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군에 긴급 경계 강화 지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29일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남·북한 해군 함정 사이에 교전이 발생함에 따라 전군에 긴급 경계태세 강화지시를 내렸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10시 25분께 교전이 발생하자 서산 상공에서 초계비행중이던 공군 KF-16 전투기 1개 편대를 NLL 인근 해상으로 긴급 파견, 추가로 발생할지도 모를 확전에 대비하는 한편 10시 35분 합동참모본부에서 긴급조치반을 소집하는 등 비상 대응조치에 들어갔다. 또 교전 해역에 1천200t급 초계함을 전진 배치시키고 고속 경비정들도 추가로 출동시켜 2차 교전 발생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어 작전사령부급 제대에서 위기 조치반 운영에 돌입했으며 전군의 지휘관과 참모들에게 정위치에서 근무할 것을 지시했다. 특히 비무장지대(DMZ) 지역 군부대에도 대북 감시활동을 강화, 기습적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북측의 도발에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 경찰청도 각 지방경찰청에 주요 지휘관 정위치 근무와 전 경찰 비상연락체제 확립 등경계근무 강화 지시를 하달했다. 경찰청은 이날 이팔호 청장 주재로 긴급 회의를 갖고 국가중요시설에 대한 방호태세확립과 공항·만 및 해안 경계를 강화하는 한편 작전부대 출동태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해양수산부도 여객선과 어선의 운항을 전면 통제하는 한편 비상대책반을 설치, 운영에 들어갔다. 해양부에 따르면 이날 인천~백령도를 운항하던 백령아일랜드(287t), 데모크라시5(396t)호 등 2척의 여객선은 오전 11시20분께 백령도에 무사히 도착했으며, 인천~연평도를운항하는 실버스타(569t)호도 덕적도 인근에서 회항해 인천항에 입항했다. 연평도와 백령도, 대청도 등 어로한계선 북방에서 이날 출어에 나선 우리 어선 165척도 모두 귀항했다. 해양부는 이와함께 인천해경에 해군과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속초해경과 동해지방해양수산청에도 항만 안전조치를 강화하도록했다. 건설교통부도 남·북해군간 교전과 관련, 항공안전을 강화하라고 지방항공청과 국내·외 항공사에 긴급지시했다. 건교부는 이날 지시를 통해 국적 및 외국 항공기들이 북한 인접항공로를 비행할때 북쪽으로 이탈하지 말 것과 중국 칭타오 항공교통관제소와 북한 평양항공교통관제소와의항공교통관제권 인수인계때 표준절차를 철저히 준수하도록 했다. 또 평양 항공교통관제소와 관제업무 협의시 업무이외의 다른 사항에 대해 일체언급하지 말 것과 북한을 자극할 만한 언행을 절대로 금지하도록 지시했다./연합

