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형마트 의무 휴업, 실패로 끝난 13년 실험

대형마트 의무 휴업은 전통시장에 득이 됐는가. 2012년 규제가 시작된 이후 이런 통계는 하나도 없다. 작금에 뿌려진 통계들만 보더라도 그 실상이 적나라하다. 지난해 9월 서울신용보증재단이 발표한 보고서의 한 부분이다. 의무 휴업하는 일요일에 상권 유동 인구가 0.9% 감소했다. 음식점이나 소매업 등 골목 상권 매출액도 1.7% 줄어들었다. 대형마트가 쉬면 소비자들이 나오지 않고, 소비자들이 없으니 골목시장도 한산해진다는 통계다. 이와 직결되는 조사도 있다. 대구시가 처음으로 대형마트 휴업일을 월요일로 바꿨다. 대구시에서 지난 9월 조사해 밝힌 통계가 있다. 슈퍼마켓, 음식점 등 골목상권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9.8% 증가했다. 음식점과 편의점은 25.1%, 23.1% 늘었다. 전통시장의 매출도 2.4% 증가했다. 물론 대형마트와 SSM 매출도 6.6% 늘었다. 매출이 줄어든 곳은 백화점과 대형 쇼핑센터뿐이다.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대형마트와 골목시장 매출 추이다. 소비자의 시각에서 집계된 통계도 보자. 한국경제인협회가 성인 남녀 1천명을 설문한 결과다. 21일 발표한 이 자료에서 응답자 76.4%가 의무 휴업 제도를 폐지·완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평일로 바꾸자는 주장이 33%, 폐지하자는 주장이 32.2%였다. 조사 대상이 소비자다. 생활의 편의를 위한 소비자 희망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조사에서도 의미 있게 볼 항목은 있다. ‘전통시장을 찾는다’는 11.5%에 불과했다. 안 가는 것이다. 대단히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3년 전 시행 때도 충분히 예견됐다. 그게 증명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가야 할 정책 방향은 수정 내지 폐지다. 대구시를 필두로 서울지역 지자체와 경기지역 지자체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은 있다. 하지만 아직도 다수 지자체는 여전히 휴일 규제를 지속한다. 합리적 판단이 아니다. 정서에 기댄 판단이고 정치를 셈한 판단이다. 무책임∙무소신 행정이다. 짐작건대 이것밖에 할 게 없어서다. 가장 손쉬운 생색 내기라서다. 역설적으로 보자.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 아닌가. 전통시장 투자에 우선순위가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 의무 휴업 제도에 손을 안 대는 것이다. 국가가 유지하는 정책이니 지자체가 신경 쓸 일도 없고, 규제를 유지하는 데 지자체 예산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두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전통시장 활성화에 대한 직무 유기 범죄다. 이 대형마트 휴일 의무 휴업 규제가 폐지됐다. 평일에 휴업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발표했다. 현실, 통계에 기초한 결정이다. 높이 평가한다. 짐작건대 또 재래시장으로 달려가는 무리는 생길 것이다. ‘재래시장 죽이기’라며 선동도 할 것이다. 대개 13년 전 의무 휴업 규제를 밀었던 그 세력들일 것이다. 전통시장이 확 살아날 것이라고 선동하던 그 세력들일 것이다. 배신감과 무능함을 생각하면 지금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 돌팔매 맞을 이들은 그들일 것이다.

