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인 조카와 여행할 때의 일이다. 고속도로를 주행하는데 ‘사고다발지역’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조카는 사고가 다발로 일어나는 곳이냐고 했다. 함께 있던 가족들이 한참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라는 의미는 같다. ‘사고 많은 곳’이라 하면 될 것을 ‘다발(多發)’이란 한자어를 쓴 것은 아쉽게 느껴진다. 요즘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걱정이 많다. 문해력(文解力)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 단어 자체의 뜻부터 쉽지 않다. 한국교총이 최근 전국 초중고 교원을 대상으로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조사’를 했다. 5천848명의 교원 중 92%가 학생 문해력이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고 답했다. 단어를 설명하느라 진도를 못 나가고,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 시험 치르기 곤란할 정도라고 했다. 사례는 많다. 금일을 금요일로 알고 있고, 족보를 족발보쌈세트로, 두발 자유화를 두 다리가 자유로운 것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가로등은 세로로 서 있는 데 왜 가로등이냐는 질문, 우천시는 어디에 있는 도시냐는 질문도 있단다. ‘사건의 시발점’이라고 설명하는 교사가 욕(시발)을 했다고 오해한 경우도 있다. 중3 학생이 나라의 대표 도시인 ‘수도’의 뜻을 모르거나 고교생이 ‘혈연’, ‘풍력’의 뜻을 모르는 사례도 있었다. 문해력 저하의 원인으로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과 독서 부족을 꼽는다. 하지만 성인들도 책을 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는 핸드폰을 그만 보라고 하면서 어른들은 종일 끼고 산다. 어른이나 아이 모두 스마트폰 중독이다.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게 우리 현실이다. 책 읽기를 통해 얻어지는 사고력과 창의력 등이 모두 문해력이다. 어른들이 먼저 책을 읽어야 아이들도 따라 읽는다. 아이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책 읽는 분위기 확산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서점 오픈 런을 하고, 예약 대기를 걸어가며 책을 잔뜩 사놓고 읽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는 풍경을 보고 싶다. 문해력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웨덴 한림원의 선택은 한강이었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전국이 들썩였다. 온라인상에는 시민들의 열광적 반응이 쏟아졌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했다”며 “우리도 이제 노벨문학상 수상자 보유국”이라며 기뻐했다. “노벨문학상 원서를 한글로 읽다니 감동이다”, “한강의 기적이다. 너무 자랑스럽다”는 글도 이어졌다. “오늘부터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금지”, “국문과 나오면 무엇을 하는가? 노벨문학상을 타는 것이다” 등의 반응도 있었다. 노벨문학상 소식에 한강의 책 주문이 폭주하면서 교보문고, YES24 등 대형 서점 온라인 홈페이지가 한때 마비되는 혼란이 빚어졌다. 일부 오프라인 서점은 문을 열기 전부터 한강의 책을 구매하기 위한 ‘오픈 런’ 행렬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강의 작품이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웃돈을 얹은 책들이 나왔다. ‘채식주의자’ 구판본을 12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내 여자의 열매’ 초판본을 2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 왔다. 서점가에서 한강의 작품은 수백에서 수천 배의 판매 증가세를 보였다. 물량이 부족해 대부분 예약 판매로 진행되고 있다. 한강의 주요 저작물을 가진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 국내 3대 문학 출판사는 즐거운 비명을 터뜨리고 있다. 인쇄소들은 주말을 반납하고 24시간 풀가동했다. 출판계가 불황을 겪으며 인쇄소도 어려움이 많았는데 한강이 구세주 역할을 한 것이다. 한국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1인당 독서량이 세계 최하위권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중 일반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종합독서율이 43%에 그쳤다. 2021년 대비 4.5%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1994년 독서실태조사 이후 역대 최저다. 한강의 수상은 한국 문학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줬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책 읽는 분위기가 확산되면 좋겠다. 그래야 진정 노벨문학상 작가를 배출한 나라답지 않을까.
