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영국 왕립연구원 원장이자 약학교수인 수전 그린필드가 BBC 다큐멘터리 ‘여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면’에서 “20년 뒤 여성이 모든 분야에서 남성을 능가할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20년 뒤엔 ‘여인천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의 근거로 산업구조의 변화를 들었다. 근력을 요구하는 제조업에서 창의력을 요구하는 산업형태로 변화하기 때문에 ‘여성은 힘을 못쓴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다는 요지다. 경제부문에서 여성의 성장세는 이미 뚜렷하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미국내 400대 부호’명단에 오른 여성들이 지난해 처음으로 평균 순(純)자산 보유액에서 남성들을 눌렀다. 영국의 맞벌이 부부 3쌍 중 1쌍 꼴로 부인의 소득이 남편보다 더 높다는 통계가 나왔다. 또 신규창업 3건 중 1건은 여성에 의한 것이다. 한국의 재계도 ‘여풍(女風)’이 당당하다. 이미 현정은씨가 재벌그룹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에 앉았고, 삼성그룹, LG그룹, SK그룹에서도 최근 여성임원들이 잇따라 탄생했다. 갈등을 빚는 직장과 출산·육아문제 해결은 기술발달로 가능해진다. 그린빌트 교수는 “18세기에 최상 상태인 난자를 채취해 냉동보관했다가 원하는 시기에 인공수정, 대리모를 통해 출산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란 다소 혁명적인 견해를 내놨다. 먼 미래에는 신체의 어떤 세포에서든 유전물질을 추출, 난자와 수정하는 것이 가능해져 출산에 남자가 필요없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남성의 추락’ 저자 스티브 존스에 따르면 정액 1㎖ 정자수는 1940년대 1억마리에서 1990년대에는 6천600만 마리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소세가 이어질 경우 2100년 서구 남성들은 정자를 전혀 만들어내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다간 남성 불필요론이 나올 것 같다. 요즘 한국 각계각층에서 여성 리더들과 엘리트들의 활동이 대단하다. 여성시대가 도래하였다. ‘위기가 오면 여성에게 손짓한다’는 말이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KTX는 바람보다 빠르다

"오늘 개통한 KTX(고속철)는 Korea TraineXpress의 약자다. 주행가능 최고 속도는 시속 330㎞이다. 최고 상업운행속도는 시속 300㎞이다. 초당 83㎞다. 지난해 영남지방을 휩쓴 태풍 ‘매미’의 순간 최대풍속(초속 60m)보다 빠르다. ‘KTX는 바람보다 빠르다’는 말이 실감난다. 바람보다 빨리 달리려면 곡선과 오르막 또는 내리막이 가능하면 없어야 한다. 그래서 터널과 교량을 많이 건설했다. 가장 긴 터널은 경북 영동~김천 구간 황학산을 관통하는 황학터널이다. 이 터널의 길이는 9천970m이다. 그러나 KTX는 불과 2분만에 여기를 통과한다. 가장 긴 교량은 천안~오송 구간에 있는 풍세교다. 6천850m나 된다. KTX는 시속 300㎞로 달리다 700㎏의 장애물과 충돌해도 객실에는 충격이 없다. KTX의 동력원은 전기다. 전력은 한전에서 전기를 공급 받아 철도청 전철변전소를 거쳐 차량에 공급된다. 전기를 공급하는 과정은 3중화 개념으로 설계됐다. 전기를 공급하던 변전소에 문제가 있으면 인접 변전소에서, 그곳에 문제가 있으면 다음 인접 변전소에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어 정전이 돼도 KTX는 바람보다 빨리 달린다. KTX 1개 열차의 좌석수는 특실 127석, 일반실 808석으로 모두 935석이다. 수요가 늘어 4분 간격으로 운행시 시간당 15회, 1일 16시간 운행시 총 240회 운행이 가능하다. 왕복 480회 운행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좌석이용률 1.15를 곱하면 하루 최대 51만6천120명이 이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해동안 1억8천838만명을 실어나를 수 있는 셈이다. 요금은 서울 ~ 부산까지 4만5천원, 용산 ~ 목포는 4만1천400원이다. KTX는 총 46편성으로 구성돼 있다. 1편성은 열차 20량이다. 이중 12편성을 프랑스로부터 도입했고 나머지 34편성은 국내기술(95%이상·로템)로 제작됐다. 그러니까 KTX는 국산이다. KTX의 생명은 무사고, 무탈이다. 인생은 바람과 같다. 한번쯤 바람에 몸을 실어봄직 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측근비리 특검

