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풀컬러 우주사진

1969년 7월21일 오전 11시56분 20초. 이날을 잊지 못한다. 마침 장마철이었다. 열두살이었던 필자는 시골 도시의 전파사 앞에서 TV로 생중계되던 광경을 지켜 봤었다. 흑백이었지만 경이로웠다.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던 바로 그곳에서 이뤄졌던 ‘사건’이었다.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 우주선에서 달 표면에 내렸다. 브라운관을 통해 본 당시의 모습이었다. 그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이렇게 외쳤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그의 감동은 곧 지구촌 전체의 감격이었다. 인류가 미지의 세계였던 달에 착륙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12일 첫번째 풀컬러 우주 이미지 사진을 공개했다. 그때의 감동에 버금가는 사건이다. 실로 53년 만이다. 차세대 우주망원경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촬영했다. 공개된 공간은 은하단 뒤에 이른바 ‘중력 렌즈’ 현상으로 관심을 끄는 천체다. ▶과학계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우주의 기원과 외계 행성의 생명체 존재 여부 등 우주를 둘러싼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지구촌도 감동의 도가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NASA 등이 100억달러(약 13조원)를 투입해 개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망원경은 허블 및 스피처 망원경의 뒤를 잇고 있으나 성능 면에는 이를 능가한다. ▶허블은 주로 가시광선, 스피처 망원경은 적외선 기반 망원경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전례 없는 해상도로 근적외선 및 중적외선 파장을 포착할 수 있다. 근·중 적외선은 파장이 길어 우주 먼지나 가스 구름을 통과해 더 멀리 이동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웹 망원경으로 태양계부터 관측이 가능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초기 우주 사이를 살펴볼 수 있게 됐다. 우주 역사의 각 단계에 대한 연구도 가능해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면서 “과학기술과 인류 전체를 위한 우주탐사에 있어 감동적인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잖아도 경제문제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한 요즘 가슴을 환하게 해주는 위대한 발견이다. 세번째의 ‘위대한 도약’은 또 언제 터질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스쿨존 횡단보도 ‘일단멈춤’

평택시 청북읍의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 인근에 국화꽃과 편지, 인형, 과자와 음료수가 놓여있다. 며칠전 이곳 횡단보도에서 굴착기에 치여 숨진 초등학생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시민 모두 스쿨존 사고에 분노하고 있다. 굴착기 운전자는 지난 7일 오후 이 학교 앞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운전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11살의 두 여자 어린이를 치였다. 어린이들은 보행신호에 따라 정상적으로 횡단보도를 건넜으나, 굴착기는 적신호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주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운전자는 사고 후 별다른 조치없이 3㎞가량 도주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사고로 1명이 숨졌고, 1명은 다쳤다. 운전자는 목격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구속영장을 신청한 경찰은 굴착기 운전자에 대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상)과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 미조치) 혐의를 적용했다. 사고 지점이 스쿨존인데도 굴착기는 자동차가 아닌 ‘건설기계’로 분류돼 ‘민식이법’이 적용되지 않은 것이다. 민식이법은 2019년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초등 2년생인 김민식군이 차에 치여 숨지면서 스쿨존에서의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한 법이다. ‘자동차(원동기장치자전거 포함) 운전자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안전운전 의무를 위반해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경찰이 적용한 법과 형량 차이가 크다. 굴착기 운전자를 가중처벌할 수 없다는 소식에 논란이 거세다. 스쿨존내 사고인만큼 엄격하게 처벌하도록 법을 정비해야 한다며 ‘입법 공백’을 지적하고 있다. 민식이법 시행에도 스쿨존에서 끔찍한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안전 강화를 위해 12일부터 스쿨존내 횡단보도를 지나는 차량은, 신호등과 상관없이 무조건 일단 멈추도록 했다. 어길 경우 차량에 따라 6만~7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이 제도가 조금만 더 일찍 시행됐더라면, 앞서 떠나간 아이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을텐데....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냉장고 파먹기

많이 채운다. 있는데도 또 채운다. 어떤걸 갖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채운다. 언젠가 사용할거라며 계속 채운다. 냉장고 안의 식재료들이 그렇다. 냉장고 없는 집이 없다. 크기도 상당히 커졌다. 두대 있는 집도 많고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함께 가진 집도 많다. 정리를 잘 해놓은 집도 있지만, 상당수는 냉동실 문을 열면 쏟아질 듯 온갖 식재료가 그득하다. 깊숙하게 들어있는 냉동식품 중에는 몇년씩 된 것도 있다. 요즘 냉장고 속의 식재료들이 슬슬 나오고 있다. ‘냉파’ 열풍(?) 때문이다. 냉파는 ‘냉장고 파먹기’의 줄임말이다. 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받는 식비를 줄이기 위해 냉장고 안의 재료들을 활용해 음식을 해먹는 것을 의미한다. 냉파는 식비도 줄이고, 냉장고 정리(또는 청소)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 때 모임이나 외식을 자제하면서 냉파가 유행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뜸하더니만, 최근 다시 부활했다. 물가가 겁나게 오른 탓에 장보기가 부담스런 주부들이 식비를 아끼기 위해 냉장고 속 재료들로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일종의 ‘짠테크’다. 블로그나 SNS에는 냉파를 실천하는 사례가 많이 올라온다. ‘식비절약·무지출 일주일째 냉파 집밥’ 같은 식으로 글과 요리 사진을 게재하는 이들이 있다. 냉장고 속 재료로 음식을 하는 ‘냉파 콘테스트’도 있다. 처치하고 싶은 재료와 냉파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넣으면 온갖 정보가 넘친다. 쉬운 예로 얼린 잡채는 굴소스와 찬밥만 더하면 잡채볶음밥이 되고, 얼린 사골국과 냉동만두는 만두국으로 먹을 수 있다. 냉장고 파먹기로 장보러 가는 횟수나 인터넷 구매가 줄고, 불필요한 쇼핑을 자제하게 됐다고 한다. 무(無)지출로 며칠 버티는 날도 생겨 흐뭇하다는 소감도 있다. 냉장고 파먹기는 생활비를 아끼고, 음식물쓰레기가 줄어 환경보호에도 일조한다. 꽉 차있던 냉장고에 여유가 생기니 냉장 효율이 좋아져 전기료도 절약된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냉장고는 가벼워지지만 서민들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배려의 사회학

