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닮는다지만 그들이 그려낸 작품에는 각자의 예술세계가 뚜렷하다. 선배격인 남편 권용택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제 아내는 제가 안 가진 장점이 매우 많아요. 과감성이 있고 색채도가 높고 자유분방하고 화사하지요. 나는 억눌림이 있는 그림이고 자유를 갈망하나 자유롭지 못하는데, 저 양반은 참 자유로워요.” 25년 전 수원을 떠나 평창 백석산 하오개 그림터에 정착해 사람과 생태를 담아내는 권용택·이향재 작가 부부의 전시가 수원시 팔달구 예술공간 아름과 복합문화공간 행궁재에서 열리고 있다. 권 작가의 ‘생명이 있는 것은 아름답다’ 전시가 진행 중인 예술공간 아름·실험공간 UZ에선 생태와 사람의 이야기가 깃든 최신작 등 작가의 작품 6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수원에서 첫 개인전 ‘꽃동산’을 선보이는 이 작가는 행궁재에서 초대전으로 최근 3년간의 대표작 30여점을 공개했다. 지난 17일 만난 부부는 서로의 전시장을 오가며 손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하면서도 고향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화가의 꿈을 안고 찾았던 수원 팔달구의 한 화실에서 남편은 만났지만 꿈은 잠시 접어놨던 이향재 작가는 더더욱 그랬다. 50여년 전 미술학원에서 만난 둘은 1977년 평생의 연을 맺었다. 이 작가는 간호사로 일한 후 남편을 뒷바라지 했고 권 작가는 지역의 대표적인 작가로 활동했다. 민중미술을 하며 현실참여그림을 그리던 권 작가는 들꽃 그림전을 열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예술세계에 자연이 스며들었다. 들꽃을 찾아다니다 “‘이런 자연이 내 생활 속에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고, 땅값 제일 싼 곳을 찾아 산 게 평창”이었다. 권 작가는 백두대간 겹겹이 굽이치는 산과 깊은 산속의 폭포, 또 크고 작은 계곡들을 만나며 그 속에 기대어 살아가는 물까마귀와 고라니, 산양, 멧돼지 등 온갖 생명들의 아우성 역시 보고 들으며 이를 작업에 녹여냈다. 작업은 캔버스에서 돌로 확장됐다. 쓸모없이 팽개쳐진 돌에서 소재를 찾았고 깎아내지 않고 돌이 가진 특성을 살려 자연을 그려냈다. 이 작가도 10년은 강원도의 자연에 도취해 생태를 정화하는 데 전념했다. 1천700평의 들판에 야생화가 꽃피게 했고 그들을 가꾸고 돌봤다. “그러다 남편이 말하더라고요. ‘이제 그만하고 그림 좀 그려보시지’라고요.” 남편의 권유에 붓을 들었다. 1992년 수원환경미술전에 첫 작품을 발표할 때의 두근거림이 다시 가슴을 파고들었다.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에 전념해 개인전 4회 등 평창에서 전시를 이어갔다. 화가의 꿈을 키웠던 곳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 작가는 현재 작업터인 하오개를 풍경으로 작가의 삶의 현장을 강렬한 원색으로 전시를 통해 드러냈다. ‘하오개의 봄’ 시리즈와 ‘숲으로 스미다’ 등 작업실이 있는 백석산의 모든 동식물의 관계 맺기와 공생을 보며 터득한 자연 순환의 이치, 하오개 숲속의 바람과 동물, 또 그들과 함께 있는 부부의 모습이 조화롭게 담겼다. 원색을 최대한 살리고 강렬한 붓터치로 입힌 그의 작품은 때론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어머니의 삶 같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권 작가의 작품엔 단순한 생태 이야기를 넘어 삶과 생을 아우르는 거대한 서사가 펼쳐진다. 수원과 평창이 한 화면에 담긴 그림과 삶과 생을 나무와 부엉이, 곤충, 사람의 모습으로 드러낸 ‘느릅나무 이야기’, 백자 도판에 코발트로 수묵화의 느낌을 낸 작품 등 자연의 숨결과 생명의 신비가 깃든 이야기는 초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지하 전시장인 실험공간 UZ에 선 그의 돌작업이 부유하며 또 다른의 자연의 힘과 느낌을 선사한다. 직선으로 400m, 도보로 8분 거리의 두 미술관에서 열리는 부부의 전시에 지역 미술계도 모처럼 만에 축제의 분위기다. 평창군 진부면과 수원시 인계동이 자매결연을 맺는데 역할을 하며, 작가들의 지속적인 교류에도 힘쓰고 있는 부부의 전시를 보려 이쪽저쪽 많은 이들이 오가고 있다. 두 작가는 “앞으로도 계속 생태계를 주시하고 생태 미술작업에 전념하며 작업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23일까지.
