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명인이 만드는 감동의 무대…경기시나위 ‘젊은 명인:Young Virtuoso’

경기아트센터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오는 14일 오후 7시30분 경기국악원 국악당에서 ‘젊은 명인:Young Virtuoso’를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미래의 전통을 이끌어 나갈 젊은 연주자를 발굴·지원하기 위한 경기시나위 사업 중 하나이다. 전국 단위 공모에서 18대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차세대 젊은 명인들의 무대가 펼쳐진다. 앞서 지난 2001년 처음 시작한 이 무대는 2019년 ‘명인을 꿈꾸다’에 이어 5년 만에 마련된다. 협연 무대에 오르는 6명의 젊은 명인은 김소연(아쟁), 김준희(해금), 류수빈(대금), 정가영(생황), 주아현(거문고), 한유진(가야금) 등이다. 이들은 아쟁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신맞이굿’, ‘혼무(Dancing With Spirits)’, 대금과 국악관현악단을 위한 ‘영원’, 생황협주곡 ‘풍향’, 거문고협주곡 ‘비상’, 가야금협주곡 ‘혼불II:나의 넋이 너에게 묻어’ 등 창작 레퍼토리 6곡을 90분간 선보일 예정이다. ‘신맞이굿’은 한 명의 아쟁 연주자가 대아쟁과 소아쟁을 번갈아가며 연주하도록 구성한 협주곡이다. 한국의 무속 장단이 곡 전체에 걸쳐 연주되며, 현대적인 주법을 활용해 다채로운 아쟁의 매력을 드러낸다. ‘혼무’는 어촌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동해안별신굿을 바탕으로 작곡된 곡으로, 해금 솔로와 관현악이 호흡을 주고 받는다. 또 대금 협주곡 ‘영원’은 원곡인 ‘수제천(壽齊天)’과 마찬가지로 먼 거리를 길게 퍼져 나가는 듯 길고 느린 선율과 리드미컬한 패턴들이 특징이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관계자는 “협주곡은 협연자의 기량에 따라 새로운 분위기와 느낌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젊은 명인들이 어떤 생동감 넘치고 역동적인 음악을 선보일지 매우 기대된다”며 “관객들에게 그들의 꿈과 열정이 전달되는 감동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흙과 불과 기다림의 미학’…전국 여성도예가, 제6회 도송회展 개최

흙에서 태어난 도자기는 어느 지역서 어떤 땅을 밟고 자랐는지에 따라 모양도 형태도 다르다. 전국 각 지역을 대표하는 여성 도예가들이 팔도 도자기의 각기 다른 매력과 특색을 담아낸 전시를 수원에서 선보인다. 전국 여성 도예가 모임 ‘도송회(회장 박지영)’는 11일부터 15일까지 수원시청 본관 1층 로비에서 제6회 ‘흙과 불과 기다림의 미학’ 전을 개최한다. 올해로 창립 10주년에 접어든 도송회는 경기도(이천), 경상도(대구), 전라도(강진) 등 전국 팔도를 대표하는 도예가들로 이뤄진 단체로 이들은 매년 각지에서 순회 전시를 선보이며 전국 도자기의 특색을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수원에서 열리는 제6회 도송회 전시 ‘흙과 불과 기다림의 미학’에는 박지영 명장의 ‘노송’, 이미향 경기도명인의 ‘월계관을 품다’, 김기운 작가의 ‘느낌’ 등 전국 각지 도예가들의 작품 20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전통과 현대물이 공존하는 장으로, 도송회는 전통의 아름다움 속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도예 작품들을 공개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미향 명인은 한국 전통의 도자기가 사라지는 추세에 많은 이들이 전통 예술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전시 의미를 설명했다. 이 명인은 “도송회는 전국 작가들이 모이기 때문에 도예가들이 각자 사용하는 유약도, 소재도 전부 다르다”며 “우리 도자기의 가치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가운데 많은 분이 오셔서 전통과 현대의 전국 도자기의 특색을 생각해 보는 뜻 깊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기사대부의 삶과 철학…‘巖巖汪汪:만 길 벽, 천 이랑 바다’

