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미국 뉴저지주 리틀페리에 있는 20세기 폭스사의 영화 보관소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의 원인은 나이트로셀룰로스의 자연 발화 현상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영화 필름은 나이트로셀룰로스를 기반으로 한 셀룰로이드로 만들어졌다. 이 화재로 유실된 영화 필름의 규모는 4만점이 넘을 정도로 막대했고 이는 1930년 이전에 제작된 영화의 75%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이트로셀룰로스는 1845년 독일 화학자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쇤바인이 바닥에 엎지른 질산과 황산을 면으로 훔친 후 말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물질이다. 언뜻 보면 솜처럼 생겨 안전해 보이지만 건코튼(gun cotton)이나 면화약이라고도 불릴 만큼 위험한 화약 물질이기도 하다. 나이트로셀룰로스는 특정 용매에 녹이면 젤 상태가 되거나 단단한 고체 상태로 변하는 특성도 있다. 1846년 프랑스 출신의 루이 니콜라스 메나르는 나이트로셀룰로스를 에탄올로 녹여 ‘콜로디온’이라는 젤 상태의 물질을 만들어 냈다. 1847년 미국 출신의 의사 존 파커 메이너드는 이를 피부 상처 보호제로 처음 사용했다. 특히 1851년 프레드릭 스콧 아처는 콜로디온을 사진 감광제를 유리판에 고정하는 도포용 접착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콜로디온이라는 명칭은 접착제라는 뜻의 그리스어 ‘콜로디스’에서 온 말이다. 1869년 존 웨슬리 하이엇은 나이트로셀룰로스를 콜로디온보다 더 단단하고 투명한 물질로 만들어 이를 ‘셀룰로이드’라 명명하고 1870년 미국에 특허를 출원한다. 1888년 존 커버트는 당시 사진 필름의 유리판 베이스를 하이엇의 셀룰로이드로 대체했다. 이듬해인 1889년 조지 이스트먼은 커버트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진 촬영 방식을 더 쉽게 롤 형태의 필름으로 감아 쓰도록 만들었다. 초기 롤 필름의 폭은 기술상의 이유로 70㎜였다. ‘이스트먼 코닥 필름’은 그렇게 시작됐다. 1893년 윌리엄 케네디 로리 딕슨은 이스트먼의 70㎜ 사진 촬영용 롤 필름을 35㎜ 폭으로 잘라 만든 영화용 롤 필름으로 최초 영화를 촬영했다. 이 기록은 상영 방식의 차이 때문에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발명에 가려졌다. 하지만 필름의 표준 규격인 35㎜는 딕슨의 필름에서 유래한다. 이런 필름의 운명은 제1, 2차 세계대전을 마주하면서 급변했다. 이를테면 2차대전에서는 막판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이 백린탄 등의 생산을 위해 수많은 나이트로셀룰로스 필름을 수거해 갔다는 정황이 기록돼 있기도 하다. 1930년대와 그 이전의 한국 영화 필름이 유독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어쩌면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을 아직도 못 찾고 있는 이유 역시 불행히도 이런 사정이 있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1930년대 이전 영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엄청난 수난을 겪은 것이다. 다시 1937년 미국 뉴저지주 리틀페리. 20세기 폭스사는 재앙에 가까운 그 화재를 처음에는 가벼이 여겼다. 영화들의 사본이 다른 곳에 있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50년대에 들어 초기 무성영화의 대량 유실이 확인되면서 영화 보존의 중요성이 학계와 영화계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결국 테라 바라(40편 중 34편 소실), 톰 믹스(85편 중 73편 소실), 셸리 메이슨(16편 모두 소실) 등 무성영화 시대의 최고 스타들은 그 화재의 가장 큰 피해자임이 밝혀졌다. 존 포드 감독의 무성영화 역시 60편 중에서 10편만 남아 있을 정도다. 1928, 1929년에 제작된 유성영화는 최소 50편 이상이 사라졌다. 당시 유실된 영화들이 지금까지 잘 보존돼 있었다면 그들과 그들 작품은 물론이고 영화 자체의 문화적, 역사적 평가는 많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탄생에 일조한 나이트로셀룰로스는 영화의 수난을 안겨준 원흉이면서 영화가 가진 기록문화 유산의 가치를 일깨워준 빛과 그림자라 할 수 있다.
