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PC방의 쇠락

일렉트로닉 카페가 문을 열었다. 서울의 한 대학가에서다. 대표적 게임공간인 PC방은 이렇게 탄생했다. 1990년대 전반기였다.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PC 확산 정책과 인터넷 인프라 확충 등이 맞물리면서 우후죽순으로 늘었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수십대 설치된 컴퓨터를 요금을 내고 일정 시간 이용할 수 있었다.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과 커피 등도 제공됐다. 그래서 PC카페라고도 불렸다. 24시간 영업이 일반적이었다. 본래의 목적 이외에도 야간이나 심야에 잠시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도 활용됐다. 늦은 밤 버스 및 전철 등 대중교통이 끊기거나 숙박업소를 찾기 힘들어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수차례 크고 작은 변혁을 통해 소비자 중 10~20대가 이용하는 비율이 절대 다수인 독보적인 문화공간이 됐다. 한때는 노래방이나 만화방, 콜라텍 등을 제치고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최근 경기도내 PC방이 매년 100여곳씩 문을 닫는 등 폐업이 속출(경기일보 12일자 8면)하고 있다. 주된 이용자인 청소년들이 다른 여가 공간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어서다. 인건비 및 공공요금 부담 등의 영향도 더해졌다. 국세청에 따르면 경기지역 PC방 수는 2023년 1천972곳에서 지난해 1천883곳으로 89곳 감소했다. 올해 3월 기준 1천789곳으로 이미 전년보다 94곳 줄었다. 연말까지 감안하면 올 한 해 100곳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PC방 쇠락에는 중요한 원인이 있다. 과거에는 고사양 PC와 초고속 인터넷 등이 집에 없었다. 그래서 PC방을 이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서도 충분한 게임 환경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PC방은 ‘저렴한 공간’이라는 인식 속에 가격 인상도 어렵다. 인건비와 고정비 부담 등은 계속 커진다. 일각에선 단순한 게임 공간을 넘어 체류형·복합형 공간으로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쇠락하는 게 어디 PC방뿐일까.

[지지대] 전곡리 유적에서 펼쳐질 미래

30만년 전 인류의 삶이 녹아든 연천 전곡리 유적은 세계 구석기사(史)에서 중요한 현장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출토된 예가 없던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1978년 미군인 그렉 보웬에 의해 발견되자 그야말로 세계사가 뒤바뀌었다. 세계 고고학계는 주먹도끼의 유무를 기준으로 문화권을 나눴다. 주먹도끼가 출토되지 않은 아시아 지역이 유럽과 아프리카에 비해 문화적 수준이 떨어진다는 논리가 세계를 지배하던 때였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발굴된 전곡리 주먹도끼는 이런 이론을 뒤집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 고고학자들의 이목이 집중됐지만 대중의 인식은 낮았다. 눈에 띄는 형상이 없었다. 구석기 유물을 품은 지층이 유물이다 보니 대중에게 가닿는 데 한계가 있었다. 국내 학자들은 전곡리 유적과 선사문화를 알리는 데 힘을 쏟았다. 당시 발굴조사를 진행하던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유적관을 준비했다. 주변의 도움과 사재를 털어 발굴조사단의 현장사무실로 쓰던 공간에 전시공간을 구성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1993년 4월11일 전곡리 구석기 유적관 건립을 기념해 ‘짐승인간들의 현대나들이’란 테마공연이 펼쳐졌다. 지난 5일 막을 내린 제32회 연천 구석기축제의 시작이었다. 인류의 역사를 품은 이곳이 구석기문화의 세계적 거점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2일 전곡선사박물관서에서 열린 국제학술세미나에서 국내외 고고학자와 전문가들은 “전곡리 유적이 대중 고고학의 출발점인 만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고고학적 가치를 살려 국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연천군은 ‘2029 연천 세계 구석기 엑스포’ 추진을 선포했다. 전곡리 유적은 구석기 유적을 활용해 지역의 축제로 발전시켰다. 지역 축제를 넘어 세계 선사문화 축제로 매년 세계 고고학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 가치는 이미 입증됐고 충분하다. 전곡리 유적지에서 펼쳐질 국제적 교류와 협력이 벌써 기대된다.