참 자주 옮겨 다녔다. 그럴 때마다 트럭에 이삿짐을 잔뜩 실었다. 정들었던 동네를 떠날 때마다 동갑내기들이 달음박질하며 따라오곤 했다. 어렸을 적 추억이다. 필자의 선친은 직업군인이었다. 근무처가 바뀔 때마다 어머니는 전셋방을 구해야 했다. 친구를 사귈 만하면 이사를 가야 했다. 살던 마을이 익숙해지면 이별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부쩍 늘었다. 그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직업군인들의 이사는 줄지 않고 있다. 잦은 전출도 원인이지만 쥐꼬리만 한 월급에 집을 마련하지 못해서다. 여전히 민간인이나 일반 공무원과는 큰 차이를 보여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이 자료에 따르면 10년 이상 복무한 직업군인의 지난해 자가 보유율은 42.2%로 나타났다. 직업군인의 자가 보유율은 2016년 31.9%에서 조금씩 상승해 7년 동안 10%포인트가량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 수치는 2022년 조사된 국민 자가 보유율 57.5%보다 15%포인트 이상 낮았다. 소득 1∼4분위 하위소득 계층 국민 자가 보유율(45.8%)보다도 낮았다. 일반 공무원(63.0%)이나 군인과 같은 제복 공무원인 경찰(64.6%), 소방공무원(58.9%)과도 큰 차이가 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직업군인 계급별 자가 보유율은 장성 68.8%, 대령 67.6%, 중령 62.2%, 소령 42.5% 등으로 나타났다. 준사관인 준위 60.2%, 부사관인 원사가 56.2%이고 상사는 39.4%로 분석됐다. 대한민국 국군은 세계 5위권이다. 그런데 최일선에서 국토를 수호하는 직업군인들은 절반 이상이 집도 장만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게 현실이다. 직업군인의 낮은 자가 보유율 및 군인 가족의 잦은 이사에 따른 주거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019년 말 재밌는(?) 포상금제도가 도입됐다. 멧돼지를 잡으면 정부가 마리당 20만원을 준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자 ‘엽사’라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농작물 피해의 주범인 멧돼지의 출몰이 잦아들었다. 그런데 이들의 오인 사격으로 인해 애먼 사람들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례가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것이 적절한 비유가 될까. 아무튼 존엄한 생명을 앗아가기에 멧돼지와 엽사의 활동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한 시점임은 분명하다. 실제 사례를 보자. 지난 6일 밤 연천군에서 40대 남성 엽사 A씨가 동료 엽사의 총에 맞아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엽사들은 어두운 밤 열화상카메라에만 의존했다. 카메라가 작동하자 엽사들이 차에서 내려 방아쇠를 당겼지만 멧돼지가 아닌 A씨가 맞은 것. 멧돼지 포획에 나섰다가 실수로 사람을 총격한 사고는 올해 7월 경북 영주시와 강원 횡성군에서도 발생했다. 영주에서는 밭일하던 50대 여성이 숨졌고 횡성에서는 엽사인 50대 남성이 중상을 입었다. 경찰 조사에서 오인 사격으로 결국 사람을 잡고만 엽사들의 이구동성(異口同聲). “멧돼지로 오인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수렵용 총기 사고는 2018∼2022년 5년 동안 40건이 발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총기 사고(58건)의 69%를 차지했다. 수렵용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15명이나 됐다. 총기 오인 사고가 끊이지 않은 데 대해 업계에선 포상금제에 주목하고 있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제도가 도입되기 1년 전인 2018년 1만5천여명이던 수렵면허 1종 소지자는 지난해 말 3만1천337명으로 증가했다. 두 배가 넘는 증가율이다. 지자체들도 최소 5만원에서 최대 30만원까지 별도 포상금을 주고 있어 이제 멧돼지 잡는 엽사는 하나의 직업이 된 셈이다. 그런데 사람도 잡을 수 있는 이들에 대한 인센티브는 있어도 페널티는 없다. 오인 사격이 아닌 정밀 사격이 될 수 있도록 자율보다는 강한 통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평택시에는 ‘소방관 이병곤길’이라는 명예도로가 있다. 서해대교가 보이는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만호사거리 왕복 750m 구간이다. 고 이병곤 소방령은 2015년 12월 3일 서해대교 목포 방면 송악IC 인근 2번 주탑 중간부 근처 교량 케이블에서 발생한 불을 진화하기 위해 현장에 출동했다가 강풍에 끊어진 케이블에 맞아 순직했다. 1990년 3월 소방에 입문해 25년여간 현장을 지킨 고인은 생전 각종 사고 현장에서 시민의 생명을 구해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되는 등 동료들에게 모범이 된 선배다. 평택시가 이 소방령의 순직 6주기를 맞아 2021년 12월3일 ‘소방관 이병곤길’ 명예도로명을 부여하고 안내판 현판식을 가졌다. 명예도로명은 도로명주소법에 따라 해당 인물의 사회 헌신도 등 공익성을 고려해 기초지자체가 부여한다. 경찰, 소방, 교정 등 제복공무원이 명예도로 이름으로 지정된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다. 평택항마린센터 인근 ‘소방관 이병곤길’에서 지난 5일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소방청이 개최한 ‘제1회 119메모리얼데이’다. 순직 소방공무원들의 생애와 헌신을 유가족, 소방 동료뿐 아니라 국민과 함께 기억하기 위한 첫 추모문화제다. 화재진압, 구조구급 등의 과정에서 순직한 전국의 소방공무원은 559명에 이른다. 경기도에서도 이병곤 소방령 외에 용인소방서 신진규 소방교(2021년 5월·성남 동원동 농기계 창고 화재), 광주소방서 김동식 소방령(2021년 6월·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송탄소방서 이형석 소방경·박수동 소방장·조우찬 소방교(2022년 1월·평택 냉동창고 신축공사장 화재) 등이 순직했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모든 소방관은 국민 영웅이다. 안타까운 것은 소방관들의 근무환경과 처우가 너무 열악하다는 것이다. 불과 싸우는 목숨값인 화재진압수당이 월 8만원에 불과하다. 다양한 유형의 화재가 매년 수천건 발생해 소방관들이 위험에 노출되는데 화재진압수당은 23년간 오르지 않았다. 경기도에서 발생한 화재는 2022년 8천604건, 2023년 8천202건으로 매년 8천건이 넘는다. 위험을 감수하며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에 대한 수당 현실화 등 처우 개선이 절실하다.
