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일본의 음흉스러운 속내

일본의 집권당은 자민당이다. 1945년 패전 이후부터다. 우리의 정치 체질과는 다르다. ▶더 오른편에 공명당이란 정당이 있다. 일본 정치권에선 여권으로 분류된다. 자민당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명목상으로는 중도우익을 표방한다. 1999~2009년 자민당과의 연정에도 참여했다. 그때부터 보수 성향이 강화됐다. 자민당 의원들보다 극우적인 측면에선 한 술 더 뜬다. ▶일본의 특정 정당을 거론한 까닭은 명쾌하다. 해당 정당이 최근 발표한 견해 탓이다. 공명당은 “한반도 유사시 ‘반격능력’ 행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위험한 워딩이다. 물론 ‘미국의 요청이 있다면’이란 전제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뭔가 음흉스러운 속내가 읽힌다. ▶당사자는 하마치 마사카즈(浜地雅一) 공명당 중의원이다. 일본 정가에서 극우 성향이 강한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자민당과의 실무자 회의를 통해 반격능력 보유에 합의한 후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이처럼 말했다. 하마치 의원은 방위력 강화를 위한 자민·공명당 실무자 회의의 공명당 측 사무국장이다. ▶(북한이나 중국 등) 적 미사일 발사 거점 등을 공격할 수 있는 반격능력에 대해 한반도 유사시에도 발동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리비약이다. ▶공명당은 앞서 열린 안보 3대 문서 개정 문제 협의회의에서도 반격능력 보유에 합의했다. 일본과 밀접한 국가에 무력공격 발생 시 반격능력 행사도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연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안보 3대 문서 개정을 결정한다. 반격능력 보유가 결정되면 일본 정부는 원거리 타격 무기 확보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때마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방위력 강화를 위해 5년간 방위비 약 43조엔(약 412조원) 확보를 지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일본의 무력 사용 문제는 이래저래 동아시아의 ‘뜨거운 감자’다. 이웃 나라를 좀처럼 배려하지 않는 DNA 때문일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中 백지시위

2020년 7월6일 홍콩 중심가 IFC몰에 모인 시민들이 흰 종이를 꺼내 들었다. 시민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켜보는 이들은 그 의미를 알았다. 홍콩보안법이 발효되면서 반중 구호가 적힌 피켓만 들어도 처벌받게 되자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홍콩 시민들이 저항의 수단으로 ‘백지시위’를 선택한 것이다. 2년이 넘은 현재, 이번에는 중국 전역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백지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발단은 11월24일 신장위구르의 성도 우루무치에서 아파트 화재가 발생해 10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였다. 시민들은 정부의 코로나 방역 강화로 인명 피해가 컸다고 주장했다.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는 외출이 금지돼 수많은 차량이 주차돼 있었고, 당국이 봉쇄를 위해 설치한 장애물들로 소방차 현장 진입이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은 SNS를 통해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3년 가까이 이어진 ‘제로 코로나’에 중국인들은 심한 피로감을 느끼면서 우루무치 화재 사건에 크게 동요했다. 상하이의 위구르인 거주지에선 26일 밤부터 수천명이 봉쇄 정책 반대 시위를 벌였다. ‘제로 코로나 해제’를 외치는 반코로나 시위는 베이징을 비롯해 우한, 청두, 광저우, 난징 등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중국 전역이 들끓고 있다. 대학생과 시민들은 백지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백지시위는 시위 참가자들이 검열과 통제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아무런 구호를 적지 않은 종이를 든 데서 붙여졌다. ‘무엇이든 쓸 수 있는 백지에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상하이에선 ‘시진핑과 공산당 퇴진’을 외치는 구호가 등장했다. 중국당국은 이번 시위를 적대 세력에 의한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시위 가담자에 대한 강경 진압에 나섰다. 외신은 백지시위 확산으로 장기 집권에 돌입한 시진핑 체제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다며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백지시위가 국제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우리도 차이나 리스크로 인한 한·중관계 영향 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에너지 다이어트