北 서해도발.. 我軍 4명 사망

29일 오전 10시25분께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3마일, 연평도 서쪽 14마일 부근에서 남북 해군간에 교전이 발생, 우리 해군 4명이 전사하고 1명이 실종됐으며 20명이 부상하고 우리 고속정 1척이 침몰했다. 전사자와 부상자들은 군 구조헬기로 연평도에서 이날 오후 2시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북한측 경비정 1척도 수백발의 사격을 받고 화염에 휩싸인 것으로 관측된 것으로 미루어 상당한 인명 및 함정 피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군 당국은 이번 사태와 관련, 오전 11시를 기해 전군에 경계강화령을 시달했으며 유엔사령부는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북측에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이날 오후 6시장성급 회담을 갖자고 북측에 제의했다. 국방부와 합참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54분께 북한 경비정 2척이 각각 NLL을 넘어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과 7마일 부근에 나타나 2대씩으로 구성된 우리 해군 고속정 편대가 각각 현장에 출동, ‘NLL을 넘었으니 빨리 북쪽으로 돌아가라’고 수차례경고방송을 했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중 1척이 이에 응하지 않고 선제사격을 가해 우리 해군 고속정이 즉각 대응사격을 하는 등 25분간 간헐적인 교전이 이뤄졌다. 북 경비정의 선제사격으로 우리 고속정(PKM 참수리급) 1척이 조타실을 맞아 불이 났으며, 우리측 남은 고속정 1척이 즉각 대응사격에 나섰고 인근에 있던 고속정1개 편대 2척, 초계함 2척이 증원돼 함포사격으로 응전했다. 이날 오전 10시43분께 북 경비정 1척에서 화염이 발생했으며, 북 경비정은 오전10시50분께 사격을 계속 가하면서 NLL을 넘어 북상했고, 10시56분 상황이 종료됐다. 남북 해군간에 교전이 벌어지기는 99년 연평해전 이후 3년만에 처음이다. 이날 교전으로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화해.협력 분위기를 보였던 남북관계는 교전책임 문제를 둘러싸고 급속히 냉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희 합참 작전본부장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27명이 탑승한 우리 고속청 1척이 적의 제1격으로 조타실이 파괴됐으며, 지금으로서는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알수 없다”며 “중요한 것은 적의 선제공격으로 우리에게 다수의 피해가 발생했다는것이며 그것은 적(의 공격)이 상당한 의도성을 가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이번 북한의 도발행위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으로 모든 책임이북측에 있음을 엄중히 경고하며, 정부 차원의 대책을 수립해 대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교전상황이 벌어지자 조업중이던 어선 150여척이 안전지역으로 급히 대피했다. 군 당국은 이날 교전상황을 보고받은 뒤 곧바로 이상희 합참 작전본부장을 중심으로 위기조치반을 소집, 비상대응조치에 들어갔으며 정부는 이날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NSC를 열어 정부 차원의 대응방안을 검토했다. 군 당국은 교전 해역에 1천200t급 초계함을 전진 배치시키고 고속경비정들도 추가로 출동시켜 2차 교전 발생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한편, 군단,사단,함대사령부, 비행단급 부대를 중심으로 육.해.공의 모든 전선에서 비상대기 경계전력을 증강시켰으며, 특히 비무장지대(DMZ) 지역 군부대에도 대북 감시활동을 강화, 기습적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북측의 도발에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 한편 우리 고속정에 첫 타격을 가한 북 경비정은 37㎜포, 14.5㎜ 고사포, 85㎜포를 장착하고 있으며, 그 파괴 정도를 볼 때 가장 강력한 85㎜포로 타격을 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되돌아본 민선2기 경기도전