올해 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마이너스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가 원래 어두웠는데 여기에 정치적 불안정이라는 요인이 가미돼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정치적 불안정은 그 진폭이 크든 작든 어떤 형태로든 조만간 해소될 것이다. 그런데 경제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특히 단기간에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에 우리를 몹시 불안하게 만든다. 경제 문제 중 대표적으로 저성장이 요즘 화두다. 한국은행 등 여러 기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지난해 말 2.1%이던 것이 이제는 1.5%까지 조정됐다. 대외 여건 악화로 수출이 위축되고 제조업 부진은 설비투자를 감소시켜 고용에도 영향을 끼치는 실정이다. 내수 둔화와 경기 부진의 지속성을 벗어나기 위해 금리를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하는데 이는 환율 변동과 연동되기에 이마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러다 일본의 장기 정체가 우리의 현실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저성장을 극복하는 주요 방안으로 기술혁신이 자주 거론된다. 기술혁신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은 경제성장만 아니라 개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한다. 예를 들어 최근 부각되고 있는 인공지능이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하는 일반형 인공지능이 되면 엄청난 생산성 증가를 보일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미국과 중국은 인공지능을 놓고 사활을 건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과학기술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 흐름은 거역하기 어려운 법인 만큼 이 흐름을 타야 하고 한국도 여기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한국 경제를 저성장에서 성장으로 전환시키는 주요 동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다만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이러한 기술혁신 또한 숱한 사회적 문제 발생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술혁신이 생산성 향상을 추동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여기에는 일자리 문제, 먹고사는 생계 문제가 수반돼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버 택시 도입이 우리나라에서 기존 택시업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좌절한 적이 있었다. 이는 기술혁신이나 경제적 효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 해결과 사회적 이해를 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일자리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새로 생긴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기술혁신이 이루는 높은 기술 수준을 감안할 때 새롭게 생긴 일자리가 아무에게나 쉽게 허용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기에 중단기적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더 크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더군다나 일반형 인공지능이 보편화되는 시기도 머지않다고 한다. 이 경우 특히 중산층 일자리나 전문직 일자리까지도 조만간 대대적인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제조업 및 남성 중심 고용의 산업화에 오랜 기간 고착돼 왔다는 것이다. 이는 중산층과 전문직을 포함해 대부분의 일자리가 고용을 통한 소득 확보 장치이고 이로써 자신의 생계 위협에 대비했다는 것을 말한다. 사회보험이나 공공부조 등이 있다고 하나 아직은 미미한 보완 장치에 불과하다. 그런 만큼 일자리의 위협은 목숨을 건 싸움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기술혁신에 의한 경제성장은 소수의 특수한 계급이나 계층을 제외한 대다수가 불안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위험 사회에 대한 합당한 대비책이 마련돼야 가능해 보인다. 실직자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든지 사회보장성 소득을 충분히 보장하라는 주장이 비록 급진적이긴 하나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이 된 적도 있었다. 최근에 대안으로 대규모의 세계적인 기술혁신 기업을 만들어 그 지분의 일부를 국민들에게 나눠 주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열려 있는 자세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여주는 오랜 세월 중첩된 규제 속에서 희생을 강요받아 왔다. 