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과 국문학의 진지한 만남

한양대 국어국문과 윤석산교수가 ‘동학사상과 한국문학’을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의 한국학 연구총서 3권으로 출간했다. 윤석산 교수는 ‘바다 속의 램프’ ‘은달의 꿈’ ‘처용의 노래’ 등 여러 시집을 낸 시인이자 ‘박인환 평전’ ‘고전적 상상력’ 등 한국 시가에 대한 괄목한 만한 연구서를 가진 국문학자, 각종 동학 관련서를 펴낸 동학계에서는 거의 태두라 할만한 동학 사상가이기도 하다. ‘동학사상과 한국문학’은 ‘용담유사’를 비롯한 동학과 관련된 고전문학 작품에서 동학이 반영된 양상을 면밀히 살피고 있는데 텍스트를 정밀히 분석한 후 동학사상의 중요개념이 투영된 양상과 내용을 해석하였다. 이 책은 여러가지에서 의미를 갖는다. 우선 당위적으로 동양사상을 운운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원전인 동경대전에 대한 가장 탁월한 해석가답게 원전 텍스트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학사상과 한국문학과의 관련양상을 살폈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 책에서 시도한 문학 텍스트에 대한 분석과 저자의 동학적 해석은 학문적 깊이와 객관성을 아울러 갖는다. 또 그동안 국문학과 불교, 국문학과 도교 등은 묶여져 나왔으나 동학이 분명 우리 사상의 한 자리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문학과 관련지어 한 권의 독립한 단행본으로 펴낸 것은 없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가치가 빛난다. 동학사상과 국문학이 진지한 만남을 이루면 어떤 향기를 발하고 어떤 빛을 던져주는 지를 충실히 보여주는 이 책은 독자들이 문학의 향기를 통하여 동학의 깨달음의 세계에 접하고 후천 개벽의 꿈을 다시 되새길 수 있도록 해 준다. /박인숙기자 ispark@kgib.co.kr

땅의 모성에 근거한 순수추상세계

대지적 모성에 근거한 풋풋한 정취를 표현한 하진용의 개인전이 20일부터 27일까지 수원 갤러리 그림시에서 열린다. 땅이 지닌 넉넉함과 풍요함, 출산의 근원인 대지적 모성을 바탕으로 작업에 임해온 그는 언제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전통에서 찾고 있다. 그가 말하는 전통은 흙, 삶, 사람 즉 육체와 정신으로 대별되는데 지난 1회 개인전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추상과 구상의 절충적 형식으로 표현되었고 2회 개인전에선 이러한 절충적 요소가 훨씬 엷어졌다. 그러나 이번 3회 개인전은 구상과 추상의 절충적 요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색채와 형식에 의도적으로 촛점을 맞춤으로서 순수추상의 영역에 자신의 활동을 한정짓고 있는데 기하학적인 화면구성으로 포름의 절대성을 추구하고 자유로운 운필과 마티에르의 효과를 극대화시킴으로서 비정형의 순수추상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황토색, 갈색, 잿빛, 쥐색 그리고 바랜 흑색조가 주조색을 이루는 작품은 약간 침침하고 음울한 기분으로 방사형을 그리며 뻗어나가고 있다. 아주 자연스럽게 형성된 화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작가가 의도한 화면이라는데 촛점을 두고 작품을 감상해야 할 것이다. 불룩불룩 요철의 효과, 거친 들판의 삭막함마져 느끼게 하는 갈라지고 부서진 질료위에 가해진 빠른 속도의 필선 등이 어울려 극적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6회, 창작미술협회 공모전 특선 2회 및 금상수상, 인천직할시 미술대전 우수상 등 많은 입상경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현재 안산미술협회 지부장을 맡고 있으면서 안산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 지역 미술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0331)251-7804 /박인숙기자 ispark@kgib.co.kr

