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눈’의 소유자 서성란, 진실과 대면하는 글쓰기를 보여주다 [경기작가를 해석하다 ①]

[경기 작가를 해석하다, 평론가 연재 ①-소설가 서성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예술지원’ 사업을 통해 지역 작가의 출간을 지원하고 있다. 경기일보는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경기예술지원 1, 2차’ 사업에 선정된 작가 10명에 대한 기획 평론 시리즈 ‘경기 작가를 해석하다’를 연재한다. 5명의 문학평론가가 작가들의 창작 세계를 조명해 지역 예술 담론을 확장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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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직 문학평론가

서성란은 ‘겹눈’을 가진 작가다. 그는 199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한 이후 30년 동안 사실을 직시하되 쇠락과 노화의 풍경을 깊이 응시하며 공감과 상상 너머 진실과 대면하려는 글쓰기를 여일하게 보여줬다. 악성 치매노인(‘침대 없는 여자’), 죽음 앞의 인간(‘디그니타스로 가는 열차’), 이주여성·이주노동자(‘파프리카’ 및 ‘쓰엉’), 장애인(‘풍년식당 레시피’), 세월호 참사 희생자(‘유채’), 추방 입양인(‘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 소설가 지망생(‘마살라’) 등 그가 소설로 형상화한 인물들은 그의 붓질을 통해 비로소 온전한 ‘개인’으로 호명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그의 출세작인 ‘파프리카’(2007년) 속 베트남 여성 ‘수연/츄엔’은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는 파프리카 줄기처럼 낯선 땅에서 자기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이주여성을 은유한다. 그리고 ‘파프리카’의 문제의식은 장편소설 ‘쓰엉’(2016년)에서 더욱 심화됐다. 서성란은 ‘쓰엉’의 ‘작가의 말’에서 “‘파프리카’의 츄엔, 그녀는 쓰엉이 되어 내게로 왔다”고 썼다. ‘쓰엉’은 베트남어로도 출간됐다.

 

이처럼 서성란은 부름에 응답하는 행위야말로 책임감과 연결되는 문학의 윤리라는 점을 예민하게 의식하며 소설을 쓴다. 2022년 경기문학작가 확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된 소설집 ‘유채’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려는 글쓰기를 보여줬고 ‘쓰엉’에서는 ‘가일리’라는 공간을 통해 낯선 타자를 좀처럼 사회적 성원(成員)으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 안의 견고한 무의식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최근작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2024년)에서는 추방 입양인들의 ‘다중 소수자’로서의 존재를 오롯이 드러내고자 했다. 작품 제목 ‘이규호 노먼 테리어’는 ‘이규호’의 복잡한 고유성을 잘 드러내며 ‘당신의 존재는 죄가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하지만 서성란의 글쓰기는 당위적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장편소설 ‘풍년식당 레시피’에서 상투적인 글쓰기에서 탈정(脫井)하며 ‘음식’(팥죽)이라는 코드를 통해 조각보가족(patchwork family)의 가능성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서성란이 어느 작품에서 “작가란 타인의 상처에 고통을 느끼고 아파 하는 사람”이라고 한 말은 서성란 글쓰기의 특장(特長)을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공감과 상상 너머 ‘진실’과 대면하고자 하는 서성란의 글쓰기가 한국문학의 영토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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