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이대로, 죽을 순 없다. 옹박-두번째 미션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불량형사의 눈물겨운 ‘부성애’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오는 18일 가족 영화 한편이 개봉한다. 코미디로 포장됐지만 실은 절절한 부성애에 포커스를 맞춘 12세관람가 영화다. ‘일단뛰어’에 이어 이범수가 이번에도 형사로 변신했다. 그런데 ‘일단뛰어’에서는 오직 범인 검거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열혈 형사였다면 이번에는 좀 다르다. 적당히 나사가 풀리고 적당히 부패한 뺀질거리는 형사 ‘이대로’. 체포 안하는 조건으로 용의자측과 뒷거래도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동료를 뒤로하고 애인과 여관에서 밀회를 즐긴다. 이러한 이대로의 캐릭터와 그를 둘러싼 희화화된 동료 형사 캐릭터들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코미디를 연출한다. 딱히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이대로에게 ‘사망선고’를 내리고 그로인해 180도 달라진 이대로의 변화를 통해 한단계 발전한 코미디를 펼친다. 개인기에 기댄 슬랩스틱 코미디가 상황극으로 발전한다. 8살 딸을 홀로 키우는 싱글 파파 이대로가 뇌종양 판정을 받는다. 앞으로 살 날은 길어야 3~4개월. 그는 딸에게 10억원의 보험금을 남기기 위해 생명보험에 들고, 범죄현장에서 사고사를 당하거나 그것을 위장한 자살을 하기 위해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든다. 그러나 결과는 극적인 범인 검거. 줄 표창으로까지 이어진다. 이중적 의미의 제목처럼 영화 역시 ‘죽으려 환장한’ 이대로의 코믹한 상황과 그에 상대적으로 비례하는 눈물겨운 부성애를 나란히 쥐고갔다. 사실 이대로는 지난 8년간 키워온 딸이 진짜 자신의 딸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지방 근무하던 시절 다방 종업원 영숙과 사고쳐서 낳은 딸이라지만 아이를 놓고 도망간 영숙의 주장일뿐이다. 그러나 이대로는 8년간 딸을 금이야 옥이야 키워왔다. 이대로의 일말의 인간적인 면이 드러나는 부분. 제멋대로 사는 와중에도 딸에게만큼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었던 이대로가 그런 딸을 두고 죽어야하니 미칠 노릇인 것이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비장한 병법을 코미디의 소재로 차용한 재치와 누구나의 아킬레스건인 가족에 대한 사랑을 버무린 영화는 부담없는 한편의 소품이 됐다. 마침 가수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 중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라는 가사가 영화와 딱 들어맞는 것도 귀엽다. 배우 오지혜의 남편으로 이 영화를 통해 데뷔한 이영은 감독은 “사람들의 변화, 결핍된 가족애의 완성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옹박-두번째 미션 차고 비틀고 꺾어라! 태국의 액션 스타 토니 자가 ‘옹박-두번째 미션’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소룡은 죽었다. 성룡은 늙었다. 이연걸은 지쳤다’고 외치며 새로운 액션 스타로 등극했던 그가 1년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모습은 이전에 비하면 한층 화려해 보인다. 제작비 규모는 전편의 10배 가량. 이 덕분에 전편에 없던 보트 추격신이 새롭게 등장하며 촬영지는 태국과 시드니를 넘나들었다. 스케일이 커진 만큼 그가 대결하는 상대의 면모도 다양해졌다. 이제 호주 출신인 거구의 레슬러의 거대한 주먹을 피해야 하며 채찍을 휘두르는 중국 악녀에도 맞서야 하는 것. 여기에 브라질 무술 카포에이라를 사용하는 용병의 발차기와 베트남 출신 악당의 현란한 무술에도 대적해야 한다. 영화의 원제는 영화 속 악당들의 소굴인 시드니의 음식점 이름 ‘톰 양 궁’(TomYum Goong). 주인공 토니 자의 분위기는 전편과 비슷하지만 줄거리는 이전과 이어지지 않는다. 주인공 청년 캄(토니 자)은 깊은 산골에서 코끼리를 키우며 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커 온 이 코끼리의 이름은 포야이. 완벽한 혈통의 코끼리로 새끼 콘과 함께 캄과는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이다. 하지만 얼마 뒤 밀수꾼들은 이들에게서 두 코끼리를 빼돌리고 이를 호주의 시드니로 보낸다. 코끼리를 지키려던 캄의 아버지 역시 악당들에 의해 부상을 입은 상황. 악당들을 한명 한명 물리쳐가던 캄은 코끼리를 찾아 호주행 비행기를 타고 이 곳에서 태국 출신 경찰관인 마크(페치타이 웡캄라오)와 힘을 합쳐 코끼리의 소재를 찾아나선다. 이때부터 악당들과의 본격적인 승부가 펼쳐진다. 무에타이로 달련된 몸에 수m 점프는 기본, 발은 총알보다 빠르고 주먹은 칼보다 강한 이 태국산 액션 영웅의 모습은 처음 봤을 때에 비해 신선감은 떨어지지만 여전히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올 정도로 엄청나다. 특히 후반 식당 계단에서의 액션신은 영화의 압권이다. 70여명의 악당들을 차례로 물리치는 토니 자의 모습을 좇는 카메라의 롱 테이크는 자그마치 4분여를 넘어선다. 여기에 다양한 개성의 악당들이 등장하며 태국의 미녀스타 본코드 콘말라이나 재중동포 중국 무용수 진싱(金星) 등 조연급 배우들의 합류도 영화를 풍성하게 한다. 하지만 전편의 약점인 엉성한 스토리 역시 한층 더 심해진 느낌이다. 인물의 동기는 약하고 줄거리의 비약은 심하다 못해 너무하다 싶을 정도다. 특히 도구를 이용한 몇몇 액션 장면은 실소를 낳을 정도로 과장돼 있다. 상영시간 105분. 18일 개봉. # 코미디 ‘가문의 위기’(감독 정용기)가 최근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에 들어갔다. ‘가문의 영광’ 속편으로 혈통을 개선하기 위해 엘리트 검사 며느리를 ‘모시려는’ 조폭 가문의 이야기가 코믹하게 펼쳐진다. 9월8일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MOVIE/웰컴투 동막골.펭귄

■웰컴투 동막골 웃음과 감동… 따뜻한 전쟁영화 민족 상잔의 비극 6·25가 한창이던 어느날. 강원도 첩첩산중의 마을 동막골에 수류탄이 터진다. 이 마을의 주산물은 옥수수. 우스운 실수로 수류탄이 옷수수 헛간에 떨어지자, 터진 것은 수류탄만이 아니었으니, 바로 이 땅에 최초로 팝콘이 탄생한 순간이다. 높게 솟은 옥수수 알갱이에 핀 것은 하얀 팝콘 꽃, 하늘에서는 팝콘 비가 내리고 여기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마냥 순박한 웃음이 퍼져나간다. 습기와 더위로 지친 한여름 휴식같은 영화 한 편이 관객들을 만난다. 굳이 장르로 분류하자면 전쟁 블록버스터. 하지만 1천만 관객 동원에 빛나는 ‘태극기 휘날리며’와도,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핵무장을 하자는 ‘천군’과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군에 인민군에 미군까지 총출동하지만 이 영화에는 대립도, 살육도, 울부짖음도 그 중심에 없다. 영화의 주된 배경은 전쟁터가 아닌 전쟁의 포화에서 빗겨간 산골 마을 ‘동막골’이다. 그다지 전략적 요충지도 아니고 워낙 외진 마을인 까닭에 이 곳에서 전쟁이니 총이니 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들이다. 국군 표현철(신하균)과 문상상(서재경), 인민군 리수화(정재영), 장영희(임하룡), 미군 스미스 대위(스티브 테슐러)는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하지만 뭔가 알지 못할 힘에 이끌려 이 마을에 흘러든다. 전쟁에 찌들린 이들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것은 일단 당연한 일. 서로 으르렁대던 이들은 멧돼지 잡고, 풀썰매 타며, ‘강냉이’ 튀겨먹으며 어느 새 마을 사람들의 순박함에 동화되어 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잠잠한 마을에도 전쟁의 긴장은 점차 스며든다. 이제 동막골은 이들에게는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낙원이며 이곳의 사람들은 진정으로 보호해주고 싶은 존재들이다. 다른 소속 세 무리의 군인들은 마을을 구하기 위해 연합작전을 시작한다. 분단과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다음달 4일 개봉하는 영화 ‘웰컴투 동막골’(제작 필름있수다)이 담고 있는 목소리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영화는 6.25 이후 한동안 나왔던 반공 영화와도 다르고, 80년대 이후 작품들에서 보여준 분단의 비극도, 아니면 ‘쉬리’나 ‘태극기 휘날리며’의 묘한 형제애도 담고 있지않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그리고 그 사이의 사랑에 있다. 밖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어찌보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 없는 이 곳 사람들의 이야기는 풍부한 웃을 거리와 볼거리 그리고 후반부 웅장한 감동과 함께 펼쳐진다. 영화 속 동막골의 사람들은 지금보니 낯설지만 어찌보면 우리들 본연의 모습이다. 함께 밭을 갈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낯선 이를 경계하지도 추운 사람에게 옷을 나눠주기를 꺼려하지도 않는다. 이쯤 되니 총부리를 들이대봤자 나오는 것은 ‘우터(어떻게) 오셨나? 부애(화) 많이 나셨네’ 쯤 되는 말. 전쟁이니 총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은 소박하고 아둔해보이는 말투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영화가 가식적이지 않고 순수하게 흘러갈 수 있는 것은 정재영과 신하균, 강혜정과 임하룡 등의 탄탄한 연기와 이미 대학로에서 히트를 쳤던 원작 연극의 덕도 단단히 한 몫 하지만 신인 박광현 감독의 차분한 연출력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듯하다. 톱스타 한 명 없는 캐스팅에 신인 감독의 작품이지만 영화는 올해 상반기 최고의 이변이자 최고의 흥행작인 ‘말아톤’의 뒤를 이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배우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 히사이시 조가 들려주는 서정적인 음악이 이를 든든히 뒷받침해주는 영화의 장점들이다. ■펭귄 남극의 ‘신사’ 펭귄 진한 모성애 그려 참 고약스러운 일이다. 남극에 사는 황제 펭귄. 새는 새인데 몸집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아 날 수가 없고, 사는 곳은 1년 내내 눈보라가 몰아치는 남극이니 도대체 번식은 어떻게 해야하며 먹이는 어디서 구해야 하나. 우리가 ‘남극의 신사’ 펭귄에 대해 알고있는 것은 상당 부분 피상적이다. 그래도 새니까 아마 알을 낳을 테지만, 추운 날씨에 어떻게 부화를 하는 지는 잘 모른다. 여름 극장가에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가 한편 개봉한다. 프랑스 제작 영화 ‘펭귄-위대한 모험’(March Of The Penguins)이 그것. ‘남극의 황제 펭귄’의 생태를 담아낸 이 영화는 다음달 4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애초에 대단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영화가 보여주는 펭귄의 1년살이는 충분히 관심을 끌 만하다. 펭귄의 짝짓기 시기는 겨울이다. 바닷속에서 생활하던 황제 펭귄들은 아마도 조상대대로 수천년은 반복했을 긴 여행을 떠난다. 한명 한명 얼음 틈에서 솟아나와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 이들이 향하는 곳은 머나먼 평지 ‘오모크’(Hummok). 특유의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아니면 배를 바닥에 깔고 미끄러지며 차근차근 길고 먼 행진을 계속한다. 한참을 거쳐 오모크에 도착한 이들은 ‘춤’을 춘다. 우리에게 춤을 추는 행위로 보이는 것은 사실 짝짓기를 하는 것. ‘꺼욱 꺼욱’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구애의 시간이 길게 이어지면 커플을 이룬 암수는 짝짓기를 시작하고 알을 낳으면 이제부터 이 어린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 흥미로운 정보에 지적 만족감을 느끼다 보면 영화는 어느새 생명에의 경외와 그들에게도 여전한 부(모)성애를 느끼게 해준다. 본능처럼 펭귄들은 자식을 위해 온몸을 내던지고 그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의 생명이 탄생한다. 이금희 아나운서가 내레이션을, 성우 배한성과 송도순, 아역 배우 박지빈 등이 한국어 목소리 더빙을 맡았다.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85분. #박찬욱 감독의 신작 ‘친절한 금자씨’가 8월31일~9월10일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제62회 베니스영화제의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박 감독이 해외 3대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된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베를린, 2001년), ‘올드보이’(칸, 2004년)를 포함해 이번이 세번째다.

