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임진강거북선Ⅱ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처음 만들었다는 명제(命題)는 더 이상 팩트가 아니다. 여러 문헌이 입증해주고 있다. ▶그동안 거북선 제작 시기는 16세기 후반에 맞춰졌었다. 임진왜란 발발 시점이 1592년이어서다. 전쟁 와중에 남해안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맹활약한 철갑선(鐵甲船)이라는 게 그동안의 정설이었다. ‘거북선=이순신 장군’ 등식이 성립된 지점이었다. ▶경기일보가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단초(端初)는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이었다. “태종 13년(1413년) 2월5일 임금이 임진나루를 지나다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보다 180년 앞섰다. ▶임진나루는 조선 초기 거북선이 정박했던 곳이다. 파주시가 닻을 올렸다.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실물 크기 건조를 내년 3월 시작해 2024년 말까지 완료키로 했다. 역사문화 콘텐츠로서 ‘원 소스 멀티 유즈’(원형 콘텐츠를 다양하게 활용) 방식으로 펼쳐진다. 임진강거북선 활용방향에 대한 관심도 그래서 뜨겁다. ▶앞서 파주시는 국내 거북선 설계 일인자인 중소조선연구원에 실시설계를 의뢰했다. 이후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전장이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보다 약 6m 작은 61자(약 19m)에 용두가 설치된 중맹선(조선 군선·60명 승선)임을 최초로 재현했다. 실물 크기의 15분의 1 축소 모형도 제작해 임진각 내 한반도 평화생태관광센터에 공개 전시했다. ▶경기일보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지상 좌담회를 마련해 각계 전문가의 견해를 들었다. 여기서 나온 의견들의 종착점(終着點)은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의 브랜드 특정화·콘텐츠 방향이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임진각에 임진강거북선을 복원·설치해 조선 최초 거북선의 상징성을 널리 알리겠다”고 밝혔다. 임진강거북선의 늠름한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사라지는 어린이집

회사 주변의 웨딩홀이 몇년 전 노인요양병원으로 바뀌었다. 결혼하는 젊은이들이 자꾸 들어드니 운영이 힘들었을 것이다. 결혼하는 사람이 줄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많으니 출산율이 자꾸 떨어진다. 저출산이 심각해지면서 어린이집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보육 최전선을 담당하는 어린이집이 매년 1천900여곳씩 사라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4만238곳이던 어린이집이 올해 8월 현재 3만1천99곳으로 4년8개월 동안 9천139곳 줄었다. 민간 운영 어린이집이나 아파트 단지 내 20명 규모의 가정 어린이집의 폐원이 많다. 국내 영유아(6세 미만 취학 전 아동)는 2017년 145만243명에서 올해 8월 기준 105만4천928명으로 줄었다. 5년 새 39만5천315명(27.3%)이 감소한 것이다. 어린이집이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경기도다. 2017년 1만1천825곳에서 2022년 8월 9천495곳으로 5년여간 2천330곳(19.7%)이 사라졌다. 경기도내 영유아는 같은 기간 39만4천882명에서 31만9천88명으로 7만5천794명(19.1%) 줄었다. 수도권이 어린이집 수가 가장 많고 문닫는 곳도 가장 많다. 특히 경기도는 신혼부부의 첫 주거지인 경우가 많아 영유아 보육 수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도 어린이집 감소에 한몫했다. 정부가 코로나 때 만 0~5세 아이를 둔 가정에 월 10만~20만원의 가정양육수당을 지원하면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가정이 많아진 것이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한 해 총 3천237곳의 어린이집이 폐원했다. 어린이집의 내리막길은 20년 전 예고됐다. 한국은 2002년 합계출산율 1.18명으로 초(超)저출산 국가가 됐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규모가 큰 민간 어린이집은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 등 노인 돌봄시설로 바뀌고 있다. 정부가 공공 어린이집을 확충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아이들이 줄어 걱정이라면서, 아이를 보낼 어린이집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니 아이러니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커피믹스

