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야수와 미녀. 아네트 베닝 ‘여전히 매력’

■ 27일 개봉 ‘야수와 미녀’ 야수의 간큰 거짓말 미녀에게 딱 걸렸어 만약 ‘그저 웃기기만 하면 된다’는 게 코미디 영화의 ABC라면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야수와 미녀’는 중간 이상 되는 성공은 거두는 셈이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류승범의 원맨쇼는 이미 한참 물이 올랐고 에피소드도 과장된, 그래서 꽤 자극적이다. 안길강이나 안상태 같은 조연들의 연기도 톡톡 튀며 두 남녀의 사랑이 맺어졌다는 식의 해피 엔딩도 보기 편하다. ‘괴물’ 소리가 전문인 성우 구동건(류승범)과 앞을 못보는 착한 애인 해주(신민아)는 그야말로 야수와 미녀 같은 외모를 가졌다. 물론 ‘미녀’ 해주가 ‘야수’ 동건의 외모를 알리는 없다. 해주가 동건의 얼굴을 볼 수 없는데다 동건이 자신이 “영화배우 장동건 뺨치는 미남”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마에는 흉측한 흉터가 있으며 얼굴은 험악하기 그지 없는 그는 얼떨결에 고교 동창 탁준하(김강우)를 생각해 내고 그의 외모를 자신인 양 소개한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해주는 수술을 통해 눈을 뜬다. 이제 자신의 거짓말이 탄로가 날 순간, 해주의 병원을 찾아간 동건은 자신을 알아 보지 못하는 그녀에게 다시 얼떨결에 스스로를 동건의 친구라고 소개해버린다. 점점 커져가는 거짓말. 다행히 하와이 출장 중이라고 거짓말하며 얼마간 시간을 벌지만 이때 진짜 ‘킹카’인 준하가 해주 앞에 나타나며 상황은 점점 복잡해 진다. 코믹 멜로를 표방하는 이 영화는 ‘야수와 미녀’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사실 야수의 아픔도, 이들이 나누는 사랑의 깊이도 당초부터 관심이 없었을 것 같다. 외모에 대한 해주의 판단은 들쭉날쭉 일관성이 없으며 자꾸 거짓말을 하는 동건의 동기도 부족하다. 영화의 시작이며 끝인 멜로와 거짓말 두가지 모두 개연성을 갖지 못한다. 여기에 시각장애인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외모를 속이는 남자 심리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보다 영화는 개연성이나 현실성 차원에서 우리가 밟고 있는 땅에서 한 2m 정도는 붕 떠 있는듯하다. 감정선이나 에피소드의 현실감, 남발되는 우연과 억지스러운 비약 등에 대한 설명은 이때문에 이 영화가 그다지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는 사항은 아닌듯하다. 단발적인 웃음은 계속되지만 웃음이 영화 전체를 타고 흐르지 못하는 건 이런 까닭이다. ‘보스상륙작전’과 ‘올드보이’ 조감독 출신인 신인 이계벽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구동건 役 류승범 “이번엔 눈·어깨에 힘을 쫙~뺐어요…” ‘주먹이 운다’에서 한껏 무게를 잡았던 배우 류승범이 소심한 이웃집 소년,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소심남으로 출연했다. 시각장애인 애인 앞에서 잘 생긴 척하다 그녀가 광명을 찾자 거짓말한 게 부끄러워 뒤로 숨어 버리는 캐릭터.이번에 맡은 역은 ‘품행제로’나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 그의 코믹함이 제대로 묻어 났던 전작들과는 또 다르다. 애인 앞에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소심한 캐릭터가 빚어 내는 상황이 코믹한 것이지, 그의 개인기나 원맨쇼가 요구되지는 않았다. 이때문에 류승범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출연배경에 대해 “상쾌한 영화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한동안 장르색이 짙은 영화를 하느라 배우로서 좀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이 영화를 통해서라면) 영화라는 작업을 하면서도 휴식기를 가질 수 있겠구나, 다시 한번 날 돌아 보며 쉼표를 찍을 수 있겠구나 싶었지요” 아무래도 전작인 ‘주먹이 운다’와는 180도 다른, 눈과 어깨에서 힘을 쫙 뺀 캐릭터인데다 감정을 내지르지 않고 안으로 삭히는 연기여서 에너지 소비는 덜했을 것 같다. ■ 아네트 베닝 ‘여전히 매력’ 연기파 중년 여배우로 안착 “참 많이 늙었네….” 흔히 “그럼 지금 도대체 몇 살인데?”란 궁금증과 함께 따라 오는 이 말이 갖고 있는 의도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너도 별 수 없구나”란 비꼼의 뜻이 있을 수 있고 어쩌면 “난 아직 괜찮지”란 자기 위안이 될 수도 있다. 부모나 가족이 대상이 됐을 때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말이고 오래간만에 보는 친구를 두고 하는 말이라면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음에 대한 어색함의 발로다. “옛날에는 그렇게 예뻤는데, 지금은 많이 늙었더라”, 오는 27일 우연히 같은 날 개봉하는 영화 ‘빙 줄리아’(Being Julia)나 ‘오픈 레인지’(Open Range) 등을 보는 관객들은 아마 이런 말과 함께 한숨을 내쉴지도 모르겠다. 바로 여배우 아네트 베닝(Annette Bening) 때문이다. 1958년생이니 올해로 47살. ‘러브 어페어’(Love Affair·1994)에서의 그 빛났던 아름다움은 흐려졌고 그 자리는 세월만큼 늘어난 주름이 메우고 있으니 이때 나오는 한숨은 세월의 거스를 수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시다. 그가 처음으로 영화계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건 1989년작 ‘발몽’(Valmont). 90년대 ‘러브 어페어’나 ‘벅시’(Bugsy·1991), ‘대통령의 연인’(The American President·1995), ‘화성침공’(Mars Attacks!·1996) 같은 영화로 전성기를 보낸 뒤 한동안 주춤했지만 아네트 베닝은 사실 최근 다시 최고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각각 미국에서 개봉한 지 1년과 2년이 됐지만 ‘빙 줄리아’와 ‘오픈 레인지’는 이제 중년에 접어든 아네트 베닝에겐 예전의 히트작과는 다른 뜻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빙 줄리아’ 이후 한 미국 평론가는 “아네트 베닝이 메릴 스트립이나 글로리아 스완슨 대열에 합류했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빙 줄리아’(감독 이스트반 자보)는 그에게 네번의 도전 끝에 사상 첫 골든글로브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으나 ‘오픈 레인지’는 그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확고히 해준 영화가 됐다. 1999년 ‘아메리칸 뷰티’로 좋은 평가를 받은 이후에도 2000년 코미디 ‘어느 별에서 왔니?’가 고른 악평을 받았고 이후 한동안 영화 출연을 쉬기도 했다. 그가 성공과 좌절을 반복하며 결국 그저 예쁜 여배우에서 연기파의 중년 여배우로 안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인터넷 팬 페이지에 직접 남겼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연기는 유명해지기 위한 게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탐구하는 것이다”

MOVIE/퍼펙트 웨딩. 새드무비 ‘정우성’

