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두환 ‘한 줌의 재’를 향한 분노와 씁쓸함

누가 있어 맘 편히 이 문제를 논하겠는가. 더구나 안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배짱이 누구에게 있겠는가. 그렇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골은 떠돌고 있다. 사망한 것은 2021년 11월23일이다. 그때 화장된 유골이 연희동 자택에 있다. 안장한 것이 아니다. 안장할 곳을 찾지 못했다. 그 유골이 안장할 장소를 정해 가는 모양이다. 파주 장산리 한 사유지가 안장 장소로 알려진다. 가계약 상태로 유력히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해당 토지에서는 개성 등 북한 땅이 보인다고 한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북녘땅이 내려다보이는 전방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통일의 날을 맞고 싶다”고 했다. 이 소식에 박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파주시을)이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박 의원은 파주를 역사적 죄인의 무덤으로 만들지 말라고 페이스북에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 광주를 피로 물들인 사람,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7년 후퇴시킨 사람, 그러면서 죽을 때까지 역사 앞에 광주 앞에 사과 한마디 없었던 사람”이라며 “무슨 자격으로 파주에 오겠다는 거냐”고 했다. 그러면서 “탱크와 장갑차로 권력을 찬탈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파주에서 통일을 맞이하고 싶다는 것은 38선을 넘나드는 철새들이 웃을 일”이라며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라도 절대 파주에 묻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뿐만이 아니다.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전 전 대통령 안장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되는 듯하다. 한 진보 언론은 칼럼을 통해 전 전 대통령의 파주 안장은 ‘세상을 농락하는 것’이라며 저지 운동 참여를 독려했다. 정치권도 곧 가세하지 않을까 싶다. 시기적으로는 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있다. 민주계 정치권이 목소리를 높일 정치적 환경이다. 경험에 의하면 안장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혹 안장을 한다 하더라도 무덤 관리가 제대로 될지 안심할 수 없다. 우리의 골 깊은 문화 중 부관참시가 있다. 망자의 유해에 가해지는 처벌이다.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항의 방문, 파묘 협박 등의 소요가 계속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유족들이 이런 앞날을 예상 못할 리 없다. 다른 처리 방안을 고민해 봄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다만, 유골 항아리를 향한 분노도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생전 범죄를 두둔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이 사회에서 ‘전두환이 옳았다’는 주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2년째 묻히지 못하는 ‘유골 항아리’를 보는 시선은 개운하지 않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같은 쿠데타, 광주학살의 주범이다. 대통령에 올라 천문학적 뇌물까지 챙기며 호의호식했다. 하지만 사망한 뒤 원하는 곳에 안치됐다. 뭘 그렇게 대단한 사과를 했다고 차별을 해야 하는가 싶다. 세계적으로 이런 예가 있기는 한가 싶기도 하다. 1980년대. 한국 사회에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친일파에 대한 재평가도 시작됐다. 그때 지역의 이슈는 ‘홍난파’였다. ‘고향의 봄’으로 상징된 국민 작곡가였다. 그 오욕의 역사를 바로잡자는 혈기들이 탱천했다. 팔달산에 홍난파 노래비가 대상이었다. ‘홍난파 노래비를 파괴하자’는 시도가 한참 갔다. 전 전 대통령 유골 비극에서 그때 역사를 본다. 망자에 대한 책임 추궁, 망자에 대한 용서와 분노, 망자가 남긴 흔적에 대한 물리적 위해. 옳고 그름을 답하지 않겠다. 다만, 이런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워 보이는 것만은 틀림없다.

