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전/ 양팔절단장애 극복 ‘경장복지신문’ 오재호 사장

“한강도 헤엄쳐 건널 겁니다” “손이 없어도 운전을 할 수 있듯이 항상 도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경장복지신문과 장애인 신문 경기·인천지사사장 오재호씨(51). 오씨는 우리나라의 양손 없는 장애인의 운전 면허 취득을 가능하도록 이뤄낸 장본인이자 본인이 첫 수혜자이다. 그리고 한 신문사의 사장인 지금 뒤늦게 정상인도 쉽게 할수 없는 도전인 ‘수영으로 한강을 건너기’를 위한 새로운 도전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오씨의 주위 사람들이 괜한 고생을 한다며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스스로 고생길을 찾아서 아직도 편견에 좌절하고 있는 장애우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위해 수영장을 찾고 있다. 대부분의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오씨의 불행은 순간적이었다. 지난 1971년도 건축 공사 현장에서 철근 조립공으로 일하던 오씨는 2만2천볼트 전기고압선에 감전 됐다. 10일만에 의식이 돌아왔을때는 이미 양손의 손가락이 없는 상태였고 이후 6개월간 7번의 수술을 거치면서 양팔 모두를 잃었다. 스스로 좌절감을 견디지 못한 오씨는 입원비까지 밀린 자신을 원망하며 한장의 유서를 남기고 병원 3층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나 오씨는 자살마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기 시작했다. 장애를 당한지 2년여만에 가족들로부터 받은 단돈 10만원으로 구멍가게를 시작했다. 차도 없던 시절, 가게에 물건을 들여오기 위해 무거운 짐을 머리에 걸고는 단 한번도 쉬지 않고 10㎞를 매일 같이 오가면서 등이 까지고 다리가 부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내며 열심히 생활했다 오씨가 17여년간 혼자서 장사를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물건을 운반하는 일로 차량이 있어야 한다는 것. “93년도에 운전면허시험을 보겠다고 책을 사서 준비하는데 알고 보니 ‘양팔 상박이 없는 사람은 결격사유로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고 나와있었다”는 오씨는 “자동차 제조회사들을 찾아가 양팔 장애인이 운전할 수 있는 차량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며, 일본의 자동차 설계도까지 구했지만 요청을 들어주는 회사가 없었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오씨는 아예 도로교통법 개정운동에 나섰다. 주위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벌인 도로교통법 개정운동 덕택에 지난 99년 법이 통과돼 양팔 없는 사람도 운전면허증을 딸 수 있는 법적장치가 마련됐다. 또 오씨는 자신이 직접 운전면허증 취득에 도전해 지난 2000년 양팔 절단 장애1급자로서는 국내 최초로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이후 장애인을 위한 곰두리 차량봉사대 활동을 벌이며 장애인운전대회인 자동차짐카나대회에 출전해 의수로 능숙하게 운전하는 모습을 보여줘 특별상과 인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의수를 이용해 운전은 물론 컴퓨터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등 일상생활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된 오씨는 이제 수영으로 한강을 건너겠다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수영을 시작했지만 초기 한달동안은 물에 뜨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이제는 각종 장애인수영대회에서 단골 1위를 하고있다. 앞으로 체력을 보강해 내년에는 두손 없는 장애인으로서 최초로 한강을 건널 꿈에 부풀어 있다. 이처럼 역경의 길을 걸어온 오씨지만 개인적으로 지난 96년 11월부터 장애인신문 경기·인천지사를 개소해 수원 등 5개권역 2만5천명의 1급 장애인에게 장애인 신문을 보급하는 등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에 남다른 열정도 받치고 있다. 또 1급 장애 리포터 2명,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한 사진기자 1명과 함께 자신이 직접 경장복지신문을 만들고 지난 98년 8월 한국 신체장애인복지회 군포시지부장을 맡아 월1회 이·미용봉사와 장애인들의 주차요금을 면제하도록 군포시조례 개정운동을 벌여 통과시키기도 했다. 또 장애인 스포츠단을 창단, 하지절단 장애인 좌식배구를 활성화시켜 장애인과 비장애인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해 지난 4월 제 44회 장애인의 날에는 ‘경기도장애극복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졸업학력이 전부인 지제1급 장애인 오씨. 오씨의 삶은 그 자체가 도전이자 ‘의존에서 자활, 자활에서 봉사’로 이어지고 있다. 오씨는 “도전이 결정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인생도 그만큼 줄어든다”며 “결국 타인에게 의지하느냐 아니면 남을 돕고 살아가느냐는 자신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최용진기자 comnet71@kgib.co.kr /사진=원지영기자 jywon@kgib.co.kr

