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총재회담 치고 신통한 예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만나서 악수하고 사진찍고 밥먹고 나오면 그만이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또 있다. 면전에서는 덕담하고 복배해서는 험담하는 것이 여야총재회담이었다. 과거엔 그랬다. 구밀복검(口密腹劍)이란 말이 있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말로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면서도 뱃속으로는 칼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당(唐)나라 현종때 양귀비에게 뇌물을 바쳐 재상이 된 간신 이임보(李林甫)가 충신들을 경계해 입으로는 좋은말 하면서도 뒤로 모사를 꾸며 하나하나씩 주살했다는 고사에서 연유한다. 과거의 여야총재회담이 국민들 눈에는 악수하며 웃음짓지만 속으로는 칼을 품는듯 했다. 그러다보니 쇼아닌 쇼로 그쳐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는 맹물회담이 되곤 했다. 과거엔 그랬다. 대타협의 실행으로 정국전환의 발전적 틀을 잡는 것이 여야총재회담이다. 대타협은 서로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정치협상이다. 상대의 말을 듣기보단 자기의 생각을 더 많이 말하거나 덜주고 많이 얻으려고만 하는 것은 협상이 아니다. 연내 여야총재회담을 두고 말들이 많은 것 같다. ‘물건너 갔다’고도 하고 ‘두고 봐야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과거와 같은 여야총재회담은 아무 쓸모가 없다. 굳이 연내로 못박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해도 상관없다. 여야총재회담다운 참다운 회담의 면모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국민들에게 정치복원의 신뢰를 주는 그런 여야총재회담이 될 수 없으면 아예 갖지 않는것이 더 낫다./白山
겨울스포츠는 주로 실내경기다. 배구슈퍼리그가 곧 개막된다. 오빠부대는 이색 관중이다. 지역경기마다 제각기 스타플레이어를 환호하는 아니 열광하는 오빠부대들이 있다.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이 적힌 피켓이나 현수막을 내거는 것쯤은 약과다. 미친듯이 몸부림치며 연호하기가 예사다. 선수대기실이나 체육관통로를 점검, 사인공세를 벌이기가 일쑤다. 천마리의 학을 접은 선물같은 것을 전하지 못해 안달인 오빠부대 팬들도 있다. 여고생의 우상은 잘 알다시피 대중가요 가수들에게도 많다. 우상이 남자가수인 경우, 오빠부대가 움직인다. 극성팬은 참으로 집요하여 용케도 집을 알아내어 아침저녁으로 대문을 두들기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옛날의 스타들도 그랬다. 가수 조용필, 배구선수 장윤창은 20년전 사단규모의 오빠부대가 동원된 슈퍼스타였다. 조용필은 콘서트를 마쳤으나 문마다 오빠부대가 점거해 경비중인 전경의 옷과 방석모를 빌려 전경으로 위장, 간신히 탈출하기도 했다. 경기장 및 공연장의 이같은 오빠부대 학생을 두고 걱정스럽게 보는 눈들이 많다. 하지만 지나치게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 오히려 운동선수든 가수든 우상이 있는한 적어도 이들이 다른데로 탈선할 틈은 없다. 그리고 때가 지나면 다 추억으로 남는다. 엊그제 오랜만에 조용필콘서트가 텔레비전으로 방송됐다. 30대후반의 여성들이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관중석을 찾는 다복한 모습이 많았다. 그들중엔 왕년의 오빠부대도 있을 것이다. 농구큰잔치, 배구슈퍼리그를 찾는 지금의 오빠부대들 역시 이상스럽게 볼 것은 없다. 다만 그들은 이색관중일 뿐이다. /白山
한국텔레비전방송연기자협회에 가입된 탤런트가 약 8백명이다. 이 가운데 배역을 갖는 출연자는 평균 2백여명이다. TV3사의 드라마 편성률은 높다. 주간 방송시간대의 27%가량을 드라마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배역을 갖는 탤런트는 4분의1밖에 안된다. 항상 4분의 3은 배역이 없는 잠재실업자인 셈이다. 드라마출연이 없으면 수입이 없다. 탤런트들에겐 방송사가 출연여부에 관계없이 전속금을 주는 전속계약제가 없다. 배역 따내기가 가히 경쟁적이다. 톱스타급을 제외하고는 배역얻기가 쉽지 않지만 따지고 보면 톱스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KBS별관이나 MBC, SBS로비는 이를테면 탤런트들의 사랑방이다. 따로 탤런트방이 있긴 있어도 대개는 로비에서 지낸다. 로비라지만 소파며 탁자같은 응접세트가 수십개가 놓여 마치 개방형 응접실 같다. 커피도 마시고 한담을 나누며 시간을 때운다. 새로운 배역자리를 두고 혼자 신경을 쓰던 PD가 지나다가 마침 적역을 발견하곤 하는 곳이 바로 로비다. 로비는 탤런트들의 캐스팅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감독(PD)이 마침 잘 만났다며 당신 고정(고종)이니까 이따 보자고 해서 연속극에 고정출연이란 말인줄 알고 갔더니 고종왕 역할이었다”는 것은 그 탤런트의 얘기다. 새천년을 맞는 연말연시를 앞두고 탤레비전방송마다 특집극이 쏟아져 나온다. 특집극은 비록 단막극일지라도 배역의 활성화에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그렇긴 하나 식상한 국내 텔레비전 드라마의 세가지 병폐가 제발 시정되면 좋겠다. 엿가락처럼 늘리기, 비슷비슷한 소재,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것은 고질적인 3大 병폐다. /白山
