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물가는 민생경제 핵심, ‘특단의 조치’ 최선 다해야

먹거리 물가가 폭등해 떨어질 줄 모른다. 장보기가 무섭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사과·배 1개 가격이 4천~5천원씩 하니 그런 말이 나올 만하다. 채소 가격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의 삶이 더 팍팍해지고 있다. 농산물 가격이 꺾이지 않는 가운데 외식비, 가공식품 부담도 만만치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외식부문을 구성하는 세부품목 39개 중 1년 전 대비 가격이 떨어진 품목이 하나도 없었다. 이 중 70%인 27개 품목은 평균 상승률(3.1%)보다 높았다. 라면·우유·빵 등 가공식품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오르지 않은 것을 찾기 힘들 정도다. 정부가 농산물을 비롯한 주요 식료품 물가를 잡기 위해 나섰다. 지난 18일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에서 민생경제점검회의를 열고 관련 대책을 내놨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장바구니 물가를 내릴 수 있도록 농산물을 중심으로 특단의 조치를 즉각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농산물 가격이 평년 수준으로 안정될 때까지 기간, 품목, 규모에 제한을 두지 않고 할인 지원을 전폭적으로 시행하겠다고 했다. 정부 대책에는 사과·배 수요를 대체할 수 있도록 수입 과일·농산물·가공식품에 대한 할당관세 대상 품목을 대폭 확대하고 물량도 무제한으로 풀겠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지난 15일 마련한 긴급 농축산물 가격 안정자금 1천500억원의 즉각 투입이 필요한 경우 지원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정부가 뒤늦게 과일·채소 납품단가 지원 규모를 늘리고 전통시장 농산물 할인상품권 추가 발행에 나섰지만 효과는 불확실하다. 사과 값을 잡겠다고 큰소리치면서 국내에 보관 중인 사과 물량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비상 대응책으로 물가가 빠른 시일 내 안정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고금리가 지속되고 있고, 국제 유가도 오름세다. 대내외적인 물가 불안 요소들이 해소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가격 안정을 위한 지원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효과가 나타나는지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 민생경제의 핵심은 물가다. 정부는 말로만 ‘특단의 조치’를 언급할 게 아니라, 시장에서 체감할 수 있게 물가 안정을 위해 정책 역량을 쏟아야 한다. 생산과 소비, 유통 과정 전반에서 물가 불안을 초래하는 요소가 있는지 감시하면서 개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민간에서도 수입 비용에 비해 과도하게 가격을 올리거나 담합 행위를 하지 않는 등 물가 안정에 동참해야 한다.

