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이 붓으로 쓴 여정, 열하일기 친필초고본 특별전 [전시리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친필초고본이 수장고에서 나와 세상에 첫 선을 보이고 있다.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은 지난 10월 8일부터 제2전시실에서 ‘연암 박지원이 붓으로 쓴 여정, 열하일기 친필초고본 특별전’을 통해 소장품을 대중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연암(燕巖)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 친필초고본과 저작류 32종 83책을 선보인다. 친필 초고본은 전국에서 단국대만이 유일하게 보유 중이다. 박물관은 연암 연구와 자료 수집에 전 생애를 바친 연민(淵民) 이가원 선생의 기증 덕분에 열하일기 친필초고본 10종 20책을 소장하게 됐다. 전시는 그 제목처럼 열하일기 친필 초고본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를 통해 관람객들은 열하일기의 시작부터 동행하면서 수도 없는 수정과 개작을 거친 그의 문학세계가 어떻게 세상과 접점을 만들어가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열하일기’는 조선후기 대문호이자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이 1780년 중국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축하 특별사절단의 일원으로 중국을 다녀온 뒤 엮어낸 연행 일기다. 당시 박지원은 그가 직접 보고 듣고 겪었던 청나라의 모습뿐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지식인들과 나눴던 대화를 생동감 넘치는 필력으로 남겼다. 현재 열하일기의 필사본은 30여 종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이본(異本)들 가운데 초고본 계열은 열하일기의 첫 원고에 가까운 자료들로서, 최초의 열하일기가 어땠는지 규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번 전시에서 대중에게 첫 선을 보이는 친필 초고본은 그간 삭제되거나 수정돼 온 여러 버전의 이본들의 출발점이 어디인지 그 원형을 보여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열하일기 최초의 모습을 보여주는 ‘연행음청’과 ‘연행음청록’이 눈길을 끈다. 특히 ‘연행음청’은 박지원이 중국 사행을 떠나기 전의 43일간 써내려간 기록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문장가로서의 연암 뿐 아니라 공직자로서의 저술도 엿볼 수도 있다. 연암이 면천 군수 시절 조선후기 농업문제에 관해서 쓴 개혁론인 ‘과농소초’, 수령이 해야 할 일을 고찰하는 ‘면양잡록’ 속 ‘칠사고’ 등엔 그의 애민정신이 깃들어 있다. 특히 박물관 측은 전시된 문서들을 유리창 속에만 가둬놓지 않았다. 전시 공간에 디지털 액정화면 패드 속에서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표지부터 페이지별로 박지원 고유의 숨결이 살아있는 필체를 관찰할 기회인 셈이다. 전시를 기획한 기수연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를 찾는 방문객들이 연암 박지원의 통찰력과 지혜가 담긴 저술들을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그의 사유와 열정을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2월 20일까지 이어진다.

경동중고 총동창회, 제2회 경동사랑 음악제 ‘The Concert – 鄕愁, 그리움’