특히 수도권 상수원 보호를 명분으로 한강 상류 지역에 적용된 각종 규제는 지역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중에서도 ‘한강수계 상수원 수질개선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 즉 한강법은 시대착오적인 규제로 작용하며 주민들의 재산권과 생존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여주를 옥죄는 불합리한 규제 한강 팔당댐은 원래 전력 생산을 목적으로 건설됐으나 이후 수도권 상수원 역할을 맡으면서 여주를 비롯한 팔당 상류 7개 시·군이 강력한 규제에 묶이게 됐다. 1972년 개발제한구역 지정, 1975년 상수원보호구역 지정, 1994년 특별대책지역 및 자연보전권역 지정, 1999년 수변구역 지정 등 각종 규제가 연이어 도입되면서 지역주민들은 점점 더 큰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상수원 보호라는 명분 아래 주택 신축 제한, 공장·연구시설 입지 제한, 관광지·택지 개발 금지 등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들이 유지되고 있다. 팔당 상류지역의 주민들은 수도권 시민들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한강법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1999년, 주민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 정부는 한강법을 제정하며 일정 부분 지원책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팔당 상류지역 주민들에게 피해 보상의 의미로 ‘주민지원사업비’를 지급하고 물이용부담금제도를 도입해 하류지역 시민들이 상류지역의 희생에 일정 부분 기여하도록 했다. 하지만 2025년부터 주민지원사업비를 9%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여주시는 연간 8억6천만원의 예산이 감소된다. 주민들의 피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다. 더욱이 한강수계기금은 예산이 남더라도 타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목적세다. 주민들의 희생을 당연시하면서 보상만 삭감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환경은 개선됐는데, 규제는 그대로 팔당호와 남한강의 수질은 1급수를 유지하고 있으며 하수처리 기술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주민들도 상수원 보호를 위해 적극 협조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한강법은 제정 당시의 틀을 유지한 채 변함없이 지역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정부는 2013년 ‘수질오염 총량관리제’를 도입하며 특별대책지역 지정 고시 폐지, 대규모 개발 허용, 주민지원사업 확대 등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주민지원사업비 삭감이라는 조치를 통해 상류지역 주민들의 희생을 더욱 강요하고 있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무조건적인 규제가 아닌, 현실적인 수질관리 정책이 필요하다. 하수처리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고 오염방지시설을 확충하며 친환경 농자재 보급과 축산분뇨 공공자원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상류 주민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불합리한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정의롭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이에 한강법 폐지를 강력히 촉구한다. 이제 여주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한강법 폐지 여주시 범시민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폐지 운동에 돌입할 것이다. 한강법을 폐지하고 그 이후의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특히 △주민지원사업비 삭감 철회 및 증액 △주민지원사업비 용처 확대 △주민 소득사업 허용 △중첩 규제 완화 등을 강력히 요구한다. 여주 시민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희생만을 강요당할 수 없다. 수도권 시민의 맑은 물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오랜 세월 희생해 왔지만 이제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아야 할 때다. 한강법 폐지를 위해 여주시민의 적극적인 지지와 동참을 부탁드린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석방됐다. 52일만에 관저로 복귀했다. 탄핵 찬성·반대 세력이 또 충돌한다. 대립의 출발점은 재판부의 결정문이다. 같은 문장인데 해석이 서로 다르다. 탄핵 찬성 측에서는 ‘구속 기간 만료 문제’를 주로 말한다. ‘기일 오류’의 문제였다며 검찰총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탄핵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공수처 수사’를 짚는다. 