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성공의 열쇠는 ‘멘털’

스포츠는 참 오묘하다. 환경과 지도자에 따라 좋은 기량의 선수가 부진에 빠지기도 하고, 다소 기량이 뒤떨어진 선수가 좋은 선수로 성장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타고난 신체조건과 운동 능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선천적인 소질의 유무를 떠나 노력없이 성공한 선수는 없다. ‘피겨 여왕’ 김연아는 수천번의 점프와 좌절을 딛고 ‘필살기’인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 반)을 완성시켜 한국 피겨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일궜다. ‘월드 스타’ 손흥민은 오른발잡이지만 지금은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어려서부터 하루 수천개씩 양발 슈팅을 통해 단련한 결과다. ▶프로선수는 자신의 재능이나 기술을 바탕으로 활약하는 직업선수다. 최근에는 아마추어에도 거액의 계약금과 연봉을 받는 세미 프로화된 선수가 많다. 아마추어 선수들의 세미 프로화 경향은 이제 ‘운동 하나만 잘해도 평생을 먹고살 수 있다’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1960~80년대 배고파서 운동을 한 ‘헝그리 세대’들과는 달리 요즘에는 배고파서 운동을 시작한 선수는 거의 없다. 오히려 돈 없으면 운동도 못하는 세상이 됐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일선 지도자들은 요즘 선수들의 정신력에 대해 지적한다. 고른 영양 공급을 받고 신체 조건은 서양 선수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멘털은 오히려 약해졌다는 진단이다. ▶취재 현장에서 보면 체력적으로나 그동안의 과정을 볼때 분명 성공 가능성이 높은 선수가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악조건을 딛고 부단한 노력을 통해 성공한 선수들도 많다. ▶운동선수에게 있어 좋은 여건에서 지도력이 뛰어난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환경과 지도자는 조력자일 뿐이다. 성공의 열쇠를 쥔 사람은 선수 자신이고, 열쇠란 바로 멘털임을 전문 선수라면 깨쳐야 한다. 프로정신 없이 성공은 요원하다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지지대] 중국의 한국어 사용금지

중국의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이다. 북한 국호(國號) 에 들어간 ‘인민’이란 단어 탓에 국내에선 여간해선 잘 쓰지 않는다. 역대급 기피증이 어디 이 단어뿐이겠는가. ▶‘인민’이란 낱말은 분단 이전까지만 해도 스스럼 없이 통용됐었다. ‘동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벗’과 함께 토속어였다. 그런데 북한정권이 호칭으로 사용한 뒤 금지어가 됐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유물이 된 지도 70년이 넘었다, ‘인민’과 ‘동무’를 자유롭게 쓰는 나라들의 맹주국이 중국이다. ▶사회주의 이념의 근간은 평등이다.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할 때 마오쩌둥(毛澤東)은 “민족 구분 없이 모든 ‘인민’이 사회주의의 이념 아래 평등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는 소수민족의 언어 존중도 국가정책으로 약속했었다. 이념상으로는 얼마나 근사한 정강(政綱)인가. 무릇 정강은 정부 또는 정당 같은 정치 집단이 내세운 정책의 큰 줄기다. ▶그런데 건국 초기부터 인종차별에 버금가는 반전이 일어났다. 그해 겨울 우리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신분증을 만들면서 민족 표기를 의무화했다. 지금도 중국인들의 신분증 오른쪽 맨 윗부분에는 민족 표기란이 있다. 중국 동포들의 경우 ‘차오셴쭈(朝鮮族)’의 두 번째 음절인 ‘선(鮮)’자가 선명하다. 그런 중국이 서방국가들의 인종차별을 규탄하고 있다. 아이러니의 극치다. ▶중국이 또 모순투성이 정책을 발표했다. 중국 옌볜( 延邊) 조선족자치주가 중국어를 우선으로 삼는 문자표기규정인 ‘조선 언어문자 공작조례 실시세칙’을 공포, 시행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해당 세칙은 국가 기관, 기업, 사회단체, 자영업자들이 문자를 표기할 때 중국어와 한글을 병기하도록 명시했다. ▶중국의 이 같은 정책기조는 새삼스럽지 않다. 앞서 2019년 홍콩의 반정부 시위를 겪고, 독립노선을 강화하는 대만과의 갈등이 고조하자 소수민족 거주지역 수업을 중국어로 통일하도록 했다. 교과서도 단계적으로 국가 통일편찬 서적으로 교체 중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최근 “민족 분열의 독소를 숙청해야 한다”며 소수민족의 언어 사용을 금지했다. 앞으로 중국에서 한글과 한국어 등을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할 수도 있다. 추석을 앞두고 중국을 똑바로 응시해야 하는 명쾌한 까닭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진화된 n번방

