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외로운 세기

한국 사회에 외로움의 그림자가 커졌다. 통계청이 25일 발표한 ‘2024 한국의 사회지표’를 보면 19세 이상 국민 중 ‘외롭다’고 느낀 사람의 비중이 21.1%로 전년보다 2.6%포인트 증가했다. ‘아무도 나를 잘 알지 못한다’고 느끼는 비중도 3.2%포인트 늘어 16.2%로 집계됐다. ‘외롭다’고 느끼는 비중은 60세 이상에서, ‘아무도 나를 잘 알지 못한다’고 느끼는 비중은 40대에서 두드러졌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도 주목할 만한 통계가 나왔다. 연구원의 ‘2024 고립·은둔 청소년 실태조사’ 결과 고립·은둔 청소년 3명 중 2명은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온라인 조사에 응답한 1만9천160명 가운데 고립, 은둔 청소년은 각각 12.6%, 16.0%로 나타났다. 청소년의 28.6%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21세기를 ‘외로운 세기(the lonely century)’라 이름 붙인 학자도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다. 그는 2021년 발간한 ‘고립의 시대’에서 21세기를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외로운 사람들이 대규모로 쏟아져 나오는 시기로 진단했다. 그의 말처럼 기술은 진보하지만 우리의 삶은 고립되고 있다. 안정적이지 못한 근무환경에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증가, 대면 접촉이 차단된 디지털을 매개로 한 만남의 일상화, 소득 수준에 따른 배제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도시의 구조. ‘초연결사회에서 격리된 우리’다. 파편화된 개인의 외로움은 사회를 습격한다. 묻지마 범죄를 관통하는 열쇳말은 언제나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이었다.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극단적인 견해에 빠지기 쉽고 포퓰리즘 정당에 투표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허츠는 대안으로 ‘연결’을 제시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기업의 협조, 시민의 다정함과 참여다. 극단주의와 혐오, 각종 음모론이 일상의 언어로 퍼지고 있는 한국 사회가 곱씹어 봐야 할 지점이다.

[세상읽기] 불평등 공화국 끝내야 한다

정국이 요동치면서 정치권은 대선 후보와 정당 지지율에 관심을 쏟고 있다. 지지율은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약자의 삶의 지표는 끝없이 내려가고 있다. 정당들이 봐야 할 것은 지지율이 아니라 자살률, 자영업자 연체율, 청년 취업률, 비정규직 숫자 등 불평등 지표다.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고는 새로운 대한민국도, 더 강한 민주주의도, 더 좋은 성장도 불가능하다.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의 방법론을 한국에 적용하면 부의 축적에서 상속이 기여한 비중이 1990년대 29%에서 2010년대에는 38%로 높아졌다. 우리나라 50대 부자의 절반은 부를 물려받은 상속형 부자다. 대한민국의 자산은 상위 10%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반면 청년 백수 120만명 시대다. 취업해도 4명 중 1명꼴로 단시간 노동이다. 부모보다 못사는 첫 세대로 남을 수 있다. 동시에 부모의 부와 지위를 대물림받은 특정 지역의 학생들이 서울대에 진학할 확률이 높은 경로가 구조화됐다. 양극화와 청년 대공황 시대에 감세 경쟁을 펼치며 2030의 지지율을 분석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부끄러운 일인지 절감해야 한다. 한국사회가 자살률에 둔감해지는 건 심각한 문제다. 최소한 대선을 준비하는 유력 후보들은 자살률에 충격과 공포, 아픔을 느껴야 한다. 자살률이 10만명당 27.3명으로 치솟았다. 자살은 사회적 죽음이자 절망사다. 국민이 절망에 쓰러지는 것, 딛고 일어설 희망을 포기하는 것, 이것은 정치의 실패다. 빛의 혁명을 거치며 국민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남태령 민주주의를 성취한 세대는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혁명을 지나 이태원 참사, 내란과 탄핵을 마주했다. 그 과정에서 새 시대를 향한 뜨거운 에너지를 응축했다. 민주당과 야권은 국가란 무엇인가에 응답해야 한다. 만성적인 불공정과 구조적 차별, 무한 경쟁에 따른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을 깨는 불평등 담론을 제시하는 것이 먼저다. 대한민국의 특권과 기득권을 깨겠다는 담대한 행동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정권교체 이상을 바라는 국민의 에너지는 차갑게 식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사회경제적 약자의 희생을 딛고 서 있다. 역대 우리나라 정부 가운데 성장을 외면한 정부는 없었다. 모두 성장 중심 정책을 중시했다. 불평등 해소와 분배를 우선한 정부는 없었다. 불평등 종식이 다음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가 돼야 할 시기다. 역대 정부가 가보지 않은 새로운 차원의 길로 가야 한다. 그것이 사회 통합을 견인하고 극우 포퓰리즘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소득, 노동, 주거, 의료, 교육 등의 분야에서 사회경제적 약자가 존엄과 행복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한다. 권력구조 개헌에 앞서 몫이 없는 국민의 몫을 찾아주는 기본권·사회권 개헌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상병수당 전면 도입과 노동시간 단축, 전국민 사회보험 보장, 재벌 지배구조 개혁과 조세 정의 실현, 토지공개념 도입, 차별금지법 제정, 한국은행이 제안한 대학입시 지역별 비례선발제 등을 다음 정부의 국정과제로 만들어야 한다. 더는 정부의 정책에서 배제되고 소외받는 ‘잊혀진’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 불평등엔 악성 이자가 붙는다. 평범한 국민에게만 붙는다. 불평등이 임계점까지 왔다. 우리는 뭐라도 해야 한다.

