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 작가의 길…노벨문학상 한강과 작품 세계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성취한 한국 작가 한강에게 수여한다. 작가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직면하면서, 각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작가 한강은 육체와 영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한국 작가 한강을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며 밝힌 핵심 사유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54)은 수상자 발표 후 노벨상 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 그저 감사하다”고 거듭 말했다. 인터뷰에서 한강은 한국인 최초로 문학상을 받게 된 데 대해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자랐고 한국 문학과 함께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며 "한국 문학 독자들과 동료 작가들에게 좋은 소식이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가장 큰 영감을 받은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내가 어릴 때 옛 작가들은 집단적인 존재였다"면서 "그들은 인생의 의미를 탐색하고, 때로는 길을 잃고, 때로는 단호하다. 그들의 모든 노력과 힘이 내 영감이 됐다"고 했다. ▮“저절로 주어진 게 아닌 삶…가구 대신 책으로 둘러싸인 집” 한국 최초, 아시아 첫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에게 문학의 길은 필연과 같았다. 소설가 한강은 1970년 11월 광주의 변두리, 기찻길 옆 셋집에서 태어났다. ‘몽고반점’으로 2005년 이상문학상을 받았을 때 쓴 ‘문학적 자서전’ 등을 보면 한강을 임신 중이던 어머니는 장티푸스에 걸려 끼니마다 약을 한 움큼씩 먹었고, 한강은 세상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한강은 이를 두고 “나에게 삶이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 세계는 아슬아슬한 신기루처럼, 혹은 얇은 막처럼, 캄캄한 어둠 속에서 떠오른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라고 밝혔다. 한강은 어릴 적부터 가구 대신 책으로 채워진 집에서 자랐다.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은 1939년 전남 장흥 태생으로 1968년 등단해 장편소설 ‘아제아제바라아제’ ‘초의’ ‘달개미꽃 엄마’ 시집 ‘열애일기’ 등을 펴냈다. 한강의 부친 한승원씨는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어두운 방에서 몽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영어를 잘해서 영문과에 가라고 했는데, 굳이 소설을 쓰겠다며 국문과를 선택하더니 연세대 국문과에 수석 합격했다”고 말했다. 한강은 2005년 이상문학상, 2010년 동리·목월문학상, 2015년 황순원문학상 등을 받았는데, 아버지도 1988년 ‘해변의 길손’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덕분에 ‘이상문학상 부녀(父女) 수상’ 기록도 갖고 있다. ▮보편적인 죽음과 폭력, 서정적 문체로… 한강의 작품세계는 죽음과 폭력 등 보편적인 인간 문제를 시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풀어내는 독창성으로 압축된다. 국제적으로 처음 큰 반향을 일으킨 소설 ‘채식주의자’는 주인공 영혜가 음식 섭취의 규범에 복종하기를 거부했을 때 벌어지는 폭력적인 결과를 그려냈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당시 “불안하고 난감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이라며 “현대 한국에 관한 소설이자 수치와 욕망,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갇힌 한 육체가 다른 갇힌 육체를 이해하려는 우리 모두의 불안정한 시도들에 관한 소설”이라고 수상 사유를 밝혔다. 1980년 광주 5·18을 다룬 장편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을 형상화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상흔이 개인에게 파고든 이야기로 그려냈다. 두 책은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소년이 온다 중)를 끝없이 물으며 “이 다음이 없을 수도 있다”(작별하지 않는다 중)란 절실함으로 작가가 펴낸 책이기도 하다. 특히 한강에게 광주는 특별하다. 생태적 고향인 동시에 정신적 고향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의 원류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강은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상처와 사랑, 삶의 비극에 천착해왔다. 이 같은 작품세계가 형성된 계기가 광주민주화운동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강은 서울로 이사한 뒤 부친으로부터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을 접하게 된다. 