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감독의 두번째 영화 ‘눈물’은 소재부터가 파격적인데다 형식마저도 실험적이어서 충무로에 잔잔한 파문을 던지고 있다. 충무로의 주류 영화들이 금기시해온 집나온 10대 비행청소년들의 거친 삶을 온전히 스크린에 옮겨 놓았는가 하면, 100%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것이다.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성담론에 논쟁을 지핀 임감독은 가출 청소년들의 뒷골목 생활에다 정면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회제도와 상식이 그어놓은 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본드흡입, 섹스, 폭행, 욕설을 일삼는 ‘못된’ 10대들의 이야기란 점에서 장선우감독의 ‘나쁜 영화’와 같은 반열에 놓일 법도 하지만, ‘나쁜 영화’가 다큐멘터리 형식을 좇았다면 ‘눈물’은 사실적인 묘사에다 드라마를 잘 버무려 놓았다. 이혼한 부모가 싫어 가출한 순진한 ‘한’(한준)은 폭력배 ‘창’(봉태규)을 만나 여자아이들과 음란 파티를 벌이려다 반항하는 ‘새리’(박근영)의 탈출을 돕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둘은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것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뼈대다. 술집접대부로 일하며 기둥서방인 ‘창’에게 모든 걸 바치는 ‘란’(조은지)과 이들가출청소년을 등쳐먹는 술집지배인 ‘용호’(성지루) 등이 뒤섞인 가운데 희망없는 유흥가 밑바닥 생활을 하는 비행청소년들의 일상이 거친 영상에 섬세한면서도 차분하게 묘사돼 있다. 무엇보다 주변환경에 밀려 탈선한 가출청소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임감독의 연민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영상이 거친 것은 디지털 카메라에 전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으로 6㎜ 소형디지털 카메라 3대가 동원됐다. 제작비도 불과 5억원밖에 안들었는데 수십억원에 육박하는 제작비 상승추세에 비춰볼 때 획기적이라 할만하다. 임 감독은 5년전에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사실에 근접하는 시나리오를 쓰기위해 구로구 가리봉동 달동네에서 쪽방을 얻어 6개월을, 안경노점상을 하면서 6개월을 보냈다. 출연배우들은 완전 ‘초짜’로 길거리에서 눈에 띄어 캐스팅됐다.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일찌감치 초청됐다. 20일 개봉. /이형복기자 mercury@kgib.co.kr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양악기로 연주하는 산조(散調) 음반이 최초로 출시됐다. 신나라뮤직에서 발매한 이 음반에는 김국진씨가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산조’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산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산조’ 등이 들어 있다. 산조는 가야금이나 거문고, 아쟁, 대금, 피리 등 민속악기로 연주하는 기악독주음악으로 삼남 지방에서 발달했으며 대개 느린 속도의 진양조로 시작해 차차 급한 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장단으로 바뀌어 끝난다. 이번에 출시된 음반 역시 이같은 산조 고유의 형식을 살려 다스름-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굿거리-자진모리-엇모리-휘모리의 순서로 구성돼 있다. ‘피아노를 위한 산조’는 피아니스트 안수미씨가,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산조’는 첼리스트 우지현씨와 피아니스트 김영한씨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산조’는 바이올리니스트 주일엽씨와 피아니스트 한영애씨가 연주했다. ‘피아노를 위한 산조Ⅰ,Ⅱ’ 음반과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산조’및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산조’를 한데 묶은 음반 등 2장으로 발매됐다. 신나라뮤직 정문교 대표이사는 “새로운 세기를 맞아 우리 전통음악의 한 장르인 산조를 서양음악의 표현방식을 빌려 세계화시키고자 이 음반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처음 녹음한 비발디의 ‘사계’ 음반이 EMI에서 출시됐다. 정경화는 그동안 각종 연주회에서 비발디 ‘사계’를 많이 연주했지만 음반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국내 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협연은 미국 실내악단인 세인트 루크 체임버 앙상블이 맡았으며 정경화는 바이올린 독주와 지휘를 동시에 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특히 이번 음반에서 정경화는 고국 팬들을 위해 자신이 직접 곡 내용을 한국어로 해설한 부분과 ‘사계’를 뮤직비디오 형태로 연주한 부분을 별도의 CD로 만들었는데, 이처럼 ‘2 for 1’ 형태로 묶은 CD는 한국과 일본에서만 발매된다. 