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적칠해

"중국고어 중 ‘육적(六賊)’, 즉 여섯가지 나쁜 일은 이렇다. 첫째, 신하가 대규모로 궁실·누각·정자를 짓고 노래와 춤을 즐기게 하여 임금의 덕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둘째, 백성이 농사 짓고 누에 치는 일에 힘쓰지 않고 방탕하게 놀며, 국법을 위반하면서 관리의 지도에 따르지 않는 일이다. 셋째, 신하가 붕당을 만들어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을 가로 막아 임금의 총명을 가려 임금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이다. 넷째, 선비가 반항과 위세로 다른 나라의 군주들과 교제하면서 자기의 임금을 중하게 여기지 않아 임금의 위엄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다섯째, 신하가 벼슬과 지위를 경시하며 관리를 천하게 여기고, 임금을 위해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여 공신의 노고를 손상시키는 일이다. 여섯째, 종친이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재물을 빼앗고 그들을 업신여겨 서민의 생업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일곱가지 나쁜 자, 즉 ‘칠해’의 첫째는, 아무런 지략이나 책략도 없으면서 상과 높은 벼슬만을 탐내 경솔하게 전쟁을 벌여 요행으로 승리하기를 바라는 者다. 둘째, 헛이름만 있고 실질은 없으며, 나갈 때와 들어올 때의 말이 다르다. 어진 사람은 덮어버리고 악한 사람은 치켜 세우며, 나아가고 물러감을 교묘히 하는 자다. 셋째, 자기의 몸과 의복을 일부러 검소하고 남루하게 하여 이름도 이익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는 위선자다. 넷째, 기이한 차림새와 말재주로 헛된 논의만 일삼으며, 선한 얼굴로 위장, 궁벽한 곳에 거처하면서 시속을 비방하는 자다. 다섯째, 참소와 아첨으로 관직을 얻고, 큰일은 도모하지 아니하나 이익이 있으면 움직이며, 고상한 말과 헛된 논의만 임금에게 늘어놓는 자다. 여섯째, 장식을 하고 갖은 기교로 호화롭게 꾸며 농사에 지장을 주는 자다. 일곱째, 허위의 방술, 이상한 기술, 방자한 방법 등으로 남을 저주하며, 사악한 도술과 상서롭지 않은 말로 선량한 백성들을 현혹시키는 자다. 왕도야 따로 있지만 신하된 신분으로 이 ‘육적칠해’에 하나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완전한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이제는 가식을 버리자. 2004년 올해는 원숭이해 갑신년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판교신도시

성남시 판교신도시가 드디어 조성된다. 2005년 4월에 착공, 283만여평 부지에 2만9천700여 가구가 입주하는 새로운 도시가 형성된다. 정부는 비록 미니도시 이지만 서울 강남 못지않은 신도시를 만들 계획인 것이다. 물론 결과는 두고 봐야 안다. 땅 보상이 시작되면서 벼락부자가 되는가 하면 길거리에 나앉을 판인 딱한 처지 등 명암이 교차되는 보도가 있었다 어느 땅 임자는 6천689평에 대한 보상금으로 212억원을 받게 됐다고 한다. 이런가 하면 쪽방생활의 세입자들은 4인 가족의 경우 주거 이전비로 760만원을 받고 방을 비워 주어야 한다. 어디가서 월세방 하나 얻기도 힘들 판이다. 임대아파트를 준다지만 2007년에나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를 기다릴 형편이 못된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똥 끄기가 다급한 사람들이다. 이런 세입자가 1천600여가구나 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임대아파트를 받으려면 쥐꼬리만한 주거이전비 마저 포기해야 한다. 정부의 주거대책이 없으면 임대아파트를 받기 위해선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사람이 태반이라는 것이다. 이런가 하면 벼락부자들도 많다. 수억원은 약과고 수십억원의 보상금을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212억원을 받는 그 사람은 알짜배기 토박이 농부로 받을 만하다. 조상으로부터 17대째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내놓으려 하니 돈도 좋지만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을 것 같다. 농사만 짓다가 갑자기 거금을 받은 돈으로 뭣을 하며 살까하고 걱정하는 농부들은 그 사람 말고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투기로 벼락부자가 된 가짜 농민들도 많다. 판교 신도시 땅은 그동안 투기꾼들의 손에 넘어간 것이 엄청많다. 언젠가는 약 40%에 이른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떻든 그 수는 확실히 알수 없지만 투기꾼들에게 보상은 마침내 벼락부자가 되는 계절임은 틀림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정부가 투기꾼들이 챙긴 시세 차익의 상당부분을 세금으로 환수, 이 재원의 재정자금으로 세입자들에게 전세자금을 융자해 주는 것이다. 판교신도시는 축복의 땅인 지 아니면 저주의 땅인 지를 아직 잘 모르겠다. /임양은 주필