군포문화재단 상주 단체인 세종국악관현악단이 오는 24일 오후 7시, 군포문화예술회관 수리홀에서 ‘2025 해피콘서트 - 더불어 즐기다, 여민락(與民樂)’을 공연한다. 국악의 날(6월 5일)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공연은 세종국악관현악단의 위촉 초연된 작품 중 관객의 만족도가 높은 곡들로 편성했다. 작곡가 및 협연자 인터뷰를 통해 창작과정 이야기와 곡의 이해를 높여 수준 높은 음악 감상을 즐길 수 있다. 공연에서는 가야금 연주자 이슬기 협연의 ‘김죽파류 가야금산조 협주곡’, 소리꾼 이봉근의 ‘자룡, 만경창파를 가르다’, 재즈 색소폰의 대가 고호정의 연주와 함께 일렉트로닉 비트가 가미된 색소폰 협주곡 ‘Golden Notes’ 등 국악의 다양한 매력을 만나볼 수 있다. 세종국악관현악단 창단 및 국립민속국악원장, 서울시국악관현악단장을 역임한 박호성의 지휘 아래 창단 33년의 세종국악관현악단이 호흡을 맞추며, 윤중강 국악평론가의 사회로 무대가 더욱 풍성해질 예정이다. 또 작곡가·협연자와 짧은 무대 인터뷰를 통해 각 곡의 창작 배경과 의도를 소개하며 관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선사한다. 전형주 군포문화재단 대표이사는 “국악의 날에 즈음해 그 의미를 되새기며 국악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연으로 준비한 만큼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양주시립 미술창작스튜디오는 입주작가 릴레이 전시의 일환으로 오는 20일부터 6월 7일까지 777갤러리에서 9기 입주작가 서인혜의 개인전 ‘별비늘 호텔’을 선보인다. 작가 서인혜는 이번 전시에서 삶과 죽음, 상실과 돌봄의 경계를 ‘호텔’이라는 공간에 투영해 존재했지만 기록되지 않은 몸들의 이야기를 예술적으로 재해석한다. 서 작가는 양주 장흥 일대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1960~70년대 유원지로 번성했던 이 지역은 이후 쇠퇴과정을 거치며 수 많은 숙박시설이 요양시설로 전환됐다. 작가는 이 전환의 풍경 속에 깃든 '죽음의 일상화'에 주목하고,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죽음마저 순환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망했다. 영상, 설치, 드로잉 등 복합 매체로 구성된 전시는 시청각적 감각을 통해 관람객에게 돌봄의 또 다른 가능성인 ‘이야기 돌봄’을 제안한다. 서 작가는 개인적 서사와 정서를 토대로 수집된 이미지와 텍스트를 재배치 하고 연결함으로써 미시적이고 탈중심적인 언어를 구성해 나간다. 전시와 연계 프로그램도 주목할 만하다. 오는 6월 6일에는 작품과 연계한 현장 퍼포먼스를 통해 작품의 정서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며, 이후에는 예술 철학자 허경이 ‘나의 죽음, 너의 애도’를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죽음과 애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공유한다. 이 프로그램은 경기문화재단 ‘모든예술31’에 선정된 서 작가의 프로젝트 일환으로, 단순한 전시 관람을 넘어 예술을 통한 심화된 감각과 통찰을 제안한다. 서인혜 작가는 이번 전시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빛의 반사각과 거리, 세기에 따라 별이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듯,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았던 몸의 기억을 조명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양주시립 미술창작스튜디오는 2014년 개관 이래 총 70명의 작가를 배출한 창작 중심 레지던시로, 777레지던스, 777생활문화센터, 777갤러리로 구성돼 있으며 지역 예술 생태계의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천시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인천 출신 하와이 한인 이민 1세대의 삶과 유산을 재조명하는 특별기획전 ‘기록되지 못한 역사, 기억되어야 할 이름들’을 연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오는 8월31일까지 구 제물포구락부에서 열린다. 지난 1900년대 초 하와이로 이주한 한인 이민 1세대가 남긴 다양한 기록물과 유품을 통해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외롭게 살아간 이들의 삶과 정신을 생생하게 조명한다. 전시는 하와이 이민자들의 삶의 흔적이 담긴 사진, 일기, 노동계약서 등 다양한 기록물과 생활용품 등 모두 65점의 유물을 공개한다. 이 유물은 이민 1세대의 문화적 자산을 총망라하고 있으며, 그들의 고단했던 이민 생활과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특히 하와이 한인 공동묘지에서 직접 채록한 인천 출신 이민자들의 묘지 탁본과 사진은 타국에서 이름 없이 생을 마감한 이들의 삶을 다시 불러내고, 잊혔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소중한 기록이다. 시는 특별전과 함께 하와이 한인미술협회 및 워싱턴 미술협회 소속 작가 8명이 참여하는 연계 전시 ‘디아스포라의 시선, 예술로 이어지다’도 선보인다. 