이 음반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원전연주 스타일과는 달리 비교적 모던하고 ‘정경화적’인 연주를 들려 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EMI 코리아측은 “정경화가 우리 나라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연주자일 뿐 아니라 비발디의 ‘사계’ 역시 국내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레퍼토리인 만큼 작년 50만장이상 팔렸던 조수미의 음반 못지 않은 인기를 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예순네살이 돼도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하나요?” 가슴시린 연인들을 위한 따듯하고 촉촉한 사랑이야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가 오는 13일 개봉, 올 겨울 극장가를 달구고 있는 멜로물 개봉행진에 가세한다. 박흥식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작은 정원과 분수대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서울 근교의 서민아파트 상가에서 각각 근무하고 있는 말단 은행원과 보습학원 강사의 특별할 것 없는 사랑이야기다. 대신 그간의 다른 영화들이 사이즈와 스펙터클에 몰두하느라 무시하거나 놓쳐온 것,즉 행간의 여운을 읽는 맛과 일상의 디테일이 섬세하고 밀도있게 살아있다. 은행원 봉수(설경구)는 남몰래 짝사랑을 키워가는 학원강사 원주(전도연)의 속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채 겉도는데… 어느날 우연히 은행 CCTV녹화 화면을 되돌려 보다 자신을 향한 원주의 마음을 읽고 난후 오랜 방황을 끝내고 사랑의 종착역에 다다른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에 골인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뒤따라가며 그들의 미세한 감정변화를 놓치지 않고 드러내 보여주는 것. 때문에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운명의 장난은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별다를 것 없는 사소한 연애 성공기에 불과해 보이는, 평범한 연애담 같은 이 영화는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 있는 ‘사랑’에 특별한 의미와 느낌을 부여, 의외로 오랜 여운을 남긴다는 평이다. 또 ‘재미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박 감독의 영화관을 보여주듯 코믹한 대화가 중간중간 녹아있어 수시로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등 잔재미도 곁들여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는 설명이다. 다만 따분한 두 남녀의 일상을 되풀이 해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다소 지루함을 느끼게 할 소지는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해피엔드’에서 욕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을 농염하게 연기해 낸 전도연과, ‘박하사탕’ ‘단적비연수’로 지난해 최고의 남자배우로 성장한 설경구의 연기변신이 눈에 띈다. /강경묵기자 kmkang@kgib.co.kr
올해 클래식 음반계는 소프라노 조수미의 독주체제였다. 미디어신나라가 발표한 ‘2000년 클래식 음반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 3월에 나온 조씨의 ‘온리 러브’(워너)는 국내 클래식 음반으로는 전무후무한 56만여장의 판매기록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음반의 지나친 독식으로 인해 클래식 인접 장르인 크로스오버, 뉴에이지 등의 시장뿐 아니라 심지어는 가요나 팝 시장까지 일정 부분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음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과연 50만장이나 팔린 음반을 클래식 음반으로 봐야 하는가’하는 이상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두번째로 많이 팔린 음반은 맹인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오케스트라 반주로 이탈리아 전통민요를 노래한 앨범 ‘소뇨’(유니버설)였다. 