[지지대] 항생제 안 듣는 슈퍼세균

기침을 하거나 머리가 아프면 약국을 찾는다. 항생제를 사기 위해서다. 항생제는 다세포 생물의 생체조직 내에서 박테리아 등 특정 세균의 증식이나 생존 등을 중점적으로 방해하는 약물의 총칭이다. 이 약품이 의학에 도입되기 전에는 많은 인류가 사소한 감염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폐렴이나 결핵, 종기, 패혈증 등이 대표적이다. 등에 난 종기 때문에 임금조차 여럿 죽어 나간 기록도 있다. 작은 상처로 환부 절단, 심지어 사망 직행이었던 시절이 불과 1세기 전이다. 항생제로 치유할 수 없는 질병도 있다.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목(CRE) 감염증이 대표적이다. 이 질환은 장내세균목 균종에 의해 감염된다. 주로 의료기관서 감염된 환자나 병원체 보유자와의 직간접적 접촉이나 오염된 기구 등을 통해 전파된다. 대부분의 항생제가 듣지 않아 치료가 어렵다. 그래서 의학계에선 슈퍼세균이라 부른다. 최근 슈퍼세균에 감염된 사례가 국내에서 지난해 4만건을 훌쩍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목 감염증 신고 건수는 모두 4만2천827건(잠정)으로 나타났다. 2023년 3만8천405건에서 11.5% 늘었다.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 수준이다. 60대 이상이 전체 감염자의 80%가 넘었다. 2017년 6월부터 전수 감시 대상에 포함돼 그해 5천717건이 신고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1만1천954건, 2019년 1만5천369건, 2020년 1만8천113건, 2021년 2만3천311건, 2022년 3만548건 등 해마다 신고 건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같은 기간 사망자도 빠르게 증가했다. 2017년 37명, 2018년 143명, 2019년 203명, 2020년 226명, 2021년 277명, 2022년 539명, 2023년 661명 등이다. 우리 사회에서 위험한 분야가 어디 슈퍼세균뿐일까.

[지지대] ‘봄 주꾸미’도 옛말?

주꾸미는 해마다 이맘때면 사랑받는 수산물이다. 길이는 24㎝ 남짓하다. 더 깊게 들어가 보자. 녀석의 몸에는 둥근 혹 모양의 돌기가 빽빽하게 나 있다. 눈 주위에는 살가시가 몇 개 있다. 다리는 모두 여덟 개인데 2~4줄로 빨판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지느러미를 새처럼 날갯짓을 하며 헤엄친다. 물속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먹이는 작은 물고기다. 자신보다 큰 물고기가 다가오면 수관(水管)으로 땅을 파 숨거나 먹물을 뿌리고 도망간다. 서해를 포함해 국내 모든 연안에서 잡힌다. 서식지는 주로 서해이지만 동해와 남해에서도 잡힌다. 수심 5~50m의 모래나 자갈 바닥에서도 발견된다. 산란기는 3월이다. 성숙기에는 난소가 밥알 모양으로 바뀐다. 덩치가 낙지에 비해 많이 작은 편이다. 머리 양옆으로 진하게 나 있는 눈을 닮은 금색 고리 무늬가 매력적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수명이 1년이 안 될 정도로 짧다. 최근 주꾸미 어획량이 5년 전보다 급감(경기일보 8일자 8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늦추위로 바닷물의 저온 현상이 길어지면서다. 수협중앙회 분석 결과 어획량이 2020년 3천327t에서 지난해 1천748t으로 47.5% 줄었다. 봄에 잡히는 주꾸미 감소 폭이 더 컸다. 올해 바닷물 온도 변화를 살펴보자. 지난 2월 초순 3.6도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도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2월 중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도 낮았다. 지난 1월부터 한 주를 제외하고 최근까지 줄곧 지난해보다 낮았다. 이 때문에 어민들이 주꾸미 대신 소라나 수출용 가재를 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심해지는 바닷물의 저온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기후변화를 꼽는다. 기후변화로 겨울철 이상 한파가 기승을 부릴수록 봄 바닷물의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도 강해진다. 시절이 하 수상하면서 봄 주꾸미도 이젠 옛말이 되는 건가. 내년 봄을 기대해본다.

[지지대] 동요가 사라진 시대?

‘송알송알 싸리 잎에 은구슬/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새벽시간대 라디오에서 모처럼 동요가 들렸다. 가정의 달과 어린이날을 맞아 특별 편성한 방송이다. 봄이면 불렀던 ‘숲속을 걸어요’, 여름이면 흥얼거렸던 ‘여름 냇가’, 가을의 어느 날 황혼이 깃들 때 불렀던 ‘노을’, 겨울이면 절로 나왔던 ‘겨울나무’까지. 엄마가 불러준 노래, 어릴 적 귓가에 익어 따라 불렀던 노래, 동네 언니 오빠들에게 배웠던 노래들이다. 노래들은 다정했다. 산과 들, 해와 달, 구름과 비, 숲과 나무, 심지어 물고기와 시냇가, 계곡, 별에게까지 말을 걸고 함께하자 손 내밀었다. 푸른 새벽, 동요에 괜스레 마음이 뛰고 싱그러움이 깃들었던 것은 익숙함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소한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감사함을 전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덕분이었다. 흔히 동요가 사라진 시대라고 말한다. 동요보다는 트로트와 아이돌의 노래를 부르는 어린이가 훨씬 더 눈에 많이 띈다. 들여다보면 동요는 여전히 살아있다. 시대에 맞춰 보급 경로를 바꾸고 변화하고 있을 뿐이다. 방송사의 창작동요제가 하나둘 자취를 감추자 각 지역에선 각종 동요제와 보급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갔다. 더핑크퐁컴퍼니의 ‘상어 가족’이 실린 유튜브 ‘핑크퐁 아기상어 체조’ 영상은 2020년 전 세계 조회수 1위에 오른 이후 현재 158억뷰로 압도적인 조회 수 1위를 지키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동요 작곡가들은 학교를 찾아다니며 동요를 가르치고 동요의 맥을 잇기 위한 단체들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좋은 동요는 어린이는 물론이고 그 시절을 지난 어른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살아 숨 쉰다. 삭막한 현실 속에서 마음을 정화시키고 다시 꿈과 희망을 불끈 쥐게 하기도 한다. 동요는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있다. 좋은 동요가 아이들의 귓가에 더 많이 닿도록, 더 많이 불리도록 어른들의 관심이 노력이 더욱 필요할 뿐이다.