2년 전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n번방’ 사건은 끔찍했다. ‘n번방’의 주범 조주빈은 아동·청소년을 협박해 만든 성착취 영상을 텔레그램으로 유포하고 돈을 챙겼다. 악랄한 범죄의 대가로 그는 징역 42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조주빈은 “멈출 수 없던 악마의 삶을 멈춰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최근 ‘제2의 n번방’으로 불리는 성 착취물 유포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 ‘엘’은 자신을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이라고 사칭하며 피해자에게 접근, 대화방으로 유인해 성 착취물을 요구했다. ‘엘’이 이렇게 만든 영상은 350여개에 이른다. 확인된 피해자 6명은 모두 미성년자였다. n번방 유사 사건의 범행은 더 대담하고 교묘해졌다. 착취물을 제작하는 범죄자들은 여성이나 신뢰할만하고 친밀한 느낌을 주는 이를 사칭해 아동·청소년들에게 접근했다. 경찰·검사 등 수사기관 직원뿐만 아니라 쇼핑몰 최고경영자, 모델, 유학생 등 사칭 대상도 다양했다. 국회는 2020년 n번방 사건을 근절하겠다며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인터넷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을 확인 즉시 삭제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문제는 범행 창구가 된 텔레그램 대화방은 익명 채팅방이 아닌 ‘사적 대화방’으로 분류돼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텔레그램은 해외 서버에 기반을 둬 수사 협조를 받기도 어렵다. ‘n번방’이나 ‘박사방’ 등의 성 착취물 유통 창구 역할을 한 텔레그램을 제재하지 못하는 문제는 법 시행 초기부터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n번방 방지법’으로 텔레그램을 통한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진단했다. 성 착취물 범죄의 온상이 된 텔레그램에 대한 근본 대응책이 필요하다. 경찰의 수사기법 보완과 강화로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온라인 수색’ 도입 등 다각도의 노력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BTS 병역특례

조선시대 국방의 의무는 16~60세 남성들이 짊어졌다. 왕의 평균수명이 47세였고, 일반 백성도 60세를 넘기면 잔치를 벌였으니 평생 병역의무를 져야 했다. 그때에도 군역과 관련된 각종 논란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군역 관련 기록이 4천건이 넘는다. 백성들은 각종 편법과 불법으로 군역을 면제 받으려 했다. 스님이 되면 면제 받을 수 있어 1483년 전국의 승려가 4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학교에 다녀도 면제돼 성균관도 비리의 온상이 됐다. 우리나라에서 병역 문제는 매우 민감하다. 헌법에 국방의 의무가 명시돼 있지만 군대에 안 가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다. 유명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중에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이 많아,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만 군대 가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컸다. 군대 다녀와야 사람된다는 이도 있지만, 상당수는 안 갈 수 있으면 안 가는게 좋다고 말한다. 20대 남성에게 군대 문제는 큰 스트레스다. 최근 BTS(방탄소년단)의 군 입대를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다. 병역법에 따르면 국위선양 및 문화창달에 기여한 예술·체육 특기자는 군 복무 대신 예술·체육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다. 축구선수 손흥민은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이유로,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국제 쇼팽 피아노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해 군대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BTS는 군대에 가야 할 상황이다. 대중문화예술 분야는 병역특례 대상이 아니다. 국가에서 훈·포장을 받아도 병역 연기에 그쳐 형평성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쇼팽 콩쿠르 1위는 국위 선양이고, 빌보드 차트 1위는 국위 선양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BTS가 병역 특례를 받으려면 병역법 시행령에 대중문화를 추가해야 한다. BTS가 세계 대중음악계에서 쌓아 올린 위상과 국가 명예를 높인 점을 감안해 특례를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에 국방부가 ‘국민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 하겠다’는 식으로 발표했다. 병역의무를 여론조사로 하겠다는 것은 난센스다. 필요하면 신중한 논의를 거쳐 국회에서 병역법 시행령을 개정하면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새 지방 정부와 ‘협치’

