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넷제로(Net-Zero)

휴일 아침 공원을 산책하다 ‘넷제로(Net-zero)’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공원 한 편에 영어로 글자 모양을 만들어 예쁜 꽃들과 함께 조성한 공간이 있었다. 다소 생소한 단어라 집으로 돌아와 검색해 봤다. 넷제로는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6대 온실가스의 순배출량을 제로화하는 것을 말한다.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에서 규정한 이산화탄소(CO2), 메테인(CH4), 아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6) 등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6대 온실가스의 순배출량을 제로화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기후중립(Climate Neutral)이라고도 한다. 넷제로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하고 현재까지 배출된 온실가스는 흡수해 순배출량을 제로화하기 때문에 탄소중립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탄소중립보다 넓은 범위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활동을 요구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는 파리협정 목표에 부합하는 감축을 위해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를 감축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또 2050~2052년 탄소중립이 돼야 하며 2063~2068년엔 넷제로를 달성해야 한다며 목표 기간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했으며 탄소중립 목표를 2022년 9월 법제화했다. 최근 대두되고 있는 사회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단연코 기후위기다. 6대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화는 인류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구 안에 모든 생명체는 ‘넷제로’ 실천에 동참해야 한다.

[지지대] 부업 뛰는 ‘N잡러’ 50만

본업 외에 직업을 하나 더 가진 사람을 ‘투잡스(Two Jobs)’라 한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투잡’을 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식당에서 일하거나 대리운전을 하는 식이다. 굴지의 기업들이 연쇄 도산하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는 등 고용불안이 심화된 데 따른 현상이었다. 요즘은 2개로는 부족하다는 듯 ‘N잡러’가 유행이다. 2개 이상의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을 의미하는 ‘잡(Job)’, 사람에게 붙는 접미사 ‘~러 (-er)’가 합쳐진 신조어로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N잡러는 청년층에서 높은 증가율을 보인다. 저녁의 삶과 휴일을 포기하고 부업을 택한 40~50대 직장인도 많다. 생활비 부족과 노후 대비 등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자영업자들도 투잡에 뛰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부업을 한 적이 있는 취업자는 월평균 55만2천여명으로 집계됐다. 작년 1분기(월평균 45만1천여명)보다 22.4% 늘었다. N잡러가 50만명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N잡러의 증가는 고용 형태의 다변화, 코로나19 장기화, 비대면 문화 확산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2018년 이후 근로시간 단축으로 줄어든 소득을 메우기 위해 부업을 하기도 한다. N잡러 증가세는 배달라이더로 대표되는 플랫폼 일자리와 관련 있다. 플랫폼 일자리의 상당수는 시간 제약없이 일할 수 있고 기존 일자리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유튜버처럼 시간·장소 제약 없이 PC만 있으면 가능한 정보통신업 관련 일자리도 대표적인 부업 중 하나다. 고금리·고물가 시대에 월급만으로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어렵고, 원하는 삶을 살기 힘들어 여러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 요즘은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직장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식이 강해졌다. 이는 청년층 이직이 잦은 이유이기도 하다.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N잡러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소시민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지지대] 쇼핑 난민

도심에는 편의점이 너무 많다. 골목에 있던 작은 마트까지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공정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편의점 가맹점 수는 5만5천43개에 이른다. 전년 대비 5.5% 증가했다. 반면 농촌으로 갈수록 구멍가게 하나 찾기 어렵다. 인구가 줄다 보니 운영이 어려워 점점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식료품, 일용품 하나 사려면 버스 등을 타고 나가야 할 정도다. 일본에선 ‘쇼핑 난민’이란 말이 유행이다. 상점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거동, 교통이 불편해 상점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이른다. 특히 고령자를 가리키는 말로 ‘쇼핑 약자’라고도 한다. ‘식품 사막’이란 말도 있다. 사막에서 물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식료품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을 의미한다. 특히 채소, 과일, 우유 같은 신선식품을 살 수 있는 마트나 각종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곳이 근처에 없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 사는 이들은 쇼핑 난민으로 전락한다. 일본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쇼핑 난민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쇼핑 난민이 800만명을 넘어섰다. 이에 지자체별로 무료 쇼핑버스 지원, 이동슈퍼 운행, 생필품 구매 대행 자원봉사 지원을 하고 있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식품 사막, 쇼핑 난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젊은이가 거의 없고 고령자가 많은 마을에서 슈퍼마켓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다. 장을 보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데, 하루에 몇 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게 쉽지 않다. 이런 마을들은 온라인으로 신선식품 배송이 되지 않는 지역인 데다 음식 배달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다. 고립된 고령층 쇼핑 난민은 경기도내 연천, 양평, 여주 등에도 있다. 쇼핑 난민에겐 단순히 식료품 공급이 안 되는 문제뿐 아니라 사회와도 단절된다. 식품 사막, 쇼핑 난민은 이제 우리의 현실이 됐다. 찾아가는 마트 운영이나 푸드뱅크 사업 등을 통해 고립된 노인들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지지대] 조팝나무 단상