그는 “열세 살 때 본 그 사진첩은 내가 인간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때부터 간직해 온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세 번째 장편 ‘채식주의자’부터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직접적인 배경으로 등장한다. 15세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당시 광주에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지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어루만진다.  그의 수상 경력을 보면 천천히, 하지만 끝없이 치열하게 자신의 세계를 펼쳐내며 대중과 소통하는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소설문학상(1991)을 시작으로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0), 이상문학상 대상(2005), 황순원문학상(2005), 맨부커 국제상(2016), 말라파르테문학상(2017), 김유정문학상(2018), 산클레멘테문학상(2019), 대산문학상(2022), 메디치외국문학상(2023), 그리고 2024년 노벨문학상에 이른다. ▮문학 변방에서…“천천히, 계속 더 쓸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인 모두가 오래도록 염원한 일이기도 했다. 한국 작가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거론되고 수상자로 점쳐졌던 인물은 고은 시인이다. 도박사이트에서도 유력한 수상자로 점쳐졌던 고은 시인의 자택엔 노벨문학상 발표 날이면 기자들이 몰려가 있곤 했다. 언론의 관심만큼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컸다. 노벨문학상에 다른 작가가 호명되고 나서야 기자들은 자택 앞에서 물러났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위상을 떨침에도 왜 노벨문학상은 쓴잔을 들이키는지 등에 대한 아쉬운 여론이 뒤따르곤 했다. 황석영 작가 역시 ‘철도원 삼대’(2020)로 노벨문학상 수상의 기대감을 키웠다. 한반도 백 년의 역사를 관통하며 여러 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은 강력한 서사의 힘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의 가능성이 제기됐다. 한강의 수상은 선배 문학가들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수상한 들려온 낭보로 언어의 한계로 노벨상과 세계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문학이 세계문학 주류로 당당히 편입될 계기가 됐다는 평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도 그의 문학 세계를 천천히 함께 사유하고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한강의 공식 누리집에 적힌 작가의 한 마디다. “천천히, 계속 더 쓸 것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에 소설가 한강, 한국 최초 수상

한국 문학이 드디어 노벨문학상을 품게 됐다. 소설가 한강이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한국시간)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 작가 한강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 이유로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을 꼽았다.  한강은 한국문단의 거장, 한승원의 딸로 1970년 전남 광주시 중흥동에서 태어났다. 연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뒤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돼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펴냈고 단편소설은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등이 있다.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 가 국제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세계적인 문학가로 주목받았다. 소설 ‘채식주의자’는 해외 40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소년이 온다’, ‘흰’ 등 다양한 작품들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돼 판매됐다. 이후 2023년 ‘작별하지 않는다’ 로 프랑스 메디치상 등을 받았다. 올해 초에는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강은 특히 글을 통해 80년대 광주와 제주 4.3 항쟁 등 한국사의 굵직한 상흔 속에서 인간의 본질과 고통, 상실 속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본연적 질문 등을 끝없이 이어왔다. 한편 한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 2000년 평화상을 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1천100만 크로나(약 13억4천만원)와 메달, 증서가 수여된다. 이날 문학상에 이어 11일에는 평화상, 14일엔 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노벨상 시상식은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생리의학·물리·화학·문학·경제상)과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상)에서 열린다.

김문신 수원시티발레단장 “시민과 융화되는 발레문화 꿈 꿔요”