전시는 한민족의 이주 역사와 정체성을 예술로 풀어낸 다양한 작품을 공개해 시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윤도영 시 문화체육국장은 “하와이 이민사는 단순한 이민사를 넘어, 독립운동의 숨은 뿌리이자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형성사”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전시가 기록되지 못한 이민자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일으켜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 잊혀진 역사를 시민들과 함께 기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전시는 무료이며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제물포구락부 누리집을 참조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외로움’을 예술적 관점으로 조망해 위축된 공동체의 관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외로움을 개인의 감정으로 치부하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임을 환기한다. 파주 아트센터 화이트블록은 지난 1일부터 기획전 ‘섬 프로젝트: Linking Island’를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박물관·미술관 주간’의 주요 프로그램인 ‘뮤지엄×즐기다’ 공모에 선정돼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한다. 이번 전시는 권혜성, 윤지영, 이영욱, 임소담, 정찬민, KL 등 6명의 작가가 참여해 외로움을 복합적인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바라본 회화, 조각, 설치, 영상 총 45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권혜성 작가는 한지와 먹, 유화와 에어브러시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자연으로부터 얻은 생명력을 강렬한 선으로 표현한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에서 심리적 방황을 겪은 권 작가는 제주도의 거친 바람과 빗속에서 견디는 식물의 에너지를 통해 삶과 자연의 본질적 순환에 대해 깨달았다. 이에 ‘여름 비 바다 수영 해파리 풍경’ 등 그의 작품에는 자연의 리듬이자 외로움을 이겨내는 생명력의 상징으로 선이 등장한다. 인간과 자연이 공명하는 순간,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윤지영 작가는 영상 작품 ‘오죽 -겠, -으면’을 통해 현실에서 겪는 불안과 고통에 맞서는 개인의 내면을 포착했다. 가족을 돌보며 매일을 살아내는 영상 속 인물은 사소한 일상적 의식과 자기최면적인 반복된 행동을 통해 불안을 견딘다. 이 같은 모습은 각자의 섬처럼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비슷한 고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 작가는 개인적 고립의 문제를 인간 전체의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하며 공감으로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업을 이어간다. 특히 이영욱 작가는 낯설고 불안정한 형상을 회화작업으로 재탄생시켰다. 조작된 이미지의 파편들을 해체하고 중첩하는 방식을 통해 내면의 감정과 사회적 구조를 교차한다. 익숙한 장면을 강박적으로 반복하고 변형시키면서 개인의 불안, 욕망, 긴장을 사회·문화적 맥락과 병치시켜 우리가 무심코 수용해온 관념과 제도 속에서 재현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 이와 함께 임소담 작가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선명하게 그려내며, 물거울·수평선 등 모호한 풍경 속에 숨은 정서를 포착한다. 작가는 회화와 세라믹을 넘나드는 작업을 보여주며 부재하거나 분명히 존재하는 감각을 보여준다. 물감이 겹겹이 쌓이듯 외로움은 일상 속에 서서히 스며들지만 역설적으로 그 흐릿함을 통해 새로운 몰입과 공감을 일으키는 장이 열린다고 믿는다. 정찬민 작가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기술 발전이 가져온 변화 속에 놓인 개인의 무력감을 들추어낸다. ‘행동부피’ 등 작품을 통해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사소한 행동이야말로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KL 작가는 ‘제주도’를 기반으로 잃어버린 기억과 정체성이 만들어내는 혼란과 이질감을 탐구한다. 설치 작업 ‘섬_딩검리’에서는 고립된 섬들이 보이지 않는 지층으로 연결돼 있음을 암시한다. 세 편의 영상은 해변에서 노래하고 수영하는 인물들, 물속에서 흙으로 만든 배가 시간에 따라 녹아 흩어지는 장면, 수년간 기르던 앵무새 한 쌍의 죽음을 담은 장면으로 구성된다. 삶과 죽음, 일상과 사건이 교차하는 감각의 흐름 속에서 상실과 기억의 흔적, 존재의 불안과 평온이 공존하는 순간들을 사유하게 한다. 아트센터 화이트블록 관계자는 “외로움을 사회적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는 이번 전시가 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고립으로 여겨졌던 감정을 모두가 함께 다뤄야 할 공동의 화두로 전환시켜 치유의 가능성을 열어 보는 의미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7월13일까지.
