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규제 개혁 안 되는 진짜 이유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만나 ‘규제개혁 프로세스 개선방안’을 전달했다. 그 자리에서 박 회장은 “회장으로 4년 반을 일하며 38차례 규제개선 건의를 했지만 상당수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영리병원 설립 허용 등 건의사항 9건을 담은 ‘혁신성장 규제 개혁과제’를 기획재정부에 건의했다. 이제 이런 건의도 지겨울 정도다. 그래도 경제단체들이 다시 꺼내든 이유는 최근 김 부총리가 3개월이라는 기한까지 정해가며 혁신성장과 규제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은 우리나라의 해묵은 과제다. 정부는 이미 20년 전인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때 규제개혁위원회를 설립해 기존 규제는 재검토하고 신설 규제는 사전심사를 의무화하는 등 규제 간소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했다. 역대 대통령마다 ‘규제 전봇대를 뽑는다’, ‘손톱 밑 가시를 뽑는다’, ‘규제 암 덩어리’ 등의 표현을 써가며 공무원들을 독려했으나 별무신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월 22일 열린 규제개혁 토론회에서 “혁신성장을 위해 과감한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으나 지금까지의 성적표는 낙제이다. 아무리 대통령 의지가 강한들 이익집단의 반발, 사회적·이념적 갈등,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등으로 안 되고 있는 것이다. 김동연 부총리도 국회 답변에서 규제개혁이 안 되는 이유는 한 마디로 이해당사자의 기득권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무원은 쏙 뺐다. 그러면서 규제 개혁은 사회보상체계 변화와 관련돼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마디로 어렵다는 얘기다. 역대 5명의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외쳤건만 안 되는 이유가 뭔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규제개혁을 할 수 있는지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 차량공유업체 우버는 택시업자의 반발로, 원격의료는 의료계 일부의 반발로, 숙박공유업체인 에어비앤비는 공중위생관리법 때문에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해관계자와 관련법이 실타래처럼 엉켜있고 또 공무원들의 소극적 업무태도도 한 몫 단단히 한다. 20대 국회 들어 기업 관련 법안 1천여 건 중 690여 건이 규제 법안이다. 경총 보고서에 따르면 영리병원 설립과 원격의료 허용 등 의료 분야의 규제만 풀려도 최대 37만 4천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한다. 규제의 30% 이상은 법규개정 없이 공무원의 적극적 법규해석만 가지고도 가능하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결국 규제개혁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 가장 무섭기 때문이다. 지금 정권은 지방권력까지 장악한 힘센 정권이다. 총선 전까지 밀어붙일 동력이 충분하다. 꼭 없애야 할 규제라면 소위 피해 본다는 기득권 이해관계자들에게 보상을 주고서라도 함께 논의해서 해결해야 한다.