“목돈 2천만원을 무슨 돈으로 예금했나요?” “유흥업소에서 15년동안 일하면서 손님들이 준 팁을 상자에 넣어 보관해둔 돈입니다.” “왜 진작 은행에 예금않고 가지고 있었는지요.” “금융사고가 생길 지 몰라 가지고 있었습니다.” “돈을 10년 이상 상자에 넣어뒀는 데 상하진 않았는 지요?” “그래서 참숯을 넣어 보관했습니다.” 선문답 같은 이 참고인 진술조서 작성은 얼마전 김진흥 특검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통령 측근비리에 연루되어 구속 중인 최도술씨 형제 등에게 수천만원씩이 전달된 정황이 잡혀 최씨의 동생을 불러 참고인 조사를 한 게 이같은 선문답식 신문과 진술이 있게 된 것이다. 특검팀은 최씨 동생의 진술이 객관적으로 납득되지 않은 부분이 한 두군데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입증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할 수 없이 무혐의 처분했다고 한다. ‘새끼줄을 가져온다고 가져왔는 데 나중에 보니 새끼줄에 황소가 달려 있더라’고 했다는 옛날 어느 소도둑의 말을 연상케하면서도 더 황당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그같은 목돈 예금을 갑자기 하게 된 데는 필시 곡절이 있을 것으로 본 특검도 혐의를 더 밝혀내지 못했으니 민중들은 ‘10여년 동안 팁받은 돈을 참숯 넣은 상자에 모아둔 돈’이라는 말을 믿어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금융사고가 날까봐 은행에 못 맡겼던 돈을 어찌하여 돌연히 은행을 믿게 되어 예금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무슨 일에 성과가 많으면 물론 노력도 많은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성과가 없어 힘은 힘대로 더 많이 들어, 그래서 노력을 더해 성과를 올리려 해도 안되는 수가 있는 것이다. 특검팀은 오늘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문을 닫는다. 그간의 수사에 수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나 수사에 애로가 많았던 탓인지 기대엔 미치지 못했다. 측근비리가 밝혀진 것 만이라고 믿을 세인이 얼마나 될 것인 지가 궁금하다./ 임양은 주필

샤론의 직무정지

"중동의 화약고라고 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불씨는 영국이 심은 것이다. 제1차대전 중 영국이 유태인에게는 벨푸어선언, 아랍인에게는 후사인 맥마온 협정으로 각각 건국을 약속하는 모순된 정책을 취한 것이 원인이 되어 두 민족간의 격화된 대립을 가져왔다. 이스라엘 건국을 둘러싸고 1948년 일어난 1차 중동전쟁을 시작으로 반세기가 넘도록 영일이 없다.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팔레스티나에서 추방된 아랍 난민들은 그들의 고향을 다시 찾기 위한 팔레스티나 해방운동을 벌였다. 1964년엔 반이스라엘 해방조직 통일전선으로 팔레스티나 해방기구를 결성했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막강한 지지와 막대한 지원을 받는 것은 유태인들이 미국의 지배계층에 대거 진출하여 있기 때문이다. 며칠전 이스라엘은 미사일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의 아메드 아신을 살해하는데 성공했다. 최고 지도자를 잃은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는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다짐하고 있어 아랍권의 서방세계에 대한 비난 속에 미국 등 세계는 테러공포에 떨고 있다. 이렇게 요인 표적암살 등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책으로 자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던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수뢰혐의가 적발돼 실각의 위기에 처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1999년 외무장관으로 있으면서 그리스의 휴양섬 개발사업을 미끼로 부동산업자로부터 69만달러(8억원 상당)를 받는 등 잇따라 뇌물을 챙기고, 그의 아들은 2001년 총선 때 150만달러(17억원 상당)의 불법자금을 모금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검찰은 샤론 총리의 본인 비리와 아들인 측근비리에 관련된 증거를 이미 확보하여 기소를 서둘고 있다. 또 기소가 되면 대법원 판결 등 사법절차가 마무리 될 때까지 이스라엘 실권의 최고 지위인 총리직 직무가 정지된다. 샤론의 미사일에 맞아 숨진 아신의 저주가 샤론으로 하여금 나락에 떨어지게 한 것일까, 죽은 자와 죽인자의 운명이 대조적이다. /임양은 주필

선거사범들

"이번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는 분위기가 선거같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 본 선거기간에 안 들어간 탓도 있지만 오는 4월2일부터 본격 선거기간으로 들어가도 아마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합동연설회가 없다. 후보자가 합동연설회에 돈들여 군중동원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다. 동원된 군중이 자신을 동원한 후보자가 연설을 마치면 썰물 빠지듯이 합동연설회장을 빠져 나가곤 했던 것을 많이 보아왔다. 또 유권자가 후보자에게 돈이나 향응을 받으면 엄청난 과태료를 부과받고 후보자의 선거 부정행위를 유권자가 신고하면 떼돈을 받는 보상제도가 있어 예전처럼 흥청망청하지 않기도 한다. 하나, 선거가 선거분위기 같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은 이면이 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벌써 적발된 부정선거 건수가 지난 16대 국회의원선거에 비해 곱절이 된다고 한다. 이 가운데는 사안이 결코 가볍지 않은 게 많아 그 어느 때보다 당선무효가 많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낡은 생각은 이제 추방돼야 한다. 선거 분위기가 선거같지 않다는 생각은 선량한 유권자 사회에서 만이 그럴 뿐, 그러니까 낡은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일부 후보 예정자나 유권자 사이는 아직도 온갖 불법과 추태를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예컨대 강원도 속초에서는 2천장의 입당원서를 받아주는 대가로 사조직 책임자에게 1억원을 건네준 혐의로 열린우리당 속초·고성·양양지구당 회계책임자 등 4명을 공명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1억원 단위의 매수자금은 지금까지 나타난 뒷거래 중 가장 높은 금액이다. 선거 부정사례는 어느 당 할 것 없이 다 있는 것이긴 하지만 희한한 게 있다. ‘낡은 정치를 타파한다’는 이른바 개혁정당의 열린우리당이 가장 많이 차지하는 자가당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 지 설명이 안된다.임양은 주필