“여러분을 위한 발레 공연입니다. 마음껏 소리 지르고 온전히 즐기세요. 저희는 춤만 출게요.” 지난달 10일 오후 1시30분께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선 조금 낯선 발레 공연이 열렸다. 무대 위 열연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환호하기도, 암전에 놀라는 소리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공연을 보던 중 화장실을 가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출입문을 활짝 열어도 용인됐다. 장애와 환경에 관계없이 모두 즐기고 추억을 쌓는 특별한 공연. 이날 전문예술단체 수원시티발레단이 선보인 ‘현재를 즐겨라!’의 첫 번째 공연 관객은 모두 수원시내 장애인들이었다. 객석엔 발달장애인과 뇌병변장애 청소년 등 장애인 관람객 800여명과 부모들만이 자리한, 오롯이 ‘그들’만을 위한 공연이었다. 김문신 수원시티발레단장(50)은 “관람한 분들이 즐겁고 위안이 되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혀 오히려 감격했다”며 “이런 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지역의 다양한 예술문화가 형성되면 매우 의미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단장은 2005년 수원지역 최초 민간 발레단인 김문신발레단을 출범하고 2017년 수원시티발레단으로 명칭을 바꿔 본격적인 발레 공연예술 확산에 노력해 왔다. 지역에서 발레 공연이 열려도 공연을 보지 못했다는 시민들이 많았다. 이에 발레 애호가를 늘리고 예술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의미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자선공연이었다. 3년 전부터 공연의 첫 무대는 늘 장애인과 노인, 다문화가정 등을 초청해 발레 공연을 만끽하도록 했다. 시와 재단 등의 예산을 받아 작은 활동을 하는 데 대한 보답의 의미도 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애 아이가 막 내린 무대를 한참 바라보며 ‘너무 좋다’, ‘또 보고 싶다’를 연발했다. “장애인들은 공연 중 소리 반응 등으로 공연에 민폐가 될까 중간에 나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때 생각했죠. 초청 대상을 나눠 장애아동 등만 함께하는 공연을 마련해보자.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주자.” 김 단장은 발레를 통해 시민사회에 교육적인 내용을 알리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8월15일에는 수원중부경찰서와 협업해 뮤지컬 발레 ‘빨간모자’로 아동범죄예방 홍보에 공감하는 공연을 개최했고 지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수원시 캐릭터인 수원이를 무대에 종종 올리기도 했다. 앞으로도 김 단장은 발레와 지역이 융화되는 일에 많은 고민을 해나갈 예정이다. 오는 11월30일엔 제3회 대한민국 무용대제전 ‘문루, 깨어나다’, 12월28일 정조테마공연장 기획공연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앞두고 있다. 김 단장은 “앞으로도 발레 예술을 더 많은 분들이 즐길 수 있도록, 또 교육과 융합돼 다양한 분야에서 발레의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광명 시민사회단체 “과학고 유치 즉각 중단”…市 “시민 95% 찬성”

광명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시가 추진 중인 과학고 유치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가칭 ‘광명시 과학고 유치 반대 시민단체연대’는 8일 보도자료를 내고 “시의 과학고 설립 추진은 일반 학생들에 대한 역차별과 학교 서열화를 심화하고 학부모의 사교육비 증가와 공교육 부실을 불러일으키므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광명교육은 모든 학생이 주인이 될 수 있는 교육을 지향해왔는데 시의 과학고 유치는 이런 노력을 퇴행시킬 뿐 아니라 공교육을 말살하려는 우려와 탄식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연대는 "지역의 유치원, 초·중·고교 90곳이 노후화로 시설 개선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이런 실정을 외면한 채 최소 700억원으로 추산되는 예산을 과학고 유치에 쏟아붓는다면 공교육 부실만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연대에는 광명교육희망네트워크, 광명경실련, 광명교육연대 등 광명지역 16개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는 시민 95.69%가 과학고 유치에 찬성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고 “시민의 찬반 의견을 최대한 들어 대안을 찾고 유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시는 지난 7월 교육당국과 과학고 유치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지난달부터 과학고 설립을 위한 기초 연구용역을 추진 중이다. 경기도교육청이 올해 4월 과학고 추가 설립 계획을 발표한 뒤 도내 10여개 지자체가 과학고 유치에 나섰다.