[사설] 근로시간 단축 단속 유예, 그 이후의 해법

본보 19일자 사설에서 주 52시간 근로제의 문제점과 단속 유예기간을 두어야 한다는 내용의 제안을 하루 만에 정부가 받아들인 것은 다행한 일이다. 20일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결정됐다. 7월 실시되는 ‘주 52시간 근로제’와 관련해 연말까지 사업주 형사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두기로 한 것이다. 불과 시행 열흘을 앞두고 정부가 책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번 유예조치와 관련해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는 측과 처벌유예이지 시행유예가 아니라는 측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어 국론분열까지 예상된다. 냉정하게 말하면 정부는 이 제도를 폐기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법도 통과된 마당에 충격 최소화와 연착륙을 위한 일시적 유예조치이다. 폐기와 존속으로 싸우는 것보다 합리적 타협안을 찾는 게 옳다. 정부는 유예기간 동안 제도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기업들의 애로를 경청해 부작용을 줄일 대책을 마련하고 기업도 제도의 근본취지를 공감하고 시대의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선진국에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탄력근로시간제의 기간 연장, 선택적 근로시간제, 근로시간 저축제도 등을 우리 현실에 맞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독일과 영국은 하루 평균 근로시간이 일정 시간을 넘지 않는 선에서 노사가 근로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프랑스는 특정 계절이나 시기에 일이 몰리면 당국의 승인을 받아 근무시간 한도를 아예 없애기도 한다. 미국과 홍콩은 근로시간 제한을 법에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세부적인 보완책도 없이 덜컥 근로시간만 줄이겠다고 하니 이런 사태가 온 것이다. 다행인 것은 지방선거 압승 이후 독선적인 정책 드라이브가 예상됐지만 현장의 소리를 반영한 일이다. 남은 6개월 동안 다음 기조에 역점을 두고 실천한다면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첫째, 정부는 당장 산업현장 목소리를 듣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해답은 현장에 있다. 둘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새로운 근로시간 개념의 도입이다. 현행 근로시간 제도는 공장형 노동과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업무의 성취나 질로 생산성을 판단하는 정보통신 등 직무가 늘고 있다. 셋째, 개정 근로기준법은 선언적인 법으로 끝나야지 사업주를 옥죄고 독단적인 노동정책을 시현하는 수단이 돼선 안 된다. 근로자를 위한다는 법이 근로자를 실직과 임금 인하로 내몰아서야 되겠는가. 지금 버스기사들 이직 움직임으로 ‘버스 대란’의 조짐이 보이고 산업계 각 분야별로 전전긍긍하는 현실을 정부가 모를 리 없다. 원칙은 주 52시간 근무다. 운용은 그 틀 안에서 탄력적으로 해야 한다. 이런 내용들을 법과 세부지침에 반영해 6개월 후면 노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를 바란다.

[사설] 탈(脫)원전은 공짜가 아니다

지난 15일 한국수력원자력은 긴급이사회를 열어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와 신규 원전 4기 사업 백지화를 의결했다. 한수원은 후쿠시마 사고 및 경주 지진에 따른 강화된 규제환경과 최근 운영 실정 등을 감안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고리 1호기 영구정지를 선언한 1주년에 맞춰 정부의 탈(脫)원전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지난해 10월 들어보지도 못한 주민 공론화위원회까지 만들었으나 결과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였다. 권고한 지 8개월 만에 정부의 탈원전 로드맵대로 가고 있다. 대통령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대선 공약에 반대할 국민은 없다. 하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으니 문제다. 원전 대체물인 태양광, 풍력, 지열 등 소위 ‘신재생에너지’의 비싼 단가, 불안정한 수급이 결코 해결책이 되지 못함을 보여줬다. 이번 한수원의 결정은 두 가지 관점에서 걱정이 앞선다. 첫째, 탈원전을 추진하더라도 사우디 등 외국의 원전 수출만은 지원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인데 이게 과연 가당키나 한 것인지 묻고 싶다. 발주처는 위험하다고 원전을 없애면서 남에게 수출하는 꼴이다. 사우디 측에선 우리 원전에 관심을 보이다가 최근 이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 원전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시각이 원인이 되고 있지 않은지 밝혀야 한다. 둘째, 원전 4기 철회로 일자리 3만 개가 날아갔다는 원전산업 실태조사 보고서가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원전 2기를 건설할 때 참여하는 대기업이 7곳이지만 중소기업은 1천993곳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전력의 영업이익도 전년보다 58.7%나 줄었다. 전력을 싸게 생산하려면 발전단가가 낮은 원전 가동률을 높여야 하는데 가동률이 올해 1분기에 50%대에 머물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정부는 에너지 전환계획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고 하나 그 말을 믿을 국민은 없다. 시간문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각국에서는 원전 축소를 결정했으나 차츰 변하고 있다. 일본은 2030년까지 원전 비중 20% 이상 유지방침을 밝혔고 미국과 프랑스도 원전 폐쇄·축소 방침을 사실상 중단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신재생에너지는 출력이 불안정해 원전을 대체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보다 안전한 원전건설에 집중하는 것이 답”이라고 했다. 우리의 원전 비중은 27%이고 프랑스는 72%다. 이념도 좋고 신념도 좋지만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최선이다. 원전의 경제성과 기술 수출 가능성을 살려야 한다. 탈원전은 공짜가 아니다. 전문 분야라고 국민의 관심이 소홀한 틈을 타 에너지 백년대계를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될 일이다.