■퍼펙트 웨딩 제인 폰다 vs 제니퍼 로페즈 헐리우드판 ‘고부갈등’ 누가 시어머니 좀 말려줘요! 원어 제목을 알면 관람의 욕구가 훨씬 배가된다. 영어로 ‘시어머니’나 ‘장모’를 뜻하는 ‘Mother-in-law’에 트릭을 가한 ‘Monster-in-law’라는 제목은 영화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입맛을 다시게 한다. 영화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고부간의 갈등을 코믹 터치로 그렸다. 지난 5월 미국개봉 당시 첫주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고부간의 갈등은 우리네 연속극에서만 각광 받는 소재가 아닌 것이다. 왕년의 ‘얼짱’, ‘몸짱’인 제인 폰다가 여전히 몸매와 스타일이 좋은 시어머니로, ‘백만불짜리 엉덩이’의 소유자인 싱싱한 제니퍼 로페즈가 예비 며느리로 출연해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두 사람의 전혀 상반된 스타일과 패션을 감상하는 것도 하나의 관람 포인트. 멋진 연애를 꿈꾸던 찰리(제니퍼 로페즈 분)는 어느날 이상형인 케빈(마이클 바턴)을 만나게 된다. 둘은 첫눈에 반하고 케빈은 머지않아 찰리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케빈의 엄마 바이올라(제인 폰다)가 둘의 결혼 방해 작전에 결사적으로 나선다. 금쪽 같은 의사 외아들이 자기 품을 떠나 결혼한다는 것부터 마음에 안 드는데, 심지어 찰리가 변변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니 결혼은 절대 안되는 것. 영화는 제인 폰다의 생생한 캐릭터로 활력을 얻는다. 단순히 고압적으로 결혼반대를 하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환영하는 척 하면서 뒤로 ‘며느리 죽이기’ 전략에 들어가는 것. 중반부터 시어머니의 계략을 알게된 제니퍼 로페즈의 반격이 시작되니 점입가경이다. 20일 개봉, 15세 관람가. ■새드무비 ‘정우성’ “액션 연기 신나지만 멜로 역시 신난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로 관객의 눈물샘을 활짝 열었던 배우 정우성이 또 한편의 멜로영화를 들고 나왔다. 영화 ‘새드무비’(감독 권종관·제작 아이필름)에서 그는 임수정과 호흡을 맞춰 슬픈 사랑을 그렸다. 영화와는 달리 너무도 화창한 가을날 남산에서 그를 만났다. 블록버스터 ‘데이지’와 ‘중천’ 사이에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새드무비’에 합류한 그는 “시간적으로 적은 노력을 들여 좋은 영화에 참여한 것이 기쁘다”며 웃었다. 사랑 앞에 작아지는 열혈 소방관 정우성은 ‘새드무비’에서 소방관 진우를 연기했다. 불구덩이 속을 예사로 뛰어들며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 그러나 이러한 그의 위험천만한 모습은 늘 애인의 가슴을 졸이게 하고 둘은 그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촬영을 앞두고 소방훈련을 받으면서 연기 때문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황을 경험했다. 소방관은 아무나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일을 하는지, 우리가 그들에 대해 존경심을 표하는데 얼마나 인색한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이렇듯 열혈 소방관도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비 온다는 일기예보를 전해주는 이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그의 애인은 그가 직업을 바꾸기를 절실히 바란다. “직업이 가진 위험성 때문에 자기 여자를 잘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걱정을 하는 남자다. 그의 사랑은 욕심 내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사랑이다” 시나리오에 매료돼 여덟 명의 배우 중 가장 먼저 ‘새드무비’의 출연을 결심한 그는 “사실 극중 (차)태현이가 맡은 역할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지만 내가 해줘야 할 역은 진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액션 못지 않게 멜로에도 어울리는 정우성은 “액션 연기도 신나지만 멜로 역시 신난다. 여자 배우와 감정의 디테일을 마치 칼 싸움하듯 창창 주고받는 맛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대배우 임수정에 대해 “짧은 시간 호흡을 맞췄지만 서로 마음을 열고 연기해 호흡이 잘 맞았다. 수정이는 동생 같이 느껴진다. (오빠로서)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미소 지었다. 일에 대해 마르지 않는 갈증. 그는 지금 한창 일 욕심에 휩싸여 있다. 전지현, 이성재와 함께 네덜란드로 ‘데이지’ 촬영을 다녀온 후 곧바로 ‘새드무비’를 촬영했고, 이어 23일부터는 중국 항저우로 건너가 차기작인 ‘중천’의 촬영에 돌입한다. {img5,l,000}■신민아는 ‘야수’를 좋아한다? ‘야수와 미녀’는 사소한 거짓말로 인해 연애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은 언밸런스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코믹 멜로물. 사랑에 눈먼 소심한 야수 ‘류승범’ 특유의 코믹 연기와 눈에 뵈는 게 없는 발랄미녀 ‘신민아’의 사랑스러움 그리고 미워할 수 없는 방해꾼 김강우의 귀여운 매력을 볼 수 있는 영화다. 27일 개봉.

MOVIE/‘빨간구두’ , ‘4브라더스’ , ‘리플리스 게임’

■페넬로페 연기 빛나는 이탈리아산 멜로 ‘빨간구두’ 가을에 찾아온 옛사랑의 추억 오토바이 사고가 나고 10대 소녀 한 명이 병원으로 실려 온다. 아이는 이 병원의 의사 ‘티모테오’(세르지오 카스텔리토)의 딸. 곧바로 뇌 수술이 집도되고 차마 자신의 딸을 수술할 수 없는 티모테오는 수술실 앞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린다. 멜로영화의 홍수 가을 극장가에 이탈리아산 사랑영화 ‘빨간 구두’(원제 Non timuovere)가 14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영화 속 사랑이야기에 담긴 빛깔은 정열을 상징하는 빨간색과 이루지 못할 사랑의 축축한 검정색, 그리고 추억 속에 등장하는 가을의 갈색이다. 강렬하면서도 비극적인 사랑의 기억은 이를 돌아보며 삶의 힘을 얻는 현재와 교차되며 힘있게 전개된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창 밖. 티모테오의 눈에 빨간 구두를 신은 한 여인의 뒷모습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실제인 듯 환영인 듯, 멀리서 여자를 바라보던 티모테오는 10여년 전의 과거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딸이 태어나기 전, 좋은 직업에 예쁜 아내(클라우디아 게리니)와 함께 무난히 성공적인 삶을 살고있던 티모테오는 닫힌 생활에 싫증을 느낄 때 쯤 여행길에 우연히 들른 한 시골마을에서 운명적인 한 여자를 만난다. 짓다 만 아파트에서 집시들과 함께 어울려 살고 있는 ‘이탈리아’(페넬로페 크루즈)는 티모테오에게는 한동안 만나오던 사람들과 전혀 다른 부류. 하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본능적으로 이탈리아에 빠져드는 티모테오. 둘 사이의 사랑은 이성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만큼 거세게 불타오르고 이젠 누구도 이들을 떨어뜨려 놓을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결국 티모테오는 아내와 이혼을 결심하지만 용기를 내서 새로운 사랑에 대해 입을 열려던 순간 아내는 자신의 임신 소식을 알려준다. 불륜이라는 멜로영화의 흔한 소재를 담고 있지만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매끄럽게 넘나들며 옛 사랑에서 묘한 힘을 얻는 한 남자의 우수에 젖은 회고담을 꽤나 힘있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여기에는 두 남녀 주인공의 열연이 단단히 한 몫 한 듯. ‘사하라’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서의 모습에 실망했던 팬이라면 이 영화에서 페넬로페 크루즈의 진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자 주인공이며 동명 원작 소설의 작가 마가레트 마잔티니의 남편인 세르지오 카스텔리토가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18세 관람가. 상영시간 125분. ■존 싱글톤 감독 화끈 액션·총격신 승부 ‘4브라더스’ ‘4男子’ 거친매력 중무장 문제아들을 선도하는데 앞장서는,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할머니 에블린 머서가 추수 감사절을 앞두고 슈퍼마켓에서 강도들에게 피살된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각지에 흩어져 살던 네 명의 아들이 모인다. 그런데 이들의 피부색이 다르다. 둘은 흑인이고 둘은 백인. 모두 머서가 과거 입양한 문제아 출신들이다. 경찰을 믿지 못하는 형제는 직접 어머니의 복수에 뛰어들고 이내 어머니의 피살이 계획된 범행임을 확인한다. 형제는 무모했지만 용감했다. 피 한방울 안 섞인 형제지만 이들은 어머니의 복수 앞에 뭉쳤고, 목적을 위해 두려움이 없었다. 덕분에 그들의 움직임은 액션 영화의 공식을 성실히 따르며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선사한다. ‘패스트&퓨리어스2’의 존 싱글톤 감독은 이번에도 스피드와 파워를 내세워 화끈한 액션 오락영화 한편을 탄생시켰다. 더불어 드라마의 수준 역시 ‘패스트&퓨리어스2’ 보다는 몇단계 위다. 눈발 날리는 겨울 디트로이트는 범죄를 예고하는 도시다. 낮이건 밤이건 주택가 총싸움은 아무런 제재 없이 펼쳐지고 경찰의 수사는 오리무중이다. 이러한 장치는 문제아 출신으로 성인이 된 현재도 그리 ‘모범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형제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경찰에서 국회의원까지 연결된 부패의 고리는 형제가 복수의 총을 마구 쏘아대게 만든다. 반대로 형제의 복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거의 없다는 것은 영화가 안고 있는 치명적 약점. 싱글톤 감독은 실감나는 총격신으로 승부수를 걸었다. 딱히 CG나 스케일을 내세운 액션이 없는데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간단한 도구로 큰 효과를 본 셈. 한차례 등장하는 차량 추격전도 꽤 볼만하다. ‘혹성탈출’ ‘이탈리안 잡’의 마크 월버그가 도통 ‘생각을 하지 않는’ 행동파 건달이자 맏형으로 출연, 모처럼 거친 매력을 과시했다. 14일 개봉, 18세 관람가. ■존 말코비치 주연 ‘리플리스 게임’ 패트리샤 하미스미스의 걸작 ‘리플리’ 시리즈 중 하나인 동명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 이 시리즈의 소설 속 주인공 리플리는 알랭 드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나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의 주인공과 같은 인물. 이들 영화는 모두 ‘리플리’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사람은 ‘비엔나 호텔의 야간배달부’로 명성을 얻은 이탈리아 여성 감독 릴리아나 카바니.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엔리오 모리코네가 맡은 영화 음악 역시 비범해 보이지만 이 영화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은 바로 리프리역을 맡은 명배우 존 말코비치다. 철저하게 익숙해진 살인과 그틈의 권태, 그리고 차가운 얼굴 속에서 미묘하게 드러나는 심리의 변화까지 영화 속 그의 연기는 현명함과 원숙함을 넘어서 소름이 끼칠 정도다. 살인자이며 천재적인 사기꾼인 리플리(존 말코비치)는 하던 ‘일’을 접고 이탈리아의 한 시골에서 매일 다를 것 없는 나날을 보낸다. 어느날 옛 동료로부터 살인을 의뢰받은 리플리는 그에게 돈이 궁한 이웃 조나단을 소개시켜주고, 조나단은 평범한 가장과 킬러의 이중생활을 시작한다. 15세 관람가. 6일 개봉.