우리 국민의 인기있는 기호식품 중 하나가 ‘커피믹스’다. 사무실이나 집에서는 물론 나들이 갈 때도 필수다. 경치 좋은 산이나 들, 바닷가에서 마시면 그 맛이 배가 된다. 커피믹스는 1976년 동서식품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한 포장 안에 커피, 프림, 설탕이 모두 들어있는 커피믹스는 한국식 ‘빨리빨리’ 문화의 산물이다. 처음에는 직사각형이었다가, 1987년께 스틱형으로 바뀌었고 1996년에는 설탕도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커피믹스가 국민적 유행이 된 것은 외환위기 때와 구조조정 바람이 불던 1990년대 말이다. ‘커피 타 줄 여직원’이 사라지는 바람에 일정한 커피맛을 보장하는 믹스가 직장을 중심으로 퍼졌다. 골목까지 커피전문점이 생기면서 원두커피를 선호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지만 커피믹스의 인기는 여전하다. 커피믹스는 외국인들한테도 인기다. 커피믹스 맛에 반한 외국인들은 스타벅스 커피보다 낫다고 한다. 때문에 한국 방문기념 선물로 많이 쓰인다. 미국 LPGA 프로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에게 커피믹스를 사다달라고 부탁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대회 때 커피를 많이 마시는 선수들에게 쉽게 타먹을 수 있는 믹스가 ‘딱’이기 때문이다. 달달한 커피믹스가 갱도에 갇힌 사람도 살렸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에 매몰된 광부 2명이 4일 오후 221시간 만에 극적 구조됐는데 커피믹스가 이들의 생존에 기여했다. 지하 190m 지점에 고립됐던 두 사람은 작업 전 챙겨갔던 믹스커피 30봉지를 밥 대신 먹으며 버텼다. 비상식량 역할을 한 믹스커피는 칼로리가 높고 여러 영양소가 포함돼 있다.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1개는 50kcal다. 나트륨 5mg, 지방 1.6g, 탄수화물 9g, 당류 6g, 포화지방 1.6g도 들어있다. 극한 상황에서 체온을 유지시킬 수 있는 칼로리와 영양소가 들어있던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생환한 광부들에 대해 ‘커피 광고 모델하면 대박일 듯’ ‘꼭 TV에서 광고하는 모습 볼 수 있길’ 하며 믹스커피 광고 모델로 써야 한다는 반응도 있다. 매몰된 광부의 생환에 믹스커피가 도움이 됐겠지만, 더 큰 이유는 삶에 대한 의지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훈맹정음

점자(點字)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문자다. 지면에 돌기한 점을 일정한 방식으로 맞추고 손가락으로 만져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다. ▶점자를 사용하기 전에는 파라핀 서판(書板)에 글자를 음각하고 목판에 글자를 새겼다.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당시 시각장애인들은 대나무를 이용한 점자인 죽력(竹曆)을 사용했다. ▶물론 한자가 기반이었다. 아직 한글을 기반으로 한 점자가 탄생하기 전이었다. 한자를 모르면 점자 사용은 소용이 없었다. 무용지물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어를 바탕으로 했던 점자도 나왔다. ▶서울 한복판에 있던 의료기관인 제생원의 맹아부 교사가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한글을 바탕으로 하는 점자를 만들겠다고 말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겠다는 결의도 다졌다. ▶제자 8명과 조선어 점자연구위원회를 꾸렸다. 본격적으로 한글 점자를 창안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갖은 고생이 뒤따랐다. 일제의 감시도 심했다. 한글 사용도 일일이 통제받던 시절이었다. 3년 후 마침내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점자가 만들어졌다. 훈맹점음(訓盲正音)이다. 1926년이었다. ▶세로 3개에 가로 2개 등으로 구성된 점자를 조합해 63개 점자를 창안했다. 송암(松庵) 박두성(朴斗星) 선생이 창시자였다. “실명한 이들에게 조선말까지 빼앗는다면 눈 먼 데다 벙어리까지 되란 말인가”. 송암 선생의 의미 있는 말씀이었다. ▶훈맹정음은 자음과 모음뿐만 아니라 약자, 문장부호와 숫자 등까지 점자로 나타냈다. 그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한 11월4일 훈맹정음을 반포했다. 오늘이 바로 훈맹점음이 이 땅에 나온 지 96년째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을 안다면...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느님도 너무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대한민국 대표 여류 작가 박완서씨는 아들의 죽음에 대성통곡하며 ‘어머니의 일기’를 눈물로 썼다. 그는 ‘큰 딸네 집에서 마음 놓고 통곡할 수 없었기에 글을 쓴다’고 했다. 자신의 지옥 같은 고통을 자녀가 알까 두려운 마음으로....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을 ‘참척지변(慘慽之變)’이라고 한다. 비통함이 너무 처절하고 참담해서 가늠조차 안 되는 참혹한 슬픔이라는 뜻이다. 오죽하면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을까.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한다. 말 그대로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다. 핼러원데이를 하루 앞두고 서울 이태원에서 153명이 압사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참담하고 불행한 일이다. 날이 지나면서 희생자는 156명으로 늘었고 국민의 슬픔은 커졌다. 경기 청년 38명도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부분 2030세대인 데다 중학생까지 희생돼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사연도 가슴 먹먹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사회 초년생, 매일 아버지에게 톡으로 사진을 보내주던 친구 같은 막둥이 딸은 직장 동료들과 참변을 당했다. 생일을 앞둔 아들, 가장 역할을 한 딸, 군에서 휴가 나온 막내, 취업에 성공해 상경한 딸 등 20대 꽃다운 청춘들이 숨도 못 쉬는 고통 속에 숨을 거뒀다. 이들은 부모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아들, 딸이며 누군가에겐 소중한 친구이자 연인, 동료다. 정부는 오는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시도 합동분향소에는 어이없게 세상을 떠난 젊은 청춘을 추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참사 현장 주변에도 흰 국화꽃 헌화와 묵념으로 또래 친구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누가 헤아리고 이해할 수 있을까.. 국가애도기간 동안 우리 사회는 그 어떤 혐오성 발언이나 2차 가해를 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도 정쟁을 멈추고 초당적 협력과 추모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슬픔에 잠긴 국민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김창학 정치부 국장