이맘때면 들녘에 수두룩하다. 새하얀 꽃들이 무리를 지어 핀다. 그 모양새가 제법 호들갑스럽다. 흰빛이 눈부시다. 그래서 때 늦은 눈이 내린 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봄날의 산하를 한층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조팝나무 이야기다. 조선 후기 고전소설 ‘토끼전’에도 나온다. “조팝나무에 비쭉새 울고, 함박꽃에 뒤웅벌이오.” 멍청이 별주부가 토끼의 꼬임에 빠져 처음 육지로 올라왔을 때가 마침 봄이었다. 조팝나무 꽃은 어디에서나 흔하게 피지만 별주부가 토끼를 꼬여 내던 그 시절에는 더욱 흔했을 터이다. 잘 보일 것 같지 않은 별주부의 작은 눈에도 육지에 올라오자마자 금세 눈에 띄었으니 말이다. 이름은 좁쌀로 지은 조밥에서 유래됐다. 우리의 먹을거리는 쌀, 보리, 조, 콩, 기장 등 오곡(五穀)으로 대표된다. 조는 땅이 척박하고 가뭄을 타기 쉬운 메마른 땅에 주로 심었다. 오곡의 세 번째 자리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곡식이었다. 조밥은 하얀 게 아니라 되레 노랗다. 하지만 그릇에 담아둔 조밥처럼 작은 꽃이 잔뜩 핀 모양을 비유했다. 원래 쓰임새는 관상용보다 약용식물로 더 유명하다. 동의보감에는 여러 가지 학질을 낫게 하고 가래침을 잘 뱉게 하며 열 오르내림을 낫게 한다고 설명했다. 대기 환경에 특별히 민감하다. 고온다습한 곳에선 잘 자라지 않는다. 양립력이 강하다. 이 같은 특성으로 도심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재목이나 판목 등으로도 사용된다. 가구, 울타리, 건축재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다른 나무보다 가벼우면서도 튼튼해 가구 제작에 적합하다. 이 식물은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다. 특징과 활용 방안 등을 살펴보면 이들이 우리 주변에서 어떻게 쓰이고 어떤 장점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비가 며칠 내리더니 조팝나무 꽃도 시들고 있다. 봄날도 가고 있다.

[지지대] 늘어난 사전 경기... 빛바랜 ‘道체전’

9일 파주시에서 개막돼 3일간 펼쳐질 제70회 경기도체육대회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대회다.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접경지역 파주시에서 처음 열리는 종합 스포츠 행사이자 고희(古稀)의 대회다. 지난 2021년 대회를 유치했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소한 뒤 3년 만에 다시 열려 감회가 남다르다. 경기도 4대 종합 체육행사는 시설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2017년부터 도체육대회 개최지에서 도장애인체전, 도생활체육대축전, 도장애인생활체육대회를 2년 동안 순차적으로 치르고 있다. 이에 지자체들이 앞다퉈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종합대회 유치는 도시의 스포츠 인프라 구축과 지역 발전을 앞당기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또 대회 유치를 통해 증가한 체육시설은 훗날 주민들의 생활체육 시설로 이용된다. 더불어 대회 기간 2만명이 넘는 시·군 선수단과 관계자들이 개최지를 찾아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한다. 하지만 파주 대회의 경우 사전 경기가 너무 많아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매년 대회 때마다 전국대회 일정과 일부 부족한 시설 등으로 5개 안팎의 종목이 사전 경기를 치렀다. 이번 대회는 전체 27개 종목 가운데 37%에 달하는 10개 종목이 대회 개막 전에 일정을 마쳤다. 사전 경기로 인해 1부의 경우 우승 경쟁을 벌이는 팀들의 순위가 일찌감치 가려져 ‘김빠진 대회’가 됐다. 사전 경기 선수들은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경기를 마친 것을 아쉬워한다. 시·군 체육회도 많은 사전 경기로 인해 2주 연속 현장을 찾아야 하는 이중고를 호소한다. 파주시 입장에서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여러 의미를 갖고 유치한 첫 대회가 반쪽짜리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앞으로 대회를 유치한 가평군과 광주시, 그리고 경기도체육회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지대] ‘멸종위기’ 금개구리의 반전