수사권 자체가 지적받았다며 공수처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구속 기간’은 탄핵 찬성 쪽이 주로 지목하는 사유다. 최대 관심은 구속 취소가 헌재에 미칠 영향이다. 헌재 선고도 이번 주 11일 또는 14일로 소문나 있다. 이런 때 법원이 윤 대통령을 전격 석방했다. 헌재 결정과의 연계를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재명 대표가 ‘검찰이 간단한 산수(算數)를 잘못 했다’고 말했다. 법과 정치 상황을 버무린 절묘한 표현이다. 당(黨)이 검찰총장 사퇴 요구로 이어갔다. 이 부분에 대한 재판부 결정문을 보자. 윤 대통령 측이 ‘구속 기간을 도과했다’고 주장해 왔다. 재판부는 “구속 기간이 만료된 상태에서 기소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구속 기간 만료 시기는 지난 1월26일 오전 9시7분쯤인데, 기소 시기는 구속 기간 만료 시기를 넘긴 1월26일 오후 6시52분쯤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을 기소한 것은 검찰이다. 검찰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다. 또 다른 구속 취소 사유는 ‘공수처’다. 탄핵 반대 쪽은 이걸 부각시키고 싶어 한다. 내란 사건 전체를 위법으로 몰아가는 논리다. 실제로 수사권 유무가 갖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 ‘구속 기간’이 신병의 불구속·구속을 좌우한다면 ‘수사권’은 사건 전체의 유·무죄를 좌우한다. 구속 취소가 나오자마자 권성동 원내대표가 ‘공수처 수사가 문제 있음을 지적한 결정’이라고 했다. 당도 공수처 때리기에 총력전이다. 이 부분에 대한 재판부 결정문과 해설 자료를 보자.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 수사 범위에 내란죄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절차의 명확성을 기하고 수사 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의 여지를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급하게 나섰다. 이 부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어서다. “법원이 윤 대통령 위법 수사를 확인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공수처 시각의 해석이다. 법원 결정문은 활자로 작성돼 있다. 해설 자료까지 붙였다. 국민 모두가 능히 해석할 수 있다. 공수처의 해설이 필요하지 않다. 눈에 띈 몇몇 표현이 있다. “구속 기간이 만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소가 됐더라도 구속 취소 사유가 인정된다”, “상급심에서의 파기 사유는 물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심 사유가 될 수 있다”. 파기 사유, 재심 사유.... 시작도 안 한 재판에선 웬만하면 안 쓰는 표현이다. 결정문은 아주 간단한 국어(國語)다. 구속 취소의 책임이 딱 적혀 있다. 심우정 검찰의 책임, 오동운 공수처의 책임. 빼 줄 것도 없고, 덮어 줄 것도 없다.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추진되던 의료개혁이 사실상 실패하게 됐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 인원을 3천58명으로 돌려놓고, 2027년 이후 정원은 앞으로 구성될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에서 의료계 등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정부의 계획은 의대생들이 3월 말까지 전원 복귀하지 않으면 이를 백지화하겠다는 조건부 수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와 병원을 떠난 의대생과 전공의가 1년 넘게 돌아오지 않자 사실상 정부가 의사들에게 항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복귀 약속도 없이 정부가 먼저 의대 증원을 원점으로 되돌림으로써 스스로 정책의 실패를 인정한 것이다. 이번 정부의 결정은 의대 총장·학장단의 건의안을 정부가 받아들이는 형식을 띤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의대생과 전공의 복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데 있다. 의료계는 의대 증원뿐만 아니라 지역의료 강화,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이 담긴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 철회를 요구하며 복귀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6일 정부의 갑작스러운 의과대학 증원 2천명 발표 이후 1년여간 의정갈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큰 희생을 치렀다. 