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시장' 김홍신 "탄핵 관련 허위 명의 조작 글 수사의뢰"

국내 첫 밀리언셀러로 기록된 소설 ‘인간극장'의 저자인 김홍신 작가가 비상계엄 선포 후 탄핵 사태와 관련, “허위 글들이 나돌고 있다”면서 법적 대응에 나선다고 밝혔다. 1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 작가는 "나는 법륜스님과 함께 지난 8일부터 일주일 일정으로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과 관련, 내가 작성하지 않은 내 명의의 허위 글들이 나돌고 카톡 등을 통해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어 경찰에 수사 의뢰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김 작가는 해당 글에 대해 “'국민의 힘이여, 지금을 절망하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쓰였다”면서 “'국회를 장악한 주사파 민주당이 예산안을 독점하여 나라를 파탄지경에 이르게 한다', ‘종북세력들과 중국을 섬기는 사대주의 세력들의 마지막 발악이 오늘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3년 전에는 박근혜 전(前) 대통령을 성녀(聖女)로 추앙하는 허위 글이 내 이름으로 엄청나게 나돌았고, 2년 전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지독하게 비판하는 조작 글이 내 명의로 많은 사람에게 전해졌다"라고도 했다. 김 작가는 "허위 글을 작성해서 돌린 사람은 개인적으로 나를 아는 사람 같지는 않다"면서 "어떤 사람 또는 세력이 내 이름을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생 공적인 일 말고 개인적으로는 고소와 고발 따위는 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그동안 참아왔다"면서 “그렇지만 내가 쓰지 않은 글로 망신당하는 일을 더는 못 참게 됐다"고 강조했다. 1981년 출간한 '인간시장'으로 유명해진 김 작가는 1996년부터는 1996년 통합민주당, 2000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각각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었다. 정계 은퇴 후 2007년 10부작 소설 '대발해'를 출간하기도 했다.

“아이들 꿈 키우는 나무되고파” [경기도 산타를 찾습니다]

후원자 인터뷰② ㈜서울정광 심문식 대표 “과거 회사를 설립할 때,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시작조차 하지 못했겠죠. 그때 세상은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배경엔 ‘사랑’이 있다. 누군가가 전한 나눔의 온정은 훗날 배가 돼, 온 주변을 따뜻하게 만든다. ‘2024 산타원정대’의 대표 산타 심문식씨(63)는 25년간 경기지역 32명 결연아동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그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존재다. 지난 1996년 30대 초반의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서울정광을 설립했고, 그 과정에서 사회는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꼈다. 심 대표는 ‘버는 만큼 사회에 환원하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99년 심 대표는 초록우산 경기지역본부를 통해 매달 정기후원을 하며 나눔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꾸준히 금액을 늘려가며 지금까지 총 32명의 결연아동에 약 1억 1천만원의 후원을 이어갔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세상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일환으로 초록우산에 후원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의 말처럼 회사도, 나눔도 ‘승승장구’했다. 심 대표의 회사는 2009년부터 총 네 차례 한국무역협회의 ‘수출의 탑’을 수상했고, 2013부터 세 차례 경기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그는 지난달 14일 열린 경기일보·초록우산 경기지역본부의 제10회 나눔천사 페스티벌에서 ‘그린노블클럽’ 헌액자로 위촉됐다. 그러는 사이 그가 곁에서 함께해온 아이들은 어느새 멋진 성인으로 성장했다. 초등학생이던 민우(가명)는 심 대표가 엄마와 형, 누나를 지켜줬던 것처럼 커서 누군가를 지키는 ‘멋진 경찰 아저씨’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9년 3개월. 심 대표는 초등학생이던 민우가 듬직한 어른이 될 때까지 민우 가족과 함께했다. 형, 동생, 고모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현준(가명)이에게는 성인이 될 때까지 학습비와 주거비를 지원하며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했다. 7년 3개월. 초등학교 시절 그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현준이 역시 이제 어엿한 어른이 돼 사회 첫발을 내딛고 있다. 현준이는 전문 기술을 배워 심 대표처럼 전문 경영인이 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갖고 있다. 심 대표는 주변에 ‘나눔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라며 적극적으로 나눔을 전파하고 있다. 사무실 진열장엔 비치한 아이들의 편지를 비치하고, 사무실을 방문하는 나눔을 함께하도록 권장한다. 그는 올 연말 도내 아동들이 더욱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도록 300만원 일시후원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사업을 운영하며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버는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며 “오랜 시간 후원을 이어가며 지금까지 지원한 아이들의 대학 진학, 취업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뿌듯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의 자리에서 지금의 활동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 13년간 희망 전한 ‘키다리 아저씨’ [경기도 산타를 찾습니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1127580278