[사설] 의료대란, 여야 정치는 주판만 튀기고 있다

의사 파업, 올 것이 오고 있다. 경인지역 의대 교수들도 집단 사직을 결의했다. 수원 아주대 의대가 12일부터 설문조사를 했다. 소속 교수 400여명 가운데 261명이 응했다. 응답자의 96.6%가 단체 행동에 공감했다. 이 중 77.8%는 사직서 제출 의향을 밝혔다. 인천 인하대 의과대 교수회도 성명을 발표했다. ‘협박’이 아니라 ‘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직서 제출 등 단호한 행동에 나설 것을 확인했다. 기폭제가 될 전국 의대교수비대위 3차 회의가 22일이다. 대학병원의 의료진 구멍은 이미 심각하다. 아주대병원은 전공의 225명 중 다수가 사직서를 내고 이탈해 있다. 치과 의사를 제외하면 650명이다. 전체 30%가량이 빠져 있는 상태다. 인천에서도 지난 15일 오후 기준 11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540명 가운데 471명이 사직서를 낸 상태다. 이들 중 실제로 근무하지 않는 전공의는 365명이다. 병상 가동률이 급격히 낮아졌다. 상급종합병원 57.5%, 종합병원 76.8%, 공공의료기관 64.2%다. 의사 파업-정부·의료계 갈등-도 한 달을 넘겨간다. 파업 참여 의사들의 반응이 극과 극이다. ‘2천명 숫자 포기’를 정상화의 조건으로 말하는 이도 있다. ‘영원히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 틈바구니에서 환자 고통만 커져 간다. 수술 지연과 진료 취소 등 환자 피해가 늘어가고 있다.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한 환자 피해신고 사례가 1천300건을 넘었다. 의료 불편 등의 일상적 피해는 훨씬 많다. 여기에 교수 파업까지 목전에 온 것이다. 때마침 정치는 총선판이다. 민원 있는 곳마다 정치인들이 찾아 다닌다. 되는 공약, 안 되는 공약을 막 던진다. 의사 파업은 가장 큰 현안이다. 국민의 건강·생명이 걸려 있다. 세계 의사들까지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런데 희한하다. 정작 우리 정치는 입 닫고 피해 다닌다.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이다. 무한 책임이 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관련 얘기는 없다. 민주당은 거대 야당이다. 이재명 대표도 음모론 비판 이외에는 별 의견이 없다. 표(票) 계산이 아직 안 끝난 것이다. 환영 받을지 욕 먹을지 확신이 안 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침묵할 수가 없다. 전국을 이 잡듯 뒤지고 다니는 각 당이다. 유독 이 문제에만 말을 아끼는 이유가 이것 말고 있나. 여기서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2002년 11월 노무현 대선 후보가 ‘전국 농민 대회’에 갔다. 쌀 수입으로 분노가 극에 달했던 농민이었다. 달걀이 날아와 얼굴에 맞았다. 그가 말했다. “어떻게 환영받는 곳에만 가겠나.” 이게 국민을 위한 정치 아닌가. 이게 국민에게 부여받은 의무 아닌가.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양당의 대표자들. 모두 직무 유기다. 이제 그만 외면하고 문제 핵심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비방이 아닌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2천명이 맞나. 너무 많은가. 그러면 몇 명이어야 옳은가.

[사설] 박지원·김종인을 여전히 찾는 게 한국 정치

2016년 4월에도 선거가 있었다. 안철수 국민의당이 파란을 일으켰다. ‘74세 박지원’이 당선자 중에 있었다. 20대 국회 지역구 최고령이다. 인사말이 모두를 미소짓게 했다. “우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그분 덕에 제가 젊어 보인다.” ‘76세 김종인’은 비례대표 의원이 됐다. 이렇게 둘은 8년 전에 고령 경쟁을 했다. 그 후로도 둘은 왕성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현란했다. 또는 여의도에서, 또는 대선판에서 중심이었다. 엊그제 박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해남·완도·진도 경선에서 이겼다. 30대, 40대도 나가떨어지는 경선판이다. 물론 나이가 공천의 기준일 순 없다. 그래도 82세 박 의원 공천은 언론 뉴스감이다. 일성이 그답다. “경선에서 승리했습니다.” 당당히 공천 받았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더 막강한 위치다. 이준석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이다. 이낙연을 기획 퇴출케 하고 앉았다. 당 인기가 없어 인물난이라지만, 그래도 그는 공천권자다. 모두가 아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범죄 전과자들이다. 박 전 의원은 기업 두 곳에서 뇌물을 받았다. SK 3천만원, 금호 7천만원이다. 2006년 징역 3년에 추징금 1억원을 선고 받았다. 감옥에 갔다가 특별사면 받았다. 김 위원장은 1993년 동화은행 사건으로 구속됐다. 청와대 경제수석 때 2억1천만원을 받았다. 역시 유죄로 징역형을 받았다. 수십 년 전 음주 전과에도 날아가는 게 정치다. 하물며 뇌물에 징역형이다. 그래서 둘이 놀랍기까지 하다. 공통점이 또 있다. 변절의 달인이다. 박 전 의원은 DJ의 적자를 자처하며 잘나갔다. 그 이후 역대급 변절이 시작됐다. 대통합민주신당, 민생당, 대안신당, 무소속, 민주평화당, 국민의당이다. 이번에 다시 더불어민주당이다. 대개가 정치생명을 위한 변절이었다. 김 위원장의 변절은 차라리 자산이다. 90년 ‘신군부’의 국보위에 참여했다. 민정당, 민주당계를 오갔다. ‘박근혜-문재인’ 캠프를 번갈아 오갔다. 선거 기술이다. 김종인 매직이라고 불린다. 이번 총선에서 나돈 말이 있다. ‘올드 보이 귀환’이다. 76세 이인제, 71세 정동영, 70세 천정배 등에게 나온 표현이다. 나이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다. 개인적 탐욕과 부정적 발자취를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박지원·김종인에의 평가가 이들과 달라야 할 이유가 있나. 화려한 언변으로 혹세무민했다. 말초적 감각으로 정치를 어지럽게 엉클어 놓았다. 그 결과로 남은 것은 하나다. 변절, 왜곡, 혹세무민이 판을 치는 정치를 만들었다. 아닌가. 우리가 기억하는 70대, 80대 세대의 모습이 있다. 광복과 전쟁의 폐허에서 나라를 구했다. 산업화 현장을 배 곯며 뛰었다. 노년에도 일 못 놓고 자식을 위해 산다. 박지원·김종인에게는 찾을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런 둘을 또 보게 된 2024년 총선이 씁쓸하다.