특히 중증 환자를 보는 대형 병원이 전공의들의 이탈로 인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상당수 환자가 목숨을 잃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또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으로 인해 1년 이상 허송세월 했으며, 지금도 대학은 개학했으나 의과대학은 정상적으로 수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역대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를 포함한 의료개혁을 추진했지만, 의료계의 집단반발로 실패했다. 즉, 김대중·박근혜·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의료 개혁이 추진됐지만, 그때마다 의료계의 의료파업을 포함한 강력한 집단행동에 밀려 물거품이 됐는데, 이번에 그런 나쁜 선례를 다시 밟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의정갈등이 지속돼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가. 정부가 ‘의대 증원 반대’라는 의료계 핵심 요구를 수용한 만큼 의대생들도 강의실로 복귀, 수업에 임해야 된다. 정부와 의료계는 조속히 대화를 통해 의정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의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의료계는 의료개혁 필요성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많다는 사실을 직시해 집단행동으로 기득권 수호에만 집착해서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복장을 타박하는 발언이 나왔다. 국가 정상들의 만남에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무릎을 맞댄 자리였다. 뜬금없이 나온 돌발 발언인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 외신에 따르면 정상회담이 열린 건 지난 2월28일 미국 백악관에서였다. 우크라전 종전이 취지였다. 한 기자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정장을 입지 않았습니까”. 뉘앙스는 조롱조였다. 트럼프 대통령도 거들었다. “오늘 완전하게 차려 입었습니다”. 누가 듣더라도 비꼬는 듯한 말투였다. 회담은 고성 끝에 소득 없이 끝났다. 후폭풍이 이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장병들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입는 군복을 의전이나 격식의 문제로 타박한 것을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감정이 깔려 있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나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 12장을 올렸다. ‘우리만의 정장이 있다’는 문구와 함께 군장을 착용한 군인들과 피 묻은 수술복을 입은 의사, 폭격 현장에서 시민을 꺼내는 구조대와 소방관 등이 담겼다. 군복을 입고 여군과 악수하는 젤렌스키 대통령, 다리를 절단해 의족을 착용한 채 우크라이나 전통복장을 하고 패션쇼 무대를 걷는 우크라이나인의 모습도 있다. 성명도 나왔다. “우크라이나인 수십만명이 집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근무복을 군복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1994년 안전보장을 대가로 핵무기를 포기했다는 점도 제기됐다. “우리의 정장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핵무기와 함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쟁이 4년째 접어들었는데 여전히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우리가 지옥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나. 얼마나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영영 정장을 입지 못하게 됐는지 아느냐”는 반문도 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후 줄곧 군복 스타일의 복장을 고수해 왔다. 중요한 건 이 사태의 여진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간단치 않은 에피소드다.