오는 30일 풀뿌리 민주주의의 도약기로 주목을 받았던 민선 2기는 역사의 뒷페이지로 넘어간다. 지난 98년 IMF체제 속에서 출발한 경기도 민선2기는 지난 4년동안 경제를 살리는데 주력한 결과 외자유치, 일자리 창출, 농가 소득 등 각 부분에서 전국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로 뻗는 경기도’의 초석을 다졌다. 또 21세기의 주력산업인 문화·관광 분야에 각종 아이디어를 쏟아 부으면서 ‘굴뚝없는 산업기지’로서의 기반을 다지고 도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27개의 각종 법령을 제·개정하면서 지방자치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경기도민의 오랜숙원이었던 경기교대(경인교대 경기캠퍼스) 설립을 가시화하고 동북아 허브를 뒷받침하는 평택항시대 개막 등 굵직굵직한 궤적을 그려내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제 민선 3기 출범을 앞두고 도전과 창조, 희망을 향해 열정을 쏟아온 지난 4년 민선 2기의 경기도정을 ▲경제개발 ▲문화·관광, 체육 ▲교육·환경 ▲주민복지 ▲지방행정 등 5개 부문으로 나눠 되돌아 본다./편집자주 ◇경제개발 민선 2기는 경기도의 경제를 살리자는 기치 플레이를 내세워 미국, 유럽, 중남미 등을 돌며 외자유치에 전력을 다한 결과 105억달러를 유치하는 놀라운 성과를 일궈냈다. 이같은 결과에는 임 지사를 비롯, 투자진흥과, 무역진흥과 직원들이 상담기간동안 2∼3시간정도 잠을 자며 논리성과 열정으로 해외 바이어를 적극적으로 설득한 산물이다. 또 지난 98년 경기도의 실업률은 IMF의 영향으로 10.2%에 달했으나 민선 2기 출범후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 61만개 일자리 창출, 구인·구직 박람회 등의 다방면에 걸친 노력으로 지난 5월 현재 실업률은 2.8%를 기록했다. 이는 경제학적 관점으로 보면 완전고용상태로 선진국으로부터도 놀라움의 대상이 됐다. 특히 그동안 경기도 발전의 발목을 잡았던 공장총량제를 완화시켰으며 굴뚝없는 첨단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논리적으로 맞서 판교신도시내 20만평 규모의 부지를 얻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와함께 지지부진 하던 평택항 개발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중국과의 교류 활성화를 꾀하는 한편 동북아 허브항 시대를 열는 전환기를 마련하는 발자취를 남겼다. ◇문화·관광, 체육 전국 최초로 1천억원의 문화예술육성기금을 조성, 백남준 미술관 건립 추진, 호국의 성지 남한산성, 조선 최대 사찰 회암사지, 세계문화유산 화성, 명성황후 생가 복원 등 국가관광자원을 적극개발해 문화 선택의 폭을 한층 넓히는 계기를 조성했다. 특히 어려울 것이란 세간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세계도자기엑스포의 경우 경제효과만도 1조원에 달하고 관람객 숫자는 600만명을 기록, 도자기도 상품으로 개발판매할 수 있다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 IMF이후 민간사업자의 월드컵 경기장 건설 포기로 월드컵 개최마저 불투명한 상황에서 국비 2천억원을 확보하고 도비 2천억원을 지원, 월드컵 수원경기장을 무리없이 마무리, 성공월드컵을 뒷받침하는 결과를 가져져왔다. 북부지역의 특수성을 이용한 안보관광단지, 생태공원 조성 등을 통해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을 유도하는 정책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물이다. 체육 부분에서도 전국체전 종합우승 5연패 달성, 생활체육 전국 최우수 기관, 체육진흥기금 1천억원을 조성해 우리나라 제1의 경기체육 위상을 확립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교육·환경 급속한 산업화 물결속에 경기도는 전국에서 교육여건이 가장 열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도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97년 489억원의 교육비 지원을 올해 9천277억원으로 늘리는 등 교육예산 확충에 열의를 보여왔다. 특히 300가구이상 아파트 건설시에도 학교용지가 확보될 수 있도록 하는 학교용지확보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 10년간 1조원이상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텄다. 1천만 도민의 숙원인 경기교육대 설립 추진도 빼놓을 수 없는 민선2기의 성과다. 매년 도내 초등학생 수는 급증하고 있으나 이를 가르칠 교원이 턱없이 부족, 경기교육대 설립이 도민들의 오랜 바램이었다. 이에 경기도는 교육부, 인천교대등과 합의해 오는 2005년 안양 석산부지에 경기교대(경인교대 경기캠퍼스)가 문을 여는 쾌거를 이뤘다. 이로인해 만성적인 초등교원 부족문제 해결과 교육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교육계는 기대하고 있다. ◇주민복지 노령화 시대에 대비한 노인복지 강화와 장애인 복지시설 확충, 청소년 육성 등을 통해 소외된 주민을 어루만졌다. 먼저 노인복지를 위해 기금 100억원을 3년간 앞당겨 조성하고 노인복지 5개년 계획수립 실천(9천7777억원), 노인전문요양시설 확충, 보건소 한방진료 확대, 전국 최초 가정 도우미 배치, 홀로사는 노인 비상호출 시스탬 구축, 경노당 환경개선 사업 추진 등을 통해 노인들 스스로 자랑하는 노인복지정책을 실현했다. 또 장애인을 위해 전국 최초로 장애인 복지기금 100척원 조성, 장애인복지전담기구 신설, 법정의무고용비율 2% 초과달성, 장애인 종합복지회관 건립 등을 이뤘다. ◇지방행정 민선2기 출범전까지 대부분 공무원들은 중앙정부가 내려 보내는 법령과 제도, 정책 및 시행지침을 수동적 집행하는 것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고 업무를 처리해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난 4년동안 경쟁력을 최우선시하는 민간기업의 CEO 개념을 지방행정에 접목시킨 결과 하청의식이 많이 사라지고 우리 스스로가 해낼수있다는 주체의식이 상당부분 뿌리를 내렸다. 이과정에서 건교부 등 중앙정부 관계자는 경기도 공무원의 방문을 꺼리는 기현상을 빚기도 하는 등 도처에 ‘경기도 대항마(?)’를 만들기도 했으며 상당수 공무원들은 가정에서 하숙생으로 불릴 정도로 고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 현실과 괴리감속에 지역 발전에 발목을 잡거나 지역의 미래를 여는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지역출신 국회의원 등과 협력, 관계부처에 끈질긴 설득작업을 편 결과 한강수계법 제정 등 모두 27개에 달하는 법령을 새로 만들거나 고치는 게적을 남겼다. /김창학기자 chkim@kgib.co.kr