기원전 2세기의 작가 파우사니아스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아크로폴리스에는 아테나 여신이 심은 올리브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는 페르시아군의 공격을 받고 에리크토니오스의 사당과 함께 불탔다. 화재가 나고 나서 하루가 지났다. 아테네 사람들이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보니 타버린 나무 줄기에서 길이 50㎝가량의 가지가 돋아나 있더라고 했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에서도 제일 먼저 새 가지를 뽑아올리는 ‘올리브나무’를 그리스에서는 ‘엘라이아’라고 부른다. 로마시대에 쓰였던 라틴어로는 ‘올레움’이다. 이 ‘올레움’이 현대 이탈리아에서는 ‘올리오’로 변했다. ‘기름’을 뜻하는 ‘오일(oil)’의 진화사 정점에는 올리브가 있는 셈이다. 우리 말로는 한역(漢譯)하여 감람(橄欖)나무라고 한다. 감람나무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히브리에서는 올리브 도유의식(塗油儀式)을 받은 사람을 ‘마시악’이라고 부른다. ‘메시아(구세주)’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이 마시악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면 ‘크리스토스’, 즉 그리스도가 된다. ‘도유의식을 받은 이’ ‘기름 부음을 받은 이(anointed one)’ 곧 ‘성별(聖別)된 이’라는 뜻이다. 이 도유의식에 쓰이는 기름은 올리브 기름이다. 올리브는 그리스와 떼어놓고는 상상할 수 없는 나무다. 현자(賢者) 솔론이 아테네를 다스리고 있을 당시 시민들은 올리브 나무를 자를 수 없었다. 올리브나무가 서 있으면 반경 3m 안에는 다른 나무를 심어서도 안되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올리브나무가 생각난다.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 ‘감람나무 열매되어 귀엾게 자라세’라는 찬송가를 부르고 다니던 어린 시절도 떠오른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올리브나무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청하
서울 조계사 주지대행 지홍(至弘)스님이 최근 남다른 칼럼을 썼다. 불교주간신문 ‘불교신문’에 게재한 ‘예수님 오신 날을 축하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지홍스님은 “ ‘예수탄생’자체가 인류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이다. 고통에 시달리는 인류를 위해 대속(代贖)하고 구원하기 위해 낮은 데로 임하고, 기꺼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감내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라고 말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지홍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삭발 염의(染衣)를 한 타 종교인이 감히 성탄절을 축하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사랑은 인종과 민족, 부유함과 빈곤함의 차별없이 모든 이들의 가슴에 품어야 할 덕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종교의 진리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일 수 있으나 종교자체로 절대화되거나 맹신하게 되면 종교의 껍질은 남을지 모르나 사람은 없어지는 웃지 못할 결과를 낳게 된다는 지홍스님은 연말을 맞아 캐럴에 맞춰 예수님의 ‘사랑’을 떠올리고, 사월 초파일이 되면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자고도 말했다. 조계종이 성탄절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앞 우정국로와 전북 김제시 금산사 정문 등 주요사찰 주변에 ‘아기 예수님 탄생을 축하합니다’는 문구와 함께 연등을 든 동자승이 산타클로스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는 캐리커처를 그려 넣은 대형 현수막을 내건 소식도 감동을 준다. 용봉(龍鳳)이란 스님이 기독교인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했는가 하면, 수행중인 또 다른 스님이 만성 신부전증으로 투병중인 기독교인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한 미담도 들려왔다. 이렇게 불교가 축복해주는 1999년의 크리스마스가 더욱 성스럽게 느껴진다. /淸河