경기지역 명문가들이 보관해 온 초상화와 복식 유물로 조선 사대부의 삶과 철학을 살펴보는 전시가 마련됐다.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은 보물 2점을 포함한 10여점의 기증품을 소개하는 상설전 ‘巖巖汪汪:만 길 벽, 천 이랑 바다’를 지난 7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도박물관이 종합박물관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초상화와 복식 유물의 연구와 전시에 특화된 박물관으로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 제목인 ‘巖巖汪汪(암암왕왕)’은 조선 후기 학자 홍직필이 우암 송시열의 초상화를 묘사한 글에서 유래했다. 학자 홍직필이 송시열의 학문적 깊이와 인격에 대해 ‘만 길 벽처럼 드높고 천 이랑 바다처럼 드넓다’고 표현한 것이다. 선인을 기리는 이 같은 마음을 통해 경기사대부들이 추구한 학문과 철학의 고결한 깊이를 엿볼 수 있다. 전시는 2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송시열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그의 후계자인 홍직필의 기증품을 통해 경기사대부의 학문과 삶을 조명한다. 홍직필은 조선 사상사에서 중요한 ‘호락논쟁’과 관련된 낙론 학파의 인물이다. 이번 전시는 그와 송시열 사이의 학문적 연계를 탐구해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현실을 인식하고 사유한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2부에서는 경기지역 명문가들의 기증 유물을 통해 경기사대부의 철학과 삶을 돌아본다. 성재 허전의 초상, 김확의 무덤에서 출토된 심의, 유한갈의 지석 등이 주요 유물이다. 성재 허전의 초상화는 그의 학문적 업적과 인품을 담은 작품으로, 조선 후기 사대부 초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의미가 있다. 심의는 사대부의 일상복으로 각 부분이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데, 이를 모두 모아 하나의 우주가 된다. 김확의 심의는 조선 사대부들의 복식 문화와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특히 유한갈의 지석은 사대부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철학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더욱이 이번 전시는 촉각 전시물과 수어 영상, 음성 해설 등을 활용한 무장애 전시로 이뤄졌다. 도박물관은 장애인 단체를 대상으로 전시를 관람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작품을 해석해 보는 ‘박물관 유물 속 나’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는 기증된 유물 속에 담긴 조선 사대부들의 학문적 열정과 철학을 조명한다”며 “관람객이 유물에 담긴 깊은 의미와 기증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용인문화재단, 가을 맞이 풍성한 공연 선물…팝과 가요, 연극 등 장르 다채

용인문화재단이 깊어가는 가을을 맞아 시민들의 문화예술 공감대를 충전하는 다양한 기획 공연을 선보인다. 오는 19일 용인시문예회관 처인홀에서는 팝과 대중가요 앙상블 공연 ‘팝스 콘서트’가 열린다. 2024년 경기아트센터 ‘예술 즐겨찾기’ 지원사업에 선정돼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경기도 대표 퓨전그룹 ‘경기팝스앙상블’과 성악가 출신 트로트 가수 염유리가 함께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1부 공연은 ‘경기팝스앙상블’이 대중친화적인 팝, 클래식, 대중가요 등을 퓨전음악으로 새롭게 편곡해서 보여준다. 색소폰, 건반, 베이스, 트럼펫 등의 악기로 이뤄진 앙상블이 ‘지금 이 순간’,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Dancing queen’ 등 유명 넘버를 매혹적인 선율과 목소리로 연주한다. 이어지는 2부 공연에서는 소프라노 출신 트로트 가수 염유리가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넘버인 ‘Think of me’, ‘배 띄워라’, ‘신사랑고개, ‘금사빠’ 등 장르를 넘나드는 퍼포먼스를 소화한다. ‘예술 즐겨찾기’ 프로그램 취지에 맞게 공연은 전석 무료다. 희로애락이 가득한 연극 무대도 만날 수 있다. 오는 22일과 23일 양일간 양일간 용인시평생학습관 큰어울마당에서는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연극 ‘헤비메탈 걸스’가 무대에 오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2024 공연예술 유통사업에 선정돼 관객과 만나는 기획 공연이다. ‘헤비메탈 걸스’는 장기근속 중인 40대 여직원 4인방이 정리해고 대상자에 오르자, 새로 부임하는 사장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가 좋아하는 헤비메탈을 배우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연극이다. 2013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우수작품으로 선정된 이후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고 있다. 2022년 춘천연극제 코미디 경연에서 대상, 연출상을 수상했다.

군포문화재단, ‘파리넬리와 파가니니’ 뮤지컬 스토리 콘서트 오는 14일 개최

군포문화재단은 14일 군포문화예술회관 철쭉홀에서 뮤지컬 스토리 콘서트의 첫 공연으로 ‘파리넬리와 파가니니’를 선보인다. 뮤지컬 스토리 콘서트는 헨델의 아리아를 재해석해 편곡한 곡들에 여러 이야기를 풀어내는 형식으로, 관객들이 보다 쉽게 작품에 다가설 수 있도록 구성한 군포문화재단의 신규 브랜드 공연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천상의 목소리로 유럽을 사로잡은 오페라 가수 파리넬리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린 파가니니의 삶이 그려진다. 파리넬리 역할은 루이스 초이가, 파가니니 역할은 KoN이 맡았으며 리카르도와 콜랭 역할에는 이준혁 배우가, 루치오역은 황민수 배우가 맡아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특히 파리넬리의 맑고도 감미로운 목소리로 헨델의 대표곡 ‘울게하소서’가 세상에 전해졌던 감동을 재현할 예정이며, 파가니니의 난해한 연주 기법과 천재성을 보여주는 대표곡 ‘악마의 연주’ 또한 공연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형주 군포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시민들이 뮤지컬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 공연을 더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신규 공연을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시립합창단, ‘해설과 함께하는 Wonderful Musical’