99 김기화 우리춤 도문예관서 열려

수원을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있는 김기화씨(35)의 5번째 개인발표회인 ‘99 김기화의 우리춤’ 공연이 우리춤연구회 주최로 22일 오후7시 경기도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펼쳐진다. 김기화씨는 수원대 무용학과 1회 졸업생으로 임학선무용단과 두리춤터의 창단멤버로 활동하면서 많은 작품의 안무를 해왔다. 정재연구회의 창단멤버로 활동하며 궁중무용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있는 그는 임학선 임현선 김영숙 박병천씨 등의 사사를 받았다. 깊은 호흡과 힘있는 춤사위로 풀어낼 김기화의 우리춤 무대에는 ‘무산향’ ‘포구락’ ‘태평무’ ‘교방무고’ ‘진도북춤’ 등의 작품이 선보여진다. ‘무산향(無山香)’은 조선 순조때 춘앵전과 더불어 창제되어 추어진 춤으로 화려하고 다양한데 대모반이라 하여 거북이 등판모양으로 장식된 바닥에 난간을 세운 침상모양과 비슷한 곳에서 추어지므로 실외적인 분위기를 나타낸다. 정재연구회 회원들이 선보이는 ‘포구락(抛求樂)’은 고려 문종때 중국 송나라로부터 전해진 당악정재중 하나로 채구라는 공을 포구문의 위쪽 풍류안에 던져 넣는데 상으로 꽃을 받고 넣지못하면 벌로 얼굴에 먹칠을 당하는 놀이형식의 춤이다. 정재연구회는 또 ‘교방무고’도 선보이는데 이 춤은 무고를 중앙에 두고 구성된 군무로 한쌍의 나비가 꽃을 감도는 것 같고 두마리의 용이 용맹스럽게 구슬을 다루는 것같은 형상을 짓는 기묘한 춤이다. ‘태평무’는 정중동의 멋과 흥이 넘치고 받디딤의 기교가 뛰어난 춤으로 김기화씨가 홀로 무대에 선보이며, 그는 ‘진도북춤’도 춘다. 이 춤은 전라남도 진도에서 연희된 춤으로 북장단과 춤사위를 기본으로 두개의 북가락을 양손에 나누어 들고 나는 듯 머무르는 듯 화려한 발놀림으로 몰아치고 되돌아가는, 멋과 흥이 넘치는 작품이다. (0331)258-6636∼7 /이연섭기자 yslee@kgib.co.kr

북한소설 비정치소설 변화 모색

90년대를 전후해 북한 소설이 정치적 목적주의일변도에서 탈피해 비정치적인 소설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학평론가인 용인대 신상성교수는 “김정일 체제가 정립된 이후 북한 문학의 창작 주체가 김일성 부자(父子)에서 작가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교수는 북한의 대표적 문학잡지인 ‘조선문학’에 80년부터 92년까지 실린 3백여편의 소설 내용과 주제를 분석한 ‘김정일체제 이후 북한소설의 변화’라는 논문을 통해 “김일성 가계의 우상화를 주제로 한 작품이 약 13%에 그친 것에 반해 비정치적인 내용을 토대로 이상적 인간상을 그린 것들이 18%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런 북한 문학의 변화 양상을 ‘창작의 주인은 김일성 부자가 아닌 바로 작가자신이라는 개념의 등장’이라는 말로 신교수는 압축한다. 그는 “최근들어 북한 문학계에 생활문학 영역이 확대되면서 가족문제, 남녀간의 사랑문제, 현실과 행복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고 말했다. 신교수는 북한의 소설이 변화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김정일 체제가 시작되면서 해외 유학파들이 핵심 권력층으로 진입하고 경제적 문제가 전면으로 부각돼 어떤 식으로든 대외 개방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소설의 신조류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는 90년대를 전후해 나온 ‘쇠찌르레기’, ‘생명’,‘산제비’ 등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김일성-김정일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그들 부자를 우상화하는 주체문학을 ‘종자’로 해야 한다는 ‘우리식 사회주의 문학원칙’ 궤도에서 탈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림종상의 ‘쇠찌르레기’(90년 조선문학 3월호)는 3대가 조류(鳥類)학자인 남북한 이산가족의 분단문제를 주제로 한 실명 작품. 북한의 대표적 생물학 박사인 원흥길교수(할아버지)를 정점으로 남한의 경희대 원병후교수(막내 아들)와 북한의 원창운교수(큰 손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남한의 원병후교수가 새의 이동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남한에서 보냈다’는 알루미늄 표식 가락지를 달아 날려 보낸 쇠찌르레기가 북한의 모란봉 새 둥지에서 발견된 것을 소재로 이용하고 있다. 작가는 원흥길교수의 입을 빌어 “한갓 미물인 새도 남·북한을 넘나드는데 하물며 사람들은 왜 마음대로 오가지 못하는가”고 말해 분단의 한과 가족간의 생이별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백남룡의 ‘생명’(85년 조선문학 최우수작)은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에 대한 인정과 공정한 사회 원칙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공업대학 교수인 리석훈 학장은 목숨의 은인인 병원의사의 아들이 자기 대학입학시험에서 점수가 모자라 탈락할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고민하는 과정을 담았다. 리종렬의 ‘산제비’(90년 ‘통일예술’ 창간호)는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방북한 임수경과 박세영 시인의 미망인과의 이야기를 소설로 꾸민 작품. 인위적인 선전-선동성을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체성에 대한 강요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신교수의 평이다. 신교수는 “북한 문학의 주제가 다양화되면서 남북한 문학사이에 의사소통의 가능성이 생겨났다”며 “남북한 문학 교류의 활성화는 통일에 대비한 남북간의 정서적 일체감 형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99 문화재계 결산

