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형태가 변하는 모든 것이 조각”…수원시립미술관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

조각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지난 7일부터 열린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 전시는 우리나라와 오스트리아의 수교 130주년을 맞아 오스트리아 대표 현대미술작가 에르빈 부름의 작품 세계를 담아냈다. 타이틀 ‘나만 없어 조각’은 ‘조각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갖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했다. 에르빈 부름은 1980년대부터 조각의 본질과 형식을 탐구해 형태 변화, 부피 증감 등 모든 현상 자체를 조각으로 정의한 작가다. 비만·행위·시간 등 형태가 변하는 모든 것들을 조각으로 재정의 한 그의 시선이 61점의 조각, 사진·영상, 퍼포먼스 작품에 담겨 예술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이번 전시는 연도 순이 아닌, 작가가 조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됐다. 1부 ‘사회에 대한 고찰’에서는 부피를 변형시킨 작품들이 등장한다. 먼저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차량의 부피가 풍선처럼 늘어난 ‘팻 컨버터블(팻 카, Fat Car)’이다. 소비에 대한 욕구가 부풀려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표현한 조각 뒤에 놓인 모니터에선 팻 카가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귀여운 생김새와 달리 굵은 목소리로 무기·마약 등 무거운 주제를 언급해 사회문제를 환기한다. 2부 ‘참여에 대한 고찰’에서는 ‘만지지 마세요’가 아닌 ‘참여하세요’라고 말한다. 특히 에르빈 부름을 다시 작가로 도약하게 한 ‘1분 조각’은 물성뿐만 아니라 시간성도 조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분 조각’은 ‘동작의 속도를 늦춘다면 조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조각의 개념을 확장한 작품이다. 예로 작품 중 하나인 ‘에피쿠로스 태양 아래 빛을 쬐시오’는 천장에 걸린 램프와 받침대, 벽면의 지시 드로잉과 작품 사이에 신체부위를 두고 조각이 돼 보는 관객으로 이뤄진다. 관객이 직접 작품에 손을 대거나 밟아 보는 등 참여자가 조각 자체가 되는 형태를 볼 수 있다. 3부 ‘상식에 대한 고찰’에선 조각에 대한 상식을 깨는 작품을 마주한다. 일반적으로 사진과 평면을 조각이라고 보지 않지만, 납작한 것들도 조각의 양감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관점이 드러난다. 작가가 스스로를 모델로 찍은 ‘사진 조각’에선 예술가가 항상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통념과 정반대인 ‘게으름, 잠, 멍때리기’ 등과 같은 모습을 드러내 관습처럼 이어오는 생각에 대한 의문이 묻어난다. 이어 실제 모델의 옷과 팔·다리 등 표면 일부를 캐스팅한 ‘스킨조각’과 그림을 걸어 둔 ‘평면 조각’은 덩어리가 아닌 껍데기를 조각으로 남겨두며 ‘조각’에 대한 상식의 경계를 허물기도 한다. “조각은 모든 현상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이자 사회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구다. 현실적이어야 사람들이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은 정치로 모두 해결할 수 없으며 예술을 통해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한 에르빈 부름의 통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전시는 내년 3월19일까지 열린다.

경기아트센터 29일, 권일용 교수의 인문학 콘서트 ‘겨울의 마음을 읽는 봄의 이유’