MOVIE/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남성 버디 액션’ 몰려온다

■한국판 ‘러브 액츄얼리’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김수로·임창정 “저희보고 울걸요?” 눈이 번쩍 뜨이는 영화가 등장했다. 발견의 기쁨이다. 한국 상업 멜로영화의 새로운 장이 펼쳐졌다. 물론 이 영화는 새롭지는 않다. 할리우드 영화 ‘러브 액츄얼리’가 충무로에 안겨준 충격으로 인해 탄생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커플이 각기 다른 종류의 사랑을 전개하는 와중에 그들이 모두 하나로 연결된다는 매력적인 구조의 사랑 이야기. 시나리오가 웬만큼 완벽하지 않으면, 또 편집의 묘미가 살아나지 않으면 그 매력을 충분히 발산하지 못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위험을 극복하면 혀의 미세한 세포를 하나하나 자극하는 절묘한 맛을 느끼게 된다. 일단 돋보이는 것은 영화가 완벽하게 수미쌍관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일주일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을 배경으로 여섯 커플의 서로 상관없는 러브 스토리를 전개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영화는 중심을 똑바로 잡고 도입부의 화두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솜씨를 보였다. 도입부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영화가 모방범죄를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형사 황정민을 무식한 인간으로 취급하던 정신과 의사 엄정화가 후반부 “자기 가족이 그런 일을 당해봐야 안다”는 그의 말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 단선적인 구조에서도 조금만 삐끗하면 출발과 끝의 조화가 어그러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보기좋게 그것에 성공했다. 두번째로 여섯 커플의 개성을 십분 살리면서 그들의 인연을 자연스럽게 엮어냈다. 가난한 커플, 극과 극의 커플, 중년의 커플, 아버지와 딸, 스타와 수녀 그리고 동성애 커플. 이들은 각자의 작은 우주를 형성해가면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큰 우주의 구성원이 된다. 무심결에 마주치고 스쳐가는 인연이 하나의 커다란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각 커플의 에피소드는 눈물과 웃음, 감동을 넘나들며 오감을 자극한다. 관객에게 ‘골라보는 재미’를 안겨주는 것. 배우들의 고른 호연이 이를 뒷받침하는데 특히 황정민이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이 여자가 왜 이래”라고 툭툭 내던지는 모습은 극장안을 폭소의 도가니로 만든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단연 황정민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을 터인데, 그의 연기가 이 영화의 오락성을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그동안 코미디를 장악하던 임창정이나 김수로는 정색을 하고 슬픈 연기에 도전해 눈물샘을 자극한다. 코미디에 가려있던 둘의 내공이 드러나는 순간. 이렇듯 영화는 바쁜 와중에 배우의 기존 이미지를 배반하는 도전까지 병행해 그마저 성공했다. 로맨틱 코미디 연기에 있어서는 이제 경지에 오른 엄정화는 시종 의연했고, 중년의 로맨스를 꾸려나간 주현과 오미희는 생각지도 못했던 감동을 안겨준다. 특히 막판 ‘시네마천국’을 본뜬 ‘너를 위한 영화’는 청춘 남녀의 사랑 부럽지 않게 로맨틱하다. 또한 반전의 묘미까지 안겨주는 천호진의 절제되고 묵직한 연기는 스크린에 힘을 실어준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연기들이 비빔밥 속 싱싱한 재료처럼 펄떡인다. 세번째로 영화는 단순한 사랑 놀음이 아닌, 인생을 그리는데도 주의를 기울였다. 오래된 극장은 화려한 멀티플렉스로 탈바꿈하기를 강요받지만 오래 묵은 것의 미덕은 분명히 있다. 가난 때문에 사람들은 생을 포기하고 낙태를 하지만 그 와중에도 희망은 움튼다. 나날이 성장하는 영상과 스타 파워의 이면, 성적 소수자의 비애와 근원적인 인간애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그려진다. 부지불식간에 피부에 스며드는 온기처럼 마음을 꾹 누른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로 데뷔한 민규동 감독은 원작 시나리오를 각색했고 자신의 솜씨를 발휘해 매력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 7일개봉, 15세 관람가. ■ ‘남성 버디 액션’ 몰려온다 권상우·유지태 ‘야수’ 류승범·황정민 ‘사생결단’…하반기 줄줄이 개봉 한국영화에서 한동안 뜸했던 암흑가 남성들의 비정한 세계가 올 겨울을 기점으로 봇물 터진 듯 등장할 전망이다. 현재 암흑가를 무대로 준비 중인 영화만 다섯편. 이들 영화의 특징은 대부분 두명의 남자 주인공을 내세운 버디 영화라는 점과 극한 상황 속 남자들의 처절한 운명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자연히 장르적으로는 액션 느와르로 묶인다. ‘너는 내 운명’을 시작으로 가을을 달굴 멜로영화의 향연이 끝나면 추위를 몰아낼 강하고 뜨거운 남자 영화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것이다. ▲야수 (감독 김성수·제작 팝콘필름) 12월 개봉 예정으로 이들 중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는다. 권상우 유지태 주연의 이 작품에서 두 주인공은 암흑가의 구성원은 아니다. 그러나 둘은 각기 열혈 형사와 검사를 맡아 암흑가를 상대로 죽음을 각오한 결전을 벌인다. 총제작비 80억원을 투입, 파워풀한 액션신을 연출할 예정. 특히 권상우가 대역을 거의 쓰지 않고 직접 모든 액션을 소화하고 있어 보다 사실감 넘치는 화면이 예상된다. ‘무사’의 김성수 감독과 동명이인인 신인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사생결단(감독 최호·제작 MK픽처스) 류승범, 황정민 주연. 1998년 부산을 배경으로 뒷골목 운명을 벗어나고 싶은 마약 판매상과 담당형사의 의리없는 공생공사를 그린다. 류승범이 뒷골목 ‘양아치’를, 황정민이 동료를 잃은 자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마약계 만년 경장을 연기한다. 영화는 황정민이 류승범을 끌어들이며 벌이는 처절한 복수를 그린다. ‘후아유’의 말랑말랑한 감성을 선보였던 최호 감독이 180도 변신, 핏빛 남성의 세계를 그린다. 최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직접 ‘현장’ 취재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10월초 부산 올로케이션에 들어간다. ▲비열한 거리(감독 유하·제작 싸이더스FNH) 조인성이 단독 주연을 맡아 홀로서기에 나선다. 꽃미남 청춘 스타의 변신이 기대되는 작품으로 ‘말죽거리 잔혹사’의 유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초등학교 동창생인 조직 폭력배와 영화감독의 우정과 배신을 그린 작품. 조인성은 스물아홉 ‘젊은 형님’으로 한 밑천 잡아보려고 밑바닥부터 올라온 조직의 넘버3다. 그의 친구이자 조폭 영화로 재기를 노리는 영화감독 역에는 남궁민이 캐스팅됐다. ▲강적(감독 조민호·제작 미로비젼)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탈옥한 탈옥범이 삶의 희망을 잃은 3류 형사를 인질로 잡으면서 벌어지는 독특한 이야기. 박중훈이 1999년 ‘인정사정 볼것 없다’에서 분했던 형사 캐릭터에 다시 한번 도전하며 탈옥범 역에는 드라마 ‘패션70s’으로 부상한 천정명이 캐스팅되는 행운을 잡았다. 박중훈은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해야하는 절박한 형사이고 천정명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자를 잡기 위해 탈옥했다. 둘은 서로의 절박함으로 서서히 동화된다. ‘정글쥬스’로 데뷔한 조민호 감독이 연출하며 지난달 26일 제작고사를 지냈다. ▲열혈남아(감독 이정범·제작 싸이더스FNH) 설경구 조한선 주연. 영상원 출신의 이정범 감독이 각본,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싸이더스FNH 내에서 꽉 찬 시나리오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조폭의 세계를 그리긴 했지만 앞선 작품들과 무게중심은 좀 다르다. 가족애 등의 휴머니티가 도드라지는 것. 설경구와 조한선이 복수에 나서는 조폭으로 등장하지만 이들은 인간애 앞에서 흔들린다. 액션 보다는 휴먼이 강조된 느와르. 11월말 크랭크 인 예정이며 논산과 전주 일대를 돌며 촬영한다. {img5,l,000}■사랑을 끝장내느냐! 광적인 취미를 포기하느냐… 남자와 스포츠. 그 둘 사이의 사랑이 남녀의 그것보다 더욱 강렬할 때가 있다. 야구광인 남자 벤(지미 팰론)과 그를 한없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매력적인 여자 린지(드류 배리모어) 사이의 로맨스를 다룬 ‘날 미치게 하는 남자’가 7일 개봉한다.