한 외국인 여성이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지나갔다. 옆에선 농부가 지게에 볏짐을 지고 터벅터벅 걸어 가고 있었다. 여성은 통역에게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가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소가 너무 힘들까봐”였다. ▶미국의 소설가 펄벅(Pearl S. Buck) 여사의 ‘살아있는 갈대’에 실린 에피소드다. 한국을 찾았던 외국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덕목 중 으뜸은 배려(配慮)였다. 이방인들에게는 문화적 충격일 수도 있었겠다. 외국의 농부였다면 저렇게 힘들게 짐을 나눠 지지는 않을 터였기 때문이었다.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 타고 채찍질하면서 가지 않았을까. 그런데 우리의 농부들은 그렇지 않았었다. 말 못하는 짐승과도 짐을 나눠 지고 한 식구처럼 살았었다. ▶이런 고운 심성을 이젠 찾아볼 수 없다. 나밖에 모르는 천민자본주의가 득세하고 있어서다. 앞만 보고 달려온 탓에 어느새 우리 사회가 이런 각박한 세상으로 변했다. 필자가 동사(動詞)의 시제(時制)를 과거완료형으로 쓴 까닭이기도 하다. ▶폭염이 매일 우리를 괴롭히는 가운데,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없이 하루를 지내는 이들이 있다.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요금 탓에 틀 엄두도 못내는 이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이른 바 에너지 빈곤층이다. 적정한 수준의 에너지 소비를 감당할 경제적 수준이 안 되는 이웃들이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이들에 대한 지원 역시 미흡하다는 점이다. ▶경기도가 저소득 홀몸 어르신 790가구를 대상으로 벽걸이형 에어컨, 공동 전력량계를 사용 중인 취약계층 80가구에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는 개별 전력량계 설치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지원에도 연도별 에너지 빈곤층 비율은 감소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옛날 같았으면 옆집에 에어컨이 없다면 아무리 더워도 틀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창문을 열어 놓은 옆집으로 우리집 냉방기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이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에너지 빈곤층 문제를 해소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콩 반쪽도 나눠 먹던 우리 선조들의 심성(心性) 고운 덕목(德目)이 아쉬운 요즘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홈리스 닥터헬기

중증응급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골든타임’ 확보다. 아주대학교병원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는 지난 2019년 8월31일 대형헬기 H225를 도입해 운항하다 올해 1월 중형헬기 AW169로 교체해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닥터헬기의 1분기 이송 건수는 47건에 달해 연간 200건가량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같이 수 많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있는 닥터헬기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닥터헬기의 집이 없는 것이다. 항공법에 따르면 헬기는 반드시 계류장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아주대병원에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워 임시 거처인 10전투비행단 내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대학교와 병원 부지 내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현행 항공법상 반드시 지상에 계류장을 설치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가능한 부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외상센터는 옥상 계류장을 검토해 봤지만 이마저도 항공법 개정 등이 필요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20년 경기도는 25억원을 투입해 제10전투비행단 내 전체 면적 1천250㎡ 규모의 닥터헬기 계류장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제10전투비행단의 이전과 맞물려 공군과의 세부 협의가 쉽지 않아 계류장 건립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중증응급환자의 골든아워는 중증외상 1시간, 심혈관 2시간, 뇌졸중 3시간이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연간 2천500건 이상 수술을 하며 수 많은 인명을 살려내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중심에는 닥터헬기가 있다. 홈리스 닥터헬기의 집을 지어주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대체 부지 마련, 정부와 자치단체의 예산 지원, 법 개정이나 제도 개선 등이다. 고단한 닥터헬기의 안락한 집이 하루 속히 마련되길 기대한다. 최원재 정치부장