MOVIE/친절한 금자씨.올림포스 가디언

#친절한 금자씨 금자씨의 ‘친절한 복수극’ 박찬욱 감독의 떠들썩한 신작 ‘친절한 금자씨’(제작 모호필름)가 29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감독 스스로의 입을 통해서, 혹은 기대에 찬 지지자들에 의해 복수 트릴로지의 마지막편으로 불리는 이 영화는 삼부작의 전작 ‘올드보이’에 비하면 스타일의 기름기가 한층 빠졌으며 ‘복수는 나의 것’에 비해서는 비장미가 줄어든 느낌이다. 화려한 스타일과 힘있는 캐릭터라는 감독 특유의 재능은 어김없이 영화에 잘 드러나 있지만 복수극하면 기대되는(혹은 ‘올드보이’로부터 기대되는) 장르적인 재미가 풍부한 것은 아니며 동시에 건조하고 소름끼치는 복수 이야기도 아니다. 제목과 영화사의 이름을 빌려 표현하자면 영화속에서 친절함은 지나치면서도 동시에 갑작스러워 모호함을 담고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인 금자(이영애)는 스무살에 죄를 짓고 감옥에 가게 된다. 어린 나이,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검거되는 순간에도 언론에 유명세를 치른다. 13년동안 교도소에 복역하면서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보내는 금자. “기도는 이태리 타올이야. 아기 속살이 될 때까지 빡빡 문질러서 죄를 벗겨 내”라는 식의 천사 같은 얘기가 나긋나긋한 말투와 친절한 미소 속에서 흘러나오니 ‘친절한 금자씨’라는 별명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붙여진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한명 한명 열심히 도와주며 13년간의 복역생활을 무사히 마친 금자, 출소하는 순간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치밀하게 준비해온 복수 계획을 펼쳐 보인다. 그녀가 복수하려는 인물은 자신을 죄인으로 만든 백선생(최민식)이다. 13년의 시간만의 문제는 아닌 듯, 금자는 백선생 덕분에 한 아이를 죽게 만드는 데 한몫했으며 자신의 아이와 헤어져야 했다. 전반부 절반을 차지하는, 복수를 준비하는 금자의 이야기는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한편으로는 독특하면서 기발하다. 영리하게 영화를 잘 만드는 박 감독의 재기는 두말할 것 없이 이번 영화에서도 풍부하다. 탄탄하게 꾸려진 인물 한명 한명은 각자의 에너지와 개연성을 가지고 잘 꾸며져 있고 화면은 스타일리시하면서 힘이 있다. 그 틈에서 착하고 밋밋한 표정과 함께 욕설을 내뱉는 금자의 모습은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함과 함께 양면의 충돌을 통한 강렬함을 발산한다. 어찌보면 과잉이라고 할만큼 넘치는 스타일로 힘 있게 전개되던 영화는 금자와 백선생이 만나 복수가 본격화될 시점인 중반 이후 ‘속죄극’으로 점프한다. 백선생에게 복수를 할 사람들은 모두 모여서 복수의 방법을 토론하고 각자 복수할 순번을 정한 뒤 그에게 린치를 가하기 시작한다. 복수에서 속죄로 넘어가는 이 순간은 동시에 영화가 지나치게 친절해지는 순간이다. ‘말이 지나치게 많은’ 복수와 이후 이어지는 금자의 속죄는 영화적이기보다는 연극적이며 은밀한 상징이기보다는 너무 직접적인 연설인 까닭에 당황스럽다. 복수의 계기 만큼 속죄의 계기도 애매해진 것은 이때부터다. 감정은 친절하면서도 추상적인 까닭에 여전히 모호하고 동시에 복수의 스릴도, 속죄의 아픔도 느껴지기는 쉽지 않다. 상영시간 112분, 18세 관람가. #올림포스 가디언 그리스·로마 신화 상상의 나라로~ 그리스 로마 신화는 길어도 길어도 계속 물을 쏟아내는 샘물처럼 오랜 시간 동안 상상의 세계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목을 축여줬다. 이번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을 애니메이션에서 만나게 됐다. ‘기간테스 대전쟁(기간토마키아)에서 트리톤이 소라고둥을 불어 기간테스들을 혼란에 빠뜨림으로써 올림포스 신들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 한 문장을 애니메이션으로 꾸며낸 ‘올림포스 가디언’이 28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2002년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던 이 작품은 ‘만화로 보는그리스 로마 신화’(가나출판사)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알맹이는 TV 애니메이션과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내용이다. 국산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처럼 세련되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매끄러운 3D 장면도, 재치 넘치는 장면도 없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해 내용만큼은 아이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올림포스의 열두 신이 세계를 지배하던 어느날, 마법을 다루는 인간의 왕 에우리메돈은 신들을 없애려고 기간테스를 부활시킨다. 거인족의 하나인 기간테스는 신들에 대항할 수 있는 강적.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정령 암피트리테 사이에서 태어난 트리톤은 해룡 시드와 헤르마 등 친구들과 바다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열네살 소년이다. 그러나 포세이돈의 무기 트라이던트를 훔치려는 에우리메돈이 트리톤의 엄마를 납치하고 트리톤은 엄마를 구하려고 모험을 시작한다. 중간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주제곡의 뮤직비디오와 같은 장면과 요즘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힘들어 보이는 문어체식 대사가 어색하긴 하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줘 방학을 이용해 아이들과 부모님이 손잡고 함께보면 딱 좋은 작품이다. 상영시간 87분. 전체관람가.