“시니어 삶에 행복과 활력을” 심미경 경기수원시니어모델협회장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한 작은 건물엔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지금이 바로 청춘”이라고 말하며 당당한 걸음을 걷는 이들이 매일 모인다. ‘경기수원시니어모델협회’라고 적힌 이 곳엔 하얗게 센 머리와 얼굴에 굽이굽이 꽃 핀 세월의 이야기를 안고 당당하게 자신을 발산하는 ‘시니어 모델’들이 도전의 삶을 일궈나간다. 지난해 창단된 경기수원시니어모델협회에는 현재 250명의 회원이 활동하며 인생 2막을 열고 있다. 시니어들의 새로운 도전을 돕고 있는 심미경 경기수원시니어모델협회장(57)은 “시니어 모델은 패션, 광고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라며 “그들의 경험과 독특한 매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패션과 뷰티 산업에서 나이와 경험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아파트 형틀 목수팀장으로 건축 일을 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심 회장은 스스로가 “시니어 모델로 새로운 인생을 열게 된 주인공”이라 말한다. “흐른 세월만큼 나이가 제법 들었는데 이제 옆에서 편하게 일상과 삶의 즐거움을 나눌 벗이 없더라고요. 어떤 것을 즐기고 기뻐할지, 무엇을 하며 앞으로의 인생을 맞이할지 막막하더라고요. 오죽하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친구 사귀는 법’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동네 정보지에 친구 사귀는 광고를 내볼까 생각까지 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시니어 모델을 알게 돼 이 길로 들어서게 됐다. 열심히 하는 것은 뭐든 자신이 있었다. 베이직 워킹클래스 과정 수료에서 시작해 KW국가대표 모델선발대회, 클래식 모델대회 탤런트상, GMAEA 탑모델상 등 상을 수상하며 국제외교문화홍보대사, 각종 패션갈라쇼와 드레스패션소 등을 총괄하고 연출했다. 바른 자세와 바른 걸음을 하고, 마음에 새로운 꿈을 싹 틔우니 삶이 확 달라졌다. 무엇보다 살면서 조금씩 구겨졌던 몸과 마음이 펴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더 소중히 돌보게 됐고 자연스럽게 삶에 활기가 돌았다. “함께 하면 더 재밌고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겠다”라는 생각에 지난해엔 시니어 모델 양성 전문 교육장인 행복채움을 설립하고 경기수원시니어모델협회를 창단해 협회장에 취임했다. 올해엔 수원전통문화관에서 수원화성행궁알리기 한복패션쇼 개최, 수원문화원 빛누리아트홀 개관식 오프닝 패션쇼를 총괄하고 팔달노인복지관 ESG 시니어모델공개 오디션 심사위원, 2024 혜경궁홍씨선발대회 심사위원, 지역 복지관 등에서 강좌를 여는 등 바쁘게 활동 중이다. 협회엔 40대 중반부터 80대 어르신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이들이 활동 하고 있다. 평생 주부였던 이들, 삶이 무료해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던 이들, 인생 후반전을 새롭게 쌓고 싶어 배우고자 도전한 40대, 더 자신있고 멋지게 나이들고 싶어 얼떨결에 발을 들였다가 동네 친구 10명을 더 데리고 온 어르신까지. 특히 30여명의 실버세대가 활동 중인 ‘70 플러스 다시 봄’은 협회의 핵심이다. 평생 주부로 가족과 시어머니를 돌보고 살던 안혜숙 실버회장이 우연히 참여했다가 “내가 해보니 재밌고 행복해서” 지인 10명을 데리고 왔다. 이후 실버군단에 자연스럽게 활기가 돌고 힘이 생겼다. 경기수원시니어모델협회는 지난 8월23일 1주년 발대식을 개최하며 1기 졸업생 배출과 지역사회에 펼친 활동 등 그동안 바쁘게 걸어온 첫 해를 함께 돌아봤다. 회원들은 워킹 연습 등을 제외하고도 지역의 의미있는 일에도 함께 나선다. 최근엔 수원전통문화회관에서 한복을 입고 수원화성을 알리기 위한 행사 등에 참여했다. 심 회장은 “해가 뜰 때 태양이 더 이글거리며 붉게 타오르는 것처럼,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시니어 회원들이 다시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 가족을 위해서 또는 삶의 어떤 목표를 위해서 자신을 누르고 표현을 잘 하지 못했던 시니어 분들이 어찌 보면, 이제라도 자기 표현과 자아 현을 가장 하고 싶은 분들인 것 같아요. 시니어들이 시대에 맞게 문화생활을 즐기도록 도와드리는 게 무엇보다 가장 보람있습니다. 시니어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경기수원시니어모델협회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는 10일 경기교총 웨딩하우스에선 경기수원시니어모델협회가 주최하는 1주년 기념축제 ‘행복채움 패션 쇼’가 열린다. 시니어 모델 90여명이 참여해 화려한 런웨이와 새로운 에너지를 뿜어내는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공무원과 방송작가의 매혹 앙상블 ‘차미정·오세진 듀오 리사이틀’

노래와 춤, 글 등을 통해 예술의 세계를 다져온 두 성악가가 의기투합해 이들의 스토리를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인다. 성악연구소 라루체(대표 오세진)에서 함께 활동하는 소프라노 차미정과 메조 소프라노 오세진은 오는 19일 저녁 7시 서울 국제아트홀에서 첫 듀오콘서트를 개최한다. 소프라노 차미정은 세종시 공무원, 소프라노 오세진은 수원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방송작가다. 이들은 각자 다른 일을 하던 중 성악의 매력에 빠져 40대에 성악과에 입학한 늦깎이 성악도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희곡과 시나리오 등을 쓰며 무대 위에서 끼를 펼치는 살사 댄서이기도 하다. 뮤지컬 배우와 오페라 배우라는 교집합도 있다. 흔치 않은 꽤 많은 공통점은 이들을 무대로 이끌었다. 이들은 콘서트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인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 증오, 욕망(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을 각각의 개성 있는 음색에 담아 표현한다. 노래 뿐 아니라, 춤과 드라마적인 요소를 가미해 다채로운 무대를 펼칠 예정이다. 