우리나라는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곳이 많다. 중소 제조업, 농촌, 어촌 등의 3D(difficult·어렵고, dirty·더럽고, dangerous·위험한) 업종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은 상당히 크다. 저출생 고령화 속에 산업현장의 빈 일자리를 메우기 위한 외국인 근로자 입국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9월에는 과도한 육아 부담을 외국인 인력으로 대체하기 위해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입국했다. 이들 ‘필리핀 이모’는 서울시내 142곳 가정에 투입됐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사업은 공공돌봄 부족, 내국인 관리사 구인난, 높은 인건비 등의 문제 해소를 위해 시행됐다. 24~38세 필리핀 인력 중 현지 직업훈련원에서 소정의 교육을 이수하고 정부 인증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에게 고용허가제가 적용되는 ‘E-9’ 비자를 부여해 국내 가정의 아동 돌봄 및 가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필리핀 이모들은 영어가 유창하고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들에겐 국내 최저임금에 맞춘 시급과 4대보험을 보장하고 있다. 기대와 우려 속에 시작된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지난 3일로 시행 한 달을 맞았다. 그 사이 24가정이 중도에 취소하는 등 여러 논란을 낳고 있다. 지난달 추석 연휴에는 가사관리사 2명이 숙소를 이탈해 돌아오지 않았는데, 4일 부산에서 붙잡혔다. 잠적 이유로 임금 등 근로조건에 대한 불만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최저임금 적용을 둘러싼 잡음이 여전하다. 하루 8시간 근무 기준 이용 가정이 지불하는 금액은 약 월 238만원이다. 30대 가구의 중위소득(509만원)의 절반에 가까워 이용자는 너무 비싸다고 하는데, 필리핀 이모들은 숙소비와 세금 등을 빼면 손에 쥐는 게 얼마 안 된다고 한다. 오후 10시로 돼 있는 숙소의 ‘통행금지’도 인권침해 논란이 일었다. 고용노동부가 뒤늦게 통금을 없애고, 한 달에 한 번 주던 임금을 격주로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외국인 가사관리사 1천200명이 추가로 들어온다고 밝혔다. 본사업 전에 시범사업에서 노출된 문제점을 섬세하게 점검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다.
인천의 ‘핫플레이스’인 인천 상상플랫폼. 수도권의 MZ세대 등 젊은층이 많이 찾는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지다. 최근 상상플랫폼을 찾았더니 내부 널따란 공간에서는 인천의 로컬 브랜드가 모두 모인 제물포 웨이브마켓이 열리고 있었고, 상상플랫폼과 이어진 1883 개항광장에서 공연이 열린 탓에 많은 시민들로 북적였다. 내부에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카페와 미술품 등이 걸린 뮤지엄도 있다. 이어 길 건너 차이나타운과 인천 개항 관련 각종 근대문화유산이 있는 골목, 그리고 닭강정 같은 각종 먹거리로 유명한 신포시장까지 인파로 가득했다. 가장 고무적인 것은 이곳을 찾은 시민들의 연령층이 매우 젊다는 것이다. 한때 인천의 대표적인 원도심이던 일대가 젊은층의 발길이 닿는다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이는 우선 경인국철(경인선·1호선)로 서울에서 곧장 올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그리고 아기자기하면서도 예쁜 카페들이 많이 생기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핫플로 꼽힌다. 여기에 상상플랫폼에서는 각종 공연이 계속 열리고 있다. 여름에는 워터밤 행사가, 최근에도 유명 가수들이 참여하는 뮤직 페스티벌이 열리는 등 젊은이들의 축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만 항구인데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직접 바닷물을 보기가 쉽지 않다. 아직 항구가 운영하다 보니 바다 앞은 철조망 등으로 막혀 있고 대형 트럭들이 그 사이를 오간다. ‘항구도시’인데도 직접 항구를 코앞에서 보지 못하고, 바다내음이 잘 맡아지지 않는 것은 좀 아쉽다. 게다가 임시로 만들어진 무대 뒤편이 그대로 보여 이미지가 좋지 않다. 해마다 각종 행사가 10번 이상 열린다는데 왜 대형 무대 하나 없나 싶다. 그 무대로 더 많은 행사가 열려 일대는 더욱 활성화가 이뤄질 테고 돈 낭비는 줄고, 되레 무대 임대 수익도 나올 텐데. 인천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상상플랫폼 일대가 앞으로 더 인천의 핫플로, 아니 수도권의 핫플로, 대한민국의 핫플로 뜨길 기대해본다.
