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굿바이 러버’(Goodbye Lover)

롤랑 조페 감독이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말끔히 씻어내려고 작심한 걸까.그의 신작 ‘굿바이 러버’(Goodbye Lover)는 기존의 작품세계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 분위기도 딴판이다. ‘시티 오브 조이’에서 휴머니즘을 보여준 그가 5년만에 생뚱같은 퓨전장르를 내놓았다. 섹스, 스릴, 코미디가 뒤범벅이 돼 있는데다 도덕과 비도덕,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마구 넘나드는 다분히 도발적인 영화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는 상상을 불허케 하는 연속적인 반전.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 등장하는 4명의 연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영화 종반부까지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힘든 탓이다. 400만달러의 보험금을 차지하기 위한 음모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축이다. 귀엽고 발랄하고 매력적이고 섹시한 여자 산드라(패트리샤 아퀘트)는 부와 명예를 모두 갖춘 광고회사 중역인 남편의 형 벤(돈 존스)의 정부(情婦)다. 산드라의 남편인 제이크(더모트 멀로니)는 알코올 중독자로 지위와 명성을 다 잃어버린 뒤 부인의 요염한 자태를 이용해 한몫 챙기려고 머리가 복잡하다. 여기에 벤의 여비서 페기(메리 루이스 파커)와 노련한 여형사까지 이 복잡한 관계에 끼어든다. 교회음악의 장엄한 선율을 배경음악으로 깐 산드라와 벤의 밀회 장면을 비롯해 서로 짝을 바꿔가며 상대를 기만하는 농염함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26일 개봉.

'한국의 거장 시리즈' 음반 발매

한국을 빛낸 세계적 연주자들의 음악을 담은 시리즈 음반이 나왔다. EMI의 ‘한국의 거장 시리즈’.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장영주, 첼리스트 장한나, 피아니스트 백혜선과 백건우, 그리고 정트리오 등 EMI 소속 음악가들의 기존 연주곡 가운데 발췌, 각각 CD 2장에 담아낸 6개의 시리즈 음반이다. 그 가운데 정경화는 텐슈테트 지휘의 로얄콘서트헤보우와 협연한 베토벤의 ‘협주곡 라장조’와 리카르도 무티의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드보르작의 ‘협주곡 가단조’ 등을 한 데 담아냈다. 또 장영주는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 라장조’(런던심포니. 콜린 데이비스 지휘)와 파가니니의 ‘협주곡 제1번 라장조’(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볼프강 자발리쉬) 등을, 장한나는 로스트로포비치 지휘의 런던심포니와 녹음한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변주곡’과 생상스의 ‘첼로협주곡 제1번 가단조’ 등을 실었다. 백혜선은 EMI 발표음반인 1집 ‘데뷔’와 2집 ‘사랑의 인사’ 중에서 멘델스존의 ‘무언가’와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등으로 음반을 엮었다. 리스트의 ‘메피스토 왈츠 제1번’과 풀랑크, 드뷔시 등의 다양한 선율을 담은 백건우, 베토벤의 ‘트리오 5번 ‘유령’’과 차이코프스키의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등을 실은 정트리오의 앨범은 이전 발표음반을 다시 내놓은 것이다.

<새영화>여균동 감독의 신작 '美人'

여균동 감독의 신작 ‘美人’은 몸에 관한 단상(斷想)같은 영화다. 정신의 지배를 받는 객체로서의 몸이 아니라 감정을 표출하고 느끼고 뭔가에 반응하는 주체로서의 몸이 이성과의 만남을 매개로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몸이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관심의 대상이란 기저위에 서 있는 이영화의 주인공은 그래서 인간의 신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현대무용가 안은미씨가 몸 연출을 별도로 맡은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인터뷰 잡지기자(오지호)가 애인에게서 버림받은 22살의 누드모델(이지현)을 우연히 만나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는 내용의 영화 원작은 여 감독이 몇해전에 내놓은 중편 소설 ‘몸’. 두 사람의 나머지 일상사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는 카메라는 오직 침실에서의 거침없는 섹스, 몸에 대한 탐닉과 집착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의 육체적인 사랑만 좇고 있다. 그것도 아주 미세한 몸짓까지 앵글에 담아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남녀 누드집을 보는 듯한 인상이 남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에게 섹스는 단순한 유희를 뛰어넘는, 가장 적나라한 인간의 언어에 다름아니다. 실제, 여 감독은 “우리의 이성 보다 오히려 솔직한 ‘몸’의 사랑에 주안점을 두었다”, “억제하지 않은 욕망이 보여주는 몸짓은 충분히 아름답다”는 말로 이 영화의 성격을 규정지었다. 극단적인 차별성을 실험하기 위한 작품이라는 이 영화의 몸에 대한 탐미적인 관심과 집착에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12일 개봉.

