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위대한 비상

‘알바트로스’는 철새 중 덩치가 가장 크다. 날개가 무려 3.6m에 이른다. 태어나 9개월이 지나면 둥지를 떠나 8년이 지나야 다시 육지로 돌아온다. ‘로얄 펭귄’은 날 수는 없지만 수심 수백 미터까지 잠수할 수 있다.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는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에너지를 80%나 절약하는 효과가 있다. 29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위대한 비상’은 전세계 27종에 이르는 철새들에 대한 영상 보고서다. 극지대의 빙하에서 아프리카 모래 사막에 이르기까지 철새들의 여행을 쫓아가면서 그들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를 담았다. 5년 전 곤충의 세계에 카메라를 들이댔던 ‘마이크로 코스모스’의 쟈크 페랭 감독의 솜씨다. 주인공은 흰 기러기, 백조, 황새, 앵무새, 흰 펠리컨 등 수천 마리의 새들. 철새들에게 총을 쏘아대는 인간은 이들의 여정을 방해하는 엑스트라일 뿐이다. 눈보라 속에서 발레를 하는 듯한 군무를 펼치는 일본 두루미, 그랜드캐년의 협곡에서 다이빙 실력을 자랑한 흰꼬리수리, 물 위를 경주하듯 가로지르는 물새 등 해학적인 장면이 미소짓게 한다. 날개가 부러져 사막에서 게들의 먹이가 되거나 덩치가 큰 새에게 잡혀먹히는 작은 새 등 치열한 약육강식의 현장도 목격할 수 있다. 서부·북부 유럽이나 중앙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북극과 남극 일대 등 새들의 비상과 함께 펼쳐지는 지구의 자연 풍광을 보는 즐거움 또한 크다. 조류학자, 생물학자, 비행기 조종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제작진이 세계 각지에서 모은 1천여 개의 알을 최적의 온도와 습도가 갖춰진 인큐베이터에서 길러 주연으로 기용했다. 촬영에는 헬리콥터, 행글라이더, 열기구, 특수 제작된 경비행기 등 ‘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총동원됐다.

<새영화>복수는 나의 것

‘착한 유괴’라는 단어의 조합이 가능할까.가난한 사람이 부잣집 아이를 납치해 몸값을 받아낸 뒤 멀쩡하게 돌려보내는 게 부(富) 혹은 자본의 분배 방식 중 하나라고 보는 발상은 어떨까. 박찬욱 감독의 신작 ‘복수는 나의 것’은 ‘착한 유괴’라는 극중 표현만큼이나 낯선 영화다. 각각 사적인 이유로 핏빛 복수극을 펼치는 개인들을 통해 인생과 세상의 부조리를 꼬집는 이 영화는 표현 방식이 독특하다. 한국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하드 보일드’ 장르를 표방해, 설명과 대사는 가능한 한 아꼈다. 일말의 동정이나 연민이 끼어들 구석도 없이 영상은 잔혹하면서도 무미건조하게 탈색했다. 말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청각장애인 류(신하균)는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누나와 단둘이 산다. 신장을 이식해야만 살 수 있는 누나를 위해 장기 밀매단을 찾아간 그는 퇴직금 1천만원과 제 신장마저 빼앗긴채 버려진다. 이때 누나에게 적합한 신장을 찾았으니 일주일 내로 수술비를 가져오라는 병원의 통보가 날아든다. 유일한 피붙이인 누나를 살리기 위해 이 가난한 장애인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류의 여자 친구이자 극렬 운동권 학생인 영미(배두나)는 부잣집 아이를 유괴하자고 제안한다. “이 세상에는 ‘착한 유괴’도 있다”면서. 두 남녀가 중소기업 사장인 동진(송강호)의 딸을 납치하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류가 몸값을 챙겨들고 기뻐할 동안 동생의 범죄 사실을 알게된 누나는 손목을 그어 자살하고, 유괴한 아이 역시 뜻하지 않게 강물에 빠져 죽고 만다. 아내도 떠나고 하나뿐인 딸마저 잃은 동진은 유괴범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누나를 잃은 류도 장기 밀매단을 응징하면서 복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복수는…’은 ‘오싹’하고 소름이 돋게 하는 영화다. 잔혹한 장면을 드러내놓고 보여주진 않지만 상상의 여지를 남겨 공포감을 극대화 시킨다. 류가 장기밀매범들의 심장을 꺼내 소금에 찍어 먹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피로 물든 도마와 칼, 소금이 스크린에 나타나면서 암시되고, 윙윙거리는 전기톱소리로 시체의 사지가 잘려나가는 것을 짐작케 할 정도다. 동진은 영미를 전기고문해서 살해하고 류를 자신의 딸이 빠져죽은 강속으로 끌고 들어가 발목의 아킬레스건을 잘라 익사시킨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복수의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비극이라니. 예기치못한 사건 하나가 많은 이들의 삶을 통째 비틀 수 있다니 인생은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가. 심각해야 할 상황에서 코믹한 대사를 삽입하고, 의도적으로 내러티브를 건너뛰거나 자장면 배달을 나왔다 시체가 돼 나가는 중국집 배달부의 운명처럼 뚜렷한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는 죽음을 집어넣은 것도 이런 맥락과 닿아있는 듯 보인다. 순진무구했던 청각장애인이, 자상했던 아버지가 극악무도한 복수의 화신으로 변하기까지 표면적으로는 개인적 원한을 앞세웠지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그들의 분노는 결국 우리 사회의 모순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새영화>생활의 발견