연말이면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프랑스 등에서 한 달여간 열리는 마켓에는 전 세계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코로나19로 2년여간 열리지 않다가 올해는 문을 열었다. 독일만 해도 1천개 넘는 곳에서 축제가 열린다. 대표적인 곳이 뉘른베르크와 드레스덴이다. 러시아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릴 수 있겠냐는 우려가 있었다. 전쟁 여파로 가스 공급이 부족해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크리스마스 마켓은 열었지만 전등 장식이나 부대시설 사용은 제한하고 있다. 시청과 같은 관광명소 장식 조명을 켜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마켓에 사용되는 등은 발광다이오드(LED)를 사용했다. 마켓의 야외 식사시설은 난방을 하지 않았다. 오후 10시 이후 가로등의 개수나 밝기를 줄였다. 에너지전쟁 여파로 유럽은 추운 겨울, 추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의 야간조명 소등을 새벽 1시에서 오후 11시45분으로 앞당겼다. 대다수의 유럽 국가가 가정과 사업체, 공공건물에서 실내온도를 19도 이상으로 올리지 말 것을 독려하며 절전 모드에 들어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에너지 절약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에너지시민연대는 ‘슬기로운 겨울나기 꼬꼬에(꼬리에 꼬리를 무는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하루에 한 개 에너지 절약 행동에 동참하자는 ‘1일 1 에너지 다이어트 챌린지’도 펼치고 있다. 전 세계가 에너지 위기로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도 에너지 수입이 급증하면서 고물가의 주범이 되고 무역수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에너지 사용량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80%를 넘는 현실을 생각하면 에너지 다이어트가 절실하다. 전기 사용량을 10% 감축하고 실내 온도를 18도로 낮추자는 ‘에너지 다이어트 1018’ 캠페인, 내복과 터틀넥, 목도리 등 방한용품을 착용하는 ‘온(溫)맵시’ 실천 등 전 국민의 동참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황새들도 우크라 영향

뱁새도 이 새를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다. 황새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겨울에 한반도를 찾는 철새 중 우두머리다. ▶검은 부리와 첫째 날개깃, 붉은 다리 등이 특징이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 멸종위기 동식물 목록인 적색목록에도 멸종위기 등급으로 지정됐다. 지구촌에 1천~2천500마리 남았다. 녀석들은 매년 10월부터 한반도로 내려와 겨울을 지낸다. 체류 기간은 석 달 남짓이다. ▶요즘 이 녀석들의 보존사업에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와 공동으로 추진해 오던 서식지 보존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어서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러시아와 황새 서식지 보존을 위해 인공 둥지탑을 짓고 이동 경로 등을 공동 연구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지난 2019년 11월이었다. ▶인공 둥지탑 만들기는 통상 높이 5~20m 나무에 둥지를 짓고 매년 같은 둥지를 재사용하는 황새 습성을 고려한 서식지 보존사업이다. 양국 연구진은 2020~2021년 러시아에 황새가 도래하기 전인 2~3월 인공 둥지탑을 번식지인 연해주에 10곳, 중간 기착지인 두만강 유역에 6곳 설치했다. 국립생태원은 이 사업을 올해까지 시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올해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목을 잡았다. 정부는 코로나19로 러시아를 포함한 전 국가와 지역에 특별여행주의보를 적용하고 있었는데, 연구진 입장에선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진 상황이어서 현장 방문을 자제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연구진은 올해도 인공 둥지탑 8곳을 조성하고 이소(離巢·새끼 새가 자라 둥지를 떠남)를 앞둔 어린 새에게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해 이동 경로 정보를 수집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 연구진이 러시아를 방문할 수 없게 되면서 내년으로 미뤄졌다. 일정 자체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폐해가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기적

‘기적’은 어릴 때 바라던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처럼 뜻하지 않게 일어나기에 설렘을 배가시킨다. 겨울에 열리는 사상 최초의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 얘기다. 월드컵을 보기 시작한 이후 정말로 듣기 싫은 말이 바로 ‘경우의 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제외한 대회에서 대한민국 축구는 항상 ‘경우의 수’와 ‘징크스’라는 단어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다. 지긋지긋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도 2차전 무승 징크스는 이어졌고, 그 패배로 실낱 같은 희망을 안은 채 경우의 수는 여지 없이 따지게 됐다. 그 경우의 수를 위해 대한민국 축구는 또 한번의 기적을 만들어 내야 한다. 4년 전 당시 피파(FIFA) 랭킹 1위였던 독일을 2 대 0으로 제압했던 ‘카잔의 기적’처럼 말이다. ▶사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카타르 도하는 긍정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대한민국은 도하에서 치러진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막판에 일본을 제치고 극적으로 본선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고, 이는 ‘도하의 기적’으로 불려 왔다. 기적이 일어났던 곳에서 다시 한번 제2의 도하의 기적이 일어나길 온 국민이 바라고 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바로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이다. ▶‘평행이론’과 ‘노쇼(No-Show)’.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은 한 조에 배치됐고, 이번 대회와 같이 예선 3차전 경기를 치렀다. 당시 포르투갈은 루이스 피구 등 월드클래스 멤버들을 앞세운 세계 축구의 강호였다. 하지만 박지성의 골로 대한민국이 신승, 포르투갈은 짐을 싸고 떠났다. 그리고 김태영 선수의 마스크는 캡틴 손흥민 선수로 이어지기에 20년의 평행이론이 진행되길 많은 이들이 꿈꾸고 있다. 그리고 노쇼. 복수의 시간. 지난 2019년 유벤투스 친선 경기 때 보여준 호날두의 ‘노쇼 파문’은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이제 기적의 명분은 충분하다. 태극 전사들이여. 고개 들고 당당히 싸우자. 당신들은 침체된 대한민국의 활력소이자, 기적의 서사시를 쓰는 주인공이니까 말이다. 김규태 사회부장