[사설] 최고치 기록한 사교육비, 실효성 있는 해법 제시해야

사육비가 3년 연속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2023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지난해 사교육비는 무려 27조1천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조2천억원인 4.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수는 528만명에서 521만명으로 줄었지만, 오히려 사교육비 총액은 늘어났다. 이는 N수생 17만명이 재수학원에 쓴 학원비 3조원이 빠져 있는 수치로 이것까지 포함하면 30조원이 넘는 액수다. 지난해 6월 정부는 수능 킬러문항 배제 방침을 밝히는 등 사교육비를 줄이면서 동시에 공교육을 더욱 강화해 초중고 사교육비를 전년 대비 6.9% 줄어든 24조2천억원으로 감소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오히려 사교육비는 증가해 정부의 정책 목표가 무색해진 것이다. 지난해 초중고 학생들이 쓴 사교육비가 1인당 월평균 43만4천원으로 1인당 사교육비는 전년도보다 5.8% 상승해 소비자물가 상승률(3.6%)을 웃돌았고,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 비하면 4년 만에 30% 증가했다. 이런 사교육비 증가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지난해 킬러문항 배제 논란으로 수능 출제 기조가 변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진 대학 입시를 앞둔 많은 고교생들이 학원을 찾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고교 사교육비 총액은 7조5천억원으로 전년보다 8.2% 증가했으며, 이는 전체 사교육비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속도로 증가했다. 특히 경기지역의 경우 일반계 고교생 월 사교육비는 61만7천원으로 2009년 이후 최고치다. 높은 사교육비는 국가 발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특히 최근 국가 소멸론이 대두될 정도로 문제가 되고 있는 저출산의 요인 중 하나가 높은 사교육비 지출이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는 저출산 현상(2015~2022년)의 약 26%가 사교육비 증가에 기인한다는 분석을 발표했다. 치솟는 사교육비 부담이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으니, 지난해 출산율은 0.72명이며, 금년에는 더욱 하락할 전망이다. 우리 사회의 높은 교육열은 부존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 발전의 동인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높은 사교육비가 저출산과 같은 요인으로 작용해 국가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심각성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선 공교육의 혁신적 개혁이 없이는 사교육 시장의 카르텔을 잡을 수 없다. 정부는 사교육 시장의 증가 요인이 되는 수능을 비롯한 입시제도의 개혁과 함께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학벌주의와 학력주의를 극복할 실효성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사설] 수원 군공항 공약, ‘안 될 약속’은 걸지도 마라