[천자춘추] 우주의 진선미를 체현하자

지금 우리사회는 분열의 도가니다. 올해로 광복 된 지 80년이다. 하지만 역사를 되새김질하면서 국가 기업 개인의 앞으로 나갈 길을 생각 할 여유조차 없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문제만 해도 80년이나 해묵었다. 경기도박물관이 ‘광복80’특별전 3부작 모토를 ‘합合’으로 정하고 김가진, 여운형, 오세창을 모신 이유다. 이를 통해 일 년 내내 합(合)의 참뜻을 되새김질 하고, 역사를 통해 내일을 보고자 한다. 문제는 ‘합(合)’이 그냥은 안 된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합은 의미도 없다. 흙을 뭉치게 하는 물 같은 존재가 필수다. 여기서 물은 비전이다. 암흑천지인 일제강점으로 돌아가면 북극성과 같은 존재인데,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가물가물 망각 되가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망국을 생명의 땅으로 회복시켜낸 원동력이 홍익인간이었다. 총칼로 폭탄으로 일제를 무찔렀던 궁극의 이유도 우리민족의 자주독립너머 인류차원의 홍익인간 실현에 있었다. 안중근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 후 외쳤던 ‘대한독립만세’가 1910년 3월 26일 여순에서 순국할 때 ‘동양평화만세’로 도약할 수 있는 것도 바로 홍익인간이다. 우리는 일제와의 36년 전쟁에서 단군의 홍익사상 발명으로 민족주의·공산사회주의·무정부주의까지 모두 합(合)해내어 자주독립으로 광복을 쟁취해냈다. 홍익인간의 잣대로 보면 비폭력의 2천만 민족의 3.1독립만세혁명(1919)은 이미 윌슨의 민족자결주의(1918) 이전에 자주적으로 전개되었다. “합하면 서고, 나누어지면 엎어진다(合則立分則倒)”고 시작되는 ‘대동단결선언’(1917)이 그것이다. ‘무오독립선언’(1918)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주의 진선미(眞善美)를 체현하여 세계 속에 자랑스러운 나라를 건설할 것이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선언서의 초안자인 조소앙을 비롯하여 김교헌, 김규식, 김동삼, 김약연, 김좌진, 여준, 이동녕, 이동휘, 이상룡, 이승만, 이시영, 문창범, 박은식, 박찬익, 신성, 신채호, 안창호, 윤세복, 황상규 등 대부분이 단군사상으로 무장한 대종교 출신 인물이라는 점에서 망국 당시 홍익인간이 우리의 등불이었음을 절감한다. 이렇게 자등명(自燈明)을 이어받은 3.1혁명은 도미노로 중국의 5.4운동을 촉발시키고, 필리핀 베트남 인도 터키 이집트로 번지면서 전 세계 피압박민족들의 독립 도화선이 됐다. 그리고 3.1혁명 결과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 된 것은 우리의 역사를 한 단계 도약시킨 쾌거중의 쾌거다. 이후 임정이 주도가 돼 전 세계에서 독립투쟁을 전개한 결과 1945년 광복을 쟁취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여전히 정전(停戰)상태이다. 남북분단으로 통일의 과제가 주어져 있다. 남북통일이야 말로 완전한 광복인 이유다. 통일은 절대 도둑같이 그냥 안 온다.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다가는 그 이전에 다른 놈이 가지 채 꺾어 집어 삼키고 만다. 내 노력이 있고나서야 남도 돕는다. 인류역사 자체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전쟁역사다. 여기서 ‘강(强)’은 당연히 문무겸비다. 문(文)은 철학이다. 일제강점 시공에서 홍익인간이었다면, 홍익자연과 홍익우주가 분단과 기후변화, AI, 우주시대 인류의 비전이다. 대한민국이 합(合)으로 세계무대에 주체적으로 ‘우주의 진선미를 체현해나가는 것’이 통일의 길이다.