이백오십년전 그대로... 정겨운 사람 내음 물씬

장(場)은 언제나 동트기 전부터 꿈틀거린다. 가축들의 울부짖음과 개짖는 소리가 온갖 장물(場物)들을 한가득 실은 장차들의 경음기 소리와 뒤엉켜 오케스트라 화음이 되고, 장꾼들이 부지런히 좌판을 펼치면 장은 아침 햇살이 퍼지기도 전에 북적대기 시작한다. 아침 7시가 채 안돼 오산장은 어느새 손님을 맞을 채비를 끝낸 500여명의 장꾼들로 꽉 들어찼다. 오산시 중앙동사무소와 성호초등학교 사거리에서부터 오산대교까지 약 4km 사이에서 끝자리가 3일과 8일로 끝나는 날에 서는 오산장은 아직도 사람 사는 내음이 물씬 나고 인심과 흥정으로 아우성과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오산장은 1792년에 발간된 ‘화성궐리지’와 1863년에 발간된 ‘대동지지’, 그리고 1899년에 나온 ‘수원부지’에 그 명칭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최소 250년의 역사를 간직한 것으로 추정된다. 1900년대초 경부선 철도의 개통으로 서울의 남대문·동대문시장 및 부산에 물품을 직송했던 오산장은 수원장과 화성의 조암·발안장으로 연결돼 화성·오산 일대의 남부시장권을 형성했다. 근대에 들어서도 오산장은 각종 문헌에 나타난다. 1911년에 간행된 ‘한국수산지’에는 “오산장은 수원군내 5개장(성내장·성외장·오산장·발안장·안중장)중 성내장 다음으로 물자의 집산이 대단히 번성했다”고 기록돼 있다. 또 ‘오산시사’에는 1926년 오산장의 거래액은 23만8천원이고, 오산장을 찾는 사람은 하루 평균 1천명, 거래자는 800명정도라고 구체적인 통계수치까지 밝히고 있다. 6·25전쟁 직후 오산장은 기존 장터에 새장터를 개설해 구장터는 끝자리가 8일, 새장터는 3일인 날에 장이 섰다. 그러나 구장터 집중현상으로 인해 현재 새장터에는 상설점포 상인이, 구장터에는 장돌뱅이들이 중심이돼 신·구장터가 통합 운영되고 있다. 가축전·잡곡전·채소전·약초전·의류전·잡화전·먹거리전 등 장물별로 세분화된 오산장의 겉모습은 평화스러웠다. 이중 기자의 호기심을 끈 것은 가축전. 화성 사강장에서 만난 소몰이 명수 홍사민옹(81)은 오산장은 수원장과 더불어 우전세(牛田勢)가 강해 100리길을 걸어 십여마리의 소를 몰고 갔었다고 증언했다. 오산장의 토박이 장꾼들도 불과 20년전까지만해도 소몰이꾼들이 적게는 3마리에서 많게는 30마리까지 소를 이끌고 오산장을 비롯, 인근의 수원장·화성장·발안장·용인장 등을 다녔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오늘날 오산장에는 우시장은 간데없고, 소규모 가축전이 옛 영화를 대신하고 있다. 가축전은 오산장에서 100m가량 떨어진 오산복개천 하상주차장에서 열린다. 옛 우전의 명성에 힙입어 가축전은 오산장에서도 가장 거래가 왕성해 장 중앙부의 넓은 공터에서 열렸으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몇년전 외곽으로 밀려났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있는 듯 더위에 지쳐 힘없이 누워있는 토끼·닭·꿩·오리·염소·개들이 새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냥·수렵·경비·투견 등의 용도로 쓰이는 특수견을 전문으로 파는 ‘개장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양주석씨(46)가 울퉁불한 손으로 팔목을 잡아끌었다. “이 개는 ‘허리케인 롯트바일러’란 건데 독재자 아놀드 히틀러의 애견이었다”며 족보 자랑부터 늘어놓은 양씨는 트럭에서 자신이 만든 종합 개 카탈로그를 꺼내보이며 개 강의를 시작했다. 양씨는 점점 시들해져가는 5일장 활성화 방안에 대한 10여년간의 연구성과(?)도 털어놨다. “시나 관계당국에서 더럽다고 자꾸 밖으로 내몰면 안돼. 장꾼들에겐 생존이 달린 문젠데 자꾸 내쫓으면 죽으라는 소리지.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해도 전통을 무시하면 큰 코 다쳐. 가축전은 오산장을 대표하는 명물전이야. 충분 진천장과 같이 점포가 있는 상설 재래시장 상인과 전통 민속 5일장 장꾼들의 발전을 공동 모색할 수 있는 계획안이 마련돼야해.” 