[사설] 선심성 퍼주기 경쟁만 하는 예산 증액은 안 된다

국회는 지난 13일부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예산안조정소위원회에서 새해 예산안 심사를 시작했다. 소위원회는 15명으로 구성되며, 예산안 세부 증감을 논의, 여야 합의가 수월하게 이뤄지면 오는 30일 예결특별위원회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 회부, 표결 처리된다.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은 12월2일이다. 정부가 지난 8월 올해 예산보다 2.8% 증가하는 데 그친 656조9천억원 규모의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005년 이후 19년 만에 최소 증가폭이다. 세수가 60조원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건전재정 기조하에 편성한 예산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31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새해 예산안은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 23조원 규모의 지출을 구조 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예산심의 과정을 보면 이런 정부의 예산편성 기조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 세수 펑크가 60조원 예상되는 상황에서 새해 재정 운용이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특히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여야 정당이 포퓰리즘 예산 증액을 주장하고 있어 재정 파탄이 우려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난 13일 ‘5대 분야 40대 증액사업’을 제시했다. 정부의 정책과는 달리 명절 기간 반값 여객선 운영 등 대중교통 이용을 지원하겠다는 등 당장 급하지 않은 항목도 적지 않다. 타 지역 기업 인턴 참여 청년에게 체류 지원비 지급 등 현금성 지원도 다수 포함돼 있다. 어르신 무릎관절 수술 지원 1천명 확대, 어르신 임플란트 지원 개수 2개에서 4개로 확대 등 노인 복지 지원책도 눈에 띈다. 양극화 해소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이는 친여 성향인 노인 표심을 의식한 선심정책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증액 요구는 여당보다 더욱 크다. 지난 6일 예산안 심사 방향을 밝히면서 5대 생활 예산 추진을 발표했는데, 이에는 월 3만원만 내면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하게 해주는 ‘청년 3만원 패스’와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 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또 행정안전위원회는 정부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된 ‘지역사랑상품권’ 사업 예산을 올해의 3천525억원에서 7천53억원으로 2배 증액했다. 경제적 타당성과 효과에 대한 충분한 검토없이 단순히 선거 때 표를 의식해 선심성 예산을 편성한다면, 이는 국가 재정 운용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올해 60조원의 세수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나라 곳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선심 쓰기 경쟁에 몰두한다면, 이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인지 묻고 싶다.

[사설] 신규 택지개발, 교통망•자족기능 갖춰야 수요 따른다

국토교통부가 수도권 3곳, 비수도권 2곳 등 8만호 규모의 신규 택지 후보지를 15일 발표했다. 수도권 신규 택지는 오산세교3(3만1천가구), 용인이동(1만6천가구), 구리토평2(1만8천500가구)로 총 6만5천500가구를 공급한다. 모두 경기도다. 오산세교3은 이번에 발표한 신규 택지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오산시 가수동, 가장동, 궐동 등 433만㎡(131만평) 일대에 조성한다. 이곳은 화성∼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의 중심부다. 1호선 오산역에 수원발 KTX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연결이 추진되고 있어 철도 접근성이 좋아지는 곳이다. 정부는 이런 입지 특성을 고려해 연구개발(R&D) 업무 등 반도체산업 지원 기능을 강화하고, 세교1·2지구 거주자까지 이용할 수 있는 복합커뮤니티시설을 만들어 자족형 도시를 조성할 계획이다. 용인이동은 앞서 발표한 평택지제역 역세권 신규 택지와 같은 ‘반도체 신도시’다.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덕성리, 천리, 묵리, 시미리 일대 228만㎡(69만평)에 조성된다. 지구 남쪽에 용인 첨단반도체 국가산업단지가, 동쪽에는 용인테크노밸리가 붙어 있다. 이에 용인이동 지구는 정보기술(IT) 인재들을 위한 생활 인프라를 갖춘 반도체 배후도시로 조성된다. 서울과 가까운 구리토평2는 구리 교문동, 수택동, 아천동, 토평동 일대 292만㎡(88만평)에 조성된다. 이곳은 한강변이라는 장점을 활용해 주거단지는 한강 조망으로 특화하고 수변 여가·레저 공간도 조성한다. 국토부는 2025년 상반기까지 신규 택지 지구 지정, 2026년 하반기 지구계획 승인, 2027년 상반기 최초 사전청약과 주택 사업계획 승인 등의 추진 계획을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공급 규모가 수요 충당에 부족하다고 보면서도 주택 공급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긍정 평가했다. 다만 사업이 지연되거나 좌초해 정책 신뢰성이 떨어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만큼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게 정책 지원이 필수라는 지적이다. 가장 큰 과제는 지구 내 교통 편의성 등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야 하는 것이다. 정부는 신규 택지 발표 때마다 자족기능을 갖춘 도시, 광역교통망 대폭 확충을 공언한다. 하지만 2기 신도시의 광역교통망은 여전히 미흡해 주민 불만이 크다. 최초 입주한 동탄1신도시를 기준으로 입주 16년 차에 접어들었는데도 동탄1·2 신도시의 교통난은 심각하다. 김포도시철도의 극심한 혼잡은 김포시의 서울 편입론을 부른 요인이기도 하다. 광역교통망이 계획대로 연결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택지별 특징을 좌우하는 자족기능을 갖출 수 있게 적극적으로 정책 지원을 해야 한다. 해당 지역들은 주거 선호도가 그리 높지 않아 충분한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