女經協 회장선거

한국여성경제인협회가 다음 회장 선거를 놓고 꽤나 시끄러운 것 같다. 여경협회장 선거는 이미 지난 24일 치렀다. 대구중앙청과 대표로 대구·경북지회장인 정 아무개가 광림무역 대표로 서울지회장으로 있는 이 아무개를 79 대 70으로 7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그러나 선거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일어나 선거관리위원장이 무효를 선언했다. 기업경영에 여성과 남성의 차이란 있을 수 없다. 여성이라고 하여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라고 여겨서는 큰 착각이다. 예컨대 바둑도 그렇다. 여류 프로기사는 물론이고 여성 아마 고단자들 바둑을 보면 남성 기사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여성 경제인들 모임이라고 하여 조용하란 법은 없을 것이다. 다만 시끄러운 게 여경협 회장 자리를 정계 입문의 징검다리로 보아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고 보는 객관적 관점은 좀 씁쓰레하다. 여경협은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다. 이런 점을 노려 회장 자리를 탐낸다면 그 또한 유감이다. 미국의 대기업 여성임원은 367명인데 비해 국내 대기업의 여성 임원은 고작 19명이라고 한다. 이런 대기업 말고도 중소기업의 여성경영인들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많지 않은 여성 경영인들의 모임이 잡음을 내는 것은 보기에 썩 좋지 않다. 사회의 여성참여가 더욱 다양하게 넓혀져가는 추세다. 이런 터에 남성위주의 못된 정치판 흉내나 내는 이러쿵 저러쿵하는 소리는 여성의 권익 신장을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않다. 여성 경영인들은 여성계의 사표가 되어야 한다. 여성계 어느 분야보다 심한 사회적 제약을 뚫고 성공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성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로 새로운 기업문화를 창출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해야 한다. 여경협은 오늘 재선거를 강행하는 것으로 전한다. 어떻게든 조속한 안정을 바라는 점에서 결과가 주목된다. /임양은 주필

폭탄주

이른바 ‘폭탄주’의 공통점은 폭약과 뇌관으로 사용되는 두 종류의 술을 섞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위스키를 마실 때 물이나 얼음에 희석해 마신다. 사람이 술의 맛과 향을 가장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알코올농도는 20도 정도라고 한다. 전문가들이 실험실에서 위스키의 향을 판정할 때도 20도로 낮춰 맛을 감정한다. 이를 감안하면 위스키를 물에 희석해 마시는 음주법은 대단히 과학적이다. 소주에 물을 타서 마시는 일본인들을 본 적도 있다. 폭탄주의 알코올농도는 위스키 양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8∼10도 정도로 조절된다. 위스키와 맥주의 주원료는 보리로 같다. 그러나 술의 성질은 완전히 다르다. 우선 맥주는 자체의 맛과 향이 진한 술이다. 호프 본래의 쓴 맛이 살아 있고, 발효과정에서 알코올 이외에 부산물로 생산된 200가지의 화학성분이 그대로 녹아 있다. 반면 위스키는 증류를 통해 알코올 이외에 부산물을 걸러낸 맑은 술이다. 이를 오크통에 넣어 숙성과정을 거친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 위스키는 맛과 향이 다른 30∼40종류의 위스키 원액을 섞어서 만든다. 예민한 미감을 지닌 블렌더가 맛과 향을 조절한다. 이처럼 성질이 전혀 다른 맥주와 위스키를 섞으면 폭탄주가 되는데 지갑이 가벼운 주당들은 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신다. ‘맥소’ 또는 ‘소맥’으로 불린다. 막걸리에 소주를 섞어마시는 ‘막소’도 있고, 코피에 소주를 타서 마시는 ‘코소’라는 폭탄주도 있다. 웬만한 주당들도 폭탄주 몇잔 마시면 금방 취한다. 정신건강은 별탈 없겠지만 신체건강에 좋을 리 없다. 사람들은 술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마시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직장인들 중 술에 약한 사람들은 회식을 두려워 하기도 한다. 바로 폭탄주 때문이다. 오죽하면 한국은행의 한 직원 아내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연말을 맞아 직급이 높은 사람이 권하는 술 때문에 남편의 간이 상해가는 것을 보면 그대로 있을 수가 없다”며 “폭탄주를 강요하는 남편의 상사를 몰아내달라”고 호소했겠는가. 하지만 직원들끼리 술도 못 권하는 사회가 돼가는 것 같아 유쾌하지는 않다. 폭탄주가 아니면 괜찮을는지 모르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선행이 지구를 살린다

‘종말(終末)’의 사전적 의미는 ‘맨 나중의 끝’이다. ‘끝판’이다. ‘종말론’은 유태교·기독교에서 세상의 종말을 믿고, 그때에 최후의 심판이 있으며 선인과 악인은 그 운명을 달리하여 신(神)의 선(善)이 영원히 승리한다는 설(說)이다. 종말관이라고도 한다. 신학(神學)에서는 종말을 두 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말로는 똑같으나 영어로는 두 가지로 표현한다. 하나는 ‘마지막 날들(last day)’이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 날(the Last Day)’이다. 처음 것은 예수의 초림에서 재림 때까지의 모든 기간을 말하고, 두번째 말한 것은 예수의 재림의 때(말세지말)를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마지막 날’을 말하기 때문에 혼돈이 일어난다. 마태복음 24장 30절에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그 날을 꼭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교회사를 보면 여러번 예수의 재림의 날을 예언하여 물의를 일으킨 소위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몇몇 사이비 종교의 시한부 종말론 주장이 나왔었다. 바울은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종말)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 5:1 ~2)고 경고했다. 바울은 종말의 징조에 대해서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나니”(살후 2:3)라고 예언했다. 마태복음 24장에는 네 가지 징조를 말하고 있다. 첫째,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날 것이고 둘째,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해 일어나고 셋째,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게 되고 넷째,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이라고 하였다. 폭우나 태풍 전에 먼저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고 날씨가 후텁지근하듯 먼저 여러 징조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 사회가 말할 수 없이 혼탁해지면 ‘말세’라는 탄식이 나오지만, 선행이 종말을 막아 주는 것이다. 종말이 오지 않는 것은 악행보다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잘 먹고 잘 살자'