우리는 올해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등 치열한 선거를 두 번 치러냈다. 선거 과정에서는 서로 상대방을 검증 등의 이유로 비판하면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어쨌건, 결국 승자와 패자는 나뉘었다. 그로부터 벌써 대통령 선거는 6개월, 그리고 지방선거는 3개월이 지났다. 당선자들은 취임한 뒤, 자신의 정치적 철학을 펼치고 시민들에게 약속한 공약을 추진하기 위해 조직 안팎에 속속 인사를 하고 있다. ‘인사가 만사다(人事萬事)’라는 말이 있듯, 이들은 신중한 인사를 단행하며 지속적으로 고민을 하고 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지난달 마지막 날 인천지역의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거대한 숙제를 내놓으면서 민선 8기의 큰 첫발을 내딛기도 했다. 10명의 군수·구청장들도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정책을 속속 마련하고 있다. 새로운 지방정부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는 지금, 이 같은 숙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협치’다. 협치는 쉽게 힘을 합쳐 잘 다스려 나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결정하기에 앞서 협의와 공감대 조성을 먼저 하겠다는 것이다. 또는 사전적 의미로 지역사회에서 국제사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공공 조직의 업무를 관리하기 위해 정치·경제·행정적 권한을 행사하는 국정 관리 체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선거 과정에서 모든 정치인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바로 ‘시민을 위해’이다. 자신을 위하지 않고 시민을 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시민을 위해 협치를 시작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다. 지금 모습을 드러내는 정책은 협치를 통해 점점 나은 방향으로 보완 등이 이뤄진다면, 진정 시민을 위한 정책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치와 함께 새출발을 하는 지방정부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지대] 라디오의 부활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습니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 영국 뉴웨이브 밴드 버글스의 ‘Video kill the Radio Star’ 노랫말이다. 발표한 연도가 1979년이니 벌써 43년이 지났다. ▶오디오시대의 종말이 메시지였다. 실제로 이듬해부터 국내에도 컬러 TV가 보급되면서 라디오는 쇠락의 길을 걸어갔다. 신문 기사보다는 TV 뉴스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르면서 또 다른 변화가 일고 있다. 스마트폰이 TV를 갈아 치우고 있어서다. 주말의 거실 모습이 이를 입증해준다. 기성세대는 고집스럽게도 거실에서 TV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MZ세대는 스마트폰으로 관심 있는 콘텐츠들을 즐긴다. TV 화면을 바라보는 기성세대가 답답해보일 정도다. ▶최근 스마트폰을 일상생활의 필수품으로 인식하는 국민이 70%를 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전국 4천236가구의 만 13세 이상 남녀 6천834명을 방문해 면접 조사한 결과다. 스마트폰을 일상생활 필수매체로 선택한 응답자는 70.3%였다. 2016년 조사 결과(55.5%)에 비해 14.8%포인트 늘었다. 반면 TV를 필수매체로 선택한 응답자는 27.1%에 그쳤다. 2016년에 비해 11.5%포인트 줄었다. ▶연령별로는 10대 중 TV를 필수매체로 선택한 비율은 0.1%에 불과했고, 20대와 30대 등 각각 4.5%와, 9.2% 등으로 10%를 밑돌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스마트폰을 선호하는 10대는 96.9%였다. 20대와 30대도 각각 92.2%, 85.1%로 집계됐다. 40대와 50대 중에서도 스마트폰을 선호하는 응답자는 각각 84.3%, 70.4%로 나타났다. TV 선호(12.6%, 29.1%)를 압도했다. ▶그랬던 라디오가 역주행하고 있다. TV에 자리를 내줬던 라디오가 다시 아날로그 감성으로 되살아 나고 있어서다. 반세기 전 초라했던 모습이 아니라 당당하게 말이다. 문명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그 주기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스마트폰이 또 어떤 기기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다. 그때쯤이면 TV도 늠름하게 부활하지 않을까. 라디오처럼 말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북극권 특사

북위 66.5도 위쪽을 북극권이라고 부른다. 하지(夏至) 때 태양이 지지 않는 백야(白夜) 현상과 동지(冬至) 때 태양이 뜨지 않는 극야(極夜)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북극권은 대부분 바다(북극해)다. 사람이 살기 어려워 주목받진 못했지만 현대에 들어와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북극권을 경유하면 다른 위도대로 가는 것보다 훨씬 거리가 짧다. ▶미국과 소련이 북극권 선점을 위해 벌였던 군사경쟁은 치열했다. 이곳을 확보하면 북반구 모든 지역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어서다. 석유·천연가스·우라늄 등 막대한 자원 매장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이 북극권에 특사를 신설한다고 외신이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국무장관 조언 등을 거쳐 북극권 특사를 임명해 기존의 북극권 조정관직을 격상하겠다는 계획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 및 북극권 동맹과 파트너와의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지난 1993년부터 북극권 현안에 깊게 관여해 왔다. 이번 조처는 패권다툼이 가열되고 있는 북극권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최근 몇년 새 빙하가 녹으면서 새로운 항로가 개척됐다. 이에 따라 경제는 물론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전략적 가치가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도 나섰다. ‘근(近)북극권 국가’를 자처하며 연구기지를 잇달아 세우는 등 영향력 확대를 모색 중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과 북극권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북극권을 남의 나라 얘기로만 외면할 수 없다. 지구촌은 시시각각으로 좁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여년 전 조선 후기 효종의 북벌론 명분은 멸망한 명나라 원수 갚음이었다. 관념만 있던 비생산적인 북벌론이었다. 앞으로는 실용주의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북극권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위해서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코딩 교육

