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秦)나라 함양의 아방궁을 먼저 점령한 유방은 궁궐안에 가득한 가지가지 보물을 손하나 안대고 그대로 물러났다. 뒤늦게 입성한 항우는 보물을 마구 약탈하고는 마침내 불까지 질렀다. 유방이 나중에 항우를 물리치고 한(漢) 나라를 세운 건 이런 데서 민심을 얻은 게 크게 작용하였다. 외신은 사담 후세인의 소장품이 날개 돋친듯이 팔린다고 전한다. 미군이 바그다드에 입성할 당시 후세인이 도망친 대통령궁으로 몰려간 시민들이 닥치는대로 약탈한 물건들이다. 이탈리아제 구두는 100달러, 사냥모자는 300달러, 버버리 재킷은 500달러 등 후세인 소장품은 무엇이든 다 돈이라는 것이다. 취미삼아 수집한 총기류와 도류(刀類), 골동품, 외국의 지도자들로부터 받은 각종 선물, 후세인 일가가 타고 다닌 승용차 등 암시장에 쏟아진 후세인 소장품은 이밖에도 무수하다. 미군들도 바그다드 입성 와중에 후세인의 물건에 손을 댄 병사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약탈한 물건을 가지고 나가면 군법회의에 돌린다는 엄중한 경고로 제자리에 내다 버리듯이 했다는 것이다. 미군에 붙잡힌 몸으로 극비 안가에서 전범 신분의 문초를 받고 있는 독재자의 말로는 금은 보화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다. 1960년 자유당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 의거 때, 당시 ‘서대문 경무대’(청와대)라고 했던 자유당의 2인자 이기붕 의장 집이 시위대의 습격을 받았다. 물론 이 의장 일가는 피신한 뒤다. 흥분한 군중은 가재도구 집기 등을 충정로 거리에 내다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소문은 금송아지가 나왔을 것이라는 등 별의별 말이 다 있었으나 막상 귀중품을 약탈하였다는 말은 없었다. 지금은 강도를 당하고도 경찰에 신고를 못하는 부정축재의 권력층 주변이 있다. 그 좋은 금은 보화며 돈이 그들에게 재앙인 것은 서민들에겐 꿈같은 얘기다./임양은 주필
"하워드 딘 전 버몬트주 지사가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초반 승세를 굳히지 못하고 존 케리 상원 의원에게 패배한 이유는 귀담아 들을만 하다. 달변과 열정으로 대중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던 그가 궤멸된 것은 올 미 대선 정국의 미스터리였던 게 워싱턴 포스트의 심층 분석으로 그 베일이 드러났다. 결론은 팀워크의 내분이 주범이다. 사령팀장인 조 트리피(47)와 야전팀장인 케이트 오코너(39) 간에 손발이 안맞은 것은 고사하고 원수처럼 싸웠다는 것이다. 트리피는 베테랑급 선거전략가이고 오코너는 딘이 주지사 시절부터 보좌해온 최측근인 것이다. 그러니까 사령팀장의 전략을 야전팀장이 번번이 무시한 의견 대립이 마침내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진 건 오코너의 측근 의식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되는 것이다. 주군을 보호한다는 측근이 되레 주군을 망치고 말았다. 최근 종영한 SBS-TV ‘왕의 여자’에서 광해군의 측근 유희분이 반정의 기미를 알아챘으나 진압의 공을 독차지하려고 같은 측근인 이이첨에겐 비밀로 부친 게 화근이 되어 결국 공멸의 길을 걷고만 것은 드라마상 픽션이지만 능히 그랬을 수가 있다. 가장 무서운 적은 외부보다 이처럼 내부에 있다. 내부의 적은 배신자도 있을 수 있으나 과잉충성을 일삼는 측근 또한 적이다. ‘비열한 친구보다는 당당한 적이 더 좋다’는 말은 영국의 속담이다. 문제는 과잉충성의 비열한 측근이 권력 주변에 있으면 그 해악이 국가사회에 미친다는 사실이다. 자고로 이런 연유로 하여 망한 왕조나 정권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허다하다. 그러나 대개의 권력자는 뱀의 혀같은 해악 측근의 말이 당장 듣기엔 달콤하여 분별력을 잃기가 십상이므로 충언을 멀리한다. 더러는 자신의 치부를 폭로하는 배신이 두려워 버리질 못하기도 한다. 딘의 패배는 결국 딘 자신의 책임인 것이다. /임양은 주필
"대한민국 헌법은 상하이(上海)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받고 있다.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또 계승한다. 1948년 건국하기까지는 공산주의와의 피나는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갈등을 빚었다. 제헌국회의원을 선출하는 5·10 총선거 당시엔 평양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 토착 공산주의자들의 방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죽창을 든 공산주의자들이 투표소를 급습, 선거관리 요원을 찔러 죽이고 투표하러 온 사람들을 강제 해산 시키는 등 투표 방해의 폭력이 전국 곳곳에서 자행되었다. 1950년엔 6·25 남침전쟁이 일어나 시산혈하속에 한반도가 초토화 됐다.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이루어지기 까지 전투원 비전투원 할 것 없이 수백만명의 인명이 살상되었다. 그리고는 1970년대 땀흘린 초인적 고도성장의 대가로 지금 이만한 삶을 누리고 있다. 이에 훨씬 앞서 일제 치하엔 중국 대륙에서 갖은 역경을 무릅써가며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숨져간 이름 모를 독립투사, 혹은 이 땅에서 일본 총독부와 맞서 저항하다가 숨진 애국선열들이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국립묘지에 잠든 수 많은 애국 선열, 전몰 장병들은 목숨을 바쳐 대한민국을 세우고 또 지켜준 나라의 은인들이다. 이밖에도 또 있다. 비록 국립묘지에 안치되진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숨진 민간인 투사들도 허다하다. 김운용씨,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부인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를 빙자하여 열 몇가진가 하는 수십억원대의 개인 비리가 결코 용납될 수는 없다. 이 사람이 법정에서 “(나의 비리를) 다 밝히면 대한민국 스캔들이 날 것”이라고 진술한 것은 몰염치한 협박이다. 이런 사람을 위하여 그토록 많은 희생을 해가며 대한민국을 세운 것은 아니다. 김씨의 비리는 철저히 밝혀 응징되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대한민국을 세웠는가 하고 생각키는 사람들이 김씨 말고도 너무나 많다. 애국 선열들과 전몰 장병들에게 심히 부끄럽다./임양은 주필