초여름이 시작되는 오산장에는 모내기를 끝나고 한숨을 돌린 농사꾼과 인근 주민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투박하고 거친 손에 바를 화장품을 사러나온 농부의 아낙네들, 그동안 농사일로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아이들과 남편의 옷가지를 챙기러 나온 주부들, 모처럼 동네 사람과 어울려 막걸리라도 한잔 걸치려고 나온 촌부들. 그래서 장은 200년전 그 때를 재현이라도 하듯 인심과 온정이 가득했다. 사방이 십자로로 뚫린 오산장 골목골목에 펼쳐진 장꾼들의 좌판은 다른 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인 할머니가 장돌뱅이로 잔뼈가 굵은, 조금은 되바라져 보이는 또래 할머니 장꾼에게 1천원을 건네며 마늘 한되박과 함께 500원을 거슬러 받고 있었다. “한 접에 100원을 주면 50원을 거슬러 받을 때부터니까 이 할멈 알고지낸지가 20년은 족히 넘지.” 그러나 오랜 친구로 보이는 두 할머니는 서로의 이름도 성도 아무것도 몰랐다. 장꾼들은 이장 저장 돌며 적어도 5일에 한번은 만나는 사이인데도 이웃 장꾼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김씨’ ‘이씨’ ‘박씨’라고 부르면 서로 알아듣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알면 속상하지. 장꾼들 사연을 들어보면 소설 몇권은 쓸 걸.” 자신을 ‘김씨’라고 소개한 장꾼이 훈수를 놨다. 장을 걷고 있는데 부부로 보이는 장꾼 내외가 고개를 떨구고 기자의 시선을 애써 피했다. “낯이 많이 익은데, 저 혹시…” “예 맞아요. 고양 일산장에서 만났었죠?” 기억이 떠올랐다. 올 봄 일산장에서 도장을 새기는 남편 옆에서 소일거리를 거들고 있는 부인이 너무 미인이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찍지 말라”며 버럭 화를 내며 카메라를 막았던 그 아줌마였다. “그땐 미안했어요. 장에 처음 나온 ‘신삥’일 때라서 좀 당황했어요. 게다가 신문에 우리 사진이라도 실려 사람들이 알아보기라도 하면….” 말을 흐렸지만 무슨 말인지 금새 접수했다. 남편은 공학박사였는데 사업이 부도가 나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한 끝에 도장을 파기로 작정했다는 것. “처음엔 남편 혼자 다녔는데 지금은 둘이 같이 다녀요. 도장이 작아서 손이 잘 타거든요. 남편이 이름을 새기는 동안 저는 도장을 지켜요. 도장 팔 손님들의 이름도 접수하고.” 일산장에서와는 달리 오산장에서는 제법 어설픈 장꾼 냄새가 났다. 그래도 이들 장꾼은 왠지 고상하고 지적인 인텔리 냄새가 풍겨 5일장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지나친 고정관념일까. 국·보물급 문화재 관리 실종의 현장인가. 청자·백자·놋그릇·은수저·촛대·불상, 그리고 200여개의 고물시계와 수천개의 옛날돈들이 장바닥에 진열된 ‘벼룩만물상’이 눈길을 끌었다. 오산장에서 10년째 벼룩만물상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 장꾼은 3년전 2만원에 청자를 사서 5만원에 팔았는데, 나중에 5만원에 산 사람이 300만원에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능청을 떨었다. 오산장에는 하루 평균 2만명의 손님이 찾는다는 게 시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손님의 70%는 오산 시민이고, 나머지 30%는 용인 남사면, 평택 서탄·진위면, 화성 정남·동탄면 등 인근 주민들이라고 했다. 이들이 흘리는 쌈지돈이 대략 4∼5억원정도 된다고 하니 손님 1인당 2만원 정도를 장에서 지출하는 셈이다. 한편 오산시는 40여억원을 들여 지하주차장, 아케이드 설치, 투스콘 포장 등 환경개선사업을 실시, 오는 2003년까지 오산장을 현대화된 백화점식 시장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난장을 펼치고 있는 장꾼들은 다른 장에 비해 밥벌이가 되는 오산장이 현대식으로 바뀌면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오산장에는 상설 점포 상인들이 2천여명인데 반해, 난장을 펼치는 떠돌이 장돌뱅이들은 500여명으로 수적 열세에 있다. 수원장과 더불어 경기남부권의 큰 장세를 형성했던 오산장. 난장을 펼쳐지고 장꾼들과 월남치마에 장바구니를 둘러맨 손님간 구수한 입담과 흥정이 오가는 오산장이 현대화란 거대한 물결속에 영원히 잠길지도 모를 일이다. /고영규기자 ygko@kgib.co.kr