디지털 문화가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창의력 사고, 일명 컴퓨팅적 사고(Computational Thinking, CT)를 기르기 위한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그 중심에 ‘코딩 교육’이 있다. ‘코딩(coding)’은 어떤 명령을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형태의 언어인 코드를 입력해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과정이다. 스마트폰, 자동차, TV, 컴퓨터 등과 같은 기기에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프로그램이 탑재돼 있다. 이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려면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명령해야 하는데, 이때 쓰이는 컴퓨터 언어가 코드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지능형 로봇, 빅데이터 분석 및 활용 등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변하는 모든 것이 정보통신기술(ICT)을 바탕으로 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구현된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영국, 일본, 이스라엘 등 해외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코딩을 정규 교육과정에 편입시켜 교육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초·중·고교에서 코딩 교육을 의무화했다. 정부가 2026년까지 ‘디지털 인재 100만명 양성’을 목표로 현재 초·중학교에서 배우는 정보교육 시간을 2025년부터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하는 능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보고,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교육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정보교육 시간을 각각 17시간, 34시간에서 2025년부터 34시간, 68시간으로 확대한다. 또 그동안 초·중학교 ‘코딩’ 과목은 기초적 내용만 다뤘는데 AI나 빅데이터 관련 산업에서 활용할 수 있게 수준을 높일 계획이다. 코딩 교육 필수화 소식에 ‘코딩 사교육 열풍’을 우려하고 있다. 코딩 교육을 강화한다면서 교원 확보 계획은 없어 부실한 교육이 ‘코포자’(코딩을 포기한 사람) 양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코딩도 평가를 하고 ‘1등급을 맞아야 한다’는 식으로 견인하면 학생들이 흥미를 잃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밀어붙이기식 보다 교육현장과의 협의, 철저한 준비 등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한반도 뿔공룡 화석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일대는 원래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갯벌이었다. 1994년 바다를 가로막은 시화호 방조제가 생기면서 육지가 됐고, 지금은 드넓은 초원이 됐다. 간석지 조성으로 갯벌에 바닷물이 빠지면서 1억 년 전 백악기시대에 살았던 공룡알 화석이 발견됐다. 갯벌 속에 잠들어 있던 공룡알 화석은 200여 개가 확인돼 한반도가 세계적인 공룡알 화석지로 알려지게 됐다.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지역은 중국·몽골 등이 대부분으로 이곳처럼 많은 화석이 한꺼번에 발견된 것은 드문 사례다. 여의도 면적의 2배에 이르는 15.9㎢의 간석지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지금도 발굴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갯벌 속에 더 많은 화석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성 공룡알 화석산지가 특히 주목 받는 건, 한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뿔 달린 공룡(角龍)’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2008년 화성시에서 나온 각룡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의 골격 화석을 최근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했다. 공룡 골격 화석이 천연기념물 지정 절차를 밟는 건 처음이다. 이 화석은 공룡알 화석산지 방문자센터에 전시 중이다. 뿔공룡 화석은 당시 화성시청 공무원이 전곡항 방조제 주변을 청소하던 중 발견했다. 몸길이가 약 2.3m로, 약 1억2천만년 전 중생대 전기 백악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엉덩이뼈와 꼬리뼈, 양쪽 아래 다리뼈, 발뼈 등 하반신 골격 구조를 제자리에 갖춘 모양새로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남은 골격으로 미뤄 두 다리로 걸어 다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재위원인 이융남 서울대 교수가 후속 연구를 통해 한국에서 처음 발견된 새로운 종류의 각룡으로 국제 학계 공인을 받았다. ‘화성에서 발견된 한국의 뿔공룡’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 학명 ‘코리아케라톱스 화성엔시스’가 붙여졌다. 이 교수는 화석의 골격학 조직 연구를 통해 공룡이 대략 여덟 살에 숨졌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멀고 먼 옛날에 뿔 달린 공룡이 풀밭을 거닐었다는 상상만 해도 흥미롭다. 화성시는 뿔공룡 화석과 공룡알 화석산지를 자연학습장이자 관광상품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밀크플레이션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 브레드플레이션(Breadflation).... 점심값 인상과 빵값 오름 등을 일컫는 신조어(新造語)들이다. 요즘 언론에 헤드라인으로 심심찮게 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밀크(Milk)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인 밀크플레이션(Milkflation)까지 등장했다. 점심값이나 빵값에 우유값 등 별의별 것들이 다 오르고 있다. ▶낙농진흥회는 지난 1일부터 우유의 원재료인 원유(原乳:가공처리 되지 않은 우유) 가격을 1ℓ당 926원에서 947원으로 21원(2.3%) 올렸다. 이어 서울우유협동조합이 흰 우유 가격을 1ℓ당 평균 5.4% 인상하면서 매일유업과 남양유업도 가격 인상대열에 합류했다. 우유값이 물가(아이스크림, 커피, 빵값) 인상을 불러오고 있는 건 이미 오래됐다. 먹거리 전반으로 확산되는 건 시간문제다. ▶밀크플레이션의 신호탄은 원유가격의 인상이었다. 그리고 우유값 상승으로 이어졌다. 우유와 버터가 들어가는 빵과 과자 등의 가격도 밀어 올렸다. 이 같은 상황은 이미 ‘현재완료형’을 지나 ‘과거완료형’이 됐다.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가격결정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지만 낙농가들의 반발에 가로막힌 상태다. ▶더욱 심각한 건 코로나19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이 먹을거리 인상으로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커피나 베이커리업계의 제품 가격 인상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 커피 원두 가격이 상승한 데다 우유 외 생크림 등 유제품 가격도 오르고 있다. ▶날이 밝으면 물가가 뛴다. 주부들은 가장의 넉넉찮고 빠듯한 생활비에 한 푼이라도 더 아껴야 한다. 그런 주부들의 이마에 주름살이 늘어 나고 있다. ▶직장인들도 점심나절에 짜장면 한 끼 먹으면서도 눈을 의심해야만 한다. 코로나19로 서민들의 삶만 팍팍해지고 있다. 이미 예견됐던 포스트 코로나의 아주 조그마한 일부일 뿐이다. 필자의 지적이 너스레인지 아닌지는 지금 당장 시장에 나가 보라.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최초와 단독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최초’는 존재한다. 그리고 그 처음을 이룬 사람 또는 단체 등을 기리기 위한 한 줄은 곧 ‘역사’가 된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예로 들어보자.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Percival Hillary)는 뉴질랜드의 등산가이자 탐험가다. 1953년 영국의 에베레스트산 원정대원으로 선발돼 그해 5월29일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에베레스트산을 처음으로 올랐다. 그 공로로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세계 최고봉 ‘최초’ 등정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탐험가 중 한 사람으로도 선정됐다. 이후 전 세계의 무수한 탐험가 및 산악인들은 그들만의 ‘단독’ 원정대를 꾸려 세계 최고봉에 올랐지만 네팔 정부 또는 중국 정부의 공식 등정서를 받을 뿐 역사에 길이 남는 영광을 누리진 못했다. 역사가 알아주는 그것이 ‘최초’와 ‘단독’의 차이다. ▶10년 차 이상 된 기자들은 사실 젊음과 바꾼 인맥으로 하루 하루를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과 친구 대신 출입처 사람들, 정보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친분을 맺어 기사의 토대가 되는 첩보 또는 정보를 알게 된다. 그리고 팩트 체크를 해 기사를 완성한다. 숟가락만 얹어 가져갈 수 없는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예전에 필자가 사건 기자를 했을 때만 해도 타 언론사의 최초 보도는 소위 ‘물 먹었다’라는 표현으로 대변돼 선배들에게 깨지며 단련된 뒤 또 다른 최초 보도를 하기 위한 초석이 됐다. 하지만 요즘은 다른 사람의 노력의 결실을 인터셉트(intercept·가로채기)해 마치 자기들 것인 양 포장하는 기술자들이 많이 늘었다. ▶‘수원 세 모녀’ 비극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대통령까지 특단의 조치를 주문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경기일보의 기자들이 ‘최초’ 보도했다. ‘최초’ 보도가 없어 그냥 단순 변사 사건으로 처리됐다면 이들의 어려움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고, 사각지대에 선 또 다른 이들을 위한 대책도 마련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최초’는 인정받아야 한다. 경쟁에도 상도덕은 있다. 김규태 사회부장