MOVIE/ 한·중·홍콩 합작 ‘칠검’ , 미스터 주부 퀴즈왕

■한·중·홍콩 합작 ‘칠검’ 아시아 대표선수 뭉친 무협액션쇼! ‘홍콩액션의 전설’ 류자량 검술 자랑 전쯔단, 김소연과 한국어 대사 소화 좁은 벽 사이 두 남자가 벽을 오르내리며 육중한 검을 ‘쨍’ ‘쨍’ 부딪힌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나가기도 힘든 좁은 공간이지만 둘은 벽을 타며 대단히 격렬하게 싸운다. 웬만큼 정교한 액션의 합(合)이 아니고는 나오기 힘든 명 액션. ‘칠검’을 관통하는 여러 리얼 액션 중에서도 단연 압권이다. 동시에 이 영화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쉬커 감독이 모처럼 정통 액션을 들고 나왔다. 투박하지만 힘의 무게가 화면 밖으로 전해지는 정통 액션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지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향수도 전해준다. ‘칠검’의 이러한 리얼 액션의 뒤에는 ‘취권’ ‘외팔이 검객’ ‘소림사’ 등을 만든 홍콩 액션의 살아있는 전설 류자량(劉家良)이 자리하고 있다. 이 영화의 무술 감독인 동시에 일곱 무사 중 한명으로 직접 출연도 한 류자량은 ‘칠검’을 통해 “살아있는 액션”을 보여주겠다는 쉬커 감독의 뜻을 제대로 구현했다. ‘동방불패’ ‘영웅본색’ ‘황비홍’ ‘신용문객잔’ 등 숱한 액션 히트작을 낸 쉬커 감독은 ‘칠검’에서도 무협 거장의 면모를 보여준다. ‘조급해하지 말고 검술을 즐겨라.’ 무술연마와 무기소지가 금지된 17세기 청나라. 무술을 연마하는 자들의 머리에는 수백냥의 은화가 현상금으로 걸려있고 이때를 노려 무차별 사람 사냥에 나서는 무리들이 있다. 전국이 피바다에 휩싸이자 천산에 머물고 있던 일곱명의 무사들이 산을 내려온다. 이들은 각기 다른 사연과 용도의 검을 무기로 사람 사냥꾼들에 맞선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드라마보다는 액션에 무게 중심을 싣기 때문. 리밍, 전쯔단, 찰리 양, 김소연 등 유명 배우들이 줄줄이 등장하지만 사실 그들의 얼굴 역시 육중한 액션에 묻힌다. 그만큼 이 영화의 포인트는 액션인 것. 그 때문에 드라마를 좋아하는 한국 관객에게는 무사들의 캐릭터와 각각의 검에 얽힌 사연들이 좀더 자세하게 부각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과 홍콩에서는 이미 이 영화가 상상 이상의 히트를 기록했다. 검이 기둥과 강철 솥단지를 가르기도 하고, 양날의 칼이 되어 때로는 무사 자신을 공격하기도 한다. ‘영웅’이나 ‘와호장룡’에서 보아온 휘어지는 부드러운 검이 아닌, 바위를 가르는 단단한 검에는 어떤 트릭도 숨을 구석이 없다. 오로지 정면승부다. 쉬커 감독은 그러나 한가지 멋을 부리기도 했다.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사냥꾼들의 모습과 그들의 무기는 서양의 야만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의 그로테스크한 분장은 현실에 발을 붙이지 않은 판타지를 만들어내며 그들의 가공할만한 무기 역시 상상의 소산. 지극히 대륙의 냄새가 묻어나는 영화지만 이렇듯 도입부에서는 살짝 변주를 취했다. 한국 홍콩 중국이 공동제작한 영화답게 김소연과 전쯔단은 각각 조선에서 끌려온 노예와 백두산에서 내려온 무사로 설정돼 한국어를 구사한다. 쉬커 감독은 한국관객의 구미에 맞춰 중국 버전에서 20여분을 줄였다. 29일 개봉, 15세 관람가. ■미스터 주부 퀴즈왕 충무로판 ‘불량주부’ 한석규가 돌아왔다! 남자 전업주부는 분명 영화적으로 흥미로운 소재다. 출발부터 희소성과 의도하지 않은 코믹성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영화는 여기에 퀴즈쇼를 결합했다. 승부가 있고 그 과정이 드라마틱하고 감칠맛나는 퀴즈쇼 역시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소재로 손색이 없는 아이템. 다만 남자 전업주부의 ‘위상’이 워낙 큰 까닭에 극중 퀴즈쇼는 하나의 소품에 머물게 된다. 그래도 시작은 좋았다. 흥미로운 소재 둘을 결합시킨 발상이 귀엽다. 한석규가 모처럼만에 코미디로 돌아왔다. ‘텔미썸딩’ 이후 한동안 쉬다가 복귀, ‘이중간첩’ ‘주홍글씨’ ‘그때 그사람들’에 잇따라 출연하며 존재감을 다시 알렸던 그는 최근작들이 모두 무거웠다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가벼운 작품을 선택했다. 스크린 데뷔작인 코믹영화 ‘닥터 봉’의 추억을 되새기며 다시한번 관객과 ‘즐겁게’ 소통하고 싶었던 듯 하다. 프로답게 그는 어깨에서 힘을 확실히 뺐다. 오랜만의 코믹연기에 스스로 닭살이 돋기도 했을텐데 우스꽝스러운 여장까지 소화하며 영화에 전념했다. 여기에 코믹 연기의 달인 공형진이 친구로 가세하면서 두 남자의 그림이 꽤 여러 대목에서 폭소를 자아낸다. 게으른 화장실 유머가 아닌, 상황이 빚어내는 유머인 까닭에 스크린과 관객의 소통은 편안하다. 극중 한석규는 6년차 전업주부다. 주전자의 물때를 제거하는 방법과 국에 들깨를 갈아넣어 간을 하는 레서피 등이 몸에 붙은 살림꾼. 여느 주부와 다름없이 동네아줌마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고스톱도 잘 치고 계도 조직한다. 대신 그의 아내 신은경은 방송국에서 MC로 일하며 돈을 벌어온다. 아침에 아내의 귀고리와 스타킹을 찾아주는 것 역시 한석규의 몫이다. 그런데 사단이 벌어진다. 낮은 은행 이율로 저금하는 대신 계를 붓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으로 3천만원짜리 계를 들었는데 그만 계주가 야반도주해 버린 것. 이 때문에 그가 ‘주부 퀴즈왕’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영화는 남자 전업주부의 일상을 통해 소소한 재미를 포착했다. 여자들이 친정엄마와 담그는 김장김치를 그가 어머니와 담그고, 고스톱을 치며 저녁 찬거리 값을 마련하려는 알뜰함 등이 그것. 동시에 “나도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게 좋은 줄 알아?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잖아”라는 대사를 통해 가정을 지키는 주부의 손을 높이 들어준다. 그러나 재취업할 생각은 안하고 엉뚱하게 퀴즈쇼에나 출연하는 남편이 챙피해 집을 나가버리는 아내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을 반영한다. 이 영화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것. 영화는 모난 구석 없이 건전하다. 그러나 반대로 딱히 주목할만한 점이 없다는 얘기. 상업영화로서 발화점에 도달하기에는 힘겨워 보인다. 29일 개봉.