[사설] 주 52시간 근무제, 도대체 누구 말이 맞나

7월 주(週) 최대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난리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다음 달부터 지켜야 한다. 이미 법이 통과됐기 때문에 찬성의 입장을 여기에서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현장에서 닥칠 파고를 직접 겪을 사업자와 근로자의 입장이 중요하다. 걱정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한 마디로 경직된 근로시간의 단축은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본급과 각종 수당이 많은 임금 구조여서 근로시간이 줄면 그만큼 임금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또 근로시간을 대체할 정규직 추가 채용도 부담스럽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기업 인건비 추가 부담은 총 12조3천억원에 달한다. 대기업 임원 운전기사로 밝힌 한 남성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수입이 반이나 줄 것”이라며 “기본급이 적어 야근과 휴일 근무를 하더라도 수당을 많이 받는 게 좋은데 왜 나라에서 억지로 저녁 있는 삶을 강요하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이렇게 되면 그 기사는 그만두고 회사는 자가운전이나 대리기사를 쓰게 될 공산이 크다. 기사의 과잉근로를 막고자 한 제도가 기사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가 된다. 근로시간 단축의 가장 큰 목적은 근로자 삶의 질 개선이다.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논리도 함께 있다. 하지만 OECD 연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가 주 35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했을 때 고용 창출 효과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11일 ‘근로시간 단축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업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구체적 사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엔 부족했다. 이제라도 정부는 법 시행 후 드러나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처벌을 유예하고 보다 유연성 있게 대처해야 한다. 정부의 친노동 정책의 부작용이 반기업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취업률 저하와 실업률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시·일용직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줄고 제조업체들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여기에다 주 52시간제 태풍마저 불면 그 후과를 누가 책임져야 하나. 어지러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업 부담을 줄이고 규제개혁, 노동유연성 확보로 민간의 고용 활력을 되찾아 주는 게 정부의 할 일이다. 성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할 게 아니라 정부도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한 번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지방권력까지 잡은 정권이다. 솔직히 인정한다고 해서 욕할 국민은 많지 않다. 다시 제대로 방향 잡으면 박수 칠 국민이다.

[사설] 인천 투표율 꼴찌 오명에서 벗어나야

13일 치러질 전국 지방선거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회담 등에 가려져 관심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지난 주말에 사전선거가 실시됐다. 정책선거가 실종되고 저조한 관심 속에서 치른 사전선거 결과는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을 보여줬다. 그러나 인천은 예외 없이 전국평균 20.1%에 훨씬 못 미치는 17.6%로 전국 시·도 중 14위로 꼴찌권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인천의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은 1995년 제1회 62.0%(전국 평균 68.4%), 1998년 제2회 43.2%(52.7%), 2002년 제3회 39.4%(48.8%), 2006년 제4회 44.2%(51.2%), 2010년 제5회 50.9%(54.5%), 2014년 제6회 53.7%(6.8%)로 전국 시·도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총선과 대선에서도 인천 투표율은 전국 17개 시·도 중 13위가 최고기록일 정도로 하위권을 맴돌았다. 2008년 18대 총선 땐 42.5%로 15위, 2012년 18대 대선 땐 74.0%로 14위, 2016년 20대 총선은 55.6%로 14위, 2017년 19대 대선 땐 75.6%로 13위에 그쳤다. 이러한 낮은 투표율에 대해 여러 가지로 그 원인을 진단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 특성에 따른 주민의 낮은 관심과 정치에 대한 실망일 것이다. 인천 토박이가 별로 없고 호남과 충청을 중심으로 외지인들이 많아 애향심과 지역인물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또한, 서울에 인접하여 서울 의존성이 높고 서울 지향성 때문에 지역 정치보다는 중앙정치에 더 관심을 두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인천시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한 한 국회의원의 방송 출연 발언은 망언임이 분명하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기게 한다. 지방자치는 지역주민이 주인으로 내 지역의 살림을 꾸려갈 일꾼을 내 손으로 뽑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제도다. 올바른 지방자치의 출발은 일꾼을 제대로 뽑는 지방선거이며 지방선거에 따라 결과와 성과도 좌우된다. 지역 특성을 잘 파악하고 주민의 수요에 부응하는 참된 일꾼을 내 손으로 뽑아 당당하게 대표하도록 하고 힘을 실어줘야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 인천은 인구 300만을 넘고 부산시를 넘보는 광역시로 그동안 저조한 투표율을 떨쳐버리는 참여정신이 필요하다. 스스로 당당하게 참여하고 주인으로서 역할을 다 할 때 우리의 자존심을 지킬수 있다. 서해안 평화 협력시대를 책임지고 선도하여 국가 성장을 주도하는 인천시민으로서 정당한 투표 권리를 다 함께 실행하는 당당함과 떳떳함을 보여주자.