야생동물

"한국의 야생동물 가운데 호랑이, 늑대 등은 사실상 멸종된 지 오래다. 또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만도 43종에 이른다. 보호해야 할 동물은 151종이라고 한다. 까치와 청서(일명 청설모)를 제외하고는 개체 수를 조절할 만큼 과잉번식하는 동물은 그리 흔하지 않다. 야생동물들에게는 폭우·가뭄·폭설·지진·화산 폭발 등 자연재해보다 인간이 가장 무서운 천적이다. 불법 밀렵은 야생동물들의 최대 수난이다. 산돼지, 고라니, 너구리 등이 억센 올무(덫)에 걸려서 이를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친다. 더러는 다리가 부러졌거나 목이 졸려 죽는 장면이 TV를 통해 생생히 보도되기도 한다. 보기에 실로 안타깝다. 일정 지역과 기간을 정해 놓고 개체수 증가에 따른 수렵을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야생동물의 잔혹사’다. 수십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전국의 산과 들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뱀·개구리·반딧불이·가재·잠자리 등은 깊은 산골이나 박물관에서 표본으로나 봐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무분별한 산림 개발과 환경 오염 등으로 먹이와 살아 가는 땅이 아주 척박해져 야생동물들이 살 곳을 점점 잃어가기 때문이다. 급작스런 산불은 야생동물들에게도 재앙이다. 강원도 지역은 특히 심하다. 지난 2000년 4월7일부터 9일간 강원 고성~경북 울진 동해안 지역에서는 생태계의 보고인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여의도 면적의 78배가 넘는 2만3천448㏊의 임야가 소실됐다. 산불로 나무와 숲이 사라지면 초식 포유류가 상당수 자취를 감추고 초식동물을 잡아 먹고 사는 ‘맹금류’들이 활개를 친다. 이런 일로 토끼는 간데 없고 살쾡이가 닭을 물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야생동물에 관한 잘못된 속설과 지나친 보신문화는 야생동물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그러나 야생동물의 피(혈액)나 고기를 함부로 먹으면 각종 기생충이나 잠복성이 강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치명적인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야생동물이 살 수 없는 곳은 사람도 살 수 없다. 공생공존은 자연의 섭리다. /임병호 논설위원

마지막 여우?

"여우는 전설과 민담 속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다. 계절에 따라 들쥐·멧토끼·벌레·과일 등을 먹는 잡식성으로 식육목(食肉目) 개과(科)에 속한다. 한자어로는 호(狐)라 한다. 우리나라에 분포된 여우는 유럽·북아프리카·아시아·북아메리카에 널리 분포하는 ‘레드 폭스(vulpes vulpes Red Fox)’로 통칭되는 종류이다. 형태적으로 일본산 여우와 비슷하다. 다만 다른 점은 주둥이의 색채가 일본산 여우에 비하여 엷어서 황갈색에 가깝다. 다리는 개보다 짧고 몸길이는 52~76㎝, 꼬리 길이는 26~42㎝, 몸무게는 4~7㎏ 정도다. 여우의 번식은 겨울철인 1,2 월에 암컷이 선택한 수컷과 짝을 지은 뒤 52~56일의 임신기간을 거쳐 4월 중순에 초산에는 서너마리, 그 뒤에는 대여섯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갓난 새끼는 눈을 감고 있지만 12~14일 뒤 눈을 뜬다. 새끼 옆에는 항상 수컷이 암컷과 같이 새끼들의 양육과 먹이의 운반을 도와 준다. 1개월 후면 새끼들이 굴밖으로 나와 놀며, 2개월 후에는 젖을 먹이지 않는다. 새끼들은 늦은 여름이나 가을이 되면 어미로부터 독립하여 생활을 하게 된다. 남한에서는 해방 전까지는 비교적 많은 여우가 서식했으며 1960년까지만 해도 야산에서 번식, 어느 정도 개체군을 유지했다. 그러나 남획과 전국적인 ‘쥐약 놓기 운동’의 2차적·3차적 피해를 입은 데다 국가적인 보호대책이 강구되지 않아 멸종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23일 강원도 양구군 동면 덕곡리 뒷산에서 죽은 여우 수컷 한 마리가 발견됐다. 여우가 발견되기는 1978년 지리산에서 밀렵꾼에 의해 한 마리가 포획된 이후 처음이다. 비록 사체로 발견됐지만 아직은 여우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새끼들의 먹이를 구하러 나왔다가 인간이 놓은 올무에 걸렸거나 독극물로 죽은 소형 동물을 먹고 숨졌을 것이다. 여우는 술수와 변화를 부리며 인간을 괴롭히는 동물로 인식돼 왔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강원도 어느 산속에서 수컷을 기다리는 암컷과 갓 태어난 새끼들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임병호 논설위원