경동중고등학교 총동창회(회장 고승환)는 다음 달 2일 오후 4시 경동고등학교 내 동인관에서 ‘제2회 경동사랑 음악제’를 개최한다. 지난 1940년 개교 이래 올해로 84주년을 맞은 경동고등학교는 그동안 4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이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보여왔다. 특히 문화 예술 분야에서 ‘가왕 조용필’이 대표적인 가운데 한국 대중음악사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 음악가들이 활약하고 있다. 음악제는 ‘향수와 그리움’을 주제로 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 형태로 열린다. 1부는 클래식 향연으로 천안시립합창단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는 임한귀(39회)의 지휘에 맞춰 경동의 17개 동창회가 연합으로 구성된 ‘경동OB합창단’이 남성합창의 매력을 한껏 뿜어낸다. 또한 경동고 14회 졸업생인 고 박인수 테너의 후예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테너 백광호(49회), 테너 석승권(49회), 바리톤 이광희(42회)의 무대가 폭넓은 성악의 세계로 관객을 인도할 예정이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1부 공연에 이어 2부는 추억과 그리움을 소환하는 80년대의 명곡이 공연장을 가득 메운다. 2부의 문은 경동고 동문들로만 구성된 ‘KD슈퍼밴드-블랙옥슨’의 연주와 노래로 연다. 밴드명 ‘블랙옥슨(Black Oxen)’는 80년대 캠퍼스 밴드로 큰 인기를 끌었던 ‘블랙테트라’와 ‘옥슨’의 합성어이다. 블랙테트라 맴버로 ‘구름과 나’를 작사·작곡해 1979년 제1회 해변가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고상록(33회)과 한국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 박학기(39회)가 밴드를 리드한다. 이와 함께 성시경밴드 마스터인 안준영(43회)과 1991년 KBS대학가요제 대상 수상자인 ‘옥슨91’의 서형무(46회)가 연주의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다. 배우 이성원(46회)과 포크가수 허영택(46회)의 매력적인 음색과 어쿠스틱 참여는 밴드의 다양한 레퍼토리와 사운드 완성에 힘을 싣는다. 2부 공연의 대미는 뮤지컬 배우 박규연과 초대가수 알리가 장식한다. 알리는 ‘경동OB합창단장’인 조동식(27회)동문의 조카이며 박규연은 박병일(31회)동문의 딸이다. 이들은 ‘경동동문 가족’으로서 공연에 함께해 그 의미가 더욱 크다. 공연의 총감독은 가수 박학기가 맡은 가운데 무대의 중앙과 측면에 설치된 총 5면의 대형 LED화면과 풍부한 음향, 섬세한 조명예술로 공연의 몰입도를 더욱 높일 예정이다. 지난 2년간 음악제 준비위원장을 역임한 김주환(31회)동문은 “경동고 출신의 공연, 무대, 예술가들이 공동의 협력을 통해 얻게 된 완성의 희열을 사회적으로 보다 가치 있게 발전시켜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의는 경동중고등학교 총동창회 사무국으로 하면 된다.

비장애 ‘미학’에 대한 도전…‘없던 공연 - 어느 장애연극인들의 욕망에 대한 기록’

한 장애인 배우가 무대에 서 있다. 그의 연기는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비장애 연극을 바라보는 잣대와 동일하게 얼마나 대사를 완벽하게 암기하고, 이를 훌륭하게 연기로 표현했는지가 될 수도, 혹은 장애를 ‘극복’하고 연기를 펼쳐냈다는 사실에 대한 찬사와 감탄이 될 수도, 혹은 지금까지 볼 수 없던 제3의 무언가, 그가 보여준 '고유성'에 대한 발견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미학’의 기준은 비장애인의 예술성을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그 미학이라는 것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내보고, 어쩌면 예술을 바라보는 데 새로운 기준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관객이 한 번쯤 느껴본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달 1일부터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극단 애인의 ‘없던 공연 - 어느 장애연극인들의 욕망에 대한 기록’에서 연출을 맡은 강예슬 감독에게 장애 연극, 장애 예술이 갖는 의의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의 말처럼 ‘없던 공연’은 장애 연극을 둘러싼 서로 다른 관점과 신념을 담아낸 작품. 그 속에는 동시대 장애 연극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여러 힘의 충돌이 담겨있다. 지난 2007년 창단한 극단 애인은 장애 연극배우들로 구성, 장애인의 삶을 담아낸 이야기부터 고전 작품을 재해석한 무대 등 매년 두 차례 이상 관객에게 무대를 선보이는 전문 극단이다. 지난 2021년부터 현재까지 지체 장애인의 호흡과 연기법부터 장애 연극에 대한 비평 등 장애배우의 훈련과 연기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없던 공연’은 지난 4년간 이들이 목격하고 탐구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총 2막으로 구성된 작품은 극중극으로 진행된다. 1부는 연극 무대를 준비하는 한 극단의 모습을, 2부는 연극이 종료된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에 답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무대는 ‘남들보다 몇 배는 길고 굵직하고, 밥 먹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코’를 가진 한 스님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소설 ‘코’를 각색, 공연을 준비하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공연을 열흘 앞둔 시점. 개개인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연습을 밀어붙이는 ‘연출가’와 장애의 관점과 태도를 반영하려는 ‘작가’는 갈등하고, 그 사이 몸이 통제되지 않는 순간이나 휠체어 움직임을 부각하는 연기 등 자신만의 연기를 펼치는데 심취한 ‘배우’들은 충돌하고 만다. 그러는 새 공연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든다. 마침내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배우들은 텅 빈 무대에 남겨진다. 이처럼 작품은 연출가-작가-배우-관객이라는 서로 다른 주체가 각각 느끼는 감정과 시선의 갈등을 담아내고 있다. 작품은 장애 연극과 예술, 연기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혹은 평가하면 좋을지에 대한 ‘답’을 내리는 대신 한 번도 그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을 누군가에게 그 기준을 함께 고민해 보자는 제안을 던진다. 강예슬 연출가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연기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도 답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 배우가 갖는 고유성은 단순히 ‘신체의 다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들이 신체를 운용하는 방식에서 또 다른 고유성이 드러날 수 있고, 어쩌면 그 안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이나 감각을 발견하는 게 예술과 미학이 아닐까 싶었다. 관객들이 그러한 발견을 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공연은 다음 달 3일까지.