‘웰빙(Well being)족’은 몸과 정신의 건강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인생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영위하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자연·건강·안정·여유·행복이 웰빙족을 특정 짓는 단어들이다. 이들은 고기 대신 생선과 유기농 식품을 주로 먹고, 화학조미료와 탄산음료를 꺼린다. 동시에 요가와 단학, 아로마 테라피 등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꾀한다. 산업계에서 웰빙 바람이 가장 거센 곳은 신체건강과 직결되는 제품을 생산하는 제식품업계다. 웰빙족은 가격보다 품질을 우선시했고 식품업체들은 상향 조정된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무공해·유기농 재료를 사용한 제품을 쏟아냈다. 올해 유기농 제품은 기존 제품보다 가격이 2∼3배나 비싸지만 불티나게 팔렸다. 현대인에게 값싸고 간편한 음식을 제공하며 사랑받아 온 패스트푸드점은 이제 냉대받기 시작했다. 라면업계도 기름에 튀긴 면을 생면으로 바꾸고, 재료를 다양화하면서 웰빙족에게 구애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웰빙족은 음료시장의 판도도 바꿔 놓았다. 최대 판매량을 자랑하던 콜라의 올해 매출액은 18%나 급감했고, 커피 음료도 된서리를 맞았다. 반면 녹차음료와 주스·두유·생수 등 건강지향성 음료는 경기침체를 무색케 했다. 특히 칼슘·검은콩·깨 등을 넣은 분유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유업계의 오랜 고민이던 분유재고를 해결했다. 화장품업계도 ‘자연주의’를 내걸고 웰빙족을 부르고 있다. 피부에 자극이 없다는 천연 소재를 사용한 제품들이 속속 등장했고, 친환경 포장도 눈길을 끈다. 패션업계는 천연 섬유와 기능성 소재를 사용한 제품을 늘리고, 디자인과 색상에서도 편안함을 강조하고 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깃발을 내걸고 한국사회의 전면에 등장한 웰빙족은 새로운 소비문화를 제시하며 산업계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잘 먹고 잘 살자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본래의 뜻과는 달리 웰빙이 고소득층의 사치스런 소비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없는 건 아니다. 내 돈 내가 쓰며 내가 먹고 싶은 음식 내 입맛에 맞게 골라 먹는데 참견하지 말라는 웰빙족이 더러 있는 탓이다./임병호 논설위원

괴담이설

세상이 험한 탓인지 조류독감이라고 전엔 듣도 보도 못했던 괴상한 전염병이 생겨 애를 먹인다. 괴상한 일은 이만이 아니다. 나라 안에선 웬만히 괴상해서는 괴상하지도 않게끔 됐다. 괴상한 일이 하도 많다보니 이도 면역성이 생기나 보다. 근래 들린 나라밖 괴상한 일로는 이런 게 있다. 중국 하난(河南)성에서는 어느 취객이 이웃집강아지가 자신의 바지를 물어뜯는다고 개를 집어들어 코를 깨물어 죽게 했다는 것이다. 수습기자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되어도 개가 사람을 문것은 뉴스가 안된다고 배웠던게 생각난다. (개에 물린 인명 살상기사가 가끔 나긴 하지만) 또 중국 상하이(上海)에서는 최고 추녀에 성형수술비 10만위안(1천500만원)을 주는 추녀 선발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미국 뉴욕에서는 지난 9·11테러로 희생된 동료 소방관들 가족을 돌보던 소방관들이 1년이 지나면서 그만 숨진 동료 소방관 부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기 위해 이혼하는 사람까지 있다는 것이다. 인종도 많고 인구도 많다보니 별의별 일이 다 있는 모양이다. 하긴 국내에서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독신의 파병장교가 전사한 부하 가족을 돌보다가 역시 미망인과 사랑이 싹터 결혼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이런 저런 괴상한 일은 그래도 남을 해치진 않는다. 듣기에 따라선 재미있는 점도 있다. 나라가 국민을 걱정하기 보다는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는 지경이 됐다. 정부가 하는 일이 하도 미덥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개를 무는 뉴스꼴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불법대선자금이 많다 적다하는 것으로 도덕성을 평가 받으려는 어거지는 마치 성형비를 탐낸 추녀대회와 같다. 대통령 측근의 386세대 비리는 동료부인과 사랑에 빠진 뉴욕 소방관과 비유할 수 있을는지. 세월은 가는 데 사람은 흙탕물 속에서 도시 믿을 사람이 없다. 말들은 번드레 하는데도 이 모양인 것 또한 괴상한 일이다. 조류독감이란 게 날 법도 하다. /임양은 주필

동지(冬至)