"발명왕 에디슨의 아들 토머스 주니어는 사기꾼이었다. ‘전기 활력 회복기’라고 이름 붙인 가짜 건강기계를 만들어 팔다가 사기죄로 고발당하는 등 끊임없이 사고를 쳤다. 보다 못한 에디슨은 아들의 회사를 고소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아들의 회사는 문을 닫았다. 아들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에디슨의 책임도 있었다.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에디슨은 늘 공교육을 부정했고 아들들에게도 체계적인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간디의 큰 아들 할리랄은 친구에게 사기를 치고 술과 여자에 빠져 사는 등 방탕한 생활을 했다. 아버지 간디의 장례식에 불참했을 정도로 생활은 엉망이었다. 원인은 가혹한 아버지 때문이었다. 자기 자신과 싸움을 통해 위대한 지도자가 된 간디는 평범한 아들을 늘 무시했다고 한다. 2001년 9월말 미국의 한 도로에서 손에 하이힐을 든 채 전라로 도로에 앉아 있던 노인이 체포됐다. 짙게 화장을 한 이 할머니는 대문호 헤밍웨이의 아들 그레고리였다. 심각한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63세의 나이에 성전환 수술을 받은 그는 이 일로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중 쓸쓸하게 사망했다.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제 프란츠 요세프의 아들 루돌프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와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황태자였던 루돌프는 조국의 미래를 놓고 아버지와 사사건건 대립하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황태자의 자살 이후 프란츠 요세프 황제는 쓸쓸히 왕위를 지키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스트리아의 왕가는 이렇게 끝이 났다. 윈스턴 처칠의 외아들 랜돌프는 아버지의 명성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귀공자 대접을 받았다. 경망스럽기로 유명한 그는 대학을 때려치고 정치를 하겠다면서 24세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무려 6번이나 떨어졌고 타고난 낭비벽 때문에 고생을 하다 결국 술때문에 57세의 나이로 죽었다. 그래도 “거대한 떡갈나무 옆에서 자라는 어린 잎은 햇볕을 보기 힘들다”는 그럴듯한 말을 남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식농사다./임병호 논설위원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은 ‘백의종군(白衣從軍)’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첫번째 백의종군은 장군이 43세 때 였다. 두만강 녹둔도(鹿屯島)에서 근무할 무렵이었다. 가을에 여진족이 급습해 군사를 살해하고 60여명을 납치해 갔다. 장군이 즉각 추격하여 구출해 왔지만 조정은 장군의 책임을 물어 장형(杖刑)과 함께 조산보만호(造山堡萬戶)라는 직책의 옷을 벗겼다. 그해 겨울 큰 공을 세워 복직했다. 녹둔도는 1860년 청나라와 러시아의 베이징조약 체결로 러시아 땅이 되었는데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장군의 전승 비각이 있었다고 한다. 두번째 백의종군은 원균의 모함으로 한양으로 압송돼 삭탈관직을 당한 일이다.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장군은 남을 끌어들이지 않았다. 선조는 장군을 죽일 죄목을 찾지 못해 석방했다. 무보직 상태로 남해안의 병영으로 가던 중 장군은 모친의 부고를 전해 들었으나 임지로 향했다. 원균의 패전과 전사로 삼도수군통제사에 복귀한 장군은 전함과 군사들을 정비해 명량해전에서 대승리를 거뒀다. 이듬해인 1598년에도 노량해전에서 일본 수군을 궤멸시켰으나 적의 탄환에 왼쪽 가슴을 맞고 전사했다. 장군은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단 말을 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다. 승리가 확정된 음력 11월 19일 새벽이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무찌른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나를 넬슨에게 비기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기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장군의 생애는 애국, 그 자체였다. 최근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을 조성하기 위해 내년 봄 세종로에 있는 충무공 동상을 옮길 예정이라고 밝힌 뒤 찬반 논란이 분분하다. 이전론자들은 “1968년 당시 세종로 이름에 걸맞게 세종대왕 동상을 세울 계획이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충무공 동상이 세워졌다”고 주장한다. 세종로에 세종대왕 동상을, 충무로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우자는 의견도 있지만, 광화문 광장을 조성하면서 충무공 동상을 옮기려고 한 발상 자체가 이상한 노릇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배(梨)의 날’은 배로 유명한 전남 나주에서 시작됐다. 1월 1일이다. 