기고/오! 평택항

G형! 많은 미래 학자들은 21C가 동북아 경제 시대가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습니다. 동북아 지역은 세계 인구의 24%, 세계 생산의 19%, 세계 교역의 13%로 NAFTA(북미 자유협정지대), EU(유럽연합)와 더불어 세계 3대 교역권의 하나로 생산·투자·교역의 세계 중심지화 할 성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동북아 시대를 주도적으로 이끌기 위하여 한국, 중국, 일본은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국이 동북아 경제 시대의 중심국가로 도약하려면 동북아 허브(HUB)의 구축은 필수적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항만·공항과 그 배후지를 중심으로 거점화하여 국제물류체제와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동시에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동북아 HUB구축을 위한 물류 거점화 차원에서 볼 때 정부의 항만 정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항만 정책에 있어서의 중요한 하나는 부두시설의 확장과 효율적인 관리운영으로 국내 기업들의 운송시간과 운송비용을 절감시켜 줌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주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항만 배후 시설을 개발하여 다양한 기능을 수행토록 함으로써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일입니다. 이미 네덜란드, 싱가포르, 홍콩 등이 물류 거점화 하는데 크게 성공했고 최근 중국이 항만, 공항, 철도, 도로 등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면서 새롭게 물류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G형! 한국에는 3대 국책항(부산항, 광양항, 평택항)이 있습니다. 그 중 투자 가치가 가장 큰 물류 거점화 최적지로서의 평택항에 대하여 보다 자세히 설명함과 동시에 평택항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는가에 대한 전략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평택항은 항로(30Km), 수심(11~18m), 기후(안개일수 26일/년) 등 타 항만 보다 우수한 입지여건, 인천국제공항과의 접근성, 항만과 연계된 경부 고속도로·서해안 고속도로, 근접한 6개 도로 등의 우수한 인프라 구축, 첨단 산업을 포함한 산업단지 중심지인 수도권과 중부권에 위치해 있으므로 인한 풍부한 물동량, 수도권·중부권 기업들의 내륙 운송비 절감을 통한 기업 경쟁력 향상의 기여 그리고 중국의 환 황해권과의 최단거리로 화물 수송시간과 비용절감의 효과와 양호한 환적항으로서의 여건 등 정말 활용 가치가 대단히 큰 항만입니다. 뿐만 아니라, 평택항과 평택역과의 철도 연결은 곧 바로 TSR(시베리아 횡단철도)과 TCR(중국횡단 철도) 등 유라시아 철도로 연결될 수 있으며 평택항은 수도권 물량의 부산항, 광양항으로의 연안운송(Feeder Service) 거점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굳이 평택항이 물류 거점화의 최적지라고 감히 주장하며 개발을 촉구하고자 하는 것은 평택항이 활용가능한 588만여 평의 광활한 배후지와 456만 평의 항만구역 매립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의 어느 항만도 이 만한 배후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배후지를 조속히 개발하여 활용해야 합니다. 평택항은 세계적인 유통·상업·국제 비즈니스·생산·가공조립·국제교류·창고 물류의 중심지화, 세계적인 R&D센터 및 다국적 기업본부의 중심지화, 인근 첨단 산업 클러스터와 연계를 통한 물류와 지식산업이 결합된 복합물류 단지화 등 물류 거점화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2002년 9월 5일 6대의회 개원 첫 회의 제175회 임시회의에서 도정질문을 통해서 평택항 배후지에 관광단지화 할 것을 제안하면서 해양수상공원건립, 경비행장 건설, 대단위 숙박단지 건설, 통일 후를 대비한 대단위 공업단지 확보 등의 차원에서 평택항 배후지를 2,000만 평 이상으로 넓혀 나갈 것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G형! 종국적으로는 평택항과 그 배후지를 경제자유 구역으로 지정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동북아 경제시대의 허브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 입니다. 문제는 정부의 이 평택항의 활용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개발 의지입니다. 평택항은 더 이상 경기도의 평택항이 아닌 대한민국의 평택항인 것입니다. 평택항을 제대로 개발 하기만 한다면 평택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당길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리라 확신 합니다. 평택항 개발을 위하여 정부가 발 벗고 나설 것을 거듭 거듭 촉구하는 바 입니다. /김태웅.경기도의회 의원