한글 자음을 감각적인 팝아트로 풀어내는 한글 팝아트 작가 이대인의 ‘디귿 도깨비’ 전시가 오는 18일까지 서울 이태원의 진저 한남에서 관객과 만난다. 이번 전시는 이대인 작가의 ‘기역양 니은군’의 두 번째 이야기이자 한국의 전통 도깨비와 한글 칼리그램이 한 데 어우러진 4년간의 연속 전시다. 앞서 작가는 ‘기역양 니은군’을 통해 기역, 니은, 시옷, 이응, 지읒의 초성을 토대로 각 자음의 초성과 관련된 캐릭터들이 한글을 깨우쳐 사람으로 변하는 서사를 풀어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사람을 지켜주는 한국 도깨비의 이야기에 전 세계와 한반도의 평안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평화를 주제로 ‘풍어제’, ‘평화만선’, ‘막걸리’ 전시를 이어감과 동시에 평화 퍼포먼스도 함께 구성해 진행할 예정이다. 작가가 태초의 소리와 그 소리가 만들어낸 세상을 표현하며 한글의 자·음을 활용한 칼리그램은 특히 주목된다. 작가는 ‘세상은 소리로 이뤄졌다’는 서사를 전하기 위해 소리문자 한글을 소재로 사용했다. 이를 통해 관객은 한글의 추상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작가의 캐릭터와 칼리그램이 한글 브랜드 제품으로 선보이며, 한류의 마지막 보루인 한글 디자인과 이야기를 차용하고자 하는 다양한 업체와의 협업도 진행한다. 작품 속 한글의 예술성을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시켜 더 많은 사람들이 한글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대인 작가는 “한, 중, 일 도깨비 가운데 사람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지켜주는 도깨비는 한국 도깨비가 유일하다”며 “도깨비가 통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한글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소리문자 한글의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전시회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이대인 작가의 공식 누리집 ‘기역양 니은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릴레이 개인전 첫 번째 순서로 9기 최형준 작가의 개인전 ‘LAB 1.0’이 오는 17일까지 스튜디오 3층 777갤러리에서 열린다. 최형준 작가는 전통 수묵화의 조형 언어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VR(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해 회화의 평면성 해체와 입체적 감각의 확장을 시도했다. LAB 1.0은 ‘선을 긋는 행위’를 회화의 본질적 언어로 바라보며 회화의 물리적·개념적 한계를 가상공간 안에서 실험하는 전시다. 전시 제목인 ‘LAB 1.0’은 회화라는 매체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고 회화와 기술의 융합 가능성을 초기 버전의 실험실(Laboratory) 형태로 구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관객은 전시장에 입장해 하나의 예술 실험실에 참여하게 되고 작가의 창작 과정을 추적하는 동시에 실험 결과를 직접 체험하게 된다. 전시에는 평면 회화와 조형 작업 그리고 VR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작품 등 총 10여점을 선보이며 일부 작품은 VR 장비를 통해 가상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기술과 철학, 조형성과 몰입성이 혼합된 전시로 회화라는 장르에 대한 새로운 질문도 제기한다. 김지혜 문화관광과 미술관팀장은 “이번 전시는 작가의 창작을 예술적 실험의 과정으로 조망하며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그 실험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구성”이라며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가 지역문화의 실험적 거점이자 예술 창작의 발전소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끊임없는 연구를 바탕으로 곡의 다채로운 해석을 들려주는 피아니스트 이영교가 오는 30일 오후 7시30분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피아노 독주회 ‘MusiCuration V’를 연다. ‘MusiCuration’은 ‘음악을 큐레이션 한다’는 뜻으로 관람객이 곡 사이에 배치된 연주자의 설명을 들으며 음악 감상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해설이 있는 피아노 독주회다. 