영화·방송작가·시각예술·만화·문학계까지…문화예술 연이은 성명 발표

윤석열 대통령의 두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영화계와 방송계, 시각예술‧만화‧문학계 등 대중예술부터 순수예술까지 문화계 각 분야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성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 영화인 2차 긴급 성명 “국힘, 표결 참여해야” 13일 오전 ‘윤석열 퇴진 요구 영화인 일동’은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은 제2차 내란이다. 국민의힘은 내란 동조 중단하고 윤석열을 즉각 탄핵하라”는 제목의 2차 긴급 성명을 냈다. 지난 7일 발표한 영화인 일동의 대규모 긴급 성명에 이은 두 번째 행동이다. 이번 성명에는 ▲한국영화감독조합(DGK) 등 영화계 80개 단체 ▲영화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과 이준익·허진호·김지운·이경미·장항준·이명세 등 영화감독 981명 ▲송강호·황정민·한예리 등 영화인 384명 등 총 6천388명이 참여했다. 앞서 1차 성명에는 영화감독 봉준호·정지영·변영주, 배우 문소리 등이 연명했다. 일동은 “국정 안정, 혼란 수습, 질서 회복 등을 실현하는 진정한 주체는 대한민국의 주권을 지닌 국민이고, 우리 영화인들 또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라며 “우리는 성별, 나이, 경력, 활동 분야 등 서로 다른 조건을 지녔으나, ‘윤석열 퇴진’이라는 간명한 동일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의 명분으로 내세운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은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제2차 내란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헌법기관이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이제라도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며 “‘내란죄 현행범’ 윤석열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정하고, 비상계엄을 위헌으로 판단한다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표결에 참여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2차 성명은 9~12일 연명을 받았으며, 1차 성명보다 참여자가 두 배 증가했다. ■ 한국방송작가협회, “언론·출판 통제의 포고령…‘K-컬처 시대’ 믿기지 않아” 이날 4천700여명의 방송작가가 소속된 (사)한국방송작가협회도 ‘내란의 수괴 윤석열 내란의 수괴 윤석열을 탄핵하고 구속 수사 처벌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는 김은숙, 박해영, 이우정 작가 등이 연명했다. 이들은 계엄령 사태를 언급하며 “우리가 당연한 듯 누리던 제작 자율성과 창작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불안이 방송 현장을 잠식하던 차에, 그날의 계엄과 포고령은 악마가 장막을 걷고 걸어 나와 그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낸 순간이었다”라고 표현했다. 일동은 “12월3일 그 한순간으로 국민적 자부심과 국격을 바닥에 패대기치고, K-콘텐츠의 위상과 성취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라고 짚었다. 이어 “우리의 현실은 판타지 SF 드라마가 아니다. 이런 ‘미치광이 캐릭터’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의 엔딩은 단 하나뿐이다”라며 “그자는 더는 단 한 순간도 이 나라의 대통령이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 시각예술인 638인, “어둠 속에서도 캔버스 위에 밝은 빛 그릴 것” 또, 같은 날 ‘자유와 민주를 바라는 시각예술인 638인’ 일동은 윤석열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시각예술인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미술계에서 단독으로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동은 성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유린한 이 행위에 대한 책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라며 “누구를 위한 국정이며, 누구를 위한 권력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어 “헌법을 짓밟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대통령은 자유와 예술, 그리고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비판했다. 일동은 “시각예술은 기억이자, 치유이며 희망이다”, “우리의 조각은 진실을 간직할 것”이라며 “자유와 민주주의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강력히 요구한다”라고 밝혔다. ■ 이현세 등 원로 만화가부터 강풀까지…문학계도 공동성명 발표 앞서 만화계와 문학계 등에서도 잇단 성명이 발표됐다. 지난 12일에는 국제PEN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작가회의 등 문학계 3개 단체는 공동성명을 내고 “윤석열의 즉각적인 체포와 군 통수권 박탈을 비롯해 즉각 탄핵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사)한국작가회의는 계엄령 사태 직후인 지난 4일에 이어 8일에도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 단체는 공동성명을 통해 “윤석열의 즉각적인 체포와 군 통수권 박탈을 비롯하여 즉각 탄핵할 것을 촉구한다”라며 “엄동설한의 거리와 광장에 모인 국민의 외침에 응답해 비상계엄 선포라는 내란 책동을 엄단함으로써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드높일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지난 11일에는 우리만화연대와 웹툰협회, 한국만화가협회 등 만화 협회·단체 17곳, 만화인 566명 일동은 ‘만화인 시국 선언문’을 통해 “윤석열을 탄핵해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키고 즉각 구속해서 철저히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만화인 일동은 이번 반란사태를 심각한 국가적 위기상황으로 보고 있다. 철저한 수사와 그에 따른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단이 나올 때까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성명에는 원로 만화가 이현세, 김동화 등과 황미나·윤태호·원수연, 웹툰 작가 강풀·하일권·천계영 및 학계와 평론가, 산업계 인사들이 연명했다. ●관련기사 : 문단부터 영화계까지…200여개 단체·5천명 문화예술인 시국선언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1206580227 봉준호 등 영화인 2천명·영화단체 77개 "尹 파면·구속하라"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1207580112