※달거리 사설

네가 나를 볼 양이면 심양강 건너와서 영화분(鉛華粉)에 심었던 화초(花草) 삼색도화(三色桃花) 피었더라. 이 신구 저 신구 잠자리 내 신구 일조낭군(一朝郞君)이 네가 내 건곤(乾坤)이지 아무리 하여도 네가 내 건곤이지. 정월(正月)이라 십오일(十五日)에 망월(望月)하는 소년(少年)들아 망월도 하려니와 부모봉양(父母奉養) 생각세라. 이월이라 한식(寒食)날에 천추절(千秋節)이 적막(寂寞)이로다 개자추(介子推)의 넋이로구나 면산(綿山)에 봄이 드니 불탄 풀 속잎이 난다. 삼월이라 삼진(三辰)날에 강남(江南)서 나온 제비 왔조라 현신(見身)한다. 적수단신(赤手單身)이내 몸이 나래 돋친 학이나 되면 훨훨 수루루루룩 가련마는 나하아에 지루에 에도 산이로구나. 안 올림 벙거지에 진사상모(眞絲象毛)를 덤벅 달고 만석당혜를 좌르르르르 끌며 춘향아 부르는 사람의 간장이 다 노근다. 나하아에 지루에 에도 산이로구나. 경상도(慶尙道) 태백산(太白山)은 상주(尙州) 낙동강(洛東江)이 둘러 있고 전라도(全羅道) 지리산(智異山)은 뒤(두)치강(豆治江)이 둘러 있고 충청도(忠淸道) 계룡산(鷄龍山)은 공주(公州) 금강(錦江)이 다 둘러 있다. 나하아에 지루에 에도 산이로구나. 좋구나 매화(梅花)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안방 건저방 가루닫어 국화(菊花) 새김에 완자 무늬란다. 좋구나 매화(梅花)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어저께 밤에도 나가 자고 그저께 밤에는 구경 가고 무슨 염치로 삼승(三升) 버선에 볼 받어 달랍나. 좋구나 매화(梅花)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나 돌아감네 나 돌아감네 떨떨거리고 나 돌아 가누나. 좋구나 매화(梅花)로다 어야 더야 어허야 에∼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

8강전 각종 사건사고

“흥분해서 기절하고, 응원하다 넘어져 다치고…”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이 열린 22일 오후 경기도내 곳곳에서 열린 장외 응원장에는 승부차기까지 간 숨막이는 경기만큼이나 각종 사건, 사고들도 잇따랐다. 그러나 대부분 경미한 사고들로, 경기가 열리는 시간에는 우려할 만한 사태는 빚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및 일선 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도내에 월드컵 경기와 관련해 발생한 안전사고는 모두 30건으로 이중 28건이 병원으로 이송됐고 2건은 응급조치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경우는 응원인파에 밀려 입은 타박상이나 과도한 응원전으로 인한 기절 및 쇼크가 가장 많았다. 이날 4만여명이 몰린 월드컵 수원경기장에는 한모씨(25·여), 박모군(17) 등 6명이 경기도중 흥분한 상태에서 기절해 119 구조단으로부터 산소호흡 등 응급조치를 받은 뒤 인근 아주대병원 등으로 후송됐다. 경기장 서측 정문에서 응원을 하던 광모군(10)이 응원 인파에 밀려 넘어지면서 무릎을 다쳐 현장에서 치료를 받았고, 북측 출입구에 있던 이모씨(23)는 타박상을 입어 119 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는 등 모두 6명이 부상을 입었다. 부천 종합운동장 등에서 응원전을 펼치던 유모양(18)과 방글라데시인 루키씨(28) 등도 실신, 응급처치를 받았다. 하남 동부초교 운동장에서는 조모양(13)이 발목을, 의정부 공설운동장에서는 최모씨(47)가 오른쪽 발을 각각 다쳐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와관련, 도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경기가 워낙 숨막히게 진행되다 보니깐 다치거나 기절 또는 실신하는 사람들이 이탈리아 경기때보다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월드컵 특별취재반

감격... 환희... ’이보다 더 기쁠수가’