영생

"중국 당조(唐朝)의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중국 서쪽 오지 촉(蜀·지금의 쓰촨성 일대) 사람이다. 어려서 시와 검법을 배운 그는 약관의 나이에 세상으로 나온다. 고향을 떠나는 각오를 담은 시 ‘광산을 떠나며(別匡山)’에서 이백은 “책과 칼로 태평성대에 몸 바치리”라고 갈파했다. 수도 장안으로 들어가 관직을 구하지만 오히려 가진 재물만 날린 심정을 ‘행로난(行路難)’에서 “갈 길 어렵구나, 돌아가자”며 비통해 한다. 이백의 삶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는 관직을 얻은 후 펼쳐진 삶이다. 경세의 뜻을 펼치려던 웅지는 고작 황음에 빠진 현종과 양귀비에게 1~2년동안 시를 지어 바치는 궁정시인의 현실로 귀결된다. 맹호연 원단구 두보 등과 사귀며 외로움을 달랜다. 이백은 천하를 다스려 이름을 얻기 바랐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이백은 1천100편에 이르는 시를 남겨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시인의 반열에 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시 하나를 두고 퇴고를 거듭했다고 하지만 이백은 입에서 나오는 말로 즉흥시를 썼다고 전한다. 술이 거나해진 이백이 춤을 추다 말고 벗 원단구에게 말한다. “단구 선생, 붓을 잡고 쓰시오. 시가 완성되었소!” 중국인 학자 안치(安旗)가 1993년 발표한 소설 형식의 전기문학 ‘이백’에 나오는 장면이다. 술 마시고 춤을 추다 문득 시를 쏟아내는 이백의 입, 그 뒤를 따르며 한 소절씩 받아 적는 원단구의 손놀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백의 삶 전체를 적시고 있는 술은 입신양명의 꿈을 이루지 못한 분을 쏟아내는 출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1천400여년이 지난 지금 이백은 자신이 부러워했던 모든 경세가들의 잊혀진 이름 위에 홀로 기억되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이백은 세상 가운데 서려했으나 세상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오히려 시인으로 영생을 얻었다. /임병호 논설위원

우려스런 세태

“○○○님! 저(A) 오늘 몸이 아파서 조퇴할까 합니다” ○○○은 흔쾌히 허락한다 “그래! 건강이 제일이지….” “○○○님! 저(B) 오늘 몸이 아파서 조퇴할까 합니다” ○○○은 아연 진노한다. “무슨 소리야? 조직생활을 그 따위로 해서 되나?” (흔히 있는 사례다) A와 B에 대한 차이는 A는 측근이고 B는 비측근인 데 있다. A와 B를 경우로 대하는 것이 아니고 정실로 대하는 것이다. 조퇴가 가하고 불가하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A에게 허락하였으면 B도 허락해야 하고, B에게 허락하지 않았으면 A도 허락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조직생활의 잣대는 하나이어야 한다. 이런 조직의 잣대가 아닌 사람에 따라 다른 여러개의 잣대는 조직 자체를 망가 뜨린다. 조직도 인간의 구성체여서 사람에 따라 더 친한 사람도 있고 덜 친한 사람도 있고, 좀 미운 사람도 있으며 아주 미운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개인의 정서가 조직의 잣대를 우선해서는 그 재앙이 결국은 자신에게 돌아간다. 또 무슨 구체적 잘못에 충고를 하면 제 잘못을 돌아볼 생각은 않고 말해주는 상대를 마치 원수대하듯이 하려든다. 충고하는 사람이 윗사람일 것 같으면 “저나 잘하지…”하고, 아래 사람일 것 같으면 “건방지다…”며 욕한다. 이래서는 비판이 있을 수 없고 비판이 활성화 하지못한 조직에서는 아첨만 횡행한다. 조직의 잣대와 비판 기능은 함수관계다. 잣대가 엄정하면 건설적 비판 기능이 활성화하고 반대로 그렇지 못하면 조직의 이완을 가져온다. 공동 목표의 구심점 속에서 각기의 의견, 즉 다른 생각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조직이다. 국가나 사회나 기업이나 다 마찬가지다. 작금의 국가사회가 독선으로 치닫는 풍조는 가히 폭력적이다. 잣대가 달라 상대에 따라 총애하고 저주하는 수위가 지나치고, 비판기능을 위장한 아부가 횡행하고, 충고는 곧 역적으로 몰리는 세태의 미래가 무척 우려스럽다. /임양은 주필

대만 정국과 국내 정국

"대만의 총통선거 후유증이 심각하게 돌아간다. 집권 민진당의 천수이볜 현 총통이 647만1천970표로 야당연합후보 롄잔을 불과 2만9천518표차로 따돌리고 신승하긴 했다. 그러나 롄잔은 야당의 표밭인 타이베이시 등 주로 북부지역에서 쏟아진 33만표의 무효표가 이 지역 유효표의 3분의1에 해당한 것은 조작된 것이라며,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나서 법원이 투표함을 봉인하는 등 새로운 쟁점이 됐다. 이번 총통선거는 국민당 중심의 야당연합 대륙파와 민진당 토착파의 치열한 대결로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던 것이 투표 전날 발생한 총통 저격사건이 분수령이 됐다. 적잖은 동정표가 쏠린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야당연합 불복의 빌미가 또 되었다. 저격 현장에서 1.8㎞ 거리인 타이난 종합병원에 가지않고 6.5㎞나 떨어진 민진당 의료진영의 치메이 병원으로 이송되어 3시간 뒤에 피격 사실을 발표한 것은 이 역시 조작극이라는 게 야당측 주장이다. 의문은 또 있어 불과 7m 거리에서 저격을 당한 천수이볜의 부상이 너무 가볍고 범인 또한 오리무중에 빠져 잡을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선거가 싫다. 집안 어른들은 선거 때문에 날마다 싸움만 하여 TV조차 보기가 싫어진다….’ 대만의 한 초등학생이 작문 시간에 이렇게 쓴 글이 있었다고 어느 신문의 현지 특파원은 전했다. 대만 사람들은 선거 기간에도 이토록 갈라져 싸움질하던 것이 선거가 끝나고도 연일 시위가 넘쳐난다는 소식이다. 심지어는 계엄령 선포설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대만의 선거정국이 마치 국내 탄핵정국과 비슷하다. 국내에선 탄핵반대 시위가 넘쳐나고 대만은 선거무효 시위가 넘쳐난다. 대만은 중국과 양안이 대치되고 우리는 남과 북이 대치돼 있는 실정 또한 비슷하다. 대만도 걱정이지만 국내 형편은 더 절박하다. 제발, 헌법재판소의 심판 결정이 어떻게 나든 결과가 나오면 더는 시위가 없는 국가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임양은 주필