"친애하는 한강"…기립박수 속 한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

“디어 한강(친애하는 한강 작가). 스웨덴 한림원을 대표해 따뜻한 축하를 전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국왕 폐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나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강(54)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곳에서 한국인 작가와 아시아 여성의 이름이 불린 건 1901년 시작된 노벨문학상 역사상 처음이다. 한 작가는 이 시대 평화와 사랑의 가치, 문학이 갖는 의의를 전 세계에 전했다.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 그 중 이상적 방향으로 문학 분야에 뛰어난 기여를 한 이에게 수여되는 노벨문학상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순간이었다. 이날 현지 시각 오후 4시부터 시작된 노벨상 시상식은 1시간10분가량 진행됐다. 노벨문학상은 물리학, 화학 등에 이어 네 번째로 시상이 이뤄졌다.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이자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인 소설가 엘렌 맛손은 한강 작가의 작품을 흰색과 빨강, 두 색에 비유했다. 맛손은 “흰색은 화자와 세상 사이에 보호막을 긋고 있지만,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하다”면서 “빨간색은 생명을 의미하지만, 고통, 피, 칼의 깊은 상처를 나타내기도 한다”고 짚었다. 이어 그는 “그녀(한강)의 목소리는 유혹적으로 부드러울 수 있지만 형언할 수 없는 잔인함,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맛손은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연약하면서도 강하다며 작품 속에서 과거의 역사를, 질문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설 끝 한 작가의 이름이 호명되자,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일어섰다. 검정색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한 작가는 파란 카펫이 깔린 시상식장 한가운데 걸어가, 스웨덴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과 악수를 나눈 후 국왕으로부터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메달에는 노벨상의 상징인 ‘알프레드 노벨’의 얼굴이, 뒷면에는 한강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객석 내 1천500명의 청중은 환호와 존경의 기립 박수를 보냈다. 한 작가는 이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노벨상 연회장에서 국왕 등 1천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분가량의 소감을 밝혔다. 노벨상 만찬은 가장 큰 행사이자 전통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 작가는 어린 시절 풍경을 떠올리며 서두를 열었다. 여덟 살의 어느 날, 폭우가 내리던 그날 어린 한강은 처마 밑의 웅크린 아이들과 군중들이 저마다 자신처럼 비를 보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읽고 쓰는 데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면, 저는 이 경이로운 순간을 반복해서 다시 살아왔습니다. 언어의 실타래를 따라 다른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서 또 다른 내면과의 만남.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그 실타래에 맡겨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한강은 언어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특히 그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자연스럽게 어떤 형태로든 체온을 품고 있다. 문학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임이 분명하다”고 강조하며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작가는 역대 121번째이자 여성으로는 18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노벨상 시상식과 만찬을 마친 한 작가는 11일(현지 시각) 스톡홀름에서 한국 언론과 별도의 회견, 12일에는 스웨덴 왕립극장에서 독자들과 만나며 ‘노벨문학상 여정’을 마무리한다.

