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가량의 영화가 쏟아내는 다이내믹한 스펙터클의 재앙을 맛보진 못하더라도 실제로 우리는 그런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숱한 대지진과 쓰나미의 폐해는 지난 10년간 수십만 명의 인명을 앗아갔으니까.
서평주의 작업들은 일간지 신문 머리기사의 한 컷 사진들을 이용한 것이다. 그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재난, 참사, 참혹, 사건, 재앙, 현실, 폐해, 인명 등과 관련된 사진들을 자주 스크랩한 뒤 그 위에 채색 가필을 가함으로써 사진의 본래적 메타포를 비틀어 버린다.
스펙터클한 재난영화와 쓰나미가 우리 인식에 각인된 비극적 사건의 모습들이라면, 예컨대 서평주는 그런 사건들의 실체를 들춰내는 방식으로 본질의 페이소스를 풍자한다. 그러니까 그의 채색 가필의 미학은 한 마디로 풍자의 미학이라 할 만 하다.
‘지구인들 난리다’를 보자. 2009년 4월 2일 목요일자 경향신문의 한 사진이다. 사진 제목은 “남북 ‘축구전쟁’”이다. 제목의 해설은 이렇다. “황재원과 정대세 등 남북한 선수들이 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0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전반 경기 중 북한 골문 앞에서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사진의 실제 사건이 무엇인지 잘 설명되어 있다. 그는 이 해설은 그대로 둔 채 축구선수들의 모습에 다른 인물들로 채색 가필했다. 축구공은 지구볼이 되었고, 맨 앞쪽에서 볼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선수들은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를 내세웠다. 그 뒤로 전쟁영웅의 지도자라 할 만한 인물들을 배치했다. 자유의 여신상으로 분한 부시와 장쩌민, 푸틴, 윈스턴 처칠, 김정일, 이명박 그리고 뒷모습의 일본 사무라이, 이란 지도자 등이 있다. 남북 축구전쟁은 지구 전쟁의 냉전 이데올로기로 가득하다.
헤딩 골을 터트릴 기세로 장쩌민의 어깨에 올라탄 자유의 여신은 그 뾰족한 뿔로 지구볼을 찔러버릴지 모른다. 서평주는 이렇듯 축구 상황을 열강들의 난투극 상황으로 돌변시켰다. 인물들의 포즈나 표정에서는 해학과 익살이 넘친다. 지구인들이 난리다. 난리가 났으니 평화가 만무하다. 그런데 딱 지금 동아시아의 영토분쟁이 그렇다. 전쟁을 불사할 태세다.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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