“하늘이 울리고 땅이 진동하는 승리의 함성이 온나라에 울려 퍼졌다” 홍명보 선수의 승부차기가 골문을 통과하는 순간, 승리의 함성은 하늘을 치솟았고, 거리는 승리를 축하하는 시민들이 만들어낸 장엄한 물결로 붉게 물들었다. 또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은 너나가 따로없이 서로를 껴안고 승리의 눈물을 서로 닦아주며, 한민족의 긍지를 세계만방에 보여준 태극전사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또 시민들은 4강에 이어 “오∼필승코리아”와 ‘우승’을 외치며 밤새도록 거리를 행진하고, 차량들도 장단에 맞춰 경적을 울리며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등 휴일을 맞아 온나라에서 승리의 축제가 열렸다. 수원 월드컵경기장에 모인 4만명의 시민들은 4강이 확정되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아리랑’과 ‘필승코리아’를 30여분간 외쳤다. 또 이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아주대학교에 있던 1만명과 합세해 순식간에 도로를 점거한채 수원의 ‘박지성’과 ‘안정환, 이운재’를 연호했으며, 저녁이 되면서 수원남문도 중·고교생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승리를 축포가 곳곳에서 터졌다. 영통 중앙공원과 서울농생명과학대학에서도 1만여명의 시민들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목청 높여 함성을 질렀으며 대로에는 붉은색 천과 태극기를 매단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거리의 시민들과 손을 흔들며 달렸다. 스텐드와 필드를 붉은색으로 물들인 부천종합운동장에는 6만5천여명의 시민들이 승리가 확정되자 손수건과 응원도구를 하늘로 던지며 감격했으며 시민들은 서로의 어깨를 맞잡고 하늘이 울리고 땅이 흔들리는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또 이날 경기장 주변과 부천역 주변은 붉은색 옷을 입고 승리를 축하하는 젊은이와 가족들이 거리와 음식점마다 넘쳐나 서로서로가 승리를 축하하며 밤새도록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종합운동장에 모인 5만여명의 시민들도 자리를 박차고 4강신화가 현실로 다가오자 안양1번지 등 도심으로 몰려나와 승용차의 문을 열고 태극기를 흔들었으며, 음식점과 호프집 등에는 자리가 없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손님으로 붐볐으며, 밤새 승리를 자축하는 축배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성남 종합운동장과 분당중앙공원 등에 운집했던 8만여명도 승리에 도취해 거리로 뛰어나와 아파트에서 시민들고 합세, 수백명에서 수천명씩 무리를 지어 ‘대∼한민국’등을 외쳤고, 공원의 분수대에능 승리에 도취한 젊은이들이 물에 뛰어들며 승리를 자축했다. 일부여성들이 실신해 119차량이 응원장 주변을 요란하게 내달렸지만 시민들의 승리함성은 그칠 줄 몰랐다. 안산시 6만명의 시민들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목청높여 함성을 지르며 거리행진을 벌였고, 중앙역 주변과 상록수역 주변은 저녁이 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시민들이 몰려나와 클론의 ‘월드컵 송’에 맞춰 곳곳에서 측석 춤판을 벌이며 기뻐했다. 김포시 시민회관과 시청대회의실에서도 2천여명의 시민들이 붉은 옷을 입고 한국팀을 응원한뒤 승리가 확정되자 북을 치며 거리행진에 나서 태극전사들의 이름을 부르며 4강신화에 감격했다. 인천 문학경기장과 야구장 등에 있던 9명여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인천의 도심과 도로는 붉은 옷으로 채워졌고, 시민들의 얼굴에는 승리에 대한 기쁨으로 가득찼다. 이와함께 저녁이 되면서 젊음의 거리인 동인천역 주변은 승리를 축하는 젊은이들의 물결로 넘쳐났으며, 삼페인과 맥주 등을 거리에 뿌리며 승리의 감격을 나눴다. 인하대와 부평신트리공원에 있던 시민들도 부평역 광장 등 도심 곳곳으로 몰려나와 북을 치며 목청높여 ‘대∼한민국’과 ‘오∼필승코리아’를 외쳤고, 술집과 음식점마다 승리를 축하하는 시민들의 잔치판이 됐다. 월드컵경기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월드컵 4강, 첫승과 16강이 목표였던 태극전사, 그들의 신화창조에 경기·인천지역 전체가 밤새도록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월드컵특별취재반