특히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한국 가곡 아리아 솔로, 듀엣 등 노래에 흐르는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원초적이고 강렬하면서도 때론 절절한 마음에 공감하며 무대와 객석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시간을 만날 수 있다. 반주는 계원예고를 수석입학, 수석졸업한 뒤 대학교 출강 등 성악 전문 반주자로 잔뼈가 굵은 이주란씨가 맡는다. 콩쿠르 다수 입상에 빛나는 테너 김명제, 팬텀싱어4 본선 진출자인 바리톤 이용제의 협연으로 더욱 풍성한 무대가 예고됐다. 소프라노 차미정은 “노래로 전달하는 우리 삶의 드라마를 통해 많은 분들이 교감하고 힐링하는 시간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메조 소프라노 오세진은 “비교적 늦게 노래를 시작한 만큼 더 뜨거운 열정과 부단한 연습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노래로 여는 인생 2막에 감사하며, 많은 분들과 즐겁게 교감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경기도·경기역사문화유산원, 경북·충남·충북과 ‘가봉태실’ 학술대회 개최

경기도와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이 오는 17일 경북 영천시 평생학습관에서 경북·충남·충북과 ‘조선왕실 가봉태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조선왕실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기운이 좋은 땅을 골라 아기태실을 만들었고, 아기태실의 주인공이 왕이 되면 석물로 새롭게 단장해 가봉태실을 조성했다. 이러한 조선의 장태문화는 생명을 신성하게 여기는 생명존중 사상과 땅의 기운을 중시했던 풍수지리 사상이 결합된 우리 고유의 소중한 유산이다. 가봉태실은 경기도 3곳을 비롯해 전국에 28곳이 분포하고 있다. 이에 경기도는 지난 2022년부터 경상북도·충청남도 등 3개 광역 지자체와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을 비롯한 3개 출연 연구기관이 함께 ‘태실 세계유산화 실무회’를 구성했다. 지난해엔 충청북도가 합류해 학술대회를 추진하는 등 가봉태실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2회 학술대회는 이혜은 이코모스(ICOMOS) 종교제의유산위원회 위원장의 ‘세계유산 등재 시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의 중요성’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몽골의 태반 탯줄 안치 의식 ▲일본의 포의매납 습속 연구를 주제로 국외연구를 발표한다. 또 ▲조선왕실 태실 석물의 형성과 전개 ▲조선후기 태실과 산릉 조성 비교연구 ▲‘대구-경북지역 태실 현황과 보존관리’를 주제로 국내연구를 발표한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 관계자는 “이번 국제 학술대회가 가봉태실을 세계유산화 하기 위한 각 지자체 간의 협력체계를 공고히 하고, 조선왕실의 탄생문화의 유∙무형적 가치를 확산시키며 관심을 높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리말글과 사랑에 빠진 개그맨 정재환 [인터뷰]

개그맨으로 방송에 입문한 정재환씨는 한글운동을 시작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어머니와 같은 우리말글의 소중함을 더 많은 사람이 느끼고 깨닫길 바란다는 그는 우리말 중 ‘한글’, ‘행복’, ‘훈민정음’, ‘하하, 호호, 히히’ 등 주요 단어와 웃음소리에 들어있는 닿소리(자음) ‘ㅎ’을 가장 좋아한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한국인답게’ 제대로, 잘 말할 수 있길 희망한다는 정씨의 우리말글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글을 쫓는 삶 정재환씨는 1983년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TV예능 MC, 라디오 DJ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했다. MC 역할을 하다 보니 말 한마디의 파급력을 절실히 느꼈고 방송인으로서 올바르고 정확한 표현을 써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개그맨으로 데뷔해 15년 정도 개그맨으로 활동했고 5년 정도는 방송 진행을 했습니다. 개그맨으로 활동할 땐 주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웃기고 재미있게 할까, 어떻게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웃을까’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을 웃기는게 제 일이고 웃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죠. 그런데 진행자로서 역할이 바뀌면서 우리말 사용에 대한 방법을 저 나름대로 찾았고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한글과 사랑에 빠진 것이죠.” 정확한 언어를 사용할수록 의사소통도 자유롭다. 그러나 때때로 부정확한 언어로 얼버무려 말해도 대화 상대와의 친밀한 정도나 이야기하던 상황과 맞물려 알아듣고 이해하는 게 가능하다. 정씨는 “방송 언어는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사석에서 친구가 다소 횡설수설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을 갖고 있죠. 하지만 방송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청자들이 너그럽게 이해해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확한 언어를 사용해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말해야 합니다.” 20대 초반 방송과 인연을 맺은 정씨는 30대 후반 한글과 인연을 맺었다. 