[사설] 대형 판매시설 아무 곳에나 적재물, 화재 시 피해 커질 수밖에

비상구는 생명의 문이다. 화재나 지진 등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날 경우 신속히 대피할 수 있게 마련한 출입구다. 비상구가 폐쇄돼 있거나 주변에 물건을 잔뜩 쌓아놓으면 사고가 날 때 대피가 어려워 인명 피해가 커진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에선 창고가 아닌 통로나 지하주차장 등에 물건을 잔뜩 쌓아 놓고 있는데 이 또한 화재시 상당히 위험하다. 2017년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사우나실 내부의 비상구 폐쇄로 인해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난해 9월 7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친 대전 현대아울렛의 지하주차장 화재도 적재물 방치가 화를 키웠다. 전기차 충전소 주변에 화재 위험성을 키울 박스와 갖가지 적재물이 오랫동안 방치돼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구 폐쇄나 그 주변의 각종 적재물은 비상사태 시 통행이 어려워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 대형마트의 통로나 주차장의 무분별한 물건 적재도 마찬가지다. 소방당국이 지속적인 계도와 점검을 하지만 낮은 안전의식과 무관심 등으로 크고 작은 비슷한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백화점, 대형마트 등 경기도내 대형 판매시설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는 모두 754건이다. 판매시설에서 불이 난 건수가 한달에 20여회에 달한다. 올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총 184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본보 기자가 도내 대형 판매시설의 적재물 실태를 긴급 점검했다. 안양시 범개동의 한 아울렛은 1층 물류창고 옆에서 지하주차장 입구까지 수백 개의 상자가 쌓여 있었다. 창고 밖에 ‘적재 금지’라는 표지판이 4개 있지만 소용없었다. 심지어 소화기까지 가렸다. 수원시 권선동의 한 대형마트 역시 주차장 출구부터 물류창고 앞까지 식품, 가전제품 등 수십 개의 물건이 놓여 있었다. 대형 판매시설들이 정해진 공간이 아닌 곳에 물류를 적재하는 사례가 많아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화재가 나서 쌓아둔 상자에 불이라도 붙으면 더 큰 불로 번질 수 있어 물류 보관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데 지켜지지 않고 있다. 소방당국이 소방시설법에 따라 매년 종합 정밀점검을 하고 있지만 물류 적치에 대한 단속은 이뤄지지 않는다. 물건 적치의 경우 고정시설이 아닌 이동 가능한 물품이어서 그 자체가 소방법 위반 사항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재 발생 시 화재를 더욱 키울 위험성이 있고 피난로에 장애가 될 수 있는데도 안일하고 소홀하다. 관련법 보완과 함께 지방자치단체의 점검, 계도, 단속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해당 점포들이 안전의식을 높여야 한다.