환호의 붉은 물결... 대한민국 뒤덮어

태극전사와 함께 4천500만이 숨죽이며 함께 뛰었다.12번째 선수인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지칠대로 지친 태극전사들이 쓰러질 때는 함께 쓰러져 아파하고, 위기를 넘겼을 땐 안도하며 그렇게 120분간의 사투를 함께 했다. 대형스크린이 설치된 곳에서는 어김없이 군중들이 몰려 들어 과천경마장 10만, 인천 문학경기장과 야구장 9만, 부천종합운동장 6만5천, 수원 월드컵경기장 5만 등 경기·인천지역에서만 100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응원전을 펼쳤다. 수원 월드컵경기장에는는 4만석이 가득찬 가운데 아주대 체육관 1만명, 영통 중앙공원과 서울농생명 과학대, 청소년문화센터 등에 1만여명이 모여 거대한 함성과 물결로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했다. 이들은 전반전이 득점없이 비기고 연장전에 들어가자 모두 자리에 일어나 선수들에게 힘을 모아주었으며, 페널티킥에서 이운재선수가 공을 막아내고, 홍명보선수가 골을 성공시킬때는 경기장과 응원장이 무너질 듯한 함성이 퍼졌다. 이들은 전반전 지친 한국선수들이 몰릴때는 안타까운 탄식을 내며 자신의 일처럼 슬퍼했지만 승리를 확신한 듯 끝까지 남아 태극전사들을 응원했다. 특히 아주대체육관에 모인 1만여명의 시민들도 지난번 이탈리아전에서 페널더킥을 실축했던 안정환선수가 이날 골을 성공시키고 곧바로 이훈재 선수가 골을 막아내자 안선수가 행운을 몰고왔다며 체육관이 떠나갈 듯한 함성을 질렀다. 도심의 응원전은 농촌지역까지 확대 이날 이천지역은 임대아파트 업체가 이천종합운동장에 나온 시민들에게 수백만원 상당의 기념품을 제공했다. 부천 종합운동장은 이날 수만명의 시민들이 몰려들면서 스텐드는 물론 필드까지 개방, 온경기장을 붉게 만들었다. 6만5천여명의 응원단은 질서정연하게 120분간 내내 북소리에 맞춰 함성을 지르며 태극전사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과천 경마장에는 도내에서는 가장 많은 인파인 10만명이 몰려들어 경기내내 파도타기와 함성으로 응원전을 펼쳤으며, 홍명보선수의 골로 승리가 확정될 때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거대한 물결응원을 펼쳤다. 대형스크린이 설치된 성남 종합운동장과 분당중앙공원은 수만명의 시민들이 오전부터 나와 페인팅과 각종 응원도구를 들고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안산시 고잔동 올림픽기념회관은 경기 시작 3시간전부터 몰려든 4천여명의 시민들은 질서정연하게 응원전을 펼쳤으며, 자동차전용극장과 성포예술광장 등 모두 6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붉은 수건을 흔들며 태극전사들를 지원했다. 이천수를 배출한 인천 부평고교 체육관은 경기시작 3시간전부터 학부모와 학생, 동문 등 1천여명이 모여 체육관이 떠날갈 듯한 응원전을 펼쳤으며, 경기가 잘풀리지 않던 후번 이천수선수가 교체선수로 입장하자 “이천수, 이천수”를 연호했다. 인천 문학경기장(6만명)과 야구장(3만명) 등 9만여명이 모였으며 시민들은 아침 일찍부터 몰려들어 한국팀의 16강진출을 확정한 문학경기장을 보며 기뻐했다. 또 인하대운동장 4만명, 부평신트리공원 2만명, 계양야외공연장 등 인천지역에는 8개소에 30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대형스크린이 설치된 거리나 학교 체육관, 공원 등지로 몰려나와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박수를 보냈다. 특히 이날 경기·인천지역에서는 100만명이 훨씬 넘는 시민들이 거리응원전을 펼쳤고, 나머지도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음식점 등에 30∼300명씩 모여 한국선수들을 응원하며 한민족의 가능성과 희망을 확인하는 응원전에 동참했다./월드컵특별취재반

안양공고 ’이영표 선배 잘 싸웠다’

“대표팀의 ‘8강신화’를 견인한 이영표 선배가 대표팀의 모든 선수들과 함께 마침내 ‘4강신화’를 이뤘습니다” 월드컵 대표팀이 광주 빛고을에서 스페인과 8강전을 벌이는 22일 이영표 선수(안양LG)를 배출한 안양시 만안구 안양공고 운동장에는 이 학교 박승익 체육부장을 비롯 축구부팀 주장 배상준군(18) 등과 학생 등 10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이영표 화이팅’, ‘대한민국 만세’등을 연호, 학교가 떠나갈듯 했다. 이들은 이영표 선수가 공을 잡을 때마다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고 이어 승부차기에서 이운재 선수가 스페인 선수의 볼을 잡아 내는 순간 모두 어깨동무를 한 채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불렀다. 승리의 기쁨을 이기지 못한 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나와 시민들과 박수를 치며 거리를 내달렸다. 이모군(17)은 “이영표 선배가 지난 1일 연습도중 왼쪽 종아리 근육 파열로 포르투갈전에 뛰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스페인전에서 믿음직스럽게 플레이를 펼쳐 너무 자랑스럽다”며 “오늘처럼 대한민국이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학교 박승익 체육부장도 “지난 18일 이영표 선수가 부상을 털고 이탈리아전에 출전, 연장 후반 안정환 선수에게 볼을 연결해 8강 진출을 확정짓던 순간보다 오늘이 더 감격스럽다”며 “오늘의 기쁨이 새로운 에너지가 돼 국운이 풀려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말했다. /월드컵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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