[지지대] 디엔비엔푸 전투

디엔비엔푸는 베트남의 변방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라오스와 인접한 소도시로 인구는 10만명 남짓하다. 이곳에서 현대사의 흐름을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1954년 5월7일이었다. 그때로 돌아가 보자. 당시 이곳에선 프랑스와 베트남(베트민)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베트민은 베트남 민족통일전선 조직으로 월맹으로 불렸다. 외신들의 보도는 이랬다. “(프랑스) 육군이 항공기로 장비를 공수하는 동안 베트민 병사들은 몸에 프랑스 육군으로부터 노획한 대포의 포신을 묶고 한번에 1인치씩, 하루에 반 마일씩, 3개월에 걸쳐 대포를 운반했다.” 디엔비엔푸는 베트남 주요 도시와 거점들로부터 한참 떨어진 오지에 분지였다. 사실상 육상 접근로가 없었다. 평상시 보급도 쉽지 않았지만 포위 당하면 구하러 갈 방법도, 도망칠 곳도 마땅치 않았다. 프랑스는 이 지역을 평정하지 못하면 전황을 타개하기 힘들다고 보고 항공 보급과 공수부대만으로 요새를 건설했다. 문제는 처음부터 베트남 화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병력 열세와 보급 등을 화력과 항공 수송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실은 달랐다. 베트민이 다수의 대공포를 포함한 포병화력을 동원해 프랑스군을 괴롭혔다. 또 간과한 게 있었다. 중국의 지원이었다. 중국은 1년 전 6·25전쟁에서 유엔군으로부터 노획한 대포, 대공포를 비롯한 중화기를 베트민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프랑스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 프랑스군이 떠난 자리에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구호가 쓰인 베트민 깃발이 펄럭였다. 이 전투의 패배로 프랑스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는 붕괴됐다. 베트남은 프랑스 지배에서 해방됐다. 이후 20년이 넘는 미국과 베트남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베트남은 인도차이나의 변방에서 최대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인력이 우수하고 지하자원도 풍부해서다. 경제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나라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이 밖에도 차고 넘친다.

[지지대] 송홧가루

해마다 이맘때면 찾아오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송홧가루가 그렇다. 알레르기를 일으키거나 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들어서다. 창문을 열어 놓고 외출하면 방 안이 온통 노란색 가루로 덮인다. 길거리에 세워진 자동차에도 수북이 쌓인다. 하루 종일 닦거나 세차해야 한다. 물로 씻어내도 이리저리 번지고 튀는 데다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꽃가루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송홧가루가 몸에 닿으면 피부가 빨갛게 붓고 간지러움 증세가 두드러져서다. 목이나 콧구멍 등이 부어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재채기하는 건 물론이다. 알레르기 약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순 있지만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없어지진 않는다. 너무 딱딱하고 현실적인가. 낭만도 있다. 물론 문학이나 영화에서지만 말이다. “송홧가루 날리는/외딴 봉우리/윤사월 해 길다/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 집/눈먼 처녀사/문설주에 귀 대이고/엿듣고 있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윤사월’이다. 송홧가루가 내리는 시점이 대부분 윤사월이어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나 보다. 영화에도 등장한다. 1993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에서다. 주인공 송화는 아버지 유봉으로부터 혹독할 정도로 판소리 교육을 받는다. 유봉은 결국 송화를 통해 판소리의 꿈을 이뤄보겠다며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 눈이 멀어야 진정한 소리의 눈을 뜨게 된다는 지론이었다. 송홧가루 흩날리는 봄날에 송화는 결국 소리를 얻는 대신 눈을 잃는다. 국립수목원이 5월 초 송홧가루 날림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소나무, 구상나무, 잣나무, 주목 등 침엽수 4종의 화분비산(꽃가루 날림) 시기를 분석한 결과 이들 침엽수 4종의 평균 화분비산 시작 시기가 매년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대 초 5월 중순에서 지난해 4월26일로 보름 이상 앞당겨졌다. 송홧가루를 피하려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 자연은 때로는 우리를 번거롭게 한다.

[지지대] 어쩌다 학교가...