해발 582m의 수원 광교산(光敎山)은 수원 시가지를 품에 안고 있는 명산이다. 원래 이름은 광악산(光嶽山)이었다. 고려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친정(親征)하고 환궁하는 길에 광악산 행궁에서 군사들을 위로할 때, 이 산에서 광채가 하늘로 솟아 올랐다는 고려야사가 있다. 이 광경을 본 왕건이 부처의 가르침을 주는 山이라 하여 명산광교(名山光敎)라고 사명(賜名)하였다고 전해 온다. 광교산에는 창성사(彰聖寺)를 비롯한 89암자가 있었다는데 지금 89암자의 자취는 찾을 수 없다. 다만 몇 군데의 절터와 산중에서 가끔 기왓장과 와당(瓦當)이 출토되어, 불령(佛靈)과 호국의 얼이 어려있는 산이라는 전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사시사철 삼림이 울창하여 옛날에는 인근의 5개 부읍 주민들이 땔나무 걱정없이 살았으며,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의 등산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광교산이 무속인들 사이에 계룡산에 이어 굿이 잘 듣는 명산으로 소문나면서 무속인들이 연일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이들 무속인들은 산림감시가 소홀한 밤을 이용해 형제바위, 약사암 등에서 굿판을 벌인다는 것이다. 광교산이 명산인 것은 사실이지만 굿판에 사용했던 돼지머리, 떡, 약과, 색실 등이 산속에 마구 버려져 있는 것은 산림도 훼손되지만 보기에 흉칙스럽다. 더구나 굿에 사용했던 촛불을 켜둔채 하산한다 하니 산불이라도 나면 어쩌려는가. 산불감시원들의 단속보다는 밤에 입산, 굿을 한다는 무속인들의 자제가 먼저 필요하다. /淸河
부처님이 아시세왕의 초대를 받았을 때 일로 ‘아시세왕 수결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왕은 부처님이 설법을 마치고 돌아갈 무렵이면 밤이 깊을 것을 염려해 길에 등을 달았다. 왕궁에서 부처님이 머무르는 기원정사까지 만등을 달아 불 밝혔다. 한 여인이 있어 등을 밝히려 했으나 너무 가난하여 양초 살 돈이 없었다. 궁리끝에 머리를 잘라 판 돈으로 등 하나를 사서 바쳤다. 이윽고 부처님이 기원정사로 돌아가는 도중에 돌연 일진광풍이 일었다. 왕이 밝힌 만등은 일시에 꺼졌다. 오직 가난한 여인이 바친 등불만이 꺼지지 않고 부처님의 발길을 밝혔다.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썰렁하다고 한다. 동전 아니면 천원짜리 몇장이 고작이라는 것이다. 사회복지시설을 찾는 발길도 뜸해 매서운 강추위가 더욱 춥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래도 어쩌다가 사회복지시설을 찾는 이가 더러 있다는 이름없는 시민, 자선냄비속의 외로운 온정은 가난한 여인의 등불과 같은 ‘빈자의 한등’일 수가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욕심 많은 고리대금업자 스쿠루지앞에 나타난 유령은 7년전에 죽은 동업자 마테였다. 생전의 업보로 무거운 쇠사슬을 메고다니는 친구유령의 안내로 스쿠루지는 자기의 미래유령이 보여주는 종말을 보게 된다. 찢기고 더러운 시트에 싸여 돌보는이 없이 팽개쳐져 있는 가엾은 자신의 시체를 보는 순간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고 자선사업가가 될 수 있었다. 영국의 디킨즈가 쓴 ‘크리스마스 북스’의 첫번째 작품에 나오는 내용이다. 스쿠루지가 친구유령을 만난 것은 크리스마스 자선모금을 하는 조카의 권유를 냉정하게 뿌리친 후였다. 우리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이기적인 스쿠루지가 돼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白山