아들 청개구리는 엄마 청개구리 충고에 어깃장만 놨다. 엄마 청개구리는 임종을 앞두고 아들 청개구리에게 “개울가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들 개구리는 돌아가시기 전의 말씀은 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들 개구리는 이후 비만 내리면 엄마 개구리 산소가 떠내려갈까 걱정하면서 울었다. “밤새 비단조개 수만개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에 나오는 표현이다. 6·25전쟁 후 서울의 한 제약회사에서 근무했던 주인공이 귀향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빛났다. 그의 고향에서 개구리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벗이었다. 우리만큼 개구리 관련 에피소드가 많은 나라도 드물다. 종류도 다양하다. 그중 금개구리가 있다. 몸 색깔이 환한 녹색이다. 등 양쪽에 2개의 굵고 뚜렷한 금색 줄이 있다. 가을에 진한 갈색으로 변한다. 겨울잠을 자고 나면 다시 녹색이 된다. 5월 중순부터 7월 초순에 걸쳐 짝짓기를 한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Ⅱ급이다. 금개구리가 평택 배다리공원 실개천에서 수년째 안정적으로 서식(본보 3일자 8면)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택자연연구소 등의 분석 결과다. 이곳엔 지난 2014년 평택 소사벌지구 택지개발 과정에서 발견된 금개구리 성체와 올챙이 등 440여마리가 옮겨졌다. 앞서 지난 2022년부터 서식 중인 사실이 확인됐다. 올해는 50m 남짓한 공간에서 20~30마리가 발견됐다. 서식지가 새로 형성된 만큼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높아지고 있다. 미군기지 평택 이전 과정에서 발견된 금개구리 1천500여마리를 옮긴 대체서식지인 현덕면 덕목제의 경우 관리 소홀 등으로 2016년부터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아서다. 농수로가 아닌 인공적인 공간에 적응했다는 점이 학술적으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지대] ‘세계적인’ 연천 구석기축제

1978년 1월, 주한 미군 그레그 보언은 여자친구와 연천 전곡리의 한탄강 유원지를 찾았다. 강변을 산책하던 그는 이상하게 생긴 돌 하나를 주워 들었다. 자연석 같기도 하고, 누가 인공적으로 깎은 흔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돌을 유심히 바라보던 보언의 눈이 빛났다.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보언은 심상치 않은 돌임을 직감했다. 그는 주변에서 주먹도끼와 가로날도끼, 긁개 등을 발견했다. 전곡리는 그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보언이 발견한 유물이 30만년 전 ‘아슐리안 주먹도끼’로 감정되면서 세계 고고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1979년 첫 발굴조사가 이뤄졌고, 전곡리 일대가 사적 제268호로 지정됐다. 20여차례의 발굴조사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 50여점을 비롯해 8천여점의 구석기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구석기인들은 신생대 4기 화산 폭발이후 한탄강 강줄기를 끼고 풍요로운 무리생활을 했다. 그 흔적이 한탄강변 전곡리 곳곳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연천 전곡리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구석기 유적지다. 우리나라 선사문화의 보고이면서 세계 구석기문화 연구에 한 획을 그은 곳이다. 세계 고고학 역사를 다시 쓰게 했다. 이곳에선 매년 구석기축제가 열린다. 한반도의 구석기문화, 전곡리 유적을 어떻게 알릴까 고민하다 1993년 작은 축제로 시작했다. 처음엔 200여명이 모여 주먹도끼를 만들고, 석기로 돼지 삼겹살도 썰어 보는 등의 소박한 체험행사를 했다. 축제는 해를 더해 가며 프로그램이 다양해지고 인기도 높아졌다. 거의 매년 문화체육관광부 축제로 선정되면서 체험과 교육, 스토리가 있는 놀이가 어우러진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연천 구석기축제는 올해 31회를 맞았다. 3~6일 20만㎡의 전곡리 유적에서 열린 축제는 ‘아슐리안으로부터의 주먹도끼 초대장’을 주제로 선사시대 체험과 전시, 공연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풍성했다. 축제는 어느 해보다 성공적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30만년 전 선사시대로 떠나는 구석기축제는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축제를 꿈꾸고 있다.

[지지대] 가장 가난했던 대통령의 암 투병

“삶에는 가격 라벨이 붙어 있지 않으니 저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권력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단지 그 사람의 진짜 모습만 드러낼 뿐입니다”, “우리는 진짜 숲을 파괴하고 익명의 콘크리트 숲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느 정치인의 어록이다. 국내 인사의 발언이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외국, 그것도 지구 반대편 나라의 셀럽이다.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88) 이야기다. 대통령 재임(2010~2015년) 시절 월급 대부분을 사회단체 등에 기부했다. 국가가 제공하는 최고급 승용차 대신 1987년형 하늘색 폴크스바겐 비틀을 타고 다녔다. 그래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넬슨 만델라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지도자로 불렸다. 웅장한 대통령 관저 대신 수도 몬테비데오 외곽의 허름한 집에서 오랜 기간 출퇴근했다. 검소하고 부지런했다. 경제적인 부문에서의 업적이 두드러졌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경제 발전과 빈곤 퇴치 등에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재임 기간 빈곤율은 40%에서 11%로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논란을 일으킨 부분도 있었다. 가톨릭 전통을 고수하던 나라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세계 최초로 기호용 마리화나를 완전 합법화했다. 찬반양론이 뜨거웠다. 대통령 퇴임 후엔 상원에서 정치활동을 이어가다 2020년 의원직 사퇴와 함께 정계를 떠났다. 그랬던 그가 암 투병 중이라고 외신이 전했다. 건강검진에서 식도암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그는 풍유법을 인용해 에둘러 표현했다. “전에도 제 인생에서 저승사자가 한번 이상 침대 주위에 있었지만 이번엔 (그가) 명백한 이유로 큰 낫을 준비해 온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내 사고방식에 충실하게 전투를 계속하겠습니다.” 깊게 울리는 워딩이 귓전을 맴돈다. 우리도 이런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지대] 키오스크