끔찍한 강력사건의 연속이다. 어린 초등학생이 숨졌고 교장선생님이 다쳤다. 흉기로 자행된 살인 사건에 이어 살인 미수로 인한 부상자가 속출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같은 일들이 벌어진 곳이 학교라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학생을 살해하고 학생이 교사를 다치게 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곳, ‘백년대계’의 시작이 돼야 할 장소가 범죄의 온상이 돼 버렸다. 지난달 28일 충북 청주의 한 고등학교. 이곳에서 특수교육 대상 학생인 A군이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려 교장선생님 등 학교 관계자 등 6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이 불특정 다수를 노린 계획범죄였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2월10일에는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40대 교사가 8세 학생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우울증 문제로 휴직했던 이 교사는 지난해 12월 복직한 후 사건 당일 돌봄교실에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어린 학생을 시청각실로 유인해 살해했다. 직장 부적응 등으로 인한 분노가 증폭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보다 약자인 학생을 잔혹하게 살해한 ‘이상동기 범죄’가 학교 내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 전 국민은 분노했다. 2023년 11월15일에는 남양주 소재 중학교에서 한 학생이 흉기를 휘둘러 주변 학생 3명이 다쳤고 지난해 7월 광주광역시에서, 12월 안산에서도 중학생이 교내에서 흉기를 휘두르며 불특정 다수를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교내 강력 범죄로 학생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현실에 학부모들의 불안감과 교사들의 두려움도 함께 커지고 있다. 내 아이도, 내 부모(교사 등)도 언제든 범행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는 이제 법·제도적 감시를 받아야 할 공간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하루빨리 학생과 교원 모두 안전한 시스템에서 백년대계를 실행하는 법 및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학교가 강력 사건의 현장이 되는 것은 여기까지여야 한다.

[지지대] 붉은귀거북 유감

고향은 미국 남부 미시시피강이다. 그곳에서 살다가 태평양을 건넜다. 눈 뒷부분에 빨간색 줄이 선명해 ‘붉은귀거북’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국내에선 연못 또는 개울 등 흐름이 약한 곳에서 서식한다. 수명은 35~40년이고 크기는 20㎝ 정도다. 새끼일 때는 겁이 많지만 자랄수록 공격적으로 변한다. 암수 구별은 간단하다. 발톱과 뒷발톱 길이를 비교하면 수컷은 앞발톱의 길이가 2배 정도로 길다. 수컷의 꼬리는 암컷에 비해 굵다. 뭘 먹고 살까. 새끼일 때는 육식이다. 다 크면 초식 성향이 강해진다. 식성을 단정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하지만 다 자란 후에도 식물성 먹이를 가장 많이 먹을 뿐 동물성 먹이를 전혀 안 먹는 건 아니다. 특히 새끼일 때는 도대체 못 먹는 게 뭔가 싶을 정도로 식욕이 왕성하다. 작은 물고기나 새우 등은 물론이다. 심지어 야채, 달팽이와 민달팽이, 지렁이, 개구리(특히 올챙이), 작은 도마뱀이나 뱀, 그리고 각종 곤충들까지 해치운다.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정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산시가 최근 화랑유원지 저수지에서 붉은귀거북 70여마리를 포획·퇴치(본보 28일자 10면)하는 등 생태계 보호에 나섰다. 그 상황을 좀 더 들여다보자. 환경부는 2001년 외래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한 뒤 지속적인 퇴치가 필요한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때는 애완용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일부 시민의 무분별한 방사로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로 인해 토종 어류와 수생생물과의 서식지 경쟁 유발에 이어 생물 다양성 및 생태계 균형도 위협하고 있다. 천적도 거의 없다. 이 부분이 더욱 문제다. 3~4급수에서도 서식이 가능해 사실상 퇴치도 어렵다. 그래서 개체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토종 생태계가 위험한 곳이 화랑유원지 저수지뿐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외래 생태계 교란 생물들에 의해 파괴된다면 미래는 없다. 자연은 후손들로부터 빌린 자산이기 때문이다.

[지지대] 대선 TMI

6·3 대선이 한 달여 남은 상황에서 역대 대통령선거에 등장한 후보들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을 보면 2대 대선 당시 자유당 이승만 후보의 직업은 현 대통령이었다.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2년 수료한 조봉암 후보의 직업은 저술업이었다. 이들은 3대 대선에서도 나란히 후보로 올랐다. 6대 대선에서 박정희 후보도 대통령이 직업이었다. 나머지 5명의 후보는 무직이지만 경력은 4대 대통령(윤보선), 법무부 장관(김준연), 초대 사회부 장관(전진한) 등이었다. 사업가였던 45세의 김대중 후보는 7대 대선에 신민당 국회의원을 직업으로 삼아 5, 6대 대통령과 맞붙었다. 14대 대선에선 정치인(김영삼, 김대중, 박찬종)과 변호사(이병호), 학교법인 송죽학원 이사장(김옥선) 등이 출마했다. 정당 대표로 이름을 올린 정주영 후보는 현대그룹 창업주로 유명하다. 학력에서는 독학(백기완)도 눈에 띈다. 15대엔 노동자(권영길), 사회사업가(허경영), 목사(김한식) 등이 있었다. 16대에선 총 6명 중 4명(이회창, 이한동, 권영길, 김영규)이 서울대 출신이다. 여기에 노무현 후보까지 포함한 5인의 직업이 정당인이었다. 17대 대선 후보 10명의 직업은 모두 정치인(정당인, 국회의원)이었다. 그리고 절반이 서울대 학력을 갖고 있었지만 고려대 출신이 당선됐다. 18대 대선에는 청소노동자(김순자), 노동자(김소연), 무직(박종선)도 있었다. 19대 주요 후보들은 정치인이었고 법조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20대에는 허경영 후보가 강연업으로 다시 등장했고 결국 검찰 출신 정치인이 선출됐다. 대선 후보들의 직업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지만 당선자의 퇴임 후 운명은 비슷해지고 있다. 21대 대선 후보들은 역사에 남을 국민의 선택 앞에서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 나갈지 주목된다.