[사설] 여야 합의 ‘1기 신도시 특별법’, 연내 입법 추진해야

분당·일산·평촌 등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한 ‘노후계획도시 정비지원 특별법’이 연내 국회를 통과할 것 같다. 부동산 시장 안정 등을 이유로 미온적이던 더불어민주당이 1기 신도시 특별법의 연내 제정을 공식화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표심을 겨냥한 조치로 보인다. 총선을 5개월 앞둔 상황에서 여당의 ‘메가시티’ 추진이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키면서 여야가 수도권 공략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덕분에 1기 신도시 특별법 추진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1기 신도시 특별법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논의 중이다. 특별법의 대상은 택지 조성 20년이 지난 100만㎡ 이상의 모든 지역이다. 특별법이 통과되면 이들 지역은 ‘노후계획도시’로 지정돼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 용적률 상향, 리모델링 규제 완화 등의 혜택을 받게 된다. 경기도내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1기 신도시 5곳뿐 아니라 인천 연수, 서울 상계·중계, 부산 해운대 등 전국 51개 지역이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정부가 노후계획도시를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해 재건축하자는 방안을 내놓은 게 지난 2월이다. 여야 의원들도 관련 법안을 13개나 발의했다. 그런데도 국토교통위 소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해 도시 노후화로 고통받는 주민들의 민생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샀다. 여야는 1기 신도시 특별법을 논의하면서 ‘수도권과 특정 지역에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의견이 엇갈렸다. 법안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한 상황에서 김포시의 서울 편입 이슈가 커지자 야당이 태도를 바꿨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최근 “1기 신도시 생활 편리성과 안전성을 높이고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을 연내 통과시킬 수 있도록 민주당이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모처럼 여야가 법안 처리에 의기투합했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양당이 연내 특별법 통과를 공언한 만큼 소위에서 논의 시간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현재 특별법 통과 시기와 관계없이 내년을 목표로 1기 신도시 정비 관련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있다. 마스터플랜이 마련되면 지자체장이 이를 바탕으로 기본계획을 세우게 된다. 1990년대 초에 건설된 1기 신도시는 입주 30년이 넘어 노후화가 심각해 주민 생활환경이 열악하기 짝이 없다. 도시의 슬럼화를 더 이상 방치해서 안 된다. 1기 신도시는 국가 주도로 조성된 만큼 대규모 정비 사업 또한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책임있게 진행해야 한다. 1기 신도시 특별법은 여야의 대선 공약이다.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길 바란다.

[사설] 벽화마을인가, 낙서마을인가/관리 못할 거면 모두 지워라

​벽화마을의 시초는 2008년이다. 부산 남구 문현동 산 23-1 일대였다.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이 마을에 벽화가 그려졌다. 사진을 찍는 외지인들이 찾았다. 점차 일반 관광객까지 몰렸다. 영화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전국에 벽화마을 조성 붐이 일었다. 이 마을의 그 후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10년을 못 가 무너졌다. 낙후 지역이었던 마을이 재개발로 결정되면서다. 이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기억 너머 마을이다. 멀쩡한 아파트 벽면에 그림을 그리지는 않는다. 낙후됐거나 오래된 주택가가 캔버스다. 자연스레 재개발에 대한 수요가 큰 지역들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없어질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어차피 버려진 골목에 그림 한 번 그리는 성격이 강했다. 지자체로서는 그만큼 접근하기 좋은 사업이었다. 그래서 많은 벽화 마을이 생겼다. 너도나도 예산 들여 만들고 홍보했다. 그렇게 등장했던 벽화마을은 다 어떻게 됐을까. 본보가 몇 곳 봤다. 안양시 만안구 양화로 일대 마을이다.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은 형체도 없다. 페인트가 다 벗겨져 흉물스럽다. 녹물이 흘러내려 그림을 덮어 버렸다. 수원특례시 행궁동에도 벽화마을이 있다. 조성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곳이다. 눈살 찌푸리게 하기는 여기도 마찬가지다. 그림 일부의 페인트가 벗겨져 나갔다. 떨어진 페인트 조각들이 골목에 널려 있다. 행궁동은 전국에 소문난 명소다. 관리 안 된 벽화로 그 명성이 흠집 나고 있다. 지자체에 관리 문제를 물었다. 돌아온 답변이 이랬다. ‘벽화가 조성된 지 10년 전이라 그 당시 자료도 찾기 힘들고, 현재 담당자도 없다. 도시재생을 위한 일회성 사업이었기 때문에 관리 예산을 배정했던 적도 없는 것으로 안다.’ 불과 10년 전에 이뤄진 행정이다. 자료가 없어질 세월이 아니다. 담당자 바뀐다고 행정이 중단되는 것도 아니다. 도시재생은 지역을 살리는 복합 개발 행정이다. 요소 하나하나가 지속·포괄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개인이 조성한 벽화마을이더라도 마찬가지다. 도시 미관을 지도·관리하는 것도 행정의 영역이다. 지도하고, 관리했어야 맞다. 그랬다면 저렇게까지 버려졌을 리 없다. 벽화마을이 아니라 차라리 낙서마을에 가깝잖나. 애초부터 잘못된 행정이긴 하다. 그렇다고 과거만 타박할 순 없다. 현재 행정이 해야 할 일이 분명 있다. 벽화마을의 실태부터 파악해야 한다. 없앨 벽화는 모두 정리해야 한다. 거의 대부분이 정리 대상일 것이다. 차제에 벽화마을 조성에 대한 절차를 정식화할 필요도 있다. 벽화마을 조성에 앞서 심의위원회를 거치는 등의 방법이다. 전문가와 시민, 동네 주민도 참여하면 더 좋다. 큰 예산이나 많은 인력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잖나. 어떻게든 손대야 한다. 저 흉한 벽을 두고 볼 순 없잖은가.