외국인의 눈에 한국인은 친인척이 많았다. 단골 식당과 술집 사장을 이모와 삼촌이라는 애칭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연세 지긋한 사장은 어머님, 아버님이다. 호칭이 정겹다. 처음 한국에 온 외국인의 눈에는 이 같은 문화가 신기하고 인상 깊게 느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식당과 술집의 수많은 이모와 삼촌들은 자영업자다. 단골손님 너스레에 서비스 반찬과 안주를 내어 준다. 일종의 영업이다. 서비스 계란프라이와 쥐포튀김, 음료수에 또 방문하게 되고 이런 맛에 자연스레 손님들로 붐비는 나름 동네에서 입소문 난 가게가 있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로 기억된다. 대형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 앞에 성인 남자 덩치만 한 전자기기가 설치됐다. 종전에 직원에게 햄버거, 콜라, 감자튀김까지 주문하던 것을 커다란 전자기기 앞에서 주문하라고 안내한다. 이른바 ‘키오스크’다. 전자기기에 익숙지 않은 아저씨,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키오스크 주문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술집과 식당 테이블마다 작은 태블릿PC 같은 소형 키오스크가 등장했다. 만남을 억제하고 통제하던 시간. 만남 자체가 죄인시되는 분위기. 식당과 술집도 비대면 주문이라는 대세에 따르게 됐다. 코로나19는 잦아들었지만 키오스크는 이후 어딜 가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주문 수단으로 보편화됐다. 키오스크는 ‘신문, 음료 등을 파는 매점’을 뜻하는 영어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은 식당 등에서 메뉴를 주문하는 기기로 통용된다. 키오스크는 식당, 주점 사장들 입장에서 비용 절감의 수단이다.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 식당 사장들이 직원을 줄이는 대신 키오스크 설치를 늘려갔다. 키오스크 등장으로 이제 식당과 술집에서 이모, 삼촌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시대가 머지않아 보인다. 급변하는 사회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도 노인, 장애인 등 전자기기에 서툰 소외계층은 키오스크 앞에서 씁쓸해하고 있다.

[지지대] 40% 넘긴 나홀로가족

핵가족이란 용어가 있었다. 부부와 미혼의 자녀만으로 이뤄진 소가족을 뜻한다. 처음 사용한 이는 미국의 인류학자 G.P. 머독이다. 근대 산업사회에서 개인주의, 사회적 이동성 및 사회보장제도 발전 등으로 촉진됐다. 국내에선 1960년대 후반부터 경제성장과 함께 두드러졌다. 지난 2010년 이후에는 1인 가족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른바 미혼 싱글이나 어르신 등이 혼자 사는 가구로 ‘나홀로가족’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전국의 나홀로가족이 1천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행정안전부의 분석 결과다. 지난해 12월 기준 주민등록상 전체 가구 수를 합산하면 2천391만4천851가구다. 지난 2022년 12월 2천370만5천814가구보다 20만9천37가구(0.9%) 늘었다. 특히 나홀로가족은 993만5천600가구다. 지난 2022년 12월 972만4천256가구보다 21만1천344가구 증가했다. 전체 가구 증가세를 나홀로가족이 주도했다. 이처럼 나홀로가족이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2%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10가구 중 4가구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통계청이 추산한 지난해 1인 가구 비중인 34%보다 훨씬 높다. 2인 가족은 지난 2022년 574만4천486가구에서 지난해 586만6천73가구, 3인 가족은 401만553가구에서 402만9천815가구로 다소 늘었다. 4인 가족은 325만715가구에서 314만8천835가구, 5인 가족은 77만6천259가구에서 74만3천232가구로 감소하는 등 다인 가족은 대체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나홀로가족은 현대사회의 대세로 굳혀지고 있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린다. 싫든 좋든 이제 한국만의 추세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당국은 1인 가구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대처해야 한다. 특히 이웃에서 돌보는 이들이 없어 쓸쓸하게 지내다 스러지는 홀몸어르신들의 안타까운 사례들이 많아서다.

