨어졌다. 북한이 황해남도 옹진반도 개머리 진지에서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방사포 등 170여발 쏜 것이다. 더욱이 주민들이 사는 민간인 거주지역까지 포격이 이뤄졌다. 마을 곳곳은 시커먼 연기를 뿜어냈고 주민들은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결국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 등 4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후 포격에 살아남은 주민 1천700명은 배를 타고 육지로 피난했다. 인천에는 연평도 등 서해 5도뿐만 아니라 강화 교동도까지 북한과의 접경지역이 있다. 이곳에서 사는 주민들은 북한의 작은 움직임에도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연평도 포격 같은 일이 언제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북한이 서해로 군사 정찰위성을 발사하면서 사실상 9·19 남북 군사합의가 깨진 상황. 이로 인해 인천의 접경지역에선 군사적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주민 중 어민들은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갈 때마다 두려움이 크다. 여기에 관광객이 줄어들어 생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또 다른 걱정이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어린이와 여성 등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나고 있다. 전쟁의 무서움은 바로 민간인 등 많은 인명 피해에 있다. 남북이 이 같은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주민들은 북한 쪽에서 ‘쾅’ 하는 소리만 나도 심장이 내려앉는다. 정부의 남북 관계에 대한 정책과 별도로 인천시와 강화·옹진군 등은 주민들이 안심하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현재는 말로만 나서고 실질적인 움직임은 없다. 최악의 상황 발생 시를 대비한 대책을 세우고, 주민 모두가 안심하도록 손을 꼭 잡아주며 안부를 묻는 적극적인 방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지대] 유럽 리그 한글 유니폼... 이강인 신드롬

“어느 나라 문자야?” 외국인들의 반응이었다. 반면 한국인들은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외신을 통해 감동스러운 장면이 연출됐다. 프랑스의 명문 축구 클럽인 파리 생제르맹(PSG) 선수들이 한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어서다. 이 클럽에는 이강인 선수가 활약하고 있다. PSG는 그렇게 숙적인 르아브르와를 2-0으로 꺾었다. 지난 4일 오전(현지 시간) 프랑스 르아브르의 스타드 오세안에서 열린 2023~2024 프랑스 리그1 14라운드 원정경기 결과다. 경기 초반 골키퍼 잔루이지 돈나룸마의 퇴장으로 위기를 맞아 80여분을 10명이 버틴 끝에 값진 승리를 따냈다. 리그 7연승을 포함해 9경기 무패(8승1무)를 이어가 승점 33을 기록, 2위 니스(승점 29)와의 격차를 승점 4로 벌리며 리그1 선두를 질주했다. 이번 결정은 이강인 선수 합류 이후 한국 팬 급증에 따른 팬 서비스로 풀이된다. 외신은 이강인 선수 영입 후 한 시즌 동안 홈구장 한국 관람객이 20% 늘었다고 분석했다. PSG의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의 한국인 팔로워도 2만2천명 이상 늘었다. 그러면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팬들의 관심이 높아져 구단 중 세 번째로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게 됐다고 자랑했다. 유럽 프로축구는 우리 시간으로 새벽에 진행된다. 마니아들은 초저녁에 잠을 청하고 새벽에 일어나 경기를 시청한다. 그런 팬들에게 이강인 선수는 물론 킬리안 음바페 선수 등 내로라하는 플레이어들의 이름이 검은색 한글로 적힌 유니폼을 봤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외국에서 한글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중국 칭다오나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타운 정도를 빼고는 흔치 않다.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 등 한글을 사용 중인 곳도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글의 세계화 확산을 기대해본다. 이강인 신드롬과 함께 말이다.