[지지대] 남순강화

키는 작았지만 넘어지면 반드시 일어났다. 불굴의 지도자였다. 그리고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곧잘 ‘작은 거인’ 또는 ‘오뚝이’ 등으로 불렸다. 실용주의자였던 중국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얘기다. ▶그는 마오쩌둥(毛澤東)과는 여러 측면에서 달랐다. 개혁개방정책을 펼쳤다. 과감했다. 건국 이후 닫았던 국가의 문도 활짝 열었다. 그런 그에게 어려움이 닥쳤다. 첫 번째는 1988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시위였다. 두 번째는 이듬해 소비에트연방(소련)의 붕괴였다. 반대파들이 사회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공격했다. 그는 반격에 나섰다. 남순강화(南巡講話)는 그렇게 시작됐다. 1992년 1월18일부터 2월22일까지 이어졌다. ▶그가 북쪽이 아니라 남쪽을 택한 건 ‘신의 한 수’였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전통적으로 북쪽에는 보수세력들이 득세하고 있었고, 남쪽에선 개방 성향이 짙었기 때문이다. 우한, 선전, 주하이, 상하이 등 남쪽의 대도시들을 돌면서 개혁개방의 당위성을 주창했다. 그때의 골자가 “사회주의도 시장이 있어야 한다”였다. ▶그해 오늘 중국은 우리와 수교조약을 맺었다. 이후 공식적으로 숱한 국내 기업들이 중국으로 건너갔다. 대륙은 곧 기회의 땅이었다. 우수한 노동력에 저렴한 인건비 등이 포인트였다. 중국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세금면제 등도 한몫했다. 당시 인천항에서 출발하는 카페리는 물론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 개설도 잇따랐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가 없었다면 한국과의 수교도 어려웠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늘날 우리의 전체 무역량의 40%대를 차지하는 대(對)중국 무역체계는 덩샤오핑의 선물이었다. 그렇게 강산이 세 번 바뀌었다. ▶중국도 많이 변했다.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 고수 비용은 늘어나는 반면, 부동산 침체 등에 따른 세수 감소로 재정수입이 급감하고 있다. 일부 지방정부는 대중교통 운영을 중단하고 공무원들의 월급도 체불하고 있다. 중국의 그늘이다. ▶한중수교 이후 30년 동안 한국의 전체 수출 규모는 9배 늘었지만 대중국 수출은 160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단 우리 입장에선 성적이 그리 나쁘진 않다. 앞으로 30년 후 한중수교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모래주머니’ 규제