[사설]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공직선거법은 선거가 공정하게 행해지도록 하고 선거에서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이다. 이 법의 최대 업적은 돈 쓰는 선거를 없애고 공무원의 선거 개입을 막았다는 데 있다. 모든 법이 다 그렇듯이 현실에 맞게 법을 개정해 법 제정 취지를 지키면서 운용의 묘를 살려야 법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번 지방선거를 보면서 이제 공직선거법이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의 욕설, 고소, 여배우 스캔들 의혹이 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이번 사건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와 개인의 명예훼손 간의 간극을 공직선거법은 보다 현실성 있게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 유권자들이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은 후보의 자질과 도덕성이다. 후보의 여성폭력, 정신질환, 자녀학대 등 유권자가 꼭 알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개인의 사생활이란 이유로 언론보도나 전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면 결국 피해는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공직 후보는 일반인보다 훨씬 무거운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의사처방 치료약을 먹고 상담을 받는 것은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다. 감기 걸린 사람이 약 먹고 링거 맞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 사람이 공직 후보로 나섰을 때는 문제가 다르다. 고도의 정책적 판단과 리더십이 요구되는 공직자로서는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도 수시로 건강검진 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공직선거법은 허위의 사실을 유포한 자에 대해 중하게 처벌하지만,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대목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유권자들은 가짜뉴스나 비방을 목적으로 하는 허위사실 유포를 구별 못 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구체적 병상기록이나 검증받은 녹취록 등이 존재해도 밝히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재명 후보의 의혹 쟁점은 팩트와 당사자의 증언이다. 판단은 결국 유권자가 한다. 공직선거법 제정의 취지는 이미 충분히 달성됐다. 법의 개정방향을 큰 틀에서 제시하자면 첫째, 규제와 단속도 중요하지만, 후보자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둘째로, 새로운 미디어 수준에 걸맞은 선거 홍보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형법의 명예훼손죄에 상충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비방이 목적인지 아니면 후보검증이 목적인지를 구분하는 조항을 삽입해야 한다. 선거는 제대로 된 후보를 뽑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보들이 검증의 칼날에서 피해갈 수 없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사설] 입맛에 맞는 통계방식의 최후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은 3일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의 근거자료는 통계청 통계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통계가 입맛에 맞게 가공된 자료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홍 수석은 1분기 개인 근로자 소득이 최하위 10%를 뺀 나머지 90%에서 모두 늘었다고 했는데, 전국 8천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것에 근로자만 추려서 개인 단위로 바꾼 통계를 내놨다. 근로소득이 없는 실직자나 구직 실패자,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모두 빠져있다. 취업자 4명 중 1명인 비임금근로 자영업자도 제외했다. 가장 고통을 겪는 실직자를 쏙 빼놓고 일자리를 보전한 사람만 따졌으니 신뢰성은 제로다. 김동연 경제 부총리도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문제 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 와중에 국민을 기만하는 왜곡 통계를 만들었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이 통계는 통계청이 아니라 노동과 복지 분야 국책연구소 두 곳이 만들었다고 한다. 통계는 정책 방향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요즘 가뜩이나 여론조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여론이 많은데 이제 통계까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국민은 한숨만 나온다. 정부 통계가 왜곡돼 입맛에 맞게 가공하고 조작하면 그 결과는 재앙에 가깝다. ‘최저임금 1만 원’의 슬로건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이미 실패로 끝났음은 국민이 다 안다. 이번 통계파동도 소득주도 성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억지로 짜 맞추려다가 일어난 참사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잘못된 정책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이 옳다. 인정을 하게 돼 한 번 밀리면 끝장이라는 공포가 정권담당자들 뇌리에 있는 한, 피해 당사자는 국민일 수밖에 없다. 이미 소비와 투자가 줄고 있고 경기가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한들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IMF때 보다도 심각하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이란 어디에서도 검증된 적 없는 이론을 가지고 지난 1년간 국민을 상대로 실험했다. 중간 결과는 참담할 지경이다. 3월 제조업 가동률이 9년 만에 최저로 떨어지고 산업 생산은 5년 새 최대 감소를 기록했다. OECD의 경기 선행지수 조사에선 한국만 9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경제는 소신이나 고집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한 신문사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전직 경제장관 10명 중 9명이 소득증대 성장정책에서 탈피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이대로 가면 올해 말이나 내년에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를 빚는지 귀담아 듣기를 바란다.