[지지대] 황제펭귄의 멸종

곧추 서서 걷는다. 날개가 있다. 지느러미 모양이다. 헤엄 치기에 딱이다. 앞다리 날개는 변형됐다. 깃털은 짧고 온몸을 덮는다. 뼈는 결합 부위가 평평하다. 가슴뼈에는 낮은 용골돌기도 있다. ▶정강이뼈와 발가락 사이 부척골(跗蹠骨)이 짧다. 헤엄칠 때는 다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부드러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장(腸)이 긴 것과 앞쪽 위(胃)에 잔돌이 많이 들어 있다. 그래서 잠수하기도 쉽다. 호흡·순환계도 바다에 사는 포유류처럼 물에 들어 가는데 편리하다. 남극에만 산다는 황제펭귄의 이력서다. 물론 갈라파고스제도·남아메리카·남아프리카·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도 발견된다. ▶신상을 더 들여다 보자. 펭귄목 펭귄과의 조류인 이 녀석의 성체 키는 120㎝에 수명은 약 20년이다. 몸무게는 23~45㎏이다. 현존하는 지구촌 펭귄 중 가장 크다. 보통 펭귄하면 가장 먼저 ‘까만색 턱시도 입은 것처럼 생긴 펭귄’이 바로 이 녀석들이다. 추워서 이를 떨치기 위해 늘 차렷 자세로 있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별명도 ‘남극의 신사’이다. ▶추위에도 정면으로 맞선다. 다른 동물이 추위를 피해 떠난 남극에서 알을 낳는다. 알을 낳느라 지친 암컷들은 다시 바다로 들어간다. 수컷은 무리를 이뤄 알을 품는다. 기온은 영하 50도를 넘나든다. 황제펭귄들은 서로 원 모양으로 무리를 짓고 바람에 저항한다. 원안에서 조금씩 이동하는 허들링을 하면서 버틴다. 성지를 순례하는 무슬림들처럼 말이다. 이렇게 대규모로 떼지어 있는 모습이 또 압권이다.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혹한의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도 몇십년 안에 멸종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생물학자인 마르셀라 리베르텔리 아르헨티나 남극연구소 연구원이 지적했다. 그는 “탄소중립이 지켜지지 않으면 남위 60~70도 사이 펭귄 서식지는 향후 30~40년 후 사라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갓 태어나 수영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방수 깃털도 없는 새끼 펭귄은 물을 만나면 얼어 죽거나 빠져 죽는다. 남극에 서식하는 동물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황제펭귄이 사라지면 남극 생태계 전체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어떤 종(種)이 사라진다는 건 생태계의 손실이고, 비극이다. 지구는 후손들에게 빌린 유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러브버그의 습격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시 은평구·마포구 일대에 ‘러브버그(사랑벌레)’로 불리는 벌레떼가 출몰해 비상이다. ‘아파트 외벽에 짝짓기하는 벌레들이 새까맣게 붙어있다. 창문에 엄청나게 달라붙어 문을 열 수가 없다. 방충망을 했는데도 집 안까지 침투했다. 가게 안까지 들어와 쓸어도 끝이 없다. 주차한 차에 다닥다닥 붙어있어 징그럽다’는 등의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러브버그는 중앙아메리카와 미국 남동부 해안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약 1㎝ 크기의 파리과 곤충이다. 정식 명칭은 ‘플리시아 니악티카’다. 짝짓기 하는 동안에는 물론 날아다닐 때도 암수가 쌍으로 다녀 ‘러브버그’로 불린다. 생존 기간은 보통 3~5일 정도다. 러브버그는 독성이 없고 인간을 물지 않으며 질병을 옮기지 않는다. 인체에 무해한데다 진드기 같은 해충을 잡아먹고 환경을 정화하는 익충(益蟲)으로 알려졌지만 날파리와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혐오감을 준다. 또 사람에게도 날아드는 습성 탓에 시민들이 불편함을 호소한다. 최근 러브버그가 갑자기 증가한 이유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으나 습한 날씨 영향이 클 것이라는 추정이다. 온도와 습도가 높으면 애벌레가 빨리 자라는데 장마철이라 습도가 높은 환경이 유지되면서 유충 발달 속도가 빨라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장마철이 끝나 햇볕에 노출되면 건조한 날씨에 취약해 대부분 자연 사멸한다. 하지만 당장 극성을 부려 해당 자치단체 구청이나 보건소 등에서 인력을 긴급 동원, 방역 조치를 하고 있다. 각 가정에선 파리약을 활용해 퇴치하고 있다. 러브버그가 불빛에 더 몰려들기 때문에 야간에 커튼으로 불빛을 차단하기도 한다. 해충이 아니라고 하지만 주민들은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기후변화로 벌레 숫자가 늘어나는 게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실제 고온현상이 애벌레에서 성충, 유충으로 이어지는 곤충의 세대 순환 기간을 줄여 일부 지역에서 대벌레, 매미나방, 노린재가 창궐한 바 있다. 해외에선 무당벌레·바퀴벌레·개미떼 등이 극성이었다. 기후이상으로 앞으로 더 많은 벌레떼가 출몰할 것이라는 예측이라 걱정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무인점포시대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물은 거의 ‘셀프(self)’다. 물을 영어로 (워터·water가 아닌) ‘셀프’라 한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요즘은 브런치 카페 등에서 소비자를 많이 부려 먹는다. 뭘 먹을지 정하고 계산을 하고나면 진동벨을 준다. 벨이 울리면 카운터에서 커피나 음식을 가져와야 한다. 다 먹은 후에는 빈 잔이나 접시를 다시 가져다 줘야 한다. 패스트푸드점이나 테이크아웃을 위주로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에는 키오스크(kiosk)가 등장했다. 키오스크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단말기로, 이 앞에 서서 음식이나 음료를 주문하고 결제를 한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취약계층은 기계 이용이 쉽지 않다. 돈이 있어도 뭘 사먹을 수가 없다. 기계로는 돈을 받지 않거나, 아예 사람이 없는 점포도 있기 때문이다. 키오스크의 등장으로 아르바이트 자리가 많이 사라졌다. 소규모 점포에선 사장이 직접 음료를 만들고 음식도 만든다. 소비자는 키오스크로 주문·결제를 하고 음식이 완성되면 직접 픽업을 한다. 대형 햄버거 업체부터 일반음식점까지 키오스크 도입은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다.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데 500여만원이 든다는데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고, 설치 비용을 비교적 빠른 시간내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키오스크처럼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사업 모델의 스타트업도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로봇 팔이 치킨을 튀기는 ‘롸버트치킨’의 로보아르테, 로봇이 커피를 만드는 로봇카페(비트) 비트코퍼레이션이 대표적이다. 비대면 모바일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의식주컴퍼니가 선보인 오프라인 무인세탁소 ‘런드리24’도 비슷하다. 모두 사람을 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소규모 자본으로 창업해 운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자영업자가 점점 더 비싸지는 원자재, 인건비를 다 감당하면서 누군가를 고용해 수익을 내는 게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무인 점포가 계속 늘고 있다. 반면 일자리는 자꾸 줄어든다. 무인(無人)시대가 그리 반갑지 않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글루미 홍콩