홍상수 감독이 신작 ‘생활의 발견’이 22일 개봉된다.그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오 수정’까지 평범한 남녀의 모습을 통해 일상의 단면과 삶의 위악을 가감없이 그려내 주목받았던 감독. 홍감독은 이제 일상성에 관한한 도가 튼 듯 보인다. 예의 이번에도 가식을 걷어낸 연애담을 들고 나왔다. 줄거리랄 것도 없다. 한 남자가 6박7일 동안 여행하면서 성격이 상반된 두 여자를 만나 겪게되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채워넣었다. 시나리오처럼 각 이야기마다 소제목도 붙었다. #경수가 영화사에 가서 감독과 말다툼을 하다 #경수가 기차 안에서 선영을 만나다 등등. 경수(김상경 분)는 연극계에서는 제법 알려진 배우. 모처럼 영화에 출연했다가 흥행에 실패하고 차기작 캐스팅까지 무산되자 영화사로부터 러닝개런티를 뺏다시피 받아들고는 춘천에 사는 아는 선배를 찾아간다. 그 곳에서 선배 소개로 만난 여자가 명숙(예지원 분). 무용학원 강사인 그녀는 처음 만난 술자리에서 “어색한 거 없애게 뽀뽀나 할까요”라며 적극 호감을 보인다. 관계가 급진전해 하룻밤을 같이 보낸 두 사람. 뒤늦게 명숙과 선배가 ‘심상치않은’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경수는 찜찜한 마음을 뒤로 하고 기차에 몸을 싣는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 선영(추상미)이 갑자기 아는 체를 한다. 그가 출연한 연극과 영화까지 다 봤다는 여자의 말에 마음이 동한 경수는 무작정 그녀를 따라 경주에 내린다. 알고 보니 그녀는 유부녀. 선영의 다가설 듯 말 듯한 태도에 마음이 더욱 달아오른 경수는 그녀 집까지 쫓아가고 둘은 결국 ‘선’을 넘고 만다. 관객과 거리감을 좁히려는 의도였을까. ‘생활의 발견’은 감독의 전작들보다 훨씬 가볍고 코믹해졌다. 웃음은 주로 뜬금없는 대사와 생뚱맞은 상황에서 나온다. 주인공들이 툭툭 내뱉는 대사들은 언뜻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이는데도 마치 계산된 것처럼 적재적소에서 튀어나와 폭소를 자아낸다. 극 전반에는 ‘모방’의 코드가 들어있다. 춘천 공지천에서 떠다니던 오리배가 경주에서도 슬쩍 비춰진다. 경수가 선배한테 들었던 “인간이 되긴 어렵더라도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라는 말을 마치 제 생각인양 남한테 똑같이 내뱉는다. 경수와 명숙사이에서 오간 대화가 경수와 선영 사이에서 다시 한번 오고 가는 식이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동어반복적인 표현을 곳곳에 심어놨다. 포장과 환상을 걷어낸 삶은 결국 ‘거기서 거기’라는 뜻일까.