[사설] 메가시티∙북자도, 아주 많은 지역이 관심 안 둔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행정구역 개편을 얘기했다. 앞서 당이 제시했던 ‘서울 편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른바 메가시티 논쟁에 대한 당의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다. 18일 비대위 회의에서 직접 밝힌 방향이다. 한 위원장은 그 방향을 ‘주도적으로·적극적으로·지역 시민 뜻에 따라’라고 규정했다. 국민의힘이 여전히 문제를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야권을 중심으로 나오는 김포 서울 편입 무산에 대한 반박의 의도가 엿보인다. 당연히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 의지의 재확인 정도로 본다. 다만 ‘경기도 분도’를 함께 거론했다는 점은 주목된다. 서울 편입 문제뿐 아니라 경기도 분도 문제도 ‘주도적으로’ 임하겠다고 했다. “두 가지는 양립 가능한 것이고 해당 지역 시민들의 생각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편입 문제와 경기 분도 문제는 여야가 각기 내놓은 제언이다. 총선을 앞두고 서로 옳다고 비교하며 대립시키는 구도에 올려 놨다. 이 둘을 긍정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경기도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다. 김동연 지사의 역점 사업이다. 만성적인 경기 남북 간 경제력 차이가 배경이다. 고속도로 800㎞·80㎞, 산업단지 173개·57개, 종합병원 44개·15개, 재정 28조원·9조4천억원이 경기 남부와 북부의 현실이다(2019년 현재). 무엇이든 해야 할 상황이고, 그래서 꺼내든 김동연표 분도다. 그런데 이게 정부로부터 외면받았다. 김 지사가 재추진을 천명했고, 여기서 등장한 게 ‘총선 공통 공약 채택’이다. 경기도 전체가 공약하자는 제안이다. 여기에 과함이 있음은 이미 우리가 지적한 바 있다. 경기 북부 10개 시∙군과 경기 남부 21개 시∙군의 입장이 다르다. 적어도 북자도를 대하는 절박함에 있어 지역별 차이가 있음이 분명하다. 무리하게 전체 공약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지역이 많다. 지역구별 공약 순위도 줄줄이 깔려 있다. 국민의힘의 메가시티 공약도 다르지 않다. 더 극명하게 찬반이 갈린다. 김포, 남양주, 하남, 구리, 과천 등 일부만의 관심사일 수 있다. 공통 공약에 짜증 낼 지역들이 곳곳에 있다. 과거 수원, 오산, 화성의 행정구역 개편이 뜨거웠던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금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달궈졌다. 십수년 지났고, 이제 지역 화두에서도 사라졌다. 수백년 경기도 땅을 서울에 편입하는 것, 결코 쉽지 않다. 경기 북부를 특별자치도로 완전 독립시키는 것, 말처럼 쉽지 않다. 해당 주민에게는 간절한 소망일 수 있다. 그 지역의 최대 공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경기도 전체를 덮고 가야 할 시급하고 공통적인 소재는 아니다. 급하고 간절한 공약이 얼마나 많은데.