경기아트센터는 29일 인문학 스페셜 콘서트 ‘겨울의 마음을 읽는 봄의 이유’를 소극장 무대에 올린다. 이번 공연은 경기아트센터의 문화강좌 ‘2022 감성맞춤 인문학 아카데미’ 중 하나로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의 강연과 밴드 에이프릴 샤워, 가수 리엘의 무대가 함께한다. 인문학 콘서트에서는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가 ‘우리가 악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주제로 강연을 펼친다. 권일용 교수는 대한민국에 프로파일링 기법을 현장에 정착시킨 대표적인 인물로,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며 30여년간 약 3천 건 이상의 강력사건 범죄현장에 투입됐고, 1천여 명에 달하는 범죄자를 대면한 바 있다. 현재는 은퇴 후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과 강연 등을 통해 프로파일러로서의 경험과 범죄심리 분야의 지식을 나누고 있다. 강연은 총 세 파트다. 1부 ‘겨울의 마음은 어떻게 자라나는가’에서는 폭력의 대물림과 범죄를 저지르는 ‘악의 뿌리’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2부 ‘마음을 읽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는 인간 내면의 분노와 공격성, 개인의 감정 조절을 돕는 사회적 안정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3부 ‘내 안의 겨울이 봄이 되기까지’ 에서는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가스라이팅’ 과 ‘그루밍 범죄’ 의 전형적인 양상, 사이비 종교 등과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인간의 심리를 살펴보며 ‘건강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고민할 예정이다. 무대에는 인디밴드 ‘에이프릴 샤워’와 싱어송라이터 ‘리엘’이 올라 강연의 청자로 함께하며 파트 사이에 노래와 연주를 선보인다. 인디 아티스트들이 선보이는 감성적인 음악은 관객들에게 힐링의 시간을 선사하고,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공연 관계자는 “범죄심리 이야기와 더불어 우리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야하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유익한 시간이 될 것” 이라고 전했다.

[전시리뷰] 국내 도자사 새롭게 조명…경기도자박물관 ‘흑자 : 익숙하고도 낯선, 오烏’

도자기를 떠올릴 때 오묘한 검은 빛을 띠는 ‘흑자’를 단번에 생각해내는 이는 드물 테다. 청자와 백자로 수놓인 한반도의 도자기 역사를 짚어본다면 흑자는 제법 낯선 존재다. 하지만 흑자엔 긴 시간 동안 누적된 우리 민족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흑자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을 맴돌았고,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과 관계를 맺었을까. 경기도자박물관에선 지난달 29일부터 ‘흑자: 익숙하고도 낯선, 오烏’ 기획전을 열어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전시는 흑자의 뿌리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1천여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우리 도자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흑자에서 풍기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매력과 고유한 가치를 알린다. 칠흑같이 어둡게 주변에 스며들다가도 때때로 오색으로 반짝이는 흑자의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경기도자박물관 측은 국립중앙박물관, 경기도박물관 등 국내 주요 박물관 및 개인 소장가와 협력해 고려시대 이전부터 근대까지의 ‘흑자’ 및 관련 자료 70점을 전시장에 가득 채웠다. 1부 ‘검은 빛으로부터’, 2부 ‘까마귀를 걸친 은둔瓷(자)’, 3부 ‘빛, 변용과 계승’ 등 총 세 개의 챕터로 나뉘어 고려와 조선, 일제강점기 시기를 수놓았던 흑자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흑자가 국내로 유입된 시기는 삼국시대 전후로 추정된다. 이후 중국에서 꾸준히 수입되던 흑자는 자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자리 잡힌 고려시대가 돼서야 비로소 생산되기 시작했다. 고려가 해상무역이 발달한 데다 송나라의 차(茶)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흑자 문화와 연결된다. 그에 따라 이 시기의 흑자는 그릇이나 다완(찻잔) 등 실생활의 영역에서 많이 보였다. 당시 흑자는 청자를 생산하던 가마에서 함께 구워졌기 때문에 동일한 기형을 가진 청자와 흑자가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1부 전시공간에선 ‘흑유 탁잔’, ‘흑유 주자’ 등의 흑자를 통해 송나라의 영향권에 놓여 있던 고려 시기의 흑자 문화가 어떻게 형성, 발전됐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2부에선 조선 시대로 들어서면서 변화하는 흑자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사실 흑자는 당시 조선 백자나 고려 청자 만큼 영향력을 끼치는 도자기가 아니어서 생활 영역에서 골고루 쓰이지는 않았지만 음식을 담는 그릇뿐 아니라 장이나 육류를 저장하거나 운반하는 용기로 쓰임새가 확대되기도 했다.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흑자가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에서 보듯 주병으로도 많이 쓰였다는 점도 확인된다.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파주, 포천, 가평 등지에 전용가마가 생겨나면서 수요와 생산량이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는 등 흑자를 둘러싼 문화 전반의 변화 양상을 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생산되던 흑자는 수요와 용도가 다양해진다. 조선 때처럼 도자 본연의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기념품으로도 많이 생산됐다는 데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흑자 문화는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며 과도기를 겪는다. 당대 생산됐던 도자엔 외세에 의한 산업화와 전통 계승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흔적처럼 배어 있기 때문이다. 강명호 경기도자박물관장은 “우리의 도자문화를 풀어낼 때 백자나 청자 위주로 인식하던 기존의 틀을 바꾸는 시도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며 “이번 전시가 국내 도자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이자 마중물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내년 3월26일까지.