[지지대] 빗속의 ‘엑소더스’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비를 맞으며 숱한 인파가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더러 넋을 잃은 이도 보였다. ▶TV를 통해 목격한 군중의 행진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특별한 목적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야말로 ‘빗속의 엑소더스’였다. 도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걸까. ▶외신은 중국 허난(河南)성 북부 정저우(鄭州) 폭스콘 노동자들의 탈출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해당 도시는 황허강 남쪽 기슭에 있다. 고대 은(殷)나라 때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방적·기계공업도 발달했다. 이곳에 위치한 폭스콘에선 전 세계 아이폰의 70%가 생산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저우가 코로나19 확산으로 봉쇄됐다. 그러자 노동자들이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공장을 탈출해 귀향길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시작됐다. 인근 주민들은 길거리에 음식을 놓아 뒀다. 이들에게 끼니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배낭을 메고 짐 가방을 끌며 길을 걷는 젊은이도 수두룩했다. 폭스콘 공장 주변이 봉쇄되면서 대중교통도 운행되지 않고 있어서다. 짐을 짊어진 채 도로를 따라가거나 밀밭을 가로질러 하염없이 걸어간다. 도중에 2m 높이의 철조망을 넘어간 사연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고 있다. ▶일부 지방정부는 이들을 차량에 실어 데려가기도 했다. 폭스콘 측도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해 당국과 협의해 차량을 지원하는 등 안전한 귀향을 돕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지방정부는 유전자증폭(PCR) 검사 결과 음성판정서가 있어야 한다며 통제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번지는 것을 우려해서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폭스콘을 떠나도록 허용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도 공장 측은 이들이 떠난 생산 라인을 메우기 위해 주변에서 수시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 천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들이 되레 푸대접 받는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심폐소생술(CPR)

지난달 29일 밤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10만여명이 모였던 이태원에서 대규모 압사 참사가 벌어졌다. 좁은 골목길에 인파가 서로 뒤엉키면서 수백명이 쓰러지고, 그 위에 또 쓰러졌다. 대참사로 150명 이상이 사망했고, 축제는 한순간 지옥이 됐다. 이날 압사 사고 현장에서 폴리스 라인 안쪽의 한 남성이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쳤다. “군대 갔다 오신 분 중에 심폐소생 할 수 있는 분 도와주세요. 여자분들 중에 간호사이신 분”이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20여명의 시민들이 폴리스 라인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수백명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구급대원과 경찰 인력이 부족하자 시민들이 앞다퉈 심폐소생술에 나섰다. 심폐소생술(CPR·Cardio Pulmonary Resuscitation)은 병원 밖에서 심정지가 발생한 환자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심장이 멈추면 혈액 순환이 중단된다. 뇌는 4∼5분만 혈액공급이 차단돼도 영구 손상을 입게 된다. 정지된 심장을 대신해 심장과 뇌에 산소가 포함된 혈액을 공급해줄 수 있는 응급처치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 및 자동제세동기(AED)를 이용해 응급처치를 하면 생존율이 80%까지 높아진다. 하지만 4분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1분 지연 때마다 생존 확률이 7~10%씩 낮아진다. 심폐소생술로 심정지된 사람을 살린 사례가 종종 있다. 지난달 14일 고령의 남성이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에 쓰러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간호사 경력이 있는 수서경찰서의 한 순경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곧 도착한 119 구급대와 함께 응급조치를 해 남성은 의식을 되찾았다. 16일에는 올해 간호대학을 졸업한 새내기 간호사가 길에서 심정지로 쓰러진 50대 여성을 심폐소생술로 구했다. CPR를 시행하면 하지 않을 때보다 환자 생존율이 3배 이상 높아지는 만큼, 일반 시민도 숙지해야 한다. 갑자기 쓰러진 심정지 환자의 생존은 목격자에 의해 좌우된다. 신속하고 정확한 응급처치가 내 가족, 내 이웃의 생명을 직접 구할 수 있다. 심폐소생술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핼러윈이 뭐길래