[지지대] 초중생 ‘의사 희망, 돈 벌려고’

교육부가 얼마 전 학생들의 희망직업을 발표했다. 초등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2019년부터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운동선수(13.4%)다. 2위는 의사(7.1%), 3위는 교사(5.4%)다. 중학생 희망직업 1위는 교사(9.1%)다. 2위는 의사(6.1%)로 지난해와 순위가 같고, 3위는 운동선수(5.5%)다. 고등학생 희망직업 1위도 교사(6.3%)다. 2위는 간호사(5.9%), 3위 생명과학자·연구자(3.7%)다. 고등학생 희망직업 순위에서 생명과학자·연구원은 지난해 9위에서 올해 3위로 올랐다. 의사는 7위에서 5위로 상승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의학과 생명과학 계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게 진로희망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의 분석이 빗나간 듯하다. 학생들이 희망직업을 선택할 때 ‘돈벌이를 가장 중시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좀 당황스럽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400개 학교 초중고생을 설문조사해 최근 발표했는데, 초등학생들의 희망직업 선택 이유 중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서’가 15.5%였다. 2018년과 비교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중고생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서’라는 답변이 감소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응답이 큰 폭으로 높아졌다. 대표적 고소득 직업인 의사를 희망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2021년 미국 고등학생 2천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2%가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자신이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10대는 재능과 꿈보다는 돈을 중시한다니 놀랍다. 현실적 인 목표를 가질 수 있지만 자신의 적성과 재능이 뭔지 모른 채, 바른 직업관이 확립되기 전에 돈에 연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경제적 보상과 직업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것은 부모와 사회 책임이다. 학교에서 다양한 직업 세계를 알려주고, 일과 직업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와 가치관을 갖게 교육해야 한다.

[지지대] 슈링크노믹스

슈링크노믹스는 ‘슈링크’(shrink·줄어들다)와 ‘이코노믹스’(economics·경제)의 합성어로 축소경제를 뜻한다. 인구 감소에 따라 경제 ‘허리’인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면서 생산·소비·산업·노동을 비롯한 경제 전반이 활력을 잃는 현상을 말한다. 축소경제에서는 인구 감소가 지역경제 붕괴로, 이후 거주민 이탈과 인구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20년 3월 일본의 고령화와 인구 감소 문제가 가져올 경제적 파장에 대해 ‘슈링코노믹스’를 언급했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한국도 슈링코노믹스의 위험에 처해 있다.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9명·2020년 기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최근 발표된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1년 전보다 0.1명 줄었다. 청년(19~34세)인구는 30년 뒤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청년세대 인구는 1천21만3천명으로 총인구(5천13만 3천명)의 20.4%를 차지했다. 하지만 2050년에 이르면 521만3천명으로 반 토막 나고 총인구 비중도 11%로 쪼그라들 것이라 한다. 청년세대는 우리 미래를 이끌어 갈 주역이다. 저출산과 청년인구의 급속한 감소는 한국 경제와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 산업구조가 이미 변화되고 있다. 분유회사가 타격을 받고, 학습지·참고서 시장이 쪼그라들었다. 문 닫는 유치원과 학교도 늘고 있다. 어린이는 줄고 어르신은 늘어나면서 유치원은 노치원으로, 예식장은 노인요양시설로 바뀌고 있다. 한국의 인구 감소는 외국에서도 관심이 크다. 뉴욕타임스의 로스 다우서트는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칼럼에서 “한국의 인구 감소는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 감소를 능가하는 것”이라며 “인구 감소 문제에 있어 사례 연구 대상국”이라고 했다. 한국의 급속한 인구 감소는 인구 붕괴로까지 비유된다. 인구 감소는 슈링크노믹스를 부르게 된다. 출산율 올리기 노력과 함께 축소경제 대비책도 세워야 한다.

[지지대] 특별한 존재

얼마 전, 고등학교와 대학 직속 선배를 만났다. 자연스럽게 갖춰지는 예의랄까. 선배를 향한 예우에, 스윽 보이는 입가의 미소. 선배는 그런 필자의 모습이 좋았나 보다. 그러고는 슬쩍 건네는 라이터 하나. 다름 아닌 지포(ZIPPO)였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특별한 글귀와 일련번호. 앞면엔 ‘90th Anniversary Edition’이라는 글귀와 뒷면엔 한정판(limited Edition)을 상징하는 넘버링까지 돼 있었다. 지포 라이터 탄생 90주년을 맞아 출시된 ‘찐’ 리미티드 에디션이었다. “특별한 후배에게 어울릴 것 같아”라는 말과 함께. 왠지 모를 행복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반가운 선배에 대한 당연한 예우였는데 말이다. 바야흐로 선거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내년 4월10일, 국민의 뜻을 받들어 대의 정치를 실현할 국회의원선거(22대 총선)가 예정돼 있다. 너도나도 그 주인공이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며 정치의 세계로 뛰어들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주인공 역할이 본인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국민을 위한 것인지 말이다. 어찌 보면 국민의 선택을 받는 300명의 국회의원은 특별한 존재가 맞다. 그런데 그런 특별함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타인, 그리고 국민을 먼저 특별하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수반될 때 ‘찐’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그동안 살아온 이력만을 특별하게 대우받고 싶다면 일찌감치 선거판에서 사라지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우가 아닐까. 본인들의 특별함만 내세워 정쟁의 끝으로 달려가는 대한민국 정치 아닌가. 지포 라이터에 새겨진 리미티드 에디션 넘버링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고 특별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당리당략(黨利黨略)에만 빠져 현실 정치를 진흙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생각이라면 당장 정치의 세계에서 발을 뺄 것을 당부드린다. 아주 작은 라이터에 새겨진 의미부터 먼저 깨치고 오시라고 말이다.