한가위 극장가

3일간의 짧은 추석 연휴이지만 올해 추석 극장가에 선보이는 영화들은 어느때 못지 않게 풍성하다. 초대형 흥행작 ‘웰컴 투 동막골’의 선전이 여전한데다 연휴에 1주일 앞서 이미 ‘형사 Duelist’와 ‘외출’, ‘가문의 영광’ 등 ‘빅3’의 전초전이 지난 주말 시작됐으며 소규모로 상영 중이지만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작품들도 적지 않다. 이밖에도 ‘찰리와 초콜릿 공장’, ‘더 독’ 등의 외화도 추석 극장가를 노리고 개봉한다. 그의 슬픈 눈을 바라보지마… ● 형사 Duelist =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이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하지원과 강동원이 출연한다. TV 드라마로 성공을 거뒀던 방학기의 만화 ‘다모’를 원작으로 하고있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는 탐미적인 영상. 강렬한 색과 빛의 대비, 화려한 액션과 몽환적인 이미지들로 가득차 있다. 조정의 어지러움을 틈타 가짜 돈이 유통되고, 좌포청의 노련한 ‘안포교’(안성기분)와 물불 안 가리는 의욕적인 신참 ‘남순’(하지원 분)은 파트너를 이뤄 가짜 돈의 출처를 좇는 중 정체를 모를 자객 ‘슬픈 눈’(강동원)과 마주친다. 감독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줄거리보다는 남순과 슬픈 눈 사이의 러브스토리다. 기둥을 이루는 스토리나 여기에 덧붙여지는 이야기의 살들은 빈약한 편이지만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날아다니는 카메라와 그 속의 인물들의 역동성은 이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풍부하다. 그들과 똑같은 우리… 사랑일까요? ● 외출 = ‘봄날은 간다’ 이후 4년만에 선보이는 허진호 감독의 신작.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배용준과 ‘청순가련형’ 연기에 특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손예진이 만났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지나고 나니 모습을 드러냈던 사랑의 흔적을 담았으며 ‘봄날은 간다’를 통해 지나간 사랑의 가슴 아픔을 좇았던 허 감독의 카메라는 이번에는 불륜의 상황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수(배용준)와 서영(손예진)은 각자 배우자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강원도 삼척의 한 병원의 응급실에서 만난다. 알고보니 이들의 배우자는 사고가 난 차에 같이 타고 있었다. 서로 불륜 관계였던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배신감과 깨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속에 혼란을 겪던 중 서로에 대한 묘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조폭가문-검사 며느리 ‘희한하네~’ ● 가문의 위기 = ‘대박’을 터뜨렸던 ‘가문의 영광’의 속편이다. 전작의 기둥줄거리가 조폭 가문의 엘리트 사위 만들기였다면, 속편은 검사며느리가 들어올 ‘위기’에 처한 조폭 가족을 기본 설정으로 했다. 주인공은 잔뜩 망가진 신현준과 특유의 재치있는 입담을 과시하던 김원희. 여기에 ‘마파도’의 흥행배우 김수미와 가수출신 탁재훈이 가세했고 공형진, 신이, 박희진, 현영 등 개인기 넘치는 배우들이 출연한다. 전라도 조폭 가문의 대모 홍덕자 여사(김수미). ‘아그들’과 ‘동상들’의 충성이 든든하고 사업 역시 탄탄하지만 한가지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바로 일 하나는 확실히 하지만 결혼할 나이가 지난 노총각 큰아들 인재(신현준)다. 그러던 중 인재는 첫사랑과 닮은 여인 진경(김원희)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우여곡절 끝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사람. 하지만 진경에게는 비밀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라는 사실. 결국 진경의 정체가 밝혀지고 ‘가문’에는 서서히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달콤한 환상의 세계로의 초대 ● 찰리와 초콜릿 공장 = 팀 버튼 감독이 조니 뎁과 힘을 합쳐 만든 판타지 영화. 감독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이 적절히 섞여있다. 전 세계 누구에게나 사랑 받고 있지만 뭔가 비밀에 휩싸인 초콜릿 브랜드인 윌리 웡카 초콜릿. 이 곳의 주인인 윌리 웡카(조니 뎁)는 어느 날 자신의 초콜릿에 5개의 ‘황금티켓’을 숨겨놓고 이를 발견한 다섯 아이에게 공장을 공개하고 다섯중 뽑힌 한 명에게는 ‘특별 선물’을 증정하겠다고 공언한다. 전세계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가난한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는 찰리(프레디 하이모어) 역시 초콜릿 공장에 가고 싶다는 꿈을 품는다. 한명 한명 황금티켓의 주인공이 발견되고 그러던 중 찰리 역시 이 티켓이 찾아오는 행운을 갖게 된다. 투견으로 사육된 남자의 운명은… ● 더 독 = 매년 추석 시즌에 찾아오던 청룽(成龍) 대신 올 추석에는 리렌제(李連杰)가 ‘더 독’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제목이 말해주듯 영화 속 리렌제가 맡은 대니는 어릴적부터 투견(鬪犬)으로 길러져 온 남자다. 그를 키운 사람은 비열함과 잔인함으로 똘똘 뭉친 악당 바트(밥 호스킨스). 엉겁결에 바트로부터 떨어진 대니는 시각장애인 피아노 조율사 샘(모건 프리먼)과 손녀 빅토리아(게리 컨던)와 함께 살며 전에 못느끼던 따뜻한 정을 느끼지만 바트는 대니를 찾아 나서고 샘과 빅토리아의 목숨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음악과 연기, 액션의 삼박자가 잘 갖춰진 액션물. 이 마을에선 누구나 ‘무장해제’ ● 웰컴투 동막골 = 지난 11일까지 전국 670만명을 동원한 올해 최고의 흥행작. 8월 4일 개봉 이후 롱런에 들어가 추석 연휴에도 상영된다. 한국전쟁의 포화가 빗겨간 산골 마을 동막골이 배경. 이곳에 흘러 들어온 국군 현철과 인민군 수화, 미군 스미스 대위 등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인물들은 어느새 동막골 사람들의 순박함에 빠져 한 편이 되어버린다. 분단의 비극을 판타지와 휴머니즘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영화는 원작 연극의 매력적인 이야기와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등으로 호평을 받아오고 있다. {img5,c,000} ‘형사 Duelist’, ‘외출’, ‘가문의 위기’가 각각 400개 내외의 스크린을 확보(전체 1천567개)한 가운데 개봉 규모는 크지않지만 작품성과 재미를 갖춘 다양한 영화들도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엽기 유머로 무장한 일본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와 국산 독립 액션 영화 ‘거칠마루’, 서정적이면서도 쿨한 사랑이야기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 ‘랜드 오브 플랜티’, 파격적이고 대담한 성묘사가 화제가 된 스페인 영화 ‘루시아’, 독특한 코믹 SF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서양 영화인이 최초로 북한에서 제작한 장편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와 ‘천리마 축구단’ 등이 관객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MOVIE/올 가을 물들일 멜로영화