예술로 만드는 진정한 상생…2022 오늘의 수원-한·중국제교류전

팬데믹에 이은 엔데믹의 과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지구촌의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 양국이 함께 만드는 문화 교류의 장이 수원에서 열리고 있다. ‘2022 오늘의 수원-한·중국제교류전’이 지난 13일 개막해 오는 25일까지 수원시립만석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이번 교류전에는 수원미술협회 회원 267명과 주하이미술가협회 소속의 작가 30여명이 함께 작품을 선보여 화합의 무대를 만들어 냈다. 올해는 한·중수교 30주년이라 그 의미를 더한다. 수원시는 중국의 주하이시와 2006년부터 자매도시 관계를 맺은 뒤 16년 동안 교류를 지속해오고 있다. 16년간 두 지역의 미술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시민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힘써왔다. 1층 전시장엔 한국과 중국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골고루 배치돼 있다. 특히 주하이미술가협회 소속의 작가들은 주변에서 접하는 자연 풍광,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생활 속의 단면들을 섬세하게 포착한 뒤 정겨움과 예민함이 혼재된 시선으로 담아냈다. 항구의 정경, 노동자가 걸어가는 모습,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등이 정갈한 색채에 담겼다. huang yuanli 작가의 ‘白云生处有人家’ 등에서 느껴지는 관점이 그렇다. 전반적으로 추상적인 묘사보다는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평소 느꼈던 생각이 반영됐다. 뿐만 아니라 국내 작가들 역시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지윤 작가의 ‘네잎클로버’는 녹빛의 코끼리와 어우러지는 분홍빛의 배경을 은근슬쩍 가르는 경계를 만드는 질감의 표현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어지는 2층 전시공간에서도 안영경 작가의 ‘달콤한 유혹’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작을 만날 수 있다. 이동숙 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장은 “올해 교류전은 코로나19 등 각종 어려움에도 서로 협력해 전시를 기획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뜻깊어진다”며 “국경을 뛰어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교류활동이 독창성과 창의성을 확장하는 계기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송상호기자