경기문화재단, ‘아트경기’ 미술품 합리적인 가격에…‘아트경기 팝업갤러리’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경기지역 시각예술작가 발굴과 미술품 유통 활성화를 위해 ‘아트경기 팝업갤러리’를 선보인다. ‘2024년 경기 미술품 활성화 사업(아트경기)’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이번 팝업갤러리는 올해 서울, 수원, 오산에서 진행된다. 수원 복합문화공간 111CM에서는 오는 31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오산 오색문화체육센터에서는 다음달 8일부터 16일까지 전시 ‘Y0UNG’을 개최한다. 또 현대백화점 목동점에서는 다음달 1일부터 7일까지 ‘The Collection Art Fair & Exhibition 아트경기 x arte k’(더 컬렉션) 전시를 선보인다. ‘더 컬렉션’은 아트경기 협력사 ‘아르떼케이’의 기획으로, 올해 아트경기 작가 18명의 작품 58점을 현대백화점 본관 지하 1층과 별관 더 로비 공간에서 선보인다. 100만원 이하의 작품부터 500만원대까지의 작품을 다양하게 구성해 취향에 맞는 작품을 소장할 수 있도록 미술시장의 문턱을 낮췄다. 이 외에도 미술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국내외 대가들의 원화와 판화도 함께 전시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상업화랑’과의 협업으로 진행되는 ‘Y0UNG’은 신진 작가와 젊은 컬렉터를 연결하고, 지역 미술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번 전시에는 아트경기 작가 15명과 초청작가 2명이 참여한다. 또 부대행사 ‘작가와의 대화-Zoom In’을 통해 작가의 작업 의도와 작업 제작 과정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마련될 예정이다. 특히 아트경기는 협력사 ‘칸KAN’과 함께 다음달 7일부터 10일까지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는 ‘Affordable Art Fair Singapore’에 참가해 아트경기 작가의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는 “복합문화공간과 백화점을 넘나드는 전시를 통해 다양한 세대의 관람객을 만나 미술품으로 소통할 예정”이라며 “또 글로벌 아트페어에 아트경기 작가와 작품을 소개해 경기지역 작가의 해외 미술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의정부서 만나는 ‘THE CLIBURN : 반 클라이번 위너스 콘서트’

세계적인 국제 피아노 경연대회인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입상한 피아니스트들이 경기도를 찾는다.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이자 미국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을 기리고자 1962년부터 개최된 피아노 콩쿠르로, 북미 최고의 권위를 지닌 콩쿠르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국내에서는 2022년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최연소 우승을 거머쥐며 인지도를 높였다. 오는 31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는 ‘THE CLIBURN : 반 클라이번 위너스 콘서트’ 공연이 펼쳐진다. 이번 공연에선 2022년 콩쿠르의 2위, 3위 입상자인 러시아의 ‘안나 게뉴시네’와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초니’가 출연한다. 두 피아니스트는 콩쿠르 당시에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로서의 우정을 보여주며 의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공연 1부에서는 트미트로 초니가 드뷔시의 ‘눈 위의 발자국’, 브람스의 ‘네 개의 소품(Op.119)’, 실베스트로프의 ‘네 개의 소품(Op.2)’,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2번 G단조(Op.22)’를 연주한다. 2부에서는 안나 게뉴시네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9번 C단조(D.958)’와 쇼팽의 ‘세 개의 왈츠(Op.34)’를 선보일 예정이다. 다음달 1일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위너스 콘서트’가 열려 정상급 피아니스트들의 공연이 이어진다. 공연은 두 피아니스트의 치밀한 테크닉과 깊이 있는 해석이 어우러져 피아노 음악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경기아트센터 관계자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위너스 콘서트’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의 공연인 만큼 경기도민의 음악을 향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통연극의 정수 ‘소작지’ 11월8~9일 성남아트센터서