앞서 이영교 피아니스트는 지난 2020년 귀국 독주회 이후 네 명의 작곡가와 그들의 작품을 바탕으로 해설이 있는 ‘MusiCuration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5회를 맞이한 이번 공연에서는 L.Ornstein의 ‘9개의 소품’, F.Schubert의 ‘4개의 즉흥곡’, L.v.Beethoven의 ‘피아노 소나타’, C.Debussy의 ‘판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영교 피아니스트가 각 작곡가의 각기 다른 개성을 잘 살려 각 악장이 품고 있는 아이디어와 색채, 인상을 피아노로 효과적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특히 곡의 배경과 감상 포인트를 쉽고 흥미롭게 전달해 L.Ornstein 등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작곡가와 그의 삶, 곡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편, 이영교 피아니스트는 수원 영복여고를 졸업한 뒤 숙명여대 음악대학 피아노과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뉴잉글랜드 음악원 석사 졸업, 전문연주자과정 졸업 및 음악집중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이후 보스턴대학교에서 피아노 연주학 박사와 문화예술경영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 강사, 미국 뉴욕예술원의 한국분교 겸임교수, 명지대 객원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사람, 동식물, 세균, 인공지능(AI) 로봇까지. 우리는 형태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지구’에 산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공생’ 관계이지요.”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이 개관 14년 만에 ‘공생’을 주제로 상설전을 새롭게 선보인다. 지구 곳곳의 수많은 동식물부터 인공지능(AI) 로봇까지 어린이가 공동체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공생의 방법을 알려준다.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은 지난달 17일 3층 상설전시실을 전면 개편해 ‘우리는 지구별 친구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두근 두근 연결된 우리’, ‘와글와글 지구별 놀이터’로 구성됐으며 총 8명 작가의 14개 체험 전시물을 펼쳐보인다. 먼저 전시의 1부 ‘두근 두근 연결된 우리’에서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보이진 않지만 서로 연결돼 있음을 알려주는 체험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새로운 생명체로 변신하는 경험을 통해 다른 존재에 대한 공존 감수성을 길러보는 ‘우리 모두 변신’, 땅속에 있는 나무뿌리, 곰팡이, 미생물의 숨겨진 공생 관계를 들여다보는 ‘땅에서 보내는 초대’ 등 디지털 체험형 콘텐츠가 어린이들을 맞이한다. 특히 노진아 작가의 말하는 AI 거북이 ‘오로라’는 오염된 바다에서 도망나온 모습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각종 그물과 덫에 걸린 거북이의 모습은 기후 위기, 환경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오로라’가 경기도어린이박물관에 오게 된 배경, 다른 생명과의 공생, 기후 위기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재미있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또 인근에 전시된 로봇 개 ‘레오’ 등 기계 동물들을 통해 미래공동체에 함께 할 특별한 동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와 함께 몸의 각 부분을 새로운 시선으로 마주하는 ‘미래 신체 의상실’, AI 기술로 탄생한 디지털 휴먼 ‘로지’와 대화하는 ‘가상 친구? 진짜 친구!’ 등 로봇, 가상의 사람과 공존할 미래 사회를 상상하게 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어지는 2부 ‘와글와글 지구별 놀이터’는 어린이 관람객이 함께 모여 놀면서 서로의 기분과 생각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됐다. 박종진 작가가 설계한 ‘바음자리 놀이터’는 유기적으로 모든 공간이 연결된 구조물로, 낮은음자리표의 모습을 닮아 있다. 