심심찮다. 귀를 쫑긋한 채 귀를 기울이면서 걸어가는 이들을 보는 게 말이다. 그렇지 않은 행인을 보는 게 신기할 정도다.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ing)이다. 소리는 일정한 형태를 갖는 파동이다. 이와 반대되는 흔들림을 같은 시간에 만들면 서로 소멸된다. 상쇄 간섭이다. 이 같은 특성을 이용해 제거하려는 소음의 진폭 등을 파악하고 이와 상반되는 파장을 연산해 인위적으로 발생시켜 소음을 제거한다. 주로 음향기기를 통한 음악 감상이나 모니터링 시 유입되는 생활 소음을 차단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원래는 제트엔진 소음으로 인한 여객기 승객들과 승무원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됐다. 기기에 내장된 소음조절기로 외부의 시끄러운 소리를 감소시켜 소란스러운 공간에서 쾌적하게 노래를 들을 수도 있다. 최근 무선 이어폰·헤드폰 등이 대중화되면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보행 중 안전사고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지적(본보 9월30일자 6면)이 나왔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탑재된 기기를 착용하고 걸을 때 무단횡단 발생 비율은 31%, 타인과 충돌이 발생할 비율은 23.5%로 나타났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경우보다 각각 16.9%포인트, 0.4%포인트 높다. 지난해 11월 도로교통공단이 노이즈 캔슬링 기능의 주변 상황 인지방해 효과를 실험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해당 기능을 켜면 엔진소리가 큰 경유차도 0.8m 뒤에 와야 보행자가 알아차렸다. 해당 기능을 끄면 약 4.6m, 주변 음을 허용하면 약 8.7m 등으로 인지거리가 늘어났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외부로부터 청각을 완전히 차단한다.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 여러가지 위험한 상황에 부딪친다. 최근 우리 사회 뉴스 소비 성향도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반갑지 않다.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심쩍지 않은 건강한 사회 구축은 요원하다.
1948년 창설된 대한민국 국군이 올해로 건군(建軍) 76돌을 맞았다.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한 것은 1956년이다. 이 날은 1950년 6·25전쟁 당시 국군이 강원도 양양지역에서 38선을 넘어선 날이다. 국군의 날은 한국군의 위용과 전투력을 국내외에 과시하고 국군 장병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기념일이다. 시가행진도 이의 일환이다. 국군의 날 시가행진은 군사정권의 상징적인 행사였다. 국민에게 군사력을 과시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 수단으로 활용했다. 때문에 군사정권 시절에는 매년 시가행진을 했다. 이후 1998년 건군 50주년부터 2003년, 2008년, 2013년 등 5년 주기로 실시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건군 70주년 국군의 날 행사는 시가행진을 열지 않고 소규모 행사로 치뤘다. 상당수 국민이 시가행진을 권위적이고 불필요한 과시로 여기고, 동원 장병들의 고생도 컸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실시한다. 2년 연속 대규모 퍼레이드는 이례적이다. 올해는 ‘강한 국군, 국민과 함께!’라는 주제로 기념식은 1일 오전 서울공항에서, 시가행진은 오후에 숭례문~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진다. 시가행진에는 다수의 공중전력과 지상 장비가 등장한다. 올해 국군의 날 행사에는 약 8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지난해에도 약 100억원이 집행됐다. 국방부는 엄중한 안보 상황과 국군의 사기를 고취할 필요가 있어 2년 연속 실시한다는 입장이지만 지나치게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는 지적이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올 국군의날 행사 연습 중 장병 2명이 중상을 입었다며 거액을 투입하는 행사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천 원내대표는 “국방부가 장병 복지는 뒷전이고 대통령의 병정놀음에만 심취한 때문”이라며 “국군의날 행사를 축소하고 장병 복지를 챙기라”고 촉구했다. 국군의 날 시가행진은 우리나라의 군사적 상황과 정치적 환경을 반영한 복합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군사정권 시절을 연상케 하는 시가행진을 국민과 장병들이 어떻게 받아 들일까도 생각해 볼 일이다. 행사에 동원되는 장병들의 사기와 효율성, 국가 안보를 위한 과시, 남북 대화의 필요성 등이 얽혀 있어 국민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무척 반가웠다. 코끝이 찡했다. 눈물도 나왔다. 낯선 나라의, 그것도 변방의 아주 작은 구멍가게 진열대에 한국산 껌과 초콜릿 과자류가 놓여 있어서다. 40여년 전 중국 네이멍구자치구의 한 시골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조금 더 소환하면 이랬다. 궁금한 나머지 구멍가게 주인에게 “어느 나라 제품인가”라고 물었더니 “일본 게 아니겠느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좀 서운하긴 했다. 뭔 상관이랴. 껌과 초콜릿 과자류 포장지에 적힌 한글은 일본 문자와 쉽게 구별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아무튼 그에게는 한국산이냐, 일본산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맛만 좋고 잘 팔리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때는 영어로 ‘코리아(KOREA)’를 뜻하는 K를 붙이는 접두어 문화가 태동되기 훨씬 전이었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껌과 초콜릿 과자류는 이미 K-과자로 그때 이미 등극한 셈이었다. 최근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K-과자 연간 수출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해외 각국에서 빼빼로와 허니버터칩 등 한국 과자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과자 수출액이 올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과자류 수출액은 4억9천420만달러(약 6천605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4% 증가했다. 라면과 연초류(담배와 전자담배) 등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업계는 한류 콘텐츠 인기에 힘입어 과자 수출도 증가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 기업이 다양한 상품을 선보이면서 현지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킨 점도 수출 개선에 영향을 미쳤을 터다. 이젠 어떤 품목에도 앞에 K를 붙이면 일류가 되고 명품이 되는 세상이다. 정치를 빼놓고 말이다.