10월31일은 ‘핼러윈(Halloween)’ 데이다. 미국 어린이들이 1년 내내 손꼽아 기다리는 날 중 하나다. 핼러윈은 미국 축제로 알려져 있지만, 고대 켈트족이 새해(11월 1일)에 치르는 사윈(Samhain) 축제에서 유래됐다. 켈트족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사후 세계와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죽은 혼령이 돌아다닌다고 여겼다. 이에 음식을 마련해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려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았다. 이때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핼러윈 분장의 원형이 됐다. 핼러윈의 특징은 사탕과 의상이다. 유령이나 괴물 등으로 분장한 아이들이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다니며 “간식을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야(trick or treat)”라고 외치는 모습은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본 풍경이다. 어른들도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 미라 등의 특이한 의상을 차려입고 파티를 한다. 호박에 구멍을 파고 등불을 넣은 ‘잭오랜턴’과 해골 인형을 마당에 세워두는 등 동네에서 가장 무서운 집을 꾸미려 경쟁도 한다. 핼러윈은 한국과는 상관없는 날이지만 미국문화가 세계로 전파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상업주의와 결탁해 축제로 자리잡아 가면서 놀이공원·쇼핑몰은 물론 유치원에서도 파티를 연다. 핼러윈은 제2의 크리스마스가 됐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색다른 추억을 선물할 수도 있겠지만, 해외 직구를 통해 아이가 원하는 코스튬(옷)과 소품을 구매하느라 ‘핼러윈 스트레스’를 받는다. 20대 젊은층의 핼러윈 파티는 요란하다. 이태원이나 홍대 등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번화가의 클럽이나 카페를 중심으로 핼러윈 파티가 열리면서 젊은층에게 빼놓을 수 없는 기념일이 됐다. 얄팍한 상술과 결합한 변종 외래문화가 자극적인 한국식 핼러윈 문화로 자리잡은 것은 씁쓸하다. 올해는 3년 가까이 이어져 온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젊은층을 거리로 이끌었다. 핼러윈을 앞두고 이태원에서 벌어진 대규모 압사 사태는 너무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더티봄

서양인들은 비겁한 행위를 보면 곧잘 ‘더럽다(Dirty)’고 표현한다. ‘더티봄(Dirty Bomb)’이란 군사용어는 그런 연유로 만들어졌다. 하긴 무기 중에 ‘더럽지 않은’ 게 과연 있을까. ▶더티봄은 군사학적으로는 방사능 오염에 특화된 핵무기를 가리킨다. 폭발력보다는 방사능 확진에 치중한다. 서울에서 열렸던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이미 논의됐었다. 10년 전이었다. 개발하거나 사용하느니 그냥 핵무기를 만들어 발사하는 게 가성비가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더티봄은 정식 핵무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니트로글리세린의 화학반응에만 의존하는 폭탄도 아니다. 재래식 무기에 방사성 물질을 넣어 만들어서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쓰이진 않았지만, 이를 이용한 테러가 시도된 적은 몇 차례 있었다. ▶맨 처음은 1995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였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이었다. 당시 체첸 반군이 세슘-137과 다이너마이트를 조합한 더티봄을 모스크바 이즈마일로브 공원에서 터뜨리려다 미수에 그쳤다. 2002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장소는 미국이었다.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영향을 받은 미국인이 시카고에서 더티봄 테러를 모의하다 체포됐다. ▶러시아가 느닷없이 연일 우크라이나가 더티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 배경이 석연찮다. 러시아가 핵무기 등 더욱 강력한 전쟁 수단을 동원하기 위한 꼼수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거짓 깃발(False Flag)’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서방의 지원 의지를 약화시키려는 술책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평판을 깎아내리기 위한 술책일 수도 있겠다.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쿨레바 외교장관은 “더티봄을 사용할 건지 조사해보라”고 주장했다. 물타기 전략이든 뭐든 더티봄 사용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순 없다. 그게 실체적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민선 2기 체육회장 선거와 우려

12월 치러지는 민선 2기 지방체육회장 동시 선거가 2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전국 17개 시·도 체육회장 선거는 12월5일 동시에 치러지며, 228개 시·군·구 체육회장 선거는 22일 치른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출마 예정자들의 막판 저울질과 물밑 활동이 한창이다. 경기도체육회도 현 회장과 더불어 다른 후보들이 하마평에 오르며 분주한 행보를 보이고 있고, 시·군 체육회 역시 현역 회장이 대다수 출마할 전망인 가운데 이에 도전장을 내미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3년 임기에 그마저도 코로나19로 활동이 적었던 1기 때에 비해 민선 2기부터는 4년 임기에 선거 관리 역시 체육회 자체 선관위가 아닌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와 해당 시·군 선관위가 위탁해 공정성을 기하게 된다. 일부 규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현행 선거인단 구성 방식은 현역에 유리하다는 여론이다. ▶경기도체육회와 시·군 체육회는 바야흐로 선거 모드로 접어들었다. 아직까지는 정중동(靜中動) 행보지만 선거일이 점점 다가오면서 각종 설과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다. 대부분이 유력 후보끼리의 비방이나 지자체장과의 관계 부각, 내정설 등이다. ▶민선 1기를 경험한 도내 체육인들의 2기 선거를 바라보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체육회 예산 지원권을 쥔 지자체장의 재선이 5명에 불과한 데다 정당이 뒤바뀐 곳이 22명, 같은 당에서도 4명이 새 얼굴로 지방 정치 지형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1기에서 단체장과 체육회장의 정치 성향이 다른 체육회가 곤란을 겪는 것을 본 체육인들은 또다시 선거로 인해 체육계가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초래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지방 체육회의 정치적인 독립과 체육단체 자율성 확립’이라는 일부 위정자들의 허울 좋은 잘못된 선택(법 개정)으로 지방체육회가 또다시 시험대로 오른 상황 앞에서 기대감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지지대] 후진타오의 ‘엉거주춤’ 퇴장