[사설] 여야의 저출산 대책, 空約 아닌 公約돼야

우리나라가 당면한 최대의 국정 과제는 저출산 늪에서 벗어나 국가 소멸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의 합계출산율은 0.68명으로 세계 최하위다. 오는 2026년에는 0.59명이 예상돼 해외에서도 국가소멸을 걱정할 정도로 저출산 문제는 심각한 과제다. 이런 저출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모처럼 여야가 한목소리를 냈다. 매일같이 정쟁만 해 국민들의 피로감이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18일 여야는 나란히 저출산 위기 대책을 발표했다. 일부 내용은 기존의 저출산 대책을 다소 확대했거나 재원 조달면에서 실효성에 의심되는 내용이 있기도 하지만, 여야가 정책경쟁을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총선 공약 1호로 부총리급의 인구부 설치와 배우자의 출산휴가를 현재 10일에서 한 달로 늘리고,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신청만으로 자동 개시되도록 했다. 육아휴직 급여 상한도 현재 월 상한 150만원에서 210만원으로 인상을 추진했으며, 대체인력지원을 위한 고용지원금도 현행 80만원에서 160만원으로 2배 인상했다. 한편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인구위기대응부의 신설과 함께 신청 시 자동으로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방안을 제시했다. 2자녀 출산 시 24평 주택을, 3자녀 출산 시 33평 주택을 각각 분양전환 공공임대 방식으로 제공하는 대책도 발표했다. 또 모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0년 만기 1억원을 대출해주며, 출생 자녀수에 따라 무이자 전환, 원리금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여야의 저출산 대책은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정부 부처의 신설과 육아 휴직을 신청하면 자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점에서 공통이다. 그러나 재원 규모에 있어 여당은 3조원, 야당은 28조원을 제시해 차이를 나타내고 있으며, 재원 조달 방법에도 서로 다른 방안을 제시하고 있어 이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요구된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관련 대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으며 또한 지난 16년간 무려 280조원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합계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이 여야 공히 공감대를 형성, 저출산 대책을 추진하기 바란다. 우리보다 출산율이 2배 정도 높은 프랑스가 출산 휴가를 6개월로 늘리고, 영국도 무상보육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파격적인 대책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이번 여야가 공히 발표한 저출산 대책이 말로만 하는 ‘헛공약’인 空約이 아닌 ‘참공약’인 公約으로 이행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설] 한국마사회, 부패 근절과 거꾸로 달려가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되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구속까지 됐던 비위 직원을 공공기관이 다시 채용했다. 그것도 10년 장기 채용에 보수까지 넉넉히 줬다. 이게 뒤늦게 들통나면서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다. 그러자 이제는 해직할 근거가 없다며 넘어가고 있다. 그러고는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며 말뿐인 사과다. 말도 안 되는 재채용이 왜 가능했는지를 조사해 밝혀야 하지 않나. 당사자를 포함해 관련자들의 책임이 따라야 정상 아닌가. 국민의 공공기관이면 더욱 말이다. 본보가 한국마사회의 이상한 인사를 보도했다. 지난 2017년 2월 A씨를 시간제 경마직 직원으로 채용했다. 일반 시간제 경마직 직원은 월평균 88만원을 받는다. 특채된 A씨는 주말 이틀 근무하며 월 250만원의 급여를 받는다. 여기서 문제는 A씨의 비위 전력이다. 지난 2012년 1월 마사회를 명예퇴직하고 같은 해 4월 경마직 직원직으로 특별 채용됐다. 이듬해인 2013년 1월 부패행위 혐의로 구속됐고 면직됐다. 문제 된 비리는 마사회 본연의 업무와 직결된 사안이다. 관계 기관 등에 따르면 A씨가 다수 고객에게 경마 정보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5천만~6천만원의 금품을 수수했다. 범죄가 중한 만큼 법원의 처벌도 엄했다. 징역형이 내려졌고 2014년 1월까지 복역했다. 이런 A씨가 어찌 된 일인지 2017년 넉넉한, 후한 조건까지 받으며 다시 채용된 것이다. 부패방지권익위법은 공공기관 직원은 부패행위로 벌금 300만원 이상의 선고를 받으면 5년간 공공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A씨 재채용은 이 규정을 정면 위반한 것이다. 비위가 적발돼 법원에서 실형까지 선고된 사건이다. 짧지 않은 기간을 복역까지 하고 출소했다. 당연히 관련법에 의해 재채용이 금지되는 경우다. 그런데도 당사자가 재채용을 요구했고, 마사회는 이를 받아들여 재채용했다. 위법한 채용임을 알면서도 강행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곡절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또 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진 게 감사원 감사다. 2022년 10월부터 12월까지 감사를 통해서 확인됐고 문제 있음이 지적됐다. A씨는 현재도 근무하고 있고 계약 기간은 2026년까지다. 재취업한 이후부터는 인사 조치를 할 법적 근거가 없어졌다는 게 마사회 설명이다. 재채용 과정의 위법성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는 비위 면직자를 재채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고개를 숙인다. 이 ‘이상한 채용’과 ‘이상한 해명’을 이해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부패방지법은 왜 만들어 놓은 것인가. 모든 게 이상하다.