한국 정통연극의 정수를 간직한 ‘소작지’가 오는 11월 8~9일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 무대에 오른다. 연극 ‘소작지’는 우리 근현대사 속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다룬 정통 연극이다. 1920년대 일제의 수탈로 참혹한 현실을 살아야 했던 가난한 소작농들의 애환, 그리고 농촌의 전통적 질서와 정서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한국 농촌의 짙은 토속성을 연극적으로 탁월하게 구사하는 극작가 노경식의 작품으로, 1979년 극단 고향에 의해 초연돼 1983년 제1회 전국지방연극제(현 대한민국연극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올해 새롭게 선보이는 연극 ‘소작지’는 원작의 향토성과 따뜻한 인간애는 그대로 간직하면서 일부 내용을 현대에 맞게 각색했다. 연극계 베테랑 배우부터 신인, 아역 배우들이 함께 출연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작품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공연은 배우 겸 연출가 주호성이 연출을 맡고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서인석, 이한위, 정아미와 대학로연극인광장 소속 배우들이 출연한다. 이와 함께 공개 오디션을 통해 16: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14명의 배우들이 함께 무대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특히 오디션 선발 배우 중 8명(60%)은 성남 출신 예술인으로, 명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와 더불어 신구(新舊) 배우들의 다채로운 연기 조화를 엿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정림 성남문화재단 대표이사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거센 풍파를 꿋꿋하게 살아간 선조들의 삶을 통해 지금의 관객들에게 현재를 더욱 굳건하게 살아갈 의지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예술 앞에선 장애도 비장애도 없어”...올리비에 드브레展 수어해설 투어 [현장리뷰]

“이 작품은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건가요?”,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기대어 있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며 사랑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느껴집니다.” 김현철씨(가명·80)와 박정자씨(가명·63)는 올리비에 드브레 작가의 작품 ‘기호 풍경(1955)’ 앞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작품의 의미와 그림 속에 표현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던 이들은 수어 해설사와 학예사에게 그 뜻을 물어봤다. 자세한 설명을 들은 이들의 표정은 환한 미소로 밝아졌다. 더 깊이, 풍부하게 작품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5회째 수어 해설에 참여 중인 김씨는 “처음에는 미술관을 방문하고 전시를 하는 것 자체가 낯설고 어색했지만, 수어 해설에 참여하면 할수록 미술에 대해 느끼게 되는 점이 많아지는 것 같다”며 “수어 통역과 함께할 때 작품과 교류가 더 잘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 해설 투어에 참여한 박씨는 “세계 2차 대전의 참혹함을 그려낸 작품이 특히 인상 깊었다”며 “해설과 함께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어 느끼는 바가 많았다”고 웃어 보였다. 지난 17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올리비에 드브레’ 작가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올리비에 드브레: 마인드스케이프’의 수어 해설 투어 현장은 끊임없는 손짓의 대화와 작품에 대한 관람객의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했다. 농아인 초청 수어 해설 전시 투어는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고, 모든 시민에게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수원시립미술관이 지난 2021년부터 운영한 전시 수어 해설이다.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전시 도슨트 해설을 제공하듯, 농아인이 더 깊이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수원 지역의 농아인 관람객을 초청해 전문 수어 해설사가 도슨트와 함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날 현장에 자리한 (사)한국농아인협회 경기수원시지회원 20명은 프랑스 서정 추상의 대가 올리비에 드브레(1920~1999)의 초기 작품부터 전 생애를 아우르는 그의 작품 세계와 인생사를 수어 해설사의 설명과 도슨트의 이야기로 함께했다. 투어가 시작하자 고요한 그곳에는 쉴 새 없는 대화가 오고 갔다. 손한올 수어 해설사는 자신의 손짓이 보이도록 24㎝ 높이의 이동식 사다리에 올라가 농인 관람객들에게 손의 언어를 통해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설명했다. 농인의 언어는 손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세계 2차 대전의 한복판에서 젊은 시절을 겪으며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잔혹함을 드러냈던 작가의 작품에선 심각한 표정과 몸짓을 보이며 하나의 단편적인 말보다 더욱 풍성한 언어로서 예술의 의미를 전했다. 관람객들은 마치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강한 열정과 눈빛으로 수어 해설사의 설명에 몰입했다. 드브레 회화의 다채로운 색감은 이들에게 다양한 해석과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작품을 감상하며 서로 열띤 토론을 벌이는가 하면, 인상 깊은 설명을 들으면서도 손뼉을 치며 즐거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날 손 해설사는 “해설하는 내내 작품에 대한 질문이 그치지 않았다”며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기 전, 즉 배경지식의 유무에 따라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지는 것은 농인이나 청인이 다를 게 없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예술 앞에선 장애도, 국경도, 언어도 장벽이 되지 않았다. “나는 풍경이 아니라 풍경 앞에 서 있는 내 안의 감정을 그린다”는 작가의 말처럼 특별한 언어가 없어도 농인과 청인은 처음 작품에 대한 감상을 머리가 아닌 자신의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감상평은 천차만별이었다. 더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해설이 곁들여졌을 때 농인과 청인은 함께 또 다른 세계의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수어 해설 투어 외에도 지난해 9월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리플릿 제작 등 다양한 시민의 문화 향유를 위한 ‘배리어프리’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이진철 수원시립미술관 학예전시과장은 “예술의 경계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폭넓은 계층에게 다가가는 것이 ‘공공미술관’의 역할”이라고 강조하며 “시립미술관이 1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에는 접근성, 다양성, 포용성을 기반으로 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원문화도시포럼, 최순애 ‘오빠 생각’ 노래비 건립 위한 콘서트 개최