한 사내가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비슷한 연배의 아낙네도 입주한다. 그녀의 남편은 해외출장이 잦다. 사내는 여인에게 눈길이 간다. 이들의 배우자들도 엇갈린 인연을 쌓는다. 둘은 서로에게 끌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정을 품는다. 출발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다. 만남이 이어지면서 마음의 상처도 아물어져 간다. 사내는 평온을 되찾고, 무협소설도 다시 쓴다. 요즘처럼 장마철이면 떠오르는 어떤 영화의 얼개다. ▶작품의 무대는 파스텔 톤의 한 도시였다.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제목이다. 여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은유한다. 아시아 영화의 아이콘이었던 왕가위(王家衛) 감독이 연출했었다. ▶영화의 배경은 홍콩(Hong Kong)이다. 19세기 중반 한 영국인이 중국인에게 “어디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광동어 억양으로 “헝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홍콩’으로 불리게 됐다. 1842년 난징조약으로 영국 식민지가 됐지만, 1997년 반환된 뒤 중국 특별행정구로 편입됐다. ▶중국 국영기업들이 25년 만에 홍콩경제를 장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 정부의 ‘코로나 제로’ 정책 여파로 금융허브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3천440억달러(약 442조원) 규모의 홍콩경제도 중국 국영기업들 손에 넘어가고 있다. ▶“홍콩은 결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중국 정부의 궤변성 발표도 나왔다. 이 내용은 홍콩 공립고교 학생들의 교과서에도 녹여졌다. 지난 2019년 민주화시위 이후 시진핑 주석이 가속화한 이른 바 ‘홍콩의 중국화’다. ▶오늘은 이 도시가 영국으로부터 반환된 지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기념해야 할지, 애도해야 할지는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중국 경제전략가인 사이먼 리의 고언이 귓가를 맴돈다. “홍콩이 결정적인 기로에 섰다. 중국 국영기업들은 홍콩의 사회·경제·정치에 책임을 져야 한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임명권자 이름 빛낼 정무직

“(새 시장과) 시정운영 방침과 철학이 서로 다른.... (임명권자가 바뀌었으면) 거취가 빨리 정해져야 한다.” 최근 정유섭 민선8기 인천시장직인수위원장이 개인적인 소견이라는 것을 전제로 이 같은 발언을 했다. 정 위원장의 발언은 우선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뽑은 당선인이 정무직 등을 등용해 시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 또 그들은 당선인의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며 손발을 맞춰 함께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앞선 시장이 임명한 사람들은 나가달라는 것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소위 ‘엽관제’라는 선거를 통하여 정권을 잡은 사람이나 정당이 관직을 지배하는 정치적 관행을 말하면서, 엽관제로 들어온 사람들이 스스로 물러나 달라는 뜻이다. 그동안 시간을 되돌려보자. 대부분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줄임말)’들은 선거 전후 알아서들 자리를 떠난다. 스스로 정무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기관장이나 고위 간부 등은 정치색도 없고 결코 정무직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스스로를 ‘전문직’이라 칭하며 자리를 지키려 애쓴다. 이 같은 자기 합리화는 결국 대대적인 감사나, 예산 삭감 등의 보복을 부른다. 결국 죄 없는 수많은 직원들만 큰 고통을 겪은 뒤, 전문직을 주장하던 그들은 결국 불명예 퇴진하는 수순을 밟는다. 이번 정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일각에선 ‘스스로 물러나 달라’고 요청한 것이 더 당당하다고 평가하고, 또는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정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옳다, 그르다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가릴 것 없이 그동안 수많은 시장의 교체 과정에서 반복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선거 후 스스로 물러난 ‘멋진’ 정무직들도 많다는 점이다. 특히 새로 들어올 정무직들은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하고, 임명권자의 이름을 빛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지대] 회색지대전술