[사설] 연일 감세 발표에 ‘세수 펑크’ 우려, 재원 마련은 어디서

정부가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고 증권거래세는 인하하기로 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적용되는 비과세 한도는 대폭 올린다. 또 상장 기업의 가업승계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상속세를 완화하는 방안도 시사했다. 17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금융 분야 민생토론회에서 밝힌 내용들이다. 금투세는 주식이나 채권, 펀드 등의 금융 투자를 통해 주식은 5천만원, 다른 상품은 250만원 이상의 소득을 거둘 경우 해당 소득의 20%, 3억원이 넘는 소득에 대해선 25%를 과세하는 제도다. 증권거래세는 기존 0.23%에서 지난해에 0.20%, 올해부터는 0.18%로 하향 조정됐는데, 내년에는 0.15%로 더 낮추기로 했다. 금융투자에 대한 부담을 줄여 금융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취지라고 한다. 정부가 최근 들어 세금과 전기요금, 은행 이자 등을 깎아 주는 대책을 수시로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1일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을 완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주택자 중과세 완화, 분담금 제도 재검토 등 이달 17일까지 한 달이 안 되는 기간 동안 20여건의 감세와 현금성 지원, 규제완화 대책을 발표했다. 굵직한 대책을 발표한 일수만 따져도 거의 사흘에 한 번꼴이다. 국민 세금 부담을 줄여 시장을 활성화하고, 잘못된 제도를 손보겠다는 취지인데 실현 가능성과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세수 부족에 대한 우려 또한 크다. 3개월도 남지 않은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91개 부담금 규모는 올해만 24조6천억원에 이른다. 폐지되거나 수정되는 부담금 숫자에 따라 적게는 수천억원, 많게는 수조원이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세수 감소 폭이 구체적으로 추산된 정책만 꼽아봐도 줄어드는 세금이 6조원이 넘는다. 여기에 전기요금 및 건강보험료 감면, 시중은행의 이자 환급 등 민간기업에서 부담해야 하는 액수까지 합치면 소요 재원은 10조원에 이른다. 아직 세수 감소 규모가 추산되지 않은 항목을 합하면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발표된 대책의 절반 이상은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이 필요하다. 야당의 동의 없이는 실현되기 힘든 정책들이다. 그런데도 대다수 국민들은 이런 내용을 상세하게 몰라 현혹되기 쉽다. 때문에 야당은 ‘선거 개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해 세금이 정부 예상치보다 60조원 가까이 덜 걷혔다. 역대급 세수 펑크에 나라 곳간 사정이 안좋은데, 감세와 현금성 지원 등 건전재정에 역행하는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세수 부족에 대한 재원 대책은 없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사설] 산업단지 심의 권한, 시∙군 이양 적극 검토 필요하다

경기도내 시·군에 산업단지를 조성하려면 경기도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산단 계획 심의 권한은 경기도가, 그 결과를 통보하는 승인권은 시·군이 갖는 행정 구조 때문에 심의 통과를 못하면 산업단지를 조성할 수 없다. 산단 심의권과 승인권의 이원화로 시·군에선 산업단지 조성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기도는 위원회를 구성해 시·군이 조성하는 일반산업단지와 도시첨단산업단지에 대한 심의를 하고 있다. 위원회는 산단개발전문가, 도시계획위원, 교통영향평가위원, 국가교통위원, 재해위원, 산지위원, 경관위원 등 30인 이내로 구성된다. 그런데 도의 심의가 까다롭다. 난개발 방지 차원에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는 이유로 보류, 반려, 재검토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시·군에선 개발 계획이 번번이 퇴짜를 맞으면서 투자유치 차질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도는 올해 10개 시·군에 총면적 664만3㎡, 23개 산업단지를 지정할 계획이다. 지난해 총면적 475만4천㎡와 비교해 약 40% 늘었다. 하지만 23개 중 16개 산단은 지난해 계획이 이월된 것이다. 용인 죽능일반산단, 용인 스마트-E 일반산단, 안성 축식품복합일반산단 등은 도의 심의 보류, 재검토 통보로 제동이 걸렸다. 용인의 기흥미래 도시첨단산단도 지난해 12월 재검토 판정을 받았다. 올해 몇개 산단이 도의 심의를 통과할 수 있을 지 예측하기 어렵다. 산업단지 조성이 경기도 심의에서 제동 걸리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시·군의 불만이 고조돼 있다. 사업자의 행정소송까지 지자체가 떠안게 돼 행정력 낭비도 심하다. 실제 용인특례시는 2019년 백암일반산단 민간사업자로부터 행정소송을 당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는 구성 TINA 도시첨단산단 사업자가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응하고 있다. 도가 산단 계획을 부결하자 투자 비용 매몰화를 우려한 사업자가 소송을 건 것이다. 정부가 며칠 전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클러스터는 평택·화성·용인·이천 등에 밀집한 반도체 연관 기업들의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는 산업집적단지다. 심의에서 ‘재검토’ 통보를 받은 용인 죽능일반산단, 스마트-E 일반산단, 기흥미래 도시첨단산단 등은 메가 클러스터와 연계되는 산단이다. 정부와 기업이 클러스터 조성을 추진하는 데 연관 산단 조성이 까다로운 심의 탓에 지연되면 안 된다. 심의 구조 개선 목소리가 높다. 용인특례시는 최근 국토교통부에 산업단지 심의 권한의 특례시 이양을 요청했다. 화성시와 평택시도 산단 계획 심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사무 권한 이양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심의 과정에서 과도하게 많은 개별 위원회와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 해 효율성을 찾아야 한다. 산단 심의 권한의 시·군 이양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설] 수원남부서 데이트 폭력 수사팀을 칭찬한다