한때는 차세대 지도자였다.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 살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주석 얘기다. ▶대표적인 기술관료(Technocrat) 출신 정치인이었다. 간쑤(甘肅)성 수력발전소 노동자로 시작해 공산주의청년단 서기에서 중앙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다. 국가부주석을 거쳐 중앙위원회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도 역임했다. 기술관료답게 과학발전론도 주창했다. ▶그랬던 그의 행보를 놓고 요즘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최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다. 폐막식 도중 갑자기 퇴장했는데, 이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나왔다. 움찔하고 주저하다 마지못해 수행원들에게 이끌려 나가는 모습이 포착돼서다. ▶건강 문제든, 정치적 제스처든 어색했다는 게 외신들의 지적이다.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판정을 받았다는 관측도 나왔다. 국내외 매체들의 카메라가 켜진 상황에서 사전에 짜인 정치적 행위였다는 추측도 제기됐다. ▶공산당은 유독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익숙하다. 그의 퇴장도 그런 측면에서 읽힐 수 있다. 문제는 그 쇼에 어떤 의미가 담겼느냐는 점이다. 철저하게 짜인 대본에 따라 연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까닭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허투루 하는 일은 없다”는 반응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시진핑 주석이 당 대회 개막식에서 후 전 주석 시절 정책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후 전 주석이 리커창(李克强) 등 그의 핵심 세력들의 최고 지도부 인선 탈락에 불만을 품고 벌인 일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가 공식적으로 물러난 시기는 2013년이었다. 이번 당 대회에는 당 원로 자격으로 참석했을 뿐이다. 아무튼 중국에선 후 전 주석의 엉거주춤이 한동안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장기 집권체제에 들어간 시진핑 주석의 미래도 딱히 다르진 않아 보여 하는 넋두리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접시깨기’ 행정

김국환의 노래 중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라는 게 있다. 30년 전쯤 노래다.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부엌으로 가서 놀자. (중략)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때만 해도 설거지하는 남편이 드물었는데, 부엌일을 함께하자는 말을 ‘접시를 깨자’고 표현한 것이다. 공직사회에 ‘접시깨기’ 행정이란 게 있다. 새로운 일에 손을 댔다가 실패해 문책을 당하느니,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는 공직자들의 보신주의를 지적하는 말이다. 일하다 실수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으니 접시 깨는 시행착오를 두려워 말고 적극적으로 일하라는 주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신년 업무보고에서 “설거지를 하다 보면 손도 베이고 그릇도 깨고 하는데 그릇 깨고 손 베일 것이 두려워 아예 설거지를 안 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2020년 1월 취임사에서 “일하다 접시를 깨는 일은 인정할 수 있어도, 일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끼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지난 7월 취임하면서 “일하다가 접시 깨는 행정은 용인하겠지만, 일하지 않고 접시에 먼지 끼게 하는 것은 참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일하다 접시를 깨더라도 도지사가 책임지겠다”며 적극 행정을 주문했다. 경기도 감사관실은 김 지사가 강조하는 ‘접시깨기’ 행정을 적용해 감사한다는 방침이다. 일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끼게 하는 식의 소극 행정은 문책한다. 반면 경제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위기 극복과 민생경제 회복 등 공공 이익을 위해 적극적 업무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는 면책 적용한다. 접시깨기 행정 주문이 이어지는 것은 공직자들의 복지부동(伏地不動) 행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접시를 깨뜨리자는 도지사의 적극 행정 주문이나 소극 행정 문책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정권마다 접시깨기 행정 주문이 많았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열심히 일하다 접시를 깨면 피부에 와 닿게 적극 보호해줘야 한다. 시늉만 해선 안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아동판 삼청교육대 ‘선감학원’