지난해 4월 출시됐으나 올해 몇몇 CF와 방송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 올해만 10만장 가까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1997년 발매돼 전세계적으로 2천만장 이상이 팔리면서 보첼리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그의 첫 앨범 ‘로만자’도 덩달아 잘 팔려 판매 순위 6위를 기록했다. 판매순위 3위는 영국출신 뮤지컬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의 크로스 오버 앨범 ‘라 루나’(EMI)가 차지했다. 6만장 이상이 팔린 이 음반은 잔잔한 분위기의 팝송과 베토벤 교향곡 7번의 2악장에 이탈리아어 가사를 붙여 노래한 ‘필리오 페르두토’,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중 ‘달에 부치는 노래’ 등이 실려 있다. 올해 국내 클래식 음반계는 조수미, 보첼리, 브라이트만 세 가수가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들 음반은 모두 정통 클래식이 아니라 크로스오버 앨범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세 가수 외에는 KBS 1FM이 개국 20주년을 맞아 만든 ‘네티즌들이 뽑은 클래식베스트 편집음반’에는 ‘위 겟 클래식 리퀘스트 36’(유니버설) 1, 2집(각각 4, 6위)과 태교음반 ‘최정원의 태교음악-내 안의 작은 천사’(신나라뮤직.7위), ‘모차르트 이펙트’(워너) 1, 5집(각각 8, 9위) 등이 판매순위 10위 안에 들었다. /연합
국내 영화 배급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시네마 서비스가 올해 첫 프로젝트로 제작한 ‘불후의 명작’은 지극히 옛 정서에 기대어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말한다 ‘초인’이 등장하거나 아니면 인간은 온데간데 없고 넘쳐나는 특수효과와 물량공세로만 무장한 요즘 주류 영화들에 아예 작정하고 반기를 든 셈. 외딴 산골로 놀러갔다가 차가 고장나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같이 보내야 하는 연인들의 낯익은 에피소드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신파조 삼각관계도 그래서 빠뜨리지 않았다. 인기(박중훈 분)는 유학파지만 생활고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에로 비디오를 찍는 순박한 마음을 지닌 감독. 지금은 ‘마님 사정 볼 것 없다’ ‘박아사탕’같은 ‘벗기는’ 영화들을 찍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불후의 명작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다. 여경(송윤아)은 유명인사들의 자서전을 써 주는 대필작가. 자신의 처지때문에 사랑하는 남자에게 한번도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조만간 자신의 이름이 찍힌 소설집을 내겠다는 야망이 있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관계로 만난 두 사람은 시나리오 한편을 완성시키면서 애틋한 사랑의 감정에 빠져들지만 뒤늦게 인기는 여경이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선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각박한 영화계 현실때문에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직접 영화로 만들지 못하고 선배에게 물려주게 되자 인기는 울부짖는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특별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아픔을 간직한 사람만이 사실은 인생에서 불후의 명작을 만들 수 있다” 심광진 감독의 말이다. 냇가에 앉아 있는 두 남녀 사이로 반딧불이 반짝이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에 맞춰 춤을 추는가 하면, ‘사랑했지만 바라만 봐야 했던 당신’으로 시작하는 편지가 흐른다. 감독은 조금 ‘못난’두 남녀를 내세워 옛 정서를 공략하는 ‘촌스러운’장면들을 의도적으로 연출했다. 그러나 가슴 한 구석이 훈훈해지는 인간미보다 진부함과 지루함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특히 감독의 희망에 관한 집중적인 메시지는 일종의 강박관념처럼 느껴질 정도로 직접적이다. 23일 개봉.
일상의 작은 우연들을 하나하나 꿰맞추면 어떻게될까.정사의 이재용 감독의 신작 순애보는 도시에 사는 외로운 사람들의 모습과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느끼게 되는 우연과 인연에 관한 이야기다.우연이 인연으로 그리고 다시 운명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사실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감독은 데뷔작 정사에서 보여준 그의 장기인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영상과 세밀한 연출력을 또다시 십분 발휘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굳힌 것처럼 보인다.알려진 대로 본격적인 한일합작영화다. 