[지지대] 공포의 가정의 달

초록이 진하게 번지고 꽃이 만발해 어디로 눈을 돌려도 싱그럽고 이쁜 때다. 그래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 어린이 날, 8일 어버이 날, 15일 스승의 날, 19일 성년의 날이 있다.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 있다. 가정의 달, 의미있고 소중한 날이 많지만 즐겁지 않다는 이들이 많다. 걱정을 넘어 공포스럽다는 사람들도 있다. 무슨 날마다 외식을 하고, 선물을 사고, 용돈이라도 챙겨야 하는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피자, 치킨 등 주요 외식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외식 수요가 많은 가정의 달을 앞두고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5월 ‘외식비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부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밥값 생각하면 5월의 휴일이 무섭다”, “치킨이나 먹을까는 옛말이다”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지역 냉면 가격은 1년 만에 7.2% 올라 한 그릇에 평균 1만1천462원을 기록했다. 일부 평양냉면 식당에선 1만6천원도 받는다. 자장면도 평균 7천69원으로 올랐다. 한 체인점에선 참치김밥이 4천900원에서 5천500원으로 인상됐다. 굽네치킨은 얼마 전 인기 메뉴 가격을 1천900원씩 일제히 올렸다. 맥도날드는 5월2일부터 16개 메뉴 가격을 평균 2.8% 올린다. 피자헛도 같은 날부터 프리미엄 메뉴 가격을 인상한다. 외식 물가 상승은 과일류 가격이 폭등한 데다 최근 양배추 한 통이 1만원에 달하는 등 채소 가격까지 덩달아 오른 영향이다. 더 큰 문제는 5월 이후다. 도시가스나 전기요금 등도 인상될 기미를 보인다. 휘발유 가격도 계속 오름세다. 대통령실은 물가 관리가 잘되고 있다고 했다. 시장 상황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건지 황당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월 한국의 식료품 물가 상승률이 35개 회원국 중 3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작년에 폐업한 외식업체 수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보다 많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가 가격을 무조건 통제할 수는 없지만 물가를 잡을 수 있는 만큼 잡아야 한다.

[지지대] “패륜자녀 상속 배제”

재산 상속을 둘러싼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재산이 많건 적건 간에, 돈 앞에선 대부분 한 푼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인다. 상속을 둘러싼 소송이 줄을 잇고, 심지어 살인까지 벌어진다. 가족 간 인연을 끊고 사는 이들도 많다. 현행 민법은 자녀, 배우자, 부모, 형제자매가 상속받을 수 있는 지분을 규정하고 있다. 피상속인이 사망할 때 유언을 남기지 않으면 규정에 따라 배분된다. 유언이 있다 해도 자녀, 배우자는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을, 부모와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보장받는다. 이를 ‘유류분(遺留分)’이라 한다. 유류분은 특정 상속인이 유산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고, 남은 유족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1977년 도입됐다. 피상속인은 유언 또는 증여로 재산을 맘대로 처분할 수 있지만 상속권을 가진 가족들을 위해 일정액을 남겨둬야 하는 제도다. “장남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겼어도 배우자와 다른 자녀도 유류분 내에서 비율대로 자기 몫의 유산을 받을 수 있다. 생전에 고인을 유기하거나 학대한 자녀나 부모도 ‘가족’이란 이름 아래 유산을 받을 수 있다. 유류분 소송이 지난해에만 2천건을 넘었다. 1천억원 넘는 재벌가의 소송도 있지만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가 ‘내 몫을 달라’며 법정 다툼을 벌이는 일도 부지기수다. 갈등 완화를 위해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불효자 양성법’이라는 오명을 썼던 유류분이 도입 47년 만에 수술대에 올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5일 유류분에 관한 민법 규정 일부를 위헌 및 헌법불합치로 결정했다. 가족으로서 도리는 외면한 채 고인의 유산에만 집착하는 그릇된 세태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현재는 학대 유기 등 ‘패륜 가족’에 대한 유류분 배제와 간병·부양·경제적 기여 등의 인정도 주문했다. 유류분 제도의 틀은 유지하되 사회적 변화나 상식에 맞지 않은 불합리한 규정을 고치도록 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다. 내년 말까지 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제 국회가 신속히 보완 입법과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