[지지대] 마스크 투혼

상대 팀의 저지는 집요했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줄기차게 골문을 때리고 위협했다. ▶손흥민(30·토트넘)이 90여분 동안 만든 늠름한 서사(敍事)였다. 28일 밤 카타르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였다. 얼굴을 보호해주는 검은 마스크를 쓰고 그라운드를 질주했다. 하지만 끝내 세 번째 골은 터지지 않았다. ▶태극전사들은 이날 열린 가나와의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2 대 3으로 석패(惜敗)했다. 손흥민은 우루과이와의 1차전(0 대 0 무승부)에 이어 이날도 풀타임으로 경기장을 질주했다. 전반전 두 골을 내줬다. 이어 후반전 들어 13분과 16분 조규성(전북)이 멀티골을 터뜨리며 만회했지만 한 골을 더 얻어맞았다. ▶그의 아쉬운 패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 알제리와의 조별리그 2차전서 첫 골을 넣지만 2 대 4로 무너졌다.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도 0 대 1로 패했다. ▶4년 뒤 러시아에서도 계속됐다.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0 대 2로 끌려가던 후반 추가시간 만회 골을 터뜨렸으나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세기의 대결로 이어졌다. 3차전이었다. 독일을 2 대 0으로 제압하는 ‘카잔의 기적’을 만들어서다. ▶그는 앞서 이달 초 소속 팀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르다 안와 골절상을 당해 수술받았다. 월드컵 출전도 불투명해지는 듯했지만 얼굴 보호대를 쓰고라도 경기에 뛰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결국 우루과이와의 1차전부터 그라운드로 돌아와 풀타임을 소화했다. 100%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장을 누비면서도 “괜찮다”며 승리에만 집중해 왔다. ▶그의 투지가 찬란하게 빛을 발할 기회는 아직 한 차례 더 남아있다. 확률상 16강 진출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환하게 웃으면서 카타르를 떠날 것이다. 마스크 투혼(鬪魂)은 반드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산업스파이