스크린의 가을은 역시 멜로영화를 타고 온다. 각종 대작들이 휩쓸고 간 여름 극장가의 열기를 서서히 정리하며 서늘한 바람과 함께 가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멜로영화들을 소개한다. 외양상으로는 가녀리게 보이지만 일단 터졌다하면 웬만한 여름 블록버스터에 비해 파급효과가 큰 것이 멜로영화. 2005년 가을 멜로의 포문을 연 ‘외출’ 외에도 올 가을을 물들일 야심작들이 즐비하다. #.너는 내 운명 (감독 박진표·제작 영화사봄) 전도연을 왜 ‘멜로의 여왕’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지를 알려주는 작품. 더불어 주가 상승 중인 황정민의 연기도 일품. 순박한 시골 총각과 다방아가씨의 사랑을 그렸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둘의 사랑은 여자가 에이즈에 걸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국을 맞는다. 운명적인 사랑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진정한 최루성 멜로영화. 노인의 성과 사랑을 그린 ‘죽어도 좋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박진표 감독의 두번째 작품. 23일 개봉한다. #.사랑니 (감독 정지우·제작 시네마서비스) ‘해피엔드’ 이후 차기작 준비에 고심하던 정지우 감독이 5년만에 메가폰을 든 작품. 30세의 입시과외학원 여자 강사가 첫사랑을 빼닮은 17세 제자와 사랑에 빠지는 아슬아슬한 이야기. 코믹연기에 두각을 보이던 김정은이 모처럼 감성 짙은 멜로연기에 도전했다. 그는 “촬영하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며 영화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상대역은 신인 이태성이 맡았다. 29일 개봉.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감독 민규동·제작 두사부필름) 일주일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여섯 커플의 사랑을 그린 작품. 임창정 엄정화 황정민 김수로 주현 윤진서 등이 출연했다. 10월 7일 개봉. 비단 청춘 남녀간의 사랑뿐 아니라 아버지와 딸, 중년 남녀간의 사랑이 이어진다.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결국은 하나로 이어지는 구조로 각 에피소드 별 짧지만 강한 임팩트를 주겠다는 각오다. #.새드무비 (감독 권종관·제작 아이필름) 정우성 임수정 차태현 염정아 신민아 등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를 자랑한다. ‘내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마찬가지로 여러 커플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놓은 구조다. 덕분에 제작 기간 내내 두 작품은 비교될 수밖에 없었는데 전작이 밝은 분위기라면 ‘새드무비’는 슬픈 사랑에 포커스를 맞췄다. 8명의 인물이 펼치는 네 가지의 다양한 이별 이야기. 10월 20일 개봉. #.사랑을 놓치다 (감독 추창민·제작 시네마서비스) ‘역도산’의 설경구가 모처럼 어깨에 힘을 빼고 도전한 멜로영화. ‘광복절 특사’에서 호흡을 맞췄던 송윤아가 상대역으로 출연한다. 10년의 세월을 두고 어긋나기만한 두 남녀의 사랑을 촉촉한 가을비처럼 그린다. 11월 개봉 예정. △종려나무숲 실화 바탕으로 한 순수멜로 서울 상봉터미널. 능력있는 변호사 인서(김민종)가 강릉행 버스에 오르고 뒤를 이어 성주(이아현)가 버스를 탄다. 남자는 지방대학교에 특강을 하러가는 길, 여자는 마음에 드는 이 남자를 잡으려고 서둘러 터미널로 달려왔다. 남녀는 어제 맞선을 본 사이. 사실 남자의 마음에는 여자가 들어올 틈이 없다. 수년 전 거제도의 종려나무숲에 자신의 사랑을 놓아둔 채 떠났기 때문이다. 15일 개봉하는 영화 ‘종려나무 숲’은 유상욱 감독의 어머니의 실제 이야기다. 전체 이야기는 인서가 성주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액자식으로 구성돼 있다. 카메라는 액자 속과 밖을 넘나들며 남자의 심리와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다. 2년 전 인서는 거제도의 조선소에 파견 근무를 온다. 부임 첫날 그는 남자 직원들 틈에서 씩씩하게 족구를 하고있는 화연(김유미)을 발견한다. 화연은 기계를 운전하는 현장 기술자. 인수는 억센 거제도 사투리의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쉬운 생각에 1년만 사귀자는 인서의 농담에 화연은 마음을 다치고 이후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지만 두 사람은 어느 새 가까운 사이가 된다. 잠깐의 사랑에 하연이 부담을 느끼는 것은 이 섬 외딴 곳에 있는 그녀의 집과 집 주위의 종려나무 숲과 관계가 깊다. 화연은 자신의 엄마와 할머니 세대에 있었던 집안의 비극을 들려준다. 상영시간 108분. 15세 관람가. #10월 부산영화제 별들이 몰려온다 10월 초 열리는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해외영화인들이 대거 초청된다. 개막작 ‘쓰리 타임즈’의 허우샤오시엔<사진> 감독과 중국 스타 창첸이 참석하며 ‘지그재그 3부작’으로 유명한 이란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성냥공장 소녀’로 알려진 폴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뉴커런츠 섹션의 심사위원으로 부산을 찾는다.