MOVIE/아일랜드.천군.발리언트

○아일랜드 슬픈 ‘복제인간’ 대체 난 누구야 미래사회. 심각한 대기 오염으로 소수만 생존해있다. 이들이 모여 살고있는 첨단 시설의 건물. 통제가 지나쳐 보이지만 오염으로부터의 보호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사실 그다지 불만스럽지는 않다. 직접 세상으로 나가 공기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의 생활은 오히려 편해보인다. 잘 정돈된 옷들과 최신식의 놀이 시설, 첨단기술이 건강까지 관리해주고 식단도 여기에 맞춰 철저하게 조절되니 아쉬울 게 별로 없다. 게다가 이들은 바깥 세상에서 구원된 선택된 사람들, 이제 복권에만 당첨되면 꿈의 낙원 ‘아일랜드’로 가는 티켓을 얻을 수도 있으니 이곳에 모인 자들은 분명 행복한 사람들이다. 할리우드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흥행 불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재주꾼 마이클 베이 감독이 ‘아일랜드’로 돌아왔다. 영화는 과학적 허구이면서 동시에 인간복제라는 어두운 설정으로 출발한다. 에코 혹은 델타 등의 코드와 숫자의 조합으로 이뤄진 이름을 가진 이곳의 사람들은 사실 복제인간이다. ‘당신들은 선택된 사람이다’고 끊임없이 칭찬을 받지만 건물의 뒷쪽에서 이들을 부르는 명칭은 ‘복제인간’(Clone) 혹은 ‘상품’(Product)이다. 영화의 배경도 먼 미래가 아닌 2020년대의 가까운 훗날이다. 일부 부자들은 거액의 돈을 투자해 자신들의 복제품들을 만들었으며 철저한 ‘품질관리’를 거친 이들은 아이를 낳는 데, 혹은 간 같은 장기의 이식에 사용된다. 결국 ‘아일랜드’행 당첨은 이들에게는 용도 폐기 혹은 사망이라는 뜻과 다르지 않다.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자들 중 가장 먼저 ‘의심’이라는 것을 해 본 사람은 링컨6-에코(이완 맥그리거)다. 왜 항상 같은 색 옷을 주는지, 왜 먹고 싶은 베이컨을 못먹게 하는지, ‘생각’이 많은 그는 마침 매일 밤 같은 내용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가 진실을 알게된 것은 친하게 지내던 조던2-델타(스칼렛 요한슨)의 아일랜드행이 결정된 날이다.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벌레의 발견이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한 결정적인 계기. 벌레의 이동경로를 쫓아가다 건물의 뒤편을 보게된 링컨은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결국 조던과 함께 ‘생명’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속도감있는 액션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가지고 있던 마이클 베이 감독은 처음 선보이는 자신의 SF영화를 통해 인간 복제를 화두로 꺼내든다. 영화가 보여주는 클론의 부정적인 면은 꽤나 강도가 센 편이다. 영화는 간을 빼내던 중 도망치려던 클론의 모습이나 대리 출산 직후 아이를 안아보기도 전에 어김없이 죽임을 당하는 산모의 얼굴에 클로즈업을 한다. 거대한 양수 주머니를 통해 잉태 혹은 생산되는 클론들, 후반부 클론과 본체는 서로 자신이 인간이라고 외친다. 이완 맥그리거와 스칼렛 요한슨이 이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슬픈 클론으로 출연한다. 21일 개봉. ○천군 남북한 군인들 이순신 영웅 만들기 오랜만에 단순 명쾌한 영화가 등장했다. 그렇다고 웃자고 덤빈 허랑방탕한 코미디는 아니다. 오히려 80년대 극장에서 틀어주던 ‘대한뉴스’처럼 교과서적인 메시지가 분명하다고 할까. 2005년 남북한이 공동으로 개발한 핵탄두 비격진천뢰가 미국에 양도될 상황이 벌어지자 북한군 소좌 강만길(김승우 분)은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비격진천뢰를 빼돌려 압록강으로 도망친다. 이때 433년만에 지구를 지나는 혜성의 이상 작용으로 강만길 일행과 그를 쫓아가던 남한장교 박정우(황정민 분) 일행은 순식간에 강력한 빛에 흡수돼 사라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들이 떨어진 곳은 1577년 조선 변방. 오랑캐 여진족의 습격에 민중들이 피폐된 삶을 살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일행은 도적질과 밀매를 일삼으며 제멋대로 살아가는 더벅머리 스물여덟살 청년 이순신(박중훈 분)과 맞닥뜨린다. 과거로 간 주인공들은 이순신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영웅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무과 시험에 떨어져 인생을 포기한 이순신에게 “넌 4년 후 무과에 붙을거고 훌륭한 영웅이 될거야”라고 잔소리를 겸한 은근한 ‘최면’을 걸어댄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 이들의 등장으로 역사는 왜곡되는 것일까. 영화는 이 부분을 지혜롭게 넘어섰다. “난 왜 맨날 이러냐. 꼬이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라며 삶을 한탄하고, 미래에서 온 이들의 말에 콧방귀도 안뀌던 이순신은 천진난만한 꼬마가 오랑캐에게 무참하게 당하는 것을 목격한 후 스스로 대오각성, 180도 변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시대적 충돌’의 재미를 빼먹지 않았다. 400여년 전이니 이 시대의 물건은 뭐든 현대로 가져가기만 하면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는 문화재가 되는 것. 반대로 수류탄이니 총이니 첨단 무기도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가 되는 것이다. 박정우가 재빨리 펜을 건네 이순신의 사인을 받는 재치도 귀엽다. 또한 이순신에 대한 남북한의 시각 차이도 적절히 이용했다. 박정우 일행이 이순신 ‘교화’에 올인하는 동안 강만길 일행은 어딘가에 떨어진 비격진천뢰를 찾는데 집중하는 모습을 대비시켜 이순신 외에 시선을 돌릴 여유를 준다. 또한 시시각각 죄어오는 오랑캐의 공세 역시 한 축에 놓고 그들과의 대결에서는 꽤 생생한 액션 장면을 끌어냈다. 신인 민준기 감독은 1999년 “왜적대장 ‘평수가’는 무리를 이끌고 종묘로 들어갔는데 밤마다 신병(神兵)이 나타나 공격하는 바람에 적들은 놀라서 서로 칼로 치다가 시력을 잃은 자가 많았고 죽은 자도 많았다”는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권26에 실린한 줄 글귀에 착안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 정체에 대한 설명이 일절없는 ‘신병’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춰, 미래에서 온 주인공들이 이순신 시대 사람들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군대인 ‘천군’일 수도 있다는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자칫 허무맹랑하게 흐를 수 있던 영화는 욕심 부리지 않은 감독의 연출과 박중훈 김승우 황정민 등 주인공들의 고른 호연으로 오락 영화로서의 무게 중심을 잡는데 성공했다. 박중훈은 특유의 코믹함과 관록 사이에서 중간 지점을 잘 잡았고 김승우가 오랜만에 보여준 진중한 연기도 매력적이었다. 14일 개봉, 15세 관람가. ○발리언트 ‘꼬마 비둘기’ 모험의 날갯짓 여름 애니메이션 개봉작들이 줄줄이 대기 중인 가운데 색다른 애니메이션 ‘발리언트’(Valiant)가 22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다른 애니메이션과 차별되는 것은 바로 영국 국적의 작품이라는 사실로 미국산 애니메이션과는 색다른 재미를 가지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비둘기와 독수리 혹은 쥐 같은 동물들. 일단 캐릭터의 외모가 보기 좋게 왜곡됐다기 보다는 사실적으로 묘사됐으며 벌레를 먹거나 전깃줄위에 앉는 행동 자체도 깔끔한 맛은 떨어지지만 날것의 재미를 선사한다. 영국 제작사 방가드 애니메이션, 얼링 스튜디오와 영국영화위원회가 제작했으며 스코틀랜드 출신 이완 맥그리거가 주인공 발리언트의 목소리를 맡았다. 때는 2차대전의 막바지.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영국군은 비둘기 특공대인 ‘메신저 부대’의 부진으로 위기에 처한다. 이는 상대편인 독일군에 무시무시한 독수리 ‘팔콘’이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독수리 앞의 한낱 비둘기일 뿐. 영국의 한 시골마을에 살고있는 꼬마 비둘기 발리언트의 꿈은 바로 이 메신저부대에 들어가는 것이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있지만 문제는 다른 비둘기들에 비해 한참은 작아 보이는 키와 날개에 있다. 주변에서는 비웃음만 쏟아질 뿐, 어머니 역시 아직 ‘알’에 불과하다며 입대를 만류한다. 결국 용기를 내서 런던행 날갯짓을 시작하는 발리언트. 입대 후 최고의 대원이 되기위해 혹독한 훈련도 수행하고 미녀 간호병 빅토리아와 풋풋한 사랑도 키우던중 드디어 중대한 미션이 떨어진다. 상영시간 78분. 전체관람가.