<새영화>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잘 알려진 전수일(43ㆍ경성대 교수) 감독의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가 1일 서울 신문로 아트큐브에서 선을 보였다. 99년 완성된 ‘새는…’는 그해 이탈리아 베니스 국제영화제 ‘새로운 분야’에 초청받은데 이어 부산영화제에서 넷팩(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을 받았다. 2000년에도 스위스 프리부르 영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케랄라(인도), 모스크바(러시아), 스톡홀름(스웨덴) 등의 영화제에 소개됐다. 현지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인간 내면의 치밀한 심리묘사와 이미지를 통한 모던한 스타일이 돋보인다”는 평을 얻었으나 흥행 전망이 불투명해 그동안 상영관을 잡지 못하다가 3년 만에 국내 영화팬과의 만남을 이루게 됐다. 주인공은 지방대 영화과 교수인 ‘김’.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펼치라고 가르치지만 장래가 막막한 현실 앞에서 학생들에게는 공허하게만 들린다. ‘김’은 자신에게 휴식처같은 존재인 영희가 가족과 만나줄 것을 요구하자 갑자기 부담을 느껴 도피하고 만다. 영화도 사랑도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는 현실에 괴로워하던 ‘김’은 진정한 자유를 느껴보기 위해 철새 도래지를 찾는다. 그러나 새 역시 닫힌 곡선을 따라 이동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박하사탕’과 ‘공공의 적’의 배우 설경구가 전수일 감독의 자화상 격인 ‘김’으로 등장하고 연희단거리패 단원인 연극배우 김소희가 영희 역으로 호흡을 맞췄다.

<새영화>알리

미국의 전설적 프로복서 무하마드 알리. 그가 ‘세기의 영웅’으로 꼽히는 것은 통상 ‘61전 56승 37KO’이라는 화려한 전적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인종차별과 국가 권력에 맞서 싸웠던 투사였다. 또 ‘떠벌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언변으로 동시대인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줬던 엔터테이너이기도 했다. 알리의 실제 이름은 카시우스 마셀러스 클레이. 1942년 미국 켄터키주에서 태어난 그는 지독한 인종차별에 시달리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0년 로마올림픽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지만 인종차별은 계속됐고 이에 격분한 그는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물에 던져버리기에 이른다. 이후 그는 말콤 엑스와 인연으로 이슬람교로 개종한 뒤 이름도 ‘무하마드 알리’로 바꾼다. 프로권투선수로 전향한 그는 64년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명언을 남기며 링에 올라 당시 챔피언 소니 리스튼과 맞붙는다. 결과는 7회 KO승. 영웅으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그 앞에는 이제 탄탄대로가 열린 듯 했다. 종교적 신념때문에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한 그에게 챔피언 타이틀 박탈이라는 가혹한 벌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쯤에서 주저앉았다면 지금의 영웅 알리는 없었을 것이다. 불굴의 투지를 발휘한 그는 이후 조 프레이저와 켄 노턴 그리고 조지 포먼과 벌인 그 유명한 ‘아프리카 격전’까지 세기의 대결에서 승리를 일궈내며 영웅 자리를 되찾는다. 전세계 헤비급 타이틀을 세차례나 차지하는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마이클 만 감독의 전기영화 ‘알리’는 그의 권투 인생 가운데 파란만장했던 1964년부터 74년까지 10년의 세월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그린다. 현재 생존하고 있는 인물을, 더군다나 전세계 사람들이 알고있는 유명 인물을 스크린에 옮기기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미국 개봉 당시 언론과 평단은 “잘 만든 작품”이라는데 대체로 동의했지만 알리의 숨겨진 또다른 면모를 기대했던 이들은 그의 삶을 시간순으로 전개한 이 영화가 “전혀 새로울 게 없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영화는 알리의 신들린 듯한 권투 경기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개인사를 찬찬히 훑으면서 영웅 탄생의 과정을 서서히 보여준다. 알리의 개인적 고뇌 뿐아니라 그와 유명 권투 해설자 하워드 코셀(존 보이트)과의 우정, 알리의 코치인 드류 분디니 브라운(제이미 폭스) 그리고 알리의 부인 등 그의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도 세심하게 잡아내 드라마를 강조했다. 타이틀롤을 맡은 윌 스미스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알리의 삶이 더욱 극적인 것은 그의 불우한 노년때문이기도 하다. 오랜 복싱 생활 후유증으로 파킨슨씨병을 앓아 현재 거동이 불편한 그 이지만 영화를 통해 알리는 영원한 영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새영화>피도 눈물도 없이