미국 법원이 지난 17일 산업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쉬옌쥔(42)에게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쉬옌쥔이 2013~2018년 가명을 써서 유령회사를 만든 뒤, GE항공 등 미국의 여러 항공우주 관련 기업들과 접촉해 기술 등을 훔치려 했다고 밝혔다. 산업스파이는 경쟁국이나 기업이 비밀로 관리하는 중요 경제 및 산업정보를 부정한 목적과 수단으로 정탐하고 유출하는 사람이다. 산업스파이에 의한 기술 유출은 핵심인력 스카우트, 직원을 매수해 필요한 영업비밀 입수, 기업 인수합병, 컨설팅사·협력업체를 통한 유출, 외국인 연구원에 의한 유출 등 다양하다. 첨단 과학기술은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이에 세계 각국은 자국의 첨단기술을 보호하고 경쟁국의 산업정보를 수집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첨단기술 연구 개발에는 많은 시간과 돈, 인력이 소요되기 때문에 암암리에 산업스파이가 동원되기도 한다. 산업기술이 유출되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돼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지만 기밀이 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경찰이 국내 핵심산업의 기술·인력 탈취 시도를 막기 위해 올 들어 10월까지 ‘산업기술유출 특별단속’을 벌여 317명(101건)을 검거했다. 영업비밀 유출이 75건(74.2%)으로 가장 많았고 업무상 배임이 15건(14.8%), 산업기술 유출이 11건(10.9%)이었다. 이 가운데 국가핵심기술 유출도 6건 포함됐다. 피해 기업은 중소기업(84%)이 대기업(16%)보다 많았다. 유출 주체는 외부인(9%)보다는 내부인(91%)이 많았다. 국외 기술유출도 12%에 달했다. 국가핵심기술을 포함한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엄정 대응해야 한다. 첨단기술과 경제정보 유출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같은 솜방망이 처벌은 문제가 많다. 미국은 ‘경제 스파이법’으로 국가 전략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다 걸리면 간첩죄로 가중 처벌한다. 대만도 간첩죄를 적용한다. 우리도 국가 경쟁력과 안보를 위협하는 산업스파이에 대해 양형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이번엔 ‘신촌 모녀’ 비극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정책을 보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또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수원 세 모녀’ 사건 석달여 만에 서울에서 ‘신촌 모녀’ 사건이 발생했다. 서대문구의 한 다세대주택 원룸에서 36세 딸과 65세 어머니가 생활고에 몰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세입자가 사망한 것 같다’는 집주인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사망한 사실이 지난 23일 밝혀졌다. 모녀의 집 현관문에는 5개월 치 전기료 9만2천여원의 연체를 알리는 9월자 독촉 고지서가 붙어 있었다. 월세가 밀렸다며 퇴거를 요청하는 집주인 편지도 붙었다. 지난해 11월 집 임차계약을 한 뒤 10개월 치 월세가 밀려 보증금도 모두 공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건강보험료는 14개월 치(약 96만원), 통신비는 5개월 치(약 15만원) 밀려 있었고, 금융 채무 상환도 7개월째 연체됐다. 숨진 모녀는 올해 두 차례 위기가구로 확인돼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자에 포함됐다. 하지만 광진구에서 서대문구로 이사하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사는 곳이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달라 정부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올해 8월 “월세가 늦어져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수원 세 모녀’ 비극과 판박이다. 복지부가 경제적 위기에 처한 가구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지원을 못받는 사례를 막는다며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 대책을 내놨지만 이들은 혜택을 받지 못했다. 위기가구 발굴에 활용하는 정보를 34종에서 44종으로 늘린다는데 시행 시점이 내년 하반기다. 너무 굼뜬 행정이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책을 강화해 왔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비슷한 참극이 계속된다. 이럴 때마다 국가와 정부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이 생긴다. 경제 상황이 계속 나빠지면서 위기가구들이 더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취약계층이 급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빚 독촉장만 남기고 외로운 죽음을 선택하는 빈곤약자가 없게 섬세하고 촘촘한 정책 시행을 서둘러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6·25전쟁의 휴전회담 장소는 원래는 개성 북쪽 내봉장(來鳳莊)이었다. 이를 바꾸게 만든 동인(動因)은 북한군의 무력시위였다. ▶판문점(板門店)은 그렇게 질곡(桎梏)의 현대사 무대에 데뷔했다. 그리고 휴전협정 이후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곳으로 이어졌다. 우리에게는 서글픈 현실이었지만, 이방인들에게는 동물원 구경처럼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이를 위해 설치된 기구가 판문점 견학지원센터다. ▶최근 해당 시설의 권한 이관을 놓고 경기도와 파주시의 물밑접촉이 치열(경기일보 11월3일자 10면)하다. 평화·안보관광 인프라 구축 완성을 위해선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권한 확보가 필수적이어서다. 앞서 파주시는 2020년 판문점 등 비무장지대(DMZ) 일원 미등록 토지에 대한 주소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로 복구했다. 67년 만이었다. ▶경기도의 명분도 DMZ 일원에 대한 평화안보관광 인프라 구축이다. 해당 시설의 관리는 통일부로 일원화됐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및 9·19군사합의 후속조치로 2020년 상반기부터 국내외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전에는 국가정보원 및 통일부, 국방부 등의 소관이었다. ▶파주시는 이와 관련해 늘 경기도에 앞서 있었다. 민통선 북쪽 제3땅굴 등을 운영하면서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통일부에 권한 이관을 요청해와서다. 최근에는 통일부 담당자를 직접 만나 이를 다시 적극적으로 건의한 바 있다. ▶판문점을 포함한 DMZ 관광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지는 이미 10년이 지났다. 관광객도 코로나19 이전에는 해마다 국내외에서 800만~1천만명이 방문하고 있다.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권한 이관은 그 흐름의 한복판에 있다. 권한이 어디로 귀속되든, 판문점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서사(敍事)다. 그 처절한 아픔을 늠름함으로 바꿔야 할 자산(資産)이어서 더욱 그렇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월드컵 이변

1등하던 사람이 1등을 하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만년 꼴찌가 1등을 이긴다면.... 사람들은 이를 이변, 기적이라고 부른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고, 소수가 다수를 물리친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이변은 스포츠 세계에서 자주 일어난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다. 스포츠 중에서도 축구는 지구촌 최고 스포츠로 평가받고 있다. 축구의 규칙은 단순하다. 축구공 하나를 던져 주고 편을 가른 선수들이 일정 시간 내에 골대에 골을 많이 넣으면 승리한다. 이 같은 단순한 규칙은 스포츠에 관심 없는 이들도 쉽게 알 수 있다. 야구나 농구 규칙처럼 복잡하지도 않다. 그래서 가장 본능에 가까운 스포츠가 축구다. 축구 경기 중에서도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전 세계 지구촌을 열광시킨다. 올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첫 이변이 나왔다. 지난 22일 열린 월드컵 조별 리그 C조 1차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2 대 1로 이겼다. 사우디는 세계 랭킹 51위인 반면 아르헨티나는 세계 랭킹 3위로 국가대표 36경기 무패를 달려온 명실상부한 강팀이다. 사우디 정부가 이날 승리 다음 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고 하니 사우디는 이번 월드컵에서 그야말로 대 이변을 연출한 주인공이 됐다. 대한민국도 월드컵에 이변을 연출한 팀으로 꼽힌다. 20년 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전통의 강호들을 누르고 4강 신화를 이룬 이변의 팀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하나 돼 열광했다. 축구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선사했다. 이런 대한민국이 24일 오후 10시 우루과이와 카타르 월드컵 첫 예선전을 치른다. 코로나19, 경제침체, 이태원 참사 등으로 우울한 대한민국. 2002년 기적처럼 대한민국 축구팀이 이변을 연출해 고달픈 국민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봉수대 문화재 지정