배처럼 깨끗하고 산뜻한 새해를 맞아 기쁨도 행복도 배(倍)로 나누자는 의미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배를 선물하자는 날이다. 2003년에 이어 올해 두번째를 맞은 ‘배의 날’은 깨끗하고 시원한 배의 이미지와 함께 배의 영어 단어인 ‘페어(pear)’가 깨끗하고 공정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 ‘페어(fair)’와 발음이 같은 데서 착안한 것이다. 숫자 3이 겹치는 어제 3월3일은 ‘삼겹살 데이’다. 지난해 구제역 등으로 돼지고기 소비가 위축됐을 때 소비촉진을 위해 파주시와 파주축협이 낸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삼겹살 데이’에는 평소 소홀했던 가족, 친구, 연인, 지인들과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사랑과 우정을 돈독히 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5월2일은 소리나는 그대로 ‘오이 데이’다. 농촌진흥청과 전남농업기술원이 공동으로 정한 날로 역시 지난해 출하량 증가와 소비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오이재배농가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다. 다이어트와 미용에 좋은 오이의 효과를 강조하는 날로 활용될 예정이다. 닭을 불러 모을 때 내는 소리가 ‘구구’라는 데 착안해 만든 것이 9월9일 ‘치킨 데이’다. 농촌진흥청 축산기술연구소 이상진 박사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치킨 데이는 가족들이 모여 닭고기를 즐기며 건강과 함께 양계 농가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구구데이가 아니어도 요즘 닭고기 소비량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사과 데이’도 있다. 사과소비촉진 뿐 아니라 밝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날이다.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가 제안한 ‘사과 데이’는 사과 향기 그윽한 10월에 둘(2)이서 사과를 나누면서 사과(4)한다는 의미에서 10월24일로 정해졌다. 이렇게 농축산물을 주제로 한 유머가 있고 새로운 ‘생일’들이 상상 외로 호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반갑다. 쌀, 콩 등을 주제로 한 다른 ‘생일’도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은 1970년대 아랍 민족주의 운동의 지도였다. 이러한 나세르의 사위 마르완이 이스라엘의 간첩이었다는 기사가 최근 이집트 언론에 공개되어 파문이 일고 있는 모양이다. 1973년 중동전쟁 때 이집트와 시리아의 연합공격계획을 제보하는 등 거액의 공작금을 받고 이스라엘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의 실언으로 본토 장시(江西)성 러핑(樂平) 주변의 고정첩자(고첩)가 일망타진된 일이 있다. 유세 도중 중국이 배치해 놓은 기지별 미사일 수를 밝힌 것이 특히 러핑 기지는 너무나 딱 들어맞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중국 정보요원들이 끈질긴 추적끝에 무려 20여명에 걸친 고첩단을 검거한 것이다. 구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첩보 싸움은 20세기 최대의 막후 대결이었다. 이런 가운데 KGB가 개발한 것이 술 취하지 않는 약이다. 스파이 활동으로 술 자리를 오래해도 취하지 않기위해 만든 약이 ‘RU-21’이란 것으로 이 또한 첩보전의 비밀 병기였다. 인체에 흡수된 알코올이 취하게 만드는 아세트알데히드로의 생성을 억제하는 원리로 만들어 졌다. 지금도 첩보전은 나라마다 안전보장의 주요 활동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 치열하다. 유엔은 스파이들의 천국이다. 국가안보는 첩보전으로 시작하여 첩보전으로 끝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므로 그 이면사는 참으로 기이한 비화가 많다. 흥미로운 것은 어떻게 된 건지 KGB의 술 취하지 않는 약을 미국 회사가 판권을 갖게 된 사실이다. 이 제품을 수입하는 국내 업체가 있어 판매계약을 맺고 이미 식약청의 판매 허가까지 나 곧 시판되는 모양이다. 술은 취하기 위해 마신다. 취하기 위해 돈주고 마신 술을 취하지 않기 위해 또 돈주고 약을 사먹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업체의 로비활동이 주된 임무인 ‘술상무’들이나 좋아할 약일 것 같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십수년 전 KGB에서 활약했을 시절에 ‘RU-21’이 시판됐으면 아마 KGB가 발칵 뒤집혔을 일이다. /임양은 주필
"영화 ‘실미도’가 1천만 관객을 돌파한데 이어 ‘태극기 휘날리며’가 선풍적 화제에 올랐다. 내키지 않았다. 이런 영화를 본다는 것이 괜히 휩쓸림을 당하는 것 같아서였다. 보나마나 이상한 좌경영화일 거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실미도’에서 ‘적기가’가 두번 나온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저들을 고무찬양한 건 아니다. 처음은 실미도 내무반 안에서 한 대원이 혼자 흥얼거리듯 불렀다. 그 대원은 평양 잠입을 생각해가며 무료함을 달랜 것이다. 그들에게 ‘적기가’는 인민군을 위장하기 위해 이미 입에 붙도록 배운 것이다. 또 한 번은 전 대원이 ‘적기가’를 합창한다. 버스를 탈취하여 부대 해체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서울시내로 달리던 중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들을 무장공비라고 허위 보도하는 걸 듣고난 뒤다. 