"나의 별, 너의 별

"별(星)은 통상 태양 달 지구를 제외한 천체를 말하지만 광의로는 모든 천체, 협의로는 항성을 의미한다. 항성이란 천구상(天球上)에서 서로의 위치를 바꾸지 않고 성좌(星座)를 구성하는 천체로서 태양계가 이에 속한다. 태양을 인력(引力) 중심으로 하여 운행하는 태양계는 태양으로부터 수성·금성·지구·화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명왕성 등 9개의 행성이 있다. 최근 세계 천문학계는 10개째의 행성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어 한동안 흥분했으나 행성이 아닌 거대한 구름덩어리로 보는 의문이 제기된 채 확인되지 않고 있다. 태양계는 9개의 행성 이외에 지구의 위성인 달과 같은 32개의 위성과 1천600개 이상의 소행성,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성이 있다. 이 우주엔 실로 천문학적 수치의 많은 별과 별무리가 있다. 태양계만도 300억개의 별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가운데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이 6천여개나 된다. 원곡은 독일곡으로 송창식·윤형주 그룹 등 통기타 가수가 부른 노래로 ‘작은 별’이란 노래가 있다. / 저별은 나의 별 저별은 너의 별 / 별빛에 물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 아침이슬 내릴 때 까지 / 별이 지면 꿈도 지고 슬픔만 남아요 / 창가에 지는 별들의 미소 잊을 수가 없어요 / 저별은 나의 별 / 저 별은 너의 별 … (후략) / 청명한 밤 하늘에는 그 자신의 에너지로 빛을 뿜어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이 마치 보석처럼 깔려 있다. 별중에 앞으로는 최무선별, 이천별, 장영실별, 이순지별, 허준별 등 우리의 옛 과학자들 이름을 딴 별들이 있게 된다. 국내 연구진이 발견한 소행성 5개에 이같이 명명한 별 이름을 국제천문연맹으로부터 곧 승인받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별들은 특수 망원경으로만 관측된다. 육안으로 보는 별은 여전히 ‘나의 별’이고 ‘너의 별’인 것이다./임양은 주필

수요집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대표 신혜수)가 주최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정기 수요집회가 3월 17일로 600회를 맞았다. 1992년 1월 8일 시작된 정대협 수요시위는 햇수로는 12년째, 국내 최장 집회기록을 세웠다. 얼마전 어떤 정신 나간 여자탤런트가 사진을 찍은 ‘위안부 누드’파문이 할머니들에게 또 한번 고통과 상처를 주었지만, ‘위안부 할머니 명예와 인권의 전당’ 건립 운동과 위안부 문제를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난 17일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정대협 관계자, 위안부 출신 할머니 등 200여명이 수요집회를 벌였다. 200회를 기념해 특별히 풍물패와 노래패 공연까지 준비했으나 행사는 곧 바로 일본 정부, 특히 우리 정부에 대한 성토대회로 변했다. “일본 정부의 악랄함 만큼이나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무관심이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한다”고 비난했다. 사죄발언과 공연을 위해 방한한 일본 오키나와 평화회 회원도 “일본 정부의 태도도 잘못됐지만 할 말을 못하는 한국 정부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수요집회가 600회나 되도록 이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실로 한심하다. 특히 삼일절·광복절이 닥치거나 ‘위안부 누드’ 처럼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만 관심을 끄는 것도 문제다. 역대 정권들의 정책은 더욱 기이하다. 김영삼 정부는 ‘일본에 배상요구 않겠다’고 하였다. 김대중 정부 때는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처럼 하다가 방일 이후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지향한다고 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노무현 정부는 김영삼·김대중 정권보다 더 침묵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니까 정대협이 내년말까지 20억원을 목표로 ‘위안부 할머니 명예와 인권의 전당’ 건립 국민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위안부 할머니들이 먼저 10만~20만원, 100만원을 냈다고 한다. 정대협(02-365-4016, 392-5252)은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건물에 있다. 모금운동에 국민적 동참이 있어야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겁 없는 세상

"은 30냥에 스승 예수를 팔아 넘긴 사람 이름 ‘가룟 유다’는 ‘가룟(그리욧)사람 유다’라는 말이다. 일명 다대로라고도 불리는 예수의 또 다른 제자 유다와 구별하기 위해서 그렇게 부른다. 가룟 유다는 예수의 열 두제자 중 한 사람으로 회계 책임을 맡아 재무를 담당했다. 예수의 공생애 3년 동안 예수를 줄곧 따라다니면서 예수가 베푼 많은 이적을 직접 체험했고 그 자신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 고치는 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평소 돈을 너무 좋아했다. 더구나 예수의 능력을 통해 로마 제국의 압제에서 유대를 독립시키고 그로 인해 자신도 크게 출세하려는 세속적인 욕망을 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야망이 실현되기 어렵게 되자 결국 예루살렘의 타락한 제사장들에게 은 30냥을 받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를 팔아 넘겼다. 가룟 유다의 최후는 비참했다. 자신이 팔아 넘긴 예수가 사형을 선고 받자 죄 없는 스승을 팔아 넘겼다는 자책감으로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혹자들은 가룟 유다를 가리켜 숙명론적인 상황의 희생자, 예수의 메시아 환상을 일깨워 주려 한 진정한 친구, 스승을 팔아서라도 조국 유대의 독립을 쟁취하려 한 애국자 등으로 미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의 평가는 냉철하다. 가룟 유다를 가리켜 마귀(요 6:70), 도적(요 12:6), 멸망의 자식(요 17:22),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자(마 26:24) 등으로 평가한다. 물론 역설적이지만 오늘날은 가룟 유다를 스승으로 비유한다. 검은 돈, 비겁한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가룟 유다를 기억하라고 한다. 사리 사욕을 좇아 추악하게 세상 권세를 추구하는 자는 가룟 유다를 기억하라고 한다. 가룟 유다가 멸망한 것은 하느님의 긍휼을 믿고 그 은총을 진정으로 구하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를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육신의 눈이, 영혼의 눈이 멀지 않는다. 그래도 가룟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 사회에는 가룟 유다 같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자살은 커녕 예수처럼 행세한다. 겁 없는 세상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서독