규제 개혁은 역대 정부마다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핵심 과제다. 불필요한 규제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대중 정부는 ‘규제 기요틴(단두대) 제도’를, 노무현 정부는 ‘규제 총량제’를 도입했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고 했고, 박근혜 정부는 규제를 ‘쳐부숴야 할 원수’, ‘암 덩어리’, ‘손톱 밑 가시’에 비유하며 단호함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도 ‘붉은 깃발’을 언급하며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규제 개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했지만 말만 요란했다. 국회 입법 실패, 관료사회의 경직성, 이해 당사자의 반발 등으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도 규제를 철폐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기업의 해외시장 도전을 ‘국가대표’에 빗댄 뒤 “(지금까지는) 모래주머니 달고 메달 따오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비유했다. 취임 후에도 “우리 기업이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뛰기 어렵다”면서 과감한 규제 철폐를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경제 자유도는 선진 경제권 중 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캐나다 프레이저연구소에서 발표하는 경제 자유도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 자유도(75.4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2위였다. 경제 자유도가 높을수록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 삶의 질도 향상된다. 한국의 경제 자유도가 낮다면 민간경제를 제약하는 정부 개입이나 규제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지난 17일 열린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에서 130여명의 중소기업 대표들이 “모래주머니는 전혀 줄지 않았다”고 한목소리로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날 중소기업계는 229건의 규제 해소 과제를 정부에 건의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최근 기업 경영활동에 걸림이 된다는 지적을 받는 ‘모래주머니’ 규제 120건을 발굴해 정부에 개선을 건의했다. 윤석열 정부에선 규제개혁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노란봉투법

21대 국회에서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안)’이 새롭게 발의된다. 노동조합의 파업 등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 사측이 노조에 청구하는 손해배상 등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노란봉투법은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으로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노조원을 돕기 위해 시민단체들이 노란봉투에 성금을 담아 보낸데서 유래했다. 당시 4만7천여명의 시민이 14억7천여만원을 모금한 ‘노란봉투 캠페인’을 본떠 노란봉투법이라 했다. 이 법은 2015년 처음 발의됐지만 7년이 지나도록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발의된 법안은 그대로 폐기됐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파업으로 인한 약 8천억 원의 경제적 손실에 대해 사측이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과 관련한 손실에 대해 사측이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노란봉투법을 재추진하고 있다. 민주당 대우조선해양 대응TF는 국회에 조선업 구조혁신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조선업과 관련한 구조적 해결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는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는 조항을 새롭게 추가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실질 사용자인 ‘원청’과 대화를 요구하며 50여일간 투쟁을 벌인 데 따른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원청 사용자는 하청 노동조합 등에 대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서 단체교섭 의무가 생긴다. 노조는 교섭 결렬로 쟁의행위를 벌이더라도 ‘불법’이 되지 않는다. 10년을 근속해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하청노동자들에게, 그것도 조선업 불황이 닥쳤을 때 상생의 약속으로 삭감에 응했던 임금을 호황기를 맞은 지금 원상회복이라도 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그 노동자들에게 8천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는 사측의 횡포다. 늦었지만 노조 상대 손배·가압류 남용을 막을 입법이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다. 노란봉투법이 이번엔 반드시 결실을 맺길 바란다. 헌법은 경영권이나 재산권 문제보다 노동자의 권리를 더 중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흔들리는 영국

한때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지구촌 곳곳에 식민지가 있어 국기가 24시간 내내 걸려 있어서였다. 남미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대륙에 이 나라의 영토가 있었다. 영국 얘기다. ▶그랬던 나라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외신은 이 나라의 7월 소비자 물가지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1% 뛰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여파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이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영국은 주요 7개국(G7) 중 물가가 가장 빨리 오르고 있다. 미국(8.5%), 이탈리아(7.9%), 캐나다(7.6%), 독일(7.5%), 프랑스(6.8%) 등 G7 국가 가운데 가장 가파르다. 내년 성장률도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전망도 어둡다. 그동안 전기·가스 등 에너지 요금이 물가를 끌어올렸지만, 지난달에는 빵, 시리얼, 우유 등 밥상물가가 무려 12.7%나 뛰었다. ▶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이 세계적인 화두가 됐다. 경기는 침체하면서 물가는 오른다는 스태그플레이션도 우려되는 시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겹쳐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가 요인이라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에너지 요금이 또 상향 조정되면서 물가지표가 더 뛸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 이후 해외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일손이 부족해지고 공급망에도 구멍이 뚫렸다. 섬나라여서 식품부터 많은 재화를 수입하는데 브렉시트로 수입절차가 복잡해지거나 관세가 붙고, 파운드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수입물가가 올라갔다. 애던 포즌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장은 영국 물가상승률이 높은 이유의 80%는 브렉시트와 관련됐다고 지적했다. ▶정치권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노동당은 내년 4월까지 에너지 요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놨다. 관련 비용은 290억파운드(46조원)로 추정됐다. 영국 정부는 기존의 에너지요금 지원 등만 되풀이한다. 다음 달 5일 신임 보수당 대표와 총리를 선출한 후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유력 후보인 리즈 트러스 외교부 장관은 감세 방안까지 제시했다. 브렉시트의 저주일까. 결코 남의 나라의 얘기가 아닌 것 같아 씁쓸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당신이 몰랐던 ‘독립운동사 19’