삭풍이 세차다. 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친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철이지만 자연의 섭리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라던가, 그래도 옛날같은 겨울이 아니다. 눈이 무릎까지 쌓이도록 내리기가 예사였던 그런 겨울은 아니다. 강물이 몇겹씩 두껍게 얼어붙는 그런 겨울 또한 아니다. 그렇지만 역시 겨울은 겨울이다. 삼라만상이 얼어붙었다. 녹음을 자랑하던 산천 거목, 그리고 거리의 가로수가 앙상하다. 비단결 같았던 들녘의 잡초도 시들어 대지가 움츠러 들었다. 태양은 여전히 빛나 온누리를 밝히지만 햇살은 휴화산처럼 잠자고, 밤하늘의 달과 별이 유난히 차가워 보이는 겨울이다. 눈덮인 산야가 어떻게 보면 더 정경스럽고, 겨울바다가 더 다감해 보이는 그런 겨울이기도 하다. 어딘가 훌쩍 겨울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막상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이 겨울을 그저 생활 주변에서 음미하며 보낸다. 그렇다. 겨울을 마지못해 보내기 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맞이하여 감상하는 게 지혜로운 삶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모진 북녘바람도, 출근길이 걱정스런 눈 사태도, 시냇물이 얼어 흐름을 멈추는 강추위도 두렵게 여길 이유가 없다. 이 또한 대자연 속에 자신의 생활을 확인시켜주는 섭리라고 여기면 되는 것이다. 그 속에 자신이 있으므로 하여 생명력의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을이 있었으므로 겨울이 있고 겨울이 있으면 또 봄·여름이 있다. 인간사의 오르막 내리막 길 같은 대자연의 윤회에 제대로 적응하는 것이 현명한 삶의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은 동지다. 한해 가운데 가장 밤이 긴 오늘을 넘기면 낮이 점점 길어진다. 올 동지는 음력 동짓달 그믐날로 늙은 동지 중에서도 가장 늙은 동짓날이다. 찹쌀로 빚은 새알에 팥물로 쑨 동지죽은 겨울철의 보양식이다. 동지죽을 쑤는 것은 액운을 몰아낸다고 믿는 조상 전례의 민속이다. /임양은 주필

풍자어

국제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는 유력 인사들의 이름을 풍자한 신조어가 유행중이다. 명사인 ‘러미’는 이라크 침공에 앞장선 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의 애칭인데 “준비나 계획없이 저지르는 위험”을 뜻한다. 용예를 든다면 “그들은 곡괭이 한 자루와 약간의 초콜릿만 지닌 채 에레베스트산을 오르려 했다. 그건 정말로 ‘러미’다”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러미는 또 불필요하게 친구나 맹방을 공격한다는 뜻의 동사로도 쓰이고, 다른 사람들의 말이 들리지 않도록 해주는 머리덮개를 뜻하기도 한다. 형용사인 ‘체니(딕 체니 미국 부통령)스럽다’는 음흉하고 어두우며, 위협적이란 뜻이다. 파월장군(온건파 클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은 주로 외부인을 감동시키기 위해 만든 것으로서 내부적으로는 별 쓸모가 없는 장식물을 말한다. “구석에 있는 파월 장군을 치울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어때?”라는 용례가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주도한 신보수세력을 뜻하는 ‘네오콘’은 정교하고 세밀하며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술수라는 뜻의 명사다. ‘슈워제네거’(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한 할리우드 액션스타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종종 충동적인 정치적 행동을 낳는 지나치게 발달한 근육질을 뜻하며, ‘부시’는 단임 대통령이란 명사다. “그는 처음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4번 연임한 미국 대통령)처럼 보였으나 결국 또 하나의 부시가 되고 말았다”는 표현이 있다. 미국에선 현 부시 대통령도 걸프전 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나 경제문제로 재임에 실패했던 아버지 부시를 닮아가고 있다는 얘기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신조어를 내놓은 사람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제라드 베이커다. 베이커의 신조어를 빌려 한국정치판을 풍자하면 ‘러미’ ‘체니스럽다’ ‘파월’에 해당되는 위인들이 참 많다. 특히 ‘체니스러운’ 정치인이 압도적이다. 국민은 ‘네오콘’ 같은 정치인도 잘 구분해야 한다. 술수에 능란한 게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임병호 논설위원

국립묘지

현재 서울과 대전의 국립묘지에 안장된 일반인은 손기정, 주시경, 안익태씨 등 저명인사 74명이다. 이중 과학기술자는 해방 후 후학 양성에 정성을 쏟은 화학자 이태규 박사가 유일하다. 미국의 경우 많은 과학자·탐사자들이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미국 민주주의의 성지(聖地)’로 일컬어지는 워싱턴의 알링턴 국립묘지는 안장된 극지 탐험가 숫자가 대통령 숫자보다 많다. 안장자 중 전직 대통령은 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과 35대 존 F 케네디 등 두 명 뿐이지만 탐사가는 1909년 북극점을 발견한 로버트 피어리와 매튜 헨슨, 1881년 극지에서 2년간 보급 없이 생존했던 아돌퍼스 그릴리 등 7명에 이른다. 임무 수행 중 사망한 우주비행사 16명도 함께 안장돼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립묘지에는 친일 행적 등으로 논란의 대상이 돼 온 인사들도 적잖이 묻혀 있다. ‘유공 군인 및 순직 경찰관,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장의된 사람’ 등으로 안장 대상을 규정한 ‘국립묘지령’이 무색하다. 국립묘지 안장자 중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이승만 정권 시절 육군 특무대장을 맡았던 김창룡씨다. 일제 때 일본 헌병대 밀정으로 항일 독립군 조직을 적발하는 반민족 행위를 했고 백범 김구 선생 암살 배후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순직으로 처리돼 대전 국립현충원에 묻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파’로 분류한 전 고위층 인사들도 국가 유공자 제1묘역과 제2묘역, 애국지사 묘역 등에 다수 묻혀 있다. 이렇게 친일파도 묻히는데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전태일 열사,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파견됐다 최근 불의의 사고로 숨진 전재규 연구원 같은 많은 민간인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는 ‘국립묘지령’은 개정돼야 한다.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총리실을 중심으로 관계 기관들이 모여 국립묘지 운영기준, 향후 방침, 의사자 국립묘지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은 늦은 감은 있지만 적절한 조치다. 이참에 국립묘지 관련 업무를 국방부에서 국가보훈처로 옮기는 일도 논의돼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사랑論