용인시립합창단이 합창으로 만나는 유명 뮤지컬 넘버를 선보인다. 용인문화재단은 오는 29일 용인시문예회관 처인홀에서 용인시립합창단 기획공연 ‘해설과 함께하는 Wonderful Musical’을 개최한다. ‘밝고,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하모니’라는 슬로건 아래 지난 2017년 창단한 용인시립합창단은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넓히고 지역 문화예술 저변확대에 앞장서는 용인특례시 대표 예술단체다. 이번 공연은 정통 클래식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가곡, 트로트, 대중가요, 뮤지컬, 현대음악 등 다채로운 장르를 선보이는 용인시립합창단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뮤지컬 넘버를 합창음악으로 선보여 온 세대의 공감대를 확보하는 무대로 기획됐다. 이번 무대에는 세계 4대 뮤지컬인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캣츠’, ‘사운드 오브 뮤직’, ‘지킬 앤 하이드’, ‘오즈의 마법사’ 등 대중에게 친숙한 음악이 오를 예정이다. 특히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등 다수의 뮤지컬을 연출한 안진성이 안무와 연출을 맡고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한윤미밴드’의 라이브 음악이 곁들여져 관객들의 눈과 귀를 동시에 즐겁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용인시립합창단 관계자는 “용인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을 늘 연구하는 합창단이 이번 공연에선 모두에게 친근한 곡을 수준 높고 차별화된 합창 음악으로 해석해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구두쇠 영감에게 찾아온 성탄절의 기적”…동화와 함께하는 가족발레 ‘스크루지’

성탄절을 배경으로 오랜 세월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고전 동화 ‘크리스마스 캐롤’이 발레의 몸짓과 언어로 재탄생했다. 수원문화재단은 오는 16~17일 양일간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창작 가족발레 ‘스크루지’ 공연을 선보인다. 작품은 2024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국비 지원사업 선정작이자,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을 재해석한 조윤라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다. 작품은 소설 속 주인공 스크루지 영감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혹독한 삶에 찾아온 특별하고 따뜻한 하루 속 진정한 삶의 의미를 전한다. 지독한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는 ‘베풂’이나 ‘나눔’과는 거리가 먼 인색한 인물로, 그는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경멸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전날 밤, 그의 꿈속에 오래전 세상을 떠난 친구이자 동업자였던 말리가 나타나고 말리의 유령과 함께 그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게 되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한다. 스크루지는 진정한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며 그동안의 인생을 반성하고,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통해 따뜻함을 배우게 된다. 새로운 작가정신으로 창작발레 활성화를 이끄는 조윤라발레단은 이번 작품에서 수준 높은 테크닉과 표현력으로 주목받는 김희현, 김소혜 등 무용수들의 완성도 높은 공연과 함께, 기존의 클래식 발레에서 벗어난 독창적이면서도 색다른 발레를 선보이며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재미를 선보일 예정이다. 재단 관계자는 “온 가족이 크리스마스를 미리 만나 행복함을 느끼길 바라며, 발레만의 색다른 매력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예매는 인터파크 티켓과 수원SK아트리움 누리집에서 가능하다.