최근 tvN 방송사 한 프로그램에서 광복절 특집 방송을 시청했다. 일제 강점기, 암흑의 시대에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도 초개처럼 내던진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였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의병 사진에 숨겨진 의인은 프레더릭 메켄지다. 교과서에 나오는 의병 사진을 찍은 장본인으로 제암리 학살 사건도 보도했다. 두 번째, 3·1만세 운동을 준비한 배화여고 안옥자 지사 등 학생들과 스미스 교장. 세 번째, 혼수용 옷감으로 태극기를 만든 부산 동래여고 김응수 학생 등 여학생들이다. 네 번째, 수원 화성 행궁 만세 운동을 주도한 김향화 등 33인 기생. 다섯 번째, 이정숙, 노순경, 정종명 등 세브란스병원 간호부 소속 간호 견습생과 간호사. 여섯 번째, 강제징용 피해 할머니에게 편지 보낸 마사코 할머니. 일곱 번째, ‘제시의 일기’를 작성한 양우조, 최선화 부부. 여덞 번째항일 무장 투쟁 3대 명장으로 알려진 전설의 백두산 호랑이 오동진 장군. 아홉 번째, 서로군정서 살림을 맡은 독립군의 어머니 허은 여사. 열 번째, 중국 만주 재봉틀 부대를 운영한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 안성녀 여사. 열한 번째, 군무도독부 대한북로독군부를 창설한 봉오동 전투의 숨은 영웅 최운산 장군. 열두 번째, 독립운동가의 비밀 통신 수단 암호. 열세 번째와 열네 번째, 간도 참변을 세상에 알리고 독립운동가를 치료해준 의사 스탠리 마틴. 열다섯 번째, 독립군가, 압록강 행진곡 등 노래로 독립운동을 외친 한형석 선생. 열여섯 번째, 학생 비밀 단체 구국민단 비밀문서를 전달한 수원 이선경. 열일곱 번째, 영수증 묶음에다 독립운동 역사를 기록한 쌍성보 전투 승리의 주역 이규채 선생. 열여덟 번째,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재불 독립운동가 홍재하 선생. 열아홉 번째, 오수 만세 운동에 앞장선 이기송 등 16명 둔덕 이씨 일가. 이들 숨은 영웅들의 이름과 독립운동의 기록을 가슴 속 깊이 새겨보자. 최원재 정치부장

[지지대] 맨드라미 서정

8월 중순에도 소낙비가 내렸다. 어른들은 비가 내리면 과일들이 여물지 못한다고 걱정했다. 그래도 개구쟁이들은 빗줄기 속에서 마냥 즐거웠다. 철 없던 시절의 추억이다. ▶뭐가 그리 좋은지 비를 맞으며 뛰놀다 출출해지면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꼬락서니 하고는”이라며 타박했다. 빨래 거리를 만들어 온다는 이유에서다. 장독대 옆에서 그렇게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노라면 함초롬히 웃어주는 식물이 있었다. 맨드라미였다. “괜찮아”라고 속삭여 주는 누님 같았다. ▶여름 끝 무렵이었지만 후텁지근했다. 맨드라미는 그럴 즈음 장독대 옆에서 활짝 미소를 지었다. 장독대 옆은 어머니의 화단이었다. 어머니는 매년 봄 장독대 옆에 맨드라미를 심었다. 소년의 눈에는 닭볏처럼 생긴 모습이 꽃으로 보이진 않았다. 어머니는 맨드라미를 액을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식물로 믿었다. 지네가 맨드라미 때문에 장독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녀석, 아니 그녀의 키는 다 자라면 90㎝ 정도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난상 피침형으로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8월 원줄기 끝에 닭볏처럼 생긴 꽃이 흰색, 홍색, 황색 등의 색깔로 핀다. 대개는 붉은색으로 피지만 품종에 따라 여러 가지 색과 모양 등이 있다. 꽃받침은 다섯갈래로 갈라지고 갈래 조각은 피침형으로 끝이 뾰족하다. ▶화단에 직접 심기 전에 파종상자에 뿌려 잎이 2~3장 될 때 한번 작은 분에 옮겨 심었다 꽃이 핀 상태로 화단에 30㎝ 간격으로 심었다. 기온이 떨어지면 꽃색은 더욱 화려해진다. 20도 이하 14시간 이내 햇볕을 받아야 꽃눈의 분화가 촉진되고 아담한 형태의 꽃이 핀다. 14시간 이상이 되면 개화도 늦어지고 키도 커진다. ▶꽃 모양이 닭볏을 닮았다고 한자로는 계관화(鷄冠花)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그녀의 친정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인도라는 사실이다. ‘뜨거운 사랑’이란 꽃말까지 있다. ▶우리 꽃으로 알고 누님처럼 대했던 맨드라미가 먼 나라에서 한반도로 시집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오래 되지 않았다. 하긴 원래부터 우리 것들인 식물들이 얼마나 될까. 아침저녁으로 풋내기 감성에 푹 빠지고 있다. 얼떨결에 가을이 여름을 밀어내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반지하 주택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영화 ‘기생충’에 나온 주인공 가족의 집은 반지하였다. 반지하에 사는 일가족이 폭우로 물을 퍼내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그려졌다. 당시 외신은 한국의 ‘반지하(Banjiha)’를 집중 조명했다. 반지하 거주자들을 인터뷰하고, 실상을 보여줬다. 영국 BBC는 ‘서울의 반지하에 사는 진짜 사람들’이라는 르포 기사를 보도했다. “영화 ‘기생충’은 허구의 작품이지만 ‘반지하’는 그렇지 않다. 서울에는 수천명의 사람이 여기에 산다”고 했다. 최근 반지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8일 수도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많은 피해가 있었고, 서울에서 반지하가 물에 잠겨 빠져나오지 못한 일가족이 사망했다. 외신들은 ‘반지하(banjiha)’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해 예방 대책의 부재가 키운 인재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주택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1970년대부터 들어선 반지하는 아직까지 도시 저소득층 주거를 대변한다. 반지하 공간은 환기가 안 되고 습기 제거를 못해 건강을 위협한다. 실제 거주자들에게 호흡기와 피부 계통 질환이 많다. 침수 시에는 물이, 화재 시에는 연기가 빠지지 않아 안전사고에도 위험하다. 이에 정부가 거주지로서 반지하를 지양하겠다는 대책을 여러 차례 내놨다. 반지하 가구수는 감소 추세다.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총 32만7천가구가 반지하를 포함한 지하에 거주한다. 2005년 58만7천가구, 2010년 51만8천가구, 2015년 36만4천가구에서 감소했지만 아직도 많다. 남아 있는 반지하는 노후화도 심각하다. 이번 침수로 일가족이 사망하자 경기도와 서울시가 반지하 주택을 없애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나온 정책으로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는 반지하 거주자들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현재 반지하와 비슷한 수준으로 저렴하면서도 살 만한 주거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수도권 도심에서 대안을 찾기 쉽지 않다. “반지하에 살면 안 좋은 건 알지만, 갈 곳이 없다”는 거주자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대만정책법