수원지역 민주당 예비후보들이 공항 공약을 발표했다. 수원 군 공항 이전, 경기국제공항 유치 연계, 군 공항 종전부지 첨단산업 거점화 등이다. 김영진 국회의원(수원병)은 “민주당 후보 모두 수원 군 공항 이전을 통한 첨단 산업 경제 특구 조성을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김준혁 예비후보(수원정)도 “공통 공약 제시는 다섯 의원이 합심해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21대에 이어 두 번째 공통 공약 채택이다. 국민의힘도 관련 공약을 제시했다. 공항 이전이 장기 과제인 점을 감안했다. 인접 지역 고도 제한 완화와 소음 피해 보상 강화를 약속했다. 방문규 수원병 예비후보는 “시민에게 (화성시와의) 합의 난항에 따른 어려움을 밝히고 주민 재산권 침해, 피해 보상 강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책임도 거론했다. 박재순 수원무 예비후보는 “민주당이 석권한 10여년간 수원 군 공항 이전 문제는 (정부 공항 계획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1954년 공군 관할이 시작됐다. 1980년대 이후 민원이 시작됐다. 2013년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2015년 국방부의 이전 승인이 있었다. 예비 이전 후보지로 화성 화옹지구가 결정됐다. 매 역사를 따라 정치가 공약했다. 우리 정치사에 이런 공약이 또 있었을까 싶다. 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반복됐다. 하나같이 거짓말 공약이 됐다. 그게 또 시작된 것이다. 서로 ‘우리가 현실성 있다’고 한다. ‘반드시 지키겠다’고 한다. 두 정당의 공약이 다르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민주당은 주로 공항 이전의 청사진을 밝히고 있다. 국민의힘은 현 상태의 피해를 구제하겠다고 약속한다. 각 당 지지자들의 평가는 당연히 편향적이다. 민주당의 공약이 미래를 연다고 평가하거나 국민의힘 공약이 실현 가능하다고 평가한다. 우리는 어떤 판단도 하지 않기로 한다. 신뢰도 없고, 기대도 없다. 수없이 스쳐간 공항 공약에서 얻게 된 교훈이다. 어차피 추상같은 판단은 유권자의 권한이다. 작금의 ‘공항 정치’에는 유권자의 책임도 크다. 검증하지 않고 무조건 받았다. 비판하지 않고 무조건 믿었다. 큰 잘못이다. 이 무책임과 무관심의 역사를 이제 끝내야 한다. 과거의 실패 이유를 물어야 한다. 공약이 날아갔다면 따지는 게 당연하다. 미래 공약을 분석하고 추궁해야 한다. 임기 4년에 할 수 있느냐, 얼마를 주겠냐고 따져 물어야 한다. 후보자에겐 공약을 던질 권리가 있다면 유권자에겐 그 공약을 따지고 채점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끈 문제라고 수십 년 끌진 않는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공항 선거’일 수도 있다.