[지지대] 체르노빌 원전사고 38주년

지금은 우크라이나 영토인 키이우 북쪽 원자력발전소. 이곳에서 가공할 사고가 났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참사다. 1986년 4월26일 오전 1시24분이었다. 필자는 그때 새내기 직장인이었다.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에 누출되면서 20만명 이상이 피폭됐다. 2만5천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비공식적인 집계다. 사고를 복기해보자. 원자로 지붕이 파괴되고 화재도 발생했다. 고온·고방사능 핵연료와 흑연 파편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열흘 정도 방사성 물질이 대량으로 방출됐다. 발전소와 가까운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이 심하게 오염됐다. 당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모두 4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었다. 사고가 난 4호기는 1983년 완공된 RBMK형 원자로였다. RBMK는 옛 소련이 개발한 원자로로 흑연을 감속재로, 경수를 냉각재로 사용한다. 운전 중 핵연료 재장전이 가능하고 출력이 큰 게 장점이다. 하지만 제어가 어렵고 낮은 출력에서 불안정해진다. 이게 사고 요인이었다. 사고는 전력 공급 상실 시 비상 전원 공급 전까지 터빈이 얼마나 오래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사고 전날 시험 준비 중 운전 미숙으로 열출력이 30㎿ 정도로 떨어졌다. 출력을 올리기 위해 많은 제어봉이 인출됐고 노심에는 기준치 이하의 제어봉만 남게 됐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났다. 체르노빌 발전소 주변 출입제한구역은 유럽에서 야생 동식물이 가장 번성하는 지역으로 바뀌었다. 반전이다. 휴전선 비무장지대처럼 말이다. 지난 2016년 기준 주민 180여명이 돌아와 거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2011년부터 관광객들에게 개방했다. 지구 반대쪽에서 발생했던 참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 그 무거운 의미를 허투루 받아들이면 우리 산하에서도 재발될 수 있다.

[지지대] 정치, 이젠 시민 일상으로 스며들길

지난 4월10일 제22대 국회의원선거는 시민들의 일상을 정치로 끌어들였다. 시민들은 비록 국회 등에서 매일같이 반복하던 정치싸움은 꼴도 보기 싫어 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을 대신해 국회에서 일할 대변인을 골라냈다. 짧게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 2주, 길게는 공천까지 3~6개월의 기간 시민들은 후보자들의 정당과 인물, 그리고 정책을 살펴보고 선택했다. 이 기간 시민들의 일상엔 정치가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가족은 물론 친구, 지인 등을 만나면 가장 먼저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이 과정에서 단합과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인천은 총 14곳의 선거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 12명, 국민의힘 후보 2명이 승리했다. 이들 당선인은 앞으로 국회에서 4년 동안 인천을 위해 일할 것을 시민들로부터 명령받은 셈이다. 총선이 끝난 뒤 시민들은 정치에서 빠져나와 다시 생업 등 일상으로 복귀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치가 이 같은 시민들의 일상으로 들어와야 할 때다. 정치가 안정적일 때 시민들은 큰 걱정 없이 생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연일 여야를 가리지 않고 민생(民生)을 외친다. 시민들은 이들의 외침이 정치싸움을 위한 구호가 아닌, 진정 국민의 생활과 생계를 위한 다짐이길 바라고 있다. 여전히 각종 식품과 생필품값은 오르고, 국제 유가 상승과 급락하는 원화 가치 때문에 수입 물가도 치솟고 있다. 이 같은 고물가 상황에 고금리 기조는 계속 시민들의 생활을 더욱 옥죈다.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은 정부의 몫이기도 하지만 정치권의 역할이기도 하다. 이젠 정치권이 이 같은 시민들의 부름에 응답할 때다.

[지지대] 월평균 양육비 140만7천원

우리의 부모들도 그랬을까. 단칸방에서 베개 하나에 서너명이 의지했던 시절이 있었다. 쌀밥은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잡곡밥이라도 한 그릇이면 족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 양육비는 어땠을까. 무자녀 신혼 가구가 예상한 자녀 1명당 양육비가 월평균 140만7천원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보고 결과다. 아동수당의 잠재적 수요자인 혼인 기간 5년 이하의 무자녀 300가구(남성 150명, 여성 150명)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 앞으로 자녀를 낳을 경우 자녀 1명을 키우는 데 월평균 얼마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100만~150만원 미만이 37.0%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200만원 이상 29.0%, 150만~200만원 미만이 18.7%였고 100만원 미만이 15.3%로 가장 적었다. 자녀에게 지출되는 양육비가 가계에 어느 정도 부담이 될 것이냐는 질문에는 ‘다소 부담될 것’(58.7%), ‘매우 부담될 것’(35.0%) 등으로 93.7%가 부담될 것이라고 나타났다. ‘적절할 것’(5%), ‘별로 부담되지 않을 것’(1%), ‘전혀 부담되지 않을 것’(0.3%) 등의 응답은 많지 않았다. 향후 자녀 계획에 대해선 1명이 33.3%, 2명이 24.7%, 3명이 2.7% 등으로 나타났다. 자녀를 낳지 않을 계획인 경우는 1.7%, 몇 명의 자녀를 낳을지 아직 정하지 않은 경우는 37.7%였다. 자녀 계획 미정인 경우를 제외하고 평균 계획 자녀 수는 1.45명이었다. 무자녀 신혼가구의 계획 자녀 수는 아내 연령이 젊을수록 대체로 많이 나왔다. 아내 연령이 35세 이상이면 자녀 계획 미정인 경우가 51.5%로 절반 이상이었다. 통계는 과학이다. 국가적인 과제인 인구소멸 위기를 막으려면 이처럼 숫자로 나타난 세태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린다. 당국의 혜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지대] ‘위험한’ 日 우익교과서