봉사하는 삶이 아름답다/동두천시 성경복지재단 김성근씨

"사회에서 소외된 부랑자·알콜중독자…“사랑이 꽃피는 우리 가족이죠” 주위에 도움 필요한 사람 너무 많아 재활시설 설립… 배움의 기회 제공 파킨스병 불구 45년 넘게 사랑 실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우리의 가족입니다” 사회복지시설 성경복지재단의 이사장 김성근씨(69)에게 사회에서 소외된 부랑자, 알콜중독자, 버림받은 노인 등은 또하나의 가족이다.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김 이사장은 자신의 옆에서 뜻을 같이해 주는 가족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고 있어 항상 힘이 난다고 한다. 김 이사장의 아내 정경자씨(67)는 정신보건시설인 동두천요양원 원장으로, 큰아들 태준씨(42)는 사회복지시설인 성경원 원장으로, 둘째 아들 태현씨(40)는 요양원 사무국장으로, 태준씨의 아내 이진숙씨(41)는 성경원 복지부장으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남다른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 가족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봉사정신은 지난 1959년 김 이사장이 넝마주이 17명을 모아 함께 생활하면서 시작돼 45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어려서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생활한 김 이사장은 초등학교때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는 “남을 돕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타고난 천성’ 때문”이라며 겸손하다. 중학교때는 계획적(?)으로 아버지에게 돈을 타내 가정이 어려운 친구의 등록금을 대신 내주기도 하고 부모에게 받는 용돈이 모자랄 때는 4H구락부를 결성해 과일장사, 비누 등 생활용품 장사를 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직후인 55년 대학에 진학한 김 이사장은 방학때면 고향인 부산은 물론 전국의 거지소굴을 찾아다니며 그들과 함께 생활했었다. 그러다 1959년 동두천에서 군생활을 하게된 김 이사장은 자신이 근무한 부대 근처에 있는 보육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돌봐주게 됐고 결국 그것이 계기가 돼 동두천에 정착하게 됐다. 동두천은 미군부대를 끼고 있어 양공주, 넝마주이, 깡패가 많았던 만큼 김 이사장이 도와야 할 사람도 매우 많았다. 김 이사장은 1959년 아내 정경자씨와 결혼한 이후 텐트를 치고 미군부대 주변에서 떠돌고 있던 부랑자들을 모아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몸이 성치 못한 부랑자들은 용변까지 받아줘야 했고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서 막노동판의 잡부는 물론 목판장사, 미장원, 심지어 넝마주이까지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한 김 이사장 부부는 부랑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줘야겠다는 생각아래 미군부대를 찾아가 지원을 요청, 결국 ‘케노샤 직업학원’이라는 부랑자 재활시설을 설립했다. 그러나 이용, 재봉 등 부랑자들에게 직업을 만들어 주기 위해 설립한 당초 취지를 따르기가 쉽지가 않았다. 떠돌이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부랑자들에게 집단거주생활이라는 것이 쉬울리 없었고 이들을 데려오자 돈벌이 할 일손이 줄어든 거지 왕초들은 김 이사장 부부에게 많은 협박과 폭행을 가했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이들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고 자식보다 더 많은 사랑과 정성을 기울였다. 심지어 미군들에게 받은 초콜릿을 자신의 친 자식인 태준, 태현씨 보다 부랑자들에게 먼저 나눠줘 어린 태준씨로부터 “나도 초콜릿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고아원에 버려달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이렇듯 김 이사장 부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부랑자들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고 태준, 태현씨에게도 진정한 봉사가 어떤 것인지 몸소 체험하게 해 결국 두 아들 모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봉사에 참여하게 됐다. 그러나 이웃사랑에 열심이던 김 이사장에게 병마가 찾아왔다. 지난 1984년부터 중추신경계 이상으로 손발이 굳어지고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지는 파킨슨병을 앓기 시작해 지금도 몸이 많이 불편한 상태이다. 집에서 쉬라는 가족들의 권유에도 불구 김 이사장은 틈나는대로 성경원에 나와 원생들과 함께 ‘종이봉투 손잡이 만들기’ 등의 일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몸이 불편한 부랑자들의 밥을 먹여주기도 한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애쓰고 있는 김 이사장은 “부랑자, 알콜중독자, 버려진 노인 등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외면한다면 이들은 더이상 갈 곳이 없다”며 “이들이 내 가족이라는 생각을 갖고 따뜻하게 대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정민수·박현정기자 hjpark@kgib.co.kr ■성경복지재단 부랑자 등 236명 ‘사회적응력’ 향상 도와 시설유지 위해 민간단체·개인 후원 절실 이 사회에서 소외된 부랑자 알콜중독자 정신장애자 등을 보호하고 있는 성경원은 년 부랑자들에게 재활 기회를 주기 위해 설립된 ‘케노샤 직업학원’에 모태를 두고 있다 1983년 경기도에서는 가장 먼저 사회복지시설로 인가받아 현재 236명의 알콜중독자와 정신질환자 등을 보호하고 있다. 성경원은 동두천 정신보건센터 등 지역사회 시설을 이용한 프로그램과 놀이공원, 전시장 등을 돌아보는 나들이 프로그램, 버스타기 및 은행, 식당 등의 이용법 등을 배우는 사회적응훈련 등을 통해 시설생활자들의 재활을 돕고 있으며 지역 기업체의 협조를 받아 취업도 지원하고 있다. 성경원은 또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봉투붙이기’ 등의 단순노동을 교육시켜 재활의지를 북돋고 있으며 이러한 작업으로 벌어들인 수익금은 시설생활자 각자의 통장에 입금시켜 주고 있다. 또한 월별 생일잔치, 한마음 축제, 설·추석 민속놀이마당, 경인지역 정신장애인체육대회, 효나들이 등 시설 생활자들을 위한 각종 행사를 개최, 시설생활자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30여명의 직원과 연간 2천6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성경원은 운영비의 대부분을 국비와 도비 등 국고보조금으로 받고 있지만 시설을 유지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여전히 민간 단체나 개인의 후원이 필요한 상태이다. /정민수·박현정기자 hjpark@kgib.co.kr