[지지대] 드골의 사임에서 배우자

“나는 공화국 대통령직 정무를 중단합니다. 이 결정은 오늘 정오부터 유효합니다.” 라디오를 통해 방송된 어느 국가 지도자의 퇴임사다. 짧지만 명쾌하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 얘기다. 1969년 4월28일이었다. 프랑스 현대사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제2차 세계대전 나치의 압제에 대항해 나라를 구했다. 나치 부역자들을 처형한 후 국민들을 향해 이렇게 포효했다. “앞으로 프랑스가 타국의 지배를 또 받아도 민족을 배반하는 인간들은 절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프랑스 국민은 그를 종전 후 재건을 주도한 지도자로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나치 세력들도 철저히 배제했다. 20세기 프랑스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래서 이 나라 최신예 항공모함에는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샤를드골 공항은 프랑스 최대 규모의 공항이자 유럽의 대표 관문이다. 1958년 집권하면서 제5공화국이 출범했다. 비동맹 노선을 확립했다. 이 나라 국익을 감안하면 성공적이었다. 낙후됐던 사회보장제도도 정비됐다. 투표권도 확대됐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대체복무도 인정됐다. 내각과 대통령의 권력 분점이 가능한 이원정부제가 채택됐다. 국회도 단순히 거수기 역할에서 입법부로 거듭났다. 비례대표제를 폐지해 제3~4공화국의 군소정당 난립을 끝내면서도 결선투표제로 양당제 한계가 보완됐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대통령에서 물러나야만 했을까. 금본위제도에 대한 집착이 원인이었다. 금 1온스당 35달러로 묶인 가격을 두 배인 70달러로 올리고 금본위제도로 복귀하자고 주창했다. 미국이 수용하지 않았다. 통화가치가 절반으로 추락한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경제성장률도 가장 낮아졌다. 학내시설 개선 요구로 시작돼 노동쟁의를 거쳐 체제 부정으로 번진 1968년 5월 위기도 그랬다. 하지만 군인 출신 대통령이면서 민족주의 성향에 서유럽에서 드물게 강력한 대통령제 모범을 보여준 정치인이었다. 우리가 그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이다.

[지지대] 가인 김병로, 그리고 법의 날<街人>

의병에 가담했다. 독립운동가를 무료로 변론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일제강점기를 보냈다. 광복 후 암 치료로 한쪽 다리를 잘랐다. 6·25전쟁이 터졌고 아내가 북한군에게 살해당했다. 대한민국 민법·형법틀을 마련했다. 구속 기간도 정했다. 법전의 한글화작업도 주도했다. 판사·검사가 나란히 앉았던 법정 배치를 지금처럼 검사와 변호사가 마주 보며 앉도록 조정했다. 본명 이외에 허물 없이 쓰기 위해 지은 호(號)인 ‘가인(街人)’에 휴머니즘이 담겼다. 거리에서 스스럼없이 민중을 만나 그들의 고통을 들어 보자는 취지였다. 서민을 향해 늘 환하게 웃었다. 어린이나 어르신 등을 우선 배려했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법조인 김병로 얘기다. 뜬금없지만 법을 뜻하는 한자 ‘법(法)’은 물을 가리키는 ‘수(水)’와 ‘갈 거(去)’가 합쳐졌다. 파자(破字)하면 ‘물 흐르듯이 당연한’ 게 법이다. 근대사회에선 통치자가 부여하는 엄벌을 정당화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강압적인 도구로 인식됐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사회질서를 위한 보편적인 규칙이라는 인식으로 바뀌었다. 법과 관련된 지식과 학문은 반드시 배워야 유사시에 손해 보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다. 만약 모르고 그랬든 고의로 그랬든 법에 있는 내용을 무시하면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돼 처벌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서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려면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자신과 타인에게 이롭다. 물론 진짜 존재 자체를 몰랐다면 법의 무지에 의해 처벌받지 않을 수도 있다. 매년 4월25일은 법의 날이다. 법무부 주관으로 1964년부터 시행했으니 올해로 벌써 61회다. 법을 준수하는 마음을 일깨워 주고 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김병로를 통해 들여다보면 법은 딱딱하지 않고 늠름하고 훈훈하다. 오늘 하루만큼은 그런 올곧음과 따뜻함이 충만한 법 구현을 생각해보자. 법과 김병로의 실루엣이 겹쳐지는 까닭이다.