추석 명절이 지나고 나면 정치권과 언론들은 추석 민심에 대해 다양한 풀이를 내놓는다. 올해 추석 명절의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오랜만에 둘러앉은 가족들이 가장 많이 꺼낸 이슈. 바로 ‘더위’다. 역대급 폭염이 몰아친 올해, 추석이지만 ‘반팔’ 차림의 옷을 입고 모인 가족들. 난생 처음 추석에 에어컨을 틀고 잠이 든 식구들. 추석 연휴 직후였던 19일에도 온열질환자가 전국에서 38명 발생했다. 올여름 온열질환자 수는 3천600명을 넘어섰다. 하석(夏夕)이라고 불린 올 추석, 전 국민이 절실히 느꼈다. ‘날씨가 너무한다’, ‘이제 정말 지구가 많이 아프구나’라는 것을 말이다. 폭염 등 기상 악화로 시금치와 배추 가격이 지난해보다 각각 120%, 70% 넘게 뛰었다. 현재 횟집에서는 가을 전어를 찾아볼 수도 없다. 수확을 앞둔 들판에는 ‘벼멸구’ 탓에 하얗게 말라죽는 벼가 늘어나고 있다. 벼멸구는 기온이 내려가면 활동이 뜸해지는데 올해는 폭염으로 최근까지 번식을 이어가며 피해를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같은 더위가 이제는 매년 반복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이번 겨울에는 극한 한파를 전망하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환경 문제가 몇 번씩 큰 이슈가 됐다가 사라진 적이 있다. 식당에서 일회용품 지급을 하지 않기 시작했을 때, 종이로 된 빨대가 등장했을 때, 대통령선거에서 난데없이 ‘RE100’이 크게 이슈가 됐을 때 등등. 어떠한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민들 사이에서 공감대 형성이 필수다. 온 가족이 반팔을 입고 모여 에어컨을 틀고 자야 했던 올 추석. 환경 문제가 심각함을 체감하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다시 한번 환경 정책을 강하게 펼칠 필요가 있다.
한 며느리가 가출했다. 시집살이가 힘들어서였다. 그러다 시어머니의 이 생선을 굽는 냄새에 못 이겨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전어 얘기다. 10마리에 한 묶음으로 팔았다. 그래서일까. 1세기 전에는 화살 한 묶음의 의미로 ‘화살 전(箭)’자를 써서 전어(箭魚)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선 ‘돈 전(錢)’을 써서 전어(錢魚)로 바뀌었다. 각종 문헌에 따르면 제철 전어값이 마리당 비단 한 필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수심 30m 안팎의 얕은 바다에서 산다. 알을 낳는 시기는 3~6월이다. 몸 길이는 15~30㎝ 정도다. 몸통은 좌우로 납작하고 입은 작다. 등부터 절반까지 검은 반점이 줄지어 있다. 아가미 뚜껑 뒤에는 검은 반점이 커다랗게 하나 있다. 등지느러미의 마지막 연조가 길게 실처럼 뻗어 있다. 한번 맛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가을이면 즐겨 찾는 전어가 실종(경기일보 24일자 8면)되고 있다. 최근 폭염 장기화로 전어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한 탓이다. 국립수산과학원 ‘2024 수산 분야 기후변화 영향 및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6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6년간 해역의 연평균 표층 수온은 1.44도 올라 전 세계 평균(0.7도)의 두 배를 웃돌았다. 기온 변화로 1980년대 151만t 수준이었던 전어를 포함한 어업 생산량도 2000년대 들어 116만t까지 떨어졌다. 2020년대는 100만t을 밑돌고 있다. 이 때문에 가격도 출렁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최근 전어의 최근 ㎏당 도매가는 2만5천원대를 기록했다. 매년 도매가가 1만원에서 1만2천원 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배 이상 오른 셈이다. 이 녀석을 만나기 위해 가을을 기다려 왔던 미식가들에게 언제 반가운 소식이 들려 올까. 혹시 집 나간 며느리들이 안 돌아오는 건 아닐까. 폭염의 심술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 관련기사 : “사라진 전어 돌아올까”…추분 지나며 기대감 증폭 https://kyeonggi.com/article/20240923580210
지난 주말 다섯 쌍둥이 소식이 화제였다. 초저출산 시대에 ‘오둥이’는 그야말로 국민적 경사였다. 다섯 쌍둥이 출산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우리나라에선 1987년 9월에 서울대병원에서 시험관 시술로 다섯 쌍둥이가 탄생했다. 인공수정으로 한 번에 다섯 명 태어난 것은 세계 최초였다. 당시 32세의 산모는 배란 문제로 9년 동안 아기를 갖지 못했다. 1987년 2월 산부인과 장윤석 교수팀은 난관 수정 방법으로 3개 이상의 수정란을 자궁에 이식했고, 여섯 쌍둥이 임신에 성공했다. 예정보다 7주 빠른 32주4일 만에 사산된 한 명을 제외한 다섯 명의 아기는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2021년 11월 서울대병원에서 또 다섯 쌍둥이가 태어났다. 군인 부부가 인공수정으로 여섯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한 명은 도중에 자연 유산되고 다섯 쌍둥이는 잘 자라 세상 밖으로 나왔다. 전종관 산부인과 교수의 진두지휘로 30여명의 의료진이 총출동해 출산을 도왔다. 28주 만에 태어나 몸무게 1㎏ 남짓, 5명 모두 합쳐도 4.9㎏에 불과했던 오둥이는 건강한 아이들로 성장했다. 지난 20일, 이번엔 자연 임신으로 생긴 다섯 쌍둥이가 서울성모병원에서 태어났다. 국내에서 자연 임신으로 다섯 쌍둥이 출산은 처음이다. 동두천의 한 고등학교 교사인 김준영씨와 양주의 한 학교에서 교육행정직으로 근무하는 사공혜란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남아 3명과 여아 2명이다. 아기들의 태명은 ‘팡팡레인저’. 멤버가 다섯 명인 애니메이션 파워레인저에서 따왔다. 오둥이 아빠 김씨는 “저희 집안에도 갑자기 한 반이 생겼다”며 건강하게 잘 키울 것이라고 했다. 의료공백 사태 속에서도 서울성모병원 측은 신생아 한 명당 소아청소년과 교수, 신생아집중치료실 간호사, 분만실 간호사 등 3명씩 팀을 꾸리는 등 철저히 준비해 다섯 생명이 세상의 빛을 보게 했다. 귀한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의료진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다섯 쌍둥이 소식에 각계에서 축하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하지만 다둥이 탄생을 기뻐하는 데만 그쳐선 안 된다. 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물적·제도적 지원을 통해 열악한 산부인과 및 소아청소년과 상황부터 개선해야 한다.