[사설] 환자 볼모로 극단 치닫는 의•정, 합리적 타협점 찾아야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1만2천여명이 병원을 집단 이탈한 상황에서 의과대학 교수들도 집단 사직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전국 40개 의과대학 중 서울대, 연세대, 아주대 등 19개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 복귀를 위해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이들은 15일까지 학교별로 교수들의 사직 여부를 정하기로 했다.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이 4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동맹 휴학 중인 의대생들의 유급 처리가 임박했다. 전체 의대생의 75%인 1만4천여명의 휴학 신청자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수업일수 부족으로 집단 유급을 당하게 된다. 의대 교육이 파행하고 의사 배출 계획에도 큰 차질이 빚어진다. 이에 의대 교수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의료 공백 사태 해결과 전공의·의대생 보호를 위해 나서고 있다. 의대생 집단 유급은 의료 공백 사태의 장기화를 불러오게 된다. 의대 교수들은 “비대위의 목표는 의대생과 전공의가 무사히 복귀해 교육과 수련을 마치는 것”이라며 정부에 협상을 요청했다. “의대 증원을 1년 늦추고 논의를 계속하자”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정부 입장은 단호하다. “흔들림 없는” 강경 대응을 선언했다. 의대 증원에 대해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대화 의지가 없는 듯하다. 정부는 “어렵고 힘들어도 미래세대를 위해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전공의와 의사협회 등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답답한 형국이다. 의사가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전공의가 이탈한 병원에서 중증·응급환자를 보고 있는 교수들까지 병원을 떠나면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의료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환자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정부 탓도 크다. 정부도 환자를 볼모로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의 비상 진료체계는 허술하다. 전공의가 빠져나간 자리를 공중보건의와 군의관, 진료보조(PA) 간호사들이 메우고 있다. 은퇴 의사도 불러들이고 있다. 이런 임시방편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정부의 무조건 밀어붙이기식은 해법이 아니다. 의·정 갈등이 심각한데 여야는 총선에 몰두하느라 관심도 없으니 한심하다. 정치의 실종이다. 의·정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기 전에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정부·의사협회·여야·국민·교수·전공의가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협의체가 의·정 대치의 중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치킨게임은 안 된다.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사설] 퍼주기식 총선 공약, 실현 가능성 얼마나 될까