MOVIE/국산 공포영화 四色.인 디스 월드

올 들어 일찌감치 선보인 일련의 일본과 할리우드산 공포영화들이 애피타이저였다면 7-8월에는 한국 공포영화들이 메인 디시로 잇따라 등장한다. 2005년 여름을 서늘하게 할 ‘국산 공포영화 四色’을 소개한다. 국내 대표적인 투자·배급사 네 곳이 각각 한 작품씩을 꿰차고 여름 라인업에 올려놓아, 작품 이면의 대결도 흥미를 끈다. 또 하나. 네 작품 모두 ‘여인천하’라는 점도 특징이다. 구두 가발 첼로...목소리...악! ‘분홍신의 저주’ 신으면 죽는다 ▲분홍신(감독 김용균, 제작 청년필름)=지난 1일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 영화는 무엇보다 다소 부담스러운 김혜수의 이미지를 깔끔하게 희석시켜 그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포스터 속 그의 커다란 눈이 공포와 매치가 잘된다. 안데르센의 동명의 동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 영화는 분홍신을 손에 넣은 후부터 알 수 없는 공포에 시달리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우연히 주운 분홍신 때문에 점차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던 선재(김혜수 분)는 후배 미희가 분홍신을 신고 나간후 발목이 잘린 시신으로 발견되자 분홍신의 실체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날 부르는 죽은 친구의 속삭임 ▲여고괴담4:목소리(감독 최익환, 제작 씨네2000)=‘여고괴담’은 한국의 성공한 공포 시리즈로 한국을 넘어 아시아권에서 유명세를 타고있다. 벌써 네번째 작품이 나왔으니 이만하면 확실한 브랜드 파워. ‘여고괴담’ 시리즈는 1편(1998년)이 전국 250만명을 모으며 대박을 기록했고, 2편(1999년)은 60만명, 3편(2003년)은 180만명을 각각 모았다. 여학교를 무대로 한 콘셉트가 주타깃인 학생관객들의 심리를 제대로 공략한 것. 제작사 씨네2000을 늘 위기에서 구하는 효자 상품이다. 제4편은 어느날 죽은 친구의 목소리를 듣게 된 한 여고생이 죽음의 비밀에 다가서다 맞닥뜨리는 끔찍한 공포를 다룬다. 부제가 ‘목소리’인 만큼 소리에서 오는 공포에 주안점을 뒀다. 이번에도 신인들로 승부수를 띄웠다. 15일 개봉. 기억을 머금은 머리카락 공포 ▲가발(감독 원신연, 제작 코리아엔터테인먼트)=누군가의 기억이 담긴 가발이 탐스러운 머리를 원하는 수현(채민서 분)의 손에 들어온 후부터 수현-지현(유선분) 두 자매에게 일어나는 공포를 그린다. 8월 12일 개봉. ‘마파도’로 상반기 극장가에 파란을 일으킨 코리아엔터테인먼트가 대단히 자신있어 하는 작품이다. 앞서 개봉한 ‘분홍신’과 언뜻 봐서는 콘셉트가 비슷해 보여 후발주자로서 불리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 코리아엔터테인먼트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작품성으로 승부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모발과 전혀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 스크린 속 가발과 실제 머리카락을 비교해보며 관람해도 흥미로울 듯. 섬뜩한 첼로 선율… 너가 죽였니? ▲첼로(감독 이우철, 제작 영화사태감)=여름방학의 끝자락에 개봉하는 마지막 주자로 8월 18일에 개봉한다. 지난 5월 17일 크랭크 인 한 까닭에 현재 초스피드로 촬영이 진행 중이다. 웬만해서는 개봉일을 맞추기 힘든 스케줄이지만 몸집이 가벼운 기획영화의 장점을 극대화해 쓸데없는 욕심은 부리지 않고 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주홍글씨’로 차근차근 필모그라피를 다져나가고 있는 성현아가 단독 주인공을 맡아 독을 품었다. 극중 그는 두 딸을 둔 첼리스트로 젊고 예쁜 엄마이자 조용하고 지적인 음대 강사다. 영화는 단란하고 평온한 생활을 하던 그가 어느날부터 겪게 되는 공포를 그린다. >>인 디스 월드 희망찾아 삼만리 파키스탄 북서부의 샴샤투 지역에는 5만여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곳 난민들이 배급 받는 식량은 밀가루 480g, 식용류 25g, 콩 60g 뿐. 지급 받은 텐트 속에서 담요 세 장과 난로 한개를 가지고 추위를 피할 수 있다. 영화 ‘인 디스 월드’(In This World)의 주인공인 고아 소년 자말(자말 우딘 토라비)도 이들 중 한 명이다. 벽돌 공장에서 일하는 그가 하루에 받는 돈은 1달러(약 1천원) 미만. 어쩌면 평생 이 곳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그는 이제 막 그 운명을 벗어나려하는 찰나에 있다. 바로 사촌 형 에나야트(에나야툴라 자무딘)와 함께 런던행 여정을 떠나는 것. 영어 통역이 그가 동행하는 명분이다. 2003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환호를 받았던 ‘인 디스 월드’가 8일 한국 관객들을 만났다. 당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막바지라는 시대적 분위기가 영화를 화제의 중심에 서게 했지만 영화가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인물들 틈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감독의 카메라 덕분이다. 비행기 한 번이면 쉽게 갈 수도 있을 법 하지만 난민 신세의 두 사람에게 가능한 방법은 육로를 통한 밀입국이다. 위험천만한 여행이 될 것은 눈에 보일 듯 뻔한 일. 하지만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지라 이들은 먼 길을 떠나게 된다. 흥분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낯선 땅. 조력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순박해 보이는 이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다. 목적지에 데려다 주기로 한 브로커는 돈만 챙겨 달아나고 부패한 관리는 뇌물을 요구하며 곳곳에는 검문소가 지키고 있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언어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는 자들. 자말과 에나야트는 버스에 숨어서, 혹은 걷거나 트럭의 바닥에 붙어서 힘겹게 계속 나아간다. 이란을 걸쳐서 간신히 터키에 도착해 일자리를 구하며 잠시 시름을 잊은 두 사람. 하지만 이들 앞에는 다시 컨테이너 박스에 갇혀 수십시간을 지내야 하는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런던까지의 로드 무비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영화는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와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는 관객들에게는 가슴을 헤집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로드 무비 특유의 이국의 풍광을 즐기는 철없음에서 시작한 영화 보기는 흐뭇한 웃음과 비정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거쳐 결국 비통함으로 절규하는 데 이른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의 어디엔가에 위치하고 있다. 카메라는 인물들 사이에 들어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거리를 두고 있고, 스토리에 따라 연기하고 있지만 배우들은 실제로 평생 동안 파키스탄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는 진짜 난민들이다. 15세 관람가.