[김종구 칼럼] 헌재의 ‘151석’ 결정, 재탄핵 조장하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불완전한 권한이다. 법적으로는 모든 권한을 넘겨받는다. 다만 중요한 한 가지를 가질 수 없다. 투표 등 국민의 선택으로 부여받은 권력이다. 민주주의가 창출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이러다 보니 대행은 정치에 치이고 휘둘린다. 야당에 의한 견제가 특히 심하다. 그중에도 무서운 공격이 탄핵이다. 그동안은 없어서 몰랐다. 이번에 알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한덕수 대행을 탄핵했다. 직무 시작 열흘 만에 날아갔다. 그리고 87일 됐다. 헌재가 탄핵을 기각해 복귀시켰다. 그런데 하루도 안 돼 ‘한덕수 대행 재탄핵’ 얘기가 나온다. 24일 기자가 물었다.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재탄핵을 검토하나.”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답했다. “속단할 수 없다.” 탄핵 성적 9전9패의 민주당이다. 대놓고 말하기 민망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많은 언론이 다음 날 지면에 대행 재탄핵 얘기를 실었다. 복귀 하루 만에 정부를 휘감아 도는 공포다. 출발은 헌재의 24일 결정문이다. 151석을 대행의 탄핵 소추 요건으로 인정했다. 6명이 동의한 이유가 이렇다. “(대행은 대통령과 비교해) 상당히 축소된 간접적 정당성만 보유한다”, “권한대행 지위가 새로 창설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본래 신분상 지위(총리)에 따른 의결 정족수를 적용해야 한다”. 대행의 권한을 제한적이라고 봤다. 현실은 알겠는데, 법률에 근거가 있나. 대통령에게만 있고, 권한대행에게 없는 권한?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엔 논리상의 어색함도 있다. 재판관 후보자 불(不)임명이 발단이었다. 한 대행이 이유를 설명했다. ‘대통령 임명 권한이 대행에게는 없다고 본다.’ 그러자 민주당이 ‘권한 있으니 임명하라’며 탄핵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을 했다. ‘임명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했다. 한덕수 대행이 ‘임명 권한·책임 없다’고 했고, 민주당·헌재는 ‘임명 권한·책임 있다’고 했다. 그랬던 헌재가 정족수에서는 달라졌다. ‘대행의 권한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소수 의견이 있다.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이다. 절차 흠결을 이유로 탄핵을 각하했다. 둘의 논리가 이렇다. “권한대행자를 대통령과 다르게 볼 이유가 없다”, “비상 상황에서는 탄핵 제도 남용을 방지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 그러면서 이런 비유도 했다. -현행법에서 차관은 탄핵 대상이 아니다. 그러면 차관은 장관직을 대행하면서 중한 위헌·위법을 해도 탄핵할 수 없다는 논리가 된다-. 정치 현실과 법률 해석이 보다 명료해 보인다. 혹자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입장을 얘기한다. 151석 밀어붙인 부담을 덜어줬다는 것이다. 혹자는 민주당에 탄핵 무기를 쥐여줬다고 얘기한다. 홀가분하게 재탄핵할 근거를 줬다는 것이다. 헌재가 이런 계산을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 흔한 지라시 한 장 받아 본 적 없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 결과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151석’이 더욱 개운치 않다.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 광화문 차벽도 아슬아슬하다. 시위대는 법원까지 난입했다. 물리적 내전과 국가 위기가 경고된다. 싸우는 걸 보면 곧 망할 나라다. 하지만 이 모습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당대(當代)는 언제나 난세(亂世)라 했다. 당대에만 그렇게 보이는 거다. 결국 대통령 한 사람의 사건 아닌가. 곧 역사에 기록되고 정리될 것이다. 탄핵 정족수를 특별히 붙들고 늘어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당대뿐 아니라 미래까지 끌어갈 기준이라서다. 헌법재판소는 판결이 아니라 결정을 한다. 판례가 아니고 결정례(決定例)·선례(先例)다. 미래에 미칠 구속력에서 판례의 그것과 다르다. 한번 내린 결정이라도 바뀔 수 있다. ‘151석 아쉬움’을 남겨 놓는 이유다. 언젠가 200석으로 바뀔 바람을 적어 두겠다. 김종구 주필