[지지대] 겨울에도 만만찮은 과일값

은박지로 포장해 냉장고에 넣어 뒀다 찬 바람이 불면 꺼내 먹었다.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홍시의 겨울 섭취 방식이고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계절을 맞이했던 기억이 새롭다. 예부터 찬 바람이 불면 귤이나 사과 등을 찾기 마련이다. 비타민C가 풍부하게 함유돼 감기나 독감 등의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다. 비타민C는 감기 예방과 회복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항산화 작용을 통해 자유 라디칼(free radical)로부터 세포도 보호해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식이섬유도 풍부해 소화를 원활하게 도와 주는 효능도 있다. 그래서 찾는 겨울철 과일이다. 귤, 사과, 딸기, 한라봉, 석류, 유자 등이다. 그런데 겨울철 과일값이 만만찮다. 대표적인 과일인 귤값이 1년 전보다 10% 이상 올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가 분석한 결과다. 귤(노지) 소매가격은 10개에 3천564원으로 1년 전 3천141원보다 13.5% 비쌌다. 평년 가격(2천998원)과 비교하면 18.9% 높다. 평년 가격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가격 중 최대·최소치를 제외한 평균값이다. 귤값 상승은 농산물 생산비용이 전반적으로 오른 상황에서 다른 과일 가격이 큰 폭으로 올라 대체품으로 귤 수요가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올해 봄철 이상 저온과 여름철 폭염, 호우 등 날씨 영향도 있다. 사과(후지·상품)값은 10개에 2만8천442원으로 1년 전보다 27.1% 올랐고 평년보다 29.3% 비싸다. 단감(상품)은 10개에 1만6천354원으로 1년 전 및 평년과 비교해 각각 46.5%, 51.7% 높다. 어디 귤이라도 마음 놓고 사 먹을 수 있을까. 서민들의 즐거움 가운데 또 하나가 사라지고 있다.

[지지대] 노후 적정 생활비

고령화가 지속되면서 노인을 가르는 사회적 연령대 기준이 상향되고 있다. 경기도도 최근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선배시민’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은 ‘선배시민 지원조례’를 공표했다. 뜬금없는 물음이겠지만 노후 생활비는 얼마가 적정할까. 이 질문에 한 민간 경제연구소가 월 369만원이라는 대답을 내놨다. 올해 이 연구소가 전국 20~79세 남녀 3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이 결과에 따르면 노후 최소 생활비는 평균 월 251만원, 여행·여가 활동·손주 용돈 등에도 지출할 수 있는 적정 생활비는 월 369만원으로 집계됐다. 2018년 당시 결과와 비교하면 최소·적정 생활비는 각각 76만원, 106만원이 늘었다. 하지만 현재 연금을 포함한 가구소득과 저축 여력 등을 감안할 때 최대한 조달할 수 있는 노후 생활비는 평균 월 212만원이라고 응답했다. 이들이 판단하는 최소 생활비(251만원)에도 못 미치는 데다 적정 생활비(369만원)의 57.6% 수준에 그친다. 노후를 지내기에는 157만원이나 부족한 셈이다. 이론과 현실의 격차가 심하다. 직장을 은퇴하는 희망 나이도 실제와 현실이 엇갈리고 있다. 민간 경제연구소가 최근 은퇴하지 않은 2천47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이 원하는 퇴직 평균연령은 평균 65세였다. 그러나 이미 은퇴한 409명의 실제 퇴직 나이는 희망보다 10년이나 이른 평균 55세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조사 대상자의 절반이 넘는 52.5%는 “아직 노후를 대비한 경제적 준비를 시작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이와 함께 노후 거주지의 첫 번째 요건으로 꼽은 건 의료시설이었고 쇼핑시설, 공원 등 자연환경, 교통 등의 순으로 지목됐다. 우리 사회에 닥친 현안은 극복해야 한다. 노후 적정 생활비 해소 방안도 그중의 하나다. 젊은이들도 머지않은 미래에는 ‘선배시민’이 된다. 복지당국의 혜안이 시급하다.