가족, 연인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더 특별하게 만드는 행사들

이번 주말,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도내 곳곳에서 관련 문화 행사가 열린다. 연인, 가족과 함께 다양하게 즐겁게 즐길 수 있는 크리스마스를 미리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는 행복한 크리스마스 장식 만들기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은 24~25일 박물관을 찾은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해 장식만들기와 풍선 선물 등 3가지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만들기’는 나무 구슬·끈 등 재료를 탐색하고 크리스마스 장식(오너먼트)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4세 이상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 참여할 수 있다. ‘박물관을 찾아 온 삐에로 산타’는 산타로 분장한 삐에로가 꽃·강아지 등을 요술 풍선으로 만들어 선물하는 프로그램이다. 삐에로는 3층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전시실 위주로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가족들을 맞이한다. 마지막으로 ‘방울방울 가랜드’는 나뭇가지, 솔방울, 메타세콰이아 열매 등 자연물을 이용해 가랜드를 만든다. 5세 이상 어린이 동반 가족을 대상으로 하며, 교육 30분 전부터 선착순 현장 접수를 진행한다. ■ 환상적 연출과 영상미…인형극 ‘해를 낚은 할아버지’ 경기아트센터는 24~25일 이틀간 국내 대표 극단 로.기.나래의 인형극 ‘해를 낚은 할아버지’를 소극장에서 선보인다. 김정미 작가의 그림 동화를 재창작한 인형극이다. 낚시를 잘하는 할아버지가 실수로 해를 낚으며 벌어지는 위기, 할아버지와 동물들이 이를 슬기롭게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린이 관객에게 ‘함께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환상적인 영상미술과 연출, 인형극으로 표현한 동물 주인공들의 모습도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동심을 깨우는 공연이다. ■ '청춘과 보편적 일상' 브로콜리너마저 크리스마스 콘서트 크리스마스를 맞아 안양문화예술재단은 오는 25일 ‘브로콜리너마저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안양시 동안구 평촌아트홀에서 선보인다. 청춘을 노래하는 밴드 ‘브로콜리너마저’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일상을 노래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아 왔다. 이번 크리스마스 공연에서는 진솔한 메시지를 담은 울림 있는 가사와 담백한 사운드로 청춘과 삶을 이야기한다. 특히 시인들이 뽑은 가사가 아름다운 노래인 ‘보편적인 노래’를 비롯해 다양한 곡목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건주수습기자

[전시리뷰] ‘죽음을 대하는 선조들의 마음’…경기도박물관 특별전 ‘경기 사대부의 삶과 격, 지석’

조선 시대 장례 문화를 수놓은 ‘지석’에 적힌 글귀를 음미하다 보면, 당대 사대부들의 살아 생전 모습들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글씨를 써서 남긴 이들이 죽은 이의 삶을 정확하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올곧은 정신, 삶을 대하는 태도를 정성껏 추모하는 글자 속에서 발견한다. 경기도박물관의 특별전 ‘경기 사대부의 삶과 격, 지석’이 지난 7일부터 개막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국내의 공립박물관 가운데 지석을 최다 소장한 도박물관이 조선시대의 지석들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 자리라는 점에서 뜻깊다. 1부 ‘예禮를 다하다’, 2부 ‘삶을 기록하다’, 3부 ‘경기사대부의 정신을 잇다’의 구성을 통해 관람객들은 지석의 의미와 유래, 시대별 지석 생산 문화의 변천, 그리고 그에 담긴 사대부들의 삶과 후손 이야기 등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지석은 죽은 이의 인적 사항과 무덤의 위치 정보 등을 적어 넣어 시신과 함께 매장하는 도자기판 내지는 판판한 돌이다. 기원전 3세기께 중국 진나라 때 등장한 지석 문화는 국내에선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널리 유행했다. 고려 때의 지석은 돌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고 불교식 화장 문화와 혼합되기도 했다. 조선 때에 이르면 유교 문화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는데, 계층에 따라 재질이 다르게 생산됐다. 유교를 통치 이념 삼았던 조선 시대에 편찬된 ‘국조오례의’에는 ‘주자가례’(사람이 일생 동안 거치는 관혼상제 예절을 다룬 책)에 따른 장례 절차와 기준 등이 수록됐고, 그 속에 지석 제작과 매납 방식에 대한 내용이 발견된다. 경기도에서 출토된 지석에서는 조선시대 국가 운영의 핵심이었던 사대부들의 삶과 가치관, 그들의 죽음을 둘러싼 태도 등을 접할 수 있다. 2부 전시장에선 소재와 제작 방식 등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지석을 만난다. 음각, 상감, 청화, 철화 등 글씨를 새겨넣는 방식이 다채롭다. 이를 통해 조선 시대의 선조들이 시기와 상황에 맞춰 효와 예의 도리를 다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특히 ‘주자가례’의 원칙을 계승한 조선후기의 지석에는 정갈하고 단정한 멋이 깃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지석을 통해선 사대부의 생전 행적뿐 아니라, 사대부들을 떠나보내는 남은 이들의 비애와 태도를 함께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사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지석의 제작 시기를 파악하는 작업은 그 집안 가세의 영향력과 수준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3부를 수놓는 5개 가문의 지석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관람객들은 조선의 정치, 사회, 문화에 자취를 남겼던 사대부들의 면모를 살필 수 있다. 청송심씨 인수부윤공파, 청송심씨 사평공파, 풍양조씨 화양공파, 기계유씨, 남양홍씨 등이 그들이다. 조선의 지석 문화가 이들 같은 사대부들이 공유하는 특징을 살피는 데 있어 공통 분모가 된다는 데서 전시의 의의가 엿보인다. 김기섭 경기도박물관장은 “지석에 새겨진 사대부의 생전 모습들, 먼저 떠나간 사람를 향한 남은 이들의 마음을 살펴볼수록 나 자신을 돌아 보게 된다”며 “지석을 매개로 경기 사대부의 내면과 생각을 조명하는 이번 특별전이 우리가 그들에게서 어떤 정신을 이어 받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통로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3월26일까지 열린다. 송상호기자