[지지대] ‘폭싹 속았수다’ 신드롬이 남긴 것

바야흐로 콘텐츠의 전성기인 요즘이다. 그중 전 세계를 울린 작품, ‘폭싹 속았수다’의 열풍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51년생인 문학소녀 오애순을 시작으로 68년생 양금명, 그리고 그의 딸 01년생 새봄이까지 이어지는 소녀의 성장기는 전 세계 39개국 넷플릭스 톱10을 점령하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폭싹 속았수다’는 신기하게도 나의 이야기였다가 나의 어머니의 이야기 같다가, 다시 또 나의 이야기 같은, 세대를 관통하는 울림이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아니 살면서 이렇게까지 펑펑 울어본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였다. 그중 스무살 때부터 혼자 타지 생활을 시작한 필자가 가장 공감한 건 금명이가 불쑥 제주의 고향 집으로 왔을 때 아버지 관식과 어머니 애순의 반응이다. 밥 있다고, 새 밥 금방 된다고 분주하게 주방으로 향하는 애순. 날이 춥다고 서둘러 방석과 난로를 가져와 금명에게 건네는 관식.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 활짝 피어난 웃음까지, 6개월에 한 번 집에 갈 때면 늘 보던 모습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100g도 사라지지 않게 했다.’ 그렇게 매번 나의 100g을 지키느라 전전긍긍하는 부모님이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거는 그 몇 분을 아까워했다. 전화가 와도 후다닥 끊느라 바빴다. 말이 길어지면 늘 마지막은 짜증이 따라 붙었다.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나서는 아주 조금, 부모의 인생에도 나와 같은 시기가 있었다는 걸, 그들도 누군가의 자식이었다는 걸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컸음도 알았다. 그래서 이 글을 보는 이들이 지금 당장 전화를 걸었으면 한다. 수화기 넘어 언제라도 나의 편이 돼 줄 그들의 행복을 바라며.

[지지대] 고립·은둔 청년 증가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다. 희망의 봄이면서도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밝음의 시기였지만 동시에 어둠의 나락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게 있었지만 한편으로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그 시절에 목청이 큰 권위자들도 좋든 나쁘든 오직 극단적인 비교로만 그 시대를 규정하려 했다.” 찰스 디킨스의 장편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1859년 발표됐다. 프랑스 대혁명이 배경이다. 두 도시는 혁명의 전운이 휩쓸어 버린 파리와 합리적인 통치와 위로부터의 혁명을 성공시킨 런던을 가리킨다. 이들 도시에선 기성세대의 모순과 억압 등을 피해 고립·은둔 청년들이 나온다. 이들은 사회를 원망하고 대립각을 세우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자책에 빠진다. 한곳에서 오랜 기간 소외됐던 청년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150여년 전 모습이 현재의 대한민국과 겹친다. 애틋하고도 슬프다. 그 시절과 차이가 있다면 취업 문제 등일 터다. 지난해 고립·은둔 청년 비율이 2년 전보다 2배 이상으로 늘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국무조정실의 분석 결과 자료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거의 집에만 있던 청년 비율은 5.2%(임신·출산·장애 제외)로 집계됐다. 2022년 조사(2.4%)보다 2배 이상으로 높아진 수치다. 고립·은둔하는 이유에 대해선 ‘취업 문제’가 32.8%로 가장 많았다. ‘인간관계 어려움’(11.1%), ‘학업 중단’(9.7%) 등이 뒤를 이었다. 우울증상 유병률은 2022년 6.1%에서 지난해 8.8%로 증가했다. 눈만 뜨면 해묵은 절망의 청구서가 날아오는 요즘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제시해야 하는 건 어른들의 사명이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말아야 하는 올곧은 가치여서다.

[지지대] 콘서트 아닌 유명 페스티벌

보통의 콘서트(Concert)는 특정 가수 1명 또는 1개 그룹이 나와 관객들에게 생생한 공연을 펼친다. 가끔 같은 기획사 가수들만 나오기도 한다. 이 같은 상황이 아니라 다양한 가수들이 출연하는 경우에는 흔히 ‘페스티벌(Festival)’이라 부른다. 이 같은 관점에서 지난 19일 인천 강화군 강화공설운동장에서 열린 ‘2025 강화 봄 콘서트’는 뭔가 이상하다. 록을 비롯해 댄스, 발라드, 힙합, 트로트까지 많은 가수가 무대에 올라오고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번 콘서트에는 트로트의 경우 ‘장구의 신’으로 불리는 박서진과 ‘엔카의 여왕’ 김연자 등 최고의 가수들이 출연했다. 게다가 파워풀한 퍼모먼스의 ‘댄스 디바’ 박미경, 힙합의 독보적 아티스트 비와이(BewhY)까지 무대에 올랐다. 발라드에선 감성보컬리스트 전상근과 국내 대표 여성 솔로 가수 경서가 출연해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고 국카스텐이 K-록의 진수를 선보이며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출연 가수 한 명, 한 명이 모두 대한민국 대표급이다. 게다가 이들은 통상 행사장에 온 것처럼 단순히 2~3곡만 부르고 무대를 내려가지 않았다. 많은 노래를 부르고, 중간에는 관객들과 길게 소통하는 등 마치 본인의 콘서트를 축소한 것처럼 보일 정도. 3시간이 넘는 긴 공연 시간 때문에 단순 콘서트가 아니라 마치 유명 페스티벌에 온 듯한 느낌이다. 그것도 다양한 음악 분야를 모아 놓은 페스티벌. 이 때문에 10대 청소년부터 20~30대 청년, 40~50대 중장년층, 60대 이상 어르신까지 함께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제 강화 봄 콘서트는 ‘강화 봄 뮤직 페스티벌’ 등 좀 더 거창한 이름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물론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 등을 더 넣어 아예 관광객들까지 끌어들일 만큼. 이를 통해 인천을 대표하는 페스티벌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지지대] 잔가시고기 단상