그래서 부른 ‘적기가’는 기막히도록 허탈한 심정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그렇게 탄식한 트릭일 수 있다.(다만 부대원들 사살 명령은 확인되지 않은 작품상 줄거리다.) ‘태극기…’에서 젊은이들을 국군으로 강제 징병한 것은 사실이다. 우익단체가 용공 인사들을 부역으로 몰아 학살한 것도 맞다. 그러나 저들도 인민군으로 끌어 가고 우익 인사들을 인민재판이랍시고 벌여 학살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양쪽에서 억울한 사람이 많이 죽어갔다. 영화에서 우리쪽의 강제 징병과 학살 장면만 있고 저들이 잘못한 것은 왜 없느냐는 얘기, 그래서 용공영화라는 건 잘못된 것이다. 작품 내용의 전반으로 보아 그런 비난은 무리다. ‘지지대子’는 6·25를 중학생 때 겪으면서 인민공화국 치하에서 3개월을 살았다. ‘적기가’도 배웠고 인민재판하는 것도 보았다. 이에 앞서 초등학생 시절 해방 직후의 우익 및 좌익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도 목격하였다. 반공은 건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던 한 시대의 산물이다. 반공투쟁을 지금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반공을 해야했던 과거의 시대사를 왜곡하고 부인하는 덴 분노를 금치못하는 보수주의자다. ‘실미도’와 ‘태극기…’는 이념의 갈등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준 괜찮은 영화다./임양은 주필
"미국은 참 이상한 나라다. 동성결혼 찬반이 미국 대통령 선거의 이슈가 되었다. 민주당 후보로 유력한 케리는 동성결혼 합법화 여부는 각 주에 맡겨야 한다는 반면에 공화당의 부시는 결혼은 남녀가 당사자임을 명시하는 연방정부 헌법의 개헌을 주장하고 나섰다. 연방정부의 현행 제도는 각 주정부에 위임하고는 있다. 그러나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주가 증가되는 추세 속에 이를 금하는 주에서도 시장이 결혼증명서를 발급하는 사례가 많아 문제가 심각해졌다. 미국 자치단체장들도 다 같은 민선이라는 이유로 지사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시장이 많은 것 같다. 흥미로운 건 부시 대통령의 러닝 메이트인 체니 부통령의 입장이다. 보도에 의하면 설흔네살난 체니의 딸이 공식선언한 동성애주의자고, 체니 역시 동성결혼 문제는 일찍이 각 주정부에 맡기자는 간접적 지지발언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도 30여년 전까지는 동성애를 금기시 했다. 최고 사형까지 처하는 주가 있었다. 이랬던게 연방대법원에서 위헌판결이 나면서 사정이 급격히 반전되었다. 근래 슈워제너거 캘리포니아주 지사의 허용금지 지시가 나오기까지 설흔여섯살의 뉴섬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발급한 남녀 동성애자 결혼증명서는 불과 5일동안에 1천200여쌍에 이른다. 이 가운데 여성동성 부부가 대부분인 것으로 전한다. 국내에서도 가끔 동성애 문제가 거론되곤 한다. 어느 탤런트는 커밍아웃(공식선언)한 게 화근이 되어 수년동안 출연을 할 수가 없었다. 더러는 동성애를 이상하게 보는 것을 인권유린으로까지 비약하는 논리 또한 없지 않다. 이렇긴 하나 동성결혼은 아직은 생소하다. 의문의 시각이 많다.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동성 결혼이 쟁점으로 떠오르는 이상해 보인 논쟁이 언젠가는 국내에서도 다툼의 대상이 될지 모를 일이다. 세상 참 많이 달라져 간다. /임양은 주필
"서구(西歐)에서는 인구의 절반이 애완동물을 기른다고 한다. 두 집에 한 마리 꼴인 1억7천300만여 애완동물이 있고 그 중 3천600만마리가 애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애완동물이 급증해 애완견만 지난해 700만마리를 넘었다. 올해 서울대 수의과 졸업 예정자는 46명이 모두 애완동물을 전공했다는 것이 애완동물의 인기를 말해 준다. 애완동물, 특히 애완견은 무엇보다 충직한 처신이 사람을 감동시킨다. 위선, 배신, 거짓, 변덕 등 인간세계의 항다반사가 애견들한테는 없다. 애견들은 또 칭찬과 야단침을 솔직 단순하게 받아 들인다. 하지만 늙고 병들었다는 등의 이유로 애완견을 내다 버리는 매몰찬 사람들이 많다. 버려지는 애완견이 한 달 평균 600마리라니 실로 불쌍하다. 신문·방송이 애완견을 기르는 데서 오는 여러 질병들을 보도하는 것도 개를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다. 15년에 걸쳐 두 번씩 백악관 생활을 했던 ‘스팟’이라는 부시 미국대통령의 애완견이 자주 발작 증세를 보여 안락사시켰다는 외신도 있었지만 개를 안락사 시키는 데 10만원이 든다. 병든 개를 내버리는 것보다 안락사 시키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늙고 병든 부모도, 어린 자식도 갖다 버리는 인간들이 있는 세상인데 병든 개 버리는 것을 탓할 수 만도 없겠다. 그런데 앞으로는 서울시내 아파트에서 애완동물을 기르려면 입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할 것 같다. 이를 어길 경우 벌과금을 물게 될 수도 있다. ‘서울시 공동주택 표준관리규약’을 보면 개와 고양이, 파충류 등 동물을 애완용으로 기르는 입주민에 대해 계단식은 같은 줄, 복도식은 같은 층에 거주하는 입주자 과반수의 서면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이르면 6월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규약이 전국으로 확산될 것은 자명하다. 단독주택에 산다면 문제가 안되지만 구차하게 입주민의 동의까지 받아가며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 지 궁금하다. 이래 저래 애완동물들이 수난을 겪게 됐다. 애완견이라면 몰라도 애완 파충류를 아파트에서 기르는 것은 좀 뭣하지 않나 싶다./임병호 논설위원