양주시립 미술창작스튜디오+극단 여행자 다원예술 프로젝트 ‘경양식 돈가스’ 개최

양주시립 미술창작스튜디오는 극단 여행자와 함께 지난 16일 다원예술 프로젝트 ‘경양식 돈가스’를 개막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전시가 대중화 되는 상황에서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실험과 미술과 연극이 대등한 위치에서 새로운 협업모델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정태후, 최희정, 한문순 등 스튜디오 입주작가 3명과 극단 여행자(연출 남우찬, 출연 김진곤, 김해중, 유혜림)가 만나 새로운 장르적 시도를 보여준다. 프로젝트 ‘경양식 돈가스’는 서양과 동양의 재료가 혼합된 음식으로 다양한 재료가 한 접시에서 재정의 되듯이 현재 미술과 연극의 위치에 대해 자조적인 비유를 나타낸다. 작업과정에서 작가들은 스프, 소스, 돈가스로 분류해 다양한 예술적인 실험을 진행하며, 진정한 의미의 협력을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했다. 첫 번째는 공동창작을 기반으로 스프, 소스, 돈가스에 대한 소재에 현대적인 의미를 담았다. 스프는 데이팅앱 속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인스턴트 관계에 대해 MZ세대들이 바라보고 있는 시선으로 풀어냈다. 소스는 예술가들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공감각적 언어로 재해석했으며, 돈가스라는 소재에서 돼지와 육식에 관한 사회 담론적 이야기를 풀어냈다. 두 번째는 미국 텍토닉 프로젝트 씨어터에서 텍스트가 아닌 모든 연극 언어를 활용하며 창작하려고 고안된 ‘순간작업’과 미술의 시각적 이미지를 혼합 적용했으며, 이를 통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새로운 예술로서 탄생시킨다. 작가들은 이러한 연결을 통해 예술적 가치에 대해 수평적인 위치에서 서로의 장르를 바라보고자 했다고 한다. 함께 마련된 전시는 내년 3월 5일까지 아티스트 토크와 이어진다. 한편 극단 여행자는 한국 최고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만드는 극단이다. 제15회 카이로 국제실험연극제 대상을 수상했으며 한국 최초 런던의 바비칸센터와 글로브극장에서 초청받았다. 양주=이종현기자

“수원 지역 예술인을 만나는 기회”…‘111 씨티 아트 마켓’