‘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8세라니, 아까운 나이다. 장 원장은 한평생 노동·시민운동에 헌신했다. 그의 삶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타협하지 않는 투쟁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한자리’ 주겠다고 해도 올바른 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그는 특권층에 대해 분노감을 가졌다. 특권층은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출세하고 있다고 했다. 말년에 국회의원 특권 폐지에 집중했던 것도 그런 문제의식 때문이다. 장 원장은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 활동하며 국회의원의 면책·불체포특권 폐지,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월 급여로 400만원만 받고, 보좌진을 줄이면 대한민국의 정치개혁이 시작될 것이라 했다. 불행히도 그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에 관심 있는 현직 국회의원은 별로 없는 듯하다. 가끔 말로만 떠들었지 실행은 전혀 안 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11월 30개 회원국 국민을 대상으로 국회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28위를 기록했다. 국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20.56%로 사실상 꼴찌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체코와 칠레 2개국뿐이었다. 멕시코, 그리스, 페루,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등 우리가 정치 후진국으로 여기는 나라보다 신뢰도가 떨어졌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여야 간 극한 대립과 정쟁을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민주당은 22대 들어 개원 3개월여 동안 7개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등 야당이 발의한 특검법도 9건이나 된다. 여기에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 요구권 행사를 요청해 ‘발의-거부권-폐기-재발의’의 무한 소모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민생은 당연히 뒷전이다. 국가 대계를 위한 법안들은 표류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각종 특권을 누리면서 싸움질만 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어떻게 국회를 신뢰하겠나.
어르신 2천80여명이 폭염으로 세상을 떴다. 정부가 부랴부랴 나섰다. 폭염 요주의 대상 연령을 75세에서 65세로 하향 조정했다. 고령 여부는 물론이고 개인의 건강, 행동, 환경과 관련한 요인 등도 복합적으로 고려됐다. 미미했던 관련 법률의 조항도 강화했다. 조례도 개정했다. 영국의 얘기다. 2년 전 여름이었다. ‘하늘은 높아지고 말은 살찐다’는 우리의 가을이 실종되고 있다. 추석 연휴 내내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려서다. 오죽하면 ‘추석(秋夕)’이 아니라 ‘하석(夏夕)’이란 자조어까지 유행하고 있을까. 폭염 등 기상이변이 발생하면 제일 위험한 계층은 어르신들이다. 기후취약계층에 대한 대응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폭염 등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위한 대응사업을 보강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 결과다. 특히 폭염 등은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의 크기와 상관 없이 발생한다. 그런 만큼 불평등을 키울 가능성도 높다. 국내에선 폭염 등에 대한 지원이 사후에 이뤄지고 있다. 폭염 등 기후위기가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 때문에 상황별로 취약 집단을 선별하고 소관 부처가 정부 논의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폭염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을 담당하는 부처가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폭염 등 관련 대응을 위한 대통령 직속기구인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 환경부와 보건복지부 등 여러 중앙부처가 참여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대응사업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산만하다. 그리고 비효율적이다. 대부분 고령인 국가유공자 어르신들을 담당하는 국가보훈부는 정작 빠져 있다. 어르신들이 폭염 등에 취약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관련 법률 조항을 강화하거나 조례 제정 등이 시급하다.