인생의 주제를 한 마디로 축약한다면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가’에 귀착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 요한서 4장 18절은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완벽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는다”고 사랑의 진리를 정의했다. 동서고금의 작가, 철인들이 밝힌 사랑론 또한 삶의 길을 일러 주고 있다. “삶의 무게와 고통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한마디의 말, 그것은 사랑이다”(소포클레스)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본다”(셰익스피어) “사랑없는 삶,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는 삶은 그림자쇼에 불과하다”(괴테) “삶에 있어 최상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빅토르위고) “사랑에는 늘 약간의 광기가 있다. 그러나 광기에는 늘 약간의 이성이 존재한다”(니체)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생텍쥐페리)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 과업 중에 가장 어려운 마지막 시험이다. 다른 모든 일은 그 준비작업에 불과하다”(라이나 마리아 릴케) “사랑으로 얻은 고통은 자기 스스로만 고칠 수 있다”(마르셀 프루스트) “죽은 자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영원한 명성뿐이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누릴 수 있다”(타고르) “사랑을 치유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헨리 데이비드 소로)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사랑이다”(토마스 만) 구구절절이 다 옳은 말들이다. 그러나 사랑에 관한 말 가운데 압권은 논어(12권10장)에 나오는 “애지, 욕기생(愛之, 欲其生)일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하지만 사랑의 모든 것을 품고 산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에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은 살아 있을 때 가능하다. 죽은 뒤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살은 사랑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선택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곧 생명이다./임병호 논설위원

상하이의 자전거 퇴출

자전거는 중국 도심의 명물이다. 아침 출근길에 수백대가 이동하는 은륜의 물결은 가히 장관이다. 상하이만 해도 2천여만 시민 중 자전거가 900만여대나 된다. 이같은 자전거가 상하이에서 퇴출 위기에 처했다. 내년부터는 주요도로의 자전거 운행을 시가 전면 금지했기 때문이다. 자전거 통행이 허용되는 도로에서도 신호위반 같은 교통법규 위반시 범칙금을 열배나 올렸다. 이런 범칙금 강화는 사실상 자전거 운행을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서다. 자전거 운행 중심의 교통체제에서 자동차 운행 중심의 교통체제로 바꾸는 것이다. 자동차 운행 중심의 교통체제에서는 자전거 운행이 방해가 되는 것은 국내에서도 경험하는 사실이다. 도내 여러 도시에서 자전거 이용 권장을 위해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었으나 성공한 적이 없다. 교통체제가 자동차 운행 중심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돈을 들여 자전거 전용도로라며 도로 표시를 설치한 게 다 무용지물이 됐다. 자전거의 운행이 인도인 지, 차도인 지도 도로교통법상 명확한 개념 정립이 없다. 차도에서는 자동차에 치이고 인도에서는 행인에게 치이는 것이 자전거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싶어도 도로 여건이 되지 않아 이용을 못한다는 자전거 애호가들이 많다. 중국처럼 은륜의 물결을 이루고 싶어도 이래서 못하는 것이 국내 교통 사정이다. 중국이 이제 우리를 닮고 있다. 고도 성장을 지향하면서 자동차 운행이 늘어 이에 방해가 되는 자전거를 홀대하는 것이다. 은륜의 물결도 사라져 가게 됐다. 중국에서 자전거는 ‘프롤레타리아의 이동 수단’이라는 말로 각광받았다. ‘프롤레타리아의 이동 수단’이 홀대받는 것은 변화를 의미한다. 평양의 거리가 이같은 변화를 가져올 날은 언제쯤일까를 한번 생각해 본다./임양은 주필

권력의 로또복권

돈이 원래 많던 사람이 돈 쓰는 것 하고 돈에 궁하다가 갑자기 큰 돈이 생겨 쓰는 것 하고는 폼이 다르다. 본인은 막상 티를 내려고 하지 않아도 벼락돈이 생겨 쓰는덴 어딘가 티가 나게 마련이다. 돈을 헤프게 쓰는 것도 있지만 하고 다니는 모양새가 들떠 보이기가 십상이다. 대전에서 이런 사람이 있어 현금 수송차 털이범인가 싶어 경찰에 신고했더니 조사 결과 로또복권 당첨자였다는 해프닝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386세대 측근들이 마치 로또복권 당첨자처럼 돈벼락에 들뜬 적이 있었다는 흥미있는 비유가 있었다. 노 캠프에서 공보특보를 지냈던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의 말이다. 이미 신문에 나서 아는 얘기이겠지만 4월 경선 승리, 11월 후보단일화, 12월 대선 승리 등 세차례에 걸친 봄날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대선 승리로 여기 저기서 돈벼락이 떨어질 땐 “이 참에 못먹으면 안될 것처럼 달려들더라. 이성을 잃은 듯 했다. 파도가 몰아치면 입을 다물고 있어도 짠물이 들어가는 데 입을 벌리고 있었으니 얼마나 들어갔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비난 받는 쪽에서는 턱도 없는 거짓말이라고 공박할 것이다. 더한 반격도 예상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객관이란 게 있다. 노 대통령의 오른팔 왼팔에 또 뭣이라는 젊은 측근들이 줄줄이 대검 중수부에 드나드는 모양새를 보면 돈벼락 말이 결코 헛소리는 아닌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것도 로또복권 당첨자들처럼 말이다. 권력을 탐내다가 대박이 터지는 돈맛까지 보았으니 로또복권 당첨자와 정말 다를 바가 없었을 것 같다. 한심한 것은 이런 사람들 입에서 386세대니, 개혁이니, 낡은정치 타파니하는 헛소리가 나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대박의 티를 내려하지 않아도 굶주린 승냥이의 속성이 여기 저기서 묻어난다. 배신당한 것이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 없다. /임양은 주필