MOVIE/외출.가문의 위기

■외출 불륜? 사랑! 배용준의 외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쪽 남편 문자 좀 확인해도 돼요?” 기막힌 상황이다. 서로의 아내와 남편이 바람났다는 사실을 알게된 남자와 여자. 이 둘은 도대체 어떻게 처신을 해야하는 것일까. 더구나 그 바람난 당사자들은 지금 병원에 나란히 혼수상태로 누워있다. 배우자들 몰래 떠난 밀월여행에서 교통사고가 크게 났기 때문이다. 사고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병원으로 뛰어왔으나 사고보다 더 큰 절망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배신’. 남자와 여자가 일단 한다는 일은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각자 아내와 남편의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더불어 상대방의 휴대폰에 남겨진 문자도 확인한다. 정말 이들이 서로 밀어를 속삭인 것일까.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은 불륜이라는 엄청난 배신을 ‘외출’이라는 단어로 표현함으로써 그 육중한 무게를 대폭 걷어냈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주인공 인수(배용준 분)와 서영(손예진)의 ‘애정 행각’은 불륜이라기 보다는 일반 남녀의 사랑처럼 다가온다. 다소 슬픔을 간직한. 그들의 배우자들이 먼저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은 복수심에서 시작된 것일지라도 어느 정도 정당성을 띤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잔잔하고 서정적인 멜로영화가 된다. 거기서부터 어긋나버린 것이다. 관객이 이들의 사랑을 비난하거나 혹은 위험천만하게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을 도와주듯 이들 배우자들이 누워있는 시골 병원에는 병문안 오는 사람도 없다. 인수와 서영의 불륜이 관객 이전에 극중 타자에게 들키거나 비난받을 만한 상황이 아닌 것. 게다가 병상에 누워있는 그들 배우자들의 존재는 턱없이 작다. 회상신 하나 등장하지 않아 인수와 서영이 느낄 배신감이 얼마나 큰지도 잘 모르겠다. 자연히 관객 역시 두 사람의 행동이 ‘나쁜 짓’임을 잊고 그들이 아름답게 맺어지길 바라게 된다. 처음부터 면죄부가 주어진 남녀의 일탈에 어찌 돌을 던지겠는가. 그러다보니 드라마의 흐름이 단조로워진다. 원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전공으로 삼는 허 감독이지만 ‘외출’은 앞선 작품에 비해 그 아우성의 강도가 떨어진다. 정적이고 절제된 화면 가운데 인물들의 미세한 떨림을 강조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는 발화점에 채 도달하기 전에 사그라진 불꽃 같다. 디테일을 강조했기에 각종 에피소드는 나름의 여운을 갖는다. 사고현장에서 나온 배우자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불쑥 콘돔이 나오는 상황, 살 맞대고 사는 아내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풀지 못해 괴로워하는 상황, 배우자들이 누워있는 병원옆 여관방에 앉아 사과를 깎아먹고, 끝내 숨을 거둔 배우자의 영정을 사이에 두고 맞절하는 모습 등은 상황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알려주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는 처음부터 취하려했던 매력적인 소재들이다. 어찌보면 적으로 만난 인수와 서영은 배신감에 동병상련 하다가 외딴 곳에서의 지난하고 무료한 병간호에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치부를 공유한 둘은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기에 이른다. 배신감과 허망함에서 나오는 도덕적 해이가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는 불변의 ‘진리’와 만나면서 화학작용을 일으킨 것. 이들의 사랑이 한편으로는 여행지에서의 반짝 사랑과 다를 바 없어보이는 것도 그 때문. 중반부 인수 장인의 갑작스러운 등장을 제외하고는 이들에게 거칠 것은 없다. 흥미로운 소재에서 출발했지만 손가락과 눈동자의 떨림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때문인지 기대했던 긴장감과 아픔이 많이 반감돼 버렸다. 지나치게 깔끔해졌다고나 할까. 또한 과감한 편집이라 판단해 선택했을 장면장면의 연결들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점들이 관객에 따라서는 담백하게 다가갈 수도 있을 듯하다. ■가문의 위기 조폭가문에 검사 며느리 웬 황당 시츄에이션? 추석 극장가를 노리는 코미디 ‘가문의 위기’(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가 7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지난 2002년 평단의 혹평과 관객들의 열광이라는 상반된 반응 속에 전국 505만명을 동원하며 ‘대박’을 터뜨렸던 ‘가문의 영광’의 속편으로, 전작의 기둥줄거리가 조폭 가문의 엘리트 사위 만들기였던 데 비해 속편은 검사 며느리가 들어올 ‘위기’에 처한 조폭 가족을 기본 설정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은 잔뜩 망가진 신현준과 방송에서 특유의 재치있는 입담을 과시하던 김원희. 여기에 ‘마파도’의 흥행배우 김수미와 가수출신 탁재훈이 가세했고 공형진, 신이, 박희진, 현영 등 개인기 넘치는 배우들이 잔뜩 출연한다. 전라도 조폭 가문의 대모 홍덕자 여사(김수미). ‘아그들’과 ‘동상들’의 충성이 든든하고 사업 역시 탄탄하지만 한가지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바로 일 하나는 확실히 하지만 결혼할 나이가 지난 노총각 큰아들 인재(신현준)다. 엘리트 며느리를 통한 가문의 ‘체질’ 개선은 홍여사의 최고 과제. 아들들에게 자신의 환갑잔치까지 며느릿감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던 중 인재는 첫사랑과 닮은 여인 진경(김원희)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우여곡절 끝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사람. 하지만 이들은 서로 한가지씩 비밀을 가지고 있다. 검사 진경은 자신을 공무원으로만 소개하고 백호파 보스인 인재는 자선사업가 행세를 한다. 드디어 환갑잔칫날, ‘어깨’들과 ‘깍두기’들이 가득 모인 행사장은 검사 며느릿감 진경의 등장으로 아수라장이 되고 ‘가문’에는 서서히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가문의 영광’의 에피소드가 세 오빠가 막내 여동생을 명문대 출신 사위와 연결해주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면, ‘가문의 위기’의 웃음 포인트는 검사 며느리의 조폭 가문 ‘입성’이라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전편에서 보여준 따뜻한 가족 코드는 사라진 느낌. 출연진 면모는 화려하지만 영화 속의 웃음은 그럴듯한 상황보다는 무리한 설정 속 개인기에만 의존한 까닭에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 ‘인형사’를 만들었던 정용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상영시간 115분. 15세 관람가. ■안성기·류더화 ‘묵공’서 호흡 배우 안성기와 홍콩 스타 류더화가 150억원 규모의 한국 일본 중국 홍콩 합작영화 ‘묵공’의 주연배우로 캐스팅됐다. 안성기는 극중 카리스마 강한 악당 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꾀한다. 중국 제이콥 창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24일부터 내몽고에서 촬영을 시작한다.

MOVIE/게스 후?,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게스 후? 색(?)다른 사위, 난 싫다구! 흑인 장인·백인 사위 그린 ‘로맨틱 코미디’ 결혼 25주년을 앞둔 중년의 흑인 남자 펄시 존스 (버니 맥). 그가 나이가 찬 딸의 사윗감으로 바라는 것은 ‘절대’ 많지 않다. 그저 멀쩡한 직업 정도만 있으면 되는 것, 여기에 조금 더 희망사항이 있다면 운동을 좀 잘했으면 좋겠고 인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나 성공한 코미디언 빌 코스비처럼 흑인의 모범이 됐으면 하는 정도다. 그러던 어느날 딸 테레사(조 살다나)가 사윗감 사이몬(애쉬톤 커처)과 함께 나타난다. 순간 펄시의 눈은 단번에 뒤집어 진다. 바로 희멀건해 보이는 백인이 사윗감이랍시고 나타난 것. 운동은 젬뱅이인데다 몸은 부실해 보이고 여기에 알고 보니 이 녀석 이제 막 번듯한 직장을 잃은 실업자 신세다.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신예 애쉬톤 커처가 다음달 2일 ‘게스 후?’(Guess Who)로 한국 팬들을 만난다. 영화의 핵심이 되는 상황은 장인과 첫 만남을 갖는 사위. 이전에 ‘미트 더 페어런츠’ 시리즈가 백인 커플의 양가 상견례를 통해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 사이의 융합을 그렸다면 게스 후?의 이야기는 흑인과 백인 사이의 신경전과 화해를 축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장인과 사윗감 사이의 반목. ‘미트 더 페어런츠’시리즈의 장인이 CIA 요원이었다면 게스 후?의 장인은 여기에 한술 더 뜬 22년차 경력의 대출 관리자다. 첫 눈에 상대의 재무 상황을 알아맞힐 정도의 능력을 갖췄으며 깐깐하게 사람을 쳐다보는 게 직업병 수준이니 한층 더 강적일 수밖에. 사이몬과 테레사의 계획은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에 자신들의 약혼 사실을 발표하는 것이다. 사윗감 특유의 긴장감에 실업 상태라는 불안이 함께 있지만 ‘잘 해낼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는 사이몬. 하지만 첫 대면에서부터 삐꺽거린다. 사윗감이 당연히 흑인일 것이라고 생각한 펄시가 사이몬을 택시 운전사로 착각한 것. 겨우 집안에 입성하는 데는 성공하는 사이몬. 사이몬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펄시는 이때부터이 백인 녀석을 쫓아내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영화는 장인과 사위, 그리고 흑인과 백인 사이의 신경전이 잘 버무려져 있는 코미디다.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삶의 끝자락서 피어난 사랑 외톨이 남녀 ‘기묘한 동거’ 태국 화제작 내달1일 개봉 잠에서 깨어난 한 도마뱀. 자기가 세상에 살아남은 마지막 도마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겨워하던 가족들도, 싫어하던 친구들도 모두 사라졌지만 문제는 외로움. 도마뱀은 지는 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아무도 없다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가을의 시작과 함께 쿨한 사랑이야기 한 편이 내달 1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태국 감독 렌엑 라타나루앙이 메가폰을 잡은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Last LifeIn The Universe)가 그것. 세상 끝에 혼자 살아 남은 도마뱀은 이 세상에서 좀처럼 존재감이 없어 보이는 두 남녀 주인공의 다른 모습이다. 자살하고 싶어하는 결벽증의 일본 남자 켄지(아사노 다다노부). 그가 죽고 싶은 이유는 빚이나 실연 혹은 절망 때문은 아니다. 그저 잠을 자다 깨어보면 새로운 인생이 되는 것, 그게 그가 꿈꾸는 최상의 행복이다. 그는 이국땅 태국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이다. 답답할 정도로 정리를 잘하는 게 특징이자 장점. ‘최상의 행복’을 위해 자살을 하려 하지만 매번 제대로 시도를 해보지도 못한다. 자유로움 속에 쓸쓸함이 묻어있는 태국 소녀 노이(시니타 분야삭). 항상 담배를 입에 물고 다니며 남자관계도 복잡한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아쉬울 게 없는 태국을 떠나려 한다. 그녀가 가려는 곳은 일본의 오사카. 이들이 서로 만나게 된 곳은 한 다리 위다. 이날도 어김없이 겐지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노이는 여동생 니드와 다투고 있던 참이다. 다리 위에서 자살하려던 겐지를 보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니드. 마침 그날 밤 겐지의 형 유키오 역시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외톨이라는 것. 각각 형과 동생을 잃은 두 사람은 희망찬 미래 따위를 꿈꾸기에는 너무 지쳐 있다. 이날 만난 인연으로 두 사람은 노이의 집에서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이것저것 어지르는 노이와 깔끔하게 치우는 겐지, 두 사람은 서툰 영어로 서로 대화를 나누며 서로 자신을 조금씩 열어간다. 결국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꿈을 꾸게 되는 이들, 하지만 이들을 둘러싼 세상은 여전히 장밋빛만은 않다. 영화는 세상 끝의 나른함에서 문득 생겨난 사랑의 감정을 차분한 말투로 보여주며 외톨이로 흩어져 있는 현대인들의 슬픔을 어루만진다. 쿨(Cool)하면서도 따뜻한 이 영화가 묘한 설렘과 함께 울림을 주는 것은 왕자웨이의 카메라 감독으로 유명한 촬영 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덕이 크다. 건조한 그의 카메라는 지쳐 있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외톨이의 슬픔에서 사랑의 희망까지 다양한 감정들은 그의 카메라를 통해 일관되게 쿨함을 유지하고 있다.