세금때문에… 복지재단 ‘무산위기’

폐암으로 투병중이던 사업가가 100억원대의 재산을 기증, 불우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설립한 재단이 거액의 세금에 발목이 잡혀 운영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12일 사회복지법인 백암복지재단 등에 따르면 지난 10월29일 작고한 이홍종씨(68·수원 홍문사 대표)는 지난 8월 자신 소유의 화성시 남양동 5층 건물(시가 100여억원 상당)을 기본재산으로 출연해 백암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건물에서 발생하는 연간 2억원을 들여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아동 생활보조비 지원사업, 해외한국인학교 후원사업 등을 벌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기증 부동산을 관할하는 화성시는 최근 지방세법 규정을 들어 이 재단이 기증받은 2천900여평의 부동산에 대해 취·등록세 등 1억3천346만원의 지방세를 부과했다. 시는 또 재단측이 부동산 취득사실을 30일 이내에 자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827만원의 가산세까지 부과했다. 이로 인해 내년부터 재단 운영비 등을 제외한 임대수익금 1억6천여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하려던 재단측은 지방세 1억4천174만원을 납부할 경우, 사실상 사업추진이 어렵게 됐다. 고 이씨의 아들이자 재단 대표인 원준씨(31)는 “지방세법에 정부 인가 단체가 고유업무에 직접 사용하기 위해 취득한 부동산은 등록·취득세 면제대상으로 규정돼 있다”며 “화성시가 긍정적으로 법을 해석했다면 지방세는 부과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화성시 관계자는 “법인이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알지만 백암복지재단의 경우, 임대용 부동산으로 면제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이용성기자 leeys@kgib.co.kr

사회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