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역사·공동체 삶이 살아있는 ‘축제’

양승규 예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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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축제는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 공동체의 삶을 담는 문화 플랫폼이다. 그러나 국내 많은 축제는 외주 대행 중심의 복제 기획, 유명 가수·불꽃놀이 위주의 구성, 관광객 수 중심의 평가에 갇혀 있다. 주민은 손님처럼 소비하고 축제는 끝나면 흔적 없이 사라진다. 이는 행정 성과에 초점을 맞춘 일회성 이벤트로 전락하기 쉽다. 축제는 본래 ‘기획된 행정’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 생태계’여야 한다. 해외 사례들은 지역 중심 축제가 어떻게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준다.

 

영국 글래스고의 ‘웨스트엔드 페스티벌’은 골목, 학교 운동장, 동네 카페 등 일상이 무대가 되고 지역민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행정은 예산과 공간을 지원하는 플랫폼 역할에 머물며 공연, 워크숍, 낭독회 등 100여개의 소규모 콘텐츠가 도시 곳곳을 채운다. 축제는 행정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관점을 실현하고 있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프렌치 쿼터 페스티벌’은 지역 뮤지션과 식당만 참여하고 시민 자원봉사로 운영된다. 민간과 시민이 자율적으로 도시문화를 지켜내며 관광 수입과 로컬 생태계를 함께 키우는 구조다. 홍보보다 현장의 감동에 초점을 맞춘 운영이 특징이다. 축제의 정체성과 도시의 문화적 자산이 맞닿아 있는 사례다.

 

캐나다 밴쿠버의 ‘퓨지 페스티벌’은 현대 공연예술 중심의 축제로 로컬 예술가와 시민, 비영리기관이 함께 만든다. 다수의 작품이 밴쿠버 현지에서 처음 개발되고 시민은 관객을 넘어 공동 창작자 역할도 수행한다. 이 축제는 단순한 관람 행사가 아니라 지역 콘텐츠 생태계를 확장시키는 실험실이 된다. 행정은 방향을 정하기보다 창작 환경을 조성하며 도시 전체가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결과적으로 축제는 도시 브랜딩의 수단이 아닌 시민과 창작자가 함께 숨 쉬는 살아 있는 시스템이 된다.

 

전술한 축제들의 공통점은 ‘지역이 주도하고 행정은 지원하는 구조’라는 데 있다. 반면 한국의 축제는 여전히 관(官) 중심 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획 초기부터 “이건 안 되고 저건 꼭 넣어야 한다”는 식의 요구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떨어뜨린다. 때로는 결재선이 축제의 성격을 결정짓고 필수적 요소들은 부수적인 요소로 밀려난다. 공공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행정의 역할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 무게가 지나칠 경우 축제는 형식화되기 쉽다.

 

이제는 축제를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지방정부는 기획자가 아닌 플랫폼 조력자로 전환돼야 하며 중간지원조직이나 ‘축제 협동조합’을 통해 지역민, 예술가, 청년, 상인 등이 협력하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예산은 연예인 섭외보다 로컬 콘텐츠 개발에 집중돼야 하며 성과는 단순 방문자 수가 아니라 관계 형성과 문화적 밀도로 평가돼야 한다.

 

축제는 지역의 일상을 문화로 전환하는 예술적 행위이자 공동체가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 시간이다. 행정의 결과물이 아닌 지역의 삶이 주체가 되는 축제만이 지속가능한 지역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로컬 콘텐츠로 승부하는 축제가 바로 살아 있는 지역문화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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