MOVIE/애니야 노올자~.어썰트13.분홍신

방학이 그리 멀지 않았다. 매년 여름과 겨울방학 극장가에는 어김없이 애니메이션이 걸린다. 이번 여름에는 ‘메이드 인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2편과 ‘메이드 인 코리아’ 애니메이션 2편이 나란히 관객을 찾아온다. 외국 애니메이션 2편은 제작면에서나 기술면에서나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동물과 로봇이라는 소재로 각각 개성있는 이야기를 풀어내 많은 관객들의 발길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애니메이션 2편은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전과 베스트셀러 등 친숙한 이야기를 능숙하게 전개하는 솜씨가 관람 포인트. ▲마다가스카=수박만큼 시원한 웃음을 원한다면 ‘마다가스카’가 어떨까. 뉴욕 센트럴파크동물원에서 호의호식하던 동물 4인방이 졸지에 야생 정글 마다가스카에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제작진의 면면과 주연배우로 동물들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웃음을 기대하게 한다. 목소리 연기도 벤 스틸러, 크리스 록, 데이비드 쉬머 등 개성이 뚜렷한 배우들이 맡았다. 이들이 모여 실사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을 찍는다고 생각하면 그림이 그려질 듯. 아는 사람은 한번 더 웃을 수 있는 패러디 코드도 곳곳에 숨어있다. ‘슈렉2’ ‘캐스트 어웨이’ ‘아메리칸 뷰티’ ‘혹성탈출’ 등의 명장면이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다. 최근 애니메이션마다 등장하는 뮤지컬 분위기의 군무도 볼 수 있다. 14일 개봉. ▲로봇=상상을 뛰어넘는 기계의 세계를 환상적으로 그린 애니메이션 ‘로봇’도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스 에이지’의 크리스 웨지 감독이 제작한 이 작품은 지금까지 많이 봐왔던 인공지능 최첨단 로봇이 아닌 우리 주변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어 인간적인 로봇의 세계를 그렸다. 발명가를 꿈꾸는 로봇 로드니는 꿈을 이루기 위해 대도시를 찾는다. 그곳에서 수다스러운 고물 로봇 팬더를 만나 모험을 겪는다. 이완 맥그리거와 로빈 윌리엄스, 할리 베리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영화 내내 끊임없이 움직이며 펼쳐내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이다. 놀라운 디자인으로 설계된 거대한 로봇 도시의 구석구석과 각종 로봇을 구경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29일 개봉. ▲왕후 심청=남북한이 손을 잡고 제작한 첫번째 작품인 ‘왕후 심청’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고전 ‘심청전’에서 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지난해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ACF)에서 장편부문 그랑프리를 거머쥐기도 했다. 심학구 대감의 외동딸 청이는 듬직한 삽살개 단추와 말썽꾸러기 거위 가희, 졸린 눈을 껌뻑이는 거북이 터벙이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아버지 눈을 뜨게 하기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간다. 내용은 ‘심청전’을 따라갔지만 인물은 현대적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이 작품은 현재 남북한 동시개봉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심슨가족’의 애니메이터 넬슨 신 감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남북한 동시개봉성사 여부는 7월중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8월 초 개봉. ▲그리스 로마 신화-올림포스 가디언=‘올림포스 가디언’은 1천만부 이상 팔려나간 베스트셀러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원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쉽게 설명해줘 재미도 있고 교육효과도 얻는, ‘일거양득’의 효과로 어린이들에게 다가가는 작품.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바다의 정령 암피트리테의 아들인 트리톤. 장난꾸러기 트리톤은 훌륭한 신이 되기 위한 훈련에는 관심도 없다. 그러던 중 트리톤에게 올림포스를 지키라는 임무가 주어지고 놀라운 활약을 펼친다.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등 12신과 아기 해룡 시드와 수다쟁이 헤르마 등 귀여운 캐릭터도 등장한다. 28일 개봉. -어썰트13 이들의 나른한 평화를 깨는 일이 발생한다. 근처를 지나던 범죄 호송 차량이 폭설로 목적지까지 가지 못한 채 이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 것. 죄수 중에는 경찰을 죽인 악명 높은 킬러 비숍(로렌스 피쉬번)도 끼어 있는데, 이들이 들어오면서 갑자기 일련의 무리들이 나타나 경찰서를 습격한다. 놀랍게도 그들은 경찰이다. 영화는 존 카펜터 감독의 1976년작 ‘분노의 13번가’를 리메이크했다. 전화, 전기마저 끊긴 고립무원의 경찰서가 공격받는다는 콘셉트에 매력을 느낀 장 프랑수아 리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어떻게 경찰서를 공격할 수 있나”라며 경악하는 심리학자의 대사 자체가 이 영화의 존재 이유인 것. 경찰서를 공격하는 것도 발칙한데 공격하는 자들이 경찰이다. 비숍과 손잡았다가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부패한 경찰 조직이 비숍을 죽이기 위해 경찰서를 공격하는 것. 영화는 이러한 상황을 친절하게도 초반에 모두 알려주며 스릴러에는 관심 없음을 명확히 한다. 대신 아날로그 액션으로 승부했다. CG나 스턴트에 기대는 대신 몸으로 부딪히는 리얼 액션으로 특수효과에 익숙한 관객에게 신선한 맛을 주고자 했다. 영화의 또다른 재미는 경찰과의 대결을 위해 죄수들에게도 무기를 안겨준다는 것. 고립무원의 경찰서를 동트는 아침까지 사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다. 유치장에서 풀려나 무기를 손에 넣은 죄수들이 날고 뛰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일단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힘을 합하지만 이들이 언제 변심할지는 모르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상황을 일찌감치 보여주고도 영화가 끝까지 관객의 시선을 붙드는 것은 ‘배수의 진’을 친 상황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데서 나오는 얄팍한 신뢰가 나름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긴장감이 소재만큼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7일 개봉, 18세 관람가. -분홍신 분홍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소녀적인 감수성과 동화적 느낌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할머니가 좋아했을 법한 분홍 고무신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분홍신은 그러나 전형적인 현대적인 구두다. 5~7㎝가량의 뒷굽이 있는 보편적인 스타일의 여성 구두. 색깔만 다른 색이었다면 특색이 전혀없을 수도 있는 그런 모양인데, 정말 특이하게도 요즘은 쉽게 구경할 수 없는 분홍색의 표피를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영화 속 여자들은 모두 이 분홍신에 집착한다. 일단 한번 보기만 하면 독점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여 물불 안 가린다. 또 이 신을 신고 있으면 마냥 행복해지는 느낌이 든다. 주인공 선재(김혜수)와 그의 딸 태수(박연아), 그리고 선재의 후배 미희(고수희)가 모두 그러하다. 여기에 다섯 명의 여자가 더 등장한다. 과거 속 세명의 여성과 두명의 여고생. 영화는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힘을 줬다. 하나는 어두운 색감이고, 또 하나는 금속성 음향효과다. 분홍신을 강조하기 위해 나머지 부분은 모두 어둡게 처리했다. 대부분의 신이 밤 신이고 선재의 집도 어두컴컴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김혜수의 빨간 입술과 분홍신만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 두 붉은 색은 여성 욕망의 상징이다. 아름다워지고 싶고, 특별해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 남편이 바람 핀 사실을 알게 된 선재로서는 반대급부로 더욱 화려한 것에 집착하게된다. 그녀가 안과 의사라는 사실 또한 종종 클로즈 업되는 눈과 함께 영화의 ‘차가운 시선’을 강조한다. 그러나 색감이 눈을 사로잡는다면 금속성의 날카로운 음향은 귀를 자극한다. 분홍신을 신고 또각또각 걷는 소리도 부분적으로 공포를 주지만 연신 이어지는 거울이 깨지는 듯한 ‘쇳소리’는 대단히 자극적으로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이런 쇳소리가 유치하면서도 고민 없는 선택 같기도 하지만 나름의 효과는 기본적으로 발휘한다. 버려진 분홍신을 신은 여자들이 이상 기운에 휩싸이고, 그 분홍신을 친구 혹은 엄마로부터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여자들은 목숨을 잃는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발목이 잘린 채로. 발목이 잘릴 때는 어김없이 쇳소리가 들려온다. ‘토막살인’의 끔찍한 효과. 분홍신을 탐낸 무용수가 결국은 멈추지 않는 분홍신 때문에 파멸하는 이야기. 그때의 원죄가 60여년이 흐른 현대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설정으로 관객의 시선을 따돌린 영화는 후반부 반전을 몰아친다. 15세 관람가, 30일 개봉. -설경구가 차기작으로 멜로 영화 ‘사랑을 놓치다’에 출연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송윤아와 함께 멜로 연기를 펼치는데 대학시절부터 10년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온 두 남녀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11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MOVIE/남극일기.프락치.코치 카터

■남극일기 이게 남극이다. 6개월은 밤, 6개월은 낮이 이어지는 곳. 눈 앞에는 온통 하얀색 뿐, 하얀 산과 하얀 바람, 하얀 눈과 눈부신 햇빛 만이 대륙을 덮고 있다. 아마 땅 속을 파보면 수십년 혹은 수백년 이상 묵은 눈을 볼 수도 있을 듯, 무슨 일이 일어나도 혹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그저 그대로 거대한 모습을 유지한 채 거기 있는 그런 곳이다. 남극에 여섯 명의 남자들이 줄을 지어 걷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무보급으로 도달불능점을 정복하는 것. 남위 82도8분 동경 54도58분에 위치한 이 지점은 남극 대륙 해안에서 가장 먼 곳으로, 지금까지 1950년대 옛 소련 탐험대만이 단 한차례 가본 적이 있다. 기대작 ‘남극일기’가 19일 드디어 영화팬들을 만난다. 뉴질랜드 로케이션이나 송강호·유지태 등의 화려한 캐스팅, ‘반지의 제왕’의 스태프와 ‘공각기동대’의 거장 가와이 겐지 음악감독의 참여, 그리고 제작비 90억 원의 초대형 예산 등 화려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영화가 상반기 기대작으로 주목받았던 것은 남극이라는 장소와 스릴러라는 장르의 조합이라는 새로움에 있다. 일부의 우려와 달리 남극과 미스터리를 함께 빚어놓은 언발란스는 감독의 손을 거치며 매력적인 결과물로 탄생했다. 감독은 단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과 남극이라는 땅덩어리 하나로 힘있고 밀도 높은 미스터리 영화를 만들어 놓고 있다. 풍경이 주는 광활함의 공포는 그 어떤 스릴러의 눈에 보이는 악몽 못지 않게 지독하며 그 와중에 드러나는 인간들은 쉽게 부서질 듯 위태로워 슬프다. 이들이 수십일 동안 걷고 먹고 자는 이곳은 언뜻 봤을 때의 마냥 경치 좋은 곳만은 아니다. 고요함은 써늘함의 다른 표현이며 광활함은 막막함의 유사어다. 말이 좋아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지 일행들과 비슷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어느 곳에선가 숨진 채 묻혀 있다. 탐험대를 이끄는 대장은 노련하면서도 냉철한 카리스마가 있는 도형(송강호)이다. 최대장의 오랜 파트너이자 지적인 부대장 영민(박희순)과 식사 담당인 근찬(김경익), 통신 담당 성훈(윤제문), 전자장비 담당 재경(최덕문)은 부대원이며 이들의 뒤를 막내 민재(유지태)가 따르고 있다. 순조로웠던 탐험대에 묘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 것은 영국 탐험대의 남극일기가 발견되고 부터다. 얼마 뒤 재경이 바이러스가 없는 남극에서는 도저히 발병할 수 없는 감기 증세를 보이다가 낙오하고 대원들은 빨리 그를 구해야 한다는 쪽과 탐험을 계속하자는 쪽으로 나뉘어 갈등한다. 피해는 불가피하다고 대원들을 다그치는 대장과 논리적 분석으로 그를 따르는 부대장, 여기에 근찬과 성훈은 재경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철수하자고 주장한다. 여기에 상황은 예기치 않은 사고까지 일어나며 점점 극으로 치닫고 대원들은 원인모를 광기의 분위기에 휩싸인다. 어느새 논리적인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순했던 막내의 눈은 발갛게 충열되며, 대장은 목표 달성을 위해 앞뒤 안가리는 사이코가 되어 간다. 남극의 묘한 기운은 얼음 사이의 갈라진 틈에서, 텐트밖에서, 그리고 언덕 너머 어디에서 이들을 지켜본다. 초반에 인물들을 설명하며 워밍업을 하던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속도를 올리다가 결국 광기로 치달으며 폭발을 한다. 스릴러의 스토리는 감독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 듯, 여기에 송강호, 유지태를 비롯해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져 두 시간에 가까운 긴 러닝타임은 지루함 없이 힘있게 흘러간다. 15세 이상 관람가. ■프락치 장마철쯤 돼보이는 무더운 여름. 러닝셔츠 차림의 두 남자가 변두리 여관방에 누워 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고 이 땀은 텁수룩한 수염을 타고 눅눅하게 흐른다. 방 안에는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여관의 사람들은 이 두 남자를 ‘아마 동성애자 커플일 것’이라고 오해한다. 지난해 독립영화계의 화제작 ‘프락치’가 20일 개봉한다. 밴쿠버와 로테르담(국제비평가상),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유수의 영화제를 통해 호평을 받았던 이 영화는 ‘옥천전투’와 ‘팔등신으로 고치라굽쇼?’로 알려진 황철민 감독의 7년 묶은 야심작이다. 두 남자 중 나이 들어보이는 쪽은 정보기관의 기관원(양영조)이다. 젊은 쪽은 이미 정체가 드러나 은둔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인 프락치(추헌엽). 영화 감독 지망생이던 이 프락치는 이제 사랑하던 사람 앞에 다시 서지 못할 상황에 놓였고 기관원의 감시에 묶여 여관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처지다. 벽장 하나, 거울 한개밖에 없는 이 여관 방에서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밥 먹는 것 말고는 별로 없어 보인다. 소지품이라는 것은 프락치의 비디오 카메라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 정도. 무료해하던 두 사람은 ‘죄와 벌’을 대본으로 카메라 앞에서 연극을 한다. 얼핏 호형호제하는 가까운 사이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래도 갇힌 자와 가둔 자다. 이는 이들의 ‘영화 찍기’ 놀이에 옆방의 배우 지망생이 합류하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세 사람은 함께 술도 마시고 잠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억압과 피억압의 관계는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감독은 독일 유학시절 실제로 만났던 학원 프락치에게서 영화의 모티브를 따왔다. 상영시간 100분. 15세 관람가. ■코치 카터 고등학교 농구팀 선수들에게 학교 수업은 어떤 의미일까? 흔히들 별의미가 없다고 말하겠지만, 이 팀이 지난 4년 동안 지역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으며 반 학생들의 극소수만이 대학 진학의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수업에 참석하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이 아이들에게 삶 자체에 성의를 보인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1999년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코치 카터’(Coach Carter)가 13일 개봉했다. 흔하지도, 뻔하지도 않은 스토리는 이 영화가 가진 최고의 장점. 사무엘 L. 잭슨의 카리스마와 이에 반하는 아이들의 개성이 잘 드러난 데다, 줄거리가 단지 운동이외의 꿈 얘기로 진전을 보는 것은 이 영화를 범작 이상으로 만들어 놨다. 왕년의 고교 농구 스타 플레이어 출신으로 지금은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는 켄카터(사무엘 L. 잭슨)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꿈이라면 고등학생 농구 선수인 아들 데미언(로버트 리처드)이 좋은 선수로 자라나는 것 정도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모교 리치먼드 고등학교의 농구팀 코치 제의가 들어온다. 안정된 생활과 새로운 도전 사이에서 갈등을 하던 카터는 결국 팀을 맡기로 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학교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팀은 지구 내 꼴찌를 도맡아 할 정도인데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반항적이고 제멋대로에 실력도 ‘꽝’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아이들의 패배의식. 유색인종 거주지역에 위치한 이 학교에서 농구팀의 존재 이유는 그저 아이들에게 ‘맘 잡고’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게하는 수단 이상이 못된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 가난의 고통으로 아이들은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어 가고, 꿈이라는 흔한 단어는 이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헛된 망상일 뿐이다. 아이들과 마주 선 카터는 두 가지 목표를 세운다. 하나는 팀에게 옛날의 영광을 되찾아주는 것, 나머지는 아이들을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이다. 혹독한 훈련 끝에 결국 농구 팀은 승승장구. 하지만, 문제는 이보다는 학업쪽에서 발생한다. 아이들이 여전히 학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자 결국 그는 약속대로 체육관을 폐쇄하고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진다.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36분.