우리가 특별검사제를 도입한 것은 공교롭게 미국에서는 1978년 도입 21년만에 폐지하던 무렵이었다. 모두 20명의 특검이 있었다. 지난 2월 12일 미상원에서 부결되긴 했으나 클린턴을 탄핵까지 몰고간 케네스 스타는 최후의 특검이었다. 스타특검은 1994년 임명돼 5년동안에 무려 4천만달러의 수사비를 썼다. 우리나라 돈으로 한 해에 90억4천만원을 쓴 셈이다. 이렇게 5년동안 돈을 물쓰듯 해가며 캐낸 것이 클린턴 부부의 ‘화이트워터’, 즉 부동산스캔들과 클린턴의 르윈스키 성추문폭로였다. 클린턴은 한동안 정치적 타격이 크긴했으나 다시 회생한 반면에 스타 특검은 인기하락 속에 물러갔다. 미국도 특검활동엔 고위관리들의 증거은폐, 수사방해가 지능적으로 행해져 어려움은 있었다. “정치적 스캔들을 수사를 통해 파헤친다는 것 자체에 한계가 있다. 특검제는 이미 실패한 제도다” 케네스 스타 특검이 남긴 말이다. 옷로비, 파업유도사건 등에 대한 두 특검수사가 마무리 돼가고 있다. 옷로비의 최병모 특검수사는 평가를 받는데 비해 파업유도의 강원일 특검수사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것같다. 만약에 두 특검이 사건을 바꾸어 맡았으면 어떻게 됐을까하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실체적 진실이 강희복 전 조폐공사장과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의 합작품인게 맞는데도 강원일 특검이 의심을 받는다면 그로썬 억울한 노릇이다. 더 두고 볼 수밖에 없다. 특검수사를 재수사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든 최초로 시행된 특검제는 미국과는 달리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만 하다. 우리에겐 역시 특검제가 필요하다. 두 특검팀이 그동안 쓴 수사비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白山
눈이 무릎까지 쌓이도록 내리고 처마밑 고드름이 한자(1尺)가 넘도록 얼어붙기가 예사였다. 30∼40년전만 해도 겨울은 그토록 매서웠다. 겨울들판은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됐다. 눈사람 만들기나 눈싸움은 으레 하는 장난이었다. 빙판에서 썰매를 타고 팽이를 돌리고 언덕을 넘나들며 연을 날리기도 했다. 그냥 하는 것이 아니다. 썰매 빨리지치기, 팽이쓰러뜨리기, 연줄끊기 싸움을 즐겼다. 남자아이들만이 아니고 여자아이들도 대개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은 그렇게 놀다가 싫증나면 남자아이들은 자치기, 구슬치기를 하고 여자 아이들은 줄넘기 땅뺏기놀이 같은 것을 했다. 그 무렵엔 먹거리가 귀하던 때여서 영양실조로 코를 흘려 훌쩍거리면서도 겨울 들판을 누볐다. 먹거리 뿐만이 아니고 입성도 볼품없어서 방한복이란 것이 따로 있을 수 없었다. 옛날 아이들은 이렇게 겨울을 도전적으로 넘겼다. 영하의 강추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춥다고들 야단이다. 지구의 온난화현상으로 겨울다운 겨울이 실종되다보니 이만한 추위가 무척 춥게 느껴지는 것 같다. 골목길에도 아이들 노는 모습이 사라졌다. 텔레비전을 누워 들여다 보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보내는 방안퉁수가 돼가고 있다. 부모들도 밖에 나가면 ‘감기걸린다’고 야단이다. 시대에 따라 아이들의 놀이문화가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겨울을 겁내는 아이’를 만들어가는 것은 좀 생각해 볼 일이다. 엊그제 초등학생의 방학이 시작됐다. 날마다 진종일 방안퉁수 노릇만 시키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길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자연친화의 겨울놀이가 무엇인가도 연구해 볼만한 일이다. /白山
올 2월 병역법 제65조 6항은 “질병 또는 심신장애로 병역면제나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은 사람이 다시 신체검사를 받고 합격판정을 받으면 현역 등으로 병역처분을 변경할 수 있다”고 개정됐다. 이렇게 병역법이 개정된 이후 질병 등으로 일단 병역면제 판정을 받고도 군복무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근래 늘고 있다고 한다.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젊은이들이 “남자로서 떳떳하게 살고 싶다” “2대 독자로 귀여움만 받고 자라 너무 나약한 것 같아서 스스로 나를 단련시키고 싶다”면서 병을 치료한 뒤 다시 신체검사를 거쳐 입대한다는 것이다. 어떤 대학생은 징병검사에서 눈이 나빠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으나 현역으로 병역을 마치고 싶어서 레이저수술로 시력을 회복한 뒤 올 3월 재신체검사를 신청, 1급 현역판정을 받고 육군에 입대했다고 한다. 또 한 대학생은 척추디스크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으나 1년6개월동안 치료를 받은 뒤 올 3월 재신체검사에서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아 소집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다한증(多汗症)으로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으나 피부과에서 수술을 받은 뒤 올 4월 재신체검사에서 현역 판정을 받고 입영 대기중인 젊은이도 있다. 잊을만하면 병무비리사건이 터지고 권력과 금력이 많은 일부 사람들이 멀쩡한 아들들을 체중이 적다, 눈이 나쁘다는 등 거짓 서류를 꾸며 군대에 안보내는 마당에 굳이 안가도 될 군대를 스스로 가려는 이들 젊은이들의 심신은 참으로 건강하다. 이렇게 건강한 젊은이들이 있어 한국사회는 혼돈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절망은 없다는 것인가 보다. /淸河