경기도 북부지역 발전을 위한 산하기관 이전 추진은 표면적으로 지역 균형 발전을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경기 북부지역의 경제적 활성화와 인프라 개선을 위한 노력은 필요한 과제다. 그러나 도 산하기관 이전이라는 방법론은 실질적 문제 해결보다는 단순한 행정적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산하기관 이전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다. 산하기관이 이전되더라도 그곳에 근무하는 인력의 대부분은 기존의 거주지를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내 소비와 고용 창출 효과는 미미하다. 또 산하기관의 이전이 곧바로 지역주민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전된 기관의 업무 성격이 해당 지역의 특성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주민들과의 상호작용이나 협력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는 기관의 존재가 지역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단지 건물만 이전하고 그 지역의 필요와 무관한 행정적 작업만을 이어간다면 이는 결국 ‘무늬만 지역 발전’에 그칠 소지가 있다. 경기도 북부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단순한 산하기관 이전보다도 지역에 특화된 산업 육성, 교통 인프라 개선, 교육 및 복지 수준 향상 등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산하기관 이전 정책은 이 같은 종합적 발전 계획과는 동떨어져 있다. 경기도가 계획대로 2028년까지 도 산하기관 북부 이전을 완료하겠다고 한다. 경기도 북부지역의 진정한 발전을 원한다면 산하기관 이전이라는 보여 주기식 행정보다는 지역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적 대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육사시험에 떨어진 청년이 어느 날 동갑내기 대학원생과 포장마차에서 만났다. 그리고 술잔을 부딪쳤다. 그 틈으로 책 외판원 사내가 끼어들었다. 그는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고 받은 돈을 다 써버리고 싶어했다. 그와 달갑지 않지만 함께 식사하고 헤어졌다. 김승옥 작가의 한 단편소설 줄거리다. 4·19와 5·16으로 이어진 우울했던 한국 사회를 그렸다. 암울했던 시절의 수채화였다. 당시 서울의 겉은 화려했지만 속살은 어두웠다. 부자와 가난뱅이가 제 삶을 사느라 바빴다. ‘서울, 1964년 겨울’이 그 작품의 제목이다. 그로부터 60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수원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한 청년의 부모를 찾는 사연(경기일보 11일자 6면)이 안타깝다. 신해식(미국 이름 Ryan Waguespack·39)씨가 주인공이다. 가족을 찾기 위해 아버지의 나라를 밟았다. 40여년 만이다. 입양 당시 기록상 1985년 10월19일 태어나 두 살 되던 해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이름도 홀트아동복지회가 지어준 것으로 추정된다. 양부모 및 형제들과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도 낳아 주신 부모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한국말을 몰라 용기도 필요했다. 의사 소통부터 쉽지 않아 해외입양인연대를 통해 가족을 찾을 방법을 문의했다. 혹시 어머니와 가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입양기관도 찾았지만 친부모에 대한 단서는 발견하지 못 했다. 경기일보가 신씨의 가족을 찾는 여정을 함께하기로 했다. 수원 새빛민원실 베테랑 팀장들도 이날 수원지역 행정복지센터에 전단을 배포하는 등 흩어진 퍼즐 조각을 모으는 데 힘을 보탰다. 추석을 맞아 “엄마를 만나면 꼭 안아주고 싶다”는 그의 소원이 꼭 이뤄지길 기원한다. 김승옥 작가를 흉내 내 이 사연에 감히 제목을 붙여 본다. ‘수원, 2024년 가을’. 2024년 가을 수원의 담담한 자회상이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지난 여름, 2024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국민들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선사했다. 여러 사연을 안은 선수들의 선전도 돋보였지만 그들의 활약을 뒷받침한 기업인 단체장들의 숨은 공로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림픽에서는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 패럴림픽에서는 선수단장을 맡은 배동현 대한장애인노르딕스키연맹 회장이 화제에 올랐다. 부친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에 이어 2005년부터 대한양궁협회 수장을 맡고 있는 정의선 회장은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이 전 종목을 석권하는 데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주목을 받았다. 매년 올림픽을 앞두고 투명하고도 공정한 선수 선발과 준비 과정에서부터 대회 기간 선수들이 최선의 경기력을 유지하도록 진두지휘했다. 대회 후에는 아낌없는 포상으로 또 한번의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선 회장 부자가 대를 이어 40년간 양궁 발전을 위해 공헌해온 것에 체육계와 국민들은 그 같은 사람이 대한체육회장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물론 본인은 전혀 생각이 없음을 밝히면서 기업인과 양궁협회장으로서 소임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 일부 체육 단체장들이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이어 파리 패럴림픽에서 두 번째 단장을 맡은 배동현 창성그룹 부회장도 체육인들에게 존경받는 기업인이다. 승마 국가대표 출신으로 20여년간 경기도바이애슬론·근대5종연맹 회장과 대한바이애슬론 회장을 맡아 헌신한 배창환 회장의 아들로 대를 이어 체육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번 패럴림픽에 참가한 출전 선수·감독 전원에게 순금 메달을 제작해 지난 10일 해단식장에서 전달해 감동을 줬다. 대를 이어 체육에 대한 참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정의선, 배동현 두 회장의 헌신이 봉사와 헌신보다는 감투욕에 사로잡힌 체육단체장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쳤으면 한다.
