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언디스퓨티드

권투를 소재로 한 영화들 중 진짜 권투영화라고할 만한 영화는 별로 없는 것 같다. 7일 관객들을 찾는 영화 ‘언디스퓨티드’(Undisputed)는 권투 경기 장면의 역동성을 강조한 영화로 이들 영화와는 달리 ‘본격 권투 액션 영화’ 쯤으로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교도소 안의 챔피언과 교도소 밖 챔피언의 ‘한판 승부’라는 비교적 단순한 줄거리지만 몸 만드는데 신경 꽤나 쓴 듯한 배우들이 출연해 다양한 각도의 카메라와 빠른 편집으로 연출되는 권투 시합 장면은 힘있고 역동적으로 보인다.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 ‘라스트맨 스탠딩’의 월터 힐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네 멋대로 해라’와 ‘블레이드’ 시리즈로 알려진 웨슬리 스나입스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캘리포니아 모하비사막의 스윗와터 교도소. 직원포함 750명이 수용돼 있는 이곳에는 교도소 내 복싱경기에서 68승 무패를 기록 중인 ‘교도소 챔피언’ 먼로(웨슬리스나입스)가 10년째 복역 중이다. 바람난 아내를 살해한 죄로 교도소에 들어온 그는 이곳 뿐 아니라 미국 전역의 죄수들 사이에는 영웅적인 존재. 어느날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헤비급 세계챔피언 아이스맨(빙 래임스)이 쇼걸을 성폭행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스윗와터에 수감되면서 교도소는 둘 사이의대결을 보고싶어하는 죄수들의 기대로 술렁거린다. 교도소 내에 자신 이외에 또 다른 챔피언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한 아이스맨은 먼로와 신경전을 벌이고 말썽이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는 교도소장은 먼로를 독방에 감금한다. 이에 교도소 내의 ‘어르신’이자 마피아 두목인 맨디 립스타인(피터 포크)는 교도소장을 협박해 둘 사이의 시합을 이끌어 낸다. 규칙은 심판 없이 둘중 한명이 못 일어날 때까지. 시합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아이스맨은 가석방을, 먼로는 게임에 걸린 판돈의 40%를 얻게 된다. 드디어 시합날, 둘은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승부를 위해 링에 오르는데….

영화/어바웃 슈미트

텅 빈 사무실에 덜렁 하나 남아있는 책상. 멍하게 정면을 응시하며 한숨을 쉬고 있는 남자. 비까지 내리는 오늘은 이 남자의 정년퇴직 기념식이 있는 날이다. ‘가족의 사랑을 받고 이웃의 존경을 받으며 진실한 우정을 나눴으며 자신이 일하는 보험사를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았다’는 칭찬이 들려오지만 남자는 그저 내일부터 회사에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을 뿐이다. 7일 개봉하는 ‘어바웃 슈미트’는 잭 니콜슨의 열연이 단연 돋보이는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지 라이더’ 등의 영화를 통해 이미 연기 잘하는 배우로 충분히 알려져있지만 이 영화에서 잭 니콜슨은 화면 전체를 장악하는 섬세한 연기를 소름끼칠 정도의 연기로 펼쳐내고 있다. 잭 니콜슨은 이 영화로 이미 LA 비평가 협회와 골드글러브의 남우주연상을 차지했고 이달 열리는 아카데미에도 후보로 올라 있는 상태. 영화는 회사에서 퇴직한 한 남자가 부인까지 잃은 후 느끼는 상실감과 고독을 그리고 있다. 곳곳에 유머와 위트가 묻어 있고 어조는 우울하기보다는 유쾌하지만 주인공이 맞닥뜨린 상황은 지독하게도 비극적이다. 퇴직 후 첫날을 타블로이드 신문 낱말맞추기로 시작한 슈미트(잭 니콜슨). 소파에 누워 채널 바꿔가며 TV를 보는 일밖에 할 일이 없다. 생각해보면 그의 주변에는온통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다. 마마보이에 대머리인 사윗감도 싫고 대화 도중 말이나 끊고 새로 생긴 레스토랑 가자고 졸라대기에 바쁜 부인도 지긋지긋하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것은 멀리 떨어져 살지만 능력있고 예쁜 딸 지니 뿐. 빈둥대던 그는 어제까지 출근했던 자신의 사무실에 들른다. 후임자는 풋내기지만 ‘모든 일을 컴퓨터를 통해 해결하는 것을 모토로 한다’는 일류대 경영학 석사 출신이다. ‘자신이 벌여놓은 온갖 복잡한 작업들을 돕겠다’고 말하는 슈미트에게 돌아오는 것은 곤란한 표정에 ‘운동이라도 좀 하세요’정도의 말. 지루해진 그는 우연히 TV광고를 통해 아프리카 불우아동 후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하루에 77센트씩을 송금하며 돕게 되는 아이는 탄자니아에 사는 여섯 살남자아이. 슈미트는 가끔 쓰는 편지를 통해 아이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린다. 그러던 어느날 외출했다 집에 돌아온 그는 갑작스럽게 죽어있는 아내를 발견하게 된다. 겉으로는 아무리 태연한 척 해도 혼자 사는 외로움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에 힘들어 하는 슈미트.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 집에서 아내의 향수 냄새나 맡으며 살아가던 그는 같이 살자는 자신의 제안을 딸 지니가 거절하자 트레일러를 타고 여행길에 오른다.