[경기만평] 9전 9패...

[사설] ‘탄핵에 이를 정도인가’, 윤 탄핵에 핵심문구 될 듯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이 기각됐다. 기각 5, 인용 1, 각하 2로 갈렸다. 한 총리는 즉시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복귀했다. 한 총리 탄핵은 기각 또는 각하 예상이 많았다. 실제 결과도 예상의 범주 내에서 나왔다. 사실 관심은 윤 대통령 탄핵 가늠이었다. 한 총리 결정문으로 짐작이 가능할 거라고 봤다. 실제로 24일 오후부터 각종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논리를 빗대 진영의 바람을 이끌고 있다. 전망이라며 쓰지만 사실은 희망이다. 엄연히 다른 사건이다. 혐의 속 역할이 다르고 법률이 보장하는 신분이 다르다. 비교해서 결론을 추론할 연관성이 박약하다. 굳이 살펴볼 가치가 있다면 큰 틀의 원칙이다. 재판관들이 밝힌 의견에 깔려 있는 접근 기준이 있다. 판결의 일관성 또는 개인적 소신으로 해석할 수 있다. 판단의 근거나 기준을 담아내는 각자의 그릇과도 같다. 5(기각), 1(인용), 2(각하)라는 결론만으로 분석될 순 없다. 결론에 이르는 논리가 중요하다.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각하 의견을 냈다. 법률이 정하는 절차를 엄격히 해석하고 있다. 본안 속 혐의는 판단하지도 않았다. 윤 대통령 측에서는 헌재 불공정을 문제 삼았다. 내란죄 제외, 기일 일괄 지정 등이다. 같은 기준으로 살필 가능성이 있다. 정계선 재판관은 혐의가 인정되고 파면해야 할 정도라고 했다. 내란 동조, 재판관 임명 보류 등 5개 혐의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의 윤 대통령이다. 짐작되는 방향이 있다. 기각한 김복형 재판관은 혐의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탄핵 조건을 가장 까다롭게 따졌다. 주목되는 것은 나머지 기각 4인의 의견이다. 결론에 이르는 논리가 주목할 만하다. 한 총리에 대해 ‘헌법 또는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헌법 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한 부분이다. 그런데 결론은 기각이다. 탄핵에 이를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거나 ‘단언할 수 없다’는 이유다. 위법과 탄핵을 분리해서 본 것이다. 윤 대통령의 운명은 ‘6인’이다. 찬성이 ‘6인 이상’이면 파면, ‘5인 이하’면 복귀다. 한 총리 결정에서 큰 틀의 방향은 비쳤다. 중간 지대에서 형성될 4~5인의 향배가 관건이다. 이들의 의견에 등장한 것이 ‘불법의 크기’다. ‘위험·위법한 행위가 인정된다’는 전제가 같더라도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탄핵에 이를 정도’라면 인용, ‘탄핵에 이르지 않을 정도’라면 기각이다. 감사원장의 탄핵심판에서도 같은 논리가 등장했다.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들에 대한 심판에서도 있었다.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이고 그 때문에 논쟁할 여지도 적다. 어찌보면 법원과 구별되는 가장 헌법재판소적인 영역이다.