조선조 세종은 승정원(비서실)과 육조(내각)의 역할에 균형을 잘 갖춘 분이다. 현군(賢君)은 이러한데 비해 암군(暗君)은 측근(승정원)등의 말만 믿어 모함이 자심하였다. 승정원과 육조의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는 현대판 비서실과 내각에도 해당된다. 다만 상황에 따라 어떻게 조율하느냐 하는 것은 양쪽을 다 부리는 이, 즉 대통령의 능력에 속한다. 클린턴이 근래 외교정책 주도권의 힘을 국무장관인 올브라이트에서 안보담당 보좌관 버거에게 더 실어주는 것은 올브라이트에 대한 불신이 아니다. 경제안보를 내세운 버거의 온건론으로 실리외교를 챙기는 것뿐, 발칸과 유럽문제는 이에 해박한 올브라이트의 입김이 여전히 강하다. 이것이 양쪽을 다 부리는 클린턴의 관리 능력이다. 이승만 정권이 지탄받게된 것은 비서정치의 폐해가 그 발단이었다. 이 이후에도 정권에 따라 국정의 중심이 비서실인지 내각인지 구분이 잘 안될만큼 적잖은 혼돈이 있었다. 김대중대통령은 취임 벽두, 내각이 국정의 중심임을 강조하고 수석들에겐 비서실 임무 이상의 돌출이 없도록 자제를 당부했다. 그랬던 것이 지난 비서실개편때 친위대로 재구성하면서 달라지더니, 이제는 비서실에서 장관들 ‘고과표’를 만들도록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통령 지시사항이행, 부처장악력, 업무추진력 등을 종합 점검토록 했다는 것이다. 장관들 체면이 말이 아니다. 비서실의 장관들 복무실태 파악은 방법상 문제가 없다 할 수 없다. 그나마 사실대로 정확하게 전달되면 다행이지만 은밀성, 모함성, 왜곡성이 개재되는 측근의 횡포가 있지 않을까 하여 걱정스럽게 보는 눈들이 있다. /白山
집단이기를 말하곤 하지만 정치권처럼 집단이기가 철저한데는 아마 다른데선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단연 챔피언감이다. 여야가 사사건건 맞서 산적한 민생법안의 정기국회 회기내 처리가 불투명한 가운데 세비인상엔 짝짝궁이 맞아떨어지더니, 정치개혁특위에서 ‘불공정언론’ 제재라는 해괴한 여야합의사항을 내놨다. 이는 선거법협상과정에서 역시 여야합의에 의한 선거비지원에 이어 나와 또한번 빈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선거관련 보도를 불공정하게 보도한 취재기자나 편집기자는 ‘심의위’결정으로 1년동안 취재 및 편집업무를 중단하고 이를 어길 경우에는 2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는 것이 선거법개정안의 요지다. 말이 1년동안의 업무정지지 사실상 직장을 박탈하겠다는 어마어마한 협박이다. 불공정보도의 객관화된 기준도 없다. ‘심의위’의 주관적 판단은 남용될 우려가 다분하다.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는 덮어놓고 불공정보도로 매도하는 정치권 풍조에선 더욱 그러하다. 불공정보도를 제재하는 장치는 지금도 있다. 언론중재위에 제소하는 것 말고도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언론보도에 책임을 따지는 민·형사소송이 증가추세에 있다.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문제의 ‘불공정언론’ 제재 조항은 언론을 위협하는 독소조항이다. 기본권에 속한 양심과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의 소지가 짙다는 비판이 높다. 정치개혁특위에서 한다는 짓이 기껏 이정도인 것은 실망이다. 정치개혁이 마치 거꾸로 가는 것같다. 미국의 언론은 선거때면 각사가 지지하는 정당을 공개 선언한다. 이에대한 심판은 독자가 내린다. 차라리 우리도 이같은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白山
마카오는 남유럽풍의 주택과 중국식 고풍의 상점이 거리를 공유하고 있다. 동·서문화가 혼재한다. 중국 광뚱성(廣東省) 주장강 델타 남단부에 있으며 면적은 16㎢, 인구는 30만여명이다. 대부분이 중국인이며 포르투갈인이 1만여명쯤 된다. 우리나라 사람도 250여명이 살고 있다. 마카오가 포르투갈의 해외령(海外領)이 된것은 1553년 대(對)중국 무역권 획득과 함께 실질적인 사용권을 인정받음으로써 시작됐다. 1887년엔 청나라와의 조약으로 식민지 건설이 합법화됐고 1951년에는 포르투갈 본국의 일부로 편입됐다. 중국의 문화혁명을 계기로 마카오 정청과 현지 중국인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자치령이 된게 1973년 3월이다. 1979년 중국과 포르투갈간에 국교가 수립되어 1986년 마카오반환협정을 맺었다. 그 반환기약일인 1999년 12월 20일을 며칠 앞둔 지금 베이징거리는 경축일색이다. 홍콩반환에 이어 마카오를 돌려받음으로써 대륙에 남아있던 서구의 침략세를 완전히 몰아내기 때문이다. 마카오는 예부터 동서문화가 교류하는 접경지였다. 국내 최초의 천주교신부로 성인의 반열에 오른 순교자 김대건이 열여섯살때 마카오의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신학교에서 서양문물을 배웠다. 관광수입이 주축을 이룬 가운데 의류제조, 신발가공 등 경공업이 발달했다. 한동안은 무역업이 성해 50년대엔 멋쟁이를 가리켜 ‘마카오신사’라는 유행어가 성행하기도 했다. 중국으로서는 실로 446년만에 포르투갈로부터 되돌려받는 것이어서 1839년 아편전쟁으로 빼앗겼다가 지난 97년 7월 1일 되찾은 홍콩 못지않게 감회가 깊을 것이다. 역사란 정말 심오하다. /白山