모두에게 드러내고 칭찬해도 좋을 경찰들이 있다. 이영찬 팀장·신효원 경위·서세영 경사·박주미 경장·박광준 순경. 수원남부경찰서 여청 수사2팀 소속 팀원들이다. 이들에 감사해하는 편지가 경찰서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데이트폭력에 시달리던 한 여성이 보낸 사연이다. 1년여 동안 남성으로부터 폭행과 협박에 고통받아 왔다. 가해자는 범죄 신고와 경찰 수사를 조롱했다. “경찰이 지켜줄 수 없다”, “솜방망이 처벌로 풀려 나면 다시 보복할 것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신고를 결심했다. 큰 기대는 안 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이런 피해자에게 수사팀은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편지가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 잘 오셨다. 마음 단단히 먹고 나쁜 사람 혼내주자.” 환영과 함께 수사는 발 빠르게 진행됐다. 일단 가해자를 긴급체포했고 신속히 수사해 구속했다.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했다는 피해자는 ‘일상을 찾아 준 은인 같은 분들’이라고 했다. 데이트폭력 범죄가 해마다 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데이트폭력 신고 추이가 나온다. 2017년 1만4천136건, 2018년 1만8천671건, 2019년 1만9천940건, 2020년 1만8천945건, 2021년 9월 4만1천335건, 2022년 9월 5만2천767건이다. 거의 해마다 늘었다. 또 2017년 1만303건이었던 데이트폭력 입건 건수가 2020년까지 감소했다. 그러나 2021년 1만554건으로 증가했다. 2022년과 2023년에도 30%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처벌이 이에 따르지 못한다. 마땅한 관련 법조차 없다. 가정폭력처벌법이나 스토킹처벌법 등을 적용한다. 데이트폭력은 기본적으로 가정폭력이나 스토킹과 다르다. 두 범죄가 엄중한 처벌로 다뤄질 수 있다면 데이트폭력은 가해자와의 분리가 우선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실과 괴리감이 생긴다. 범죄 신고가 또 다른 범죄를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앞선 사례에서처럼 ‘가벼운 처벌 뒤 보복 협박’이 뒤따른다. 이런 점이 경찰 수사에 한계가 될 수 있다. 경찰이 지켜야 할 가장 큰 가치는 신뢰다. 법익을 침해 당한 시민의 버팀목이어야 한다. 데이트폭력처럼 개인적 영역의 경우는 더하다. 이번 수원남부서의 얘기가 많이 알려져야 하는 이유다. 고통받는 개인을 위로했고, 신속한 수사로 가해자를 처벌했고, 공간적 격리로 보복의 가능성까지 없앴다. 지극히 당연하지만 간과하기 쉬운 본분에 충실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얘기가 피해를 당하던 시민의 편지로 세상에 알려졌다. 많이 칭찬해도 좋을 이야기다.