수묵이 머금은 부유의 흔적, 박찬응 ‘표류의 감각’展…예술공간 아름에서

예술공간 아름과 실험공간 UZ에서는 오는 15일까지 박찬응 작가의 ‘표류의 감각’展을 개최한다. 전시는 화가이자 대안공간 기획자, 지역 문화운동가 등으로 살아온 박찬응의 최근 작업과 코로나 이후 변화된 그의 삶에 관한 기록이 펼쳐진다. 작가는 공적인 삶을 끝내고 자유로운 삶을 갈구하며 펼쳐지는 최근 자신의 삶을 ‘표류(dérive)’라 보고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작가에게 2020년 코로나19와 팬데믹으로 이어진 그 시절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표류에 접근하기 시작한 시기다. 작가는 작업실 안에서 사물과 사물 사이를 떠돌기도 한다. 종이를 돛대 삼고 붓을 삿대 삼아 더 먼 곳까지 부유하며 기억과 상상 속에서 헤매도는 표류의 상황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표류의 흔적들은 다양하다. 안양의 석수 작업실을 중심으로 신안 비금도, 제주 북촌리, 옥천 청마리, 의왕 월암동을 부유하는가 하면 멀리 프랑스 베네쿠트, 고메쿠트, 남프랑스 뚜르즈 가베로니, 노르망디 해안가 절개지까지 가서 떠돌며 작업에 몰두했다. 표류의 기록들은 작가만이 가진 수묵화의 감성으로 채색돼 함께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가 올해 펴낸 그림책 ‘소년, 날다’의 원화도 설치작업 형식으로 만나볼 수 있다. 아홉 살 무렵 작가가 종잡을 수 없는 광풍에 휘말리는 꿈을 반복적으로 꾼 후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그 상처의 꿈을 소환해 작업으로 표현했다. 홍채원 아름 관장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작가의 표류과정에서 제작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표류의 경로’와 ‘표류의 감각’, ‘표류의 기억’으로 섹션이 나뉘어 전시되는 기대해도 좋은 전시”라고 설명했다.

먹으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통합하다 [전시리뷰]

한국화 분야의 대표적 원로 작가 이철주(1941~ )의 첫 회고전이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이달 24일까지 진행된다. 196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변천하는 작가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 한국미술과 한국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관습을 깨고 새로움을 더하다 ‘먹을 통한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조형성의 탐구’. 작가 이철주가 한국화 작가로서 60여년에 걸쳐 추구해온 목표다. 지난 9월부터 진행된 이철주 작가의 첫 회고전 ‘꽃보다: 이철주의 작품세계’는 먹과 채색, 종이와 비단 등 틀에 갇히지 않은 재료와 탁월한 조형의식을 다룬 작가의 60여년에 걸친 작품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1960년대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추상미술을 비롯한 서구 미술의 파도와 수묵화로 대변되는 전통 고수의 강박에 강하게 노출된 세대의 미술인이었다. 작가는 수묵채색화의 학습을 거쳤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시기별로 다양한 시도를 선보이며 스스로 변화한다. 1972년 작 ‘찬가(讚歌)’는 군무를 선보이는 발레리나들의 모습을 그린 인물화다. 묵이 아닌 커피로 그린 이 그림은 초기작이지만 관습을 깨고 새로움을 더하려는 작가의 성향이 반영된 작품이다. 회화 재료가 아닌 식재료인 커피를 선택한 것은 사용 과정도 용이하지 않을 뿐더러 그 결과도 보장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런 시도를 통해 작가는 구습을 깨고자 했다. 한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활발히 유입됨에 따라 국내 미술 작품이 외면받게 됐다. 작가는 위기를 벗어나고자 이 시기를 기점으로 통렬한 자기 비판을 선행한다. 이후 먹과 채색의 번짐과 퍼짐이라는 기법적인 변화에 한국적인 내용과 정서를 진하게 결합하는 데 집중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연화좌 위 부처님의 모습이 아련하게 묘사된 ‘장생’은 먹과 색의 번짐에 의한 불균일한 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서예적 혹은 수묵화적인 아름다움 먹의 고유한 성질이기도 한 번짐과 퍼짐을 적절히 통제하며 간결함에 집중했던 초기작에 비해 극단적인 기법 활용은 대상의 형상을 변형하고 요약하는 추상미술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취향과 작품세계의 변화는 1990년대에 들어서며 작가가 선보이는 ‘우주로부터’ 시리즈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에 걸쳐 작가는 ‘우주, 땅, 하늘’ 그리고 ‘무제’ 시리즈를 통해 동양적 세계관을 작품에 녹여낸다. 그리고 전통성과 현대성을 조율하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는 2010년을 전후로 ‘꽃보다 아름다워라’ 시리즈를 내놓는다. 작가는 이 세상 어떤 것도 고정불변함은 없다는 것을 작품으로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과도 동그랗고 붉은 사과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깔과 형태의 변화를 겪듯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렇다고 작품에서 말하고 있다. 하늘과 땅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지고, 붉게 타오르던 운석도 형태를 잃어가며 미지의 우주를 담아낸다. 작가의 최근 작은 ‘꽃보다 아름다워라’라는 글씨를 종이에 쓴 뒤 이를 동일한 정사각형으로 등분해 여러 조각으로 잘라 새롭게 구성한 콜라주 하듯 붙인 것이 주를 이룬다. 여전히 먹과 한지를 재료로 하되 현대적인 조형성을 탐구하며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라는 구분을 통합하고 조화시킨 것. ‘꽃보다 아름답다’는 내적인 의미는 갖고 있지만 먹의 조형만 남은 외적 형태는 서예적인 특징과 수묵화적인 아름다움이 결합돼 있다. 전시는 이달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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