중국의 역사왜곡 왜?

단군에서 시작된 고조선은 영토가 압록강 건너 중국땅에 이른다. BC 1세기부터 수백년동안 존속한 부여는 중국 동북부, 즉 만주땅이 영토였다. 고구려는 부여 영토 대부분에 서쪽으로는 중국 요동반도까지 뻗쳤다. 중국의 한(漢)민족들에게 가장 치명적 타격을 주면서 우리 한(韓)민족의 기상을 드높였던 게 고구려다. 수양제가 을지문덕, 당 태종이 요동반도 안시성의 양만춘에 의해 당한 패배로 돌아가 죽게 됐다. AD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망하면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은 민족사로는 큰 불행이다. 고구려나 신라나 백제나 다 같은 우리 민족이다. 이의 구분은 정치적 구분일 뿐 민족적 구분은 아닌 것이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중국과의 국경이 청천강을 중심하게 되어 옛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가 당나라 땅이 돼버렸다. 민족사의 위축이다. 이런 통일같으면 신라가 굳이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을 미화할 일이 못된다. 망국의 고구려 유목민들이 세운 발해(AD 699~926)는 마지막 우리의 자존심이다. 만주의 송화강 이남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영토를 넓힌 발해는 해동성국의 찬란한 문화를 이룩하였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의 영토가 이토록 만주, 요동반도 블라디보스토크 등지까지 뻗어나간 역사의 옛 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 뿌듯한 자긍심을 갖는다. 중국이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를 자국 역사의 소수민족에 의한 지방정권으로 왜곡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남북통일 이후 후대들에 의해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는 국경분쟁을 봉쇄할 근거를 미리 만들어 두기 위한 속셈인 것이다. 그 무렵 가면 한술 더 떠서 청천강이 국경이라고 우길 공산도 없지 않다. 중국의 역사 왜곡을 예사로 알고 간과해서는 후손들에게 큰 죄를 짓는다. 정부는 외교적으로, 학계는 역사적으로 분명하게 밝혀 대처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이래서 요구된다. /임양은 주필

고발장

“14살, 문제아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가출에서 느닷없이 다가온 한 아저씨. 숙식제공에 용돈까지 이유없는 친절에 의심은 했지만 그땐 흑심의 대가여도 좋았다. 하지만 결국 다방에 팔아 넘겨져 낯선 아저씨들과 성관계를 갖다가 어린 나이에 심한 병에 걸려 임신한 아이까지 사산하고 말았다.” “교복 대신 짙은 화장과 굽 높은 신발, 아찔한 옷들. 그곳에서는 잘못을 할때마다 가게 삼촌들이 날 가둬 놓고 옷을 벗기고 야구방망이로 때렸다. 저수지로 끌려가 포클레인에 거꾸로 매달려 물속에 잠길 땐 숨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한달만 (업소일을)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유흥업소 마담과 200만원에 ‘악마와의 계약’을 맺고 말았다. 하지만 큰 돈을 벌 것이라는 말과 달리 남성들과 성관계의 대가로 받은 돈들은 하나같이 업주들이 영업비, 지각비, 세금, 결근비, 마담앰티비란 명목으로 가져가는 등 암묵적인 화류계의 법칙에 엄청난 빚만 남게 됐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으로 성매매의 유혹에 빠져 들었지만 한 달도 안돼 수렁에 빠져 헤어져 나올 수 없음을 깨달았다. 손님의 커피 취향을 외우는 것 대신 나도 국·영·수를 공부하며 열심히 공부하던 때가 있었고 술과 담배 대신 친구들과 떡볶이 사먹던 때가, 화려한 화장 대신 로션과 비누냄새가 나던 적이 있었다.” 국무총리실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최근 성매매를 경험한 여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체험수기 내용 중 일부분들이다. 성매매 피해 청소년들이 가출한 뒤 겪는 성매매, 유흥업소에서의 탈출과 극복 과정이 적나라하게 담겨져 있다. “다시 쓰고 고쳐 쓰기를 반복하면서 내 또래들의 다른 친구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서 수백번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 수기에 공모하게 됐다”는 이들 10대들의 고발장은 “희망까지 잃을 순 없어요”라는 수기집으로 발간됐는데 지금 이 시각에도 수기의 주인공 같은 많은 여성 청소년들이 어둠 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것이다. 형편없이 타락한 이 사회의 무서움을 모르는 미성년자들이 새삼 걱정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제3국행 포로