한국의 쿠앤필름과 일본의 쇼치쿠영화사가 제작비를 반반씩 댔고, 촬영도 일본과 한국에서 각국의 스태프들에 의해 반반씩 진행됐다. 주연배우도 한국의 이정재(27)와 일본 여배우 다치바나 미사토(19)다.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사이좋게 잘 나뉘어진 이 영화는 한편의 잘 짜여진 그림 조각 퍼즐을 떠올리게 한다.동사무소 직원인 우인(이정재)의 삶은 문틈에 끼여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통증조차 느낄 수 없는 그의 새끼손가락 마냥 무기력하기만 하다.밤마다 인터넷 음란사이트를 뒤적거리거나 화장실 벽에 걸려 있는 달력 사진 속의 알래스카 설원 풍경을 보며 공상에 잠기는 게 그의 유일한 낙. 집도 있는데다 생활도 넉넉한 그에게 동사무소 일은 심심풀이 땅콩쯤으로 비쳐지는 게 동료들의 시선이다. 어느 날 그는 아무렇게나 자신을 내팽개친 듯한 반항적 외모의 빨간 머리 소녀 미야(김민희)를 보고 첫눈에 반하지만 그녀는 코방귀조차 뀌지 않는다.비슷한 시간의 일본. 도쿄에 사는 중산층 가정의 아야(다치바나 미사토)는 입시학원에 다니는 재수생. 삶에 별 미련이 없는 그녀는 사람들이 어제 죽었는지 오늘 죽었는지 헷갈려 할 날짜변경선에서 숨을 참고 자살해야겠다는 황당한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알래스카로 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인터넷 음란사이트에서 구두 신은 아사꼬라는 이름으로 모델 일을 시작한다.같은 비행기를 탄 두 남녀가 그 사실을 모른 채 앉아있는 마지막 장면은 정사의 그것과 겹쳐진다. 불륜을 넘어 본능을 찾아 떠난 정사의 주인공들의 목적지가 브라질이었다면, 무기력한 일상으로 부터 탈출을 꿈꾸는 순애보의 두 남녀의 비행기행은 알래스카인 셈.보는 이도 힘이 쭉쭉 빠질 정도로 리얼리티를 살려낸 일상 속에 가끔씩 튀어나오는 유머스런 장면이 극의 긴장 수위를 조절해 준다. 9일 개봉.
연예협회 경기도지회(지회장 이기원)가 지난 9월 30일 주최한 제4회 곶고리 창작가요제의 음반(도레미레코드사)이 출시됐다. CD와 카세트 테이프로 나온 이번 음반에는 대상수상곡인 그룹 실버의 ‘슬픈사랑보다 아픈 이별’을 비롯해 금상수상자 음광식의 ‘첫사랑’, 은상수상자 강현주의 ‘히드라’, 동상수상자 빅 투(BIG TWO)의 ‘다시 널 만날때까지’와 장려상 ‘내게로 돌아와줘’, 특별상 ‘다시 시작 하는거야’등 이번 가요제 본선 참가자 12명의 곡을 실었다. 한편 곳고리 창작가요제는 전국 규모의 창작대중가요 경연대회로 건전한 대중가요의 활성화를 위해 매년 개최하고 있다. 문의 233-1140 /이형복기자 mercury@kgib.co.krss
달라이라마의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국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쿤둔’은 다섯살 나이에 ‘쿤둔’의 자리에 올라 신앙을 완성해가는 모습, 그리고 중국의 암살 위협을 피해 기나긴 망명길을 떠나야 했던 어린 소년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비열한 거리’, ‘분노의 주먹’등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달라이라마 전기를 그린 영화를 제작하고자 했을 때 모두 의아해 했다고 한다. ‘가장 미국적인 감독’이라고 평가받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티베트와 달라이라마는 어쩌면 너무나 생소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늘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곳’티베트로 눈을 돌려 생소한 그곳의 문화와 달라이라마의 성장 과정을 담아낸 ‘쿤둔’은 사실 그의 오랜 주제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그것도 어린 소년이 비폭력과 평화주의적 방법으로 어른도 감내하기 힘든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가는 모습은 감독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이 영화에는 극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갈등이나 대립은 찾아 볼 수 없다. 심지어 티베트 침략을 주도한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조차 깍듯한 예의를 갖췄던 신사적인 인물로 그려져있다. 지루함을 탈피하기 위해 감독은 때와 장소를 뒤섞는 파격적인 편집을 시도했다. 또 티베트의 앞날을 상징하듯 토막난 시체를 독수리들이 뜯어먹는 모습이나 승려들이 집단 살해돼 누워있는 모습 등 평화로움과 대비되는 충격적인 영상을 간간이 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실제 달라이라마의 조카가 달라이라마 ‘생모’역을 맡는 등 달라이라마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 주변 인물로 캐스팅됐다. 또 성인 달라이라마를 연기했던 텐진 듀톱차롱을 비롯해 단 한 명의 전문배우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형복기자 mercury@kg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