팔달노인복지관, 시니어 모델 ‘ESG 확산 런웨이’ 성료

수원시 팔달노인복지관이 지난 6일 ESG 실천과 노인인식 개선을 위해 추진한 ‘RE:MAKER ESG 확산 런웨이’를 성료했다.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을 통해 진행된 이번 사업은 ‘환경·노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의류 재활용 전문 시니어 모델 양성 프로그램’이다. 사업은 지역주민들의 의류를 기부받아 차별화된 ESG를 실천하는 동시에 시니어모델의 활동으로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기획됐다. 특히 경기수원시니어모델협회, 수원여대, 광교생태환경체험교육관과 지역주민들의 참여형 사업으로 운영됐다. 이날 ESG 확산 런웨이의 축하공연은 평균 나이 76세로 구성된 경기수원시니어모델협회 동아리 70+다시‘봄’에서 진행했다. 안혜숙 협회장은 ‘늙어가는 길’ 시낭송을 선보였고, 이어 강민주 강사의 코칭으로 만들어진 ‘촛불잔치’, ‘빗속의 여인’ 무대가 이어지며 관객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어 ‘청춘은 바로 지금’이라는 콘셉트로 시니어모델 14명이 각각 장롱 속 10년 이상 보관한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서는 1부 행사와 기부 받은 의류를 재활용한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걷는 2부 행사가 진행돼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윤학수 팔달노인복지관장은 “ESG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RE:MAKER’ 사업을 기획했다”며 “행사를 통해 ESG와 노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지역사회, 지역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ESG 복지경영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8년 3월 개관한 팔달노인복지관은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팔달구 어르신과 지역주민을 위한 평생교육, 복지프로그램, 사회체육프로그램 등 사업을 하고 있다.