몸길이는 5㎝ 남짓하다. 옆으로는 납작한 편이다. 꼬리 자루는 가늘다. 푸른 형광빛 가시가 매력적이다. 눈망울도 둥글고 귀엽다. 한국, 일본에서 서식 중인 민물고기인 잔가시고기의 이력서다. 더 들어가 보자. 수컷이 암컷보다 몸이 더 높다. 주둥이는 끝이 날카롭다. 그 끝에 입이 비스듬하게 위를 향해 열린다. 옆구리에서 온몸에 걸쳐 작은 비늘 판이 있다. 뒷지느러미 앞에 있는 가시는 강하고 배지느러미에도 가시가 있다. 가시가 유난히 작고 섬세하다. 이 가시는 위협이 가해질 때나 영역을 두고 싸울 때 펼쳐진다. 몸의 빛깔은 회녹색으로 불규칙한 암녹색 세로줄과 가로반점이 있다. 아가미막은 검다. 수컷의 등 쪽은 회황록색이나 암컷은 암녹색 무늬가 섞여 있다. 어떤 곳에서 살까. 하천 중류의 물의 흐름이 약하고 풀이 많은 곳이다. 먹이는 작은 수생곤충들이다. 먹이활동은 잦고 예민하다. 깔따구 애벌레 같은 생먹이를 주로 잡아먹는다. 이 녀석들의 가치는 환경보호 차원에서 각별하다. 하천 생태계에서 작은 포식자로 먹이사슬의 균형을 유지해서다. 수생식물과 공생하며 서식지 건강을 가늠하는 지표종 역할도 담당한다. 최근 이 녀석들에 대한 경고가 나왔다. 일본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져서다. 이유가 궁금하다. 환경 당국에 따르면 일본에선 하천의 콘크리트화, 서식지 파괴, 수질 오염 등으로 멸종된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에서도 상황은 위태롭다. 2018~2020년 이뤄진 동해안과 낙동강 일원 193곳에서 고작 39곳에서만 발견됐다. 2007~2017년과 비교하면 서식지가 42.6% 감소했다. 배스 같은 외래종 유입, 하천 공사, 가뭄, 수질 오염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하천 정비공사를 최소화하고 수질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자연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 이들이 사라진다면 기억 속에서만 남게 된다. 서식지 복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까닭이다.

[지지대] 루이 잠페리니

개구쟁이 시절부터 유난히 뜀박질을 좋아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랬다. 고교에 진학해선 지역 대표 육상선수로 전국 단위 대회에 나갔다. 운동장에서 트랙을 힘차게 내디딜 때마다 관중의 환호가 쏟아졌다. 이들의 박수가 있었기에 늠름하게 달릴 수 있었다. 마침내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금의환향했다. 부모와 형제는 물론이고 이웃들도 자랑스러워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가 됐다. 전쟁의 포연이 지구촌을 엄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그의 조국도 휘말렸다. 육상선수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국방의 의무가 다가왔다. 육군항공대 장교로 참전해 폭격기의 폭격수 역할을 맡았다. 구조 임무 수행 중 바다로 추락해 40여일간 표류했다. 실종 당시 대통령이 조문을 보냈다. 이후 마셜제도에 상륙해 포로로 잡혔다. 그의 순연은 여기까지였다. 미국의 육상선수 루이 잠페리니의 역정이다. 포로로 잡혔지만 수용소에서도 뛰는 연습은 계속됐다. 일본군의 엄중한 감시가 뒤따랐다. 고문도 당했다. 이 대목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가 갇혀 있던 포로수용소의 수장이 장교가 아니라 병사였다. 전쟁이 끝난 뒤 알려졌지만 말이다. 미군 장교를 일본군 병사가 통제했던 셈이다. 비상식적인 처사였다. 종전 후 인생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다행스럽게도 살아남아 미국으로 돌아 왔다. 종전 이후에는 용서에 대한 신념을 펼치면서 기독교 복음주의자로 변신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당시 성화 봉송 주자로 일본도 방문했다. 40여년 만이었다. 이후 폐렴으로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세상을 떴다. 2014년 4월18일이었다. 사후 그의 일생을 다룬 영화 ‘언브로큰’이 개봉됐다. 20세기 전반부를 살았던 육상선수가 겪었던 삶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에둘러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포로수용소에서 일본의 불합리한 행태가 눈에 거슬린다. 전쟁은 인류의 민낯을 드러나게 한다.

[지지대] 경제 살릴 후보는 누구?!