서울시가 쏘아 올린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로 강남 집값이 고장 난 폭주 기관차를 보는 듯 치솟고 있다. 전형적인 상승장에서나 볼 수 있는 매물 회수나 호가 올리기가 강남 현장에서 목격되고 있다. 토지거래허가 족쇄가 풀린 서울의 잠실, 삼성, 대치, 청담 집값이 오르자 압구정 반포 등 상급지는 물론이고 서울 내 다른 지역들도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으며 과천, 판교, 분당 등 수도권도 덩달아 매수 문의가 늘고 있다. 서울 강남을 비롯해 수도권 일부 지역만 바라보면 한여름이지만 나머지 지역들은 여전히 찬 바람이 부는 겨울이다. 지방은 미분양도 문제지만 수도권으로 빼앗기고 있는 인구와 자금 유출이 더 심각하다. 서울 상위 20% 고가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27억3천666만원으로 전국 하위 20% 아파트 평균인 1억1천620만원과 23.6배나 격차가 벌어졌다. 당연히 서울 상위 20% 아파트는 12개월 상승이고 전국 하위 20% 아파트는 28개월 연속 하락 행진 중이다. 늘어나는 미분양과 준공 후 미분양을 보면 서울을 제외하고는 모두 위기다. 1월 전국 미분양 7만2천624가구 중 73%, 준공 후 미분양 2만2천872가구의 80%가 지방이다. 수도권인 경기도도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경기도의 미분양은 1만5천135가구로 수도권 미분양의 77%나 되고 준공 후 미분양은 2천88가구로 수도권 준공 후 미분양의 47%를 차지하고 있다. 평택시는 넘치는 미분양을 못 이겨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됐다. 1월 평택시 미분양은 6천438가구로 4천526가구의 부산보다 많고 8천742가구의 대구보다는 적다. 평택시 인구 60만명과 부산 327만명, 대구 236만명 인구 대비 미분양으로 비교하면 평택시가 압도적으로 심각하다. 경기 침체와 반도체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지 않았다면,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았다면 강남 집값이 오르지 않았을까. 강남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지방과의 양극화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와 기준금리 인하로 투자심리가 자극을 받은 것은 맞지만 이렇게까지 강남 집값이 난리가 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출산율 감소 및 대학과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지방 젊은이들의 인구 유출이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닌데 갑자기 서울 강남 올인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불꽃이 튀었다고 바로 불이 붙지는 않는다. 바닥에 기름이 깔려 있었다는 말이다. 집값 상승의 원인인 기름의 실체는 ‘똘똘한 한 채’의 양극화 현상이다. 2017년 서울 강남 집값이 오르자 여러 채 집을 가진 사람들이 주택시장을 교란하는 투기꾼으로 지목되면서 취득세, 보유세, 양도세에 대해 중과세를 적용했다. 세제나 대출에서 불이익을 당하는데 어느 바보가 여러 채를 보유하겠는가. 이론적으로는 내가 거주하는 1주택만 가지는 것이 이상적이고 아름다우나 현실은 내가 보유하고 있는 지방의 아파트를 정리하고 투자가치가 높은 서울 수도권 똘똘한 한 채를 샀다. 최근 저성장과 경기 침체, 미분양 증가 등 여러 불확실성이 커지자 더 확실한 똘똘한 한 채를 찾기 시작했으니 바로 강남이다. 생활 인프라는 최고 수준이며 우수한 교육환경과 양질의 일자리까지 다 갖춘 서울 강남으로 들어가기 위해 서울 사람들도, 수도권 사람들도, 지방 사람들도 발버둥 치고 있다. 이러다 차이가 더 벌어져 나만 뒤처질 것 같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의 집값 포비아(Phobia)가 확산되고 있다. 똘똘한 한 채 현상을 부추기는 다주택자 규제를 없애고 주택 수가 아닌 보유 자산의 금액으로 규제 강도를 정해야 한다. 서울로 향하는 돈을 지방으로 돌리고 미분양도 소진하기 위해 1년 한시적으로 지방 미분양 주택을 사면 주택 수 제외, 5년간 양도세 면제, 취득세 면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면제, 저리 대출, 분양가 할인 정도의 파격적인 특단의 대책도 나와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인재를 배출할 지방 국립대를 포항공대 수준으로 육성해 지방 경쟁력을 키워야 지방도 살고 서울도 산다. 지금 상태를 방치하면 양극화 문제는 더욱 심해져 지방은 굶어 죽고 서울은 배 터져 죽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혁명과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학교 교육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해야 하며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 교육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에 최근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과 역량 강화 지원 방안 등 다양한 디지털, 인공지능과 관련된 정책 자료들이 나오고 있어 학습의 기초로 언어·수리와 디지털 소양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디지털, 인공지능 기술은 학교 현장에서 온라인 학습 플랫폼, 스마트 기기, 그리고 다양한 에듀테크 도구들은 학생들에게 학습의 기회를 넓히고 있다. 