국가 최고 지도자가 변방의 섬을 방문, 이렇게 지시했다. “어민들을 이끌고 바다에 나가 고기도 잡으면서 돈도 벌고, 먼 바다 정보도 수집하면서 섬과 암초를 건설하라”. 어선들에 대해 군사적전 투입지침이 내려졌다. 극히 이례적이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하이난성(海南省)에 주둔 중인 부대에 내린 전략이었다. 지난 2013년 4월, 취임 직후였다. 이 장면은 중국 중앙방송인 CCTV를 통해 주요 뉴스로 전국에 보도됐다. 그동안 실체가 불분명했던 중국 공산당 전략이 시나브로 수면 위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이른바 ‘회색지대전술(Gray Zone Tactics)’이다. 정규군이 아니라, 민병대나 민간 무장어선 등을 활용해 도발하는 게릴라 전술이다. ▶검은색과 흰색을 섞으면 회색이 만들어진다.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다. 경계가 불분명하다. 회색지대전술은 1949년 국민당 군대 공격을 막기 위해 창설된 해상 민병대에서 비롯됐다. 당시 이들은 1920년대 소련 해군의 ‘영 스쿨(Young School) 전략’을 차용했다. 잘 훈련된 소형 선박 선단으로 대형 함대에 맞서는 전법이 핵심이었다. 파란색 어선을 타고 다녀 ‘리틀 블루 맨(Little Blue Man)’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중국 해상민병대는 평소에는 고기를 잡는 등 생업에 종사하다가 유사시에는 전투에 바로 투입된다. 지난 1974년에는 파라셀 해전에서 첨병에 섰다. 지난 2009년에는 미국 해군 임페커블함 해양조사활동을 저지하기도 했다. ▶중국 군용기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대만 언론들은 특정 지역을 분쟁지대로 만들기 위한 회색지대 전술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 군용기의 대만 방공식별구역 침범은 6월 들어 모두 7번째다.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려면 미리 비행계획과 진입시 위치 등을 통보해야 한다. 중국은 지난 2020년 9월 이후 방공식별구역에 끊임없이 군용기를 진입시키고 있다. ▶회색지대 전술은 대만 방공식별구역만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닥친 위험한 현실이다. 서해바다 우리측 어로구역에 어선으로 가장, 출몰하는 중국 선박들도 해당 전술에 따른 군사행위다. 우리 영해에서도 중국의 회색지대전술은 ‘현재진행형’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소비자 갑질 ‘악성 리뷰’

맛집을 검색할 때, 온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 ‘리뷰(review)’를 읽어보는 편이다. 이미 음식맛을 본 사람들의 평을 보고 식당에 가면 실패를 줄일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다. 상품 구매도 마찬가지다. 먼저 써본 사람들이 성능이 좋은지, 이용이 편리한지 등의 후기를 남기면 이를 참고해 구매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리뷰를 모두 믿지는 않는다. 소비자가 대가를 받고 그럴듯한 후기를 쓰는 경우도 있고, 직원이 소비자로 가장해 자사 피비(PB) 상품에 관한 허위 리뷰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업체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식당이나 카페는 인스타그램 등 SNS에 사진이나 호의적인 글(인증샷)을 올리면 금액을 깎아주거나 서비스를 주는 사례가 많다. 온라인 업체에서도 구매 후기를 쓰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준다. 인센티브를 주면서 영업과 홍보를 하는 것이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리뷰 전쟁’을 벌이고 있다. 때때로 허위·과장 리뷰 논란이 불거진다. “쿠팡의 상품평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배민(배달의민족)에 허위 리뷰는 더 이상 안 통합니다”. 업체들이 이런 식으로 투명한 거래를 강조하지만 허위·과장 리뷰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이들이라면 리뷰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자영업자들도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로 맘 고생이 심하다. 악성 리뷰에 영업을 망치기도 하고 호의적 리뷰에 하루를 잘 버티기도 한다. 황당한 것은, 좋은 리뷰를 써주겠다며 돈을 달라거나 식당에서 술이나 음료수를 요구하는 경우다. 리뷰가 자영업자들에게 중요하고, 생계와 직결돼 있음을 이용해 협박하는 것이다. 배달앱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에서 배달앱을 이용하는 자영업자 중 63.3%가 별점 테러나 악성 리뷰로 피해를 경험했다고 한다. 악성 리뷰로 자영업자를 울리는 ‘소비자 갑질’은 근절돼야 한다. 정부와 배달앱 기업들은 더 이상의 피해가 없게 관련법 개정 등 적극 대처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다시 석탄발전