[사설]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인력양성 3만명이 관건이다

정부가 오는 2047년까지 622조원을 투입해 경기 남부 일대에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를 민관 합동으로 조성하겠다고 15일 발표했다. 클러스터는 평택·화성·용인·이천·수원 등에 밀집한 반도체 연관 기업들이 한곳에 모여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는 산업집적단지다. 삼성전자가 500조원, SK하이닉스가 122조원을 투자해 16개의 팹(반도체 생산공장)을 새로 건설한다. 정부는 이런 방안을 통해 향후 20여년간 생산유발 효과 650조원, 직간접 일자리 364만명을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민생토론회’에서 나온 이날 발표는 2043년까지 300조원을 투입해 용인에 세계 최대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짓겠다고 지난해 3월 발표한 대책의 확장판이다. 투자는 전적으로 기업이 한다. 정부는 세제 혜택과 전력·용수 등 인프라 구축, 인재 양성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미 나왔던 내용의 ‘재탕’이어서 4월 총선을 앞둔 ‘선거용 홍보쇼’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어찌됐든 세계 최대·최고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중요한 것은 투자 속도와 정책 이행력이다. 일본·대만 등 경쟁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 투자 이행은 지지부진하다.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는 용수 문제 등 이런저런 이유로 5년이 지났는데도 착공을 못했다.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일본·대만·미국의 합종연횡은 발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도 좀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세계 반도체 주도권 확보를 위해선 ‘초격차’를 벌려나갈 고급 인재가 절실하다. 정부는 학사급 실무 인재를 약 3만명, 석·박사급 고급 인재를 약 3천700명 육성할 계획이다. 반도체 특성화 대학을 현재의 8개에서 18개로 2배 이상 확대하겠다고 한다. 현재 세계 주요국도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전문인력 양성에 주력하는 추세다. 우리도 인력 양성 방안을 마련했지만, 실효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장학금 지급과 취업 보장 등의 특전에도 불구하고 명문대 반도체 관련 학과 학생들마저 의대로 빠져나가고 있다. 의대 쏠림 현상을 극복하고 인재를 끌어올 만한 매력적인 방안을 못내놨다. 기존 대학의 증원이 호응을 얻지 못하는 실정에서 정부의 인력 양성 방안이 주로 관련 교육기관 확대에 치중된 것도 문제다. 글로벌 반도체 대전 승부수는 ‘인재’다.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갈 인재 육성에도 민관학이 공조해 획기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내놔야 한다. 첨단산업 육성은 기술과 인프라, 그리고 인력이 제대로 뒷받침돼야 한다.

[사설] 반도체 산단, 더 빨리∙더 크게∙더 많이 지원한다

정부가 용인 국가산업단지 개통을 앞당긴다. 2030년부터 팹 1기를 돌릴 수 있게 한다. 절차 축소를 위한 총력전을 시작했다. 올 1분기에 단지 계획 신청을 받는다. 내년 1분기 승인을 하고 2026년 말 착공한다. 단계별로 필요한 예비타당성 조사, 산업단지 계획, 실시설계 등의 용역을 통합 발주한다. 예타는 면제다. 해당 부지의 농진 전용 협의는 신청 전인데 이미 시작했다. 신속 보상을 위한 협의체, 환경영향평가 패스트트랙도 만든다. 반도체 제조공장(팹)의 규모도 계획보다 키운다. 당초 5기에서 1기가 늘어난 6기를 배치하도록 토지이용 계획을 마련한다. 산단에 들어가는 용수와 전력 공급 계획도 속도를 내고 있다. 용인 산단에 필요한 하루 양이 대구시민 240만명 하루 사용량이다. 팔당댐 잔여 용수에 화천댐 용수까지 준비한다. 전력은 수도권 전체 전력 수요량의 4분의 1인 10기가와트(GW)다. 산단 내 액화천연가스발전소를 짓고, 장거리 송전선을 보강한다. 반도체 시장의 경쟁은 ‘초격차 경쟁’이다. 기술개발, 생산, 판매가 모두 긴박하게 바뀌어 간다. 이런 반도체를 쫓아가는 행정이다. 당연히 ‘초격차 행정’이 돼야 할 것이다. 15일 있었던 ‘민생을 살 찌우는 반도체 산업’ 토론회는 이런 산업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발표된 반도체 클러스터 청사진에서 많이 나아갔음을 분명히 보였다. 다행이고 평가 받을 일이다. 다만 이날 발표에 아쉬운 부분도 있었음은 지적하고 가겠다. 반도체 연구·인재육성과 관련된 거점 육성안은 부족했다. 지역이 기존에 갖고 있던 환경에 맞춰 특화했다고 했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기업이 밀집해 있는 판교다. AI 반도체 R&D 허브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수원은 반도체 관련 대학과 한국나노기술원이 있다. 화합물 반도체 기술 거점 지역으로 선정한다고 했다. KAIST 캠퍼스가 추진되고 있는 평택은 인재 양성 거점 지역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세 지역 주민의 기대가 집중된다. 그런데 각각에 정부 역할이 모호하거나 불분명하다. 성균관대·경희대·아주대는 수원에 있다. 서수원에 ‘R&D 사이언스 파크’도 확정된 도시 계획이다. 각 대학의 능력을 집적시킬 수 있는 제도·시설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 사이언스 파크 조성을 앞당기고, 관련 기업 유치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 이런 역할 설명이 부족했다. KAIST 평택 캠퍼스도 이미 유치된 시설이다. 정부가 새롭게 도울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반도체가 나라를 살린다. 경기도도 살린다. ‘세계 최대’라는 청사진은 이제 됐다. 구체적인 정책을 토론해야 한다. 더 앞당기고, 더 늘리고, 더 지원하는 정책을 말해야 한다.