학생들은 이제 물리적 교실을 넘어 온라인 공간에서도 학습할 수 있으며 이는 교육의 접근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또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지만 AI디지털교과서의 도입을 통해 AI를 활용한 개별화된 학습이 가능하게 되며 그동안 교사들이 한 교실 안에서 수준이 다른 학생들을 모두 고려한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없었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디지털 및 인공지능 기술이 학교 교육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도 분명 존재한다. 첫째, 디지털 격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모든 학생이 동등하게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둘째, 기술 의존성이 지나치게 강화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디지털 도구는 학습을 보조하는 수단일 뿐 그 자체가 학습의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또 디지털, 인공지능 기술이 가져올 사회적 변화와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AI 기술이 인간의 일자리에 미칠 영향, 개인정보 보호 문제, 그리고 AI의 책임 소재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은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를 위해 디지털 리터러시와 AI 윤리 교육을 강화하고 모든 학생에게 동등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미래를 대비하는 학교 교육은 학생들이 창의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기술을 책임감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삼월 아지랑이”(이영도·‘내 사랑은’)가 절로 붙는 삼월. 사랑을 왜 아지랑이로 선언했는지 모호하지만 그냥 끌리는 정감이 있다. 새 풀이 막 돋아나는 들길 너머로 아른아른 오르던 아지랑이에 취해본 기억 때문일까. 봄을 부르는 들판의 손짓처럼 아지랑이는 묘한 설렘을 풀어 놓는 봄의 열감이었다. 조금씩 달뜨는 봄바람을 살랑살랑 들여놓는 속삭임이 아릿했던 시절 얘기다. 요즘은 폭염지수 알리는 아스팔트 위의 아지랑이를 실감나게 맞곤 하지만. 아무튼 도시의 희미한 아지랑이 너머로도 봄은 온다. 전혀 예상 못 했던 폭설이 치고 간 겨울공화국 광장에도 한층 도타워진 봄볕이 내리고 있다. 얼마나 많은 걸음이 강추위를 헤치고 얼음판을 건너 우리의 봄을 불렀던가. 그러는 동안 서로의 깃발을 휘두르며 광장에 쏟아낸 말들은 우리말의 험한 표현 중 최악의 기록으로 남을 듯하다. 난폭한 언어들의 난무는 이보다 폭력적인 말은 없지 싶을 만큼 연일 상한선을 치고 나갔다. 논리도 근거도 없이 극에 달한 린치 수준의 혐오 선동 표현들은 현실에도 그대로 들어가면서 세상을 더욱 팍팍하게 만든다. 귀를 씻는다는 표현이 무색한 시절. 나쁜 말을 들으면 제 귀를 씻어 치웠다는 옛사람의 이야기가 지나간 전설처럼 박제된 것이다. 귀를 씻어 마음을 바로하거나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 눈만 뜨면 쳐들어오는 광고처럼 폭력적 표현들이 도처에서 들이치므로 귀를 씻을 새도 없어지는 판이다. 거친 말은 더 거친 말을 부르는 법. 갈수록 최신 무기 같은 최강의 언어 장착은 말의 품격이며 표현의 경계 따위 다 없애는 진군이 무섭다. 귀를 닫을 수 없는 청자의 고통은 물론이고 악용당하는 언어의 수난 또한 치료가 필요하다. 매체마다 자극적인 표현으로 구독 올리기 중독 중인데 이번 폭거에서 언어도 피를 너무 많이 본 셈이다. 과연 순화나 되돌림이 가능할지.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으로 자주 회자된다. 말은 사고이며 인격과 정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거친 표현 속에 사는 환경이 그에 따른 인격과 정서를 품게 하는 것이다. 분노와 혐오를 넘어 처단 같은 극한 표현이 범람하듯. 이는 욕을 안 섞으면 또래와의 유대감이 떨어진다는 아이들의 욕설 난무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욕의 내용보다 욕설 자체의 배설에서 쾌감을 느끼는 정서가 더 강한 자극의 추구로 이어지는 것이다. 심심하고 지루하면 못 견디는 정서에 욕설 언어가 끼면 습관이 되면서 때와 곳과 대상의 가림 없이 튀어나게 한다. 그렇게 다름이나 상대에 대한 이해와 살핌, 헤아림 같은 아량의 언어며 정서를 치우게 하는 것이다. 지난날 아지랑이는 봄의 서정적 언어였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로 밀려나며 무력해진 느낌이다. 너무 미미하고 무미해져 조만간 사라질 것 같은 언어들처럼. 그런데 들녘에 나가 보면 땅 위로 나오려고 애쓰는 어린 싹들을 끌어당기는 아지랑이 행렬이 아직도 그리운 손짓처럼 피고 있다. 생명의 새순을 사물사물 뽑아 올리는 오래된 봄의 미열로. 그렇게 두루 살피고 헤아린 말로 순한 마음을 피워내고 나누는 봄다운 봄을 그려본다. 아지랑이 너머로 연하게 새롭게 피워나갈 봄의 본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