이전부터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깨달음으로 알음알음 해오던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대학에서 우리말글 역사를 공부하면서부터다. 그는 이 시점을 두고 “삶의 방향성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표현했다. “한글이 어머니 같은 정말 좋은 글자라는 걸 느꼈습니다. 최현배 선생, 이오덕 선생 등이 쓰신 한글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을수록 ‘우리말’의 소중함이 커지더군요.” 정씨는 마흔 살이 되던 2000년 성균관대 사학과에 입학해 방학 없이 계절학기를 들으면서 학사를 3년 만에 끝냈고 동대학원에서 10년에 걸쳐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석사 논문 주제는 ‘한글 맞춤법 간소화 파동’, 박사 논문 제목은 ‘해방 후 조선어학회 활동’이었다. “학교 입학에 즈음해 한글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글의 역사, 우리말과 글의 역사가 궁금해 국문과가 아닌 사학과를 선택했고요.” 보통 사람을 위해 만든 글자를 지키는 보통 사람들 2000년은 만학도로서 학업을 시작하기도 했지만 한글운동을 본격화한 해기도 하다. 1997~1998년부터 수면 위로 떠오른 영어공용화론에 대항하던 한글운동가들이 모여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키우고 가꾸자는 취지로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를 창립했다. “처음 영어공용화론이 나왔을 때 일제 식민지를 버틴 한글이 영어와의 싸움이 시작되는 건가 싶었습니다. 강과 바다를 지키기 위해 환경운동을 벌이는 것처럼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움직이었던 것이죠.” 정씨는 한글문화연대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2007년 ‘동사무소 명칭 변경’을 꼽았다. “2007년 동사무소가 동주민센터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당시 정부의 입장은 서류 위주의 행정업무 기구에서 폭넓게 시민들의 복지를 지원하고 문화활동 등을 포함하는 기관으로 확대하기 위해 센터(Center)로 바꾸겠다는 거였죠. 그런데 한글운동가들은 활동의 영역만 넓히고 이름은 그대로 유지하자는 입장이었고 길거리 서명, 기자회견, 1인 시위 등으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결국 동사무소라는 이름이 사라졌는데 좌절의 아픔이 무척 컸습니다.” 한편 정씨는 최근 우연히 만난 외국인 관광객이 쓰고 있던 모자에 적혀 있던 ‘한국’을 얘기하며 한글의 활용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는 한글이 적힌 옷이나 신발, 모자를 착용하는 일이 참 드문데 ‘한국’이라는 글씨가 적힌 모자를 쓴 그 부부는 참 행복해하더군요. 서툰 영어로 말을 걸어 보니 스페인에서 온 관광객이었는데 우리나라 고유의 것에 매력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수원의 상점 간판을 볼 때면 여기가 과연 ‘정조대왕의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외래어가 남용되고 있어 참 안타깝습니다.” 정씨는 영어는 물론이고 일본어, 태국어, 베트남어 등 간판마다 적힌 외래어들을 한글로 표기하고 그런 노력이 수원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취지로 작년에 한글문화수도를 선언한 세종시에 대해서도 차곡차곡 한글을 도시의 상징으로 만들어 가길 바람을 드러냈다. “세종시가 행정도시라는 것 외에 문화적인 요소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세종’이라는 이름 자체가 큰 콘텐츠거든요. 세종시 출범 당시부터 최근까지 한글 간판 우선 표기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점의 간판도 한글로 표기할 것을 조례 제정부터 차근차근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지역별로 한글마을, 한글거리는 조성돼 있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지키는 곳은 없거든요. 세종시가 한글문화수도로서 한글 관련 특화 도시가 되길 바라 봅니다.” 정씨는 2022년 8년간 강의하던 교수직을 내려놓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에 책임연구원으로 속해 있다. 더불어 한글문화연대 한국어학교 교장으로 한국으로 시집 온 결혼이주자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친다. 주로 읽고 쓰고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한글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태생적으로 보통 사람을 위해 만든 글자라는 것입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텨온 것도 우리들의 삶과 함께 살아온 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앞으로 큰 목표보다는 그저 계속 공부하고 싶습니다. 동네 할아버지가 됐을 때쯤엔 한국사, 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 제가 공부한 것들을 배우고자 하는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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