"오는 4월말 파병되는 한국군 자이툰 부대가 주둔할 이라크 키르쿠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테러 위험이 적다고 한다. 대부분의 테러는 이라크인들이 아니라 이라크의 상황이 외부에 나쁘게 비춰지도록 하려는 비(非)이라크인 단체들의 소행이라는 설명이다. 방한 중인 키르쿠크 주지사의 말이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파병부대의 명칭 ‘자이툰’은 우호적이어서 좋다. 자이툰은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를 뜻한다. 키르쿠크는 이슬람이 다수다. 사원이나 이슬람 성지가 많다. 사원은 비이슬람 신도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불가피하게 들어간다면 이슬람 교도처럼 신발을 벗고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슬람이 신성시하는 ‘코란’을 훼손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여성의 명예는 부족의 명예다. 공연히 농담이라도 걸면 큰 봉변을 당한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식사를 해도 안된다. 주민들의 반감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한국군들이 이라크인들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면 별 탈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이라크가 평화로운 나라는 아니다. 테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이툰 부대의 임무가 저항세력의 색출이나 섬멸이 아닌 각종 사회간접시설 복구와 치안 유지 활동이지만 위험은 상존한다. 그래서 자이툰 부대의 ‘교전수칙’이 마음에 걸린다. 공격은 자위적 조치로만 한정한다. 저격 받은 경우에 한해 사격한다. 공격 때는 구두 경고→공중 사격→조준 사격의 단계를 거친다. 이 것이 교전수칙의 골자다. 저항세력의 돌발적인 공격이 예상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거나 한국군의 안전이 우려되는 일부 작전을 수행하는 경우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무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두었다고는 하지만 너무 수동적이다. 수상한 자에게 구두로 경고하는 사이에, 위협을 주려고 공중사격하는 사이에 적탄이 날아오면 끝장 아닌가. ‘이라크 평화재건사단’으로 키르쿠크에 주둔하는 자이툰 부대원 중 한 사람이라도 사상자가 생겨서는 안된다. 완벽한 방어가 최대의 공격이라고 하였다. /임병호 논설위원
"북한은 17~18세의 남학생들을 군사동원부(병무청)에서 성분, 신체조건, 가정환경에 따라 특수부대원으로 선발한다. 이들은 다른 병종의 신병보다 신병훈련기간이 4배나 길어 일년 정도나 된다. 이들은 무술로 단련돼 맨손으로도 적군 몇 명쯤은 동시에 상대할 수 있으며, 저격소총을 가지면 15초 이내에 200m내에서 움직이는 표적 몇개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한다. 북한군 특수부대는 그 수도 엄청나다. 북한은 최근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특수부대를 10만명에서 12만2천명으로 늘렸으며 이는 숫자상으로 세계 최대규모다. 미 정보당국은 북한군 특수부대는 유사시 소형 잠수정과 고속 보트, 약 20개의 지하터널, 레이더에 잘 안잡히는 저고도 침투기인 AN-2 등을 이용, 육상·해상·공중으로 대거 침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특수부대는 평화시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몇 번에 걸친 그들의 공격 중 가장 대담했던 것은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31명의 특공대가 남파됐던 이른바 ‘1·21 청와대 습격사건’이다. 그들 중 28명은 청와대 근처에서 교전 중 사망했고, 한 명(김신조)은 생포됐으며, 둘은 부상을 입고 가까스로 북한으로 돌아갔다.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의 ‘담력훈련’중 하나는 비무장지대(DMZ)를 넘어 남쪽에 다녀왔다는 증거물을 한가지씩 가지고 돌아오는 것이다. 임무에 실패했을 경우엔 그 자리에서 자살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북한군 특수부대는 ‘남조선 혁명 총사령관 김정일’을 위한 총폭탄의 뇌관으로 특별대우를 받는다. 그들의 ‘독기와 적대감’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관람객 1천만명을 넘어선 영화 ‘실미도’는 청와대를 습격한 북한군 특수부대와 똑같은 목적으로 창설된 ‘실미도 부대’의 실체를 알린 작품이다. 몇가지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안본 사람이 있다면 ‘실미도’에서 국토 분단의 아픔을 느껴보기 바란다. 남과 북은 지금도 휴전 상태다. 김정일의 가공할 ‘인간병기’인 북한군 특수부대원의 ‘적대감’ 대상은 바로 남한이다./임병호 논설위원
"키가 작거나 가슴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공무원 채용시험의 여성 응시자가 탈락했다. 응시자는 억울한 생각이 들어 법원에 소송을 냈으나 기각됐다. 외신이 전한 중국 한 지방도시의 이같은 공무원 채용기준은 분명히 잘못된 성차별이다. 이런가 하면 광저우(廣州)시의 어느 대학 여강사는 자신의 누드를 인터넷에 내보내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비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에 그녀는 “내 육체의 진솔한 원초적 표현을 내가 남에게 보여주겠다는 데 뭐가 문제냐”며 반박했다고 한다. 누드의 원래 개념은 그 대상으로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한데도 누드의 대상은 거의가 여성이다. 자고로 화가의 누드에서 남성이란 찾아볼 수 없다. 르누아르(1841~1919)의 많은 나부(裸婦) 작품 가운데 ‘햇빛속의 나부’는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나부의 그림들이 뱃살이 도톰한 약간은 비만형이라는 사실이다. 