지뢰는 15세기에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명(明)나라 때 실전에 사용된 적이 있긴 하나 보편화 된 것은 먼 훗날인 서양에서 일어난 1차세계대전 부터였다. 폭발하기까지는 발견되기가 어렵고 발견한다 해도 제거하기에 꽤 까다로운 것이 지뢰다. 전투원들을 제어하기 위해 매설하는 것이지만 비전투원, 즉 민간인에게까지 살상을 입히기 쉬운 것이 지뢰이기도 하다. 이때문에 지난 97년 9월 오솔로에서 대인지뢰금지협약이 논의된 적이 있었다. 100여국이 참가한 가운데 가진 회의에서 미국대표는 한반도에 한해 특수성을 감안, 9년동안 유예조건을 단 것이 채택되지 않아 퇴장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지뢰생산의 주요국인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이 불참해 실효성에 의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든 지뢰가 비전투원인 민간인에게까지 불행을 가져오는 참상은 저 유명한 코소보 사태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내전으로 인해 매설된 지뢰를 철거하는 비용이 매설비용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갔다. 이뿐만 아니라 지뢰를 잘못 밟아 억울하게 죽어간 인명과 불구자가 된 수가 부지기수였다. 다이애나가 지뢰사용금지 운동에 나선 것도 이때문이었다. 한국전 직후엔 우리나라에서도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지뢰때문에 다치거나 죽은 이들이 수두룩했다.. 아직도 휴전선엔 남북이 묻어놓은 지뢰가 수만개나 깔려 있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도 한동안은 지뢰수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김포시 사우동 뒷산 ‘장릉산’ 부근에 지난 여름 집중호우로 유실된 지뢰가 깔려 주민들이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고 한다./白山
예로부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같은 문헌과 설화·민요 등에 등장하여 대표적인 길조로 여겨져 온 까치는 가치·가티·갓치·가지라고도 부른다. 한자어로는 작(鵲)·비박조(飛駁鳥)·희작(喜鵲)·건작(乾鵲)·신녀(神女)라고도 한다. 몸길이는 45㎝ 정도로 꼬리가 길고 어깨·배와 첫째 날개깃 등은 흰색, 나머지 부분은 녹색이나 자색, 광택이 있는 검은색이며, 부리와 발도 검다. 1964년 한국일보 과학부의 ‘나라새 뽑기 운동’에서 까치가 나라새로 뽑혔으며, 그 뒤 까치를 보호조로 지정하고 포획을 규제해왔다. 까치는 상서로운 새로 알려져 ‘까치를 죽이면 죄가 된다’는 속신이 전국에 퍼져 있으며,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그 집에 반가운 사람이 온다’고도 했다. 경기·충청 등 중부지방에서는 까치가 정월 열 나흘 날 울면 수수가 잘된다고 믿고 있으며, 까치가 물을 치면 날이 갠다고 한다. 또 호남지방에서는 까치둥우리가 있는 나무의 씨를 받아 심으면 벼슬을 한다는 속신이 있다. 충청도에서는 까치집을 뒷간에서 태우면 병이 없어진다고 하며, 까치집이 있는 나무 밑에 집을 지으면 부자가 된다는 속신도 있다. 그래서 전국 2백48개 광역·기초자치단체중 94곳이 까치를 상징새로 정해 놓았다. 그런데 요즘은 이 까치가 과일과 곡식 등을 마구 쪼아 먹고 정전사고를 자주 일으킨다 하여 ‘해조’ ‘흉조’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상징새 교체를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가 계속 늘어난다고 한다. 까치로 인한 정전사고 증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전은 까치의 포획을 더욱 쉽게 할 수 있도록 관계법령을 개정해 달라는 건의서까지 환경부에 제출했을 정도다. 상징새 목록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까치가 ‘강제퇴출’될 운명에 놓인 것이다. 까치로 인해 일부 피해는 있지만 한때 국조(國鳥) 칭호까지 얻었던 까치를 퇴출시키려는 사람들이 참 야박하고 매정하다. /淸河