‘뜸북 뜸북 뜸북새/논에서 울고/뻐꾹 뻐꾹 뻐꾹새/숲에서 울 제/우리 오빠 말 타고/서울 가시며/비단구두 사가지고/오신다더니’. 수원 북수리에 살던 열두 살 소녀 최순애(1914~1998)는 1925년 오빠를 간절히 기다리던 마음을 어린이 잡지 ‘어린이’에 투고했다. 그 제목이 ‘오빠 생각’이다. 게재된 동요를 본 스물 다섯의 청년 작곡가 박태준이 곡을 붙였고 이내 국민 애창곡이 됐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현재까지 아름다운 우리말과 서정적인 노래로 ‘오빠 생각’ 은 100년의 세월 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내년 ‘오빠 생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오빠 생각 노래비’ 건립 기금을 마련을 위한 콘서트가 열린다. (사)수원문화도시포럼(이사장 최동호)이 오는 26일 오후 4시와 7시 수원문화원 빛누리아트홀에서 개최하는 ‘최성수& 바리톤 송기창 콘서트’다. 콘서트는 수원문화도시포럼이 주최·주관하고 수원문화원이 후원해 내년 5월 노래비 건립 제막을 위한 마음을 모을 예정이다. ‘오빠 생각’은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꾸준히 수록되는 동요 중 하나다. 오래도록 수많은 어린이가 부르는 동요이지만 동시를 지은 최순애가 수원 출신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노래엔 수원의 배경도 담겨 있다.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던 최순애는 성벽을 따라 산길로 올라가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뜸부기 소리를 듣다가 오빠를 그리워했다 한다. 이와 관련해 정해득 한신대 교수가 지난해 ‘최순애 작가 심포지엄’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최순애가 그리워하던 오빠는 8살 위의 동경 유학생 최영주였고 최영주는 수원에서 방정환, 윤석중 등과 색동회를 조직해 활동한 인물이다. 최순애의 남편이자 ‘고향의 봄’ 작사가인 아동문학가 이원수(1911~1981)는 ‘어린이’ 실린 오빠 생각을 보고 감동해 최순애에게 편지를 보내고, 10년이 지나 결혼까지 하게 된다. 수원문화도시포럼은 이번 노래비 건립 추진으로 지역의 콘텐츠와 소중한 이야기를 발굴하고 널리 알려 지역 문화자원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원문화도시포럼을 비롯해 어린이문화연대, 한국아동문학인협회 등 관련 6개 단체는 올해 한국창작동요 100주년을 맞아 함께 최순애의 노래비를 공동 추진하기로 뜻을 모은 바 있다. 지난 8월 5일에는 경기도에서 기부금품 모집등록증(경기도 제2024-30호)을 받았다. 박래헌 수원문화도시포럼 대표이사는 “최순애와 관련된 인물, 또 그의 문학세계에 영향을 준 인물 등 연구하고 밝히고 알려야 할 이야기가 많지만 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원 팔달산과 마산 산호공원에 ‘고향의 봄’ 노래비가 세워져 있는데 여러 시각으로 관공서에서 선뜻 노래비 건립 등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민간에서 나서 지역의 중요한 콘텐츠를 알리고 내년 노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노래비를 세워 최순애와 수원, 지역과 관련된 이야기가 더 널리 퍼지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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