4·10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각 정당의 총선 10대 공약은 14일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시된다. 국민의힘은 저출생 대책, 격차 해소, 기후위기 대응 등 세가지 기조를 중심으로 △일·가족 모두 행복 △서민·소상공인·전통시장 지원 △교통·주거 격차 해소 등 10대 분야 공약을 발표했다. 민주당은 민생 회복, 미래 희망, 민주 수호, 평화 복원 등 네 가지 가치를 중심으로 △민생 지원 △저출생 해결 △기후위기 대처 등 10대 분야 정책을 내놨다. 양당은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인 0.65를 기록하는 위기 상황을 반영하듯 ‘저출생 해결’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구체적 방향에선 차이가 있다. 국민의힘은 ‘인구부’ 신설과 아빠 출산휴가 1개월(유급) 의무화, 육아휴직 급여 200만원으로 인상, 초3까지 유급 자녀돌봄휴가 신설 등 일·가정 양립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은 신혼부부 1억원 대출과 자녀 수에 따른 원리금 차등 면제, 다자녀 부부 공공임대주택 지원, 아이 1명당 월 20만원 아동수당 등 현금성 지원 중심의 대책을 발표했다. 기후위기 대응도 공통 공약이다. 여당은 기후위기 대응기금 두 배 확대, 기후테크 사업 육성을 약속했다. 야당은 탄소중립산업법 제정, 기업 RE100 지원 개선을 내놨다.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도 양당 모두의 공약이다. 차별화된 공약도 있다. 경기 분도와 김포·고양 등 서울 편입을 띄운 국민의힘은 노후한 옛 도심 개발 등 국토 개발 공약이 많다. 경부선·경인선(인천역∼구로역) 등 철도·주요 고속도로 지하화를 추진하고, 전국 주요 권역에 GTX 등 광역급행열차를 도입한다. 반면 민주당은 검찰개혁, 공영방송 정치적 독립과 자율성 보장, 대통령 거부권 및 사면권 한계 명문화, R&D 예산 국가예산 대비 5% 확보 등을 내세웠다. 양당의 공약은 전반적으로 ‘퍼주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재원 마련 대책은 국가재정운용계획(2023~2027년)에 따른 예산증가분, 지출 구조조정, 세입증가분, 민간 개발로 발생한 이익 활용 등으로 대동소이하다. 지난해 국세 수입이 역대 최대 규모인 56조원 펑크 났다. 민자유치도 쉽지 않다. 재원 마련이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다. 공약의 상당수가 실현 가능성이 의문이다. 여야 공약이 형식적 발표에 그쳐선 안 된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국민을 우롱해선 안 된다. 네 편·내 편 갈라치기 하며 특정층 감성에만 호소하는 구태정치를 지양해야 한다. 일례로 공약을 믿고 간병비 보험 적용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사설] 조국, 그가 어떻게 ‘논문 범죄’를 말하는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한동훈 특검법’을 약속했다. 22대 국회 첫 번째 행동으로 발의하겠다고 했다. 특검 수사 대상도 자세히 밝혔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딸 논문 대필 의혹이 있다. 김웅 의원·손준성 검사장의 고발사주 의혹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총장 정직 소송 직권 남용도 있다. 한 위원장이 당사자이거나 법무장관으로 처리했던 업무다. 조 대표는 특검법 발의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했다. “검찰독재정권 조기 종식과 사법정의 실현을 위해서다.” ‘검찰독재정권 조기 종식’은 야권의 공통된 총선 이슈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명품백 수수 의혹 등이 기본 소재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가장 큰 어젠다로 내세우고 있다. 수사는 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동조하는 여론도 많다. 총선에서 표로 나타날 승패가 여론을 표현할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을 조 대표에게서 듣는 건 여간 거북하지 않다. 사법 정의 실현이라는 주장과 선뜻 연결되지 않는다. 과연 조 대표에게 ‘자녀 논문 대필’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부인 정경심 교수는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공소 사실에 딸 조민씨의 스펙 조작 혐의가 있다. 단국대 의대 연구팀 논문 1저자 허위 등재다. 공주대 논문초록 3저자 허위 등재도 있다. 모두 대법원에 의해 ‘유죄’가 확정됐다. 조 대표 본인도 이 입시비리에 연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둔 현재 징역 2년의 실형이다. 이런 처지에 있는 그가 ‘논문 비위 특검’을 약속한 것이다. 특검의 주체가 될 테니 표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비난에 앞서 작금의 정치판에 흐르는 보편적 정식을 보자. 실형 선고는 물론 벌금 전과도 철퇴를 맞는다. 행정벌이라고 칭하는 음주운전 벌금형도 봐주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 적용한 예비 후보 탈락 기준이 있다. ‘선거일부터 15년 이내 3회, 10년 이내 2회 이상 적발 시 윤창호법 시행 이후(2018년 12월18일) 적발’이다. 이 기준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기준을 통과한 후보들이 욕을 먹는다. 20년 된 1회 음주에도 비난을 받으며 사과하고 있다. 그게 여론이고, 그게 양심 아닌가. 조국혁신당이 약진하고 있다. 비례대표 선호도에서의 지지세가 눈에 띈다. 이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유권자들의 고귀한 뜻이다. 정치적 목소리를 키울 만하다. 하지만 그가 넘어선 안 될 선이 있다. 허락돼선 안 될 화두가 있다. 입시 비리, 자녀 특혜, 논문 위조다. 유죄로 확정된 그와 가족의 행위다. 그때 박탈 당한 청년들의 상실감이 여전히 깔려 있다. 십 몇% 지지에 눈 가려 그걸 휘젓는다면 본인에게도 좋을 것 없다.