MOVIE/어떤 나라. 애프터 썬셋

■어떤 나라 평양 여중생의 하루는 어떨까… 미국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해변을 가득 메울 만한 1만2천여 명의 어린 학생들. 이들은 운동장과 관중석을 가득 메운 채 카드 섹션과 집단 체조를 펼치고 있다.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스케일과 일사불란한 동작에 묘한 매력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전체주의적인 동작에 반감이 생기기도 한다. 아마도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화려한 스펙터클 중 하나일 듯한 이 장면은 바로 북한이 자랑하는 대집단체조의 모습이다. 서방 세계에서 북한 하면 생각나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인 이 광경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이미지 그대로의 겉모습일 뿐이다. 하지만 꽉 닫혀있는 듯한 이 집단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본다면 어떤게 있을까? 마치 기계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서양의 시선으로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다룬 보기 드문 다큐멘터리 영화 ‘어떤나라’(State of Mind)가 26일부터 남한 관객들을 만난다. 진중하게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의 힘이 피상적인 이미지를 깨뜨리고 그 안의 실체에 접근하는 데 있듯, 영화는 비판이나 옹호 같은 의견을 배제한 채 편견을 넘어서 진짜에 가까운 북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이 집단 체조에 참가했던 10대 초반의 두 여학생이다. 카메라는 겨울부터 이듬해 가을까지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이들을 보여준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김정일과 북한을 ‘악의 축’(Axis ofEvil)으로 규정하던 2002년과 2003년. 13살 현순이와 11살 송연이는 북한 최고의 행사인 전승기념일의 집단 체조(매스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이들 역시 다른 나라의 십대들처럼 가끔은 연습을 몰래 빼먹기도 하고 학교에 지각을 하기도 한다. 부모님의 잔소리를 지겨워하기도 하며 성적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다른 곳의 또래들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에게 다른 나라의 틴에이저들에게는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당에 대한 충성심이다. 이들은 공연에 참여하게 된 것에 감격스러워하며 힘든 훈련을 이겨낸다. 연출자 대니얼 고든 감독은 북한에서 제작한 자신의 첫 영화 ‘천리마 축구단’ 이후 얻게된 북한 당국의 신뢰를 바탕으로 주민들의 삶에 가깝게 들어간다. “내 방이 생겨서 무척 좋습니다”고 말하는 송연이의 모습이나 90년대 중후반의 ‘고난의 행군’ 시절을 회고하며 “딸의 생일에 옥수수죽을 끓여먹어야 했다”고 말하는 송연의 어머니의 모습처럼, 영화는 북한 사람들이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고 있다. 학교 성적의 하락을 고민하면서, 그리고 부상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그 곳의 아이들이 흥분 속에 대집단체조에 참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단지 지도자 개인에 대한 충성심과는 다른 차원이 있는 듯하다. ■애프터 썬셋 훔치려는 자 vs 막으려는 자 숨막히는 두뇌게임 전설의 보석 절도 커플 맥스(피어슨 브로스넌)와 롤라(셀마 헤이엑). 철저한 계획과 척 맞아 떨어지는 타이밍, 그리고 절묘한 콤비 플레이와 확실한 알리바이 설정까지 최고의 실력을 과시하는 이들 커플은 마지막으로 FBI를 절묘하게 속이고 한 탕을 한 뒤 은퇴를 선언한다. 그동안 벌어 놓은 돈을 가지고 이들이 은신한 곳은 환상적인 해변이 있는 캐리비안의 바하마. FBI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인 데다 자연 환경도 말 그대로 낙원 수준이니 새 삶을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두 사람은 바닷가에 멋진 집을 마련해 매일같이 수상 스포츠와 맛있는 바다 요리, 트로피칼 풍의 음료수를 즐기며 한가로운 생활을 한다. 하지만 휴양지에서의 생활은 넉넉잡아 일주일이면 족한 것. 바쁘게 업무를 봐 오던 맥스의 입장에서 이곳에서의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따분할 뿐이다. 반면 맥스와 달리 롤라는 유유자적한 삶에 만족하고 있는 편이다. 함께 지는 태양(썬셋)을 보며 평생을 보내자며 결혼하자고 조르지만 맥스는 결혼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한가한 혹은 따분한 생활을 보내던 이들 앞에 어느날 항상 당하기만 하던 FBI요원 스탠(우디 해럴슨)이 나타난다. 이들의 은퇴를 믿지 않는 스탠이 계속 주변을 맴도는 것은 얼마 후 이곳에서 있을 보석 전시회 때문이다. 어수룩한 스탠이 전해 준 전시회 소식은 마침 심심하던 맥스에게는 간만에 생긴 흥밋거리일 수밖에. 하지만 은퇴 후 편안한 노후를 즐기려던 롤라는 맥스의 관심에 자꾸 신경이 쓰일 뿐이다. 캐리비안의 해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보석 절도의 귀재와 FBI 요원 사이의 한판 승부를 그린 영화 애프터 썬셋(After Sunset)이 25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훔치려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사람 사이의 두뇌 게임과 친구와 적 사이를 오가는 두사람의 해프닝이 이 영화의 주된 관람 포인트. 하지만 영화는 연기도 캐릭터도 유머도 한결같이 밋밋한 까닭에 평범한 재미 이상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연기하는 보석 도둑은 영리하다기 보다 둔해 보이고 우디 해럴슨이 맡은 어리숙한 FBI 요원 역시 익살스러운 맛이 없다. 줄거리 역시 우왕좌왕하며 개연성이 떨어지는 편이며 뻔한 유머도 관객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 가기에 부족함이 많아 보인다. ‘러시아워’ 시리즈를 만든 브렛 레트너가 메가폰을 잡았다. 상영시간 100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