[지지대] ‘빚내 집 사라’는 영끌 정책

30대 직장인 A씨는 집값이 급등한 2021년 주택담보대출 4억원을 받아 아파트를 샀다. 그는 요즘 잠을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하다. 6억원까지 올랐던 집값이 4억원대로 떨어져 고민 끝에 급매로 집을 내놨는데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A씨는 가능한 모든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한 ‘영끌족’이다. A씨처럼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아 투자했다는 영끌족이 상당수다. 지난해 20~30대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어 집을 대거 처분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전국에 걸쳐 12만채를 던졌다. 집값이 한창 떨어지는 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하락한 집값이 조금 회복세를 보이는가 싶더니 정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집값이 더 폭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런데도 여전히 집을 사는 영끌족이 많다. 올해 3분기까지 전국에서 거래된 아파트는 총 31만6천603건이다. 이 중 2030세대가 사들인 건수는 9만9천991건으로 31.6%를 기록했다. 30대가 산 아파트는 8만5천701건(27.1%)으로 40대가 매입한 8만2천77건(25.9%)을 웃돌았다. 청년층 대부분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샀다. 정부의 ‘50년 만기 주담대’가 빚내서 집 사게 하는 데 일조했다. 대출받아 집 사는 젊은이들이 많으니 집값이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있다. 영끌족이 집값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무주택 청년에게 저금리 주담대를 제공하는 ‘청년 내집 마련 123주거지원 프로그램’을 또 발표했다. 청년(만 19~34세) 전용 청약통장을 신설해 청약 당첨 시 2.2% 금리로 분양가의 80%까지 최장 40년 대출을 해준다는게 골자다. 파격적이다. 하지만 정부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기는 게 옳은지 의문이다. 청년과 무주택자들이 집을 못 사는 것은 대출 장벽보다는 집값이 너무 비싸서다. 대출로 집 사라 하지 말고,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게 더 실효성 있는 정책같다.

[지지대] 초록색 낙엽

11월 중순이면 길거리에 노란색 은행잎이 수북하다. 바람이라도 불면 은행잎이 나뒹굴며 흩날리는 모습이 운치 있다. 오래된 은행나무 아래에는 노란융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때때로 아이들이 낙엽을 한 움큼씩 집어들고 흩뿌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올해는 노란색 은행잎 보기가 어렵다. 잎이 노랗게 물들기 전에 우수수 떨어져 버렸다. 초록빛으로 내려앉은 은행나무 잎들을 보니 어색하고, 뭔가 잘못돼 가고 있음을 느낀다. 은행나무뿐 아니라 다른 나무들의 가을도 비슷하다. 절정도 없이 잎파리들이 떨어졌다. 근처 산책길만 걸어도 화려했던 단풍이, 붉지도 노랗지도 않은 채 낙엽이 됐다. ‘초록색 낙엽’이다. 단풍은 기상 요인에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대표적인 자연 현상이다. 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지고 맑은 날씨가 이어지며 일사량이 많을 때 물든다. 우리나라 단풍이 곱고 예뻤던 건, 11월 늦가을 날씨가 서늘하고 대체로 맑은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11월은 날씨가 덥거나 춥고, 비도 많이 오는 등 평년보다 변화무쌍했다. 11월 초 갑자기 기온이 크게 올라 단풍이 미처 물들지 못한 채 말라 버렸다. 지난 2일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은 18.7도, 낮 최고 기온도 25.9도로 초여름 날씨였다. 11월 기온으로 1907년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이후 한파가 닥쳐 바람이 불면서 파랗게 마른 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버렸다. 우려했던 기후변화 탓이다. 기후변화의 특징인 극단적 기온 변화가 11월 한 달간 나타났다. 앞으로도 울긋불긋한 단풍의 향연을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은 식물뿐 아니라 곤충 등 생태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요즘 모기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한반도는 100년 전 대비 2도 정도 온도가 상승했다. 그 영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 9위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후위기에 안일하다. 일회용품 금지 철회 등 환경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