[사설] 현실에 맞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낙태죄 폐지

지난 24일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재판소의 첫 공개변론이 열렸다.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둘러싸고 또다시 팽팽한 공방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가족부는 낙태죄 폐지의견을 헌재에 낸 상태다. 위헌으로 결정된 간통죄처럼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OECD 회원국의 80%가 일정한 사유를 포함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고 낙태를 불허하는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도 폐지 여부를 25일 국민투표에 부친 결과 66.4%가 찬성해 낙태를 허용했다. 낙태 허용을 위한 아일랜드의 사회운동에 불을 붙인 건 2012년 31세의 젊은 나이로 숨진 사비타 할라파 나바르였다. 임신 17주 차 사비타는 양수가 터져 아이를 지우지 않고서는 목숨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병원의 거부로 아이도 죽고 사비타도 숨졌다. 이 사건 이후 임신부의 생명에 지장이 있을 때는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도록 규정을 완화했다. 하지만 이번 투표로 조만간 임신 12주 이내 중절수술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고 그 이후는 산모의 건강과 생명에 중대한 위험을 미칠 우려가 있을 때만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으로 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제 헌법재판관의 구성이 달라졌고 시대 또한 변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다. 강간 등 원치 않는 임신은 별문제가 없으나 정상적 부부관계나 불륜, 성에 무지한 어린 미혼모의 경우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아일랜드의 경우를 헌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연 16만건의 낙태수술이 이뤄지고 있으나 실제 행정처분은 최근 5년간 27건에 그쳤다. 낙태를 허용하면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있으나 법이 무서워 낙태를 피하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낙태허용 찬반의 핵심은 현실과 이에 따른 사회적합의가 초점이 돼야지 뻔한 얘기만 한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산모의 건강이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인들 해결은 요원하다. 의도든 실수든 몸에 칼을 대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이 실수로 임신했다고 고백할 때 부모는 이유 불문하고 딸의 건강부터 보고 결정을 내릴 것이다. 낙태가 산모의 건강에 위험하다고 판명될 경우 출산 후 입양기관에 맡기든 아니면 낙태를 시도할 것이다. 미혼모의 굴레를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도 수많은 케이스를 보고 국민투표에 부쳤다. 이번 헌재의 변론에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상황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전 세계적 현실이 반영돼야지, 철 지난 주장만 서로 반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설] 시민단체 정책제안의 진정성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정책대결을 이끌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천경실련과 인천YMCA는 인천시장 후보 4명에게 분야별 공약 25개를 제안하고 각 후보의 공약채택 여부를 회신 받아 공개하였다. 또한, 인천지역 환경단체들도 ‘인천시민이 그린(Green) 인천환경정책’을 발표하면서 공약 반영 여부를 질의했다. 판문점회담과 북미회담 등 국가적 이슈에 의해 지방선거가 무관심 속에서 정책이슈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앞장서 선거 활기를 띠게 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인천시장 후보들이 공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홀히 되거나 누락되는 지역현안을 챙겨주고 정책대결을 이끄는 긍정적인 역할이 분명하다. 그러나 각계각층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제안하는 정책과제나 이슈가 어떠한 과정을 거처 채택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시민의 의견을 나름대로 반영하여 지역에서 원하는 현안 과제임을 내세우고 있으나 검증절차는 단지 각 단체의 내부협의에 그친 것이다. 각 단체의 설립목적과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반영하여 정책과제를 발굴하였으리라 추정될 뿐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각 후보의 채택 여부를 공개함으로써 제시한 공약이 모두 채택되기를 은근히 압박하는 상황이다. 또한 후보 간 치열한 정책 대결을 유도하면서 차별적 접근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촉구하고 향후 실천을 위한 모니터링을 지속하면서 선거 활기를 띠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압박은 자칫 지역 내 갈등을 유발하면서 소모적인 논쟁이 될 소지도 있다. 최근 항만정책에 대한 박남춘 후보와 유정복 후보 사이의 공방은 결코 인천해운항만산업의 발전하고는 거리가 먼 정쟁으로서 시민사회단체가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정당은 각자 추구하는 이념이 다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으로 시민의 선택과 지지를 받도록 노력한다. 시민사회단체가 공통적으로 제안하는 것을 모두 채택하는 것처럼 정당의 정책이 천편일률적으로 같을 수가 없는 것이 정당정치의 기본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단체가 이슈는 제공하되 공약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나아가 공약의 채택 여부를 놓고서 각 시민사회단체가 후보의 지지여부를 거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시민의 알권리와 참여를 권장하고 확대하는 노력이 본질적인 시민의 선택권을 일부라도 제약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단체가 정책제안을 통해서 본의 아니게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그 본질과 진정성이 아닐 것이다.