한강 노벨상 연설, 31년 집필 인생… 내 모든 질문은 ‘사랑’ 향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 사랑이란 무얼까? /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고요한 음성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모두가 한강 작가만을 응시하는 가운데, 그가 나지막하면서도 담담한 목소리로 시 한편을 읽어 내려갔다. 1979년 4월 여덟 살의 나이에 써 내려간 이 시 이후 14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한강은 ‘쓰는 사람’이 됐다. 한강 작가는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실-빛을 내는 실.” 지난 7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이 주최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한강 작가는 ‘빛과 실’이란 제목의 8쪽 짜리 강연문을 발표했다. ‘채식주의자’부터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사랑과 폭력, 삶과 죽음 등에 관한 근본적인 고뇌를 청중과 나눴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매해 12월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 주간(Nobel Week·5∼12일)에 참석해 자신의 성취물이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연설을 한다. 노벨상 수상자의 ‘노벨 강연(Nobel Lecture)’은 공식 시상식(10일) 이전에 열리지만 사실상 ‘수상소감’으로 여겨지며 노벨상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불린다. ‘빛과 실’이라는 제목으로 8쪽 분량의 강연문을 준비한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최신작인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삶과 죽음, 폭력과 사랑 등 근원적 주제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를 청중들과 나눴다. 그는 ‘채식주의자’를 쓰던 시기 고통스러운 질문 안에서 머물렀다고 말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갔다. 그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한 그는, 열두 살의 나이에 서가에서 문득 발견한 ‘광주 사진첩’을 몰래 읽었을 때 솟구쳤던 근원적인 의문과 다시 마주하게 됐다. 5·18 광주를 다룬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게 된 고통스러운 질문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해도 되는가,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그는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두 질문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까지 글쓰기의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는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背音)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한강의 이날 강연은 온라인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한국 시간으로 8일 새벽 1시부터 약 1시간 10분 동안 진행된 강연은 노벨위원회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 됐으며, 900명 이상이 시청했다. 앞서 한강은 지난 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24년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강 작가는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라며 ‘문장, 언어, 우리, 실, 빛, 전류’를 키워드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한강 2024 노벨문학상 ‘노벨 강연(Nobel Lecture)’ 전문] 빛과 실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다. 표지에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제목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선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올라가는 여섯 단의 계단 모양 선 하나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일곱 단의 계단 같은 선 하나. 그건 일종의 표지화였을까? 아니면 그저 낙서였을 뿐일까?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페이지의 하단마다에는 각기 다른 날짜들이 시간순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의 두 행짜리 연들로 시작되는 시였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사십여 년의 시간을 단박에 건너, 그 책자를 만들던 오후의 기억이 떠오른 건 그 순간이었다. 볼펜 깍지를 끼운 몽당연필과 지우개 가루, 아버지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커다란 철제 스테이플러. 곧 서울로 이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동안 자투리 종이들과 공책들과 문제집의 여백, 일기장 여기저기에 끄적여놓았던 시들을 추려 모아두고 싶었던 마음도 이어 생각났다. 그 ‘시집’을 다 만들고 나자 어째서인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졌던 마음도. 일기장들과 그 책자를 원래대로 구두 상자 안에 포개어 넣고 뚜껑을 덮기 전, 이 시가 적힌 면을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 그후 14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5년이 더 흐른 뒤에는 약 3년에 걸쳐 완성한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시를 쓰는 일도, 단편소설을 쓰는 일도 좋아했지만-지금도 좋아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내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 여주인공 영혜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다. 사실상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혜와 인혜 자매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악몽과 부서짐의 순간들을 통과해 마침내 함께 있다. 이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으므로 마지막 장면은 앰뷸런스 안이다. 타오르는 초록의 불꽃 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 그 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체와 이탤릭체의 문장들이 충돌하며 흔들리는 미스터리 형식의 이 소설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여주인공은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힘을 다해 배로 기어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섯번째 장편소설인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은 여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한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촉각적 순간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 속력으로 전진한다. 영원처럼 부풀어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다음의 소설을 상상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이었다.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삶을, 세계를 끌어안는 그 소설을 눈부시게 투명한 감각들로 충전하겠다고. 제목을 짓고 앞의 20페이지 정도까지 쓰다 멈춘 것은, 그 소설을 쓸 수 없게 하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점까지 나는 광주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그러니까 2012년 봄,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한번도 풀린 적 없는 그 의문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래 전에 이미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 그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후 1년 가까이 새로 쓸 소설에 대한 스케치를 하며, 1980년 5월 광주가 하나의 겹으로 들어가는 소설을 상상했다. 그러다 망월동 묘지에 찾아간 것은 같은 해 12월, 눈이 몹시 내리고 난 다음날 오후였다. 어두워질 무렵 심장에 손을 얹고 얼어붙은 묘지를 걸어나오면서 생각했다.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9백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이후 광주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당연하게도 나는 그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던 상무관에서 첫 장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가 시신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 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완성해 마침내 출간한 2014년 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그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같은 해 유월에 꿈을 꾸었다. 성근 눈이 내리는 벌판을 걷는 꿈이었다. 벌판 가득 수천 수만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고, 하나하나의 나무 뒤쪽마다 무덤의 봉분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에 물이 밟혀 뒤를 돌아보자,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에서부터 바다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다 이 무덤들을 썼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래쪽 무덤들의 뼈들은 모두 쓸려가버린 것 아닐까. 위쪽 무덤들의 뼈들이라도 옮겨야 하는 것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지금.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나에게는 삽도 없는데. 벌써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 꿈에서 깨어나 아직 어두운 창문을 보면서, 이 꿈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꿈을 기록한 뒤에는 이것이 다음 소설의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어떤 소설일지 아직 알지 못한 채 그 꿈에서 뻗어나갈 법한 몇 개의 이야기를 앞머리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2017년 12월부터 2년여 동안 제주도에 월세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바람과 빛과 눈비가 매순간 강렬한 제주의 날씨를 느끼며 숲과 바닷가와 마을길을 걷는 동안 소설의 윤곽이 차츰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써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것은, 검은 나무들과 밀려오는 바다의 꿈을 꾼 아침으로부터 약 7년이 지났을 때였다. 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나는 이런 메모를 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바람과 해류. 전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이 소설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의 여정이 화자인 경하가 서울에서부터 제주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한 마리 새를 구하기 위해 폭설을 뚫고 가는 횡의 길이라면, 2부는 그녀와 인선이 함께 인간의 밤 아래로-1948년 겨울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의 시간으로-, 심해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의 길이다. 마지막 3부에서 두 사람이 그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힌다. 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촛불을 넘겼다가 다시 건네받듯 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책을 완성한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내가 그렇게 멀리 가는 동안, 비록 내가 썼으나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게 된 나의 책들도 자신들의 운명에 따라 여행을 할 것이다. 차창 밖으로 초록의 불꽃들이 타오르는 앰뷸런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있게 된 두 자매도. 어둠과 침묵 속에서 남자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는, 곧 언어를 되찾게 될 여자의 손가락도.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내 언니와, 끝까지 그 아기에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말했던 내 젊은 어머니도. 내 감은 눈꺼풀들 속에 진한 오렌지빛으로 고이던,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으로 나를 에워싸던 그 혼들은 얼마나 멀리 가게 될까?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심지에서 심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금(金)실을 타고? 지난해 1월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중철 제본에서, 1979년 4월의 나는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 한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나는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첫 장편소설부터 최근의 장편소설까지 내 질문들의 국면은 계속해서 변하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 질문들만은 변하지 않은 일관된 것이었다고. 그러나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정말 나는 2014년 봄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우리를 연결하는 고통에 대해- 질문했던 것일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경기상상캠퍼스, 어르신들 만든 이색 ‘굿즈’ 출시