천림산. 성남시 금토동과 상적동 옛골 사이의 구릉이다. 청계산 동쪽 기슭이다. 높이는 해발 170m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봉수대(烽燧臺)가 있다. 서쪽으로 청계산의 주봉인 망경대와 국사봉 등이 앉아 있다. 그 사이의 해발 545m인 봉우리가 동북쪽으로 2.7㎞ 정도 이어진다. 동쪽 하단부로는 경부고속도로 달리내 구간과 금토동과 상적동 옛골 간 포장도로가 통과한다. ▶조선시대 전체 5로 봉수 노선 중 제2로에서 서울 남산 봉수대에 신호를 전달하는 마지막 시설이었다. 2000년 이후부터 학술조사가 진행됐다. 2004년 천림산 봉화제도 열렸다. ▶용인시 포곡읍 마성리 석성산에도 같은 시설이 있다. 해발 472m다. 천림산보다 높다. 남쪽이나 북쪽에서 보면 뾰족한 삼각형 형상이다. 동쪽은 완만하다. 서쪽은 가파르고 육중한 암벽을 이루고 있다. 숲이 울창하고 각종 기암괴석과 전통사찰이 어우러져 있다. ▶봉수대는 조선시대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다. 변방의 위급한 소식을 중앙에 가장 신속하게 전달해서다. 그런 봉수대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최근 관보를 통해 봉수대 16곳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공고했다. 사적 명칭은 ‘제2로 직봉’(第2路 直烽)이다. ▶횃불과 연기 등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시스템이 봉수대였다. 1895년까지 운영됐다. 특히 전국을 5거(炬) 직봉(전국 봉수망을 잇는 중요 봉화대)으로 편제했다. 변경 방어를 강화하고 적의 침입이나 전투 시작 등 급박한 상황을 빠르게 알렸다. 직봉 중 2거·5거는 서울을 중심으로 남쪽에, 1거·3거·4거는 북쪽에 위치했다. ▶봉수대는 국내 전역을 아우를 수 있어 연대성(連帶性)이 강하다. 전국에 산재한 봉수대 유적 중 일부만 시·도 지정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대부분은 아직 제도적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추진이 너무 늦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월드컵과 맥주

아랍 국가에서 최초로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이 21일(한국시간) 개막했다. 개막식 후 A조의 카타르와 에콰도르가 첫 경기를 펼쳤다. 경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즈음, 에콰도르 축구 팬들은 “우리는 맥주를 원한다”고 소리쳤다. 이슬람 국가인 카타르에서는 음주는 물론 주류 판매도 할 수 없다. 축구 팬들은 경기장 주변에서 맥주를 구할 수도, 마실 수도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카타르 당국은 ‘지구촌 축제’인 월드컵 기간에는 경기 입장권 소지자에게 경기장 외부 지정 구역에서 맥주 판매를 허용했다. 경기를 보며 맥주를 마실 수는 없어도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정해진 장소에서 마시고 들어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개막 이틀을 앞둔 지난 18일 이를 철회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3시간 동안 맥주를 마시지 않아도 사람은 살 수 있다”며 판매금지 결정이 문제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대회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스페인, 포르투갈 경기장에서도 맥주 판매가 금지되고 있다”고 했다. FIFA의 이번 조치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와는 정반대다. 당시 브라질은 FIFA의 압력으로 경기장에서 술을 팔 수 없다는 법령을 수정해야 했다. 제롬 발크 당시 사무총장이 “술은 월드컵의 일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FIFA가 개최국의 눈치를 봤다. FIFA와 카타르 당국의 경기장 맥주 판매 금지 결정에 불만이 쏟아졌다. 판매 금지 날벼락을 맞은 월드컵 후원사 버드와이저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어, 이러면 곤란한데(Well, this is awkward)”라는 글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다음 날에는 캔이 쌓여있는 창고 사진을 올리면서 “우승하는 나라가 버드와이저를 갖는다. 누가 갖게 될까?”라고 썼다. 남은 맥주를 우승국에 주겠다는 것이다. 월드컵 기간 중 맥주는 카타르 도하 시내 ‘팬 구역’과 일부 외국인 대상 호텔에서만 음주가 가능하다. 팬 구역에서 500㎖ 맥주 한 잔에 50리얄(약 1만8천원)에 팔고 있다. 축구 볼 때 맥주 한잔 없으면 서운하긴 하다. 집에서 ‘치맥’ 하면서 월드컵을 관람하는 즐거움을 기대하는 국민이 많다. 월드컵과 맥주를 즐기되 과음은 금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세계인구 80억명 시대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조지아와 함께 코카서스 3국 중 하나다. 지리적으로 서아시아에 속하지만 정치·경제·문화 등 측면에서 유럽에 가깝다. 이곳에서 지난 15일 ‘지구상 80억번째 인물’이 태어났다. 여자아이 아르피(Arpi)가 그 주인공이다. 세계 인구가 80억명을 돌파했다. 1974년 40억명에서 48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유엔인구국(UNPD)은 2037년 90억명, 2080년 100억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공중보건과 영양, 의학 등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80억명 가운데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인구가 23억명(29%), 중앙아시아·남아시아가 21억명(26%)으로 아시아 인구가 세계의 절반을 넘었다. 국가별로는 중국과 인도가 나란히 14억명으로 가장 많았다. 인도는 내년 중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인구 80억명 시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수십년간의 인구 증가가 기후변화 대응을 방해하고 대규모 이주나 국가 간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빈국인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가 인구 증가를 이끌 것으로 예측, 식량·물·에너지 등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영양실조 및 기아 문제를 부추길 수 있다. 7월 발표된 유엔 ‘세계 인구의 날’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증가율은 1960년대 초 정점을 찍은 뒤 급격히 떨어져 2020년 1% 아래로 하락했다. ‘나라가 잘살수록 아이를 안 낳는’ 고성장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유엔은 선진국 상당수가 고령화사회로 접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고령화율은 2010년 7.7%에서 올해 9.8%를 기록했다. 한국은 65세 이상 비율이 올해 17.49%에서 2025년 20.35%로 늘어나 초고령사회에 접어든다. 세계 인구 80억명 시대에 한국은 세계 최저의 저출산 국가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어도 출산율은 떨어진다. 저출산 대책 방향이 잘못됐다. 보다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국가 존망이 걸린 문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흰개미의 습격