"독일통일 전 서독외교의 최대 업적은 전세계를 상대로 두 번이나 전쟁을 일으켰던 전범국가로서의 이미지를 벗도록 한 브란트 총리에서 찾게 된다. 그는 1970년 12월 바르샤바를 방문해 나치희생자 묘역 앞에 무릎을 꿇고 폴란드인에게 용서를 구했다. 이 사건으로 폴란드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였다. 브란트의 이런 결단은 1989년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고 통일의 가능성이 무르익어가는 상황 속의 서독정부에 이어졌다. 겐셔 외무장관은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동독 사태로 불안해하던 폴란드와 주변국들에 과거 전범국의 반성을 재확인하고 미래에 대한 독일민족의 책임감을 분명히 했다. “폴란드 민족은 50년 전에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의 최대 피해자입니다. 폴란드 국민은 이제는 안전한 국경을 보장받고 그 안에서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독일민족은 가해자입니다. 가해자인 우리가 폴란드 국경을 재론하며 과거영토에 대한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한 슬픈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폴란드와 함께 미래의 보다 나은 유럽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현 국경에 대한 보장은 유럽의 평화공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 될 것입니다.” 국제사회를 향한 겐셔 장관의 고백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러시아의 고르바초프의 마음을 움직였다. 향후 독일문제는 독일민족 스스로 해결하는 데 미·러 두 강대국이 동의해준 것이다. 이를 계기로 독일통일의 가능성이 활짝 열렸고 영국, 프랑스, 폴란드의 양보도 얻었다. 특히 서독정부는 새로운 삶을 찾아 목숨을 걸고 동독을 탈출하는 동포들에게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일은 동족으로서 당연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동독에서 내버리다시피 한 병약자와 노인들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양심수와 정치범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천문학적 비용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것은 곧 서독사회가 진리, 자유, 그리고 인권의 편에 섰다는 증거들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가 배워야 할 과거 서독의 정책이다./임병호 논설위원

정동영의 실언

“필요하다면 제17대 국회개원 이후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뜬금없는 추경론에 이헌재 경제 부총리는 “??” 무슨 말인가 싶어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지난 15일 정부 청사 경제부총리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민생활안정대책이 총선 선심으로 몰릴까 싶어 추진 안 했던 게 탄핵정국으로 경제시책이 정치와 분리됐다고 보아 이젠 적극 추진하겠다는 이 부총리의 말에 정 의장은 거든다는 게 추경 실언이었던 것 같다. 불가피한 추경은 물론 해야 하지만 시기가 있고 또 방만한 추경편성은 재정건전성을 위협, 경제위기의 버팀목이 무너지게 되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경제 상식이다. 정 의장은 이를 간과한 채 순수한 이 부총리의 민생대책을 정치적으로 한술 더 떠 해석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재경부는 추경은 시기와 규모에 전혀 검토한 바가 없다고 밝히자 열린우리당은 “3·4분기를 염두에 둔 말”이라고 멋쩍은 변명을 했다. 정 의장은 얼마전에도 10만원권 화폐발행 문제를 두고 실언을 한 적이 있다. “내수에 도움을 주어 경기활성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가 학계는 물론이고 당내에서까지 뭘 모르는 당치않은 소리로 치부되어 없었던 얘기가 됐다. 10만원권 발행은 유통과정의 관점에서 제기되는 문제이 지 경기대책과는 거리가 먼 일이기 때문이다. 황당한 말을 잘 하기로 평판이 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이제 ‘황당어록’이라는 노래로까지 나와 풍자되고 있다고 전한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황당한 경제관련 실언이 더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말은 생각이 꽉 찬 속에서 나와야 말다운 말이 된다. 객기가 앞서면 공허하기만 하다. ‘하문불치’(下問不恥)라고 하였다. 정 의장을 위하여 이 말을 충고해두고 싶다./임양은 주필