석탄은 18세기 산업혁명 시대에 ‘검은 다이아몬드’로 불렸다. 근대 산업과 문명을 이끈 에너지원으로 20세기 중반까지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대기오염과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더러운 연료’로 낙인 찍혔다. 주요 선진국들은 탈석탄 정책을 쏟아냈다. 영국은 2025년, 독일은 2038년을 석탄발전 퇴출의 해로 정했다. 미국도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의 온실가스를 2005년 대비 32% 줄이기로 했다. 전 세계 여러나라가 ‘탄소 제로’를 외치더니 석탄으로 회귀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던 유럽국가들이 전력공급 안정을 위해 다시 석탄화력발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진 뒤 국제유가, 천연가스 가격 상승 등 에너지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탈탄소’ 정책에서 한걸음 물러난 것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네덜란드는 환경문제로 시설용량의 35%까지만 발전토록 법률로 규제하던 석탄발전 제한을 2024년까지 폐지키로 했다. 국가 가스 공급의 80%를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오스트리아도 폐쇄한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한다고 발표했다. 중국도 여름 전력난에 석탄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전체 전력 생산에서 석탄이 70%에 이르는 인도는 에너지 물가 상승에 석탄산업 투자가 늘 것으로 예측된다. 석탄화력발전에 대해 혐오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던 유럽국가들의 석탄 회귀에 지구 온난화 대책은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화석 연료에 대한 새로운 투자는 전쟁과 오염, 기후 재난을 부추기는 망상”이라면서 “재생에너지에 더 투자했다면 연료시장의 불안정성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계가 기후위기와 에너지위기, 그 어떤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급속히 석탄을 퇴출시켰던 나라들은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위해 석탄, 석유, 천연가스, 원자력 및 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는 ‘에너지 믹스’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안드리스 리파겐

뭔가 미심쩍었다. 그래도 믿었다. 애초부터 동포의 또 다른 선의(善意)라고 판단한 게 착각이었다. 타 민족의 압제 속에서 재산을 보호해준다고도 했다. 그래서 스스럼 없이 맡겼다. 침략자에 맞서는 동료들의 신상도 거침없이 넘겼다.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라는 궤변(詭辯)에도 깜빡 속았다. ▶그렇게 몇년이 흘렀다. 그런데 아니었다. 뒤통수를 맞았다. 한마디로 철저한 계산 속에 이뤄진 사기였고, 매국행위였다. “조국을 위한다”는 입발림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오로지 자신의 입신영달(立身榮達)을 위해서였다. 민족을 팔아 몇해 못 갈 싸구려 권력에 엄청난 재산까지 모았다. 이 때문에 숱한 동포들이 스러졌다. 그들의 인생 자체가 무너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네덜란드 비밀경찰이었던 안드리스 리파겐(Andriss Riphagen)의 수치스러운 행적이다. 그는 나치가 점령한 조국에서 유대인·레지스탕트 은신처를 찾아내고, 그들의 재산을 빼돌렸다. 리파겐은 민족반역자들 가운데 우두머리였다. 원래는 네덜란드의 갱스터이자 정치 깡패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치가 들어오자 부역자로 변신했다. ▶1939년 이후에는 게슈타포 앞잡이 노릇도 했다. 유대인 3천190명이 그의 손에 의해 나치에 넘겨졌다. 많은 레지스탕스 조직도 와해됐다. 유대인들을 색출하는 일도 맡았다. 유대인들을 속여 안심시킨 후 그들의 재산도 빼돌렸다. 다른 부역자들이 유대인 재산을 넘겨주면 그 수익을 일정량 나눴다. ▶종전 후 수배됐지만 독일의 정보를 넘기는 조건으로 민간 포로 신분이 됐다. 그래도 자신의 민족반역행위를 뉘우치는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나 보다. 1946년 타인의 여권으로 벨기에와 스페인 등을 거쳐 아르헨티나로 탈출했다. 네덜란드 정부가 그를 추적했지만, 이미 1973년 스위스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75년 전 네덜란드의 역사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행적을 따라 가보면 숱한 친일파들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튤립과 풍차와 거스 히딩크 등을 빼놓고 우리는 네덜란드에 대해 과연 어느 정도나 알고 있을까. 오늘은 이 나라와 수교한지 61년째를 맞는 날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당선인 핵심 키워드

인터넷 정보 검색시 포털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해 정보를 얻는다. 구체적인 핵심 단어를 입력해야 정보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키워드가 부정확할 경우 때로는 엉뚱한 검색 결과가 나와 황당할 때도 있다. ▶6·1지방선거가 마무리 되고 지자체 인수위원회가 꾸려졌다. 지자체 인수위는 당선인이 임기 내 실천한 공약 사항 등을 점검, 최종 결정한다. 이와 함께 정책, 사업 분야 등 핵심 키워드 발표를 통해 당선인의 향후 정책 방향을 알려주기도 한다. 6·1 지방선거 단체장 당선인들의 주요 핵심 키워드 보면 경제, 일자리, 균형발전, 소통 등이다. 당선인 핵심 키워드 속에는 시민과 지자체를 위한 의지가 담겨 있다. 자신이 앞으로 무엇에 비중을 두고 정책을 추진할 것인지 한 단어로 알려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다양한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뀐 곳이 많다. 경기도내 31개 기초단체장 선거는 국민의힘 22곳, 더불어민주당이 9곳을 차지했다. 지난 2018년 지방 선거에서 국민의힘 단체장이 31개 시군 중 단 2곳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전세 대 역전이다. ▶선거 결과를 보면 지자체 정책기조에도 큰 변화가 예고된다. 정권이 바꿨으니 정책이나 사업 변경은 어쩌면 불가피한 수순일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 전임자 사업을 뒤집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권력을 잡은 당선인이 전임자의 사업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정치인들은 무엇이든 자신이 처음 벌이는 일을 좋아한다. 전임자 사업은 자신이 주체가 돼서 한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사업도 자신의 공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 또 선거 과정에서 지나친 네거티브와 경쟁으로 사이가 틀어질수록 전임자 정책은 철퇴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벌써부터 일부 지자체에서 전임 단체장 사업이나 정책을 백지화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사업 초기의 경우 정책 뒤집기가 수월할 수 있지만 수십억, 수백억원 예산이 투입되고 시민 의견이 반영돼 진행된 사업에 대해 무리한 뒤집기는 독이 될 수 있다. 예산 낭비 등으로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소통, 경제, 일자리 등 당선인 핵심 키워드만 보면 모두 시민 중심이다. 전임자가 한 정책이나 사업도 시민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기억하고, 진행된 사업 변경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대륙폐의 부활?