“지금처럼 수원 지역 작가들이 주목 받는 자리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지난 13일부터 수원특례시 장안구의 복합문화공간 111CM에서는 지역 예술문화 활성화를 위한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도심 속에서 수원 지역 예술인들의 작품들을 한눈에 만나볼 수 있는 미술 장터인 ‘111 씨티 아트 마켓’이다. 1부 전시는 13일부터 18일까지, 2부는 20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행사는 수원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44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활동 궤적이 묻어 있는 작품들을 수원 시민들과 공유하는 기회다. 회화, 조각 등 150여점의 작품이 공간 활용도가 높은 111CM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일반적인 기획전이나 작가 초대전 등과는 다른 성격의 전시인 만큼, 수원문화재단과 한국미술협회·민족미술인협회 수원지부의 예술인들이 힘을 합쳐 공동으로 기획한 데서 협력과 상생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지역의 예술인들과 공공기관이 힘을 합쳐 기획한 미술품 장터가 수원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준비 과정에선 공공과 민간 사이의 논의가 활발하게 오갔다. 재단 측에선 기획과 대관, 작품 운송 등의 전반적인 조율을 맡고 예술인들은 작가 및 작품 선정과 전시장 디스플레이 과정에 관여하는 등 분담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작품 거래에 있어서도 재단의 관여 없이 작가와 구매자끼리 직접 소통하는 구조로 기획됐다. 수원문화재단 문화예술부 관계자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각 협회와 협력하는 거버넌스를 구성해 기획 초기 단계부터 운영했다는 점”이라며 “리플렛이나 포스터를 만드는 등 모든 절차에 있어 서로 의견을 공유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민관 협력을 통한 상생의 장이 열린 만큼, 전시장을 찾는 시민들은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하면서 원하는 작품을 구매하고 원하는 작가와 소통을 시도할 수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관람객들은 지역 내 예술인들이 선보이는 예술 사조의 정체성이나 경향성 등을 통해 동시대 작가들이 어떻게 현 시대의 삶과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지 가늠해 본다. 전시에 참여한 한국미술협회 수원지부 소속의 박성자 작가는 “이런 협력 체계 구축은 시작이 중요하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수원 곳곳의 전시장을 활용해 행사의 규모나 기간 등을 더욱 늘려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족미술인협회 수원지부에 몸담고 있는 이주영 작가도 “매년 일정 기간 동안 111CM에서 열리는 아트 마켓을 브랜드화할 수 있다면, 수원시를 충분히 미술 쇼핑의 메카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현광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예술 작품들을 접하는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이번 행사가 수원 지역 곳곳에 포진한 작가들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택 mM아트센터, '자연주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현대 러시아회화' 담은 '바람 볕 시선展'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소련) 예술가들이 당국의 검열을 피해 비밀리에 제작한 미술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평택시 제1호 사립미술관인 mM아트센터(엠엠아트센터)가 16일부터 내년 2월26일까지 소장품전 ‘바람 볕 시선’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자연과 현실을 재현하고자 했던 작가들의 작품과 시선에 주목, 1940~1990년대 소련예술가연맹에서 활동했던 10개국 89명의 작가들을 소개한다. 자연주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현대 러시아회화에 이르기까지 도시와 자연을 그린 풍경화, 역사화·전쟁화 등 주제화, 인물화, 풍속화, 추상화 등 총 174점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한다. 특히 mM아트센터는 이번 전시에서 소련의 공식 체제 미술과 별도로 작가들이 개인 공간에서 비밀리에 제작한 소위 ‘비공식 미술작품’을 선보인다. 당시 미술가들은 스탈린 집권 이후 당국의 예술 검열 속에서도 이념적 제재에서 벗어난 비공식 미술을 제작했다. 이처럼 작가들이 직접 경험한 외부 세계에 대한 자유롭고 개성적인 표현은 소련 체제의 맥락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는 것이 mM아트센터 측의 설명이다. 전시와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mM아트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승일 관장은 “이번 바람 볕 시선전은 바람이 불어오고 볕이 비추는 풍경들과 함께 정치적 긴장과 경직성을 넘어 새로운 사회와 문화에 대한 바람을 느껴볼 것을 제안하는 전시”라면서 “그간 한정적으로 인식해 왔던 소련 미술과 문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평택=안노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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