여명구는 1968년 7월 선감학원에 입소했다. 당시 열 살이었다. 원아대장에는 1972년 5월31일 무단 이탈로 제적 조치됐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는 선감학원을 탈출해 바다를 건너다 사망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50년 만에 밝혀낸 사실이다. 지난 20일 진실화해위가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에서 여명구라는 이름이 나오자 안영호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부회장은 눈물을 쏟았다. 안씨와 여명구는 초등학교 친구였다. 백발이 돼서 친구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진 것이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안산시 선감도에 설립됐다. ‘부랑아 교화’를 명분으로 8∼18세 아동·청소년을 강제 입소시키고 노역·폭행·학대·고문 등으로 인권을 유린한 수용소다. 이곳에선 1946년 경기도로 관할권이 이관돼 1982년 폐쇄될 때까지 지속해서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진실화해위는 최근 유해 발굴작업을 했다. 이곳엔 선감학원 관련 유해 150여구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위는 4천689건의 아동 수용기록을 확인했고, 피해 사망자 5명도 추가 확인했다. 위원회는 선감학원 사건은 “인간의 존엄과 신체 자유 등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며 정부와 경기도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선감학원이 문을 닫은 지 40년 됐지만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아직도 선감학원에 있는 악몽을 꾼다는 이들은 모두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피해자 생활·의료서비스 지원, 희생자 추모 및 기념사업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한 배·보상 특별법을 국회와 정부에 촉구하기로 했다. 선감학원 사건은 ‘아동판 삼청교육대’나 다름없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1980년대까지 잔혹행위가 있었다니 충격적이다. 늦었지만 국가폭력에 의한 대규모 아동인권유린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 다행이다. 더 세밀한 진실규명 작업과 함께 국가의 사과와 피해복구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피해자들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지구방어실험 그후

먼 우주에서 어떤 물체가 지구로 날아와 충돌한다? 생각만 해도 공포스럽다. 물리학적으로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엊그제 의미 있는 실험이 성공을 거뒀다. 외신에 따르면 지구와 부딪치는 코스에 있는 소행성에 우주선을 충돌시켰다. 해당 소행성의 궤도를 바꿔 지구와의 부딪침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인류 최초의 지구 방어 실험이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성과다. ‘쌍(雙)소행성 궤도수정 실험(DART)’이라는 명칭이 부여됐다. 해당 우주선과 맞짱(?)을 뜬 소행성의 이름은 ‘다이모르포스’였다. ▶NASA 측은 “해당 우주선이 (소행성의 공전주기를) 11시간55분에서 11시간23분으로 단축시켰다”고 발표했다. 특히 공전주기 단축 시간은 당초 NASA가 추정한 10분보다 긴 32분으로 측정됐다. 11시간23분은 지구 방어를 위한 분수령이었다. ▶우주선이 부딪친 소행성 다이모르포스의 크기는 지름 160m였다. 축구장 규모다. 다이모르포스는 그리스어로 쌍둥이를 뜻하는 디디모스를 11시간55분 주기로 공전한다. 앞서 연구진은 이번 충돌로 공전주기가 10분가량 짧아질 것으로 예상했었다. 디디모스와 다이모르포스는 지구에 4천800만㎞ 이내로 접근하는 지구근접천체(NEO)로 분류된다. 하지만 지구와의 충돌 위험은 없었다. ▶6천600만년 전 공룡시대가 마감된 원인도 소행성과의 충돌이었다. 이 같은 위험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한 전략은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우주선을 운동충격체로 활용해 충돌 코스 궤도를 바꿔 놓는 공정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으로 꼽히고 있다. “사랑으로 똘똘 뭉쳐 소행성과의 충돌 위험에서 인류를 지켜야 합니다”. 불현듯 앨버트 해먼드가 1972년 발표했던 ‘For the peace of all mankind’의 노랫말이 귓전에 맴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방탄과 예의 사이

‘나라(國)를 위한 단 감(枾)은 없었다.’ 국정감사 얘기다. 예상대로 경기도민과 경기교육 가족, 경기경찰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제는 도지사도 아닌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위한 ‘단일 국감’이라는 오명만 남겼다. 오죽하면 지난 14일 국토교통위원회에 이어 18일 진행된 행정안전위원회 경기도 국감을 ‘李차 대전’이라고 명명했을까. 또 행안위 국감에서 김동연 도지사는 “왜 자꾸 이재명 얘기만 하냐. 난 김동연이다”라고 외쳤을까. 예상은 한 번쯤 어긋나서 경기도의 발전과 안전, 교육의 초석을 삼는 공론화의 장이 되면 안되는 것이었을까. 답답할 노릇이다 ▶무엇인가, 상황 파악도 못한 채 대화를 이어 가다 보면 “쟤는 왜 이렇게 감이 없냐”라는 말을 하곤 한다. 시대적 흐름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각 정당의 논리만 내세우는 ‘감 떨어지는’ 의원들의 수준은 현장에 있는 기자들뿐만 아니라, 유튜브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국감을 시청하는 국민들에게 실소를 자아내는 것도 모자라 짜증만 유발할 뿐이었다. 수원지검 국감을 지켜보던 후배 기자가 계속 어이없는 웃음을 짓길래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국감이 아니라 코미디 프로 같다”였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라면 예의라도 지켰어야 했다. 맹탕 국감,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방탄 국감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감사 시작 20분 만에 감사 중지를 띄우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논리만 내세우다 언성을 높이면 정회다. 더욱 가관인 것은 피감 기관이 바뀌었는데 이전 기관에서의 위원장 발언에 항의하며 시작 전에 민주당 의원들이 다 퇴장해 버렸다는 것이다. 경제는 어렵고, 국민 안전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이다. 교육은 다시 바로잡아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이를 공론화하라고 세금 줘 가며 일하라고 선출했더니 정쟁만 난무하는 감 떨어지는 판만 만들고 떠났다. 그걸 알아야 할 것 같다. 1년5개월 후 국민들은 냉정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을 말이다. 김규태 사회부장