[사설] 10대가 60대 경비원 폭행, 입건 조사하라

지난 주말 한 영상에 전 국민이 분노했다. 10대 남성이 60대 남성을 폭행하고 있다. 10대 남성은 건장한 체격의 학생이다. 60대 남성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건물 경비원이다. 학생이 경비원을 허리 태클로 넘어뜨렸다. 경비원이 반항했지만 속수무책으로 맞았다. 힘 없이 바닥을 끌려다닐 뿐이었다. 누운 사람의 얼굴을 발로 차는 이른바 ‘사커킥’도 날렸다. 결국 경비원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이쯤에서 영상이 끝났다. 12일 0시께 남양주시 다산동의 한 상가였다. 10대 고등학생의 60대 경비원 폭행이다. 영상 속에는 친구들이 웃는 소리까지 녹음돼 있다. 이들이 촬영한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이다. 영상을 본 시민이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까지 했지만 입건은 하지 않았다. 경찰은 “B씨가 폭행 사건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했다”며 “추후 사건 접수 안내를 하고 나서 현장 종결했다”고 했다. 반의사불벌 원칙이다. 일반적인 폭행은 반의사불벌죄 맞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폭행으로 상해가 발생했다면 다르다. 피해자의 뜻과 상관 없이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 당연히 형사 입건돼야 한다. 영상 속 폭행 장면은 상당히 난폭해 보인다. 크고 작은 상해가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 부분에서 너무 안일하게 사건을 대한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더구나 영상 공개 후 일고 있는 국민적 공분을 보면 더 그렇다. 사실 이 짧은 영상의 뒷얘기를 모두 알지 못한다. 영상 촬영자라고 밝힌 중학생의 의외의 주장도 있다. ‘경비 아저씨가 스파링하자고 했다’, ‘(영상) 찍으라고 해서 했다’, ‘(서로) 잘 풀고 갔다’는 등의 얘기다. 다 믿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영상 속 폭행 정도가 ‘스파링’의 정도로 보기 어렵다. 주변 웃음 소리 등도 우연한 촬영이라고 보기엔 어색하다. 몇 해 전 인천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18세 학생이 아파트 공용 공간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경비원이 저지하자 학생이 경비원을 밀치고 볼펜을 던지고 관리사무소 문을 발로 차고 방충망을 파손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 과정에서 말리는 경비원들에게 “여기서 일하지 말고 XX 나가. 3년 치 내가 줄 테니까. 5년이든 10년이든 XX 줄 테니까 XX 나가”라고 소리쳤다. 입건은 됐지만 결국 ‘분노조절 장애’라며 넘어갔다. 일단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야 할 것 같다. 영상 속 장면은 분명히 폭행이었다. 상해가 있으면 입건해야 한다. 교육당국의 징계도 검토해야 한다. 그냥 넘어갈 영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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