일본의 역사 왜곡이 반복되고 있다. 멈출 줄 모르는 역사 왜곡은 점점 더 노골화되는 양상이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식민지 지배와 전쟁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는 우익 성향의 교과서를 채택했다. 지난 19일 레이와서적의 중등 역사교과서 2권이 문부성의 검정을 통과해 내년부터 학교 교과서로 쓰인다. 일본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의 교육에 사용될 교과서여서 역사 인식 퇴행이 우려된다. 이번에 통과된 역사교과서는 일제강점기 군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으며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근대화로 이어졌다는 우익사관에 기초해 쓰여졌다.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황당하고, 기가 차다. “조선반도의 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일본이 주도해 조선의 근대화를 진행하고자 했다”, “일본군이 조선 여성을 강제 연행했다는 사실은 없으며 그녀들은 보수를 받고 일했다”, “일본 점령이 해제되자 한국은 이승만 라인을 일방적으로 선언해 다케시마(竹島·일본 주장 독도 명칭)를 점거했다”, “역사상 조선왕조가 다케시마를 영유한 사실은 없다”. 노골적인 왜곡을 실은 레이와서적 역사교과서는 일본 시민단체 사이에서 ‘위험한 교과서’로 분류된다. 시민단체들은 전쟁과 식민지배 등 역사를 왜곡한 후쇼사 교과서가 문부성 검정을 통과한 2001년부터 ‘위험한 교과서’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번 추가 검정 통과로 우익사관 역사 교과서는 4종으로 늘어났다. 한국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가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강제징용 문제, 식민지배에 대한 극히 비상식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거짓 기술을 포함한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데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즉각적인 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번 역사 왜곡은 선의를 먼저 표시한 한국에 대한 무례이자 도전이다. 윤 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일본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라며 손을 내밀었는데, 일본은 변한 게 없다. 일본 정부가 역사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면 미래 평화와 동반자 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다.

[지지대] 개는 무슨 죄가 있나

지난 1월 일명 개식용종식법으로 불리는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2027년 2월부터 처벌이 이뤄지는 이 특별법은 개를 식용 목적으로 사육·도살·유통·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개고기를 먹는 문제에 대해서는 수십년 동안 논란이 돼 왔고, 최근 육견협회가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어쨌든 현재 상황에서는 2027년 2월부터는 개고기를 판매하면 처벌받는다. 특별법이 통과된 지 100일이 됐다. 개고기를 유통하고 판매하는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경기일보 기획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많은 개고기 식당들이 오히려 매출이 늘었단다. 앞으로 먹지 못하게 될 음식이니 지금 많이 먹어야 한다는 손님, 도대체 무슨 음식이길래 특별법까지 만들어지나 궁금해서 오는 손님 등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겠지만 특별법 통과 후 손님이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정부가 개농장과 개고기 식당에 폐업 관련 보상은 해주겠다고 하면서 아직까지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지 않으면서 개농장에서는 일단 ‘개를 많이 확보하자’는 마음으로 번식을 더욱 활발하게 하고, 식당은 일단 확장해 크기를 키우고 매출도 높이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시행령이든, 규칙이든 특별법을 보완할 수 있는 다음 절차가 시급히 추진되지 않으면 업계 보상에 쓰일 세금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 더욱이 돈의 문제를 떠나 개농장에서 급하게 개를 번식할 경우 수백 수천 마리를 더 안락사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 개들 역시 생명 아닌가. 개는 무슨 죄가 있나.