[지지대] 여전한 한국사 왜곡

장난감이 없는 나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한국을 이렇게 소개했었다. 고(故) 김수영 시인도 그렇게 한탄했었다. 1960년대 얘기다. ▶한국서 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비유도 있었다. 지금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K-팝과 영화 등으로 위상도 높아졌다. ▶최근 세계인들이 한국을 제대로 봐주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세계 유명 영어사전 검색 결과다. 콜린스나 아메리칸 헤리티지 등의 한국사 왜곡이 심각하다고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밝혔다. ▶최근 이들 영어사전 15권에서 ‘Korea’를 입력한 뒤 나오는 검색 결과를 분석한 결과 15권 중 11권이 동해(East Sea)를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했다. 동해 병기 표기가 20년 전 3%에서 현재 40%로 늘었지만 영어사전에선 여전히 동해는 일본해다. ▶역사 왜곡은 더 심각하다. 아메리칸 헤리티지는 한국 역사가 기원전 12세기부터 시작한다고 기록했다. 콜린스 영어사전은 “1876년 이전에는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기술했다. 다른 영어사전에선 한국 역사를 일제강점기부터 서술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아예 국가가 없었던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높다. ▶라임존 닷컴 영어사전 등은 ‘Korea’의 한국어 이름을 ‘Choson’이라고 표기한다. ‘Daehanminguk’(대한민국) 또는 ‘Hanguk’(한국) 등으로 표기해야 한다. 반크 관계자는 “영어사전의 한국사 왜곡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영어사전에 단어를 실을 때 올바른 정보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아 비슷한 오류가 계속 검출되고 있다. 한류열풍으로 ‘Korea’를 검색하는 횟수도 늘고 있다. 잘못된 정보가 제공되면 그동안 쌓은 위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지구촌에서 한국 역사 왜곡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가.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마약과의 전쟁

음식이나 물건을 홍보할 때 ‘마약’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 마약 김밥·마약 떡볶이·마약 토스트가 있는가 하면, 마약 베개·마약 매트리스도 있다. 중독성 강한 맛이나 큰 만족감을 마약에 빗댄 듯하다. 마약을 좋게 표현했지만 그렇게 가볍게, 함부로 사용할 단어는 아니다. 마약 중독과 범죄가 급증해 심각한 사회 문제다. 마약에 취한 60대 딸이 80대 노모를 둔기로 살해하려 한 사건, 마약을 투약하고 대낮에 길 한복판에서 지인을 살해한 사건 등 강력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유엔은 마약류 사범이 10만명당 20명 미만일 때 마약 청정국으로 지정한다. 한국은 2016년 25.2명으로, 이미 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지난해엔 인구 10만명당 마약범 수가 32명으로 늘었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1년 마약류 범죄 백서’를 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은 1만6천153명에 이른다. 올해 1~7월 통계는 1만575명으로 전년 동기(9천363명)보다 12.9% 증가했다. 지난해 압수된 마약류는 1천295.7㎏에 달한다. 2017년 154.6㎏의 8배다. 마약의 대중화 속에 10대, 20대 젊은층의 마약범죄도 크게 늘었다. 10대의 경우 5년 전보다 4배나 늘었다. 대도시 등 일부에서만 유통되던 마약이 지방과 학생, 회사원, 주부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관물대에 필로폰을 보관해온 병사가 적발되는 등 군부대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SNS를 통한 마약판매, 가상화폐 등을 통한 대금결제 등 마약유통이 비대면으로 이뤄지면서 일반인 마약사범이 급증했다. 피자 한 판 값으로 SNS에서 마약을 살 수 있으니 마구 퍼지는 추세다. 검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특별수사팀을 설치, 유통조직을 뿌리 뽑아 마약 청정국 지위를 되찾겠다고 밝혔다. 강력한 수사와 엄한 처벌 없이는 마약 확산을 막을 수 없다. 여러 부처가 공조하는 대응책도 절실하다. 마약류 반입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는 관세청에 마약전담국을 신설하고 전문인력을 키워야 한다. 텔레그램이나 다크넷 등 온라인 마약 유통을 근절할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김문수의 극단 발언