연말이 되면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이웃사랑’의 기회를 제공하는 자선냄비는 1891년 성탄이 가까워 오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시작됐다. 도시 빈민들과 갑작스런 재난으로 슬픈 성탄을 맞이하게된 1천여명을 구하기 위해 한 구세군 사관(조셉 맥피 정위)이 오클랜드 부두로 나가 큰 쇠솥을 거리에 내걸고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붙인 것이 발단이 됐다. 이를 계기로 오늘날 전 세계 1백5개국에서 매년 성탄이 다가오면 자선냄비 활동을 벌인다. 한국은 1928년 12월 15일 최초의 자선냄비 20개가 당시 사령관 박준섭 사관에 의해 명동을 비롯한 서울 거리에 설치된 뒤 매년 시행되고 있다. 자선냄비 모금액은 매년 꾸준히 증가해 이웃 사랑의 본을 보여 왔다. 특히 지난 해의 경우 IMF 경제한파로 이웃 사랑의 손길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으나 목표액 13억원을 거뜬히 넘겨 고난중에도 사랑을 베푸는 한국인의 정을 느끼게 했다. 올해로 71주년을 맞은 구세군 자선냄비는 14억5천만원 모금을 목표로 잡고 3만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 전국 거리에서 성금을 모금하고 있는데, 올해부터는 거리 모금 외에도 인터넷을 통한 모금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조그만 정성과 사랑이 모여 큰 강을 이루는 구세군 자선냄비는 불우한 이웃을 돕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희망을 가늠하는 척도 구실도 한다. 그런데 자선냄비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인 것 같다. 그야말로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내미는 따뜻한 손길들이다. 승려도 시줏돈을 자선냄비에 넣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웃 사랑에는 종교의 차이가 없음을 자선냄비는 보여주고 있다. 연인들이나 어린이들이 웃으며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는 모습이 아름답다. /淸河
가수 심수봉씨를 4년 가까이 집요하게 괴롭혀온 40대 여자 스토커를 경찰이 붙잡았다고 한다. 전직 무명가수라는 이 여자 스토커는 심씨에게 수시로 협박전화를 걸거나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내 작품을 표절했으니 사회에서 매장시키겠다”고 폭언했다고 한다. 증권사의 신용을 추락시킨 어느 증권사 전·현직 직원들의 협박은 어처구니가 없다. 빌린 돈 1천만원으로 증권투자를 해 3년7개월만에 1백30억원을 번 ‘한국판 조지 소로스’를 협박, 20억원을 뜯어냈다는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협박도 있다. 이제는 말하기도 짜증스럽지만 소위 ‘옷로비’의혹 때문에 김태정 전 검찰총장이 신동아측으로부터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협박을 받았다는 것이다. 김 전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됐다는 약점을 잡아 일국의 검찰총장을 상대로 협박했다는 신동아측의 배짱이 사실이라면 ‘다양한 채널’도 밝혀져야 되겠지만, 어쩌다 한국사회가 이렇게 ‘협박시대’가 되었는지 답답하다. 정치한다는 사람들끼리 서로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고, 어제의 동료가 오늘은 원수가 되기도 한다. 회사간부가 사장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보상을 요구한다. 뇌물받은 공직자를 기업체가 협박하는가 하면, 불량배나 법규위반업소가 경찰관을 협박하기도 한다. 주머니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어디에 있느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서 협박받을 짓 안하는게 최고의 상책이다. 문제는 인간은 자고로 아부와 뇌물에 약하다는 점이다. 협박한 사람도 ‘할 말 있다’고 떠들어댄다는 사실이다. /淸河
개인묘지도 이제 제한을 받는다. 영구적이었던 개인묘지에 60년 시한부 매장제가 도입됐다. 이같은 묘지 사용의 연한 규제는 집단(공동)묘지에도 물론 적용된다. 또 개인묘지는 기당 24평에서 9평으로 공동묘지는 9평에서 3평으로 줄어든다.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엊그제 국회법사위에서 통과됐다. 해마다 묘지면적이 늘어 국토이용에 심각한 문제로 제기된지는 이미 오래다. 묘지제한은 화장문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법률개정안도 60년이 지나면 화장하도록 돼있다. 그렇지만 사용연한 위반을 어떤 방법으로 제재를 가할 것인지가 문제다. 또 매장한 유해를 다시 화장하는 것도 관념상 금기시 돼있다. 화장을 하는데도 사실상 문제가 없지 않다. 납골당을 권고하지만 막상 납골당을 짓는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혐오시설로 인식되어 주변에서 반대를 일삼는다. ‘우리동네 인근에 납골당을 지어도 좋소!’