이른바 남성미를 과시하는 육체미 대회가 있다. 이런데도 현대 미술에서조차 누드의 대상으로 남성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성차별이 아니라 성차이다. 예컨대 임신부가 술을 먹으면 안되는 것 역시 성차이다. 음주는 태아의 뇌세포 손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총회에서는 칵테일을 두잔만 먹어도 태아가 영향을 받는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것이 성차별이 아닌 성차이인 것은 남성은 임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사노동의 여성 전담 같은 건 성차별이다. 가사노동 분담은 남성도 능히 가능하기 때문인 것이다. 얼마전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국회의원 선거에 ‘여성전용구’란 것을 만들려다가 그만둔 해프닝이 있었다. 평등의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있었던 것이다. 성차별과 성차이는 이렇게 다르다. 차별과 차이를 혼돈하는 잘못된 관념이 여권 신장을 되레 저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임양은 주필
"120~140억년 전 이른바 대폭발(Big Bang)로 생성된 우주는 그 에너지에 의해 아직도 계속 확장되고 있으며, 세계의 천문학자들은 미지의 우주 탐험에 부단히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1월 태양계에서 거대한 반지모양의 별 무리가 발견돼 은하계 생성 규명에 도움이 된다는 미국 천문학회 발표에 이어 지난 4월에는 유럽 우주국(ESA)이 태양계밖 150광년 거리에 산소를 지닌 행성을 발견해 외계인 존재의 가능성을 점쳤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이아몬드 별이 발견돼 관심을 끌었다. 미국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 관측팀이 확인한 이 별은 지구서 50광년 떨어진 거리에 크기는 지구의 8분의1 정도로 밝혀졌다. 비록 크기는 지구보다 작지만 거의가 온통 탄소 결정체로 다이아몬드 덩어리라는 것이다. 학계에서 ‘백색왜성’이라고 부르는 이 다이아몬드 별은 태양처럼 빛을 뿜다가 핵융합 반응이 다 소진되고 나면 그 자체가 다이아몬드인 탄소 결정체로 남는다는 것이다. 한데, 천문학자들은 앞으로 50억년 뒤엔 태양도 핵융합 반응의 수명을 다해 역시 거대한 다이아몬드 덩어리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구 생성이 약 40억년이므로 앞으로 이 보다 좀 더 지나면 태양계의 종말로 지구도 최후의 날을 맞게 된다는 얘기인 것이다. 하지만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만이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우주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주물리학은 지구인들이 생각하는 우주는 전체 우주의 일부로 진짜 우주는 무변광대하기가 수백억 광년에 이르는 것으로 본다. 우주는 이 순간에도 계속 팽창해 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팽창해 나가기만 하던 우주가 마침내 우주 만물을 결합시키는 어떤 힘이 갈라지면서 시스템 분열로 우주의 ‘대파열’이 일어나 우주 자체가 종말을 맞는다는 것이다. 영국의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 최신호에 실린 이 우주 대파열설은 그 시기를 220억년 후로 내다보고 있다. 문외한인 우리로서는 무슨 소린 지 이해가 잘 안가지만 웬지 허무한 감은 든다. 그래도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임양은 주필
"국어대사전은 ‘짱’을 얼음장이나 굳은 물건 따위가 갈라질 때 나는 소리라고 풀이하고 있다. ‘얼짱’이니 ‘몸짱’이니 하는 조어가 거의 일반화 돼간다. 10대들 가운데서 나온 게 성인층에서 까지 일상용어처럼 쓰이는 이 세태가 얼마나 외모 지향주의인지를 말해 준다. 이러면서 여성 채용에 용모를 보는 게 여성 비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또 얼마나 위선인 가를 보여준다. 미혼이라면 모르겠다. 중년 들어서 ‘얼짱·몸짱’을 찾는 것은 코미디다. 건강을 위해 살과의 전쟁을 벌이는 것도 아니고 마냥 ‘짱’에 도전하는 중년의 전쟁은 뭣을 위해서인 지 묻는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기왕이면 ‘얼짱·몸짱’이 되어 나쁠 것은 없다. 하나, 인터넷 사이트가 뜨거운 만큼 열을 올리는 것은 병리현상이다. 얼굴이며 가슴이며 엉덩이며 뱃살이며 심지어는 팔다리까지 성형수술하는 ‘조형짱’은 이미 자기가 아니다. 예로부터 미인의 기준으로 ‘3씨’가 있다. 맵씨·말씨·솜씨다. 조상들은 ‘얼짱·몸짱’을 맵씨라고 하였다. 그리고 ‘얼짱·몸짱’ 못지않게 말씨와 솜씨를 필수적 조건으로 삼았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대로 가야 어울린다. 중년이면 중년다운, 장년이면 장년다운, 노년이면 노년다운 얼굴과 체구를 지녀야 격에 맞는 것이다. ‘얼짱’이나 ‘몸짱’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상대적 가치를 추구하다가 절대적 가치를 상실하는 것은 참으로 우매한 처사다. ‘얼짱·몸짱’만이 행복한 인생을 영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짱’이 아닌 사람들도 행복하게들 살고 있다. ‘얼짱’이나 ‘몸짱’들은 ‘맘짱’을 모르는 것 같다. ‘맘짱’이 덜 된 ‘얼짱·몸짱’은 한낱 인형일 뿐이고 인형은 이내 싫증을 느끼게 한다. ‘맘짱’을 가꾸는 데는 ‘얼짱·몸짱’처럼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수양이기 때문이다. 속 깊은 ‘맘짱’은 참으로 매력의 진수다. 이를 모르고 ‘얼짱·몸짱’만을 찾다가는 인생이 얼음장 깨지는 소리처럼 ‘짱’하고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임양은 주필