‘벙커힐 전투(Battle of Bunker Hill)’. 미국 독립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였다. 메사추세츠주 찰스타운에서 일어났던 벙커힐 전투가 미국 근대 경제사의 흐름을 바꿨다. 전투를 화두로 꺼낸 까닭이다. 당시 미국 민병대는 보스턴 항구를 점거하고 있던 영국군을 공격했다. 민병대는 450명이 숨졌지만, 영국군 사상자는 1천54명이었다. ▶헨리 클린턴 영국군 장군은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 같은 승리가 반복된다면 영국의 신대륙 지배는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보급 등이 충분했다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제2차 대륙회의에서 대륙폐(Continental Currency) 발행안 의결로 이어졌다. 1775년 오늘이었다. 벙커힐 전투 사흘 후였다. ▶대륙폐는 전쟁비용 지원용 채권이었지만, 실제로는 불태환 지폐였다. 주(州)들은 대륙폐 발행 자체에 의구심을 품었다. 대륙회의가 단순한 합의체를 넘어 주(州)보다 상위의 연방정부로 발전할 가능성을 경계한 것이다. 세금 부담도 급증했다. 독립전쟁 이전 부과된 세금은 1인당 연평균 0.016 파운드로 연간 소득의 0.5% 정도였다. 독립 이후 연방정부가 매긴 세금은 영국이 식민지 시절 부과했던 금액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발행액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1차분 200만 달러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연말까지 2차례에 걸쳐 600만달러가 추가로 발행됐다. 결국 1779년까지 2억4천155만달러 어치 대륙폐가 뿌려졌다. 영국군도 위조지폐를 마구 찍어대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미국은 대륙폐 남발 폐해를 톡톡히 치렀다. 결국 대륙의회는 대륙폐를 폐지했다. 1779년이었다. ▶연방정부가 화폐주조권을 갖지 못한 건 대륙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었다. 의미있는 반전이었다. 대륙폐는 과연 ‘과거 완료형’일까. 대륙폐는 오늘날의 달러와 구조적으로 다를 게 없다. 불태환 지폐라는 점이 그렇고, 발행이 남발된다는 점도 그랬다. ▶또 있다. 대륙폐가 건국 초기 연방정부 권한을 강화한 것처럼, 달러도 세계 무역을 볼모로 미국의 글로벌 지배를 보장하는 도구가 됐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가 대륙폐 발행 의결 전으로 회귀하는 건 아닐지 걱정되는 건 괜한 기우(杞憂)일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커지는 경제고통지수

경제고통지수는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적 어려움을 계량화해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고안한 지표로,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합해 계산한다. 경제고통지수 수치가 높다는 것은 물가 상승률이나 실업률이 높아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반적으로 물가가 상승할 경우 국민은 이전보다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 임금이 올라 가계소득이 증가한다 해도 물가상승률이 소득증가율보다 높으면 가계의 경제적 고통이 커진다. 실업 역시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이 많아지면 당장 소득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요즘 치솟는 물가에 장보기가 겁난다는 사람이 많다. 지난 5월 기준 우리나라 경제고통지수는 21년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경제고통지수는 8.4를 기록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5.4%에 실업률 3.0%를 더한 수치다. 고용지표가 계절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동월 기준으로 비교하면, 지난달 경제고통지수는 2001년 5월(9.0) 이후 최고치다. 이는 물가 급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8년 8월(5.6%) 이후 13년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6.7% 올라, 2008년 7월(7.1%)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 새정부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4.7%로 올려잡았다. 실업률은 작년(3.7%)보다 하락한 3.1%로 전망했다. 정부 전망대로라면 올해 경제고통지수는 7.8이 된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7.9) 이후 연간 기준 가장 높다.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빠르게 올라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한다. 정부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국민의 경제고통을 줄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금 국민들이 숨 넘어가는 상황”이라며 초당적 대응을 당부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노노 학대