징그럽다. 번데기 과정이 없다. 알에서 직접 애벌레로 자란다. 죽은 나무도 갉아먹는다. ▶흰개미 얘기다. 다리가 짧고 허리는 굵다. 몸 색깔은 투명한 흰색이다. 개미와 다른 점이다. 개미는 여왕이 사회를 이끈다. 하지만 흰개미는 여왕과 왕이 함께 통솔한다. 썩은 식물을 빨리 분해해 자연의 순환을 도와야 해서다. ▶언뜻 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목조 건축물이나 문화재 등에 대입하면 경우가 달라진다. 한번 침투하거나 습격하면 안쪽부터 목재를 갉아먹어 큰 피해로 이어진다. 최근 학계가 심각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문화재’ 최신호를 통해 국내 목조건축 문화재 상당수가 이 녀석들의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국보·보물급을 비롯해 국가지정 목조건축 문화재 362건(건물 기준 1천104동)을 대상으로 2016~2019년 조사한 결과다. 317건(87.6%)에서 흰개미 피해가 확인됐다. 185건(51.1%)에선 맨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탐지견 반응과 육안 조사 등 어느 하나라도 피해가 확인된 대상은 324건(89.5%)에 이른다. 목조건축 문화재 10건 중 9건에서 흰개미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거나 진행 중이다. 문화재청은 2011년부터 목조문화재를 대상으로 흰개미 피해를 전수 조사 중이다. ▶이 중에는 경기도내 목조문화재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는 종합방제대책을 마련했다. 목조문화재에 특화된 방제 약제를 평가하고 기준을 정한 ‘흰개미 약제 인증기준’도 2024년 내놓을 예정이다. ▶문화재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흰개미 서식지부터 제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목조문화재 주변 환경 정비도 강화해야 한다. 적시에 방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방충사업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후손에게 문화재를 온전하게 물려줄 수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인천시장의 역사적 책임과 소임

과거를 돌이켜보며 잘못을 반성하고 현재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일.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미래를 예측하고 현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 이는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하는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과거의 잘못을 되돌아보지 못한다면 현재도 같은 잘못을 반복할 것은 뻔하고, 그러면 미래도 잘못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가 알 테지만, 일본은 이 같은 과거의 반성이 없기에 지금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천시도 마찬가지로 과거를 돌이켜봐야 한다. 당시엔 고심 끝에 내린 최고의 결정이었다 하더라도,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봤을 때 과거 부적절한 결정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0년 전 인천시가 신세계백화점이 있던 인천종합버스터미널을 통째로 롯데에 매각한 결정은, 이후 롯데백화점의 지역 독과점 문제를 불러일으키더니 수년째 구월동 옛 롯데백화점 부지는 흉물로 방치 중이다. 이로 인해 인근 상권은 무너졌고 뒤늦게 다시 개발을 추진했지만 경찰의 반대에 막혀 지지부진하다. 10년 전 인천시의 결정으로 인한 후폭풍인 셈이다. 또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천의 한 도시개발 사업지구의 고속도로 지하화 문제. 이것도 수년 전 인천시가 미래를 전혀 내다보지 못하고 내린 인허가 결정 탓에 이제야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인천시는 이 같은 잘못을 이제라도 반성하고, 조금이라도 인천시민을 위한 방향으로 바로잡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최근 간부회의 등에서 인천시장으로서의 역사적 책임과 앞으로의 소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고 한다. 시장은 정치인이자 고위공무원이다. 인천시만 생각하고, 인천시민들을 위한 일만 하는 공무원으로서 잘못은 바로잡고 앞으로의 미래를 밝히기 위한 역할에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지대] “끝의 시작”