대만의 수교 국가는 19개국이다. 국명(國名)도 낯설다. 바티칸과 파라과이, 니카라과 등을 빼고 말이다. 하지만 미국과는 실질적인 동맹국이다. 대단한 반전이다. ▶미국은 정식 수교국은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특별법까지 만들어 이 나라와 교류 중이다. 지난 1979년 제정된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이 그렇다. 그해 미국은 대만과의 공동방위조약을 폐기하고 해당 법을 제정했다. 대만에 대해 (중국에 맞서) 자기방어 수단을 제공할 근거를 마련해준 셈이다. ▶이것으로는 부족했을까. 미국은 최근 또 다른 대만 관련 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상원에 계류 중인 ‘대만정책법(Taiwan Policy Act)’이 의결을 기다리고 있다. 민주당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이 발의했다. 대만의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아닌 국가 중 주요 동맹국 지정과 향후 4년 동안 35억달러(5조9천억원) 안보지원 등이 골자다. ▶해당 법안에는 대만이 각종 국제기구와 다자무역협정에 참여할 수 있는 외교적 기회 증진 조항도 담겼다. 메넨데스 위원장은 “이 법안의 취지는 1979년 대만관계법 제정 이후 가장 포괄적으로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정책 재정립”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어정쩡한 대만과의 관계는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미국의 원칙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대만은 미국의 실질적인 동맹국이 된다.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 충돌한다. ▶변수들도 등장하고 있다. 미국이 오는 10월 인도와 연합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훈련 장소는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주의 아우리다. 인도와 중국의 국경 분쟁지대인 실질 통제선(LAC)으로부터 95㎞ 떨어졌다. ▶중국은 오는 10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주변 국가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대만 봉쇄 군사훈련이 대표적이다. ▶대만에 대한 경제적 압박 강도를 높여 총통선거에서 민진당 정권 교체를 기도하고 있다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전략적 모호성이자, 교묘한 외교술이다. 그런데 대만정책법과 대만관계법과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게 궁금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온난화 기상이변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배웠다. 그러나 지금은 아닌 듯하다. 기후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시기는 7월 중순. 이른바 장마였다. 장마만 지나면 무더위 속에 한두 차례 태풍이 지나가고 가을을 맞았다. 우리가 아는 통상적인 기상예보도 현재는 달라졌다. 올해 기상청은 지난달 27일 장마 종료를 발표했다. 이후 폭염과 열대야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했다.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 것까지는 과거와 동일하다. 이후 새롭게 등장한 기상현상이 있다. 국지성 집중호우다. 장마 뒤 집중호우는 최근 매년 발생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8일부터 경기도, 인천, 서울 등 수도권을 강타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폭우로 인구가 집중된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은 큰 피해를 입었다. 집중호우는 기상이변으로 분류된다. 단기간 국지적으로 쏟아붓는 집중호우는 예측하기 어렵고 당해내기도 힘들다. 기상이변 이야기는 어제 오늘 나온 것이 아니다. 수십년 전부터 기상학자들이 경고한 문제다. 오존층이 파괴되고 남극의 빙하가 녹는다. 기상이변의 원인은 지구 온난화다. 이 같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인간으로 지목되고 있다. 무차별 화석연료 사용, 환경 파괴로 온난화를 가속시켰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기상이변 발생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 기록적인 홍수와 한파, 가뭄 등은 인간의 환경 파괴의 대가다. 그동안 지구 온난화와 기상이변 문제는 남의 일처럼 여겨졌다. 미리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피상적으로 인지하고 있지만 ‘누군가 준비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와 기상이변은 이미 우리 옆에서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이번 수도권 집중호우가 보여줬다. 그동안 지구 온난화에 대해 안일했던 태도를 반성하며 정부는 물론 개인도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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