[사설] 학교에 언어재활사 의무 배치 절실하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언어장애를 겪는 학생들이 크게 늘었다. 특히 코로나19 유행 기간에 급증했다. 마스크 착용과 대면 접촉 제한으로 학생들이 의사소통할 기회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언어장애 학생은 매년 늘어나는데 이들을 도와줄 언어재활사는 턱없이 부족하다. 교육당국은 학교 언어재활사 배치가 의무사항이 아니라며 외면하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 초·중·고 특수교육 대상자 가운데 언어장애 학생은 2만7천21명(특수학교 5천855명, 일반학교 2만1천166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만3천966명보다 12.7% 늘었고, 2021년 1만9천102명과 비교하면 41.5% 증가했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통합학급)에 다니는 언어장애 학생은 2021년 1만4천440명에서 올해 46.6% 늘었다. 언어장애 학생 10명 중 8명이 일반학교에 다니는 셈이다. 최근 5년간 경기도내 특수교육 대상 학생 중 의사소통 장애를 가진 학생은 2018년 345명, 2019년 402명, 2020년 527명, 2021년 546명, 2022년 606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21년 743명이던 도내 언어재활 지원 학생은 2022년 4천223명으로 늘었다. 언어재활을 희망하는 학생이 4천명이 넘는데 도내에 배치된 언어재활사는 고작 4명이다. 언어재활사 1명당 8명만 재활을 받을 수 있어 도움받는 학생은 30여명뿐이다. 현재 언어재활사 규모는 언어장애 학생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일선학교 현장에는 언어재활사가 없다. 특수학교도 언어재활사 81명이 전국의 언어장애 학생 5천855명을 책임지고 있다. 특수학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반학교는 더 열악하다. 학교 언어재활사는 의사소통, 읽기, 쓰기 등에 문제를 보이는 학생들을 발굴·진단하고 언어 치료를 담당한다. 언어재활이 필요한 학생들은 조기에 치료해야 한다. 이는 의사소통 문제를 넘어 학습, 교우 관계, 학교 생활 등 더 큰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마다 언어재활사를 의무 배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그러다 보니 교육당국의 무관심 속에 학생들이 방치되고 있다. 1950년대 이후부터 미국, 영국, 캐나다가 공립학교의 언어재활사 의무 배치 제도를 시행하는 것과 비교된다. 우리나라도 2021년 특수학교 또는 시·도 교육행정기관에 언어재활사를 두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언어장애 학생들이 제때 효율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게 언어재활사 의무 배치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사설] 몸 다치게 하는 노인 일자리는 복지 아니다