전쟁이 터졌다. 사흘 만에 도시의 일부분이 점령 당했다. 보름 정도 지나자 완전히 포위됐다. 그렇게 도시는 무너졌다. 올해 3월2일이었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이 그랬다. 흑해와 드니프로강을 낀 중요한 항구 도시다. 러시아는 이곳을 자국령 헤르손주(州)의 주도(州都)로 접수했다. 러시아에 오랫동안 무릎을 꿇을 것으로 보였다. ▶이 도시의 지정학적 위치도 예사롭지 않다. 동부 돈바스(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와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곳이 바로 동부 돈바스다. 그래서일까. 질곡(桎梏)의 현대사가 이 도시의 자화상이다. ▶러시아는 군민정청(軍民政廳)도 설치했다. 다른 점령지와 함께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했다. 그렇게 봄과 여름, 가을이 지나갔다. 아무런 변화도 시도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암울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점령군이 헤르손에서 철수하면서 실효지배 포기를 선언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5일 오전(한국시간) 이 도시를 찾았다. 8개월 만이었다. “우리는 평화를 찾을 준비가 돼 있다.” 외신이 전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전쟁의 대가는 크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숨졌지만 강한 군대가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꾸준히 되찾고 있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한 동맹국들의 지원에 대해서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헤르손 시내에 게양된 우크라이나 국기 앞에서 오른손을 가슴에 댄 채 군인과 주민들과 함께 국가를 제창하기도 했다. ▶무릇 평화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역사가 이를 입증해준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헤르손 수복의 의미에 대해 던진 첫 워딩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끝의 시작입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안전한국훈련

이태원 압사 참사로 인한 사망자가 1명 더 늘었다. 20대 내국인 여성이다. 지난달 29일 대참사 이후 모두 158명의 목숨이 스러졌다. 희생자 장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내국인 130명은 발인이 완료됐으며, 2명은 장례 중이다. 외국인 희생자 26명 중 24명은 본국에 송환됐고, 2명은 송환 대기 중이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와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이번 주부터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범정부 TF’, ‘경찰 대혁신 TF’ 등을 통해 주요 개선 방안을 본격 논의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4일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 고위층은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이란 말을 되뇌며, TF를 구성한다. 물론 필요한 조치지만 달라진 게 없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해 끔찍한 참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나아지겠지, 달라지겠지 하지만 똑같다. 14일부터 25일까지 이태원 참사 같은 재난이 발생할 때 반복될 수 있는 부실 대응을 예방하기 위해 ‘2022년 안전한국훈련’이 실시된다. 재난안전관리기본법 제35조를 근거로 한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은 2005년 범정부적 재난대응 역량을 확대·강화하고 선진형 재난관리시스템을 구축한다며 도입됐다. 매년 중앙부처, 시도, 시군구, 공공기관·단체 등이 합동으로 실시하고 있다. 풍수해, 화재, 폭발, 테러 등 재난상황 발생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재난대응 훈련은 당연히 필요하다. 문제는 매년 합동훈련을 실시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겠다며 엄청난 예산을 들인 ‘세계 최초’ 재난안전통신망은 참사 현장에서 무용지물이었다. 대참사 이후 정부와 정치권 등에선 사후약방문식 처방을 쏟아낸다. 그나마의 처방도 말뿐이고 실행이 잘 안 된다. 올해 18년 차를 맞은 안전한국훈련은 철저히 제대로 실행해야 한다. 정부와 공직자는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모든 재난을 예방·관리할 책임이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지방소멸’에서 ‘지역소멸’로