경기마라톤대회

"지구촌의 생명체 가운데 바로 서서 걷는 것은 인류에게만 주어진 초능력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걷는 게 건강에 좋은 것은 보편화된 상식이다. 인체의 신경계통과 오장육부를 활성화하여 혈액순환을 돕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든 사람에게는 걷는 운동이 곧 보약이다. 노령화로 가장 먼저 허약해지기 쉬운 하체를 단련하는 것은 노화방지의 효과를 가져온다. 교통수단의 발달과 더불어 자가용 승용차 보급의 확대로 좀처럼 걷는 기회가 없다. 어른들은 아침 먹고 한나절에 백리길 나들이가 예사였고, 아이들은 십리 이십리길을 걸어 학교를 다니던 시절과는 비할 순 없어도 지금 사람들은 안 걸어도 너무 안 걷는다. ‘만보걷기’가 있다. 하루에 1만 걸음을 걷자는 운동이다. 그쯤이야 안 걷겠느냐고 여길 지 모르지만 잘 모르는 소리다. 만보를 걷는 게 시간을 치면 약 40분이 소요된다. 만보는 고사하고 그 절반, 또는 절반의 절반도 안 걷는 현대인이 수두룩하다. 예전 사람들보다 잘 먹어 영양 섭취량은 많아도 여기저기 아픈데가 더 많은 연유가 이토록 걷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걷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은 뜀질이다. 걷는 것과 달리기의 차이는 반드시 속도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달리는 게 걷는 것보다 빠른 것이 통상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걷는 것은 두 발 중 한발은 언제나 땅을 딛고 있는 자세인 데 비해 달리기는 두 발이 모두 순간순간 땅을 딛지 않고 공중에 떠있는 자세가 된다. 경보와 마라톤을 생각해보면 아마 이해가 쉬울 것이다. 오는 4월18일 제2회경기마라톤대회(42.195㎞ 풀코스, 21.0975㎞ 하프코스, 10·5㎞ 단축코스) 출발이 수원종합운동장에서 본사 주최로 있게 된다. 이 풍진 세상의 고뇌를 한껏 달리면서 잊는 것도 해볼만 하다. 무엇보다 심신의 건강에 좋다. 많은 이들이 지금부터 미리 연습해가며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임양은 주필

‘4’는 ‘事’다

"좋은 전화번호, 좋은 차량번호를 선호하는 경향이 꽤나 있었다. 현대사회는 번호의 사회다. 주소지지번,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차량번호, 은행계좌번호, 학번, 남자는 군번 등 이밖에도 허다한 번호를 지니고 산다. 이 가운데 유별나게 좋은 번호를 선호하였던 전화번호나 차량번호 신드롬도 이젠 시들해졌다. 그냥 주어지는 대로 쓰는 데 불만을 갖는 이들이 별로 없다. 전화나 차량번호에 좋은 번호란 것을 찾는 관념 자체가 사실은 유치하다. 아무 번호나 나의 번호가 되면 그 번호에 애착이 가기 마련이다. 또 ‘4’자나 ‘四’자는 발음이 죽을사(死)자와 같다하여 무척 기피하기도 하였다. 엘리베이터 층수 표시에는 4층은 아예없이 3층에서 5층으로 건너뛰는 데가 많았다. 병원 입원실 호수에도 4자는 모조리 빼기도 했다. 아직도 이런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차량 번호판에 4자를 없앨 작정으로 번호판 생산 컴퓨터 데이트 뱅크에서 4자를 영구 삭제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중국 발음으로도 넉사(四)자가 ‘쓰’라고 하여 죽을사(死)자와 발음이 똑같은 모양이다. 이에 논란이 없는 건 아니다. 일반 시민들은 “인민의 마음을 헤아린 조치”라고 좋아하는 반면에 지식층에서는 “미신을 부추기는 잘못된 처사”라며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도 차량 번호판의 4자 추방은 중국 전역에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는 것을 보면 중국 사람들도 미신 관념이 어지간한 것 같다. 국내 어느 마을의 명칭인 사거리(四巨里)가 ‘死去里’ 같다하여 이름을 바꾼 적이 있는 전례의 경우 같으면 또 모르겠다. 그냥 4(四)자를 기피하는 공연한 관념은 정보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일사(事)자로 여기면 된다. 일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고 일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 ‘사’는 곧 ‘事’인 것이다./임양은 주필

반신욕

"사람 체온보다 약간 높은 37~38도 정도의 더운 물 속에 명치 끝 아랫부분을 담그는 목욕법을 ‘반신욕(半身浴)’이라고 한다. 하반신을 따뜻하게 하고 상반신의 열을 내려 인체의 기온을 조화롭게 한다. 반신욕은 일주일에 2~3회 또는 이틀에 한 번 꼴 정도가 적당하며 한번에 20분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 욕조에서는 어깨나 팔 부분은 물속에 넣지 말아야 한다. 물 온도는 따뜻한 물 수준에서 차츰 올려 38도에 이르게 하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물이 너무 뜨거우면 몸에서 방어벽이 생겨 열기가 몸 속으로 충분히 전달되지 못할 수 있다. 운동을 한 후나 근육통이 있다면 물 온도는 41~43도가 좋다고 한다. 반신욕을 하면 혈관이 열려 온 몸의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몸의 독소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효과가 있다. 고혈압 환자나 심장질환 환자도 반신욕이 도움이 된다. 이들은 전신욕을 하면 몸 전체의 열이 높아져 좋지 않다. 반신욕을 하면 천식의 발작이 완화되고 숨이 막힐 듯한 증세가 줄어드는 대신 기침과 가래가 나온다. 기관지에서 나오는 가래도 몸 안의 독소이므로 계속 내뱉는 것이 좋다. 감기는 냉(冷)으로 생긴 병독을 몸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나타나는 현상인 만큼 냉을 치유하는 반신욕이 도움이 된다. 의사들은 감기에는 전신욕이 좋지 않다고 한다. 반신욕은 가벼운 복통의 진정에도 도움이 된다. 따뜻한 물로 배를 따뜻하게 해 경련을 일으키는 내장의 근육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방광염이나 만성전립선염에도 반신욕이 좋다. 혈액 순환이 좋아지고 환부세포 하나 하나가 활기를 띠어 세균에 대한 저항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반신욕은 여성에게 좋다. 생리불순이나 생리통, 냉증 등의 부인병을 치료하는 건강법으로 반신욕이 권장된다. 부인병은 대부분 하반신이 차서 오는 질환이기 때문에 반신욕이 좋은 치료법이 된다.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 조선시대 명의 허준(許浚·?~1615)이 ‘동의보감’에 쓴 건강 지침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짱' 남용