‘충무로의 기대주’ 류승완 감독의 영화는 딴죽부터 걸자면 제목부터 심상치않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아니면 ‘피도 눈물도 없이’라니. 젊음의 패기와 혈기로 보기에는 제목이 주는 위압감이 너무 크다. 죽기살기로 덤비는 사람처럼 갈 데까지 가보자는 감독의 비딱한 심기가 느껴지는 탓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도 이런 식이다. 액션느와르를 표방한 신작으로 오늘 개봉되는 ‘피도 …’는 뒷골목 인생들의 아귀다툼과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세계를 그린다. 철조망 안에 갇힌 개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투견장이 무대. 물지않으면 물려 죽는 개싸움을 인생의 축소판으로 빗댔다니 그 처절함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서로 속고 속이는 치졸한 싸움과 양육강식만 있을 뿐이다. 눈 밑에 난 상처를 가리기위해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여자 수진(전도연). 북어패듯 밤낮 자신을 두들겨패는 투견장 건달(정재영)에게 지금은 발목이 잡혀있지만 언젠가 음반을 내고 가수로 데뷔하는 게 그녀의 꿈. 왕년에 뒷골목에서 한가닥했던 경선(이혜영). 도망간 남편이 진 빚을 갚기위해 택시운전을 하지만 술취한 남자 손님들의 성희롱과 거머리처럼 따라붙는 악덕 사채업자의 등쌀에 편할 날이 없다. 어딘가에 있을 딸을 찾아 함께 사는 게 그녀의 소망. 차 사고를 계기로 우연히 알게 된 두 여자는 투견장 판돈이 든 돈가방을 훔쳐 달아날 모의를 꾸민다. 허나 그 바닥 사람들을 속이기가 어디 쉬운가. 곳곳에서 제2, 제3의 모의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돈가방을 둘러싼 쟁탈전이 시작된다. ‘피도…’는 전작 ‘죽거나…’보다 한층 세련되고 매끈해졌다. 전작에서 보이던 치기어림을 접고 능수능란함과 재기발랄함을 그 자리에 채워넣었다. 악에 받친 인간들의 피비린내나는 싸움과 욕설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면서도 불쾌감을 주기보다 흡인력을 발휘하는 것은 이때문이다. 고개를 돌려야 할 정도로 잔인한 액션 장면에서 흥겨운 음악이 흐른다거나 느닷없이 정지 화면과 슬로우 모션이 튀어나와 감정의 강약 조절해 준다. 비장감 넘쳐야할 곳에서 돌연 유머가 등장하는 식이다. 상영 시간 내내 안쓰러움과 웃음,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이 교차된다. 특히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하나로 모이는 치밀한 구성과 거듭되는 반전에서는 감독의 영민함마저 느껴진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공이 컸다. 서로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인, 톱스타 전도연과 중견 이혜영을 내세워 남자들과 육탄전도 마다않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선보인다. 7년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이혜영의 카리스마와 ‘공포택시’ ‘킬러들의 수다’에서 주로 코믹연기를 선보였던 정재영의 혼신의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여기에 임원희, 류승범, 크라잉넛과 신구, 백일섭 등 신·구세대 연기자들이 총출동한 ‘피도…’는 캐릭터 열전에 가깝다.