‘지방소멸위험지수’는 한 지역에 65세 이상 인구 대비 20∼39세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낸다. 지수가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지수 수치가 낮으면 인구 유출·유입 등 다른 변수가 크게 작용하지 않을 경우 약 30년 뒤 해당지역이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일본 도쿄대 마스다 히로야 교수가 자국 내 지방이 쇠퇴해 가는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내놓은 기법에 기초해 개발됐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올해 3월 전국 228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소멸위험지수를 조사한 결과, 113곳(49.6%)이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석됐다. 2020년 조사보다 11곳 늘었다. 강원·경북·전남에 편중됐던 소멸위험지역은 비수도권 전체로 확산됐다. 최근엔 경기도와 인천시 등 수도권 농촌지역도 포함됐다. 산업연구원(KIET)도 지역 간 인구이동 특성을 고려해 개발한 ‘K-지방소멸지수’를 13일 발표했다. 228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위기’에 빠진 곳은 59곳(소멸우려 50곳, 소멸위험 9곳)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비수도권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소멸’에서 수도권과 광역시의 인구까지 줄어드는 ‘지역소멸’ 시대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은, 지방소멸은 인구의 지역 간 이동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인구의 유출입은 지역경제 선순환 메커니즘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했다. 이런 식의 지방소멸지수 개발은 처음이다. 고용정보원이나 산업연구원의 소멸지역 수치가 다른 것은 조사방법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은, 비수도권을 넘어 수도권 지역까지 소멸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역대 출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인 0.81%였다. 국가 발전은 고사하고 대한민국 존재 자체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다. 지방소멸, 지역소멸을 방치해선 안된다. 정부는 가칭 ‘인구청’을 신설해 비상한 각오로 인구 문제 해결에 국가역량을 집중해야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현실로 닥친 트윈데믹

‘트윈데믹’(Twindemic). 쌍둥이란 뜻의 트윈(Twin)과 세계적 유행병을 의미하는 팬데믹(Pandemic)의 합성어다. 두 감염병이 동시에 유행하는 현상이다. ▶2020년 겨울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가 주춤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가능성이 다시 높아졌다. 독감에 대한 면역력이 낮아져서다. 그해 겨울 미국과 영국에서도 확인됐다. 올해 1월 이스라엘, 미국, 브라질 등지에서 다시 보고됐다. ▶그 당시에도 트윈데믹은 본격화되진 않았다. 감염 비율도 낮았다. 두 감염병이 동시에 발생하면 의료체계에 혼란과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고위험군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근 코로나19가 재유행하면서 독감 환자도 다시 늘고 있다. 주간 일평균 신규 확진자 수가 다시 6만명대로 올라섰다. 감염재생산지수도 확산 기준점인 ‘1’을 계속 넘어서면서 겨울철 재유행 초입에 들어섰다. 최근 일주일간 독감 의심 환자는 외래환자 1천명당 7.6명으로, 전주의 6.2명에서 22.6% 늘었다. 지난 겨울의 4.9명을 훌쩍 넘었다. ▶트윈데믹의 위기는 물론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도 코로나19 유행에 지쳐 가면서 백신 접종률이 6%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낮은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고령층 등 건강 취약계층에겐 여전히 큰 위험 요인이라는 점이다. ▶최근 방역당국이 발표한 코로나19 항체 양성률 조사에 따르면 70대와 80대 자연감염 항체 양성률은 각각 43.11%, 32.19%였다. 전체 평균 57.65%보다 낮다. 이 연령대는 그 대신 백신 접종을 통해 98~99%의 항체 양성률을 보였다. 보건 전문가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의 트라우마까지 겹쳐 이래저래 ‘삼중고(三重苦)’의 우울한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11월11일은 무슨 데이?

11월11일은 빼빼로데이, 농업인의 날(가래떡데이), 보행자의 날,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 등의 기념일이다. ‘빼빼로데이’는 친구나 연인 등 지인들끼리 ‘빼빼로’ 과자를 주고받는다는 11월11일을 가리킨다. 이는 원래 숫자 ‘1’을 닮은 가늘고 길쭉한 과자 ‘빼빼로’처럼 날씬해지라는 뜻에서 친구들끼리 빼빼로 과자를 주고받던 데서 시작됐다. 지난 1983년 빼빼로 출시 이후 영남지역의 여학생들 사이에서 ‘빼빼로처럼 빼빼(날씬)하게 되길 바란다’는 의미로 빼빼로를 주고받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는 내용이 해당 지역신문에 기사화된 것이 빼빼로데이의 시초로 여겨진다. 또 이날은 ‘농업인의 날’이기도 하다. 농업인의 날은 1996년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우리 농업 및 농촌의 소중함을 국민에게 알리고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려는 취지에서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농업이 국민경제의 근간임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북돋우며 노고를 위로하는 행사를 한다. 이와 함께 보행자의 날은 지난 2010년 ‘지속가능 교통물류 발전법’ 및 같은 법 시행령에 의해 산업화에 따른 미세먼지 증가, 제한적인 에너지의 위기 도래, 환경보호 요구에 대응하고 국민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걷기의 중요성을 확산하고자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날이다. 보행자의 날이 11월11일로 지정된 이유는 숫자 11이 사람의 두 다리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날은 6·25전쟁에 참전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념하고 이들을 유엔 참전국과 함께 추모하기 위해 지정한 날이다. 11월11일을 하루 앞두고 많은 기념일의 의미 중 어떤 날로 하루를 보낼지 생각해 보자. 최원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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