<새영화>기묘한 이야기

21일 개봉하는 영화 기묘한 이야기는 지난 90년 일본 후지TV를 통해 첫 방영된 이후 10년 간 인기를 끌었던 TV 프로그램의 극장판. 이 시리즈를 통해 발굴된 감독들 중에는 러브레터의 이와이 순지, 춤추는 대수사선의 모토히로 가쓰유키 등도 포함돼 있다. 극장판은 그동안 방송됐던 1천여 편의 스토리 중 3편을 세 명의 감독이 약 30분씩 엮었다. 각각은 판타지를 공통분모로 공포, 코미디, 멜로의 색깔을 갖는다. 각 에피소드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TV화면을 보는 듯 비교적 부담이 없고 스토리의 흡인력도 강한 편.눈 속의 하룻밤 겨울산 비행기 추락마리 생매장 오싹인적이 끊긴 겨울산에 비행기 한대가 추락한다. 살아있는사람은 모두 다섯 명. 이중 마리라는 이름의 여자 한 명은 부상당해 걷지를 못하는 상황이다. 일행은 추운 곳을 헤매느니 땅 속에 묻혀있는 게 낫다는 판단에 제대로 걷지 못하는 마리를 땅에 묻는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마리의 부탁을 뒤로하고 눈바람을 피할 곳을 찾던 나머지 네 사람은 결국 산장 한 곳을 발견하는데. 사람들 사이에 떠돌던 얘기로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줄거리. 하지만, 시각적인 두려움보다는 좁은 공간과 한정된 인물이라는 상황을 통해 이끌어 내는 공포가 제법 오싹하다.사무라이의 핸드폰 역사적 인물과 전화통화 소재 기발18세기 초, 영주 아사노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자 부하들은 복수를 노리며 그의 직속부하 오이시 장군의 행보에 주목한다. 오이시 장군은 일본 역사에 실존하는 에도 막부시대의 영웅. 하지만 정작 그는 복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사실은 여색만 밝히고 자기 한몸 보존하기 바쁜 겁쟁이에 소심 덩어리였던 것. 어느날 그에게 사람 목소리가 나오는 은색 상자 하나가 배달된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미래로부터 전달된 핸드폰. 전화기 속의 목소리는 언제 복수를 할 것인지를 물어보며 겁 많은 오이시를 끊임없이 괴롭힌다.가상 결혼체험 커플DNA로 결혼생활 시뮬레이션 이색운명적인 만남 뒤 1년여만에 결혼을 약속한 유이치와 지하루. 웨딩 컨설턴트 회사에 찾아간 두 사람은 선택품목 중 가상결혼체험이라는 항목을 발견한다.가상결혼체험은 커플의 DNA를 추출, 성격을 분석해 결혼 생활을 시뮬레이션 해 보여주는 프로그램. 커플은 이를 체험해보기로 결심한다. 시뮬레이션 속 두 사람의 신혼생활은 순탄치만은 않다. 다른 식성에 지저분한 화장실 사용, 서로 맞지 않은 잠자리 습관 등 둘은 사사건건 부딪친다. 결혼 10년후 사는데 지쳐 서로에게 무관심해진 커플은 결국 이혼도장을 찍기에 이르는데.

'사랑의 순간들' 예쁘게 포장 새영화 '클래식'

30일 설 연휴를 맞아 관객들을 찾는 영화 ‘클래식’은 ‘비오는 날의 수채화’와 ‘엽기적인 그녀’로 청춘들에게 인기를 끌어왔던 곽재용 감독의 새영화다. 코미디와 멜로를 뒤섞은 철저한 상업영화면서도 멜로적 감성과 영화적 유머를 동시에 갖춘 곽재용 감독의 아기자기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과거와 현재를 병치시키는 편집은 ‘러브레터’ 등에서 많이 본 듯하고 부모대에서 못 이룬 사랑을 자식들이 이룬다는 줄거리도 ‘유리의 성’같은 영화로 익숙한 내용이지만 리듬감있는 시나리오나 사랑의 순간을 잡아내 예쁘게 포장하는 감독의능력은 ‘클래식’을 이들 영화와 차별화시키고 있다. 대학선배 상민(조인성)을 마음속으로만 좋아하는 지혜(손예진). 지혜는 상민에게 적극적인 친구 수경의 부탁을 받고 연애편지를 대신 써준다. 감정표현에 소극적인 지혜에게 수경 이름의 편지는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수단인 셈. 하지만, 이 편지로 상민과 수경이 커플로 연결되고 지혜는 상민을 멀리하려 한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주희와 단둘이 살아온 지혜. 어느날 다락방을 청소하던 그녀는 우연히 주희의 비밀 상자를 발견한다. 상자 안에는 어머니의 첫사랑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60년대 후반 고등학생 준하(조승우)는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 삼촌집에 놀러갔다그 곳에서 요양 중인 주희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미처 사랑이 무르익기도 전에 소나기와 갈대밭의 추억만을 남기고 둘은 헤어진다.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준하는 주희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태수의 약혼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클래식’이 들려주는 사랑이야기를 빛나게 하는 것은 손예진과 조승우의 연기. 멜로영화의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이나 사랑의 순간 순간들을 보여주는 배우로서의 연기나 둘 다 높은 점수를 줘도 좋을 것 같다. 주희와 준하의 시대에 흘러 나오는 사이먼과 가펑클, 김광석 등의 노래나 ‘자전거 탄 풍경’이 부르는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등의 음악도 영화의 감성에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