<새영화>수학천재의 고독어린 환상

지난해 12월 20일, 골든 글로브 후보가 발표되자 한 작품이 세계 언론의 이목을 사로 잡았다. 놀랍게도 주요 6개부문 후보에 올라 최다 노미네이션의 영예를 안은 행운의 주인공은 영국 마법사 학교 출신도, 절대반지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의 휴먼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였다. 영화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등 4개부문을 수상했다. 골든글로브가 아카데미상의 전초전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작품의 수상 퍼레이드는 아카데미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뷰티풀 마인드’는 1949년 27쪽 짜리 논문 하나로 150여년 동안 지속되어 온 경제학 이론을 뒤집고, 신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혈한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삶을 다룬 실비아 네이사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존 내쉬는 기존 게임이론에 대한 새로운 분석으로 제 2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던 인물.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천재이기에 겪어야 했던 50여년 동안의 정신분열증을 이겨내고 94년 노벨상을 수상,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천재성으로 점점 황폐해져가는 존 내쉬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그의 아내 알리샤의 사랑과 감동의 스토리는 그 어떤 휴먼 드라마보다 더 치열하고 강렬하다. 원작자가 1천번이 넘는 인터뷰로 존 내쉬의 삶 자체에 리얼리티를 부여했다면,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원작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 그의 삶을 재구성하는 허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제작진은 리얼리즘을 한층 높이고 작품의 감성적 진실을 극대화하기 위해 3개월 동안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따라가는 연속촬영 방식을 선택했다. 이런 촬영방식은 현대 영화계에서 일종의 사치로 불리울 만큼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러셀 크로우 등 주요 배우들의 감정을 그대로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들은 단순한 드라마 구성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예상치 못한 영화적 재미를 선사했고, 감동을 극대화시키는 영화속 반전은 ‘뷰티풀 마인드’를 영화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휴먼 드라마로 각인 시킬 것이다./이승진기자 sjlee@kgib.co.kr

<새영화>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패럴리 형제의 유머 감각은 남다른 데가 있다.카메론 디아즈의 머리에 정액을 발라 웃음거리로 만든다거나(‘메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짐 캐리를 정신분열증 환자로 등장시켜 원맨쇼를 펼치게 하는 것(‘미, 마이셀프 앤 아이린’)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번에는 바비인형처럼 늘씬한 여배우 기네스 펠트로를 130㎏이 넘는 뚱보로 만들기에 이른다. 신작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원제 Shallow Hal)’에서다. “늘씬한 미인과 데이트를 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생활 신조로 삼은 주인공 할. ‘작은 키에 아랫배가 두툼한’ 제 외모는 생각지도 않고 미인들만 골라 집적대는 그에게 장단을 맞춰주는 여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로즈마리(기네스 펠트로)를 만난게 된 것. 우연히 유명 심리상담사 로빈스와 함께 고장난 승강기 안에 갇혔다가 내면의 아름다움만 볼 수 있는 최면에 걸린 직후다. 금발에 늘씬한 몸매, 천사 같은 성품을 지닌데다 할의 회사 사장 딸인 로즈마리는 외모와 심성, 부의 삼박자를 갖춘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는’ 여자였다. 헌데 그녀가 앉는 의자마다 폭삭 주저앉는가 하면 다이빙 한 번에 수영장 물이 반은 넘쳐나고 벗어놓은 속옷은 낙하산만 하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 “허리가 날씬하다”는 할의 진심 어린 칭찬에도 그녀는 “나를 놀리지 말라”며 토라져 버린다. 엽기와 재기발랄함 사이를 자유자재 넘나들며 웃음을 선사했던 패럴리 형제는 ‘화장실 유머의 대가’라는 평가에만 머물기 싫었는지 이번엔 교훈까지 담아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마음에 있다 쯤 될까.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사회적 편견 위에 발을 딛고있어 시각이 썩 신선하지만은 않다. 코미디물에서, 게다가 ‘패럴리표’ 영화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걸까. 영화는 시쳇말로 ‘눈에 콩깍지가 쓰인’ 주인공 할의 시선과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는 관객들의 시선, 두 가지로 전개된다. 기네스 펠트로의 늘씬한 다리를 훑은 카메라는 관객의 눈으로 돌아가 통나무보다 더 굵어보이는 다리 한 쪽을 잡아낸다. 또 실제 늘씬한 미인은 ‘심성까지 고울리 없어’ 할의 눈에는 피부가 쭈글쭈글한 사악한 성격의 할머니로 보이는 식이다. 기네스 펠트로가 뚱보로 변장한 모습은 막판 10분 전에나 볼 수 있다. 그녀의 상대역은 잭 블랙이다. 23일 개봉.