1954년 2월21일, 한국전쟁 당시 전쟁포로였던 88명이 인도행 배 아스토리아호에 몸을 실었다. 북한군 포로 74명, 남한군 포로 2명, 중국군 포로 12명이었다. 북한군과 남한군 포로 출신 76명은 남과 북 어디로도 가기를 바라지 않았고 중국 포로 출신 12명 또한 중국이나 대만으로 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들은 갈등과 대립의 한편에 서기를 거부하고 ‘제3국의 선택’을 했던 것이다. 이들은 뚜렷한 사상적 지향에 따라 ‘중립국’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전쟁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제3국’을 선택했다. 당시 중립국감독위원회 K.S 티마야 위원장은 처음부터 인도를 선택한 사람은 15명이었고 대부분은 미국으로 가기를 원했다고 회고록 ‘판문점일기’에서 밝혔다. 미국은 중립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들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인도에 간 포로들 가운데 과반수가 멕시코(29명) 등 남미행을 원했다. 멕시코에서 영어를 배워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멕시코도 이들을 받지 않았다. 1956년 2월, 50명의 북한군 포로 출신과 6명의 중국군 포로 출신이 브라질로 떠났다. 애초 브라질로 가겠다는 이는 3명에 불과했다. 인도·브라질·아르헨티나 등의 ‘이민 1세대’가 되어버린 이들 가운데 일부는 현지에서 나름대로 탄탄한 기반을 잡았다. 그러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전쟁의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전 50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은 이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1999년 외교통상부가 펴낸 ‘한국외교 50년’에는 이들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전쟁기념관의 포로송환 및 휴전협상 관련 설명에도 이들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좌우 이념 대립이 없는 조국에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정치·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무국적자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불법체류자라고 하여 외국인노동자들을 추방하고 붙잡아들이면서 재외동포들은 왜 기억하지 않는가. 자의로 제3국을 선택했지만 무국적자로 살고 있는 전쟁포로들을 이제는 생각해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분실 휴대폰

분실 휴대폰은 관할 경찰서장이 2주간 습득 내용을 게시하고 1년간 보관, 6개월간의 습득자 권리행사 기간을 거친 뒤 국고에 귀속하거나 사회복지단체 등에 무상 제공할 수 있다. 현행 ‘유실물 관리법’이다. 휴대폰이 국고에 귀속되기까지 1년6개월 14일이 걸리는 셈이다. 그러나 이 기간이 지나면 휴대폰은 생명을 다해 쓰레기로 전락한다. 더구나 요즘은 주인에게 연락해도 찾아가지 않는 휴대폰이 점점 늘어난다. 휴대폰을 습득한 사람들도 주인에게 알리기를 꺼려한다. 공연한 의심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말 현재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에 마련된 핸드폰찾기콜센터()에 쌓여 있는 분실휴대폰은 총 7만3천여대다. 1999년 센터가 설립된 이래 주인이 찾아가지 않아 방치되고 있는 휴대폰들이다. 센터측이 휴대폰 고유번호를 통해 주인을 찾아주는 사업을 하고 있지만 연락을 받고도 찾아가지 않는다. 출고된 지 1년된 휴대폰을 10만원에 처분한다고 따져도 7만대면 70억원이 낮잠을 자고 있는 셈이다. 정보통신협회가 경찰에 의뢰, 적극적으로 휴대폰 주인을 찾아주도록 요청했지만 경찰은 쌓아둘 곳도 없고 효과도 없다고 난색을 표하고 있다. 민주당 박상희 의원이 지난 6월 분실 휴대폰에 대해 3개월 이상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 정보통신부 소유로 돌려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의원입법 형식으로 국회에 상정했다. 하지만 휴대폰을 다른 유실물과 별도로 취급해 분실자의 권리기간을 짧게 제한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법안 추진이 유보됐다. 그러나 분실 휴대폰을 1년6개월이나 묵혀두고 결국 못쓰게 만든다는 것은 모순이다. 휴대폰의 생명이 다 하기 전에 원주인의 권리행사 기간을 줄여 영세민에게 공급하는 등의 재활용 대책 마련은 그래서 시급하다. 한해 수만대의 분실 휴대폰이 폐휴대폰화됨으로써 낭비되는 자원은 실로 막대하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재추진돼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노동운동

‘능력에 의해 기여하고 수요에 의해 공급된다’고 했다. 이같은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계급이 없어 진다고도 했다. ‘붉은 귀족’은 공산주의가 낳은 새로운 지배계급이다. 구 소련이 그랬고 구 중국이 그랬으며 지금의 북쪽 사회 역시 그러하다. 새로운 계층만이 생긴 게 아니다. 능력은 통제되고 공급은 빈곤만이 가져왔다. 인성은 말살됐다. 자본주의는 노동력을 착취했다. 공산주의는 이래서 노동자 농민들에게 환상이던 때가 있을 수 있었다. 지주에게, 자본가에게 착취만 당하던 무산대중에게는 공산주의가 곧 신앙이었다. 이리하여 자본주의의 오만을 시정하는 수정 자본주의가 등장하였다. 자본의 절대적 개념을 제한하는 수정 자본주의는 재수정 단계에 들어섰다. 이런 개념에서 생성된 노동운동은 거듭된 변천을 가져왔다. 초기의 노동운동 발상기는 자본과의 투쟁이 노동운동의 본질이었다. 노동운동이 제도권의 보장을 받기까지는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노동운동의 정착기는 이런 희생을 바탕으로 노동권 보장의 제도화가 형성되었다. 지금은 노동운동의 신사고 시대다. 1950~1960년대의 투쟁기도 1970~1980년대의 정착기도 아니다. 자본과의 대립이 아닌 상생의 신사고 시대며, 외국의 경제대국은 이미 이같은 새 노사관계의 성숙으로 탄탄한 경제 기반을 이룩하였다. 유독 국내의 노동운동만이 전부가 아니면 전무의 전근대적 방식의 노동운동에 집착하는 것은 그 연유가 반드시 자본의 오만에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이 점차 직업화·계급화·귀족화해 가는 경향은 참으로 우려할 만 하다. “노조꼴 안봐 제일 좋다”는 중국 진출의 내국 기업인들 말을 무섭게 알아야 한다. 생산라인의 자동화·로봇화는 노동 인력을 대량 실업자로 만드는 시대가 온다. 자본과 노동은 생산의 두 수레바퀴이긴 하나 자본이 우선이다.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노사관계 로드맵)이 노사 양측으로부터 또 배척을 받고 있다. /임양은 주필