[지지대] 걱정되는 깡통 대출

깡통은 그리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비어 있음’ 또는 ‘망했음’ 같은 의미로 상용된다. 사람을 깡통에 비유하기도 한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 ‘깡통 찼다’는 말들이 그렇다. 깡통은 금융이나 부동산 시장 등 경제판에서 더 많이 쓰인다. 깡통 전세, 깡통 주택, 깡통 대출, 깡통 주식 등 큰 손해를 보거나 위험한 상황일 때 쓰인다. 깡통 전세는 전세보증금보다 매매가가 싼 부동산이다. 전셋값이 급등하고 집값이 떨어질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전세금을 떼일 우려가 있다. 껍데기만 있고 내용물이 비어 있는 속 빈 깡통과 같다고 해서 깡통 전세(깡통 주택)라 한다. 사회 문제가 된 전세사기도 깡통 전세로 인한 게 상당수다. 최근 은행권에선 깡통 대출이 문제다. 시중은행에서 대출해주고 돌려받지 못하는 돈이 급증하고 있다. 건설·부동산업 불황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은행연합회 경영공시에 따르면 KB,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해 말 무수익여신이 총 3조5천207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2022년 말 2조7천900억원보다 26.2% 증가했다. 무수익여신은 이자를 제때 못 갚고 원금 상환도 어려워 보이는 부실채권으로, 보통 ‘깡통 대출’으로 불린다. 무수익여신이 큰 폭으로 증가한 차주는 건설·부동산업 회사다. 이런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 경제의 ‘나 홀로 활황’으로 금리인하 시기가 늦춰졌고 환율 상승으로 공사비는 오르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단지에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싸고 시공사와 조합의 갈등으로 공사가 멈춘 곳도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분양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고금리 지속, 공사비 상승 등 비용부담 증대로 건설업 및 부동산업의 재무위험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35조6천억원이다. 연체율은 2.7%지만 업권별로 보면 증권(13.7%), 저축은행(6.94%), 여신전문사(4.65%) 등이 지나치게 높다. 특정 업권의 건전성 하락은 전체 금융시장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 부실채권이 금융시장의 발목을 잡지않게 선제 대응해야 한다.

[지지대] 총선 끝나자 또 물가 인상

물가 인상 조짐이 또다시 일고 있다. 이번에는 치킨과 버거 등이 대상인 것으로 파악된다. 관련 당국에 따르면 외식·식품·유통가에서 제품 가격 인상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메뉴 가격을 올리고 일부 유통업체도 구독경제 상품 월회비를 인상한다. 그동안 정부 눈치를 보던 식품·외식업체들의 가격 인상이 시작된 것으로 관측된다. 총선 후 가격 인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모 치킨 프랜차이즈 제품의 경우 배달 수수료와 인건비, 임대료 상승 등을 이유로 치킨 9개 제품 가격을 1천900원씩 올렸다. 지난 2022년 이후 2년 만이다. 이에 따라 대표 메뉴 제품은 기존 1만8천원에서 1만9천900원으로 올랐다. 배달 제품 가격은 더 비싸진다. 모 배달제품 제품은 배달 메뉴에 매장 판매가보다 평균 약 5% 높은 가격을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이 제품 제조사는 “최근 물가 인상과 인건비, 배달 수수료 등 비용 상승 압박이 커져 불가피하게 가격을 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제는 외식 기업이나 식품 기업들이 가격 인상 대열에 동참할 가능성이 점쳐 진다는 점이다. 한 치킨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가격 인상 요인이 넘쳐나지만 최대한 버티고 있다”며 “당국이 너무 억누르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최근 코코아, 설탕 등 식품 원료 가격 상승에 따라 식품업체도 가격 인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시기 차이일 뿐 올해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라며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며 소비는 생각만큼 살아나지 않는 데다 배달 수수료 부담까지 겹쳐 현장에서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총선 기간 잠시 주춤했던 물가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이어지는 인상 사태가 사뭇 불안하기만 하다. 물가당국의 혜안이 시급한 대목이다.

[지지대] 中 톈안먼 민주화 시위

1989년 오늘이었다. 이 나라의 수도 한복판으로 대학생 등 젊은이 수만명이 모여 들었다. 이들은 정권을 향해 개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당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군부를 동원해 무자비하게 유혈 진압에 나섰다.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 민주화 시위 얘기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위를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를 제대로 알려면 당시로부터 10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나라에선 1980년부터 10여년간 개방정책이 펼쳐졌다. 건국 후 수십년간 국경을 봉쇄했던 사회주의 국가로선 이례적이었다. 상하이와 선전, 칭다오 등 바닷가에 위치한 대도시들부터 외국 기업 진출을 허용했다. 그런데 이 기간 숱한 문제점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먹고사는 형편은 조금씩 나아졌겠지만 특권층 부패는 심화됐다. 결국 국민 불만의 첫 번째 타깃이 됐다. 경제 과열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소득 격차에서 오는 불만 등도 상승 효과를 냈다.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톈안먼 광장 시위 이후 중국은 세계 여론의 빗발치는 비난과 경제 제재 조치 등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에 대한 체포와 숙청까지 단행했다. 중국 공산당은 그해 6월23일부터 이틀 동안 제13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를 열고 자오쯔양 지지 세력을 제거하는 등 권력을 개편했다. 이 회의에서 정치국원 겸 상하이 시 당서기 장쩌민이 자오쯔양의 뒤를 이어 신임 총서기에 선출돼 리펑·장쩌민체제가 출범했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는 중국은 물론 동북아 및 세계 질서에 일대 충격을 몰고 왔다. 사회주의 국가 젊은이들의 시위가 미친 영향은 지구촌에선 결코 작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나라에선 미미했다. 반성이 없으면 역사는 되풀이된다. 중국이 이 사태 이후 뼈저리게 자성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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