<새영화>'해변으로 가다'

올 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는 또 한편의 공포영화 ‘해변으로 가다’는 PC통신만이 유일한 대화 수단인 한 젊은이가 통신에서조차 ‘왕따’를 당하자 ‘살인마’로 돌변해 자신을 따돌린 아이들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의 슬래셔 무비다. 특정동아리에 소속된 7명의 젊은이가 등장하고, 이들 모두 살인의 모티브를 제공하는 ‘하나의 비밀’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양만 보면 먼저 개봉한 영화 ‘가위’와 닮았다. 그러나 ‘가위’가 유지태, 김규리, 하지원 등 요즘 뜨는 ‘스타군단’을 앞세웠다면 ‘해변…’은 ‘생짜 신인’들을 과감히 주인공으로 기용해 참신함을 노렸다. 영화 초반에는 일찌감치 살해된 한 명을 제외한 일곱 명의 청춘 남녀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마음껏 젊음을 누리는 모습이 펼쳐진다. 이들은 모두 PC통신 ‘바다사랑 동우회’ 회원들. 통신상에서만 친분을 쌓아오다 회원 중 한 명인 ‘원일’의 초청으로 바닷가의 한 별장에 모였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깐. 이들에게 죽음을 예고하는 이메일이 한 통씩 도착하고 이때부터 얼굴을 알 수 없는 살인마로부터 한 명씩 난도질 당한 채 살해된다. 살아남은 이들은 추리를 통해서 살인마가 ‘샌드맨’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샌드맨은 통신에서의 악명높은 행각때문에 회원들에 의해 영구제명당하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샌드맨이 보낸 이메일을 단서로 ‘샌드맨은 우리들 중에 있다’는 심증을 굳힌 이들은 이때부터 ‘내부의 적’을 추적해 나간다. 사람을 ‘장작 패듯’ 도끼로 찍어내는 잔인한 ‘살인마’는 의외로 가장 천진난만한 얼굴을 한 인물이라는 것쯤은 영화를 좀 본 사람이면 짐작할 수 있을 듯. PC통신, 한 여름 외딴 바닷가, 젊은이들의 성적 일탈 등 철저히 신세대들의 감성코드에 맞췄다. 김인수 감독의 데뷔작으로 12일 개봉.

윤병천 대금정악 음반출시

그야말로 성실하게 30여 성상(星霜) 대금정악의 맥을 잇고있는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원 윤병천씨가 ‘윤병천의 대금정악’이란 CD를 내놓았다. 2장으로 구성된 음반은 연주회 실황을 담은 것으로 윤씨가 독주회를 통해 발표한 바 있는 ‘표정만방지곡(表正萬方之曲)’과 ‘평조회상(平調會相)’ 전장이 실려있다. 관악영산회상이라고도 하는 표정만방지곡은 거친 듯 씩씩하며 강렬한 음색과 꿋꿋한 대금이 다른 악기들과 어우러져 그 멋이 일품이며, 독주곡 평조회상 또한 대금이란 악기의 특성을 충분히 발휘하며 연주자의 기량을 맘껏 펼쳐보이고 있다. 화성군 남양 출생인 윤병천씨(47)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 북청사자놀음 예능보유자 고 윤영춘씨의 3남으로 예능집안에서 지내다 1967년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양성소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수업을 시작했다. 타고난 음악성과 성실한 노력으로 일찌기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고 녹성 김성진선생이 보유한 중요무형문화재 20호 대금정악의 이수자로 스승의 뒤를 이을 제자로 촉망받고 있고, 여러차례 독주회와 협연을 통해 탁월한 기량을 가진 대금잽이로 평가받고 있다. 대금정악의 맥을 잇는 훌륭한 연주자로, 한양대·경북대 등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 교육자로 활동하는 윤병천씨는 “정말로 좋은 음악은 흥분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본래 착하고 선한 바탕의 기틀에 맞아 물같이 담담하면서도 들어서 몸과 마음에 편안한 음악, 그래서 무사무악(無邪無惡)하고 두려움이 없는 대안락의 상태에 이른다”고 정악의 맛을 얘기하며 이런 음악을 위해 정진에 힘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연섭기자 yslee@kg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