경기문화재단 경기상상캠퍼스는 지난 6일 디자인 프로젝트 ‘다정다가감’을 통해 경기도내 어르신들과 제작한 시니어 굿즈를 출시했다. ‘다정다가감’은 도내 문화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 교육의 일환으로 문화 예술적 소질과 역량 발굴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된 디자인 기획됐다. 재단은 발달장애 디자인 그룹 ‘키뮤스튜디오’와 협업해 지난 10월부터 2개월간 파라밀노인복지센터 어르신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어르신들의 삶에서 가장 의미가 깊었던 이야기를 해보며 이를 담아낼 수 있는 키워드를 뽑아 상품을 제작했다. 어르신들은 아트숍을 방문하며 ‘굿즈’,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경기상상캠퍼스 내 디자인 특화 공간인 디자인스튜디오의 장비를 활용해 문화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하기도 했다. 특히 4차례의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드로잉, 캘리그라피, 실크스크린,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아트워크를 진행했다. 어르신들의 아트워크는 양말, 노트, 키링, 엽서 등 시니어 굿즈로 제작돼 경기상상캠퍼스 디자인1978 아트숍에서 판매되고 있다. 추후 제작한 문화상품은 온라인 아트숍과 문화누리 상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는 “어르신의 이야기가 담긴 문화상품은 도내 문화취약 계층 시설에 전달할 예정”이라며 “어르신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노년층의 문화 참여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파스칼 모라게스’ 국내 첫 협연… 경기필 ‘마스터즈 시리즈 V-버르토크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공연

경기아트센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을 주제로 ‘경기필 마스터즈 시리즈 V-버르토크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선보인다. 경기필은 오는 12일 오후 7시30분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13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김선욱 예술감독의 지휘로 ▲작곡가 진은숙의 수비토 콘 포르차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버르토크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작품116을 연주한다. 첫 곡은 작곡가 진은숙이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으로 작곡한 ‘수비토 콘 포르차’다. 김선욱은 피아니스트로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을 베를린필과 협연했으며, 정명훈 지휘로 서울시향과 음반을 발매하는 등 인연이 깊다.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은 1791년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에 작곡한 그의 마지막 협주곡으로, 파리 오케스트라의 수석이자 파리국립고등음악원 교수인 파스칼 모라게스가 협연한다. 이번 공연은 파스칼 모라게스의 국내 첫 협연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버르토크의 마지막 관현악 작품인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은 현대성과 민속성을 결합한 20세기 최고의 클래식 음악 작품 중 하나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과 함께 20세기의 고전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오케스트라 각 악기군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품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협연자로 나서는 셈이다. 오케스트라의 기능미를 탐구하기에 최적의 곡이다. 1악장의 엄숙함과 3악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에서, 끝악장의 삶의 긍정으로 옮겨 가는 점진적인 변화가 특징이다. 김선욱 지휘자는 “이번 공연은 어떤 상황을 극복하거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을 주제로 구성했다”며 “같은 클래식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고전과 구분이 명확하게 나뉘어 버린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은 본래 그것이 하나의 흐름이었음을 보여주고자 위대한 고전을 상징하는 베토벤을 주재료로 시대의 초월을 시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어지는 두 곡 역시 교향곡과 협주곡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작품”이라며 “당시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클라리넷의 등장에 매력을 느끼고 생의 마지막 협주곡을 작곡한 모차르트, 그리고 타지에서 생활하며 몸이 쇠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던 버르토크가 역경을 이겨내고 작곡해 더 높은 경지에 이른 작품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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