[사설] 어린이집·유치원 CCTV 규정 제각각, 일원화해야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폐쇄회로(CC)TV 관련 규정이 다르다. 어린이집은 CCTV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유치원은 ‘권고’여서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다. 유치원에 CCTV가 설치됐다 해도 열람이 쉽지 않다. 학부모 전체의 동의를 얻어야 하거나, 다른 어린이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어린이집의 CCTV 설치는 지난 2015년 아동학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의무화됐다. 당시 인천 송도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CCTV 영상자료를 통해 밝혀졌다. 정부는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발생에 대한 대응책과 예방책으로 CCTV 설치 의무화를 담아 관련 법을 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어린이집은 보육실과 공동놀이실, 놀이터, 식당 등 곳곳에 1대 이상의 카메라를 설치해야 하며, 60일 동안 영상을 의무적으로 보관해야 한다. 어린이집 CCTV 설치는 의사표현 능력이 부족한 영유아의 인권을 법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학부모들은 안전사고나 아동학대 등이 의심되면 언제든지 열람을 요청할 수 있고, 별다른 이유없이 거부하면 어린이집 측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영상 정보를 분실, 유출, 변조, 훼손하는 것도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해진다. 교사들에겐 정서적·심리적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어린이집 CCTV는 안전지킴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 유치원은 그렇지 못하다.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의 적용을 받고,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에 기반해 운영된다. 법률 자체가 다르다 보니 유치원은 CCTV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다. 학부모들은 불안해한다. 인권과 사생활 침해 문제를 넘어 교사와 기관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깊어서다. 실제 안전사고나 학대 등이 종종 일어나다 보니 유치원 교실에도 CCTV 설치 의무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자유열람 보장’도 요구하고 있다. 안전사고 등의 문제가 있는데도 열람하려면 학부모 전체의 동의를 받거나, 모자이크 처리 비용 등 정보공개수수료를 학부모가 부담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증거 확보를 위한 비용까지 피해자에게 청구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유아 교육도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교육 영역으로 교육부 등에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하는 게 맞다. 제각각인 어린이집과 유치원 CCTV 규정을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안전사고를 방지하고 부모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유치원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 유치원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예단하는건 아니다. CCTV가 교사를 보호할 수도 있다.

[사설] 개성공단재단 해산, 평화 없는 경협의 결과다

‘개성공업지구관리재단’이 해산된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을 지원하던 기구다. 이 업무를 민간 기관인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에 위탁하기로 했다. 통일부가 이런 내용의 개정안을 12일 국무회의에 상정한다. 필요한 절차를 모두 거치면 재단은 20일쯤 해산할 것 같다. 2016년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된 지 8년 만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 차원이었다. 이번 결정을 접하는 우려와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우선할 것은 우리 기업의 피해 최소화다. 가동 중단 이후 기업들의 자산은 북한에 묶였다. 시설부터 제품까지 모두 북한 수중에 남았다. 북한은 이들 기업 가운데 30여곳을 무단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한 피해액이 4천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통일부는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속에 나설 방침이다. 이 소송의 주체가 재단이었다. ‘법적 대응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 통일부의 설명이다. 확실히 담보해야 한다. 분명히 짚고 가야 할 교훈도 있다. 개성공단 사업은 2000년 시작됐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됐다. 식기회사 리빙아트, 의류회사 신원 등의 기업이 입주했다. 2010년 9월에는 북한 근로자가 4만4천명에 달했다. 올 2월 기준 입주 기업이 123곳이다. 한때 남북 화해의 상징 같은 시설이었다. 하지만 남북 관계에 따른 부침이 계속됐다. 2016년 가동 중단 때는 피난과도 같은 탈출 행렬이 이어졌다. 그 철수가 끝이었다. 2020년 6월에는 비극적인 장면도 있었다.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다. 노동신문에 섬뜩한 담화가 실렸다. ‘이미 천명한 대로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고 그 다음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에 위임될 것이다.’ 그러고는 사흘 뒤 폭파했다. 문재인 정부가 2018년 세운 시설이다. 건설비용 180억원 등 235억원을 들여 지었다. 북한에 호의적이었던 문재인 정부였지만 대남 도발의 희생물이 됐다. 개성공단 20년의 적나라한 교훈이다. 역사적으로 기록될 통일 실험이었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치른 희생이 너무 컸다. 툭하면 대남 위협과 파괴의 수단으로 악용됐다. 민족 화해의 상징에서 민족 파국의 현장으로 돌변했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남북 화해는 결코 감성으로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평화 없는 경협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도 같은 것이다. 이번 개성공단재단 해산이 또 하나의 그런 예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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