[사설] 인천 떠나는 청년들... 좋은 일자리가 답이다

인천에 사는 청년들이 서울 등으로 계속 떠나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도, 인천만의 일도 아니긴 하다. 인천은 다른 지방과 달리 인구가 늘고 있다. 최근엔 인구 유입이 눈에 띌 정도다. 그런데도 청년(18~39세)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 중이다. 주거비 부담이 크지만 직장 가까운 서울로 가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매일 왕복 3시간씩의 출퇴근도 인천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다. 인천 인구는 2018년 295만5천명에서 2023년 300만명을 넘어섰다. 증가세가 이어져 현재 311만명이다. 지난해 인천의 인구 순유입률은 0.85%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그러나 청년 등 생산연령인구는 반대로 줄고 있다. 2018년 인천의 18~39세 청년 인구는 91만4천200명이었다. 이후 2020년 86만7천154명, 2022년 83만7천218명, 2024년 82만4천956명으로 줄었다. 7년 동안 인천 인구는 15만명 늘었지만 청년 인구는 10만명이나 감소했다. 청년 유출은 특히 원도심에 더 많다. 남동·동·계양구 등 원도심 지역 청년들이 주로 직장을 따라 서울 경기 등으로 빠져나간다. 원도심에서 송도·청라·영종·검단 등 신도심으로 옮겨가는 청년들도 있다. 인천시는 취업, 교육·생활 인프라 격차 등을 청년 유출 원인으로 파악한다. 경기·서울지역이 취업 기회나 기업 규모, 임금 등에서 인천보다 낫기 때문이다. 인천 20대 청년들의 높은 비정규직 비율도 한 원인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저숙련 제조업 중심의 인천 산업 구조를 지적한다. 서비스업이나 첨단기술 제조업 등의 청년 선호 일자리와 매칭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인천의 신도심은 베드타운 성격이 강하고 원도심은 취업 환경이 열악해 청년들이 머무르기 어려운 환경이라고도 한다. 인천시도 조만간 획기적인 청년 지원 정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청년 대상 또 하나 ‘아이(i)+드림’ 정책이다. 인천에서 타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근로자 비율이 28.9%라고 한다. 인천시민 10명 중 3명은 서울, 경기도로 일하러 가는 셈이다. 이에 인천시는 ‘인천형 특화 일자리’ 정책에 주력할 참이다. 기업 유치로 서비스업이나 첨단산업 일자리를 늘린다. 또 인천의 주력인 뿌리산업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나선다는 것이다. 결국 일자리 문제로 초점이 모아진다. 교육·문화·생활 인프라 등은 2차적 요인이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기업이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청년 일자리들을 외면하는 사례도 자주 본다. 지자체의 불합리하게 엄격한 규제나 주민 반대 등이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따라 떠나기도, 돌아오기도 한다.