MOVIE/혈의 누.밀리언즈.킹덤 오브 헤븐

■혈의 누 조선시대판 살인의 추억 ‘혈(血)의 누(淚)’는 피눈물이다. 피눈물이 난다는 것은 한이 사무친다는 의미. 말할 수 없이 억울할 때, 그 억울함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피눈물이 난다. 조선 후기 한 외딴섬. 종이를 만드는 제지소의 운영으로 번창해가는 이 섬에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도 대단히 참혹한 방식이다. 또 그에 앞서 원인 모를 화재로 조공용 종이가 가득 실린 배가 불타버린다. 한양에서 수사관이 파견된다. ‘과학수사’를 내세우는 냉철한 원규(차승원 분)는 섬을 지배하고 있는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그 실체 파악에 나선다. 그 핵심에는 마을 사람들의 묵인하에 억울하게 참형을 당한 한 가족의 사연이 놓여있다. 사극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영화가 대단히 허술해보이기 마련. 캐스팅, 의상, 대사, 로케이션, 미술 등 곳곳에 지뢰가 놓여있다. 그런 면에서 ‘혈의 누’는 합격점을 무난히 넘어선다. ‘스캔들’처럼 미(美)를 탐하지는 않았으나 영화는 나름의 치밀한 고급스러움으로 관객을 정성껏 맞이한다. 여기에 사극과 스릴러의 결합이 별다른 누수 없이 잘 어울렸다. 조선 후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온몸으로 껴안은 영화는 자칫 스릴러에 함몰되기 쉬운 유혹을 떨치고 무게중심을 잘 잡았다. 서서히 균열이 생기는 반상의 질서와 그 사이를 비집고 꿈틀대는 자본주의 사상, 그리고 당시의 ‘마녀사냥’ 구실이 됐던 천주교도 등의 설정이 맞물려 돌아가는 속에 안경, 종이, 도르래 등의 장치가 시대를 흥미롭게 대변한다. 또한 영화는 고전적 액션의 신기원을 열었다. 제지소 내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CG에 기대지 않고 오직 제지소 내 각종 도구와 장치를 이용해 전개된다. 할리우드 영화로 익숙한 부비 트랩의 묘미가 조선 시대 제지소에서 펼쳐지는데 그 재미가 상당하다. 이러한 ‘기본’을 바탕으로 영화는 원규 캐릭터의 변화를 심도있게 포착했다. 김대승 감독은 원규의 공명심과 자부심이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수치심과 배신감으로 변하는 과정을 세밀화를 그리듯 표현했다. 이 과정에서 차승원은 기존의 코믹한 이미지에서 나오는 선입견을 보란 듯 깨버린다. 그는 시종 묵직한 톤으로 원규 캐릭터를 끌어나갔고 성공적으로 정극에 안착했다. 차승원의 이러한 변화는 영화를 보는 대단히 중요한 재미다. 자신을 정상으로 이끈 이미지를 정면으로 배반하기란 스타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 웬만큼해도 본전을 하기 힘들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그를 원규 역에 캐스팅한 좋은영화사의 안목과 용기도 높이 평가된다. 5월 4일 개봉, 18세이상관람가. ■밀리언즈 돈벼락 맞으면 뭐할거니?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 돈을 쓸 수 있는 기간은 열흘 뿐이다. 그렇다면 뭘 해야할까. 현대인들에게 이보다 더 즐거운 고민은 없을 것이다. ‘밀리언즈’는 유로화 통합에 관한 가장 깜찍하고 예쁜 이야기다. 돈다발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소재에 천진무구한 동심을 버무리고, 양념으로 엄마 잃은 아이의 보편적인 슬픔을 가미한 영화는 귀여운 동화로 탄생했다. 할리우드식 동화의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 것도 눈여겨볼만 하다. 영국의 한 소도시. 기찻길 옆에 빈 박스를 쌓아놓고 그 안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7살 꼬마 데미안의 머리 위로 검정색 가방이 뚝 떨어진다. 누군가가 기차에서 집어 던진 가방 안에는 파운드화가 가득 들어있다. 9살 형 안소니는 “절대 아빠한테도 말하지 말고 신고도 하지마. 세금이 40%란 말이야”라며 둘이서 이 돈을 쓸 궁리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파운드화가 열흘 후면 유로화로 통합되는 것. 은행에서 환전을 하지 않는 한 열흘 후면 이 돈을 쓸 수 없는데, 꼬마들이 무슨 수로 은행에서 환전을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신나게 쓰는 수밖에. 물론 이는 가상의 설정. 영국은 아직도 꿋꿋하게 파운드화를 쓰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 꼬마들처럼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 신나는 씀씀이는 현실에서 경험하기 힘들다. ‘28일후’ ‘트레인스포팅’ ‘비치’ 등에서 독특한 감각을 뽐낸 대니 보일 다운 설정이다. 감독은 돈다발 이전에 형제의 엄마를 하늘로 보냈다. 어린 데미안에게 사람들은 “엄마는 착한 일을 많이 해서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했을 것이고, 이 때문에 데미안은 유독 죽은 성자와 성녀의 이야기에 집착한다. 대니 보일의 괴짜 기질은 이 부분에서 도드라진다. 데미안의 상상을 통해 “하늘에서는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라며 담배를 피우는 성녀, 참수형 자국이 목에 그대로 남아있는 성자, 데미안 대신 학교 연극에서 목소리 연기를 해주는 성자 등을 등장시키는 것. 데미안은 이들을 만날 때마다 “하늘에서 우리 엄마 봤어요?”라고 천진난만하게 묻는다.두 형제의 180도 다른 돈 씀씀이도 흥미롭다. 어른처럼 세금과 부동산을 운운하는 안소니는 아이들에게 돈을 뿌리며 사람 부리는 재미에 빠진다. 반면 데미안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가난하세요(Are you poor)?”라고 물으며 그들을 돕기에 분주하다. 감독은 어른의 축소판인 이들을 대비시키며 돈에 대한 인간사 백태를 살짝 풍자했다. 청빈함을 내세운 몰몬교도들이 데미안이 몰래 기부한 돈으로 어마어마한 금액의 가전제품을 사들인 것이 그중 압권. 대니 보일은 지금까지와 달리 동화 속 예쁜 집 한채를 짓는 느낌으로 화면을 밝고 따뜻한 파스텔톤으로 유지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죽은 엄마를 되돌릴 수 없다는 뻔한 메시지를 나름의 감각으로 포장한 솜씨도 괜찮다. 그러나 아쉽다. 좀더 발칙하고 좀더 깜찍하기를 기대했다. 모두가 같은 길을 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5월 5일 개봉, 전체관람가. ■킹덤 오브 헤븐 ‘서민적 영웅’ 모험담 땅을 둘러싼 국가간의, 그것도 두 문화권이 충돌하는 곳에서의 분쟁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 뭉치처럼 풀어헤치기가 쉽지 않다. 화약고 중동 지역이 대표적이다. 이슬람 문화권과 기독교 문화권이 각자의 성지를 가졌으며 역사적으로 지배를 번갈아 해온 이 지역의 전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걸려있으며 스스로의 국가를 갖고자 하는 욕망이 얽혀있으니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잘 살아보자는 식의 장밋빛 꿈은 어쩌면 영화에서나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외화 중에서는 한동안 눈에 띄는 기대작이 없던 극장가에 할리우드 대작 ‘킹덤 오브 헤븐’이 5월 4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주인공은 떠오르는 스타 올랜도 블룸(‘반지의 제왕’, ‘트로이’)인데다 그의 뒤는 리암 니슨, 에드워드 노튼, 제레미 아이언스 같은 든든한 명배우가 받쳐주고 있다. 감독은 ‘글래디에이터’로 역사 대작 연출의 재능을 인정받았고 ‘블랙호크다운’으로 미국적 시각에서 벗어났다는 호평을 받았던 리들리 스콧. 영화는 오래간만에 괜찮은 대작을 기대하는 관객들의 발길을 잡아끌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여기의 중심이 되는 전투 장면은 바로 눈 앞에서 칼날이 휘둘리는 듯, 모래 먼지가 눈앞으로 튀는 듯, 사실감이 넘쳐나니 일단 이 영화가 볼거리라는 블록버스터의 미덕은 갖추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젊은 대장장이 발리안(올랜도 블룸)은 아이와 부인을 잃고 슬픔에 잠겨있다. 아내를 땅에 묻은 날 그를 찾아온 사람은 십자군 기사 고프리(리암 니슨). ‘내가 너의 아버지’라고 발리안에게 고백하는 고프리는 함께 자신이 영주로 있는 땅으로 떠날 것을 제안한다. 고민하던 중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발리안은 결국 고프리와 함께 가기로 하고 두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먼 길을 떠나게 된다. 동행 중 발리안은 아버지 고프리에게 검술을 배우며 전사로 거듭나지만 미처 예루살렘에 도달하기 전에 고프리는 세상을 떠나고야 만다.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 예루살렘에 당도하는 발리안. 이 곳은 국왕 볼드윈 4세(에드워드 노튼)의 선정으로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의 평화가 지켜지고 있지만 분쟁을 원하는 무리들 때문에 전쟁의 위협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발리안은 용맹함으로 왕의 신임을 받게 되고 아름다운 공주 시빌라(에바 그린)와 사랑에 빠지지만 상황은 그렇게 좋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평화주의자 왕의 목숨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며 공주의 남편은 악명 높은 기사 기 드 루지앵(마튼 소카슨)이다. ‘서민적 영웅’이라는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올랜도 블룸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펼치는 모험담에 전투 장면의 볼거리와 로맨스, 비장함이 적절히 섞여 있으니 영화는 괜찮은 대작이라는 호평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다면, 주인공이 살생을 싫어하게 되는 동기나 살인을 피하고자 왕위를 거절한 그가 결국은 수많은 적들에게 칼질을 하게되는 과정은 설득력이 약해보인다. 두 문화권이 서로를 존중하며 ‘천국의 왕국’을 만들어보자는 식의 흔한 결론도 할리우드영화치고는 전향적이지만 블록버스터의 틀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않은 쉬운 결론이다.상영시간 137분. 15세 관람가.