신영복(1941~2016)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으로 꼽힌다. 개인에 따라 견해차가 있겠지만 그를 존경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숙명여대 교수를 지내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아 복역하다 1988년 특별 가석방돼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했다. 출소하던 해 20년간 옥중살이를 하며 썼던 편지와 글을 모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했다. 이 책은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 신영복이 소환됐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지난 12일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라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발끈하면서 환노위는 파행됐고, 결국 김 위원장은 퇴장당했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은 13일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과거 “문재인은 총살감”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여전히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제도권에서 멀어진 이후 SNS 공간에서 극단적 정치성향으로 진영 갈등을 증폭시키는 언행을 계속했다. ‘민주노총은 김정은 기쁨조’, ‘쌍용차노조는 자살 특공대’ 등의 색깔론과 반노조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다. 본인은 ‘소신 발언’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과격한 언행과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이 많다. 개인의 사상은 자유지만 공직자라면 때와 장소, 발언 수위 등을 가려야 한다. 특히 정부와 기업, 노동계의 첨예한 대립을 조정하고 타협을 이뤄내야 하는 경사노위 수장이라면 누구보다 절제와 균형을 갖추고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 경사노위는 노사정 대표가 모여 노동정책과 노사관계 등을 논의하는 기구다. 김문수 위원장 인선은 노동현장 경험과 국회의원·도지사를 지낸 경륜 등을 살려 노사정(勞使政) 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식에서 “겸허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아가겠다”고 했지만 또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소신을 앞세워 과격한 발언을 이어가며 한쪽으로 치우치면 대타협은커녕 갈등과 분열의 골만 깊어진다. 김 위원장은 말조심에 책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제비, 꼬까참새, 쑥새, 노랑턱멧새, 멧새.... 이들 조류의 공통점은? 우리 곁을 떠나는 새들이다. ▶지구촌 생물종 다양성 감소는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물론 그 까닭은 환경파괴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에서도 새들의 감소가 급속도로 진행 중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의 발표를 통해서다. 최 교수는 13일 열린 세계자연기금(WWF)의 지구생명보고서 발표회에서 이렇게 주창했다. ▶그는 보고서를 통해 1987년 10㏊당 2천289마리씩 발견됐던 제비가 2005년 들어 같은 단위면적에 22마리씩밖에 보이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18년 새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특히 제비 개체 수 감소에 대해선 이들의 주된 먹이이자 생태계 기반을 구성하는 곤충이 그만큼 감소했음을 보여준다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의 변화를 살펴보면 생태계 전체 다양성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국내에서 서식 중인 일부 조류의 개체 수 급감은 최 교수 등이 2020년 5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확인된다. 논문에 따르면 1970년대 연구 목적으로 4만6천826마리씩 포획했던 꼬까참새는 2010년을 전후해 2천422마리밖에 잡히지 않았다. 포획량이 94.8% 줄어든 것이다. 꼬까참새처럼 참새목 되샛과 조류인 쑥새도 같은 기간 포획량이 6만1천55마리에서 2천572마리로 95.8% 줄었다. 흔히 볼 수 있는 텃새인 노랑턱멧새와 멧새 등도 각각 연간 1.82%, 2.99%씩 감소했다. ▶최 교수는 “개체 수가 많아 생태계를 지탱해주는 흔한 종의 개체 수 감소는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언제까지 제비들이 남아 있을까”. 황지우 시인이 40여년 전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통해 읊조렸던 절규가 아직도 묵직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정쟁 국감’ NO, ‘민생 국감’ YES

최근 ‘정쟁 국감’을 진행하는 거대 양당의 행태가 심히 못마땅하다. 국정감사는 국회가 국정 전반에 관한 조사를 행하는 것으로 본연의 입법 기능 외에 정부를 감시 비판하는 기능을 하자는 의미에서 출발했다. 헌법과 ‘국정감사및조사에관한법률’에서 정하는 ‘국정’의 개념은 ‘의회의 입법작용뿐만 아니라 행정·사법을 포함하는 국가작용 전반’을 뜻한다. 대상 기관은 국가기관, 특별시 광역시도, 정부투자기관, 한국은행, 농수축협중앙회, 그리고 본회의가 특히 필요하다고 의결한 감사원의 감사 대상 기관이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오는 14일 국토교통위원회와 18일 행정안전위원회로부터 국정감사를 받는다. 지난해 경기도 국감은 이른바 ‘대장동 국감’이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저격하고 민주당 의원들은 이 지사를 보호하는 모습의 국감이었던 것이다. 올해 국감도 여야만 바뀌었을 뿐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서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 처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을 공격 대상으로 삼을 듯하다. 정작 국감을 받게 될 김동연 경기지사는 자신과 관계없는 사안에 대해 감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의 이 대표를 향한 공격에 대해 김 지사가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지사가 이 대표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적극적 방어냐 소극적 방어냐도 관전 포인트다. 여당과 야당의 정쟁이 없는, 도민의 삶과 직결되는 ‘민생 국감’이 되는 걸 바라는 것은 사치일까. 이번 경기도 ‘국감’은 여야의 ‘정쟁 국감’이 아닌 지방 행정기관을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하는 모범적 ‘민생 국감’이 되길 기대해 본다. 최원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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