6월 15일은 ‘노인학대 예방의 날’이다. 노인복지법에 따라 제정, 올해 6번째를 맞았다. 노인복지법에선 ‘노인에 대해 신체적·정신적·정서적·성적 폭력 및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행위를 하거나 유기 또는 방임하는 것’을 노인학대로 정의했다. 노인학대가 해마다 늘고 있다. 노인이 노인을 학대하는 ‘노노(老老)학대’가 많다. 노인인 자녀나 배우자가 노인인 부모나 배우자를 괴롭히거나 가혹하게 대하는 것이다. 고령화와 함께 나이 든 자녀의 부양 능력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경제적 어려움이 노노학대 원인 중 하나다. 자신도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노년기에 더 연로한 부모를 모셔야 하는 경우 부양 스트레스가 학대로 나타난다. 고령 부부의 배우자 학대도 많다. 노인끼리 사는 가구가 늘면서 갈등을 중재할 가족이 없고, 배우자 부양과 돌봄에 대한 부담이 커져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노인부부 가구는 2008년 47.1%에서 2020년 58.4%로 상승했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한 노인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불만이 쌓이면서 욕설과 폭력 등이 늘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2년 차인 지난 한해 신고를 통해 노인학대로 확인된 사례는 6천774건이었다. 2019년 5천243건, 2020년 6천259건 등 매년 증가 추세다. 작년엔 배우자 학대 건수가 늘었다. 그 전까지 가장 많았던 아들의 학대는 2020년 2천288건에서 2021년 2천287건으로 비슷한 반면, 배우자의 학대는 2천120건에서 2천455건으로 15.8% 늘었다. 학대 사례는 가정 내(5천962건·88.0%)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UN은 노인학대를 가장 은폐된 학대로 보고 있다. 노노학대는 가해자가 배우자나 자녀인 경우가 많아 대부분 사실을 숨긴다. 이것이 상습적 학대로 이어지게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학대 상황에 놓인 위기 노인 발굴에 힘써야 한다. 노인학대는 사회문제라는 인식하에 보호책과 예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정조대왕함’

선비가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글을 읽는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곰곰이 들여다 보면 옷매무새가 남다르다. 여염집 글쟁이는 아니다. 누가 눙을 쳐도 거들떠 보지도 않을 태세다.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실루엣이다. ▶백성을 하늘처럼 섬겼던 어진 군주였다. 병자호란 이후 서양문물 수입이 본격화됐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대를 통치했던 군주가 아니라는 뜻이다. ▶수원 남문시장 입구에는 흥미로운 조형물이 있다. 술상 앞에 앉아 있는 정조대왕의 동상이 외지인들을 맞이하고 있어서다. ‘불취무귀(不醉無歸)’라는 문구도 적혀 있다. ‘취하지 않으면 집에 못 간다’는 뜻이다. 백성들이 술에 취해 흥겨울 정도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정조대왕은 조선 후기 문화부흥과 부국강병 등에도 힘썼다. 18세기 격변의 정세 속에서 균형 잡힌 외교정책을 시행한 임금으로도 평가 받는다. 아름다움만이 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근사한 말씀도 남겼다. 그래서일까. 그가 남긴 수원 화성 자태도 곱다. ▶해군이 8천100t급 차세대 이지스구축함 명칭을 ‘정조대왕함’으로 결정했다. 해군은 “구축함의 명칭은 국민으로부터 영웅으로 추앙받는 역사적 인물과 호국 인물 등을 선정해 제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지스(Aegis)라는 명칭은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가 그의 딸 아테나에게 준 방패에서 따왔다. 이지스 시스템이 장착된 구축함이 이지스함이다. 이지스 시스템은 방공중심의 해상전투·무기체계다. 첫 이지스 구축함은 1983년 미국의 타이콘데로가호다. ▶인도시기는 2024년이다. ‘정조대왕함’이 취역하면 ‘세종대왕함’ 등에 이어 네번째다. ▶북한 탄도미사일 요격용 장거리 함대공유도탄도 갖춘다. 조선후기 개혁군주의 묘호(廟號)로 명명된 구축함이 늠름하게 우리 바다를 지킬 날도 멀지 않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민선 8기 경기체육 ‘기대 반, 우려 반’

경기도 민선8기 ‘김동연號’가 보름 뒤면 출범한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김동연 경기지사 당선인에게 거는 도민들의 기대가 크다. 글로벌 경제 위기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민들은 민생경제 회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김 당선인의 경륜, 능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당선인 역시 진영과 이념을 뛰어넘어 오직 민생 살리기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체육계 역시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7기 때 민선 도체육회장 취임 후 도·도의회와의 극심한 갈등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었기 때문이다. 당시 경기도의 특정감사 결과 22건의 위법 부당행위가 적발되면서 도의회는 지난해 도체육회 사무처 운영예산 40억원을 삭감했다. 4개 체육시설과 도청 직장운동부 관리 위탁사업 등 8개 주요 사업을 도가 직접 추진토록 했다. 체육회장이 거리로 나가 1인 시위로 맞대응했다. ▶이에 체육계는 지난 6·1 지방선거를 주시했다. 도체육회는 지난 5월 18일 ‘경기지사 후보 초청 경기도체육인 한마당’을 열어 각 후보들에게 체육계 현실을 설명하고 다양한 정책을 제시했다.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이 행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자리였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행사와 특정 후보 지지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증언도 잇따른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동연 당선인이 도체육회장에게 전화한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자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도체육회는 앞으로 도와의 관계가 훈풍이 불 것으로 예상했지만, 당선인 캠프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다르다. 의례적인 도 단위 기관장에 대한 인사를 과대 해석해 여론화 하고 있는데 따른 불쾌감을 밝히기도 했다. 자꾸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분위기다. ▶상당수 체육인들은 도지사 당선인의 인품과 체육에 대한 남다른 식견 등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특정 후보를 지지했던 것을 잊은 채 성급하게 여론몰이를 하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으므로 자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도지사가 취임도 하기전 자의적으로 예단하고 성급하게 해석해 여론화하기 보다는 순리적으로 관계를 풀어가는 접근 방식이 필요한 때다.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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