하는 지역은 거의 없다. 화장한 재를 강물이나 산에 뿌리는 것은 전부터 내려온 오랜 인습이다. 그러나 지금은 유해의 재를 뿌리려해도 마땅한 곳이 없다. 웬만한 강이나 야산 주변의 주민들은 이를 막기 위해 지키다시피 감시하고 있다. 정부는 무턱대고 화장만 권고할 일이 아니고 화장할 수 있는 여건조성부터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국민에게 권장만 할 것이 아니라 지도층 인사부터 모범을 보이는 일 또한 중요하다. 인구가 많다보니 생전에는 살아가기가 힘들고 사후에는 매장이든 화장이든 유택난을 겪는 세상이 됐다. 해가 갈수록 더할 것이다. /白山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간적인 흠이 있다. 악성 베토벤은 친동생의 아내인 조안나를 잊지 못해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조안나는 베토벤과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어느 운명의 갈림길에서 아주버님과 계수로 입장이 바뀌었다. 조각가 로댕은 그를 헌신적으로 사랑했던 제자 카미유를 출세에 눈먼나머지 정신병원에 보내는 비정을 저질렀다. 예술가 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제퍼슨에겐 사생아가 있었다. 이밖에 과학자나 경제인등 여러분야의 저명한 인사에게도 인간적인 결함은 그 사례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10대들 가운데는 그들의 우상인 가수가 조그마한 인간적 흠을 드러내면 실망한 나머지 되레 공격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흠이란게 별것도 아니다. 가령 코를 훌쩍거린다거나 사석에서 저속한 농담을 하는 것만 보아도 그런 역작용을 보인다. 촉망받는 재일동포 작가인 유미리씨의 미혼모보도를 보고 말이 좀 있는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유부남인 방송기자의 아이 아버지가 총각인 것 같아 아이를 갖게 됐다는 대목은 그녀답지 않다. 좀더 솔직했으면 좋을것을 역시 인간이기때문에 말이 되지 않는 어거지 변명을 하는 것 같다. 열일곱살때부터 첫 남자와 10년간 동거생활을 했다는 것도 이번 보도를 통해 처음 아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그녀를 공격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잘한 일이라고는 더욱 말할 수 없다. 다만 그녀도 인간인 점에서 저지른 사생활의 허물을 전문재질과 결부시켜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보는 것 뿐이다. 누구든 악인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성인군자일 수도 없는 것이다. /白山
1948년 건국이후 사형선고가 확정된 범죄자는 9백90여명이다. 이 가운데 형이 집행된 사형수는 수년전의 ‘지존파’범인등 8백80여명이다. 사형제도가 폐지된 나라는 서유럽과 캐나다 뉴질랜드 등 54개국이다. 이밖에 10년이상 형집행을 하지 않아 사형제도가 없어지다시피 한 나라가 약 50개국이다. 100여 나라에서 사실상 사형제도가 폐지된 셈이다. 미국 일본 한국 등 90여개국이 사형제도를 두고 있다. 그러나 사형제도를 두고 있는 바깥 나라도 5∼6개의 범죄에 한해 적용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사형을 80여 범죄의 법정형량으로 규정하고 있다. 불교 조계종 종정을 지내다가 1966년 열반한 효봉스님은 평양 복심(고등)법원 판사를 지낸 분이다. 젊은 법조 시절에 오판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아 판사를 그만두고 전국을 떠돌며 방랑생활을 일삼다가 불문에 귀의하여 득도한 분이다. 국민회의 유재건 의원등 여야 의원 70여명이 무기징역을 법정 최고형으로 하는 ‘사형제 폐지 특별법’안 제출을 추진하고 있다. 자연법사상은 사형제도를 거부한다. 인간이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감히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법 사상이 아니고도 만에 하나 오판으로도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 것이 사형제도다. 그러나 사형제도가 없어지면 흉악범이 더욱 날뛸 우려 또한 다분하다. 사형제도를 폐지했다가 사회방어 측면에서 부활한 나라도 더러는 있다. 한비자(韓非子)는 사회교화를 위해 극형등 엄한 형벌을 강조한 형명사상가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법은 서릿발처럼 엄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형평성있게 제대로 지키는 일’이라고./白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