불과 몇 개월 전 만해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대통령선거’가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갑작스럽게 치러지는 대통령선거이지만 향후 대한민국의 5년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역할과 책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국민들은 어떤 후보에게 표를 던질까. 혼탁한 정국에 치러지는 선거인만큼 국민 통합에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고, 청렴한 후보를 선택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선거 역시 결국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후보를 찾게 되지 않을까. 특히 미국발(發) 관세 파동 탓에 그 어느 때보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인 만큼 경제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선택되지 않을까 싶다. 선거철이 도래하면서 각 정당은 또 한 번 다양한 경제정책을 내놓고 있다. 최근 가장 눈길을 끌고 있는 정책은 주 4.5일제 근무 도입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생각하는 4.5일제는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지만 모두 주 4.5일제에 대해 공감하고 있어 차기 정부에서는 4.5일제가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경제계는 생산성 하락 등을 우려하고 있다. 정년 연장도 논란이다. 기업들은 정년 이후 일정 조건을 통한 재고용을 주장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정당의 이해득실을 따져 정년 연장 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소기업중앙회는 최근 각 당 대통령 후보를 향한 ‘중소기업계 제언’을 발표했다. 3대 분야 100대 정책과제가 담긴 이번 제언에는 현실에 맞는 근로시간제도 마련, 산업재해 감축 지원, 최저임금제도 합리화, 산업용 전기요금제 개편, 중소기업 기업승계 특별법 제정, 납품 대금 연동제 실효성 제고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한국 경제. 지금의 대한민국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경제를 살릴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지대] 청명과 곡우 사이

이십사절기 중 다섯 번째다. 청명(淸明) 얘기다. 이날부터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고 한다. 청명부터 딱 보름이 지나면 여섯 번째 절기인 곡우(穀雨)다.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해준다. 농민들은 이 두 절기 사이에 바빠진다. 들녘에서 허리를 펼 틈도 없다. 농작물을 심기 위해 기초작업을 시작해야 해서다. 심을 작물들도 준비해야 한다. 벼 파종도 본격화된다. 가축 관리와 밭일 등도 그렇다. 한 해 농사의 성패를 가름한다. 농작물 성장을 촉진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이때 내리는 비는 농작물 성장에 필요한 수분을 공급한다. 조선 후기 정약용의 차남 정학유도 ‘농가월령가’를 통해 “청명·곡우는 농사 짓기에 딱 좋은 절기”라고 읊고 있다. 벚꽃도 활짝 핀다. 엷은 분홍색을 머금은 산하가 흐드러진다. 축제가 따로 없다. 그런데 요즘 날씨가 이상하다. 활짝 핀 벚꽃 위로 때 아닌 눈이 내려서다. 그래서 ‘벚꽃 위에 쌓이는 눈’이란 말이 안 될 것 같은 표현이 회자되고 있다. 왜 그럴까. 기상청은 이런 현상을 보이는 이유로 북극 찬 공기를 품고 회전하는 절리저기압 탓이라고 분석한다. 한반도 대기 상층에 절리저기압이 자리해 하층 공기를 상층으로 끌어올리면서 지상에 저기압이 발달해 그렇다는 분석이다. 절리저기압은 영하 30도 이하 찬 공기를 수반해 대기 상하층 기온차가 40~50도로 벌어지면서 대기가 불안정해지고 이에 눈비가 내릴 때 돌풍이 불고 천둥과 번개도 부른다. 4월의 눈은 생경하지만 극히 이례적인 일은 아니라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강원 산지의 경우 5월에도 종종 눈이 내린다. 지난해는 5월 중순 향로봉 등에 대설이 내리기도 했다. 관측자료에 따르면 1908년부터 올해까지 4월 중 눈이 온 날(눈일수)은 총 35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이제부터 들녘은 완연한 봄이다. 그게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이치다.

[지지대] 일상 파고든 최악의 변수들

상수(常數). 수식에서 변하지 않는 값을 뜻한다. 항상 일정한 값을 갖는 수. 변수(變數). 어떤 상황의 가변적 요인, 어떤 관계나 범위 안에서 여러 가지 값으로 변할 수 있는 수를 의미한다. 상수와 달리 예측이 어렵고 그만큼 대비도 힘들다. 우리의 일상 속, 최악의 변수라 여겨질 만한 각종 재난 사고가 불청객처럼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3월24일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서울 강동구 명일동 인근 사거리에서 발생한 폭 20m, 깊이 18m 규모의 대형 싱크홀. 이날 여느 때와 같이 평범했던 퇴근길 도심과 30대 오토바이 운전자의 삶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지난 11일, 광명시 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 현장 붕괴 사고. 인근에 위치한 600여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 교회 등 시민들의 생활공간과 인접한 현장. 당시 붕괴 우려 조짐을 인지한 시공사 측의 작업 중단 이후 15시간 만에 도로가 ‘와르르’ 주저앉았다. 여러 상황과 변수를 계산한 뒤 결정한 시공사 측의 보강 공사. 이 판단에서 정작 공사를 멈춘 ‘붕괴’ 가능성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보강 공사에 투입된 작업자가 매몰된 지 수일째 생사 여부조차 확인이 안 되는 끔찍한 참사를 예견하면서도 내린 결정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11년 전 오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하루 전. 단원고 학생 및 교사 339명을 포함한 승객 476명을 태운 청해진 해운 소속 세월호 여객선이 짙은 안개를 뚫고 오후 9시 인천항을 출발했다. 추억을 만들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제주를 향하고 있었을 당시,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역대 슬픔과 분노로 기억되고 있는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가 될 것이라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인 이선민씨가 말했다. “참사는 사람을 가려 오지 않는다. 이번에 ‘운 좋게 당신이 아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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