통상 개발과 문화재는 그 양이 정비례한다. 문화재 발굴이 늘어나고 이에따라 각 박물관 수장고가 유물로 채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국토가 파괴되어 간다는 증거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올해는 문화재청 승격과 함께 사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고 있으나 문화재정책에 분기점을 이룬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개발이 불가피한 이상 그에 앞서 문화재 조사를 반드시 거치도록 법으로 강제화했기 때문이다. 한 고고학자가 예상하듯이 지난 7월1일자로 개정 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됨으로써 적어도 앞으로 30년 동안은 고고학자들은 돈벌이 걱정은 커녕 허리가 휘어져라 땅만 파야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발굴로 보면 아무래도 초기 백제사를 새로 쓰게 한 서울 송파구 송파동 풍납토성 발굴이 첫손에 꼽힌다. 성벽과 성벽 안쪽 주거지역에 대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한신대 두 기관의 발굴 결과 풍납토성은 적어도 서기 200년 즈음에는 축조가 끝난 한성백제(BC 18∼475년) 왕성터임이 확정됐다. 또 올해는 삼국시대 목간 연구에 분기점을 이룬 한해로 기록되게 됐다.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는 신라 지방통치와 수취제도의 실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6세기 후반 신라목간 27점이 무더기 출토돼 학계에 보고돼 빈약한 문헌기록을 보충해 줬고 다른지역에서도 목간이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호남지역은 올해도 역시 발굴의 보고. 서해안고속도로 건설예정지 군산-고창 구간에서 무덤 봉분 주위를 따라 도랑을 판 2∼3세기 즈음 주구묘(周溝墓) 43기가 무더기로 발굴됐으며 전북 고창에서는 4세기말∼5세기초쯤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길이 70m, 봉분높이 9m에 이르는 초대형 고분이 발견됐다. 또 지난 96년 삼국시대 고분인 전남 나주군 복암리 3호분 옹관에서 출토된 1천500년 전 인골의 주인공은 어머니가 같은 남녀인 것으로 밝혀졌다. 더불어 전남 나주복암리 3호분에서는 왜(倭)의 영향이 뚜렷한 원통형토기가 나왔다. 발굴이 문화재 파괴행위라면 보호측면에서 날로 그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보존과학은 올해 더욱 뚜렷한 업적을 냈다. 3년7개월간의 보존처리 과정을 통해 공개된 경주 감은사 동쪽탑 출토 7세기 후반 통일신라 금동사리함은 신라 금속공예기술의 정수를 보여주었으며 경남 창녕군 계성면 명리의 가야고분에서 나온 은새김 규두대도도 보존과학의 힘을 빌어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몇년째 계속되고 있는 한국과 프랑스간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이 재개된 점도 눈길을 끈다. 외규장각 도서반환 운동을 개시했던 주인공인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극동함대 해군이 방화 약탈할 때 강화도에 있던 조선왕실 도서관인 외규장각에는 1천7종, 5천67책이 소장돼 있었으며 이 중대부분이 잿더미로 변한 사실을 규명해 냈다. 문헌기록으로는 한국초의 한국 한문소설로 통하는 매월당 김시습(1434∼1493)의 ‘금오신화’(金鰲新話) 판본 중에서 가장 오래된 1592년 임진왜란 이전 것이 중국에서 발견된 점이 가치가 크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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