[지지대] 국가유산 추진되는 절밥

두부나 김치, 나물 등을 한데 섞어 비빈다. 버섯잡채나 순나물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첫맛은 그저 그렇다. 하지만 단출하고 소박하다. 절밥(사찰음식)이 딱 그렇다. 단어 그대로는 절에서 먹는 끼니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곡선의 처마를 바라보며 먹을 때 느껴지는 식감은 그래서 근사하다. 주변의 소록소록한 자연과 풍광이 그대로 내려와 앉았다. 법정 스님은 우주가 들어 있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나물을 한 숟가락 입에 물면 풍경(風磬) 소리가 난다. 의성어로 표현하면 “댕그랑댕그랑”이다. 그윽한 공감각이다. 소리에도 품격이 있는 셈이다. 그 어떤 강박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가장 으뜸인 특징은 육식과 인공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오로지 또 다른 수행의 한 방법으로 여긴다. 먹는 것도 수행이다. 절제를 추구하는 식탁이다. 식재료 본연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정부가 절밥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경기일보 24일자 16면)한다. 절밥은 불교 정신이 오롯이 담긴 음식이다. 승려들이 일상에서 먹는 수행식과 발우공양 등을 포함한다. 사찰마다 다양한 음식이 전해져 오는데 육류와 생선, 오신채(五辛菜·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 등 자극적인 다섯 가지 채소)를 쓰지 않고 채식을 중심으로 한다.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않는다’는 생명 존중의 철학적 가치도 녹아 있다. 아끼면서 배려하는 행복한 관례이고 법칙이다. 절밥은 오랜 기간 우리 식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았다. 고려시대 문헌인 ‘동국이상국집’ 등에 그런 내용이 소상하게 담겼다. 조선시대에는 사찰이 두부, 메주 등 장류와 저장음식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면서 사대부가와 곡식을 교환하는 등 음식을 통해 교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가유산청은 예고 기간 30일간 각계 의견을 검토한 뒤 무형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무형유산 지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입안에서 사각사각 녹아드는 절밥을 먹으면서 봄을 맞이하면 어떨까.

[인천시론] 루원시티, 양보·타협으로 큰 그림 그려야

수도권 집값 전망에 대한 전문가들의 하락을 예견하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강남 아파트는 급등해 해제됐던 토지거래허가제를 부활한다는 기사를 봤다. 동시에 인천은 송도에서조차 마이너스 피가 등장했다는 소식이 서로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왜 강남의 집값은 오르기만 하는데 인천은 부동산의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할까. 출생률 1위라는 인천은 여러 면에서 이와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미분양 사태를 걱정해 공급자들은 분양을 미루는가 하면 이미 공급된 아파트에서는 분양가에서 마이너스 피로 거래가 조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구 가정동 일원의 루원시티는 국내외 대기업을 유치해 주거, 상업, 업무시설이 혼합된 복합도시로 건설하겠다는 목표로 계획된 대규모 도시개발사업이었다. 그러나 공기업과 금융기관 등 기업 유치에 실패해 업무와 상업 기능을 중심으로 한 도시 비전은 공염불이 됐다. 양질의 일자리를 기반으로 하는 도시계획의 실패에 인천시와 LH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다투는 사이 분양 열기에 편승한 장벽 같은 아파트들로 채워졌다. 아파트의 그림자와 함께 어둡고 침침한 방음벽 그늘에 경인고속도로대로는 멈춰 서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아직도 토지 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금융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등에 따른 LH와 인천시와의 갈등은 좀처럼 타협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둘 다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공적 기관이기에 주인없이 길어지는 갈등으로 인한 난개발을 일반 시민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서울과 인천을 잇는 철도와 고속도로는 서울을 목적으로 향하는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인천으로 그 방향을 돌려야 한다. 루원시티는 인천으로 향하는 나들목으로서도 중요한 입지에 있으며 공항 및 항만 등과의 접근성에도 허브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애초에 금융 등 업무와 상업 기능을 중심으로 계획된 일자리 중심의 도시개발 사업이었으며 과감한 인센티브를 부여해서라도 기업을 유치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주거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라 할 것이다. 원도심의 핑크빛 청사진으로 여겨지는 인천시의 야심찬 프로젝트 제물포르네상스도 양질의 일자리를 견인할 대표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일 것이다. 앵커로서 기능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파생할 수 있다면 특혜시비를 넘어설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어서라도 유치하는 것이 투자이기 때문이다. 공공정책의 목적이 특정 집단의 이익과 맞물리는 경우 우리는 유치와 특혜의 논란 속에서 움츠러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센티브가 특정집단의 이익이 아닌 공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안전망을 탄탄하게 마련한다면 지역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시경관에 대한 고려가 상실된 인천대로의 루원시티의 아파트 그림자를 보며, 하루빨리 공공기관 간의 갈등을 타협하고, 도시와 공공정책에서도 과감한 투자를 통해 멈춰진 루원시티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노선을 정비하기를 기대해본다.