"앞으로 새 화폐를 발행하거나 기존 화폐의 도안을 변경할 경우를 대비해 한국은행이 초상을 확보해 두고 있는 인물이 을지문덕 정몽주 정약용 주시경 방정환 등이라고 한다. 하지만 10만원권 발행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요즘 한국은행 홈페이지를 달구고 있는 10만원권 앞면의 대상인물에는 이들이 거론되지 않는다. 한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 있는 의견들은 10만원권 ‘앞면은 민족의 시조인 단군, 뒷면은 독도로 해야 한다’는 건의에서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셔야 한다는 주장과 이에 대한 반론이 분분하다. 광개토대왕이나 안중근 의사로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조세력이 많고, 이순신 장군을 100원짜리 동전에서 격상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런데 단군을 능가할 무게있는 인물은 없다는 것이 한은 홈페이지 갑론을박의 종합결론인 것 같다. 그러나 단군을 10만원권의 모델로 선정하는 데는 논란이 예상된다. 우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최근 공공장소에 세워진 단군상에 대한 대책을 ‘설립반대’에서 ‘철거’쪽으로 바꾸기로 한 점이다. 한기총은 지난해 말 ‘단군은 역사적 실체가 없는 허구이며 단군상은 종교적 조형물’이라는 소책자를 내놓았다. 이에 대해 단군상 건립을 주도한 홍익문화운동재단(홍문운)이 이 책자에 대한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놓았다. 하지만 법원이 “단군상을 세운 목적과 형상 재료를 살필 때 다소간의 종교성이 인정된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한기총의 정책 전환은 이 결정에 힘입은 것 같지만 법원의 결정은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것일 뿐 최종판결이 아니다. 얼마든지 뒤바뀔 가능성이 있다. 단군상은 현재 전국 초등학교 등에 350여개가 설치돼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단군을 종교적 지도자라기 보다는 우리 민족의 시조로 본다. 단군상은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의 동상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단군 할아버지’가 10만원권에 등장하는 데는 우여곡절이 예상된다. 10만원권 모델에 윤동주 시인 초상을 넣자는 주장을 문단에서 제기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아일랜드는 300년 만에 압박을 벗었고 유대 민족은 2천년을 나라없이 떠돌아 다녔으나, 그들은 민족의 전통을 상실하지 않았다. 우리가 불과 35년으로 이 지경까지 타락했다는 것은 단순히 친일자들의 수치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민족 전체의 수치로서, 맹성은 물론 환골탈태의 결사적 고행이 수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청산이 아니라 오히려 온존된 일제의 잔재는 이 땅의 구석구석에서 민족의 정기를 좀먹었고, 민족의 가치관을 학살하였다. 이 흙탕물을 걷어 내지 못하는 한 민족의 자주는 공염불이요, 따라서 민족의 통일도 백일몽이다” 일제하 친일문제 연구로 친일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임종국 선생이 1989년 11월12일 60세로 작고하기 전 남긴 원고 중 한 대목이다. 임종국은 경남 창녕 출신이다.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지만, 문학에 뜻을 두어 시와 문학평론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1956년 해설을 곁들여 그가 엮은 ‘李箱全集’은 이상 연구의 선구적 업적으로 꼽힌다. 임종국의 친일문제 연구는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친일문학론’(1966)으로 점화한 그의 친일 연구는 ‘일제 침략사’(1984), ‘일제 하의 사상탄압’(1986), ‘친일논설선집’(1987), ‘일본군의 조선침략사’(1988)등으로 이어져 친일파와 그의 친구들이 권력과 여론 시장을 틀어쥔 한국 사회에서 민족적 자의식을 일깨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임종국의 작업은 일본제국주의의 법적 부정을 바탕으로 세워졌으면서도 실제로는 일제 협력자들의 손아귀에 붙들려 있는 대한민국의 분열증적 상황을 진단하고 치료하려는 노력의 시발점이었다. 임종국의 유지는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조문기)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지금 문학평론가 임헌영 중앙대 교수가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임소장은 “친일 청산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친일 문제 청산 없이는 정치개혁도 불가능하고, 온전한 의미에서의 동아시아·세계평화도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할 일이 참으로 중차대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전자장(電子場·전류나 자석의 주위에 전기력과 자기력이 관련적으로 생기는 전장과 자장)의 진동이 전파하는 현상을 전자파라고 한다. 전자파에 장기간 노출되면 뇌 자극을 통한 암 유발, 호르몬 변화, 신경퇴화성 등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게 통설이긴 하나 휴대전화를 두고는 정설이 없다. 고려대의대 예방의학교실은 얼마 전에 대한예방의학회 학술발표 심포지엄에서 발표될 휴대전화 전자파 관련 논문의 연제집 수록을 철회했다. 