MOVIE/댄서의 순정.모래와 안개의 집.트리플X2:넥스트 레벨

■댄서의 순정 영화 ‘댄서의 순정’은 순수하고 싱그러운 문근영의 캐릭터에 모든 것을 의지한 영화다. 전국 310만명을 모은 ‘어린신부’의 영광에 다시 한번 도전한 작품. 제작진의 선택은 이번에도 주효했다. 옌볜처녀 춤바람 났네 문근영은 여전히 예쁘고, 아니 더 예뻐졌고 더 착해졌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그게 너무나 매력적이다. 영화의 존재 이유가 살아나는 순간이다. ‘댄서의 순정’은 관객의 순정에 호소하는 영화다. 문근영의 순정은 남녀노소에게 일체 거부감 없이 스며든다. 거부감은 커녕 문근영이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무장해제당한 관객은 저 밑에 가라앉아 흔적을 찾기 어려웠던 순정을 잽싸게 꺼내들게 된다. 관객이 이처럼 자발적으로 너그러운 관람의 자세를 취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옌볜처녀 장채린(문근영 분)이 위장결혼을 통해 서울에 온다. 스포츠댄서인 나영새(박건형 분)와 짝을 맞춰 댄스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곡절 끝에 ‘조선자치주댄스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언니 장채민을 대신해 온 채린은 춤을 전혀 못춘다. 파트너가 뒤바뀐 사실에 기막힌 영새는 그런 채린을 외면할까 하다 결국 훈련시켜 같이 댄스 대회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노래방에서 ‘난 사랑을 아직 몰라’를 멋대로 열창하던 ‘어린신부’가 이번에는 등려군의 ‘야래향’을 그럴 듯하게 소화하고 삼바춤까지 춘다. 2년 사이 키가 3㎝ 자라 165㎝가 된 문근영은 기존의 이미지를 깨고 꽤 날렵하게 삼바를 소화한다. 골반을 리드미컬하게 흔들고 빠른 스텝을 밟는 그의 모습은 분명 신선한 볼거리. 어여쁜 모습만으로도 만족하겠는데 어른이 되는 중간 과정에서 단련된 춤까지 선사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댄서의 순정’은 문근영이 중국어와 춤 연습에 흘린 땀방울만큼 ‘어린신부’ 보다 업그레이드된 영화다. 여전히 순정만화의 눈높이에 머물고 있지만 그 황당무계함은 ‘어린신부’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여기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키치적 유머도 밉지 않고 완성도를 떠나 기승전결이 또렷하다. 이만하면 오락 영화로서의 정체성은 명확한 것으로 보여진다. ■모래와 안개의 집 화려한 결혼식장. 젊은 남녀가 하객의 축복 속에 식을 올리고 있고 신부의 아버지 매수드 아미르 베라니(벤 킹슬리)가 마이크를 든다. 한때 조국 이란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던 그가 이곳 미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어느 정도 부를 가지고 있으리라는 추측밖에. 겉보기에는 성공한 이민자 같지만, 매수드의 실상은 판이하게 다르다. 직업은 고속도로 공사장의 막노동꾼, 고급 아파트에 사는 부유한 이민자처럼 보이지만 공사장의 작업복을 고급 정장으로 갈아입은 뒤의 얘기다. 낡아 보이지만,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집. 침대에 누워 아침을 맞는 캐시 니콜로(제니퍼 코넬리)도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듯하다. 바쁜 사람이지만 그래도 남편이 있고, 청소를 안해 지저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대로 아늑한 집이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와 모래처럼, 그녀의 삶도 위태로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남편에게 버림받은 처지, 알코올 중독자에서 벗어나 힙겹게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뒤뚱거리며 삶이라는 힘겨운 길을 걷고 있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일 때문에 서로 얽히기 시작한다. 캐시는 세무당국의 실수로 집이 경매로 내 놓이는 처지에 처하고 매수드는 이 집을 싼 값에 구입한다. 캐시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유산이며 유일하게 자신이 기댈 곳인 이 집을 그것도 자신의 잘못도 없는데 빼앗길 수는 없는 일. 집을 비싼 값에 되팔 생각인 매수드도 이 집은 막내아들의 학자금이 될, 그래서 넘겨줄 수 없는 밑천이다. ‘모래와 안개의 집’(29일 개봉)이 그리는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들이다. 세상은 답답하게 막혀 있을 뿐, 비극적인 결말은 삶에서 이미 예정돼 있던 듯하며 힘겹게 절망을 극복해봤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괴로움이다. 인간의 의지라는 게, 순진하게 꿈꿔보는 희망이라는 게 작은 의미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두 사람 사이의 얽힘은 경찰관 레스터(론 엘다드)의 등장으로 더 꼬여만 간다. 캐시를 돕던 그가 잘못한 것은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 부인과 자식을 버린 그는 경찰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매수드를 위협하며 가정과 직업이라는 그동안의 규범을 벗어던진다. 점점 복잡해지던 상황은 캐시가 총을 들고 매수드의 집으로 향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트리플X2:넥스트 레벨 리 타마호리 감독은 역시 파워풀하다. 이 영화의 감독이 그리는 것을 알고보면 “과연~”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사의 후예’에서 보여준 가공하지 않은 폭력성은 ‘007어나더데이’에서 자본과 반갑게 악수를 했고 결국 ‘트리플X2:넥스트 레벨’에서는 ‘물 만난 고기’처럼 팔딱거린다. 그는 그야말로 마음껏 때려부수고 폭파했다. 3년 만에 등장한 ‘트리플X’의 속편은 감독과 함께 주인공까지 바꿨다. 전편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빈 디젤은 개런티에 불만이 있었던지 속편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극중에서는 그가 죽은 것으로 처리됐다. 영화는 그토록 뛰어난 비밀 요원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한채 새로운 요원을 선보인다. 랩 가수와 배우를 오가며 활동하는 흑인 스타 아이스 큐브(36)다. 아이스 큐브의 발탁은 인권영화가 아님에도 흑인 주인공을 내세우는데 대단히 개방적으로 변한 할리우드의 최근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는 흑인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이 과거에 비해 놀랄만큼 편해졌다는 얘기. 동시에 흑인주인공은 미국 내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에도 부합한다. 더구나 아이스 큐브가 윌 스미스나 덴젤 워싱턴처럼 잘 빠진 흑인스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 더욱 눈길을 끈다. 그야말로 ‘B급 흑인 배우’의 등용인 것. 그러나 이 같은 제작진의 개방적인 사고와는 별개로 영화는 주인공에 의존하지 않는 영리함을 보였다. 소도둑처럼 생긴 큐브의 액션 연기는 굼뜨고 투박하다. 빠른 발차기나 총쏘기, 고공 다이빙 대신 도끼로 장작을 패야할 것처럼 생겼으니 그에게는 도무지 ‘스타일’이 안 나온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인지 영화는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을 못차릴만큼 격렬하게 요동친다. 주인공에게 시선이 머무르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며 여기저기서 터뜨리고 때리고 부순다. 전편이 익스트림 스포츠의 재미를 줬다면, 이번에는 탱크와 각종 첨단 무기를 미국 수도 워싱턴으로 끌고 와 ‘불꽃놀이’를 벌였다. 여기에 자동차 마니아들의 혼을 쏙 빼놓을 근사하게 빠진 명차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29일 개봉, 12세 관람가.