배우 4명이 의자에 앉는다. 이어 한 명씩 돌아가며 즉흥적으로 말들을 쏟아낸다. 대사는 과격해지고 공격 대상도 옮겨간다. 급기야 관객들에게 물을 끼얹는다. 오스트리아 출신 극작가 페터 한트케의 희곡인 ‘관객 모독’의 얼개다. 196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진 뒤 국내에선 1978년 초연됐다. 최근 국내 예술무대에서 이 작품 내용과 유사한 관객 모독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올려진 오페라 ‘토스카’ 무대에서다. 당사자는 세계적인 오페라 스타 안젤라 게오르기우다. 그는 공연 도중 무대에 난입해 지휘자에게 항의했다. “관객을 무시한 행동이었다”는 비판들이 쏟아졌다. 일부 관객은 환불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선 논란의 소지도 있다. 예술계에 따르면 이날 토스카 3막에서 테너 김재형이 ‘별은 빛나건만’을 열창한 뒤 즉흥적으로 앙코르를 불렀다. 주인공인 토스카 역을 맡은 게오르기우는 무대 한쪽에 난입해 지휘자 지중배와 김재형 쪽을 바라보면서 시간이 없다는 듯 자기 손목을 가리키고 어깨를 으쓱하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앙코르 곡이 끝난 뒤 지휘자에게 다가가 음악을 멈추게 하고 “이건 독주회가 아니다. 나를 존중하라”고 말했다. 공연을 마친 후 커튼콜이 시작되고 한참 만에 등장한 그는 객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오자 인사하지 않고 퇴장했다. 오페라 공연 중 앙코르 곡을 선보이는 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드물지도 않다. 게오르기우의 관객 모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토스카 공연에서도 상대 배우가 앙코르 곡을 부르자 이에 항의하며 무대에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연극 ‘관객 모독’은 그냥 작품으로만 읽히면 된다. 하지만 게오르기우의 그것은 한국 관객들에 대한 예의가 결코 아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올해 추석 차례상 차림 비용은 평균 20만9천494원으로 조사됐다. 지난해보다 1.6% 올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지난 6일 전국 23개 지역 전통시장 16곳과 대형유통업체 3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차례 간소화 경향을 반영해 4인 가족 기준 24개 품목을 조사했다. 추석 차례상 비용은 작년보다 올랐는데 상여금을 주는 기업은 역대 최저로 나타났다. 커리어 플랫폼 ‘사람인’이 기업 47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추석 상여금 지급 계획’ 조사 결과, 지급한다고 응답한 기업은 전체의 47.7%였다. 이는 사람인이 2012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추석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 이유로 ‘선물 등으로 대체하고 있어서’(40.7%)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사정상 지급 여력이 없어서’(28.0%), ‘명절 상여금 지급 규정이 없어서’(24.0%), ‘위기경영 중이어서’(17.5%), ‘상반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서’(9.8%) 등의 순이었다. 추석 상여금을 주는 224곳 기업의 평균 지급액은 66만5천600원이었다. 지급 이유는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54.9%)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어 ‘정기 상여금으로 규정돼 있어서’(37.1%), ‘직원들의 애사심을 높이기 위해서’(20.5%) 등이 뒤를 이었다. 평균 선물 비용은 8만1천원으로, 평균 상여금에 비하면 월등히 낮다. 반면 국회의원의 올 추석 상여금은 424만7천940원이다. 기업 평균 상여금에 비하면 6.4배 정도 많다. 기업의 절반이 추석 상여금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볼 때, 상당히 큰 금액이다. 경영난에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이나, 상여금을 못받는 근로자들은 자괴감이 크다. 자영업자도 그렇다. 명절 상여금이 그림의 떡이어서, 추석이 더 우울하다고 한다. 22대 국회가 임기 시작 96일 만인 지난 9월2일에야 개원식을 가졌다. 요즘 국회의원들은 민생은 팽개치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명절 보너스는 따박따박 챙겨간다. 상여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 추석 연휴에도 일하는 근로자들이 낸 세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