이 전자파 교수팀은 20대 의대생 34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4시간동안 쉬지않고 휴대전화를 사용케하고, 다른 그룹엔 휴대전화를 전혀 사용못하게 한 뒤에 혈액을 채취해 분석했던 것이다. 이 결과 휴대전화를 계속 오랫동안 사용한 그룹에서 면역세포의 DNA 손상을 의미하는 수준의 지표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다고 신체에 어떤 이상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보통신부는 이에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오는 24일로 예정했던 학술발표는 그대로 하게 하지만 논문게재는 정통부가 만류한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에 따라 휴대전화를 장시간 쓰면 두통 불쾌감 집중력저하 현기증 수면장애 등을 느끼는 수가 있다. 그러나 이는 실제적 증상이 아닌 심리적 신경성인 경우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휴대전화의 전자파 유해 여부는 이미 국내외에서 논란이 된 지 오래지만 이토록 딱 부러진 연구결과나 임상보고가 아직은 없다. 그렇지만 휴대전화 없는 사람이 없고 휴대전화 사용이 일상화된 마당에 전자파는 은근히 두려운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래서 되도록이면 덜 쓰고 되도록이면 통화를 짧게 끝내는 것이 상책일 것 같다. 휴대전화를 오래 걸면 전자파 에너지에 의해 생긴 열로 휴대전화기가 뜨거워 진다. 이렇게 휴대전화기가 뜨거워 질 정도로 통화를 오래하는 것은 누적될 수록이 좋을 건 없다. 통화를 짧게 끝내는 것도 문화인의 요령이다. /임양은 주필
"2003년 11월9일 화려한 무대에 현란한 무대복 차림의 암투병 홍콩스타 메인얜팡(梅艶芳·41), 그녀는 생전 마지막 콘서트인 홍콩 현지 무대에서 온갖 심혈을 다 기울였다. 자궁경부암 말기로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팬들을 향한 무대 사랑은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죽음을 앞두고 새삼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명예가 더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은 대중예술혼의 승화였다. 키 168㎝ 몸무게 50㎏의 이 팔등신 미녀는 미혼이었다. 천재적 가수에 낭만파 여배우의 평가를 받았던 그녀는 결국 그리고는 쓰러졌다. 지난 1월12일의 메이옌팡 영결식장엔 5천여명의 팬들이 몰려 들었다. 한 송이 꽃을 영전에 바치기 위에 몇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오열 끝에 실신하는 팬들도 있었다. 이엔 여성 스타의 섹시한 매력이 작용된 것은 틀림이 없지만 이만은 아니다. 생전에 끊임없이 사비를 털어 고아들을 돌보는 데도 지칠 줄 몰랐던 인간적 매력 또한 크게 작용하였던 것이다. 메이옌팡은 역시 사후에도 빛나고 있다. 지난 1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MTV 아시아상2004’ 시상식에서 올해의 영감대상이 고인에게 시상됐다. “그녀는 타고난 배우이자 가수였으며, 그녀의 전설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시상 예찬에 식장을 꽉 채운 청중들의 박수가 한참동안 쏟아졌다. 메이옌팡의 이런 저런 면모는 상혼에 들뜬 국내 대중예술인들에게 시사하는 일깨움이 참으로 크다. 특히 요즘 전도유망한 탤런트 이승연이 위안부 누드 소동으로 연예생활의 위기를 맞고 있다. 대중스타들이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앞뒤 또한 가릴 줄 알아야 한다. 돈만 되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생각은 생명력을 지니지 못한다. 메이옌팡 같은 생명력 있는 대중스타를 대중은 갈구한다. /임양은 주필
"‘소주 내린다’고 하였다. 소주의 제조법은 좀 복잡하다. 솥에 술밑을 채우고 소주고리라는 증류기를 얹어 밀봉하고는 장작불을 땐다. 그럼 화기로 술밑의 휘발성이 강한 알코올이 수분보다 먼저 증발하여 소주고리위에 담긴 찬물에 닿으면 이슬처럼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데 이것이 곧 소주다. 소주는 아라비아에서 시작하여 고려 후기에 원나라를 통해 들어왔다. 국내의 소주 명산지로 꼽혔던 개성 안동 제주도 등이 원나라의 일본 정벌과 관련된 지역인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은 소주가 서민용이지만 예전에는 사대부 집에서나 마실수 있었던 고급주였다. 왜냐하면 값이 비쌌으며, 값이 비싼 것은 만드는 데 곡식이 많이 들고 공정이 복잡하였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흉년이 들거나하면 나라에서 소주를 만들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갑자기 곽란이 나거나 기생충이 많으면 소주로 다스려 약으로도 썼다. 이러한 예전의 소주는 지금의 소주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예전 소주는 증류주로서 주정 도수가 매우 높았다. 불을 붙이면 파란 불꽃을 피우며 활활 탔다. 원래의 소주(燒酒)는 이렇게 문자 그대로 불탔다. 이에 비해 지금의 소주는 소주 원액을 물에 탄 다음 첨가제를 섞는 희석식 제조법으로 만든다. 시중의 소주 도수가 22도에서 21도로 내려갈 것이라고 한다. 진로는 ‘참이슬’을, 두산은 ‘산’의 도수를 이렇게 1도씩 낮춘다는 것이다. 소비자 조사결과 순한 소주의 선호도가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취하고 싶어 마시는 술이 순하기를 바라는 건 우선 마시기는 좋지만 음주량은 더 늘 수가 있다.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또 원액인 주정도 그만큼 절감된다. 생산비는 절감되고 판매량이 증가되는 데도 도수 인하에 따라 값을 내린다는 말은 한 마디도 없다. 이래 저래 술꾼들만 골탕 먹는 가 보다./임양은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