[사설]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미투’

예상은 했지만 미투 운동이 잠잠해지고 있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찰국장에 의한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서 시작된 한국의 미투 운동이 100일이 넘었다. 고은 시인을 비롯해 안희정, 이윤택, 조재현, 김흥국 등 정·재계, 문화예술계, 교육계 가릴 것 없이 총 망라된 미투 운동은 성경 구절과는 반대로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결과는 미약’한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그동안 미투 운동과 관련해 총 70여 명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으나 구속은 이윤택 등 2건에 불과하다. 국회에 상정된 140여 건이 넘는 관련 법안은 단 한 건도 통과되지 않았다. ‘버티면 산다’는 인생수칙이 어김없이 통하고 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죽는 사람보다 사는 사람이 더 많다는 옛말이 예사롭지 않다. 미투가 수면 아래로 접어들려고 하자 점입가경이다. 사퇴 의사를 밝힌 국회의원은 슬그머니 철회하고, 폭로자를 상대로 오히려 고소를 하고, 막후에서 여론전을 펼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국민이 ‘망각의 민족’임을 잘 아는 족속들이다. 결국, 온갖 수모와 손해를 무릅쓰고 이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만 우스운 꼴이 됐다. 아니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사실을 알린 결과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서는 안 된다. 미국의 코미디언 빌 코스비의 성폭력을 폭로한 여성들이 겪은 수난사를 보면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된다. 30여 년에 걸쳐 60여 명의 여성이 코스비에게 성폭행 및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폭행으로 기소된 형사사건은 단 1건이다. 힘없는 목소리는 묻힌다. 공소시효라는 법적 피난장치도 있다. 우리의 미투는 폭발적인 힘을 얻었다가 태풍의 꼬리처럼 언제 그랬느냐는 식의 전철을 다시 밟고 있다. 제도의 정비와 언론의 지속적 관심이 계속돼야 한다. 폭로자들을 향한 2차 가해가 없도록 세심한 배려도 있어야 한다. 성폭행의 공소시효를 늘리고 공소시효가 지나더라도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면 검사가 기소할 수 있는 미국 일부 주의 경우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캘리포니아 주는 아예 공소시효를 없애기도 했다. 수사, 기소, 처벌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을 버텨낼 피해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시간을 단축해 가해자를 감호치료나 다른 형태의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다. 언젠가는 밝혀지고 처벌된다는 두려움이 있어야 문제가 해결된다. 나는 언제 터질까 두려움에 떨던 가해자가 ‘이제는 끝나가나 보다’라고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또 다른 기회를 노리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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