74세 할머니가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다. 수십년간 운영하던 식당을 닫았다. 생계가 막막하던 할머니에게는 새로운 생계수단이었다. 복지관에서 소개해줘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않아 물건을 옮기다 발목 골절상을 당했다. 일자리는커녕 평상시 활동까지 어렵게 됐다. 생계를 위한 일자리가 생계를 더 위협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마땅히 의지할 가족이나 경제력이 없다. 할머니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사고가 된 셈이다. 경기일보 기자가 확인한 사연만도 여러 건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경기도에서 노인 일자리에 참여한 노인이 38만778명이다. 해마다 그 수가 늘고 있다. 2018년 5만4천736명, 2019년 7만780명, 2020년 7만4천724명, 2021년 8만9천155명, 2022년 9만1천383명이다. 노인 일자리는 노인복지의 핵심이다. 경제적 지원이라는 측면 외에 근로기회 제공이라는 소중한 의미도 있다. 노인 인구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우리다. 노인 일자리는 앞으로도 확대돼야 한다. 그런데 일자리 현장에서 안전대책은 충분치 못하다. 앞선 할머니의 사례처럼 일자리 현장에서 다치는 노인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경기도에서 발생한 노인 일자리 안전사고는 1천25건이다. 2018년 140건에서 2022년 231건으로 늘었다. 이 중 사망자도 2명 있다. 사고 유형별로 보면 골절 56%, 타박상 12%, 염좌 6% 등이다. 전문가들은 노인 일자리 사업과 안전사고 예방은 동전의 앞·뒷면이라고 강조한다. 노인은 신체적으로 약하다. 안전사고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신체 건강한 노동자들의 경우와는 다른 수준의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이 따라주지 못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데만 주력한다. 노인 일자리 참여자를 대상으로 하는 안전교육 규정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5시간 이상 안전교육이 전부다. 교육 이후엔 노인들 스스로 주의해야 한다. 담당 공무원들은 예산 부족을 호소한다. 정부가 지원하는 예산으로는 인건비 지급이 우선이라고 한다. 안전을 위한 조치에 쓸 돈이 없다는 얘기다. 정말 그럴까. 노인 일자리 사업 자체에 노인 안전사고 예산이 포함됐다고 해석해야 옳지 않나. 당연히 사용해야 할 안전사고 예방 예산을 인건비 지급에 모두 털어넣는 것은 아닐까. 노인에게 부상은 영구 질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을 뻔한 일자리가 돼선 안 된다. 빙판 길에서 교통안전원으로 일하는 노인, 언제든 넘어질 수 있다. 추운 새벽 대로변에서 휴지를 줍는 노인, 언제든 쓰러질 수 있다. 이들을 보는 시민들은 아슬아슬하다. 이 위험천만한 모습을 보면서 노인복지 천국이라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다. 노인 일자리 숫자를 늘리려고만 하지 말고, 노인 안전 장치 마련도 병행해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노인 복지다.