작가는 다 함께 모여 노는 공간이 낮은 곳에 연결된 음들처럼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작품을 완성했다. 소리와 손끝 감각만을 사용해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는 박유진 작가의 ‘누구나 촉각 야구’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없앤 작품이다. 어린이 관람객은 야구공이 야구 방망이에 맞는 소리, 선수들이 뛰어가는 소리, 해설 위원이 설명하는 소리에 집중해 소리로 경기를 이해해보고 경기장의 오돌토돌한 감촉을 느끼며 마음의 눈으로 야구장을 본다. 작품은 어린이의 촉감을 발달시키고 눈이 보이지 않는 경험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느끼게 한다. 또 환경 오염으로 위기에 처한 펭귄을 구하는 대형 조각 쌓기 ‘내 친구, 펭귄 구출 작전’, 동물원에 갇힌 동물의 입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너의 시선, 나의 세상’, 미래 시대의 지속 가능한 연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상 작품 ‘수리솔 수중 연구소’ 등을 볼 수 있다. 송문희 경기도어린이박물관장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오랜 기간 고민했다”며 “앞으로도 안전하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이와 동반자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현옥 서양화가는 스물한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며 따스한 풍경과 시선으로 바라봤던 세상을 다시 꺼내 들었다. “온기가 정말 필요한 세상에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함께 서로를 돌아보고 돌봤으면 좋겠다”란 주제의식을 품고 전시장에 작품을 메웠다. 수원시립북수원전시관에서 지난 6일부터 11일까지 열린 ‘시선과 온기’ 전에서 신현옥 작가는 그만의 시선으로 사람과 사물, 세상을 바라온 작가의 철학을 전시로 재구성해 옮겼다. 50대부터 작업한 작품들로 100호짜리 작품 7점 등 총 19점을 선보였다. 작품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본 추억과 감성, 소통, 온기의 시선이 작가만의 조형언어과 기법으로 표현됐다. “젊을 때는 그러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누구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어요. 나이를 먹은 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낀 감정이 담겼습니다. 정을 통해 함께 온기를 피우고 나눴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반영했지요.” 40년이 넘도록 치매어르신들을 도우며 미술치료를 해 온 그의 인생 행로 역시 작품에 옮겨졌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회와 공존, 부모와 자식, 사랑과 추억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에는 누군가의 인생과 누군가의 추억, 누군가의 감성, 누군가의 아픔과 상처를 담고 있다. 이러한 시선들의 총합은 결국 삶으로 이어진다. 대표작 ‘시선과 온기’는 노란 개나리가 핀 꽃밭과 철길 등의 마을의 정취를 통해 유년시절의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옮겼다. ‘만선’을 통해서는 다시 용기를 내고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소망을 , 작품 ‘수련’에는 사람은 자연을 떠나 살 수 없다는 진리를 투영했다. ‘애국애족’에는 개인을 넘어 공동체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강조해온 작가의 마음가짐이 붓의 강렬한 표현을 통해 힘있게 드러났다. 작품마다 곱씹어 보며 다양한 해석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점도 전시의 재미를 더했다. 물고기 눈에 그려진 십자가나 새댁의 그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소 등 작가만의 언어는 그가 걸어온 구상회화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신현옥 작가는 “작품을 통해 그동안 작가로서 가지고 있던 예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전시를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며 “차가운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따뜻한 온기로 이 세상을 채워나가셨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