"장(長)을 경음화한 ‘짱’이라는 말은 교내 불량배를 가리키는 비속어였다. 교실에는 민주적으로 선발된 반장이 있듯이 힘으로 된 ‘반짱’이 있다. 또 학교장(교장)을 ‘학교 짱’이라고 발음하면 교내 짱들을 평정한 ‘짱 중의 짱’을 의미한다. ‘짱’이란 말과 동의어로 ‘캡’이 있다. 명사로도 쓰이고(“몸매가 캡이야!”), 부사로도 쓰이고(“캡 좋더라”), 사람도 뜻하는(“네가 캡해라”) ‘캡’ 역시 영어로 ‘반장’을 뜻하는 ‘캡틴’(cap의 어원도 ‘우두머리’)에서 나왔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영어교사 로빈 윌리엄스가 자기를 미스터(선생님)가 아니라 ‘캡틴’으로 불러 달라고 했을 때의 그 캡이다. 그러나 학원무림에 2인자는 없는 법이어서 ‘짱’이 ‘캡’과 맞장 떠 이기면서 캡은 소멸해 가는 단어가 됐다. ‘짱’은 원래 어린이·청소년들이 쓰던 또래 말이다. ‘얼굴이 짱 예쁘다’, ‘춤을 짱 잘 춘다’에서 ‘~참 예쁘다/~참 잘 춘다’처럼 ‘엄청·매우·참’과 비슷한 어찌씨로다. 싸움꾼·패거리 따위 좀은 폭력적인 쪽의 ‘대장·최고’란 뜻의 이름씨로, ‘좋다, 최고다’란 뜻을 담아 ‘짱이다, 짱이야’처럼 쓰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일본말에서, 부르는 말에 두루 붙여쓰는 우리의 ‘님, 씨’에 해당하는 뒷가지(존칭접미사) ‘상·산’의 어린이말 ‘짱’의 영향이 있겠다. ‘오도짱(아빠)’, 오가짱(엄마), 봇짱(귀한 집이나 남의 아들이 경칭), 운짱(운전사)’처럼 주로 그쪽 아이들이 쓰는 이 말은 어린이 또는 상대를 친근하게 부를 때 쓰기도 한다. 같은 말이라도 된 소리로 발음하면 힘과 함께 ‘상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한국인의 언어감각이다. 된소리로 시작되는 말에 비속어가 특히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예컨대 ‘상스럽다’는 말도 ‘쌍스럽다’고 표기하면 상스러움이 더 강렬해지는 경우다. 그런데 문제는 ‘짱’이 유행하는 것에 언론이 일조한다는 사실이다. ‘얼짱’ ‘몸짱’ ‘강짱’ 등 각종 ‘짱’이 신문기사 제목으로 나오는 것이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임병호 논설위원

간첩

"자유월남(베트남)이 간첩에 의해 멸망했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월남 전체 인구의 0.5%를 차지하는 5만여명의 공산월맹 간첩들은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위장한 채 시민·종교단체는 물론 대통령 비서실장과 장관, 도지사 등 권력핵심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월남패망으로 수 많은 시민들이 죽어간 이후에나 확인됐다. 세계 4위의 화력을 자랑하던 월남은 군화조차 신지 않고 남진하는 월맹군에게 1975년 4월30일 적화돼버렸다. 같은 해 1월3일 월맹군이 남진을 시작한 지 넉달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월남의 공산화는 참혹했다. 사이공 함락 후, 월남의 모든 군인·경찰·공무원·지도층인사·언론인·정치인들은 ‘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됐고 이중 다수는 생사불명의 상태가 됐다. 하층의 월남국민들은 소형선박을 이용해 목숨을 걸고 탈출에 나섰다. 보트피플의 숫자는 약 106만명, 이 중 바다에 빠져 죽거나 해적에게 살해당한 숫자가 11만명이었고, 살아서 해외로 이주한 사람이 95만명으로 집계됐다. 당초 월남은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에서도 월맹을 훨씬 앞질렀지만 부패했고, 간첩들은 부패척결과 반전평화를 명분으로 월남의 신경망을 장악해갔다. 1967년 치러진 월남 대통령 선거에서 차점으로 낙선된 야당지도자 쭝딘쥬도 대표적인 간첩이었다. 그는 “외세를 끌어 들여 동족들끼리 피를 흘리는 모습을 조상들이 얼마나 슬퍼하겠느냐”며 월맹에 대한 포용정책을 주동했다. “월남은 힘으로 망한 게 아니다. 월남은 부정부패로 망하고, 속임수로 망하고 극성맞은 데모로 망하고, 간첩들에 의해 망했다” 주월 마지막 공사로서 월남 패망 후 월맹군에 체포돼 5년동안 억류됐다 구사일생으로 귀환한 이대용씨의 증언이다. 그런데 남북으로 분단된 대한민국에선 요즘 고정간첩을 체포했다는 뉴스가 나오지 않는다. 남한에 간첩이 없는 것인 지, 간첩을 잡아들이는 기관들이 일을 제대로 안한다는 것인 지 궁금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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