MOVIE/역전의 명수.인터프리터.칸, 누구를 선택?

■역전의 명수 ‘역전(逆戰) 야구’로 유명한 군산상고의 고장 군산. 이곳 역 앞에는 명수라는 ‘양아치’ 녀석이 있다. 학교는 이미 중학교 때 깨끗이 정리했지만 ‘주먹’ 실력 하나는 꽤나 쓸 만한 편. 역전을 주름잡는 이 친구의 별명은 바로 ‘역전의 명수’다. 공부 잘하는 인재들만 모인다는 서울대학교. 이곳에는 수재 현수가 있다. 역전에 ‘양아치’ 떴다 커트라인 높다는 법대에 수석입학한 터라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은 이 친구에게는 ‘필수과제’처럼 보인다. 군산지역 최고의 수재로 이름을 날리던 현수의 미래는 꽤 밝아보인다. 똑 닮은 외모에 같은 지역 출신인 두 사람은 사실 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형제다. 그것도 명수가 2분 17초 먼저 태어난 쌍둥이. 둘의 미래가 확연히 달라보이는 것은 이 집안의 가훈과 어머니의 자식 교육방침 때문이다. 집안의 가훈은 ‘여자 말을 잘 듣자’며 어머니의 교육 방침은 ‘잘될 놈에게 몰아주자’니, 현수의 미래가 밝은 만큼 명수의 미래는 그저 암울할 뿐이다. 정준호의 1인2역 연기와 ‘쥑이는’ 제목으로 관심을 끌었던 영화 ‘역전의 명수’(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가 15일 개봉했다. 15자 내외로 설명될 만한 ‘콤팩트’한 줄거리와 그 내용이 모두 담겨 있는 듯한 ‘쌈빡한’ 제목, 출연작마다 어느 정도 이상의 흥행은 해주는 배우 정준호가 모였으니 일단 잘 짜여진 ‘기획 영화’의 요소는 모두 갖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하다. 하지만 영화는 아쉽게도 짜릿한 홈런 레이스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에게 지루한 투수전 같은 지지부진한 재미만을 선사한다. 정준호가 연기하는 두 캐릭터의 대비도 그다지 명확하지 않은 편이며 뻔히 다음 장면이 예상되는 줄거리도 힘이 빠져 있다. 영화가 관객을 끄는 부분은 풍부한 조연진에 있다. 명수가 입소하는 교도소의 막내로 ‘변신’한 조형기나 파출소장 역의 임현식이 보여주는 애드리브와 ‘공공의 적2’의 박상욱, ‘말죽거리 잔혹사’의 박효준 등 탄탄한 조연급 연기자들의 모습은 ‘잔재미’를 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신인 박흥식 감독의 데뷔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향하는 현수의 여자 문제를 뒤처리하며 시작된 명수의 대타 인생은 2년 뒤 대신 군에 입대하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2년여의 해병대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현수는 다시 현수 대신 교도소 생활까지 하게되고, 명수의 인생은 꼬여만 간다. 그 동안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법조인의 생활을 시작한 현수의 앞에는 밝은 미래가 펼쳐져 있다. 드디어 출소 날, 그의 눈앞에 뜻밖에 미모의 여인 순희(윤소이)가 나타난다. 순희는 명수의 전 여자친구. 사회부 기자인 그녀는 명수를 이용해 부모의 원수를 갚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 순희의 제안은 은행을 털자는 것. 구체적인 계획에 총까지 준비해 놓았으니 여로모로 당황되는 상황이다. 결국 순희의 꼬임에 넘어간 명수는 정계와 재계의 비리가 연루된 복잡한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15세 이상 관람가. ■인터프리터 UN통역관이 뭔 죄? ‘위험’하기에 더 매력적인 얼마 전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기자회견 직후 미숙한 통역이 도마에 올랐다. 그러니 UN 회의장에서 일하는 통역관의 스트레스는 어떨까. 첨예한 국제 문제들을 요리하는 현장에서 단어 한번 잘못 옮겼다가는 커다란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죽다’를 ‘사라지다’로 통역하면 바로 해고된다”는 극중 대사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일 터. 반면 그렇게 ‘위험’하기 때문에 매력적이기도 하다. ‘인터프리터’는 제목 그대로 통역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프리카 태생의 UN 통역사 실비아(니콜 키드먼)는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에 희귀한 아프리카 언어인 ‘쿠어’까지 구사한다. 그는 우연히 불꺼진 회의장에 들어갔다가 아프리카지도자의 암살을 모의하는 쿠어 대화를 엿듣는다. 현장에서 곧바로 도망쳤지만 그날이후 그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얼굴을 못봤지만 말을 알아들었다는 죄다. 서구 미인의 전형인 니콜 키드먼이 아프리카 내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메릴 스트립과는 또 다르다. 스트립은 아프리카를 즐겼지만 키드먼은 아프리카를 위해 투쟁한다. 그러나 실비아가 한때 손에 총까지 들었고, 흑인 반군 지도자와 사랑을 나누기도 했던 사실은 많은 대사와 몇 장의 사진을 통해 보여질 뿐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 워킹 타이틀의 첫 스릴러라서 그럴까. 참 생뚱맞고 어설프다. 22일 개봉, 12세 관람가. ■칸, 누구를 선택? 지난해 ‘올드보이’의 영광이 올해도 계속 이어질까? 다음달 11~22일 열리는 제58회 칸 영화제에 어떤 작품이 초청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한국 영화는 지난해 ‘올드보이’(칸 영화제)와 ‘빈 집’(베니스 영화제)이 잇따라 주요 영화제에서 큰 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어서 올해 칸 영화제에서도 수상에 대해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현재 출품이 확정된 작품은 감독주간에 초청된 ‘주먹이 운다’(감독 류승완)와 ‘그때 그사람들’(임상수) 등 두 편. 초청작 공식 발표가 예정된 20일에 정확한 목록이 나오겠지만 이들 작품들을 포함해 일단 5~6편의 한국 영화가 초청작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영화제 소식에 밝은 한 국내 영화인에 따르면 경쟁부문에는 김기덕 감독의 신작 ‘활’의 초청이 유력한 가운데 ‘극장전’(홍상수)과 ‘달콤한 인생’(김지운)도 후보에 거론되고 있다. 이밖에 한국 영화사 두필름이 제작하고 중국 감독 장률이 메가폰을 잡은 ‘망종’과 ‘태풍태양’(정재은)도 경쟁 혹은 비경쟁 부문에 초청될 가능성이 높다. 이 영화인은 “일단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이들 작품 외에도 단편 영화도 다수 초청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앞서 스크린데일리 인터내셔널도 런던발 기사에서 ‘활’과 ‘태풍태양’, ‘극장전’이 공식 초청작으로 유력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편 기대를 모았던 ‘친절한 금자씨’(박찬욱)는 영화제 개막 때까지 완성이 어렵다는 점에서 출품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후보에 거론되고 있지만 ‘극장전’도 후반작업이 늦어져 8월 개최 예정인 베니스 쪽 출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칸 영화제에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최종판인 ‘스타워즈-시스의 복수’(Starwars-Revenge of the Sith)가 개막작 혹은 공식 비경쟁부문 초청이 기대되는 가운데 ‘쿵푸허슬’(저우싱츠), ‘신 시티’(프랭크 밀러,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라스트데이즈’(구스 반 산트) 등이 초청될 것으로 보인다. ■배우 김정은<사진>과 이범수가 코믹 영화 ‘요원의 수기’에서 호흡을 맞춘다. 이 영화는 산아제한 정책이 펼쳐지던 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김정은은 가가호호를 방문해 자녀 수를 체크하는 공무원. 이범수는 그런 김정은의 눈을 따돌리는 가장 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