[문화산책] 옛 고을 걸으며 경기도 미래를 생각하다

28개 시와 3개 군으로 구성된 경기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행정구역의 변천이 잦았다. 1914년 일제에 의한 부군면 통폐합으로 많은 고을이 작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으며 산업화 이후 서울이 공룡처럼 커지면서 그 영향을 피해 가지 못했다. 양주와 광주는 넓은 고을이라는 별칭이 무색할 정도로 서울과 다른 도시들에 그 살점을 내줬고 광명과 군포, 의정부 등 새로 태어난 고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화성시 동부에 자리한 동탄은 신도시의 대명사로 불리며 젊고 활기찬 트렌드를 주도해 하나의 밈(Meme)으로 화제가 됐다. 신도시가 탄생한 만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고장도 적지 않다. 고속도로 터널과 리조트의 이름으로만 알고 있는 양지는 김대건 신부가 유년기를 보낸 마을이며 인천에 속한 부평은 인천, 부천지역을 포괄하는 대도호부로 경기 서부에서 가장 번영을 누렸다. 화려했던 역사는 시대 너머로 사라지고 그 자취를 보여주는 경관도 거의 남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들어 그 이름을 상기시킨다면 옛 고장의 모습을 생생히 전달해줄지도 모른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였던 겸재 정선이 현령을 지냈고 천하의 명의 허준이 동의보감을 저술했다고 전해지는 양천현으로 먼저 떠나보자. 현재 서울 강서, 양천구 영역을 감싸고 있던 옛 고장은 한양과 가까우며 수운을 통해 들어온 물산이 풍부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수령자리를 탐했다. 많은 배들이 다니던 나루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수많은 차들의 행렬로 발이 묶인 올림픽대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겸재의 ‘경교명승첩’을 통해 유서 깊은 고을의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화첩은 그가 현령으로 부임하던 시절 오랜 친구인 이병연과 시화를 나누기로 정했는데 이때 한강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여러 폭의 그림에 담아 실은 것이다. 양천관아 뒷산인 궁산 정상에 자리한 소악루에 올라 한강을 바라보며 달맞이를 즐기던 그는 붓을 들어 한손에 그리기 시작했다. ‘소악후월도’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며 우리는 예전 양천의 모습을 기억한다. 통진, 부평, 양지, 지평 등 하나의 구나 면, 읍의 지명으로 남은 고을도 있고 적성, 마전, 풍덕, 장단처럼 분단의 비극으로 흩어진 사례도 존재한다. 그러나 포천시 북부지역에 자리했던 영평군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으며 한탄강이 지나가는 이곳은 풍경이 빼어나 수많은 시인묵객이 거쳐가며 글과 시를 도처에 남겼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여덟 곳을 일컬어 영평팔경이라 불렀다. 특히 화적연은 큰 바위를 중심으로 강이 휘감으며 마치 볏단을 쌓은 모양을 하고 있다. 겸재 역시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해악전신첩’을 통해 바라본 그림은 예나 지금이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비록 ‘영평’이란 명칭은 시대 너머로 사라졌지만 경흥옛길을 통해 그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어떤 고을은 쇠퇴를 막지 못하고 작은 동네가 큰 도시로 발전하는 사례를 수없이 만나 왔다. 서울의 팽창과 집값 억제를 위해 탄생한 1기 신도시 이후 경기도는 지금도 수차례 지도를 다시 그려야 했다. 일산, 분당신도시는 기존 원도심과 격리된 채 고양, 성남과 다른 독자적인 정체성을 주장하며 광교, 한강신도시처럼 소속돼 있는 고장의 특색을 살려 정비된 신도시도 존재한다. 고령화와 저출산 시대를 맞이해 10년 뒤 경기도의 지도는 다시 그려질 것 이다. 앞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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