아방궁

진나라 함양에 항우보다 먼저 입성, 진시황에 이은 2세 황제 자영의 항복을 받은 것은 유방이었다. 휘황찬란한 아방궁,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 미색의 궁녀들로 보이는 것마다 눈이 휘둥그래 졌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협객노릇을 하다가 겨우 정장(면장) 벼슬에 있었던 그로서는 궁에 머물며 호사를 누리고 싶었다. 용장 번쾌가 간했으나 듣지않자 군사 장량이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좋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함에 이롭다’(良藥苦於口而利於病 忠言逆於耳而利於行)면서 거듭 주청하여 성밖 패상에서 야영하며 항우가 오기를 기다렸다. 유방은 뒤에 해하의 일전에서 항우를 궤멸시켜 천하통일을 이루고 한 고조에 올랐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항우에 비해 군사력이 열세였던 것이다. 뒤늦게 함양에 당도한 항우는 유방이 야영을 하며 자신을 기다린 것을 알고는 유방을 더 의심하지 않은 게 뒤에 패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아방궁이 별천지처럼 보이기는 항우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는 닥치는대로 노략질 하고는 불을 질렀다. 한서(漢書) 등 중국 역사는 무려 석달동안이나 불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진시황이 궁궐로 지은 아방궁은 불탄 것이 아니라는 외신이 전해져 주목을 끈다. 그토록 오래 탔다면 불탄 흙이나 목탄이 발견돼야 하는 데 그런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방궁의 규모를 동서 1천270m, 남북 426m로 확인한 중국 고고학자들은 불탄 것은 아방궁 부속 건물인 함양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조사단은 지난 1년동안 많은 인원을 동원한 탐사 시굴끝에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한서는 고조에서 왕망까지 전한(前漢)의 229년간 역사를 반표, 반고, 반소 등이 120권의 책으로 저술한 것이다. 한고조의 라이벌이던 항우를 악랄하게 묘사하기 위해 아방궁을 불태웠다고 기록했을 지 모른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다’란 말이 생각난다./임양은 주필

송두율의 전범 숭배

‘위대한 민족의 태양이시며,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탁월한 영도자의 한 분이시며, 강철의 영장이시며, 백전백승 불패의 탁월한 전략가이시며, 사회주의 공화국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한없는 충성심과 끝없는 경애심으로 흠모하는 위대한 김일성 주석님…!’ 북의 ‘김일성 수령’ 호칭앞에 으레 이같은 극찬의 긴 겹치기 수식어가 붙곤했다. 그가 죽은 지 벌써 8년째지만 ‘위대한 김일성 동지 만세’ 같은 구호는 지금도 나붙어 있다. 유훈통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38선 전역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은 남북간에 전투원 비전투원 할 것 없이 300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1천만 이산가족을 냈다. 동족상잔 3년여의 전쟁을 치르면서 한반도는 폐허화 하였다. 전쟁의 상흔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겪게 한다. 이 전쟁이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군 김일성 최고사령관이 내린 진격 명령으로 일어났다. 이른바 그들이 ‘남반부 해방전쟁’이라고 말하는 참혹한 동족상잔의 1급 전범이 곧 김일성인 것이다. 남북간에 장관급회담을 비롯한 공식 접촉, 그리고 민간인 접촉이 활발하면서 왕래 또한 많이 한다. 평화공존, 평화통일은 어떻든 서로 많이 만나고 많이 왔다 갔다 해야 물꼬가 트인다. 다만 아직 한국전쟁의 책임을 따지지 않고 전범 규명을 않는 것은 지금 그러한 과거를 말하면 남북관계가 다시 꼬일 수 밖에 없으므로 미루고 있는 것이다. 반세기의 세월이 흐른 탓인 지 잊거나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은 것 같다. 그렇다고 전범의 책임이 민족사에서 지워질 수는 없는 일이다. 재독학자 송두율이란 사람이 “조국의 민주화 통일을 화두로 삼아 살아왔다…”고 지난번 첫 공판에서 진술했다. 김일성 주석의 총애를 받는 가운데 평양을 제집 안방 드나들듯이 하며 금품수수까지 했으면서 노동당 규약은 모른다고도 했다. 하지만 검찰에선 “김일성 수령을 존경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부인하는 화술은 실로 현란하다. 그러나 동족상잔의 전범을 존경한다는 그에게 학자적 양심을 얼마나 인정해야 할 지는 의문이다. /임양은 주필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