<새영화>뮤턴트 에일리언

‘뮤턴트 에일리언’은 갖가지 엽기적인 요소로 제목만큼이나 ‘이상한’ 충격을 줬던 애니메이션 ‘나는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를 선보인 빌 플림턴 감독의 신작이다. 지난해 안시애니메이션영화제는 이 작품에 그랑프리를 안겼다. 우주정거장을 세우는 도중에 음모에 휘말려 우주로 방출된 우주비행사가 수십년뒤 지구로 귀환해 딸과 함께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 기둥 줄거리. 풍자·엽기·성적 코드가 전작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여기에 감독의 독특한 상상력은 일반인의 머리를 훌쩍 뛰어넘어 우주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우주 미아가 된 우주 비행사는 우연히 또 다른 우주선에 갇혀 우주를 떠도는 한무리의 동물들과 만난다. 그는 개·돼지 등 갖가지 동물에게 발정제를 먹인 다음 급기야 그들과 성관계를 갖고 ‘돌연변이 외계인들’(Mutant Aliens)을 낳게 한다. 그는 이들을 ‘살인 병기’로훈련시킨 뒤 20여 년이 지나 지구로 데려가 자신의 복수에 이용한다. 상영 시간 80분 내내 관객들의 짐작과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간다.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이야기가 전개된다. 클로즈업된 부분이 신체의 ‘은밀한 부위’인가 싶더니 카메라를 뒤로 살짝 빼면 마치 ‘거긴 줄 알았지?’ 놀리듯 다른 부위가 나온다. 장난기어린 유머가 가득하다. 한 꼬마 여자애가 아저씨의 손가락을 물어뜯어 삼키는 엽기적 대목에서 경악할 겨를도 없이 잘린 손가락은 장운동에 맞춰 내장을 지나간다. 그 다음은 손가락을 배설하기 위해 변기 위에서 끙끙대는 꼬마의 모습이 등장하는 식이다. 애인과 섹스하려는 순간 여자의 양어깨 위에 갑자기 매춘부와 수녀가 나타나 ‘순결 논쟁’을 벌인다. 이 와중에 남자의 성기는 경적을 울리는 기차에서부터 전기톱, 달리는 코뿔소떼 등 다양한 이미지로 바뀐다. 그런가하면 손가락·발가락·입술·코처럼 사람의 신체 기관을 닮은 외계생명체가 떼거리로 등장해 혼을 빼놓기도 한다. 한마디로 ‘엽기’ 그 자체다. 세상에 대한 감독의 삐딱한 시선도 드러난다. 성조기가 펄럭이고 제법 비장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낭독되는 대국민 연설문은 우주 탐사가 실패했으니 기부금을 많이 내달라는 당부로 끝을 맺는다. 감독은 “탐욕·결탁·관료적인 것들로 대표되는 모든 권력의 남용을 희화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22일 개봉.

<새영화>'턴잇업'

미국에서 출발한 ‘힙합’ 문화는 이제 우리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주류 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은 듯 보인다. 헐렁한 바지와 울긋불긋 염색한 머리, 피어싱, 빠른 비트의 랩 그리고 곡예에 가까운 춤은 더 이상 낯선 문화가 아니다. 힙합을 소재로 한 댄스영화 ‘턴잇업’(감독 강용규)은 이런 우리 청소년들의 정서를 반영해 고교생들의 힙합에 대한 열정과 사랑, 도전 등을 다뤘다. ‘제대로 된’ 힙합 춤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공을 쏟았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대규모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주연 배우들의 춤솜씨가 기대 이상이다. 테크노음악에 맞춰 온 몸을 이용해 묘기를 부리듯 춤을 추는 젊은 ‘춤꾼’들의 현란한 몸짓과 다양한 카메라 기법을 이용한 몇몇 장면들은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춤을 감상하는 것으로만 위안을 삼을수는 없지 않은가. 영화적 완성도를 따지고 들어가면 감상은 좀 달라진다. 진부한 이야기의 틀거리부터가 ‘반항’과 ‘이탈’ 등 힙합 특유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어 괴리감이 느껴진다. 대통령의 딸과 가정 불화로 고민하는 학생, 무당집의 아들 등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비전문’ 배우들이 펼치는 어설픈 연기는 학예회 수준에 가깝다. 이들의 극중 대사 역시 2000년대 고교 교실에서 이뤄지는 대화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신파조다. 막판에 김대중 대통령(물론 대역이다)이 힙합 경연 대회에 나간 딸을 격려하기위해 행사장을 찾는다는 ‘깜짝 설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