[사설] 샤인머스캣, 마구 심다 보니 위기 초래/포도 농가 공멸 막으려면 대책 토론해라

포도 샤인머스캣은 귀족 과일로 불렸다. 종전 품종에 비해 그만큼 혁신적이었다. 높은 당도와 섭취 편의성이 월등했다. 2014년 국내에서 생산 판매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판매 가격도 그만큼 높았다. 포도 농가에는 기적의 품종이었다. 그랬던 샤인머스캣의 위상이 갑자기 무너지고 있다. 당도가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비자 선택도 눈에 띄게 뜸해지고 있다. 소비가 줄고, 가격 떨어지고.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본보 취재진이 심각한 현장을 둘러봤다. 11일 수원특례시의 한 전통시장 청과물 가게다. 판매 가격은 4㎏에 3만5천~4만5천원대다. 4~5년 전만 해도 8만~10만원대였다. 가게 입구에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당도 월등 보장’이라는 안내다. 뿐만 아니다. 사장이 손님들에게 일일이 설명한다. ‘도매시장에서 직접 먹어보고 맛있는 것만 골라왔다.’ 가격은 절반으로 떨어지고, 당도를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취재하는 동안 판매된 것도 없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자료에 기초한 도매가격 변동을 보자. 가락시장 거래물품을 중심(2㎏)으로 2020년 3만5천56원이었다. 그게 정점이었다. 이후 2021년 3만2천931원, 2022년 2만7천334원, 올해 2만4천13원이다. 비슷한 기간 동안, 포도 농가에 큰 변화가 있었다. 2016년 이후 국내 재배 면적이 늘었다. 2018년에는 묘목 품귀현상도 발생했다. 기존 포도나무를 작파하고 너도나도 바꿨다. 새롭게 시작하는 농가도 많았다. 재배 면적은 2016년 278㏊였다. 이게 매년 급증해 2023년에는 6천576㏊로 늘었다. 전체 포도 농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급격히 증가했다. 2016년 1.9%에서 2023년 44.4%나 됐다. 많은 양이 생산되니까 값이 싸지는 것은 당연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맛있는 샤인머스캣을 싸게 먹을 수 있는 조건이 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제품의 질, 즉 당도 자체가 나빠졌다는 것이다. 소비자, 전문가, 농가까지도 이 사실을 인정한다. 잘못된 재배 남발이다. 샤인머스캣이 식생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 적당한 기후와 토양, 일조량 등이 맞아야 한다. 이 조건을 무시한 재배는 모양만 같을 뿐 사실상 다른 종류의 포도라고 봐야 한다. 2016년 이후 이런 농가가 급증했다. 키워선 안 되는 곳에서 마구 키우기 시작했다. 지금 시중에 나도는 당도 떨어지는 샤인머스캣이 그렇게 생산된 것이다. 포도 농가 내부에서도 이런 결과를 우려했었다. 다들 ‘올 것이 왔다’는 탄식을 쏟아낸다. 이렇게 된 이상 공론화해라. 까놓고 토론해라. 포도농가연합회, 재배 농가 대표, 지자체 또는 농업 단체가 머리를 맞대라. 안 그러면 기적의 귀족 과일이 전통적 포도 농가까지 씨를 말리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가벼이 듣지 마라.

[사설] 국회는 선거법 개정을 조속히 마무리해야

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5개월도 남지 않았다. 내달 12일부터는 내년 4월10일 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들로부터 예비등록을 받는다. 그러나 아직도 국회는 선거의 기본적인 경쟁 규칙을 규정하고 있는 선거법 개정을 하지 않아 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들은 물론 유권자들로부터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현행 선거법에는 선거일 1년 전까지 선거구 획정을 비롯한 선거에 대한 기본적인 규칙을 정하도록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이런 법정 시한을 무시하고 있다. 현행 선거법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둬 ‘위성정당’이라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정당을 출현시켰는가 하면, 선거운동 방식이 현역만 유리하고 정치 신인에게는 불리한 내용으로 규정돼 있어 이에 대한 개정 요구가 정치권은 물론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됐다. 이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친 공청회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개정 윤곽을 확정했다. 즉, 여야는 1개의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1명을 선출하는 기존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3개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뽑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의 전환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석수와 할당 방식에 대해 여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21대 총선에서 문제가 된 ‘위성정당’을 막기 위해 병립형을 주장하고, 또한 의석 수 축소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준연동형에 비례성과 대표성 강화를 위해 의석 수 증가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여야 정당 간 이견에 대해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9일 각 정당 지도부에 대해 속히 선거제 개편 관련 의견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늦어도 11월에는 선거법 개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야 정당은 선거법 개정 논의는 고사하고 ‘입법 폭거’, ‘탄핵’ 등을 외치면서 서로 정쟁만 하고 있어 선거법 개정은 언제할지 감감무소식이다. 이런 국회의 행태는 마땅히 지탄받아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21대 국회 때와 똑같은 상황으로 간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21대 선거일 39일 전, 20대에는 42일 전에 여야가 선거법 개정에 겨우 합의했는데 이번 역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선거에서 게임의 규칙은 민주성·공정성·대표성이 전제돼야 한다. 현재와 같이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유리하고 정치 신인에게 불리하며, 꼼수 위성정당을 만드는 선거법으로 정치개혁은 안되기 때문에 국회는 속히 선거법 개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