[지지대] 슈링크플레이션 유감

물가 오름세가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일부 품목에서 값은 올리지 않고 제품 크기나 양을 줄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피파 맘그렌 교수가 지난 2015년 처음 사용했다. ‘줄어들거나 위축된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일정 기간 물가가 지속적이고 비례적으로 오르는 현상’을 나타내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기업들은 원자재비나 인건비 등 비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한다. 값을 올리면 소비자의 저항이 커질 수 있어서다. 그래서 상품의 크기 및 중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추는 방식으로 비용을 전가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제품 가격은 그대로인데 실제로 받는 양이나 품질은 감소한다. 원료를 저렴한 것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일부 품목에서 조짐이 보이고 있다. 명백한 꼼수다. 정부가 최근 주요 생필품 슈링크플레이션 조사와 감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소비자가 제품 변경 내용을 쉽게 알도록 알리는 정부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준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단, 정부 조치와 관계 없이 자발적으로 소비자에게 제품 용량 축소 사실을 알리는 건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맞섰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거들었다.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양을 줄여 팔면 소비자에게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함께 제품 내용물이 바뀌었을 때 소비자가 알 수 있게 하는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도 날을 세웠다. 한국소비자연맹은 감시활동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면서 기업에 책임을 지우고 감시체계를 가동하는 게 순서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소비자 고지 가이드라인을 내놓을지는 불투명하다.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시름에 비할까. 움츠러든 서민들의 어깨가 좀처럼 펴지지 않고 있다.

[지지대] 정치의 품격

정치권의 막말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유치하기 그지없고 참담하다. 포문은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열었다. 송 전 대표는 지난 9일 ‘송영길의 선전포고’ 출판기념회에서 한동훈 장관 탄핵을 촉구했다. 그는 “이런 건방진 ×이 어딨나. 어린 ×이 국회에 와 가지고 300명 국회의원들 자기보다 인생 선배일 뿐만 아니라 한참 검사 선배인 사람들을 조롱하고 능멸하고 이런 ×을 그냥 놔둬야 되겠나”며 “물병이 있으면 머리에 던져버리고 싶다”고 목청을 높였다. 당내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소속 의원도 가세했다. 민형배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단언컨대 정치를 후지게 한 건 한동훈 같은 ××(들)이다”라며 지원사격했다. “정치를 후지게 만드는 너...구토 났고 이젠 그저 #한(동훈) 스러워”(유정주 의원), “금도를 지키지 못하면 금수(禽獸). 한 장관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금수의 입으로 결국 윤석열 대통령을 물 것”(김용민 의원)이라며 가세했다. 국민의힘도 예외는 아니다.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은 한 장관을 ‘금수’라고 표현한 김용민 의원에게 “정치 쓰레기”라고 직격한다. 윤 정부 들어 정치적 양극화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 정치 지형을 왜곡시키고 혐오스럽게 한다. 정치인의 막말은 당사자에 대한 관심과 인지도 상승, 강성 지지층 결집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진영 지지자들에게 ‘사이다’ 맛을 줄지 몰라도 중도층엔 정치불신, 혐오만 준다. 기자의 시선은 늘 뉴스를 향한다. 국회의원 300명을 모두 알지 못한다. 그들이 입과 행동을 주목하고 가감 없이 국민에게 알릴 뿐이다. 그 뉴스가 막말, 혐오, 비하 발언일지라도....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꽃에 향기가 있듯, 사람에겐 품격이 있다. 그런데 꽃이 싱싱할 때 향기가 신선하듯이 사람도 마음이 맑을 때 품격이 고상하다. 썩은 백합 꽃은 잡초보다 그 냄새가 고약하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정치 품격은 어떤가.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